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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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동안 쉬었던 헬스를 다시 시작하고 있다. 목적은 오직 살빼기다. 단시일 내 10kg 감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렇기에 헬스장에서의 운동은 유산소 운동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웨이트는 없다. 오직 런닝머신 위에서 걷고 달릴 뿐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달리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걷는 것 조차도 지루하고 힘이 들기 때문이다.

  달리는 것은 힘든 일이다. 체내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여 지방을 태운다. 심장과 맥박은 역동하고 숨은 차오르며 다리는 땡겨온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러너들이 달리고 있다. 살을 빼기 위함이든, 운동선수로서의 복무든, 그와 그녀들은 달리고 또 달린다. 나름 설정한 각기 다양한 목표들을 위해 인간은 달린다. 달림으로써 존재하는 것이다.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도 달리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에게 마라톤은 삶의 압축과 같다. 마라톤을 통해 수없이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는다. 42.195Km라는 긴 거리를 달림으로써 적잖은 고통의 시간을 인내하며 받아들인다.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린다. 하루키는 고백한다.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라는 것을.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수없이 달려왔던 자신의 달리기 인생과 삶의 철학을 담아놓은 산문집이다. 하루키는 이 책을 통해 달리는 것의 내외재적 탐구와 이를 매개삼아 자신의 문학론을 언급한다. 러너로서의 하루키와 소설가로서의 하루키가 책 속에 잘 조화되어 있다. 특히 하루키 특유의 담백하고 정갈한 문장은 책읽는 맛을 더욱 감칠맛나게 한다.

  하루키는 이 책이 자신의 '회고록'으로 읽혀지길 소망한다. 이미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한 하루키지만 그의 작품 속에서 자신을 객관화시켜 텍스트 위에 올려놓은 개인적 이야기는 거의 보이지 않아왔던 게 사실이다. 그가 쏟아낸 수많은 장편소설과 산문집을 통틀어 자신의 내밀하고 소소한 단면을 담은 작품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1인칭 주인공을 전면에 배치하여 자아의 존재론적 탐구를 꾀했던 것이 하루키 문학의 특징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이는 의외의 현상이다.

  이 책이 주목을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루키는 이 한 권의 얇은 산문집을 통해 마라톤을 하면서 얻게 되는 혹독한 고통과 행복한 성취욕, 그리고 이로써 충전되는 소설가로서의 필수 불가결한 체력과 집중력, 지구력에 대해서 언급한다. 즉 달리는 삶을 사는 러너로서의 자아와 이에 종속적이면서도 수평적인 관계에 놓여있는 소설가로서의 자아를 동일한 무게감으로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이 전하는 두 가지 메시지에 주목한다. 우선 하루키는 세상 모든 일에 있어 선천적인 재능뿐만 아니라 후천적인 각고의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소설가로서의 자신의 삶에 있어서도 천부적인 재능보다는 유한한 능력을 집중적으로 집약시키는 집중력과 이를 장기적으로 지속시킬 수 있는 지구력에 기대었음을 고백한다. 더욱이 마라톤이라는 힘든 연단을 통해 소설을 쓸 수 있는 집중력과 지구력을 학습할 수 있었다는 그의 고백에서 세계적인 소설가의 겸손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그는 '달리는 것'과 '걷는 것'의 차이를 확실히 한다. 프로 마라토너에게도 쉽지 않은 25회 풀 마라톤 경력을 가진 하루키는 매번 달릴 때마다의 성적이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적어도 최후까지 걷지 않았다는 데 있다. 한 사람의 러너로서 최소한의 자존감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달리는 것 자체를 소중히 여기며 사랑했던 하루키의 삶과 철학을 통해 그에게 달리기는 소설을 쓰는 것 못지않은 의미와 가치를 지닌 위대한 행위였음을 느끼게 된다.

  국내에도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때 '하루키 현상'이라 불렸을 정도로 그의 인기는 녹록지 않았다. 매년 스웨덴 한림원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그의 이름이 있을까,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평론가들이 밥먹듯이 즐겨 말하는 가벼움도 좋고 과대포장도 좋다. 어차피 문학이라는 것은 작가와 독자 사이의 일대일 호흡방식이다. 한 권의 책이 작가의 손을 떠나 독자의 손에 들어온 이상 텍스트를 평할 절대주권은 오직 독자에게 있다. 한 사람의 독자로서 하루키의 문학을 사모하는 권한도 오직 '나'에게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하루키의 문학 스타일을 좋아한다. 그의 관조照가 좋고, 그의 열정이 좋으며, 그의 문장이 좋다. 대학 시절 『상실의 시대』를 읽으며 깊은 공감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던 기억을 떠올린다.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독자들의 감성을 차오르게 했던 그 소설이 지금 이 시점에서 문득 떠오르는 건 왜일까. 10년의 세월이 지나 삼십대가 되어 읽는 『상실의 시대』는 이십대 때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오랜만에 만난 하루키의 존재성을 사유하며 근 10여 년 만에 그의 역작 『상실의 시대』로 손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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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 공지영 에세이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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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볍다'는 형용사는 많은 파생을 만들어낸다. 부정적으로 사용될 때가 있는가 하면 긍정적으로 사용되기도 하는 묘한 단어다. 사전적으로 무게와 중량이 기준보다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비중과 가치, 책임 등을 비롯하여 인간의 내외적 평가를 표현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인간의 삶 곳곳에 존재하는 다양하고 소소한 '깃털'들의 안성맞춤 형용사가 되기도 한다.

  가벼운 것은 문학적 소재로도 많이 사용된다. 많은 작가들이 온갖 가벼운 것들을 조명하고 탐구하여 그 속에서 무거움을 추출하곤 했다. 평범한 일상, 작은 이야기, 소소한 사건 등 수많은 가벼움의 편린들이 텍스트로 만들어진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 그랬고, 정이현의 산문이 그랬으며, 오소희의 여행수기가 그랬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 공지영의 최신 텍스트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는 가벼움을 전면에 배치한 에세이다. 자신의 아이들에게 전하는 편지를 산문의 형식으로 엮은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의 인기가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한 권의 산문집을 더 보태고 있다. 책 속에는 작가 공지영의 일상에 존재했던 가벼운 깃털들이 진솔하고 유머러스한 모습으로 하나하나씩 숨어있다.

  가볍고 가벼우며 가볍고 또 가볍다. 가벼움에 대해 얘기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철저히 반영된 듯 신간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는 온갖 가벼운 것들로 채워져 있다. 소재뿐만 아니라 문체 또한 의도한 듯 가볍다. 마치 한 사람의 일기장을 보는 것처럼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이 나열되었다. 지인들의 술버릇, 오뎅에 대한 예찬, 귀신을 목격한 경험, 현 정권에 대한 조소, 딸아이의 실연 등 작가의 과거 추억과 일상생활을 채워왔던 소소한 삶의 편린들이 산문의 소재가 되었다. 코믹하고 애교넘치는 문장은 독자로 하여금 가벼운 것들을 편안히 읽게 하는 윤활유가 되기도 한다.

  에필로그에서는 자문자답의 형식으로 공지영 자신의 '자기 인터뷰'를 담았다. 자신이 질문하고 자신이 답변하는 짧은 분량 안에서 작가 공지영은 보다 솔직한 내면의 목소리를 내뿜고 있다. 그녀는 일갈한다. 집착과 상처를 버리는 곳에 평화로운 자유가 고인다는 것을. 이 시대의 작가로서 나만큼 행복한 사람도 없는 것 같다, 라고 고백하며 내면의 자유와 평화를 갈구하는 공지영의 고백에 진정성을 느낀다.

  집착과 상처를 버리는 곳에 조금씩 고이는 이 평화스러운 연둣빛 자유가 너무 좋다. 편견과 소문과 비방과 비난 속에서도 나는 한줄기 신선한 바람을 늘 쐬고 있으며 내게 덕지덕지 묻은 결점들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고통 속에서도 내게 또 다가올 그 자유가 그립고 설레인다.   <p. 255>

  나는 한 작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소설과 산문을 동시에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설이 서사의 창조자로서의 작가를 음미하는 텍스트라면, 산문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작가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탐구해볼 수 있는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내는 가상공간이다. 반면 산문은 작가의 경험과 사색을 정제하여 만들어지는 현실 세계다. 공지영 문학은 대중으로부터 소설뿐만 아니라 산문 또한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작가의 '현실성'에 대한 독자들의 접사화(化)된 관심의 반영일 것이다.

  작가 생활 이십 년 만에 처음으로 사소한 이야기를 써보고자 했다는 공작가 자신의 고백처럼 문장 곳곳에 힘주어 가볍게 쓰려고 한 흔적이 역력하다. 공지영의 이러한 의도는 종내 가볍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만들어낸다. 과연 가벼운 것은 동시에 소중한 것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가벼움'과 '소중함' 사이의 함수 관계를 천착하며 나와 내 주변을 채우고 있는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경외심에 몰입된다.

  우리는 가볍고, 흔하고, 소소하고, 하찮은 것들을 말 그대로 '가볍게' 여기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여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의 화창함, 껌 한 통 살 수 있는 오백 원의 가치, 상쾌한 농담이 부르는 작은 유머 한 방 등 지극히 흔하고 소소한 것들이 우리의 삶을 채우고 있다. 거대함과 기적을 갈망하는 인간 본성의 허영과 신비주의는 '작은' 것과 '나쁜' 것을 혼동하는 무지를 만들어냈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 우리를 살게 만들고 행복을 살찌운다는 참된 진리를 모른 채 말이다.

  해 아래 새것이 없나니 모든 것이 소중하고 모든 것이 특별하다. 행복은 거대한 것에 있지 않다. 진정한 행복은 내 안팍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를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공지영의 잠언이다.

  웃음을 소중히 여기고 유머를 추구하며 느긋하게 오늘을 즐기는 것은 정의를 추구하고 불의와 맞서며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해 울어주는 것과 전혀 상치되지 않는다.   <p. 7,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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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아 2009-03-07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윗님.. 이주의 마이리뷰.. 축하드립니다^^

뒷북소녀 2009-03-07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윗님, 축하드려요. :)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
지승호 인터뷰어, 김수행 대담 / 시대의창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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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영 작가와의 술자리에서였다. 공작가는 80년대는 마르크스의 명언이 특별하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 시대였다고 말했다. 여태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해왔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라는 마르크스의 외침이 그 당시 수많은 젊은이들의 머리와 가슴을 자연스럽게 추동하고 있었기에 '특별함'이 없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다르다. 너무나 당연하고 마땅한 마르크스의 명역설이 특별하고 신비하게 보이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만큼 세상은 바뀌었다.

  마르크스의 명저 <자본론>을 읽기란 쉽지 않다.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자본론>을 완독한 사람은 많지 않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굴곡짐, <자본론> 자체의 난해함, 번역의 문제 등으로 쉽게 읽을 만한 책은 결코 아니다. 공산주의는 이미 종말을 고했다. 자본주의는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거치며 그 변이과정을 더욱 탄탄히 해왔다. 경제제도의 최후의 승자처럼 보이던 신자유주의의 헤게모니도 최근 불거진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그 모순성을 입증했다. 오직 신자유주의가 절대 진리임을 믿고 따르던 수많은 제도권의 위정자들과 학자들은 허탈해 했다. 이러한 공황 가운데 다시 마르크스가 조명을 받고 있다.

  김수행 교수는 대한민국 최고의 마르크스 권위자다. 1987년부터 서울대학교 정치경제학 교수로 재직해온 김교수는 작년 정년퇴임으로 오랜 교직생활을 마감했다. 유일한 마르크스경제학 교수였던 김교수의 퇴임 이후 현재 서울대학교의 33명의 경제학 교수는 전부 주류경제학자로 채워졌다. 시대의 변화와 학문의 균형성으로 볼 때 적절한 배합은 아닌 듯하다.

  지승호와 김수행이 만났다. 각계 유명인사들과 농밀한 인터뷰를 가져왔던 이 시대 대표 인터뷰어 지승호가 이번에는 비주류경제학자 김수행 교수를 만났다. 지승호의 인터뷰집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는 마르크스 이론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자본론>을 주제로 위기에 봉착한 한국경제의 단면을 파헤친다. 김교수는 한국 제일의 마르크스 전문가답게 마르크스경제학에 대한 깊고 넓은 견해를 들려준다.

  이 책이 주목되는 이유는 멀고 어렵게만 인식되어 온 <자본론>에 대한 친밀한 접근성에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자본론>을 완독하기란 쉽지 않다. <자본론>에 대한 뜨악함을 인터뷰라는 방식으로 희석시켜 시도하고 있다. 지승호의 날카로운 질문과 김수행의 성실한 답변은 마르크스가 주창했던 이론들을 잘 추출해낸다. 더욱이 경제 한 분야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에 이르기까지 마르크스를 대입하고 있어 흥미롭다.

  지승호만의 매력이 있다. 그의 인터뷰는 형식적이지 않아서 좋다. 주제에 국한되지 않는 자유로움이 인터뷰를 보다 활력있게 만든다. 갑작스런 화제 전환도 문답의 입체성을 두드러지게 한다. 김수행의 답변 못지 않게 지승호의 질문 분량 또한 적잖다. 다양하고 구체적인 질문들이 돋보인다. 질문 내용을 통해 지승호의 정치적 색상과 철학을 엿보기도 한다.

  책의 뒷부분에서는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박사와의 대담을 배치했다.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로 볼 때 심각한 우경화에 빠져 있는 한국사회에서 두 좌파 지식인의 대담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 경제학에서부터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의 문제점, 한미FTA의 허와 실, 북한 정권의 미래, 한국의 외교정책, 촛불시위로 드러난 시민운동의 변화 등 다양한 담론들을 짧은 분량 안에서 정리해놓았다. 특히 우석훈과 김수행 사이에도 미세한 시각차가 드러나는 것 같아 흥미롭게 읽히는 부분이다.

  경제가 정말 어렵다.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대통령을 뽑았는데 이 정권은 오히려 경제 회복에 역행하는 길을 걷고 있다. 환율이 올라갈 줄 모르고 고환율 정책을 펼친 경제장관은 쫓겨났다. 나라빚은 계속 늘어나고, 빈부 격차는 더욱 심해지며, 중소기업과 자영업은 도산하고 있다. 주가는 하락하고, 물가는 상승하며, 실업자수는 증가하고 있다. 세계 경제 위축에 따른 예고된 고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현실이다. 가진자는 더 갖고 못 가진자는 더욱 못 갖는 현실이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행태은 더욱 심해지리라. 

  모든 것이 신자유주의의 잔재라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난 30년간 신자유주의가 세계경제를 이끌어 왔던 것은 사실이다. 미국을 위시한 선진산업국들에 의해 세계 경제의 주도와 기준은 오직 신자유주의의 흐름으로 정리되어 왔다. 하지만 모든 것을 철저히 시장에 맡기기에는 너무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대표적인 예가 신자유주의를 주도했던 패권국 미국이다. 백년이 넘은 금융회사가 도산했고, 자동차 왕국의 자존심은 무너졌으며, 세계 제일의 양극화 사회라는 오명은 탄생되었다. 이즈음에서 마르크스가 제기한 이론과 사상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주기적인 공황에 봉착할 수밖에 없음을 주창했다. 또한 가진자가 없는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구조적인 모순을 태생적으로 가진 제도임을 역설했다. 물론 마르크스의 예측은 결과적으로 대부분 빗나갔다. 그의 예언대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넘어 공산주의라는 이상적인 세계는 도래하지 않았다. 소련의 망국을 위시하여 공산주의는 지구상에서 그 종말을 고했다. 그럼에도 마르크스는 꾸준히 읽혀져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절대선으로 여겨왔던 자본주의와 대척점에 서 있었던 이론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는 사회다. '나'와 다른 '너'가 무수히 많이 존재함을 전제한 뒤에야 비로소 창의성이 샘솟고 관용이 뿌리내릴 수 있다. 이는 정치와 경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사회 곳곳에 우파가 득세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좌파의 목소리는 외면되어 왔다. 분단 현실과 그 굴곡진 역사로 인해 아직도 국민들에게 좌파는 뜨악하기만 하다. 좌와 우가 균형있게 생산 소비되며 조화를 이룰 때에 비로소 우리사회는 더욱 건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 희망의 언저리에 칼 마르크스가 있다. 이를 안내하고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필요성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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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희망입니다
고도원 지음, 황중환 그림 / 오픈하우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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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을 즐겨하는 네티즌 중에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희망'의 전달을 목적으로 몇몇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발송한 이메일이 이제는 200만 명이 받아보는 인기 편지가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공급받으며 삶의 비타민을 충전하고 있다.

  고도원의 글과 황중환의 카툰이 만났다. 오픈하우스의 『당신이 희망입니다』는 <아침편지>로 유명한 고도원의 글과 동아일보에 연재된 만화 <386c>의 작가 황중환의 그림이 함께 한 책이다. 교훈을 주는 따뜻한 글과 이를 수식하고 보완하는 그림을 배치하여 조합했다. 글을 장황하게 실지 않았고, 무리하게 많은 그림을 배치하지도 않았다. 대략 한 시간이면 읽어볼 수 있는 간결한 분량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깔끔하게 담았다.

  책은 크게 네 개의 카테고리로 구성된다. '용기의 편지', '희망의 노래', '사랑의 속삭임', '응원의 마음'이라는 네 가지 소제목 아래에서 다양한 글과 그림을 실었다. 각 테마와 연관된 문구를 책과 명언에서 인용했다. 인용한 글은 고도원에 의해 따뜻하게 풀이됐다. 그리고 이를 황중환의 카툰이 적확히 그려냈다. 이러한 간결한 얼개는 좋은 가독성으로 독자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힘이 된다.

  사실 책에 실린 87편의 이야기는 우리가 모르는 특별한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사랑'으로 '용기'있게 '희망'을 갖고 '응원'하는 삶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땅의 모든 자기계발서가 그러하듯이 충분히 알고 다짐하는 내용들을 관통할 뿐이다. 다만 전달 방법에 있어 간명하고 따뜻하고 나눔적이라는 측면에서 읽기에 부담이 없고 무료하지 않다. 동일한 메시지라 하더라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임이 다를 수밖에 없음은 '말'과 '글'이 갖는 공통된 특성이다. 간결하고 따뜻하다는 점이 이 얇은 책이 가진 매력이다.

  이 책을 통해 고도원이 전하는 모든 메시지는 결국 '사랑'이라는 고결한 가치 안에서 통합된다. 용기는 사랑의 수단이고, 희망은 사랑의 본향이며, 응원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책의 띠지는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사람만이 희망입니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사람에게 희망이 있다는 말, 이를 구체적으로 풀이하면 사람이 발현하는 사랑의 주고받음을 통해 세계의 희망을 확인할 수 있다는 의미리라. 요컨대 사랑이 곧 희망인 것이다.

  모든 문제와 번민은 결국 인간으로부터 출발한다. 인간의 외연을 두르는 비본질적 물질들에 너무 경도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본질과 비본질이 전복되고, 정신과 물질이 혼동되고 있다. 그럴수록 삶은 어렵고 힘들다.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직 사람만이 희망이다. 인간을 벗어난 모든 '목적'은 본질적으로 무의미하며 무가치하다. 당신이 희망입니다, 라는 고백이 이 땅에 풍성히 흘러넘칠 때 인류의 행복지수는 지수적으로 증가하리라.

  훈훈한 책 한 권을 통해 새삼 삶과 사랑과 행복의 방정식을 머릿속에 풀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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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 내 몸을 바꾸는 에로스혁명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6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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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고민하고 궁구한 주제는 무엇일까. 정답은 없지만, 아마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답변하지 않을까. 사랑 만큼 인간을 번뇌케 하고, 행복케 하며, 열정케 한 가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인류의 태곳적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사랑에 고통했고 사랑에 행복했다. 사랑에 울고 사랑에 웃었다. 인류사는 과히 사랑의 명멸사滅史다. 고로 인류는 '호모 에로스'다.

   인문학자 고미숙은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를 통해 인류사 최고의 뜨거운 감자인 사랑을 해부하고 천착했다. 물론 사랑에는 여러가지 줄기가 있다. 이 책에선 '사랑과 연애의 달인'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에로스적 관점에서 사랑을 탐구했다. 에로스를 갈구하는 인간의 내외재적 성향을 인문학적 시각에서 조명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사랑할 때 꼭 기억해야 할 세 가지 태제를 제시한다. 사랑하는 대상은 바로 '나'이고, 실연은 행운이며, 에로스는 쿵푸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랑을 대상의 문제로 환원시킬 필요가 없이 주체인 나 자신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차는 것과 차이는 것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사건이기에 차였다고 주눅들 필요가 전혀 없으며, 사랑은 공부 없이는 제대로 실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세 가지 테제를 기본 논지로 삼아 '호모 에로스'를 풀이한다.

  총 4부로 구성된 본문은 더욱 흥미롭다. 1부는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는 사랑과 성(性, sex)에 대한 오만과 편견을 지적한다. 2부는 '국가'와 '가족', '학교'와 '쇼핑몰'을 코드로 청춘이면서도 전혀 청춘스럽지 않은 우리시대 젊은이들의 우울한 자화상을 지적한다. 3부는 에로스의 속성을 언급하며 이 땅의 청춘들에게 욕망을 발현하라고 주문한다. 4부 또한 3부의 연장에서 에로스를 향한 인문학적 고찰을 쉬지 않는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두려움없이 사랑할 것을 '명령'하기도 한다.

  고미숙 특유의 날카로우면서도 익살스러운 문체는 여전하다. 고전과 현대소설의 인용과 사랑을 격렬히 탐구했던 철학자들의 이름도 많이 등장한다. 니체와 에리히 프롬의 명언이 인용되고, 정이현의 단편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의 본문이 차용된다. 스피노자와 사르트르의 지성, 루쉰과 정화스님의 철학도 소개된다. 저자는 '에로스'라는 거대한 명제를 천착키 위해 인류의 위대한 고전과 명사들의 정신 세계를 두루 망라하여 들려주고 있다.

  본문 중 가장 고개가 주억거리는 부분은 사랑과 책읽기의 상관성을 설명한 파트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사랑하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논리다. 솔깃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이미 에리히 프롬은 그의 명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과 공부의 연관성을 주창했다. 사랑이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명제가 참임을 인정한다면 앎과 지성의 열정을 통해 사랑이 더욱 공고해진다는 결론에 수긍할 수 있다. 앎의 크기는 곧 존재의 크기다. 앎과 지성의 확장에 가장 적확한 작업은 책읽기다. 책을 읽지 않고서 어찌 사랑을 알고 만끽할 수 있으리요. 사랑을 알고, 누리며, 긍정하기 위해서 책읽기는 꼭 필요하다.

  이는 곧 러셀의 삶과 곧바로 연결된다. 러셀은 자서전의 서문에서 고백했다.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 고통에 대한 연민. 이 세 태제가 자신의 일생을 지배한 세 가지의 열정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었던 연원은 바로 책읽기였다는 것을. 요컨대 러셀은 책읽기를 통해 사랑을 알았고, 지식을 탐구했으며, 인류애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일갈하자. 책을 읽지 않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사랑을 아는가. 

  이 책은 연애나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인간에 내재된 에로스적 성징에 대한 인문학 탐구서다. 인간을 탐구했고 사랑(에로스)을 조명했다. 동시에 인간의 오만과 편견을 꼬집었고 사랑에 대한 열정을 명령했다. 에로스에 국한된 사랑의 속성을 담았지만 책 속에 담긴 지식과 도전은 충분히 깊이있고 폭넓게 풍성하다. 인간 탐구가 외면되고 결락되는 시대에서 이 한 권의 책은 긴요하다. 인문학에 희망이 있다. 인문학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인문학이 위기라고 한다. 서점에서는 이를 어렵지 않게 인지할 수 있다. 인문학 서적은 이미 소설과 계발서에 자기 영토를 내준지 오래이다. 이런 와중에 인문학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고 대중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인문서적을 꾸준히 출간하는 출판사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공부'와 '놀이', '언어'와 '예술', '책읽기'와 '사랑'을 넘어 다음은 어떤 주제로 인문학적 고찰을 꾀할 지 자못 기대된다.

  좋은 책은 좋은 세계를 만든다. 고병원의 책 구분법을 그대로 인용하자. 가장 좋은 책은 세계를 변혁하는 책이다. 세계를 비틀고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책이다. 인문학은 인간 본연을 탐구하고 천착하는 학문이다. 세계를 만들고 이끌어가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인간 본연을 통찰하는 것이야말로 세계를 바꿀 수 있는 기초적 지성이라는 사실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으리라. 인간을 탐구하고 인간을 움직이는 책이 많아지길 소원한다. 더불어 이 땅의 수많은 책벌레들이 그런 책을 발굴하고 탐독하고 소개하는 작업에 게으르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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