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 강물은 그렇게 흘러가는데, 남한강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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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볼 줄 밖에 모르는 바보에게 선물을 주신 해피북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한번 가봐야지”하고 마음먹은 게 벌써 십수 년이 지났다. 중학생 때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처음 읽었다. 언젠가 책 속에 나온 문화유산을 꼭 두 눈으로 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유홍준 교수처럼 답사 코스 일정을 만들어서 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고등학생 시절에 만난 친구 중에 ‘역사 덕후’가 있었다. 그 친구도 나처럼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에 열심히 읽었고, 좋아했다. 한 번은 친구는 대학생이 되면 나와 함께 문화유산을 둘러보는 여행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원래는 여름방학 중 1주일만 잡아서 여행 일정을 편성하려고 했다. 당시 우리의 패기는 대학생 신입생 못지않았다. 우리가 구상한 여행은 단순히 노는 휴가가 아니라 교실 밖으로 나가 몸으로 자유롭게 느끼는 공부였다.

 

하지만 문제는 여름방학 보충수업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은 무조건 보충수업에 참여해야만 했다. 어떻게든 방학 보충 수업을 피하고 싶은 학생들은 ‘가족 여행’, ‘아르바이트’ 등 각종 거짓말을 지어내었다. 몇몇 학생들이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휴가철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해서 학교에 당분간 못 나오겠어요.’라고 말하면서 보충 수업을 빠지려고 하니 선생님들의 눈에는 그들의 거짓말이 뻔히 보였다. 선의의 거짓말이 선생님에게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해서 정면 승부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우리의 여행을 솔직하게 말했다. 책 속에 나오는 문화유산을 딱 일주일만 보고 싶습니다. 선생님이 청소년 추천도서인 유홍준 교수의 책을 절대로 모를 리가 없었기에 우리 요구를 쉽게 받아들일 거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여행의 목적을 들으면서 기특하다고 칭찬을 해주면서도 끝내 허락해주지 않았다. 청소년이 단둘이서 일주일간 여행을 하다가 자칫 위험한 사고가 생길 수 있고, 대학교에 입학해서 여행을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타이르셨다. 결국, 여행은 무산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른을 동반한 여행이라고 말할 걸 그랬다. 선생님에게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낸다면서 말하고 보충 수업을 빠진 녀석들이 피시방에 눌러앉아 게임만 하거나 계곡에 가서 소주병 나발 불고 있을 모습을 생각하니 조금 억울했다.

 

휴가를 답사여행을 한다면 무슨 재미가 있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거다. 그럴 만도 하다. 시원한 계곡 물에 ‘풍덩’ 빠져보거나 바닷가에 물놀이하는 여름 휴가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문화유산답사를 지루한 여행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답사의 의미가 공부와 비슷하게 연상이 되다 보니 사람들은 지루하게 느낀다. 왜냐하면 답사를 학교 다녔을 때 한 번이라도 해본 적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 감독 하에 정해진 곳에만 가야 하고, 답사를 마치고 나면 감상문 비슷한 글 한 편 써야 한다. 답사기를 짧게 쓰면 선생님은 다시 써오라고 말한다. 오랜만에 교실 밖으로 나가 자유를 만끽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거기서 본 것에 대한 느낌을 기록하는 일이 힘들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답사는 ‘교실 밖으로 나가 현장을 보고 느끼는 일’이 아니라, ‘현장을 보고 느끼는 것을 기록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일’이다. 아이들은 답사기를 종이 한 면에 채우려고 문화유적을 둘러보는 대신에 문화유적을 소개하는 안내판을 찾아서 열심히 메모한다. 이게 과연 학생들의 교육에 도움되는 답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답사기를 종이 한 면에 가득 채울 수는 있어도, 학생들의 만족감은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문화유산이 있는 곳은 대개 경치가 좋다. 경치 좋은 곳에 가면 우리가 몰랐던 문화유산을 만나게 된다. 아름다운 곳은 자연히 알려지고 그 덕에 거기에는 사람이 모여들어 숨결이 남게 마련이다. 경치 좋은 곳을 찾고 싶다면 당연히 문화유산부터 찾는 편이 빠르다는 공식도 성립한다. 강원도 영월은 수려한 절경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 절경 속에 단종의 슬픈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특별한 장소다.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된 단종이 머무르던 곳, 청렴포. 청렴포는 아름다운 소나무 숲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삼면이 깊은 강물에 둘러싸여 마치 섬과도 같은 곳이다. 이곳에 한 번이라도 가보게 된다면 다음부턴 영월 이야기가 나오면 단종애사가 떠오를 것이다.

 

임금님도 보고 싶어서 전속화가를 보내 그려오게 했던 단양 8경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러나 수백 년 후에 사는 우리는 단양 8경을 조금 우습게 본다. 이는 너무나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도로와 충주호 유람선 덕분에 마음껏 경치를 감상할 수 있지만, 예전엔 몇 날 며칠을 걸려 산 넘고 물 건너 찾아가야 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단양 8경은 유람선 타고 쉽게 볼 수 있는 ‘노인용 관광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단양 8경의 진가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특히 단양 8경 중 하나인 사인암은 선비들의 안식처로 알려진 경치가 가장 빼어난 곳이다. 고려 말 학자 우탁이 벼슬에 있을 때 이곳에 휴양하기도 했다. 70m 높이에 이르는 기암절벽은 마치 한 폭의 산수화에서 튀어나온 듯하다. 기암절벽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즐기고 떠난 선비들은 바위에 자신의 글씨를 새겼는데, 지금도 가면 수백 년 전 선비들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제대로 된 문화유산답사는 단순한 즐거움에 그치지 않는 ‘문화가 있는 휴가’가 된다. 그리고 우리 문화재의 실태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여행 중에라도 문화재 파괴의 현실을 그냥 지나쳐선 안 되고, 문화재를 훼손해서도 안 된다. 우리나라 전역에 많이 남아있는 폐사지에 가면 불교문화의 옛 정취와 기가 막힌 전망을 볼 수 있다. 유홍준 교수는 마음이 울적하면 폐사지에 가보라고 권한다. 그런데 그곳에 가면 더 울적할 것 같다. 수풀만 무성하게 남아 스산한 분위기가 감도는 폐사지 때문만은 아니다. 아무렇게나 뒹구는 석불 일부가 빛을 보지 못한 채 방치되는 모습이 안타깝다. 과거에 1만 평에 이를 정도로 대찰이었던 흥법사가 있던 곳은 논밭으로 변했다. 한쪽에서는 보존하기 위해 정성을 기울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대로 방치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세계유산의 등재로 우리 문화재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존 관리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 이 책에 눈여겨 볼 점이 신경림 시인이 쓴 시가 무려 네 편이나 소개된다. 그리고 시인은 유홍준 교수가 이끄는 문화유산답사단에 합류하여 책에 카메오로 나오기도 한다. 왜냐하면 답사코스 중에 신경림 시인의 「목계장터」 배경인 ‘목계나루’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경림 시인에 대한 유홍준 교수의 애정(?)은 각별하다. 중원 고구려비 답사를 하는 도중, 고구려비에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신경림 시인의 생가를 보고 왔던 시절을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면서 시인이 쓴 「다시 느티나무가」전문을 소개하고, 충주가 낳은 시인을 문화적으로 큰 복이라고 예찬한다. (319~321쪽 참조) 이 시는 《사진관집 이층》(창비, 2014)에 수록되어 있다. 신경림 시인의 문장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를 소개하면서까지 시인을 향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 교수의 문장을 보면 자신들이 만든 책을 조금이라도 알리고 싶은 출판사의 개입이 다분히 느껴진다. 이 책을 읽을수록 ‘창비스러운’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342쪽에 교수는 폐사지를 언급하는 내용에서 정호승 시인의 「폐사지처럼 산다」를 부분 인용한다. 이 시의 출전은 《밥값》(창비, 2010)이다.

 

기가 막힌 우연일까, 아니면 저자와의 돈독한 (출판) 의리가 만들어 낸 출판사 PPL일까?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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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10-01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것만큼 알아가는 것...

내가 서 있는 곳을 모르면,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는 것과 같으니까요...

cyrus 2015-10-01 20:00   좋아요 0 | URL
가고 싶은 장소라고 해서 무턱대고 가는 것보다는 그 장소가 어떤지 알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5-10-01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렌만에 Cyrus님 글 읽으니 왜 이리 반가운지... ^^ 추석 잘 보내셨죠? ^^

cyrus 2015-10-01 20:05   좋아요 0 | URL
다이제스터님도 연휴 잘 보내셨습니까? 이번 연휴는 집에서 혼자 보냈는데, 분위기가 조용해서 좋은 반면에 밤이 되니까 외롭더군요. 그래도 지낼만했습니다. 5일 동안 알라딘 접속을 멀리하니까 글 쓰는 것조차 귀찮아졌어요. 당분간 접속을 안해서 제 존재감이 잊힐 줄 알았는데 반갑게 인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지금행복하자 2015-10-01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ppl은 언제나 환영이에요~^^

cyrus 2015-10-01 20:07   좋아요 0 | URL
전 요즘 신 모 작가 표절 논란 때문에 창비를 안 좋게 보고 있어서 창비 책을 알리는 듯한 문장이 별로였습니다. ㅎㅎㅎ 그래도 신경림, 정호승 시인의 글을 좋아요.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시인들입니다.

만병통치약 2015-10-01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소용없어요 ^^;;; 이 시리즈 제주편을 보고 제주도 여행갈때 그렇게 일정 짜야겠다는 꿈을 가졌었는데 막상 갈 때 되니.....죄다 아이들 위주로 일정만들 수 밖에 없습니다. ㅠㅠㅠ 초딩 유딩 아이들에게 추사 유배지 가자는 말이 차마 안 나와요 ㅋㅋ

cyrus 2015-10-01 20:09   좋아요 0 | URL
1인 여행,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 그리고 가족 여행 중에 그나마 제일 편한 게 혼자 가는 여행인 것 같아요.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으니까요. 결혼하기 전에 1인 여행을 자주 해야겠어요. ㅎㅎㅎ

돌궐 2015-10-01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홍준 선생이 답사기에 이런저런 시를 많이 소개하고 있긴 합니다. 시를 참 많이 읽은 분인 거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문화유산답사기의 유려한 문체가 저자의 이런 독서이력에서 온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지만 가끔은 허망한 글도 있어서 걸러 읽고 있습니다.

cyrus 2015-10-02 23:39   좋아요 0 | URL
이상하게 창비시집에서 나온 시가 언급되어서 제가 예민하게 생각한 것 같아요. ㅎㅎㅎ

AgalmA 2015-10-01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도 운문사 새벽 예불보다 책 속에 나온 ˝율무차˝에 더 맞장구를 쳤던 기억이^^...지금도 그 율무차는 여전한지ㅎ

cyrus 2015-10-02 23:43   좋아요 0 | URL
`청도 운문사` 이야기라면 답사기 2권에 나오는 것 맞죠? 읽은지 오래되서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

페크pek0501 2015-10-03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3권까지 읽었던 것 같습니다.(제 기억이 맞다면)
지적 흥미를 주죠.
그런데 8권까지 나왔다니...

cyrus 2015-10-07 18:53   좋아요 0 | URL
유 교수님이 벌써 다음 책 출간 준비를 염두하고 있더라고요. 잘 하면 10권으로 마무리될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