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아
김별아 지음, 오환 사진 / 좋은생각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소설가가 쓴 에세이를 즐겨 읽는다. 작가를 소설을 통해 만나는 것과 에세이를 통해 만나는 것은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소설은 소설가의 강점과 장점이 특별하게 발현되는 텍스트다. 허구 세계의 창조자로서의 기술과 역량이 한 편의 소설 속에는 온전히 담겨져 있다. 반면 에세이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작가가 살고 있는 현실 그대로의 이야기가 솔직하고 담백하게 고백되기 때문이다. 작가적 신비주의는 허물어지고 한 사람의 평범한 삶의 모습과 철학이 진솔하게 펼쳐진다. 작가의 '쌩얼'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의 세계를 픽션과 논픽션으로 함께 만나는 일은 긴요하다. 예컨대 내가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하면서도 그의 에세이를 동시에 탐독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저런 다양한 에세이를 만나다 보면 유쾌하게 읽어지는 게 있는 반면 불편하고 지루하게 읽어지는 게 있다. 그것을 가르는 지점은 작품의 소재나 작가의 필력이 결코 아니다. 작가가 보고 있는 '관점'의 깊이다. 어떤 글은 작가가 오랜 사색으로 정제해낸 생각을 주옥같은 언어에 담는 독백적 글쓰기의 정수를 보여준다. 반면 어떤 글은 본인의 사유와 신념이 아닌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세계의 잠언을 끌어다 놓는다. 전자가 창조라면 후자는 스크랩이다. 에세이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다. 자신의 삶과 일상, 인간과 사랑, 철학과 신념 등에 대해 현실의 문체로 쓰여지는 글이다. 그렇기에 에세이마다 고유한 개성이 묻어있을 수밖에 없다. 그 '개성'을 포착하는 일은 에세이를 읽는 가장 큰 묘미이기도 하다.

  평소 소설가 김별아에 대해 녹록지 않은 관심을 피력해왔다. 꾸준한 장편 집필과 역사에 대한 진중함, 흥미있고 신선한 소재 선택과 이쁘고 다듬어진 문체 등은 소설가 김별아의 문학적 역량을 가늠하는 긍정적 요소들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 작품의 퀄리티가 작가의 존재론적 크기를 결정한다. 그간 김별아 문학에 대해 긍정적인 코멘트를 일관되게 표현해왔던 나로서는 그의 신간을 꾸준히 주목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내 기호의 연장선상에서 그의 매력적인 에세이 한 권이 놓여 있다.

  『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아』는 소설가 김별아의 삶과 사람과 문학에 대한 단상을 담은 수필집이다. 작가가 '좋은생각' 웹진에 연재한 북 에세이와 2005년부터 3년간 캐나다에 체류하며 쓴 시 감상문을 합쳐 신간으로 출간했다. 책과 시를 읽으며 곱씹은 삶과 사람에 대한 단상이 작가 특유의 이쁜 문체로 오롯하게 실려 있다.

  책의 구성은 간명하다. 작가는 자신이 인상깊게 읽은 시와 소설을 소개하면서 작품의 감상에 젖기도 하고 삶의 지혜를 추출하기도 한다. 중간 중간 수록된 사진들은 자동차 잡지 사진기자 오환의 '낙산 연작' 중 일부이다. 오환의 사진은 김별아의 텍스트를 보완하고 수식한다. 김별아의 진솔한 단상들은 오환의 사진을 견인하고 추동한다. 글과 사진의 균형있는 배치와 적절한 호흡으로 인해 생명력 있는 에세이집 한 권이 완성되었다.

  책 속에는 소설가 김별아의 문학관이 잘 반영되어 있다. 특히 시詩에 대한 강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역설한다. 시는 언어의 정점인 동시에 그 언어를 넘어선 세계라는 것을. 시인에 대한 콤플렉스는 다수 소설가들의 가슴속에 내밀한 형태로 숨겨져 있는 듯하다. 많은 소설가들이 시인이 되지 못한 자신의 처연한 한계에 한탄하며 시인의 천재성에 대해 찬탄스러운 언어로 헌사하기 때문이다. 이는 김별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느 누구보다 시를 선망하고 사랑했지만 결국 시인이 되지 못한 한 소설가의 존재적 감상이 에세이 속에 잘 젖어 있다.

  김별아의 작가적 번민 또한 책 곳곳에서 확인된다. 제 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미실』의 성공 이후 작가로서의 본질보다 외연에 유혹된 자신의 모습을 자각한다. 그리고 끝내 캐나다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외유가 고백된다. 먼 곳에서 바라보는 '있던' 곳의 풍경은 어떨까. 있던 자리를 떠나야만이 자신의 진본을 보는 시각이 굴곡되지 않는 법이다. 김별아는 소설가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보다 겸허하고 객관적으로 천착하고 싶었던 것이다. 잠시의 들뜸을 경계하며 소설가로서의 존재론적 고민을 꾀하는 김별아의 기백이 멋지게 와 닿는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작가'라는 존재가 갖는 디테일에 적잖이 놀라게 된다. 소소한 것에서 특별함을 보고 일상의 단상에서 명언을 추출한다. 그들의 세밀한 관찰과 다상량이 언어의 정수를 만들어 내고 수많은 독자의 가슴을 일렁이게 한다. 역량있는 작가가 역동하는 지점에서 언어는 곧 예술이 된다. 가볍고 유쾌하지만 동시에 진솔하고 진지하게 삶과 사람에 대해 사색하는 김별아의 에세이 『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아』를 희망의 메시지를 원하는 이들에게 살포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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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의 정원
다치바나 다카시.사토 마사루 지음, 박연정 옮김 / 예문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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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고전을 읽을 필요는 없다. 최신 잡지나 학술서를 읽으면 된다."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 다치바나 다카시의 말이다. 물론 최소한의 교양이 갖추어져 있다는 전제하에서 한 말이다. 평소 소설 읽기의 대척점에 서 있는 그의 독서론을 익히 잘 알고 있다. 픽션보다 현실을 탐색해야 한다며 소설을 최소한도로 읽어야 한다는 그의 독서론에 나는 쉽게 동의하기가 어렵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단독자로 만나는 일이다. 책읽기에 수동태는 있을 수 없다. 어떤 한 세계에 자신이 적극적으로 개입을 해서 거기에 참여하고 그 세계와 정면으로 만나는 일이 바로 독서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인지 저자가 반영해놓은 현실의 세계인지는 비본질이다. 그것은 접근방법의 차이일 뿐이다. 현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실세계를 비틀고 꼬아서 보다 입체적으로 세계를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현실의 '변혁'이 가능하다. 허구는 현실을 반영하고 해석한다. 그렇기에 문학은 긴요하다. 반드시 읽어야 한다. 모든 책읽기의 귀결은 '문학'이다.

  물론 다치바나 다카시의 의도된 과장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평소 그의 효율적이고 기계적인 독서론과는 거리를 두어왔다. 그는 책은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이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속독과 다독은 내가 가장 경계하는 독서방식이다. 이러한 현격한 독서관의 차이를 가진 그와 나 사이에는 책읽기에 대한 본질적인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그를 사랑하고 경외한다. 매우 흠모하는 편이다. 그 이유는 그가 책을 많이 읽는 독서의 거인이라서가 아니라 바른 역사의식과 순전한 양심을 지닌 깨어있는 지식인이기 때문이다. '지知의 거인'이라는 그의 별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오롯하게 성립된다. 

  "이제 일본인 가운데 절반이 전쟁 이후 태생이며 그때의 전쟁이 가져다 준 책임을 거의 느끼지 않는 세대이다. (중략) 그런 세대야말로 바이츠제커의 연설을 다시 읽어야만 할 것이다. 중국에도 한국에도 당시의 전쟁을 절대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과의 화해는 과거를 잊어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죽은 중국, 한국 사람들의 수는 천만 명이 훨씬 넘으며 이는 홀로코스트에서 죽은 유대인보다도 훨씬 많은 수다."   - 다치바나 다카시

  멋있지 않은가. 깨어있는 지식인은 응당 이래야 한다. 그가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책을 통해 무엇을 알고 느끼며 행동하는지가 중요하다. 앎과 느낌과 행동의 일치는 지식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자격요건이다. 행동하는 지성이야말로 시대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존경받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지의 정원』은 '지知의 거인' 다치바나 다카시와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 내 인기논객 사토 마사루의 대담을 엮은 책이다. 낯선 이름의 사토 마사루라는 인물이 과연 다치바나의 상대가 될 수 있을지 의문했다. 사토는 정치적 견해, 지식의 방향, 역사의식 등에서 다치바나와 상당히 다른 시각을 가진 인물이다. 이러한 두 인물의 차이는 이 대담집을 더욱 흥미롭게 한다. 책 속에서 두 인물의 시각차이가 적잖이 목도되는데 그것을 확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두 지식인 모두 수만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독서의 대가이다. 이 책에서는 각기 200권, 총 400권의 책을 추천한다. 상대의 추천 리스트에 대해 코멘트하고 공감을 표하며 토론을 하기도 한다. 고전과 문학, 정치와 경제, 예술과 철학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양한 분야에서 꼭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들을 선정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지식인이기에 일본 저서들이 많이 눈에 띈다. 더욱이 추천한 책들의 상당수가 낯선 책들이다. 국내에는 출간조차 되지 않은 책들이 즐비하다. 생소한 책 리스트로 인해, 무엇보다 상당수가 국내에 출간 번역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에 추천 책 절반 이상이 내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하지만 각자의 추천 책을 소개하고 그 의미와 배경을 전하며 지知의 장을 펼치는 그들의 대담만큼은 달콤하고 흥미롭다.

  이 책의 강점은 두 지식인들의 거대한 독서량을 온전히 담아낸 데에 있다. 그들은 책이 도달할 수 있는 전 분야를 두루 망라한다. 소크라테스에서 마르크스를 넘어 톨스토이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모든 영역을 책을 통해 관통한다. 둘의 지성이 만나는 곳에 거대한 담론의 장이 펼쳐지며 지知 축제가 이루어진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지의 물줄기는 굵고 쎄기만 하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지의 향연은 읽는이를 놀래키고 자극하며 북돋운다.

  부록도 든든하다. 다치바나는 부록의 형태로 섹스의 신비를 탐구하는데 도움을 주는 10권의 책을 추천한다. 또한 그 유명한 '다치바나의 독서 기술 14개조'를 정리하여 부록으로 실었다. 독자의 입체적인 책읽기를 돕는 다치바나의 배려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사토 마사루의 책 추천 또한 깊고 풍성하다. 자신이 추천한 200권의 추천도서에 적잖은 분량의 소개 코멘트를 달았다. 일반인이 읽기에 난해할 뿐더러 흥미가 떨어질 수 있는 점을 의식한 배려로 보인다. 독자는 다치바나와 사토의 자상하고 통찰력있는 책 소개 코멘트를 통해 선정된 책의 특징과 내용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볼 수 있다.

  쉴 새 없이 쏟아내는 두 사람의 지적 열정을 보면서 지식인으로서의 올곧은 정체성에 대해 새삼 사유하게 된다. 사르트르는 지식인은 시대의 모든 갈등과 분쟁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르크스는 시대를 변혁하는 것이 지식인의 의무라고 역설했다. 시대를 선도해가는 지식인은 바로 '행동'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다. 책을 읽고 지성을 주고받는 일은 물론 소중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일본이 현재 누리고 있는 국제적인 힘과 지위를 감안했을 때 두 지식인의 영향력은 결코 녹록지 않다. 이 세계가 더욱 아름답게 변혁될 수 있도록 두 지식인이 힘을 모아주길 기대한다. 그렇게 될 때야만이 비로소 진정한 '지知의 정원'이 건설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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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 욕망+모더니즘+제국주의+몬스터+종교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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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한 책리뷰어 류대성 씨(네이버ID:인식의힘)는 소설을 넘어서야 진짜 책읽기가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문학에 상당히 경도되어 있는 내게 그의 주장은 꼭 필요한 조언이다. 문학을 멀리하는 것은 문제지만 문학만 읽는 것도 문제이다. 건강한 책읽기는 편식하지 않고 균형있게 읽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이는 반론이 거부되는 책읽기의 명징한 불문율이다.

  항상 미흡한 책 선정과 부족한 책읽기를 하는 내게 역사 분야는 가깝지 않다. 특히 세계사는 머나먼 당신이다. 하지만 쓰여진 모든 책은 태동적으로 동일한 지점에서 만난다는 사실에 도전을 얻는다. 세계의 모든 책은 결국 '인간'에 대한 탐구로 출발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인문학이 존재한다. 이는 문학도 마찬가지다.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탐구는 문학의 본질적 목적이다. 접근방법과 탐구과정은 전혀 다르다 할지라도 종내 인간이라는 존재에서 핵심적 교집합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세계사는 곧 인류사의 전 지구적 관찰이다. 역사를 알면 나와 세계를 더욱 입체적으로 천착할 수 있다. 세계사는 그 입체적 천착을 더욱 확장하는 분야이다. 세계사를 통해 인류의 한계와 가능성을 엿보고 명확한 현재적 통찰과 더 나은 미래적 소망을 기대할 수 있다. 그렇기에 세계사와 관련된 도서들은 그간 수없이 출간되어 왔다. 팔리든 안 팔리든 끊임없이 쓰여질 수밖에 없는 영역이 바로 세계의 역사인 것이다.

  시중에 나와있는 세계사 관련 도서들의 대부분은 시간의 흐름을 기준으로 서술되었다. 고대 중세 근대 현대로 이어지는 역사에 대한 답습된 기존의 서술방식은 대부분 엇비슷하여 신선함이 떨어진다. 일반인이 세계사라는 거대한 카테고리에 접근하는데 기존의 통사류 책들은 지루할 수 있다. 보다 독특한 구성과 재미있는 방식으로 세계사를 다룬 책들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뜨인돌 출판사의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은 매우 흥미있는 방식으로 세계사를 다루고 있다.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메이지대학 문학부 교수로서 역사를 전공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통찰과 시원한 필력으로 꽤 흥미있게 세계사를 탐구했다. 세계사를 이해하는데 정작 필요한 것은 연호나 용어의 '암기'가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라 역설하는 저자의 역사학 접근에 고개가 주억거린다.
 
  저자는 총 다섯 개의 코드로 세계사를 풀이한다. '욕망',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 '종교'가 그것들인데 각 코드별로 세계사를 풀이하는 논거와 해석이 흥미롭다. 우선 저자는 인간의 욕망으로 불거진 다양한 역사의 편린을 소개한다. 커피와 홍차로 읽는 서양사의 변화상과 금과 철에 대한 인류의 대조적 인식을 설명한 부분은 매우 재미있게 읽힌다. 또한 브랜드와 도시의 상관성을 논거로 하여 '도시화'를 세계화를 움직이는 원동력으로 지적한 부분은 자못 신선하다.

  제국의 실례를 통해 세계사의 명암을 설명한 부분도 읽어볼 만하다. 저자는 '제국'을 인간의 야망이 만들어낸 괴물로 규정한다. 로마 제국와 이집트 왕국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성공하는 제국과 실패하는 제국의 가름점이 어디인지를 통찰한다. 끝내 무너졌지만 세계사에서 전례가 드문 천 년 제국을 건설했던 로마의 근원적인 힘이 타민족과 사회적 구조를 공유하는 시스템에 있었다는 저자의 분석에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종교에 대한 잦은 언급도 눈에 띈다. 책 전반에 걸쳐 종교에 대한 내용이 자주 발견된다. 특히 저자는 기독교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사랑의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인류사에서 가장 잔인했던 장면에 항시 기독교가 있었다는 아이러니를 제기하는 저자의 모습에서 기독교에 대한 강한 불편을 엿볼 수 있다. 책 곳곳에서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입장은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데 상대적으로 유대교와 이슬람교에 대해서는 관대한 해석과 평가를 내리고 있다. 다신교가 범람하는 일본사회의 지식인으로서 유독 기독교에 대해 인색한 해석을 내리고 있는 저자의 인식이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 자못 궁금한 부분으로 남는다.

  우석훈은 이 책의 해제에서 한국 역사학의 사망을 선고한다. 그에 비해 일본 역사학은 아직도 죽지 않았고 오히려 만개했다고 말한다. 한국에서는 역사왜곡으로 인해 일본의 역사인식에 다소 부정적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며 학문의 양질에 있어 한국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풍성하다는 게 우석훈의 설명이다. 이 책의 존재성을 바로 일본 역사학이 가진 힘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사실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일본의 역량이 몹시 부러운 게 사실이다. <대망>과 <로마인이야기>를 밤새며 탐독했던 청년시절을 떠올린다. 그 정도의 역사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그들이 부러웠고 질투났다. 벌써 두 번씩이나,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오에 겐자부로가 노벨시상식장에 오른 것도 내심 부러웠고 심통났다. 나는 아직도 명징하게 기억하고 있다. 1994년 12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있었던 노벨문학상 수상소감 연설을. 오에 겐자부로는 그 자리에서 '애매한 일본과 나'를 외쳤다. 그는 일본이 아시아인들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전쟁중의 잔학 행위를 책임져야 하고, 위험스럽고 기괴한 국가의 출현을 막기 위해 평화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런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 국민이 한없이 부럽다면 너무 지나친 시샘이자 오버인가.

  역사는 반드시 진보한다는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Carr)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역사를 아는 것은 인간 삶에 매우 긴요하며 소중하다. 모든 문명과 모든 시대는 절대로 동등한 가치를 가지지 않았다. 정신 문명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진보했으며 인간 능력의 지속적 발전에 대한 믿음이 역사의 긍정적 고찰을 유도하며 인류의 미래를 밝게 했다. 이러한 사고의 연장에서 역사를 살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며 보다 거시적 탐구를 위해 우리에게 세계사는 꼭 필요하다.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은 바로 이러한 세계사 읽기의 작은 참고서가 되기에 적합한 흥미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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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책의 숲에서 길을 찾다 - 중고생이 꼭 읽어야 할 추천도서 56 청소년 자기계발 시리즈 1
류대성 지음 / 인더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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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누구에게나 롤모델(role model)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분야와 위치에서 전범이 될만한 사람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스승이든 선배든 부모든 그 외 어떤 인물이든지 자신이 살아가는 카테고리에서 모범과 귀감이 될만한 사람은 분명 존재한다. 세 사람 이상이 모이면 한 명 이상의 스승은 반드시 있다고 하지 않던가.

  책을 읽고 블로그에 서평을 남긴지 어느덧 3년이 넘었다. 책읽기의 완전함은 결국 쓰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쓰는 것은 읽는 것의 되새김이자 완결이다. 읽는 것만으로 얻을 수 없는 공백을 쓰는 것은 채워준다. 인류의 수많은 책읽기 선배들이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想量을 완전한 독서의 삼위일체 조건으로 고백해온 이유가 분명히 있다.

  서평은 결국 읽히기 위해 존재하는 텍스트다. 타자의 읽힘을 전제하지 않는 서평은 없다. 객관과 주관이 호흡하되 종내 주관으로 마무리되는 게 서평의 특징이다. 온라인상에 범람하는 수많은 서평들을 읽으며 공감을 표하기도 하고 때로는 반대편에 서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종국 다양성이라는 보편적 가치 안에서 서로 소통되고 통합된다. 

  책을 읽고 블로그에 후기를 남기는 아마추어 리뷰어인 내게도 롤모델은 존재한다. 다수의 책을 읽고 깊이 사유하며 타자와 건전한 토론을 하는 리뷰어들은 모두 초라한 내 자신의 롤모델이 된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세계는 넓고 '뛰어남'은 많다. 많이 읽고 많이 쓰며 많이 생각하는 훌륭한 리뷰어들이 참으로 많다. 그들을 통해 내 책읽기와 글쓰기를 되돌아보고 점검하게 된다.

  2007년 네이버후드 어워드 책리뷰 부문 우승자 류대성 씨(네이버ID '인식의힘')도 그중 한 명이다. 오랫동안 그의 서평을 읽으며 책을 소개받고 글쓰기를 도전해왔다. 발군의 다독, 깊고 넓은 지성, 명쾌한 논리, 적절한 감성, 깔끔한 필력 등은 그가 국내 온라인상에서 가장 서평을 잘 쓰는 리뷰어라는 점을 입증한다. 그런 그가 책과 관련된 자신의 책을 출간했다는 소식에 반가움이 앞섰다. 많이 반가웠고 적잖이 놀랐으며 실로 부러웠다.

  인터넷이 아닌 종이활자에 처음으로 인쇄하여 출간한 그의 첫 책 『청소년, 책의 숲에서 길을 찾다』는 역시나 '책'에 관한 책이다. 평소 책에 신세를 지고 고마움을 표해왔던 저자의 독서관대로 이 책은 책과 독서 전반에 걸친 다양한 안내와 진중한 사고를 담고 있다. 책의 구성은 간명하다. 1부는 저자가 선정한 56권의 서평이 분야별로 실려있고, 2부는 풍성한 독서를 위한 저자의 조언을 담고 있다. 

  저자는 총 여덟 개 분야에서 56권의 책을 소개한다. 문학과 인문, 역사와 인물, 경제와 예술, 철학과 종교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별로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들을 엄선하여 안내하고 있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책들이 많이 눈에 띄지만 낯선 책들의 목록도 보인다. 책에 수록된 56권의 책 리스트를 보고 있노라면 저자가 책 선정에 얼마나 큰 고심을 했는지 가늠하게 된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분야별로 균형성 있게 선정한 점과 깊이와 시대성에서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들을 선정한 점이 저자의 노고를 증명한다. 문학과 고전에서부터 철학과 글쓰기 관련 책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입맛과 개성이 살아있는 서평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적절한 분량 안에서 책읽기에 대한 직접적 조언을 담고 있는 점이다. 저자는 2부에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와 선택 방법, 책읽는 노하우와 글쓰기의 필요성 등을 매우 깊이있고 실례적으로 조언한다. 더욱이 56권의 도서 外 책읽기에 도움을 주는 양서들을 선별 추천함으로써 풍성한 참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 책의 표지 전면에는 "중고생이 꼭 읽어야 할 추천도서 56"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문구처럼 청소년들에게 좋은 양서를 추천하고 건강한 독서를 위한 안내를 잘 담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을 읽어야 할 대상이 청소년으로 한정되지만은 않는다. 중고생은 물론 대학생과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과 계층이 읽어도 무리없이 폭넓고 수준있다. 가볍지 않고 적절한 깊이와 무게로 풍성하고 건강한 책읽기를 견인하는 힘있는 책이다. 

  저자는 자신의 블로그 제목을 책 말미에 거론하며 끝맺음을 한다. 그는 강조한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라는 것을. 블로거들 사이에서 그를 수식하는 유명한 문구가 된 이 말은 사실 매우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역설했듯이 세계를 '해석'하는 일은 1차원적이며 한물간 과거형이다. 이제 요구되는 것은 '변혁'이다. 우리의 앎과 열정이 고작 머릿속에 함몰된 것이라면 그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 가슴으로 알고 느끼며 다스리는 지성과 열정이야말로 세계를 변혁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의 진본이다. 책은 바로 그것을 위해 존재한다.

  서평을 정리하자. 참으로 건강한 책이다. 독서 방법론은 이권우의 책처럼 실재적이고 서평의 질은 유시민의 책 못지 않다. 우리 시대 최고의 리뷰어 류대성의 『청소년, 책의 숲에서 깊을 찾다』를 자신있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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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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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대 위의 까치 - 진중권의 독창적인 그림읽기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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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에 문외한이다. 일전에 지인을 따라 미술관에 간 적이 몇 번 있다. 당시 작품 한 점마다 10분 이상 서 있는 지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미술관 전체를 둘러보는데 나로서는 30분이면 충분했다. 언젠가 고흐 특별전이 열릴 때도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도대체 그림이 무엇이관대.

  주변에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 몇몇 있다. 그들마다 그림을 보는 시각과 취향은 가지각색이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처음 본 그림에 대해 곧바로 쏟아내는 그들의 경이적인 아웃풋이다. 무엇을 의미하고 상징하는지 쉽게 해석하기 어려운 다양한 그림들을 보고 직관적으로 반응하는 그들의 모습은 나로서는 신비함 그 자체였다. 더욱 신기한 것은 동일한 그림을 보면서도 해석의 다의성이 매우 크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림을 보고 직관적으로 반응하고, 천천히 음미하며, 다의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그림 예찬론자들의 행동은 책만 읽는 바보인 내게 불가해한 신비였다.

  진중권의 신간 『교수대 위의 까치』는 그림에 관한 책이다. 미학자로서 저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열두 점의 그림을 선택했다. 저자는 자신에게 영혼의 울림을 주었던 그림이라고 소개하며 자신만의 해석으로 작품을 감상한다. 원래 한 몸이었으나 세상에 태어나면서 둘로 쪼개져야 했던 자신의 반쪽과 같은 느낌을 준다는 저자의 '오버'가 몹시 진지하게 다가온다. 무엇이 그의 영혼을 울렸고 자신의 반쪽을 찾게 했을까.

  우선 저자는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제기한 두 개의 사진의 의미를 전한다. 해석의 일반성을 의미하는 '스투디움(studium)'과 혼자만이 느끼는 개별적인 효과인 '푼크툼(punctum)'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회화에 그대로 적용한다. 사회적으로 일반성을 지닌 보편·객관적인 해석보다는 각 개인이 뿜어내는 주관적 아웃풋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개인의 사밀한 체험과 주관적 감상에 절대적으로 작용받는 '푼크툼'으로서의 작품 감상을 저자는 한 차원 위에 올려놓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 곳곳에서 작품의 일반적 해석과는 별도의 입장에 서 있는 저자만의 해석과 사유가 잘 드러나 있다.

  열두 점의 작품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표제작 <교수대 위의 까치>다. 저자는 이 작품을 책 속에 수록된 열두 점의 그림 중 가장 영적 울림에 가까운 푼크툼의 효과를 준 작품이라고 극찬한다. 사실 <교수대 위의 까치>는 첫 눈에 무엇을 말하려는지 쉽게 와닿는 작품이 아니다. 작품의 배경인 네덜란드의 관습과 당시의 시대상을 알지 않고서는 그림이 말하는 바를 도출하기가 만만치 않다. 가십거리를 몰고 다니는 사람에 대한 경고로 읽어내는 좁은 해석에서부터 정치 혹은 종교적 앙가주망 내지는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묘파로 보는 넓은 해석에 이르기까지 해석의 적극화를 꾀하는 진중권의 진지함이 이 작품에 대한 서술을 통해 잘 드러난다.

  수록된 그림 중에서 그림맹으로서 가장 호감있게 본 작품은 티치아노 베첼리의 <신중함의 알레고리>다. 세 사람과 세 짐승의 삼각구도로 그려진, 어쩌면 매우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이 작품을 보고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정지했다. 티치아노는 매우 뛰어난 묘사로 신중함의 삼분법을 그려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의 연결성 위에서 '신중함'이라는 명제를 풀이하고자 했던 작가의 숨결이 진하고 강렬하게 그림 속에서 살아숨쉬는 듯했다. 열두 점 가운데 그림 자체가 진중권의 해설을 압도한다고 느낀 것은 이 작품이 유일했다.

  책을 읽고 서평을 남기는 리뷰어로서의 내 기본 자세도 진중권이 제기한 푼크툼의 효과와 상통한다. 비평가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소위 '전문적' 평들을 경계하는 편이다. 모든 해석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의 획일화에 반대한다는 수잔 손탁(Susan Sontag)의 "해석에 반대한다"라는 말은 감상자로서는 반드시 음미해야 할 명언이다. 회화와 문학을 위시한 인간의 모든 문화적 창조물들은 '과학'으로서가 아닌 '예술'로서 그 존재성이 더욱 빛나게 된다. 동일한 작품을 보고 읽으면서도 남과는 다른 결론을 이끌어내는 역량이 필요하다. 그것이 복잡다단한 이 시대가 요구하는 리뷰어의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서평을 정리하자. 다양한 그림 작품들을 소개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으로 풀이한 진중권의 신간 『교수대 위의 까치』는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그림을 보는 재미도 재미거니와 진중권 특유의 개성있는 필력이 하나의 작품을 감상하는 감상자로서의 태도까지 조언하고 있다. 그림을 보는 관찰적 디테일과 이를 다른 예술 장르에까지 적용할 수 있도록 강의한 진중권의 열정에 깊은 공감을 표한다. 내가 소장하고 싶은 작품들의 가상 컬렉션이자 내가 보여주고 싶은 작품들의 지상 전시회, 라고 멋드러지게 이 책을 수식한 저자의 말은 결코 과장적이지 않다. 매우 흥미있고 매력적인 책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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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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