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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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유시민의 책을 즐겨 읽는다. 잘 알다시피 나는 그의 정견 대부분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을 탐독하는 건 그의 말과 글이 논리와 재미 면에서 대중을 압도하는 그 무언가를 갖추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솔직히 인정할 건 인정하자. 유시민만큼 지식을 언어로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대중과 잘 호흡하고 전달 능력이 탁월한 지식인이 흔한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과정에서 지식은 더 단단하고 입체적으로 확장된다. 반대자의 탄탄한 논설은 미처 생각지 못한 내 견해 너머에 있는 곳을 바라보게 해준다. 내가 유물론자이자 진보주의자이며 진화론자인 유시민을 '어색하게' 좋아하는 이유다.

유시민의 신간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는 흥미로운 책이다. 제목 그대로 문과 출신인 저자가 자신의 비전문 분야인 과학을 다루었다. 여태까지 많은 책을 집필해왔지만 과학 관련 책은 단 한 권도 내본 적이 없는 그였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과학 이야기를 들고나온 건 순전히 아내 한경혜 박사 덕분이다. 자신의 유튜브 도서 비평 방송 '알릴레오 북스'를 소재로 책을 만들자는 제안을 받았는데 수학사를 전공한 아내가 중간에 조정하여 기획하게 된 것이라고 책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자신이 없어서였을까. 서문부터 '과학을 소재로 한 인문학 잡담'에 불과하다고 안전장치를 깔아두는 저자의 너스레가 요란하다.

이 책은 크게 여섯 장으로 나누어 과학을 얘기한다. 첫 번째 장에서는 인문학과 과학의 차이를 설명하고 이후 각 장마다 뇌과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수학을 순서대로 소개한다. 각 파트별 과학 분야의 개념이 설명될 때는 지루함과 난해함이 교차되는 것 같다가도 저자의 언어로 해석과 리뷰가 가미될 때는 흥미롭게 읽힌다. 과거 『청춘의 독서』에서 여러 고전을 소개했던 것처럼 여러 과학의 법칙과 뒷이야기를 저자의 시각으로 리뷰했다. 저자 특유의 입담이 글에도 잘 녹아 있어 독자를 과학의 세계로 촉촉이 견인한다.

초반부터 흥미롭다. 2장 '나는 무엇인가'에서 뇌과학을 다루며 칸트를 소개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나에게도 칸트 철학은 도저히 범접하기 힘들었던 경험이 여러 번 있다. 명저라고 불리는 『순수이성비판』을 읽으려다가 몇 장 넘기다 책장을 덮은 기억이 수도 없다. 저자도 그랬던 듯하다. 저자는 칸트의 난해성에 대해 문장은 철학적인데 내용은 과학적이라는 데서 찾는다. 『순수이성비판』 서론부터 물리학·기하학·대수학·생물학 용어가 출몰하고 본론 '선험적 원리론'에서 감성·직관·개념·감각 등의 개념이 과학적 용어와 뒤섞여 독자를 곤욕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칸트의 인식론을 양자역학에 대입해 풀이하기도 한다. 결국 (과학적이진 않았지만) 칸트가 옳았다는 것이다. 흥미롭다.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화학을 다룬 4장이다. 최근 환경과 기후 문제로 이슈가 된 탄소에 대해 저자는 많은 지면을 할애해 탄소의 변호인(?)을 자처한다. 다들 탄소를 비난하고 미디어에서 탄소 때문에 인류가 망할 것처럼 얘기하는데 실제로 이는 탄소에 대한 지나친 혹평이라고 탄소를 대변한다. 탄소야말로 화학적으로 유능한 '중도(中道)'라는 것이다. 탄소에 대한 저자의 변론을 정리하면 이렇다. 탄소가 중도라는 건 원자번호 6번으로 주기율표 왼쪽 오른쪽 어디로도 치우치지 않는다는 의미다. 전자를 공유할 기회가 오면 거부하지 않지만 남의 전자를 함부로 탐하지 않는다. 원자핵과 전자가 비교적 가까이 있어서 잘 깨지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깨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지도 않다. 모든 면에서 어중간하다. 바로 이런 성격(성질) 때문에 탄소는 생명 탄생의 주역이 된 것이다.

저자의 강력한 변호가 기후 위기의 주요 원인이 탄소라는 사실 자체를 전복하지는 못한다. 다만 저자가 서술했듯이 탄소가 새로 생겨난 게 아니라 원래부터 지구에 존재했었으나 다른 곳에 다른 형태로 있던 게 풀려나 산소·수소와 결합한 탓에 기후 위기가 생긴 것이다. 전 세계적인 탄소 규제 및 동결 정책의 핵심은 탄소가 산소와 수소와 결합하지 않도록 최대한 줄이고 주의하자는 메커니즘이다. 지구에 석유가 남아도는데도 전기 자동차로 인간의 이동 수단이 바뀌어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기 배터리와 자율주행을 위한 AI, 반도체 기술의 도약적인 발전과 그로 인한 세계 경제 패권의 구조적 변화 등이 어렵지 않게 읽힌다. 탄소의 중용의 도(道)를 알고 난 후 숯불에 고기를 굽다가 손과 얼굴에 검댕이 묻어도 예전처럼 닦아내지 않고, 어두운 자기 피부색에 대한 불만도 줄었다고 하는 저자의 너스레는 흥미를 넘어 코믹하기까지 하다.

뒷부분에는 물리학과 수학을 다룬다. 물리학을 다룬 5장에서는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엔트로피 법칙, 빅뱅 등을 일반 독자의 수준에서 쉽게 정리했다. 양자역학을 불교와의 유사점으로 풀이하고 과거 청년 때 열심히 공부했던 유물변증법에 대입한 대목은 무척 흥미롭다. 거대하고 복잡한 과학 이론을 대하는 저자의 지적 겸양이 이번 장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이해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저자의 겸손함은 "모르는 것에는 침묵하라"고 말한 비트겐슈타인의 명언을 상기시킨다. 마지막 6장에서는 몹시 아름답지만 오직 천재들의 영역일 수밖에 없는 수학에 대해 할애했다.

서평을 마무리하면 이 책은 과학을 전공한 사람이 읽기에는 적절치 않을 듯하다. 저자 스스로 '바보를 겨우 면한 자의 무모한 도전'이라 표현할 정도로 겸양을 떨기는 했으나 실제로 과학의 각 분야에 대해 구체적이고 전문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과학 전공자나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독자에게는 심심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독자에게는 부담 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수준이다. 저자의 강점인 인문학 잡담이 가미된 건 덤이다.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독서, 여행에 이어 과학에까지 글쓰기의 외연을 넓혀가는 작가 유시민의 '확장'을 지지한다. 그의 말과 글은 언제나 여전히 흥미롭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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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그 길 끝에 행복이 기다릴 거야 - 흔들리고 지친 이들에게 산티아고가 보내는 응원
손미나 지음 / 코알라컴퍼니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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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파울류 코엘류를 참 많이 좋아했다. 오래전 정치와 인문도서를 즐겨 읽다가 문학으로 기호를 옮길 시점이 있었다. 그때 나를 강렬히 끌어들인 게 바로 코엘류의 연금술적 문장이었다. 당시 몇 달 만에 코엘류의 모든 소설을 읽었을 정도로 그의 글과 이야기를 좋아했다. 15년 전 신(神)의 여성성을 탐구한 『포르토벨로의 마녀』에 처음 매료된 후 코엘류의 소설들을 거꾸로ㅡ현재에서 과거 순으로ㅡ읽기 시작했다. 『연금술사』 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등 그의 유명작들을 두루 훑었다. 그중 십수 년이 지난 지금 아직까지 내 마음속을 가장 강렬하게 붙들고 있는 작품은 그의 처녀작 『순례자』다. 이 소설을 읽은 후 스페인 산티아고로 떠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혼이 났던 기억이 선연하다.

소설 『순례자』 탓인지 산티아고 순례길은 나에게 로망이 되었다. 이후 내 나이 서른이 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산티아고의 존재를 잊었다. 그러다 아이돌 그룹 GOD가 재결성되어 산티아고 길을 함께 걸은 TV 예능을 본 후 그곳으로 떠나고 싶은 열망이 다시 샘솟았다.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고 산티아고는 완전히 잊힌 듯 보였다. 내면의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는 산티아고에 대한 내 무의식을 다시 일깨운 건 여행작가 손미나의 신간이다. 그녀의 신간 에세이는 오랜 시간 잠재적으로 봉인되어 있던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내 갈망의 불꽃을 다시 태우기 시작했다.

신간 『괜찮아, 그 길 끝에 행복이 기다릴 거야』는 작가 손미나가 코로나 팬데믹이 끝난 후 약 40일 동안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완주한 여정을 담았다. 이 책은 기존 여행기와는 달리 오직 '산티아고'에 초점을 맞춘다. 작가의 스페인 사랑을 생각하면 더 먼저 떠났어야 했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에 떠났어야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산티아고 길을 언제 걸을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이 아니고 때가 되면 그 길이 부른다"는 말처럼 지난해 봄, 작가는 가슴속에서 드디어 산티아고 길이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지독한 전염병이 3년간 전 세계를 뒤집어 놓고 사라지려 시작하려던 시점이다. 작가는 산티아고 길로부터 '계시'를 받자마자 주저하지 않고 스페인행 비행기 표를 끊는다.

책 속에는 인생 2막으로 넘어가는 한 중년 작가의 도전과 용기, 열정과 사랑, 위로와 사유가 포근하게 담겨 있다. 프랑스 생장에서 시작해 피레네산맥 24.2km 구간을 거쳐 총 800km에 이르는 대장정 가운데 작가는 여러 유의미한 주제를 포착하고 가치 있는 사유를 추출한다. 아름다운 경치와 거쳐가는 마을마다의 고유성을 관찰하는 재미는 현상적인 것일 뿐 본질적이지는 않다. 긴 여로에서의 본질은 결국 '나 자신'이란 걸 깨닫는다. 죽도록 힘든 피레네산맥 코스가 끝나면 앞으로 쭈욱 펼쳐진, 마치 자기 인생길을 은유하는 듯한 길고 긴 도보길이 펼쳐진다. 걸으면 걸을수록 작가는 산티아고의 울림을 더 깊이 발견하고 음미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코스의 종착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도착한 작가는 종국적인 깨달음 앞에 고개를 숙인다. 결국 모든 것이 내 안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내면의 질문과 그것에 대한 해답, 그리고 자신이 받아야 할 위로와 사랑, 더 나아가 인생 2막에도 더 무겁게 짊어져야 할 타자와 세계의 무게 등. 작가 자신이 그토록 찾고자 했던 여러 의미는 결국 자기 마음 안에 있었던 것이다. 그걸 알기 위해 걸어야 했고, 그 길을 걸었기에 그 소중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작가의 고백은 깊은 울림을 준다.

여행 에세이로서 이 책의 강점은 적확한 사진의 배치에 있다. 글과 사진의 불일치성과 외연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잃게 된 글의 무게는 조악한 여행수기가 갖는 두드러진 특징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불편함이 없다. 책 속 빼곡히 들어선 다양한 산티아고 사진들은 나란히 기술된 작가의 글을 잘 수식하고 보완한다.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책 속에서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이 소중하게 펼쳐져 있다. 특히 앞으로 길게 늘어선 산티아고 길을 향해 홀로 걷는 작가의 뒷모습을 풍경과 함께 찍은 책 표지 사진은 탁월하다. 표지만 보고도 책을 사고 싶게 만드는 기술이다.

책장을 덮은 후 생각했다. 서두에 언급한 대로 나는 왜 산티아고 길을 가고 싶어 했는지. 모호했다. 구체적 이유 없이 그저 일상을 벗어나고자 하는 애매한 일탈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이제 알겠다. 작가와 마찬가지로 결국 모든 것이 내 안에 있다는 걸 발견하기 위해 걷기 위해 떠날 수밖에 없는 내 현실의 비루함을 부인할 수 없겠다. 언젠가 꼭 떠날 것이다. 혼자도 좋고 아내와도 좋다. 때에 따라서는 큰 딸과 함께도 좋다. 산티아고 길의 로망을 다시 한번 내 가슴속에 밀어 넣으며 기분 좋은 감상을 갈무리한다. 손미나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일독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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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 - 푸슈킨에서 체호프까지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이현우 지음, 조성민 그림 / 현암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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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1년째를 맞고 있다. 당초 예상을 깨고 장기전에 들어간지 오래다. 출구도, 끝도 보이지 않는다. 애꿎은 젊은이와 민간인만 희생되고 있다. 인명피해는 물론 곡류와 가스 값이 폭등하여 세계 경제 침체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반도체 공급망 대란과 함께 작년 한 해 가장 큰 국제 뉴스가 됐다. 그래서인지 러시아에 대한 세계인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 같다. 국내에서도 북한, 중국,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비호감 국가가 됐다. 러시아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러시아에 대한 내 인상은 복잡하고 입체적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푸틴이 지도하는 러시아'에 대한 호감은 매우 부정적이다. 개인적으로 모든 형태의 전체주의(全體主義, totalitarianism)를 혐오한다. 현재 지구상에서 북한, 중국과 함께 가장 전체주의적인 나라가 러시아다. 하지만 문학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러시아 문학만큼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푸시킨(푸슈킨),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등 19세기 러시아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인(文人)을 여럿 배출한 곳이다. 환언하자면 나에게 러시아는 스탈린과 푸틴에 의해 혐오스러운 나라이면서 동시에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로 인해 사랑스러운 나라이다. 이 아이로니컬한 이질감이 최근 나를 더 러시아 문학에 빠져들게 했다.

저자 이현우의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는 제목 그대로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강의한 책이다. 저자가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정리한 것인데 러시아문학 전공자답게 깊이 있는 분석이 백미다. 19세기 초 푸시킨부터 19세기 말 체호프까지 총 7명의 작가를 훑는다. 저자는 19세기 러시아 문학은 푸시킨으로 시작해 체호프로 끝맺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체호프에게 바통을 이어받아 20세기를 여는 작가가 고리키라고 안내한다. 7명의 작가를 소개한 뒤 작가의 대표 작품을 한 개씩 리뷰한다. 도스토옙스키만 특별히 두 작품을 실었다. 작가의 필명 '로쟈'에서 알 수 있듯이 도스토옙스키를 친애하는 작가의 사심이 담긴 듯 보인다.

저자에게 러시아는 매력의 아이콘이다. 동시대에 푸시킨,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를 한꺼번에 배출한 나라가 어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으랴. 러시아가 태동적·역사적으로 왜 서구식 개인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 설명한다. 19세기 모든 작가가 관통하는 서구 유럽주의와 러시아주의 사이의 긴장과 간극을 알기 쉽게 풀이한다. 톨스토이가 러시아적이며 전 세계적인 가치를 대변한 반면 도스토옙스키는 오직 러시아적인 작가로 남았다고 분석한 대목은 흥미롭다. 거대한 러시아 문학에 진입하려는 독자에게 입문서 역할을 하는데 적확한 책이다.

내가 오래전 출간된 책을 집어 든 이유는 앞서 언급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준 당혹감 위에서 다시 한번 제대로 러시아 문학을 톺아보기 위함이다. 러시아 문학은 나라의 땅덩어리 못지않게 방대한 것으로 유명하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나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같은 작품은 세르반테스 이후 올곧게 이어져온 소설이란 장르의 규격을 초과하는 거대함으로 세계 문학사에 웅장함을 선물했다. 읽어도 읽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분량이지만 막상 읽고 난 후에는 깊은 감동에 빠져 멍하게 하늘을 바라보게 하는 기념비적인 소설인 것이다. 

최근 나는 '거대함'이란 주제에 깊이 천착해 있다. 일터에서 사람과 부딪히면서, 가정에서 머리가 커지는 아이들을 대하면서, 교회에서 신앙의 일에 헌신하면서 '인간의 크기'에 대해 숙고하는 중이다. 생뚱맞겠지만 나이가 드니 이 숙고가 더욱 간절해짐을 느낀다. 마음의 크기가 넓다는 건 무엇일까. 한 인간의 내적 스케일과 그 사람의 언어는 존재론적으로 어떤 함수관계에 놓인 걸까. 나이가 든다는 것과 내면의 그릇이 커진다는 건 항상 비례하는 걸까. 하루하루 고단하고 남루한 일상을 버티어가면서 나 자신의 '존재의 크기'에 대해 사유하는 건 고통스럽지만 절실하다. 그리고 흥미롭다.

톨스토이의 걸작 『안나 카레니나』와 『전쟁과 평화』는 나에게 청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과정의 가장 큰 지적·정서적 영감이었다. 최근 머리가 나빠진 탓인지 스토리 라인도 헷갈리고 있지만 말이다. 두 작품 외에도 푸시킨과 도스토옙스키의 대작을 얹어볼 생각이다.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과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로 시작해 볼 요량이다. 어느덧 나도 모르게 OTT 영상에 빠져 있는 나 자신을 목도한다. 이 직시(直視)를 한탄하며 다시 책으로, 고전 속으로, 러시아 문학 속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항시 그랬듯이 고전은 성경과 함께 내 지성과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 절대 스승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그 심연으로 여행하려 한다. 러시아 문학의 다부진 찬란함 속으로.

로쟈 이현우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는 이런 나에게 좋은 애피타이저다. 러시아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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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다 가을하다
최상규.최종현.최훈 지음 / 나다운나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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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도 인상적이지만 아버지와 두 아들이 함께 썼다는 점에서 솔깃했다. 심리학·사회학적으로 아버지와 아들만큼 가까우면서도 먼 관계는 없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그리스 신화 《오이디푸스》에서 말을 따 남성이 부친을 증오하고 모친에 대해서 품는 무의식적인 성적 애착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명명했다. 폴 비츠는 명저 『무신론의 심리학』에서 "아버지와의 관계가 신(神)에 대한 스탠스를 결정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렇다.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는 만만치가 않다. 그렇기에 부자간 함께 글을 써 책으로 낸 점은 주목할 만하다.

『고민하다 가을하다』는 저자가 두 아들과 함께 쓴 에세이다. 첫째 아들이 쓰기에 동참했고 둘째 아들은 그림으로 동역했다. 저자의 아내는 글을 선정하고 심사하는 것을 도왔다. 즉 네 가족이 모두 공저자인 셈이다. 책 출간의 동기가 인상적인데 사연은 이렇다. 저자ㅡ이글에선 편의상 공저자 중 아버지 최상규 씨를 '저자'로 칭하겠음ㅡ의 첫째 아들이 대학 논문 심사가 통과되지 않아 크게 낙심 중이었다. 그런 아들에게 저자는 "생각도 정리할 겸 함께 글이나 써 볼까" 건넨다. 아들이 선뜻 응했고 그렇게 해서 100일간의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100일이 지난 뒤 이들은 서로 성장해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은 그렇게 쓰였다.

책 분류상 이 책은 명징한 에세이다. 책 곳곳에 저자의 생각과 고민이 잘 담겨 있다. 글쓰기에 대한 철학을 말하기도 하고 바퀴벌레를 묵상(?)하기도 한다. 어렸을 때 친구와 있었던 일을 소환되기도 하고 아버지(구순九旬이 넘은 저자의 아버지)와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나름의 여행 철학을 주장하기도 하고 몇몇 시와 노래를 소개하며 자신을 주관을 얹기도 한다. 죽음, 증오, 사랑, 용서, 배려 등의 인간 삶의 본질적인 가치를 진지하게 탐색하기도 한다. 구석구석 인용된 고전(古典)의 명문장과 철학자의 말은 평소 저자가 얼마나 폭넓은 독서를 해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은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란 소제목의 글이다. 대중가요 두 곡의 가사를 인용하며 '다행'과 '행복' 사이의 방정식을 추출하는 저자의 시각이 흥미롭다. 이적의 <다행이다>와 장기하의 <별일 없이 산다> 사이에서 상치된 개념으로서의 '다행'의 의미를 탐구한다. 저자의 해석으로는 이적의 곡이 죽도록 행복하다는 의미에서의 다행을 노래했다면 장기하의 곡은 '남의 고행'과 연결된 다행을 노래했다. 그러면서 '나의 다행'이 '그의 다행'이 되는 행복한 세상을 소망한다. 최종적으로 구십이 넘은 아버지를 떠올리며 그런 세상은 오직 사랑의 관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짚어낸다. 즉 저자는 사랑에 구원이 있다는 것을 유행가 가사와 아버지의 일례를 통해 궁구한 것이다. 저자의 통찰력에 고개가 주억거린다.

책 곳곳에 자주 인용된 성경 구절은 저자의 신분을 암시한다. 책에서 직접 드러냈듯이 저자의 직업은 개신교 목사다. 수년 전 교회를 개척하여 담임목사로 사역 중이다.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사실 나는 저자를 잘 알고 있다. 오래전 저자가 우리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유독 책을 좋아했던 저자의 모습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어느 교역자보다 차분하고 성실했던 저자가 교회를 개척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실 조금 놀랐다. 기독교가 '개독'으로 불리는 작금의 시대에 교회를 개척한다는 건 그 자체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저자의 용단과 뚝심이 텍스트 곳곳에도 잘 묻어 있어 포근하게 읽을 수 있었다. 개척예배 때 참석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크다. 이 서평은 그 부채감에 대한 뒤늦은 피드백이다. 저자의 목회와 가족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책을 덮은 후 도전이 하나 생겼다. 언젠가 나도 딸과 함께 책 한 권 내보는 것이다. 지난 십수 년간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다른 건 몰라도 책읽기와 글쓰기만은 자녀에게 흘러내려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해왔다. 고백하건대 천성이 빠르고 직관적인 나에게 글쓰기는 느린 속도와 신중함을 함양해 주었다. 때에 따라서는 말보다 글이 더 힘이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책 서두에 언급됐듯이 글쓰기야말로 평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낯설게 보고 소중하게 성찰할 수 있게 해주는 올곧은 지름길이다. 그런 차원에서 두 아들과 함께 글을 쓰고 함께 생각을 정리한 저자의 시도는 두 딸을 키우는 나에게 큰 영감을 준다. 

글을 써본 사람은 안다. 정확히 말해 글을 써본 사람만이 아는 게 있다. 글쓰기는 고통이라는 것을 말이다. 글을 쓴다는 건 인간 사유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스르는 노곤한 작업이다. 무의미한 생각의 관성과 의식의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는 행위다. 단언하건대 글쓰기는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역행한다. 흐트러진 걸 모으는 것이고 지저분한 것을 정리하는 것이다. 모든 필자는 한 글자 한 글자 자기 생각을 적확하게 담아내기 위해 고민하고 분투한다. 수정하고 또 수정한다. 끊임없이 잘라낸다. 끝내 마음에 들지 않아 애써 써 내려간 텍스트를 휴지통에 집어넣기도 한다. 깎아내고 또 깎아냄으로써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작업이 바로 글쓰기인 것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신성하다.

서평을 정리하자. 저자 최상규의 『고민하다 가을하다』는 세 부자가 글쓰기를 통해 성장한 내용을 담은 고민 회복 에세이다. 모 교회의 담임목사로 목회 중인 저자의 현재적 고민과 생각이 잘 담겼다. 언제나 지인이 출간한 책을 읽을 때면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두근거림이 있다. 이 묘한 긴장감과 전술한 바 있는 저자가 준 강력한 도전이 잘 포개어진 따뜻한 독서였다. 특히 아들이 있는 분에게 한 번쯤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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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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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교수가 별세한지 3주가 되어 간다. 아직도 고인의 숨결이 우리 주변 곳곳에 생동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고인이 남긴 족적이 너무 거대해서 타계 후 더 고인을 갈망하고 우러르는 것 같다. 출판계가 특히 그러한데 고인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저작이 계속해서 출간되고 있다. 고인의 유작들이 역주행을 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고 이어령 교수는 독보적인 다작 저술가로서 60년 동안 130여권의 저작을 남겼다. 이중 생전 마지막 인터뷰집인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전 서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인터뷰어이자 작가인 김지수가 암 투병 중인 고 이어령 교수를 매주 화요일마다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인터뷰집이다. 책 속에는 죽음을 앞둔 한 거대 지성의 묵직한 사유와 철학이 오롯이 드러나 있다. 돈, 행복, 생명, 과학, 사랑, 죽음 등 인간의 가장 고밀하고 웅숭깊은 주제들을 총망라하여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암 투명의 끝자락에서 불과 죽음을 얼마 안 남긴 사람이 맞나 할 정도로 인터뷰는 대범하고 역동적이며 열정적이다.

제목 그대로 죽음 직전의 '마지막 수업'인데 고 이어령 교수의 지적 생명력은 죽음이 아닌 삶을 향해 활활 타오르는 것 같다. 힘이 있고 박력이 있다. 육체는 늙고 변하며 병들 수 있지만 정신은 늙지 않는다는 걸 본인 스스로 증명하려는 것처럼 책 곳곳에 지성의 바다가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며 독자를 압도한다. 한 번 말을 하기 시작하면 그칠 줄 모르는 고인 특유의 수다스러움이 이 책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인터뷰어 김지수는 이러한 고인의 박학다식함과 지적 열정에 경도되고 압도된다.

눈에 띄는 건 인터뷰어 김지수의 탁월한 리액션이다. 아무리 훌륭한 지성을 만났다 하더라도 인터뷰어의 실력이 형편없으면 좋은 대담이 이루어질 수 없다. 말만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인터뷰이를 감당할 만한 지력과 실력이 인터뷰어에게는 꼭 필요하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사이의 지적·인격적 관계 형성, 적절한 호흡과 피드백, 공수를 오가는 건강한 긴장감 등이 훌륭한 인터뷰를 만들어낸다. 그런 점에서 저자 김지수의 인터뷰 실력은 수준급이다. 집필 과정에서 어느 정도 편집을 거쳤겠지만 실시간 대담에서 예상치 못한 걸쭉한 사유를 끄집어낼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인터뷰어 김지수의 공이다.

책 전반에 걸친 총체적인 주제는 바로 '죽음'이다.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뒤 그 어떤 항암 치료도 하지 않고 마지막 때를 기다리며 꾸준히 지적 활동에 매진하는 고인의 모습은 죽음의 달관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고인이 천착한 죽음은 추상적이지 않은 구체적이고 명확한 것이다. 딸과 손주를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며 죽음의 실전을 겹으로 체험했다. 고인에게 죽음은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동시에 시작이고 생명이었다. 죽음은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엄마는 밥이고 품이고 생명"이며 "죽음이 또 하나의 생명이다. 어머니 곁, 원래 있던 모태로의 귀환이다"라고 말한 고인의 가르침이 바로 이 지점을 웅숭깊게 웅변한다.

고인은 자기 인생 88년 통찰의 결론이 '눈물 한 방울'임을 고백한다. 핏방울과 땀방울도 아닌 눈물 한 방울이 필요하다고 일갈한다. 핏방울과 땀방울은 너무 흔하며 서로 박 터지게 싸우는 특성 때문에 결국 피눈물밖에 남지 않는다고 말한다. 결국 피와 땀을 붙여주는 건 눈물이어야 한다는 걸 고인은 강조한다.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무언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눈물은 나약한 것, 비본질적인 것이라 생각했다. 피와 땀이야말로 고도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본질적 힘이라 인식했다. 하지만 고인은 88년 통찰의 결과로 "가장 약할 때 가장 강한 것이 나오는 법"임을 일깨운다. 소름이 돋으면서 새 세상을 만난 듯한 전회와 같은 깨달음이다. 책에서 내가 가장 굵게 하이라이트 한 부분이다.

한달음에 책의 막장을 덮었다. 고 이어령 교수와 동시대를 산 것이 영광스럽다. 정치, 종교, 나이, 성별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존경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시대가 급변하고 있다. 'MZ세대'가 난리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대세가 되었다. 기준과 질서가 모호해졌다. 물론 새로운 조류와 스타일을 거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해 아래 새것은 없다. 우리가 새것이라 하는 것 대부분이 옛것의 토대 위에 만들어졌다. 꼰대 같은 소리일지 몰라도 진실이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옛것의 새것스러움을 거대한 지성의 향연 위에 녹여낸 명저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이 빛나는 대화를 지성에 목마른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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