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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미신, 그 끝없는 이야기
새뮤얼 애덤스 드레이크 지음, 윤경미 옮김 / 책읽는귀족 / 2017년 8월
평점 :
해마다 10월 31일이 되면 미국에서는 핼러윈(Halloween)이 열린다. 핼러윈은 악령을 쫓는 고대 켈트인(Celts)의 축제에서 유래됐다. 켈트인들은 죽은 영혼, 정령, 악마, 마녀 등이 10월 31일 밤에 살아난다고 믿었다. 핼러윈을 ‘악령들의 축제’라고 불리는 건 이런 까닭이다. 핼러윈은 불길한 의미의 신성한 의식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즐기는 재미있는 축제가 되었다. 축제의 밤이 되면 아이들은 악마, 마녀, 만화영화 캐릭터 등으로 분장하다. 아이들은 ‘사탕을 주지 않으면 장난을 치겠어(Trick or Treat)’라는 말을 하면서 집마다 돌아다닌다. 핼러윈을 즐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핼러윈의 유래를 얼마나 이해하는지 알 수 없지만, 핼러윈은 고대인들의 미신에서 유래된 전통문화다. 미신이 없었으면 10월 31일은 그저 그런 보통 날로 남았을 것이다.
민간에 전해지는 미신은 비과학적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이 미신을 믿는다. 심지어 손해를 보면서까지 따르기도 한다. 칼 세이건(Carl Sagan)은 허무맹랑한 미신이 휩쓰는 세상을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The Demon-Haunted World)’이라고 했다. 때로는 미신을 ‘아직 증명해내지 못한 과학’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미신은 비과학적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과학적 이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기한 일들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이럴 때 사람들은 미신을 떠올린다.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 사이에 벌어진 틈은 미신이 스며들기 딱 좋은 위치이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동서양 미신들을 수집 · 정리한 새뮤얼 애덤스 드레이크(Samuel Adams Drake)는 미신이 인간의 삶에 끼친 영향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그가 쓴 《신화와 미신, 그 끝없는 이야기》(책읽는귀족, 2017)는 미신의 유래를 밝히고 이 그릇된 믿음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력을 알려준다.
미신은 역사가 기록되기 전부터 등장했다. 미신은 지금까지도 그림자처럼 인간을 따라다니고 있다. 오늘날 미신은 과거의 어리석은 믿음으로 무시 받기에 십상이다. 하지만 드레이크는 미신의 긍정적인 가치를 강조한다. 드레이크의 말에 따르면 미신은 과학과 비과학(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신기한 일들) 사이의 공허한 심연의 틈을 메우는 상상력이다. 상상의 부재는 우리 삶을 공허하게 만들어버린다. 삶의 재미를 잃은 채 단조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메울 수 없는 처절한 공허함을 느낀다. 그 공허함은 새로운 상상, 즉 미신으로 채워진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이나 자연현상 속에서 인과관계를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한두 가지 사례로부터 확실한 인과관계를 발견하면 그다음부터는 세상의 일을 예측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이 순리대로 돌아가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으며 쉽게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미신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어떻게든 극복하고픈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자양분 삼아 더욱 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사람들은 종종 중요한 일을 앞두고 머리를 감지 않는다거나, 손톱을 깎지 않는 등의 행동을 하면서 ‘징크스(jinx)’를 피하려고 한다. 어이없는 미신이 만들어 낸 비과학적 치료법에 대한 맹신이 존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온갖 치료법을 찾게 된다. 대부분은 실패를 겪게 된다. 실패는 금방 잊힌다. 특별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어쩌다 거의 죽어가던 사람이 기사회생하면 그것은 기억되고 전승된다. 그래서 미신은 확실한 치료법으로 둔갑하여 사람들에게 잘못 알려지게 된다. 미신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어떤 일을 상대방 또는 주변 환경 탓으로 넘겨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또 심각한 피해를 초래하기도 한다. 드레이크는 병을 고칠 수 있는 식물에 대한 미신의 오류와 위험성을 경계했다. 드레이크가 살았던 과거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비과학적인 치료법 또는 치유의 부적에 매달리며 시간과 돈을 쏟아붓고 있다.
미신은 인류의 순수한 믿음과 상상을 토대로 형성된다. 인간은 공허한 심연의 틈을 메우기 위해 상상적인 봉합을 시도해 왔다. 작가는 하얀 종이 위에 서서 상상력으로 현실과 비현실의 공허한 틈을 봉합한다. 그들은 미신을 문학적 소재로 삼았고 독자들은 허구의 서사를 자연스럽게 믿었다. 미신에 근거한 허구의 서사가 때론 새롭고도 재미있는 현실을 창조한다. 미신은 말도 안 되는 내용임을 알면서도 삭제하기 힘든 상상력의 또 다른 이름이다. 즉 ‘그렇게 믿고픈 마음’이 만들어낸 생각의 결과물이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미신으로부터 많은 부분을 속박당하거나 의지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 책에 인용된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말은 옳다. 이 말은 '미신이 출몰하는 세상' 속에 살아가는 현명한 사람들의 모순적 태도를 지적할 때 쓸 수 있다. 현명한 사람은 미신에 코웃음을 치면서도 미신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쩔쩔맨다.
“현명한 사람도 멍청한 사람처럼 미신을 믿는다.”
우리는 미신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활개치는 세상에 놓여졌다. 그래도 미신이 있어서 삶은 무미건조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