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김영사, 2017) 330쪽에 보면 노가다의 차(builder’s tea)’라는 단어가 나온다. 차를 잘 모르는 독자를 위해 역자가 노가다의 차에 대한 설명을 역주로 달아 놓았다.

 

진하게 차를 우려 큰 머그컵에 담고 우유와 설탕을 넣어 마시는 홍차

 

이 홍차가 영국의 건축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휴식을 취할 때 자주 마셨다고 해서 빌더스 티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Builder’건축업자를 뜻하는 단어다. 일반적으로 건축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노동자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Builder’가 노가다와 같은 의미로 볼 수 없다. 왜냐하면 ‘Builder’가 건축 시공의 책임자라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이지만, 노가다는 막노동꾼을 속되게 부를 때 쓰는 말이다. 애초에 노가다라는 표현은 써서는 안 되는 속어다. 어차피 노가다는 일본어에서 유래한 말이라서 되도록 안 쓰는 게 좋다. 이 단어가 자주 사용되면 건물 짓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편견이 강화될 위험이 있다.

 

행동과 성질이 거칠고 불량한 사람에게 노가다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건설현장에 맨몸으로 뛰어들어 일하는 사람들 모두 거친 성격에다가 일을 설렁설렁 해치우지 않을 것이다. 어렸을 때 내 부모님은 좋은 대학을 다니지 않으면 몸이 고생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모든 부모는 자식이 막노동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 일이 힘들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분들이 깨닫지 못한 사실이 하나 있다. 학력이 낮은 사람들을 노동자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편견은 노동자를 무시하는 근거로 작용한다. 노동자들을 못 배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이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파업을 일으키면 못 배워먹은 짓이라고 비난한다.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길 때 단어를 잘 선택해야 한다. 단어 하나가 의도치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글을 주로 쓰거나 번역 일을 하는 고학력자가 노가다라는 말을 사용하면 특정 직업에 대한 차별로 비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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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9 1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29 19:33   좋아요 1 | URL
역자가 빌더를 ‘건축업자‘, ‘건축 노동자‘라고 번역하면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노가다‘라는 속어를 선택한 역자의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빌더스 티‘가 궁금해서 인터넷에 검색해봤지만, 신뢰할만한 내용을 찾지 못했어요.

북다이제스터 2017-06-29 1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학력자가 하는 번역 일도 ‘노가다‘라 보입니다. ^^

cyrus 2017-06-29 19:42   좋아요 1 | URL
번역 일도 정말 힘든 일이에요. 그런데 번역하는 사람들이 자기 일을 ‘노가다‘라는 표현을 잘 안 쓸 겁니다. 가벼운 농담 차원에서 번역 일을 ‘노가다‘라고 표현할 수 있겠죠. ^^

북다이제스터 2017-06-29 19:49   좋아요 0 | URL
네, builder를 특별히 다른 뉘앙스가 있는 노가다로 옮긴 번역자가 자신 번역에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dys1211 2017-06-29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빌더스 티˝의 시련된 뉘앙스와 느낌은 뒤에는 또 심오한 뜻이 있었네요..

cyrus 2017-06-30 18:31   좋아요 1 | URL
영국 사회는 계급 간 차별이 심했습니다. 아마도 가난한 노동자들은 가격이 비싼 고급 홍차를 마시지 못했을 거고, 그래서 노동자들이 마시는 빌더스 티가 따로 생긴 것 같습니다.

레삭매냐 2017-06-29 2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왠지 builder‘s tea
하고 노가다의 차하고는 다른 느낌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cyrus 2017-06-30 18:34   좋아요 0 | URL
빌더스 티가 고유명사라서 이 단어를 우리 말로 옮기면 상당히 어색해요.

transient-guest 2017-06-29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이민사회에서 심심치않게 애달 데리고 맥도날드 가서 주문하면서 당당하게(?) 영어로 너 공부 열심히 안하면 이담에 저렇게 맥도날드에서 일해야 한다고 했다죠 육체노동=무식이란 공식이 유전자에 박혀 있는 것 같아요 우린

cyrus 2017-06-30 18:36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요즘 취업문이 좁아져서 고학력자들도 육체노동에 뛰어들어야 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육체노동을 기피하는 인식 때문에 안정적인 직업을 원할 테고,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것 같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8-09-17 0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cyrus님도 그렇게 봤습니까.? 저도 최근에 이 책을 읽어보면서 노가다란 말이 엄청 거슬렸습니다.
노가다가 순전히 한글도 아니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일본식 외래어인데, 그냥 드라마나 영화, 책이라면 소설 정도 쓴다면 문제가 없다만, 사회과학 도서에 노가다라고 번역한 것은 정말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그건 흑인 스스로가 nigger하는 것과 다른 인종이 nigger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라 봅니다.
한 해 산업재해로 노동자들이 수천명씩 목숨을 잃고, 그 이상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통받는데
한국사회에서 이른바 건설노동자들을 비하하거나 못배우거나 지저분하거나 또는 그래 사람처럼
대접하지 못합니다. 작가는 나름대로 번역을 신경쓰지만, 이 책에서 권력과 지식의 관계성에서 지식을 가진 번역자의 오만성이 잘 드러난 것 같습니다

cyrus 2018-09-17 12:35   좋아요 0 | URL
정말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인문사회과학 책에 ‘노가다‘라는 용어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