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다 괜찮다 - 공지영이 당신에게 보내는 위로와 응원
공지영.지승호 지음 / 알마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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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단에서 공지영 만큼 아이러니한 위치에 서 있는 작가는 드물다. 출간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내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비판에 시달리고 있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공지영처럼 많은 사랑과 강렬한 비난을 동시에 받는 소설가는 찾기 힘들다. 근데 나는 이러한 아이러니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 좀 더 솔직해져 보자. 소설가 공지영을 비난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혹 그녀의 화려한 이혼 경력이나, 자유분방하고 할 말을 하는 '쿨'한 성격, 쏟아내는 작품마다 얻는 상업적 성공 등이 공격의 목적이었던 것은 아닐까. 마냥 하릴없이 공지영을 비판하는 이들이여.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하게 자문자답하자. 작가 공지영을 향해 날렸던 칼날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를. 그리고 다시 한 번 진중히 읽어보자. 공지영의 문장만을.

  문학적인 차원에서 공지영을 비난하는 이들이 가장 많이 내세우는 논거는 '가벼움'이다. 저울에 달면 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을 것이라며 빈정거린다. 통속적이며, 혹은 감성적이고, 혹은 대중적이라며 이죽거린다. 비단 평단이 아니더라도 공지영 문학에 대한 냉소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목도할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있는 게 있다. 가볍다고 공지영의 문장을 재단하는 이들이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품에 끼고 다니고, 요시모토 바나나에 열광하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로 밤을 지새운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말하는 가벼움과 무거움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소설가의 진보를 지지한다. 데뷔작의 화려함 이후 이를 증명치 못하는 허무한 연장 가운데 문단에서 사라지는 작가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렇기에 매작품마다 문학적 진화를 이룬 작가에게 독자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다. 자신의 최신작이 곧 최고의 작품이 되는 공식을 만들어내는 작가에게 나 또한 결코 녹록지 않은 갈채를 보내왔다. 그리고 이러한 방정식에 작가 공지영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사실 그렇다. 그녀가 7년여의 공백을 마감하고 선보인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필두로, 자전소설 『즐거운 나의 집』, 산문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는 모두 높은 진보를 보여준 작품들이다. 문장의 무게와 사유의 진중성 , 독자와의 호흡과 흡입력, 고민의 차원과 작가로서의 기백 등 물이 오를대로 오른 일류작가의 면모를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제 더이상 후일담과 페미니즘으로 함몰된 공주병 환자 공지영은 그 어디에도 존재치 않는다.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이며 공감있는 소설을 쏟아내는 작가 공지영만이 있을 뿐이다.

  『괜찮다, 다 괜찮다』는 작가 공지영의 최신 텍스트다. 하지만 공지영이 창조한 활자가 아닌 공지영 그 자체를 조명하고 궁구한 텍스트라는 점에서 그녀의 작품 연대기에서 결락된다. 인터뷰어 지승호는 소설가 공지영의 단면을 구체적이고 생동감있게 추출했다. 그녀의 삶과 가족, 고민과 철학, 문학과 인간에 대한 사유가 잘 구체화되었다.

  사실 소설가를 객관적이고 입체적으로 만나기는 쉽지 않다. 대개 작품으로 만나기 마련인데, 이는 어디까지나 작가가 창조한 가공의 세계일 뿐이다. 작가에 대한 보다 직접적이며 투명한 천착은 가공의 텍스트가 아닌 진솔한 목소리에서 가능하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 시대에 가장 사랑받는 작가를 인터뷰로 직접 접촉하는 작업은 유의미하다. 공지영은 지승호와의
대담에서 자신이 쏟아낼 수 있는 최고도의 진솔한 내면을 고백하고 있다.

  지승호는 자신의 인터뷰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는 이 책을 『즐거운 나의 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에 이어 '위로 3부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피력한다. 첫 번째가 소설, 두 번째가 편지 형식이었다면 이 책은 공지영 자신의 목소리를 독자에게 직접 들려주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미 공지영의 두 권의 전작은 독자에게 따뜻한 공감과 훈훈한 위로를 전달했다. 이런 측면에서 이 한권의 인터뷰집을 '위로' 코드의 연장으로 놓겠다는 지승호의 의지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책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작가가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지승호의 질문에 대한 공지영의 답이다. 공지영은 작가의 지속된 발전을 위해 '고통'과 '고독'과 '독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응당 고개가 주억거리는 고백이다. 인류사의 수많은 예술가의 태동에는 고통의 연단 과정이 있었고, 고독을 통한 사색의 담금질이 있었으며, 다른 사람의 머리로 생각하는 훈련이 항시 존재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장 사랑받는 작가라는 그녀의 존재성은 이러한 세 가지 키워드가 내면 속에 용해되어 작용한 산물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외에도 공지영이 고통스러워했고, 환호했으며, 숙고했던 다양한 삶의 편린들이 소개된다. 그녀가 여태까지 만들어낸 텍스트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던 수많은 경험과 일화들이 고백된다. 책의 구성 또한 흥미롭다. 그녀의 작품 연대기를 시대순이 아닌 의미순으로 배치하면서 이를 주제화하여 인터뷰를 실행한다. 그리고 마지막 두 장에서는 공지영 개인의 삶과 문학에 대한 구체적인 철학과 태도를 엿보기도 한다. 요컨대 이 책은 작가가 아닌 '인간' 공지영의  단면을 해부한 텍스트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승호의 인터뷰 방식에 마냥 박수를 쳐주기에는 아쉬움이 많다. 긍정코드와 부정코드가 함께 공존하는 소설가를 인터뷰하면서 너무 전자의 코드로만 일관했다. 공지영에 대한 지승호의 부정코드는 그녀의 일갈에 더 나아가지 못하고 소멸되는 형국이다. 인터뷰 이후 공지영과의 협의에서 편집되었을 가능성을 감안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균형감각이 부족하다는 면에서 아쉽다. 인터뷰의 핵심이 객관성과 입체성이라는 점을 주지한다면 이러한 지승호의 접근방식은 숙제로 남는다.

  우리시대 가장 사랑받는 작가 공지영의 과거와 현재, 논리와 이성, 삶과 사랑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괜찮다, 다 괜찮다』는 나름 유의미한 책이다. 소위 '공지영빠'에게 이 한 권의 인터뷰집은 소중한 텍스트가 될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한국 문단에서 공지영 만큼 기사거리를 몰고 다니는 아이콘도 흔치 않다. 공지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중 공감도'라는 키워드를 반드시 전제해야 한다. 그녀만큼 대중과 친밀하고, 대중에게 공감을 주며, 대중에게 위로를 보내는 소설가는 적어도 국내에서는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학에서 '대중'의 의미가 마냥 나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작가 공지영의 긍정코드는 충분히 수긍되며 인정된다.

더 많이 사랑할까봐 두려워하지 말아라. 믿으려면 진심으로, 그러나 천천히 믿어라. 다만 그를 사랑하는 일이, 너를 사랑하는 일이 되어야 하고, 너의 성장의 방향과 일치해야 하고, 너의 일의 윤활유가 되어야 한다. 만일 그를 사랑하는 일이 너를 사랑하는 일을 방해하고 너의 성장을 해치고 너의 일을 막는다면 그건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그의 노예로 들어가고 싶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니까 말이야.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에서

  이런 문장을 만들어내는 그녀가 가벼운 소설가라 한다면 나는 한껏 그 가벼움을 즐기리라.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서 쏟아질 그녀의 활자로부터 위로와 응원을 누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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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0 1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윗 2008-09-10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 책향기님,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어휘를 잘못 사용한 소인의 민망함이 하늘을 찌릅니다. 기분이 나쁠 리 만무하구요. 출장중에 올린 글이라 퇴고가 형편이 없습니다. 잘못된 것을 올바르게 지적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오탈자 자주 검사해주시고, 그 외에도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가르쳐주십시오. 고맙습니다, 책향기님. ^
 
바이바이 베스파
박형동 지음 / 애니북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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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위대함 중 하나는 '추억'이라는 가치를 숭배하는 태도에 있다. 인간은 추억을 만든다. 추억에 갈증한다. 추억을 흠모하며 탐구한다. 다음의 시간이 그 이전의 시간을 형용하며, 미래의 내면 속에 과거와 현재의 인과성이 녹아든다. 그게 바로 추억이다. 이 추억의 아이러니를 통해 인간의 가슴엔 물기가 적시고 내면은 진화한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의 시간은 언제 어른이 되고, 우리의 행동은 어떻게 아이를 벗어날까. 어느 한 순간의 사유, 예기치 못한 하나의 경험, 기존의 통념을 벗어난 작은 전복의 기작에 의해 어른이 될 수 있는 걸까. 나는 시간이 흐른 훗날의 현재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바로 그 때의 추억을 회상하며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부재할 수밖에 없음을 자각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포와 외연의 동시적 변화를 전제한다. 그 변화의 다른 정의는 바로 '성장'이다. 어른은 그 이전의 자아보다 반드시 성장하게 되어 있다. 내재적 정의로서의 어른은 성장의 가치를 담보할 때 증명되며, 그것이 실현될 때 비로소 완전체로서의 어른이 성립된다. 요컨대 어른은 성장의 산물이자 궁극이다.

  박형동의 『바이바이 베스파』는 어른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는 얇은 만화다. 글을 적확히 형용하는 그림과 극도의 절제된 글이 잘 조합되었다. 기존의 칸 나누기 만화의 형식적 그리기를 벗어나 그림은 여백까지 침범하여 공간을 자유화한다. 작가는 수록된 다섯 편의 단편을 통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성장의 의미와 가치를 탐구하는 아이들의 자아상을 잘 그려냈다.

  그림이 주를 이루는 동화책과 그림책이 범하기 쉬운 오류는 그림의 강조에 따른 문장력의 상대적 빈곤이다. 하지만 이 책은 꼭 필요한 절제된 활자가 그림과 최적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각 지면마다 환상의 유기적 배열로 연결된 글과 그림의 화학구조를 통해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는 빠르면서도 늦어진다.

  이 책에서 '스쿠터'는 성장이라는 거대한 테마의 작동 방식이다. 다섯 가지 단편에서 아이들은 모두 스쿠터를 탄다. 'CT100'에 앉는다. '비노'를 작동시킨다. '베스파'로 달린다. 스쿠터의 작동은 성장의 세계로 나아가는 매개이며, 아이의 구조에서 어른의 차원으로 치환되는 작동 장치의 메타포다. 하지만 종내 어른이 되는 길목 앞에서 스쿠터와 결별한다. 

  그 시절, 나는 과연 어떤 스쿠터 위에 앉아 있었을까. 어른이 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던 당시의 현재상과 이미 어른이 된 후 그 시절을 되돌아보는 과거상간의 충돌은 묘한 역설을 머리와 가슴에 질문한다. 나는 이미 어른이 된 그 시절의 다른 초상들에게 질문한다. 당신의 스쿠터는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얼마나 달렸나요. 혹 기억하시나요. 


Thanks to 박조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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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 - 거꾸로 읽는 책 25 거꾸로 읽는 책 25
유시민 지음 / 푸른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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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잊혀지지 않는 부끄러운 추억이 있다. 중학생 때까지 나는 광주민중항쟁을 폭동으로 알았고, 정치인 김대중을 공산주의자로 알았다. 당시 내 오류는 철저히 주변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연유했다. 당시의 뉴스와 신문은 그리 알렸고, 주변 사람들도 그리 인지했다. 학교에서는 이와 관련된 제대로 된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고, 부모님의 인식 또한 다를 게 없었다. 호도된 역사를 인지하고 있던 내 부끄러움은 고등학생을 지나 대학에 와서야 산산이 부서지게 된다.

  대학 시절 잘못된 역사에 대한 진실의 전복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그 때의 경험을 통해 나는 명징히 깨달았다. 역사가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불과 몇십년 전의 역사조차 진실되게 인식하지 못하는 터에 수백 년, 아니 수천년 전의 역사는 얼마나 호도되어 우리에게 전해질까 하는 깨달음이 용솟음치곤 했다. 

  우리에게 전해지는 역사의 대부분은 기록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사회와 문명의 변화 과정에 대한 역사가의 주관적 인식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역사에 대해 '내 머리'로 '생각'하는 것은 객관적 실재로서의 역사를 인지하는 데 있어 매우 소중한 작업이다.

  유시민의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역사에 대한 깊은 질문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책은 객관적 실재로서의 역사와 주관적 인식의 표현으로서의 역사는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서로 대립할 수밖에 없다고 전제한다. 이런 차원에서 저자는 그 어떤 역사책이든 읽는 이의 '비판'이 반드시 내재되어야 하며 자신의 책 또한 여기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밝힌다.

  저자 유시민은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역사에 대해 꽤 흥미있고 깊이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크게 여덟 개의 카테고리로 역사에 대한 다양한 주제화를 시도한다. 첫장에서 『삼국사기』가 집필될 당시의 정치적·사상적 배경과 이로써 의도되어진 왜곡된 역사를 지적한다. 사대주의적 관점과 노예 사상을 기반하는 『삼국사기』의 한계와 모순을 비중있게 다룬다. 진실을 떠나서는 생명력을 읽을 수밖에 없는 역사의 성질을 감안할 때 '실제로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가 아니라 역사가 김부식이 '그러했으리라고 믿고 싶어했거나 그러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던 역사'로 씌어진 『삼국사기』에 대한 저자의 문제제기는 꽤 인상적인 논지의 시작이다.

  이어서 불멸의 고전 사마천의 『사기』를 무게감 있게 소개한다. 세계 최초로 기전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역사를 기술한 『사기』의 가치는 자연이나 우주가 아닌 인간을 중심으로 당시의 사회상황과 생활상을 서술한 데서 더욱 찬연히 빛난다. 역사를 '기록'이 아닌 '서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더욱이 정치적 모함으로 궁형에 처하는 고통을 이기면서까지 대작을 완성한 역사가 사마천의 기백을 저자는 매우 구체적으로 상찬한다.

  이 책의 강점은 무엇보다 동서양의 역사학을 두루 훑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사마천은 물론이고, '실증적 단계'를 인류문명의 최고 단계로 설정했던 오귀스트 콩트, 변화의 철학을 창안하며 프로이센의 절대주의 체제를 역사 발전의 완성 단계로 인정했던 프리드리히 헤겔, 공산주의 혁명을 '계급 투쟁의 역사'의 종말로 설정했던 카를 마르크스 등 서양 철학자와 역사가들을 비중있게 소개한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 민중의 독립의지를 일깨운 단재 신채호 선생과 백암 박은식 선생의 민족주의 역사학을 자세히 정리하기도 한다. 동양과 서양, 그리고 한국의 민족역사학까지 다루고 있어 균형적이다.

  <역사에서의 우연과 필연> 카테고리에서는 매우 흥미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한 치만 낮았더라면."이라는 통속적 문장을 소개하면서 역사의 작동이 우연적이냐 필연적이냐 하는 담론을 끄집어낸다. 한국 현대사의 찬란한 태양인 '6월 항쟁'의 예를 들어 역사 속에서의 일반화, 특수화, 인과성을 논증한다. 하지만 역사에 대한 우·필연 담론은 진지하게 역사를 연구하고 과거를 이해하려는 사람에게는 큰 쓸모가 없다고 일갈하기도 한다.

  저자는 진보주의자답게 이 책의 말미를 역사의 진보성으로 마무리짓는다. 역사에서 '심판'과 '진보'는 넓은 의미에서 동의어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고 논지한다. 진보가 없는 역사에서는 오직 변화만이 있을 뿐 심판은 없다고 일갈하는 저자는 현 세대의 역사적 과오에 대한 진상규명과 심판의 의무를 후세에 넘기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응당 고개가 주억거린다.

  쿠데타로 집권하여 민주헌법을 파괴하고 민중을 대량 학살한 범죄자들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기세등등한 삶을 살고 있으며, 과거 군사정부로부터 녹을 먹고 악랄한 짓을 일삼았던 정치인이 아직도 금뺏지를 달고 입법 활동을 하는 한국 정치의 현실을 목도한다면 일그러진 역사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 왜 절실한지를 실감하게 된다.

  영국의 역사가 카(E.H.Carr)는 말했다. '기록과 서술로서의 역사'는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 사이의 대화"이자 "과거와 현재 사이의 대화"이며, 그와 동시에 "과거의 여러 사건과 점차 나타나게 될 미래의 여러 목적 사이의 대화"라는 것을. 카의 이 말은 결국 우리에게 명료한 의무를 제시한다. 역사가 과거와 현재 사이의 대화라는 것은 결국 현 세대가 미래 세대에게 보내는 현재의 실재에 대한 신호이며, 이는 결국 우리 세대 자체의 진심과 양심을 내재하는 함의가 담겨 있는 것이다. 현재를 사는 우리가 미래를 살아갈 후세에게 오직 진실된 역사를 전하기 위해서 수고와 용기를 감내해야 함은 당연한 의무이다.

  지난날의 일그러진 역사를 단호하게 심판하지 못하는 민족의 미래에는 진보도 없다. 서두에 고백한 내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땅의 자라나는 젊은 세대들에게 정직과 양심을 훈육하기 위해서라도 올바른 역사관의 정립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의지는 우리 민족이 감내했던 굴곡진 역사를 재차 되돌리는 실수를 막는 근본적 보험이 될 것이다. 현 세대로서 역사에 대한 이러한 의무감을 재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필요성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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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과 서 - 동양인과 서양인은 왜 사고방식이 다를까 - EBS 다큐멘터리
EBS 동과서 제작팀.김명진 지음 / 예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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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어머니께서 허리가 아파 고생하셨을 때를 기억한다. 당시 어머니는 허리와 다리가 동시에 아파서 신경외과를 안방 드나들 듯하셨다. 엑스레이와 CT촬영을 통하여 원인을 분석했고, 의사에 지도에 맞도록 착실하게 물리치료를 받으셨다. 하지만 한 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차도는 보이지 않았다. 수술 외에는 답이 없다고 대부분의 여론이 모아졌을 때 누군가의 소개로 한의원에서 침을 맞으셨다. 그런데 신통하게도 몇 번 맞지 않고 어머니의 허리 통증은 완벽하게 사라졌다. 나는 그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바늘 같이 생긴 얇은 쇠붙이를 사람의 몸에 꼽았다고 해서 어떻게 그리 말끔하게 병이 치료될 수 있는지 의아했다. 침술은 이미 서양 의학에서도 인정하고 부러워하는 고차원적 의술로 평가받고 있다. 사람의 몸은 전체적으로 기氣로 연결되어 있으며 기가 얼마나 잘 열려있고 역동하는지에 따라 건강은 판가름 난다는 게 동양 의학의 기본 전제이다. 침술은 이러한 기를 다스리는 의술이며 현재의 서양 의학으로는 풀 수 없는 다양한 병들을 침을 통해 치료하고 있다.

  이러한 동서양 의학의 차이는 근원적인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가름하는 좋은 실례가 된다. 동양은 전체를 중요시하는 반면 서양은 개체를 소중히 여긴다. 동양의 사람과 문화, 습속과 예술은 철저히 '전체'의 관점을 지향한다. 반면 서양은 전체를 이루고 있는 개체들을 분석화하여 각 사람이나 물체 자체의 존재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그러므로 동양에서는 인간이 사회와 자연의 일부가 되어 함께 일체를 이루려는 집단주의와 물아일체의 정신이, 서양에서는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두고 눈앞에 펼쳐진 세상을 분석하려는 개인주의와 과학이 발달하게 되었다.

  예담출판사에서 출간된 『동과 서』는 바로 이러한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흥미있게 소개하는 책이다. EBS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로 방영된 것을 책으로 출간한 것인데, 다양한 실험 사례와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동서양의 본질적 상치를 잘 구분했다. 문화, 습속, 언어, 예술, 인성, 과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와 각도에서 동서양의 차이점을 증명한다.

  이 책은 독특한 구성이 인상적이다. 제시한 주제에 대한 실험과 테스트를 먼저 소개한 뒤, 이를 풀어서 설명하고, 전문가와 석학들의 인터뷰를 통해 내용을 부언한다. 특히 인터뷰 전문가들을 동서양에 걸쳐 골고루 소개하고 있어 균형적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도판을 통한 다양한 실험을 독자를 피험자로 삼아 실행한다는 점이다. 책 속에 담겨진 많은 테스트를 통과할 때마다 어찌나 정확히 동양인인 내 자신의 선택을 미리 예고하는지 신비스럽다. 저자는 동양은 한국·중국·일본의 동아시아 3국(유교·한자 문화권)을 기본으로 삼았고, 서양은 미국·영국·호주 등을 샘플링했음을 밝혀둔다. 오래전부터 유교와 한자로 동일한 문화권을 형성했던 동아시아 3국인들의 사고방식이 비슷할 수밖에 없음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독자를 대상으로 한 테스트 실행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흥미를 배가시킨 점은 이 책의 강점이라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아쉬움도 존재한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만을 일관되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의 내용은 시종 동서양을 대극적으로 분리할 뿐이다. 동양과 서양의 조화나 작금의 시대에 필요한 문명에 대한 올바른 식견 등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과거와 현재까지의 사실적 정보의 전달에만 그칠 뿐 미래를 내다보며 독자에 요구하는 논설이 없다는 점은 이 책의 가장 아쉬운 결핍으로 지적된다.

  한 때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과 옥시엔탈리즘(occidentalism)에 대한 활기찬 담론 형성이 이뤄졌었다. 하지만 빛의 속도로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이 펼쳐지는 작금의 시대에서는 동양과 서양에 대한 단선적인 가치 우위 논쟁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조화'에 있다. 개체 자체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서양의 시각과 각 개체 간의 관계와 그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세계를 탐구하는 동양의 관점이 서로 조화와 화합을 이룰 때에 인류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힘있고 지혜로운 문화가 탄생되리라 나는 믿는다. 서양인이나 동양인이나 모두 같은 인간이며, 모든 문화는 결코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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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공식 - 인생을 변화시키는 긍정의 심리학
슈테판 클라인 지음, 김영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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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책을 읽었다. 쉽지 않은 내용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부담이자 도전이다. 하지만 마지막장을 넘겼을 때 오는 앎의 크기과 만족의 포만감을 확인할 때면 읽을 때의 부담감은 어느새 산산조각 나 있음을 목도하게 된다.

  의학, 철학, 심리학, 물리학, 뇌과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이 한 권의 인문서는 책의 첫장을 넘기자마자 과학적인 용어들로 독자를 난사한다. '행복의 공식'이라는 편안하고 부담없는 책제목은 일독한 후의 느낌을 적용해볼 때 내용과는 다소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인문학에서 찾는 행복', ' 과학과 행복의 상관 관계' 정도가 책제목으로 적확하다고 여겨질 만큼 학술적 내용이 즐비하다. 하지만 고통이 큰 만큼 영광도 크다는 기독교의 가르침과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는 세상의 속담을 위안 삼아 마지막까지 인내심을 갖고 완독하기에 이른다.

  슈테판 클라인이 주장하는 핵심적인 내용은 "행복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나이가 들어서도 변화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적 노력으로 행복을 지향하는 뇌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매우 다양한 과학적 실험을 소개하면서 이를 구체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뇌의 구조 및 각 기관의 역할, 수많은 인체 호르몬의 종류와 그 기능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어 흥미롭다. 

  책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과학 용어는 '앞이마뇌(전두엽)'와 '도파민'이다. 책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와 책이 전달하는 내용과의 연결적 중요성과는 대개 비례하기 마련이다. 예컨대 성경에서 '다윗'이라는 인물명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용어라는 사실 자체가 신의 구속사역에서 다윗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임을 자연스럽게 입증하듯이 이 책에서 앞이마뇌와 도파민을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 또한 인간의 행복을 조정하는 가장 소중한 두 가지 기제임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불행은 부르지 않아도 온다. 그러나 행복은 노력을 해야만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공포나 분노 또는 슬픔은 외부세계의 위험에 대한 답변인 반면, 쾌적한 감정은 우리를 좀더 가치 있는 상태로 유혹하기 위해 자연이 마련한 것이기 때문이다.   <p. 50>

  행복은 결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 철저한 노력에 의해서 얻어질 수 있다고 강조하는 저자는 "행복에 이르는 길의 비밀은 결단과 노력, 그리고 시간이다"라는 달라이 라마의 명언으로 자신의 주장을 부연한다.

  간뇌와 뇌하수체의 역할과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 호르몬의 방출 기작 등의 지루한 의학적 설명부터 '바람 피우는 이유', '담배 끊기 어려운 까닭' 등의 흥미있는 과학 이야기까지 시종 행복에 대한 다양한 과학적·사회적 담론들을 줄지어 기술한다. 책에 소개된 내용 중에 고개가 주억거리는 흥미있는 두 가지 테마가 있어 소개한다. 그 첫 번째는 <불행으로 이끄는 6가지 착각>이라는 테마로 행복에 대한 잘못된 인식 여섯 가지에 대해 소개한다.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착각 하나 : 만족을 행복으로 여기다.
사회심리학자 노버트 슈워츠(Norbert Schwarz)의 실험을 통하여 만족하는 것과 행복한 것은 다른 개념이며 이를 동일시하여 착각에 이르는 자들이 의외로 많음을 알려주고 있다.
착각 둘 : 최고의 순간은 길수록 좋다.
미국 프리스턴 대학의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의 실험은 "뇌가 입력하는 것은 단지 감각적 느낌의 절정과 그 느낌이 줄어들기 직전의 마지막 몇 분일 뿐이다."라는 저자의 주장을 입증한다. 결국 남게 되는 것은 마지막 인상이므로 뇌는 행복한 결말을 원한다는 것이다. 분위기가 꽤나 들뜬 파티에서 만약 가장 즐거운 순간에 집에 가겠다고 일어선다면 당신은 현명하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예로써 설명한다.
착각 셋 : 최악의 상황은 미리 생각해두어야 한다.
비관적인 기대는 우리의 삶을 기억보다 더 심하게 일그러뜨린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사회심리학자인 빅토리아 메드체크(Victoria Medcec)와 앨런 파두치(Allen Parducci)의 관찰과 이론을 통하여 이를 확인시킨다.
착각 넷 : 행복에는 어느 정도의 기준이 있다.
"그저 행복하기만 원한다면 그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길 원한다면 그것은 언제나 어려운 문제로 남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보다 더 행복한 상태로 상상하기 때문이다."라는 철학자 몽테뉴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을 누군가와 비교하는 사람은 지는 사람이라고 역설한다.
착각 다섯 : 질투는 당연한 감정이다.
"난쟁이는 언제 기뻐하는가. 자기보다 더 큰 혹을 달고 있는 다른 난쟁이를 보았을 때."라는 동유럽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의 속담을 인용하여 인간 안에 깊숙이 스며있는 질투의 감정을 소개한다. 하지만 이러한 만족은 지속되지 못하며 "나폴레옹은 카이사르를 질투하였고, 카이사르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질투하였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아마도 헤라클레스를 질투하였을 것이다.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그를 말이다."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의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더욱이 스토아학파의 철학자인 에펙테토스(Epiktetos)의 악담을 예로 소개하며 질투라는 감정이 당연한 감정이라는 공식을 차단하는 논지를 펼친다.
착각 여섯 : 사회적 성공이 행복을 보장한다.
저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미국을 위시한 많은 나라들에서 발표된 논문 150여편은 한결같이 동일한 결과에 다다른다고 말한다. 돈은 만족을 가져다주지만 그 효과는 아주 미미하다는 것이다. 월급 액수가 몇십만원 또는 몇백만원 더 올라간다는 것은 일반 샴페인과 그해 최고의 샴페인을 마시는 것 정도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 다시 말해서 그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위와 같이 여섯 가지 행복에 대한 착각을 언급한 뒤 이에 대한 탈출구 두 가지를 연이어 소개한다. <다른 사람을 모델로 삼지 말라>와 <행복 일기 작성하기>가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자기 자신에게 좋은 감정을 선사하는 것이 무엇인지 본인 스스로 알아내야 하며 인생은 모든 사람이 동일한 지점에서 출발해 동일한 목표를 향해 달리는 100미터 달리기가 아님을 설파하면서 이 테마를 마무리한다.

 
두 번째 테마는 <심리적 만족을 위한 마법의 삼각형>이다. 저자는 각 나라의 행복지수를 1인당 소득(구매력평가환율 기준)을 기준으로 개발도상국, 선진국으로 구분하여 도표화한다. 돈과 행복 사이의 아이러니, 미국 펜실베니아주 동쪽의 작은 도시 로제토시의 발전 과정, 경쟁보다는 연대의 중요성, '나-주식회사'보다 공동체 인식의 중요성, 신뢰에 기반을 둔 시민의식, 실업이 가져오는 무기력, 자기결정의 축복, 민주주의의 강점 등 다양한 소주제를 통하여 삶에 대한 심리적 만족을 이루는 마법의 삼각형을 설명한다. 정리하자면 '시민의식', '사회적 균형',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 이 세 가지가 한 사회 구성원들의 심리적 만족감을 이루는 마법의 삼각형이라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테마 외에도 행복에 대한 소중한 지혜의 양식이 많이 담겨 있다. 처음 책장을 넘길 때 뇌의학 참고서가 아닐까 할 정도로 전문적인 뇌지식이 소개되다가 호르몬의 종류와 역할로까지 설명이 이어진다.  대입 수험생에게 과학 과외를 시키듯 호르몬 이야기로 일관하다가 다양한 동물적 실험을 소개하기도 한다. 또한 고대 철학자들이 주장한 명언에 반기를 들기도 하며, 책의 말미에는 정치학과 사회학까지 망라하고 있다. 이 책은 '행복의 공식'을 설명하기 위해, 엄밀히 말하면 '입증'하기 위해 뇌의학에서부터 사회학까지 이르는 인문학 전 분야를 두루 경유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 중국인들이 100년을 기다렸다는 베이징올림픽이 개막했다. 웅장한 개막식과 화려한 성화 점화보다 더욱 내 관심을 끄는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선수단 입장 장면이었다. 두 시간이 넘게 204개국에 달하는 각국의 선수단이 입장하는 장면을 보면서 지구상에 정말 많은 나라가 있고 각기 다양한 환경과 여건 속에서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되새겼다. 204개국 중에서 단연 흥미있게 다가온 나라가 있었는데, 남태평양의 자그만 군도 바누아투 공화국이었다. 30만이 되지 않는 인구와 1인당 GDP가 고작 1500달러밖에 되지 않는 열대성 기후의 이 자그만 최빈국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라고 한다. 덥고, 조그맣고, 경제적으로 빈곤한 바누아투 공화국의 국민들은 왜 자신들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자신있게 주장하는 걸까. 왜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민들일까. 그 이유는 행복의 본질이 외연이 아닌 내포에 존재하고 있는 가치이기 때문이 아닐까. 경제적 가치 위에 있는 행복이라는 소중한 비밀을 천착키 위해 『행복의 공식』은 꼭 필요한 책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내용 자체가 전문성이 많아 쉽게 읽히는 책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초반부의 과외 수준에 이르는 의학 참고서와 같은 지난한 터널을 통과할 수만 있다면 중후반부터 이어지는 달짝지근한 행복학 개론과 조우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초중반의 지루한 의학 담론이 전혀 필요없는 부분이 아니라는 점이다. 철저한 과학적 실례와 논리적 입증을 토대로 구성된 책이기 때문에 앞부분의 쓴맛과 뒷부분의 단맛을 균형있게 섭취해야 이 책이 선사하는 영양분을 제대로 소화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읽는이의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밋밋한 정보의 전달밖에는 되지 못한다. 이에 대한 부담을 느낀 탓인지 저자는 행복을 찾아나서는 길에서 가장 중요한 연습은 바로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임을 책의 말머리에 강조해놓는다. 굉장히 유의미한 문장이다. 지구상에는 60억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따라서 행복에 이르는 길 역시 60억 개가 된다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행복의 공식을 풀어가는 가장 중요한 본질을 내재하고 있는 게 아닐까. 행복에 이르는 공식은 바로 자기 자신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기에.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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