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
지승호 인터뷰어, 김수행 대담 / 시대의창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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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영 작가와의 술자리에서였다. 공작가는 80년대는 마르크스의 명언이 특별하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 시대였다고 말했다. 여태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해왔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라는 마르크스의 외침이 그 당시 수많은 젊은이들의 머리와 가슴을 자연스럽게 추동하고 있었기에 '특별함'이 없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다르다. 너무나 당연하고 마땅한 마르크스의 명역설이 특별하고 신비하게 보이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만큼 세상은 바뀌었다.

  마르크스의 명저 <자본론>을 읽기란 쉽지 않다.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자본론>을 완독한 사람은 많지 않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굴곡짐, <자본론> 자체의 난해함, 번역의 문제 등으로 쉽게 읽을 만한 책은 결코 아니다. 공산주의는 이미 종말을 고했다. 자본주의는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거치며 그 변이과정을 더욱 탄탄히 해왔다. 경제제도의 최후의 승자처럼 보이던 신자유주의의 헤게모니도 최근 불거진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그 모순성을 입증했다. 오직 신자유주의가 절대 진리임을 믿고 따르던 수많은 제도권의 위정자들과 학자들은 허탈해 했다. 이러한 공황 가운데 다시 마르크스가 조명을 받고 있다.

  김수행 교수는 대한민국 최고의 마르크스 권위자다. 1987년부터 서울대학교 정치경제학 교수로 재직해온 김교수는 작년 정년퇴임으로 오랜 교직생활을 마감했다. 유일한 마르크스경제학 교수였던 김교수의 퇴임 이후 현재 서울대학교의 33명의 경제학 교수는 전부 주류경제학자로 채워졌다. 시대의 변화와 학문의 균형성으로 볼 때 적절한 배합은 아닌 듯하다.

  지승호와 김수행이 만났다. 각계 유명인사들과 농밀한 인터뷰를 가져왔던 이 시대 대표 인터뷰어 지승호가 이번에는 비주류경제학자 김수행 교수를 만났다. 지승호의 인터뷰집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는 마르크스 이론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자본론>을 주제로 위기에 봉착한 한국경제의 단면을 파헤친다. 김교수는 한국 제일의 마르크스 전문가답게 마르크스경제학에 대한 깊고 넓은 견해를 들려준다.

  이 책이 주목되는 이유는 멀고 어렵게만 인식되어 온 <자본론>에 대한 친밀한 접근성에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자본론>을 완독하기란 쉽지 않다. <자본론>에 대한 뜨악함을 인터뷰라는 방식으로 희석시켜 시도하고 있다. 지승호의 날카로운 질문과 김수행의 성실한 답변은 마르크스가 주창했던 이론들을 잘 추출해낸다. 더욱이 경제 한 분야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에 이르기까지 마르크스를 대입하고 있어 흥미롭다.

  지승호만의 매력이 있다. 그의 인터뷰는 형식적이지 않아서 좋다. 주제에 국한되지 않는 자유로움이 인터뷰를 보다 활력있게 만든다. 갑작스런 화제 전환도 문답의 입체성을 두드러지게 한다. 김수행의 답변 못지 않게 지승호의 질문 분량 또한 적잖다. 다양하고 구체적인 질문들이 돋보인다. 질문 내용을 통해 지승호의 정치적 색상과 철학을 엿보기도 한다.

  책의 뒷부분에서는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박사와의 대담을 배치했다.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로 볼 때 심각한 우경화에 빠져 있는 한국사회에서 두 좌파 지식인의 대담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 경제학에서부터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의 문제점, 한미FTA의 허와 실, 북한 정권의 미래, 한국의 외교정책, 촛불시위로 드러난 시민운동의 변화 등 다양한 담론들을 짧은 분량 안에서 정리해놓았다. 특히 우석훈과 김수행 사이에도 미세한 시각차가 드러나는 것 같아 흥미롭게 읽히는 부분이다.

  경제가 정말 어렵다.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대통령을 뽑았는데 이 정권은 오히려 경제 회복에 역행하는 길을 걷고 있다. 환율이 올라갈 줄 모르고 고환율 정책을 펼친 경제장관은 쫓겨났다. 나라빚은 계속 늘어나고, 빈부 격차는 더욱 심해지며, 중소기업과 자영업은 도산하고 있다. 주가는 하락하고, 물가는 상승하며, 실업자수는 증가하고 있다. 세계 경제 위축에 따른 예고된 고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현실이다. 가진자는 더 갖고 못 가진자는 더욱 못 갖는 현실이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행태은 더욱 심해지리라. 

  모든 것이 신자유주의의 잔재라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난 30년간 신자유주의가 세계경제를 이끌어 왔던 것은 사실이다. 미국을 위시한 선진산업국들에 의해 세계 경제의 주도와 기준은 오직 신자유주의의 흐름으로 정리되어 왔다. 하지만 모든 것을 철저히 시장에 맡기기에는 너무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대표적인 예가 신자유주의를 주도했던 패권국 미국이다. 백년이 넘은 금융회사가 도산했고, 자동차 왕국의 자존심은 무너졌으며, 세계 제일의 양극화 사회라는 오명은 탄생되었다. 이즈음에서 마르크스가 제기한 이론과 사상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주기적인 공황에 봉착할 수밖에 없음을 주창했다. 또한 가진자가 없는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구조적인 모순을 태생적으로 가진 제도임을 역설했다. 물론 마르크스의 예측은 결과적으로 대부분 빗나갔다. 그의 예언대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넘어 공산주의라는 이상적인 세계는 도래하지 않았다. 소련의 망국을 위시하여 공산주의는 지구상에서 그 종말을 고했다. 그럼에도 마르크스는 꾸준히 읽혀져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절대선으로 여겨왔던 자본주의와 대척점에 서 있었던 이론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는 사회다. '나'와 다른 '너'가 무수히 많이 존재함을 전제한 뒤에야 비로소 창의성이 샘솟고 관용이 뿌리내릴 수 있다. 이는 정치와 경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사회 곳곳에 우파가 득세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좌파의 목소리는 외면되어 왔다. 분단 현실과 그 굴곡진 역사로 인해 아직도 국민들에게 좌파는 뜨악하기만 하다. 좌와 우가 균형있게 생산 소비되며 조화를 이룰 때에 비로소 우리사회는 더욱 건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 희망의 언저리에 칼 마르크스가 있다. 이를 안내하고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필요성은 충분하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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