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바보 - 대양 육대주에서 만난 사랑하는 영혼들과의 대화
오소희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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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가 의미있는 공간인 것은 바로 인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광활한 대자연의 규모와 화려한 동식물의 향연도 한 사람의 존엄을 압도하지는 못한다. 과학과 종교는 한 목소리로 일갈한다. 인간 이외의 만물은 결국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물질을 발견하고 다스리는 인간 정신의 고차원성은 이 세계가 곧 인간의 시공간이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입증한다. 지구의 존재 이유. 그것은 바로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의미를 지닌 인간이 지구상에서 가치있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은 어디에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바로 '사랑'이다. 인간이 지구를 의미있는 공간으로 존재케 한다면 인간이 발현해내는 사랑이라는 초월적인 자기력은 지구를 '아름다움'이라는 가치있는 차원의 선상 위에 올려놓는다. 여기서 신의 존재는 명징해진다. 인간은 신이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저차원적 현현顯現이었고 사랑은 인간이 신의 형상을 닮아가고자 하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인류사는 결국 사랑사다. 크고 작은 인간사의 굴곡은 사랑에 대한 각각의 이해와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인간은 사랑하기 위해서 창조 또는 진화된 존재다. 인간은 사랑한 만큼 행복했고 사랑하지 않은 만큼 불행했다. 사랑했기 때문에 선善을 완성했고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악惡에 함몰되었다. 사랑이 가득 찬 사람은 두려움을 망각했고 그 망각 가운데 시간을 가장 빨리 흘러가게 했다. 그렇다. 사랑은 아름답고 위대하며 궁극적인 힘인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사랑은 이론화나 구조화가 불가능한 초자연적 에너지다. 만물의 영장이자 강력한 이성理性을 지닌 인간조차도 사랑이 가진 거대한 포스의 원리를 오롯하게 이해하고 사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기에 수많은 인간이 사랑에 실패한다. 어쩌면 이것은 신의 장난질일 것이다. 신은 절대고차원에서 생성·사용되는 힘을 인간의 시공간, 즉 한낱 3차원의 세계 속으로 유입시켰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모습 속에서 당신의 형상을 찾고자 했다. 신의 장난은 인간을 둥개게 한다. 한없이 낮아지게 하고 결국, '바보'가 되게 한다. 요컨대 인간은 사랑 앞에서 모두 바보가 된다.

  우리 시대의 가장 사랑받는 에세이 작가 오소희는 신간 『사랑바보』를 통해 세계 각지에서 만난 인연들에게서 발견한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소개한다. 이 책은 국적과 지역, 언어와 문화가 다르더라도 결국 인간은 사랑 안에서 동일해진다는 진리를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들려준다.

  작자가 소개한 사랑의 카테고리는 가히 폭넓다. '자기애'로 시작하여 '타자애'와 '모성애'를 넘어 '동성애'와 '노년애'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양한 사랑의 색상을 발굴하고 음미한다. 작가가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경험했던 사랑에 빠진 다양한 영혼들과의 대화는 각각이 소중한 의미를 지님으로써 독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그저 바라만 봐도 심금을 울리는 영혼이 있는가 하면 직접 개입하여 사랑학개론을 나눠야만 하는 영혼도 있다. 사랑에 빠진 세계 각지의 많은 영혼들과의 교감을 통해 저자는 과거로 돌아가고 현재를 응시하며 미래를 상정한다. 이러한 시점의 이동은 작가와 독자 모두를 사랑이라는 웅대한 신적 발현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게 한다. 겸손치 못한 자. 사랑할 수 없다.

  작가 특유의 감성적인 문체는 여전히 돋보인다. 총 다섯 편의 에세이를 써오면서 작가는 어느덧 시인이 다 되었다. 사랑을 테마로 한 책인 만큼 문장 곳곳에 작가의 감정선이 생명력 있게 꿈틀거린다. 간혹 눈에 띄는 비유와 묘사를 음미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시인' 오소희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게 된다. 시는 언어의 정점인 동시에 언어를 넘어선 세계다. 세계의 수없이 많은 글쟁이들이 시인이 되지 못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 않았던가. 작가에게 기대한다. 언젠가 시를 써볼 것을. 갑자기 『욕망이 춤추는 곳 라오스』에서의 짧디 짧은 응축된 문장이 뇌리를 스친다.

  전작과의 차별성 또한 눈에 띈다. 이전 네 권의 에세이에서 작가는 아들 중빈을 통해 세계를 관찰했다. 세계에 대한 천착은 들여다보는 렌즈의 성격에 따라 다른 결과물을 선사한다. 작가와 아들 중빈은 세계를 쳐다보는 기준과 태도에 있어 많은 부분이 상치했다. 다른 간극의 차이만큼 이해가 필요했다. 작가가 세계를 여행하며 포착했던 다양한 글감들은 아들의 '순수'와 '열림'에 의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어린아이의 유치함에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고 때로는 진공에 가까운 순진함에 넋을 잃고 경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에세이만큼은 다르다. 아들은 엑스트라로 물러나 있다. 아들을 향한 작가의 초점과 세계에 대한 아들의 시각은 최대한 탈피되어 있다. 작가가 1인칭의 주인공이 되어 사랑하는 영혼들과의 접속을 시도한다. 시점의 고저와 방향을 철저히 작가 자신만의 것으로 자유화한 문체의 변화가 보기 좋다.

  책의 막장을 덮으며 난 생각했다. 작가가 들려준 아홉 가지 형태의 사랑 외에도 한 가지의 사랑이 더 있다는 것을. 그것은 바로 작가와 독자 사이의 사랑이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독자도 작가를 사랑한다. 작가에 대한 독자의 사랑은 은근히 집요하다. 돌아보건대 난 작가 오소희를 사랑했다. 그의 '자유'는 언제나 나의 '진지함'과 친구가 되었다. 사석에서 수차례 만났던 그는 항상 나에게 자유의 에너지를 발현했고 그것을 통해 나는 삶과 사랑이 결국 동의어라는 깨달음에 고개를 숙이곤 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가 자유로운 만큼 나는 더욱 진지해질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자유를 누릴 것이다. 어느덧 작가 오소희는 내 삶에서 셰익스피어와 톨스토이의 반열에 올라서 있다.

  사랑은 참 어려운 것이다. 사랑 특유의 고통의 난해성은 인간을 바보로 만든다. 사랑은 규정될 수 없다. 다만 끊임없이 발현되고 진행될 뿐이다. 사랑에는 수식어구가 필요없다. 사랑은 그 자체로서 절대선을 유지한다. 이 세계가 물질만능주의에 찌들어 모든 정신적 가치의 굴곡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사랑의 본질만 훼손되지 않는다면 위험하지 않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서만이 인간의 진본에 근접하게 된다. 유일하게 용서할 수 없는 죄가 있다면 바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바보가 되어도 좋다. 사랑할 수만 있다면.

  사랑 예찬론자 오소희의 신간 『사랑바보』를 이 땅의 수많은 '사랑 바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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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다는 것 - 고병권 선생님의 철학 이야기 너머학교 열린교실 1
고병권 지음, 정문주.정지혜 그림 / 너머학교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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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들어가면 많은 것들이 변한다. 그중 하나가 생각이 많아지는 것이다. 나이와 생각은 양적인 면에서 비례하는 것 같다. 생각이 많을수록 삶은 고달프다. 인생은 깊고 풍성한 생각의 바다에서 펼쳐지는 시간의 흐름이다. 인간이 다른 종과 구별되는 '생각'이라는 우월성이 어떨 때는 인간을 옥죄고 번민하게 만든다.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인간. 아. 데카르트여. 인간은 정말 그런 존재란 말입니까.

  생각은 양면성을 띠고 있다. 좋은 생각은 많이 할수록 좋고 좋지 못한 생각은 버릴수록 좋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건강하고 건설적인 생각은 인간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동력이 된다. 반면 잡념과 사념은 인간의 마음을 불안하고 두렵게 한다. 생각 버리는 연습을 통해 평온을 유지해야 한다는 일본 모스님의 수필집이 국내 베스트셀러 1위까지 오른 현상은 생각하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하는 한국 독자들의 관심이 그대로 반영된 것일 게다. 

  '너머학교' 『생각한다는 것』은 바로 생각에 대한 책이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저작발굴 및 출판지원사업' 교양부문 당선작이기도 한 이 책은, 철학자 고병권이 청소년을 위해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쓴 쉽고 새로운 철학책이다. 고병권은 이 책을 통해 인류사를 위대하게 장식했던 다양한 철학자들과 사상을 소개함과 동시에 인간 삶의 본질과 행복하게 살기 위한 다양한 조건을 알려준다.

  먼저 저자는 철학의 긴요성에 대해 매우 명쾌하게 정리한다. 철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삶을 잘 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여기서 '잘'이라는 부사는 경제적이고 명예적인 풍요를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인간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보다 근원적이고 정신적인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바로 철학의 힘이 있다. 영어 공부와 수학 공부와는 다른 것이다. 삶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 몸과 마음을 쓰는 방법을 배우는 학문. 그것이 바로 철학의 정의이자 이 책이 알려주고자 하는 '생각한다는 것'의 목적이기도 하다.

  책의 구성은 간명하다. 저자는 총 여덟 파트로 철학의 세계를 안내한다.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 함께 관련 철학자가 각 파트마다 연이어 소개된다. 디오게네스부터 니체에 이르기까지 고결한 사상을 만들어냈던 위대한 지성들의 이름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독자의 앎은 배부르다. 또한 각 파트가 끝날 때마다 현실의 이슈 한 가지씩을 제기하여 관념이 아닌 실재의 세계에서 생각해야 함을 일깨운다.

  저자가 제기한 '북한 핵 개발', '이라크 전쟁', ' 이주노동자 문제' 등은 비단 기성세대만 고민해야 할 부분은 아니다. 사회는 변하고 그만큼 시대의 가치관 또한 변화한다. 하지만 많은 것들이 변한다 하더라도 절대 변하지 말아야 할 소중한 가치가 있다. 예컨대 '자유'와 '평등', '인권'과 '관용'은 문화와 시대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반드시 지켜져야 할 인간의 고유한 가치들이다. 청소년 때부터 이에 대한 숭고한 신념을 갖는다는 건 매우 필요하다. 지금의 아이들이 훗날 이 나라를 책임질 주인공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기성세대로서 우리의 책임은 실로 막중하다. 다음 세대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줘야 하는 책임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가 그 다음 세대에게 더 좋은 세계를 물려줄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도 응당 우리 기성세대의 몫이다. 이러한 건강한 물려줌의 선순환 속에서 우리사회는 보다 희망이 있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단위 '생각'의 방향과 필요를 제시한 『생각한다는 것』은 참 좋은 책이다. 

  삶의 변성기를 겪어내는 이 땅의 십대들에게 건강한 사고와 행복한 삶의 필요성을 주문하는 저자와 철판사의 수고가 멋지다. 다만 책의 두께와 읽을 대상을 고려할 때 책값이 다소 비싼 점은 아쉽다. 동기와 노력이 좋은 만큼 책가격도 합리적으로 책정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정리하자. 고병권의 『생각한다는 것』은 철학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되 대상을 명확히 하여 간단한 구성과 수월한 내용으로 쉽게 풀어낸 책이다. 청소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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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 -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
김난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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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기계발서를 멀리하는 편이다. 엇비슷한 구조와 천편일률적인 내용으로 씌어진 계발서의 범람이 마뜩잖다. 물론 사람마다 책을 선택하는 기호와 읽는 습관은 가지각색이다. 하지만 책이 주는 지혜와 깨달음이 비단 '나'의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외부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까지 닿아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자기계발서의 효용성은 하락될 수밖에 없다. 너를 알고 세계를 알아야 비로소 나 자신을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발서로 시간을 낭비하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 짧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눈에 띄는 자기계발서가 있다. 신선한 형식과 가볍지 않은 메시지로 당찬 울림을 선사하는 계발도서가 간혹 목도되곤 한다. 최근 베스트셀러 1위에 안착한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도 그중 한 권이다. 매력적인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청춘이 태생적으로 아픈 시기라는 것을 전제한다. 그리고 다양한 주제로 흥미있는 메시지를 풀어내며 청춘시절의 곡절을 위로하고 보듬는다. 

  저자의 외침은 단호하다. 청춘은 아프기 때문에 청춘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불안함', '막막함', '두근거림', '흔들림', '외로움' 등은 청춘시절의 범상성에 속해있는 것이라고 조언한 뒤 이에 대한 겸허한 수용과 바른 행동양식을 주문한다. 교수로서의 학식과 인생 선배로서의 경험담이 적절히 어우러져 청춘시절의 아픔을 힘있고 담백하게 격려한다.

  무엇보다 저자의 필력이 녹록지 않다. 같은 메시지라도 필자의 내공에 따라 독자가 빨아들이는 흡입력은 다르게 나타나는 법이다. 깊은 독서와 인생의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개성있는 저자의 필치는 청춘의 올곧은 약동을 힘있게 견인한다. 저자가 설파하는 조언의 영역은 풍성하다. 공부와 재테크를 넘어 연애와 사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구체적인 충고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총 네 파트로 구성되었는데 각 파트가 끝날 때마다 <그대에게 쓴 편지>를 통해 자기 자신과 제자들에게 진심어린 편지말을 전달하는 감성적인 구조도 나쁘지 않다. 

  이 책이 온·오프라인 모든 서점의 종합 베스트셀러 1위까지 오른 가장 큰 동력은 저자의 힘있는 전달력에 있다. 저자는 자기 자신의 실패와 방황을 먼저 털어놓음으로써 젊은이와의 소통에 한결 부드럽게 다가간다. 가르치기 이전에 이해하고 위로하려는 겸손한 스승의 면모가 글 곳곳에 잘 스며있다. 젊음이 지닌 오류와 굴곡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이며 그것을 오롯하게 누리며 살아가기를 조언하는 저자의 외침에서 많은 젊은 독자들이 공감하며 위로를 얻고 있는 것일 게다. 많이 읽히는 책은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청춘이 아름다운 것은 자신의 전존재를 걸기 때문이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꿈이든, 우리는 청춘 시절에 자신의 전부를 걸고 불태운다. 그것이 청춘의 심미적 원리이자 역설적으로는 청춘의 한계점이다. 아름다운 만큼 아프고 무지하며 몽매한 시기. 바로 그 시기를 관통하면서 우리는 자기 자신의 진본을 찾아나갈 수 있게 된다. 저자가 건네는 모든 이야기들은 결국 하나로 통합된다. 내가 나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내 모습의 그대로를 유지하며 청춘의 아픔을 겪어내는 것에 대한 위로와 격려가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궁극이다.

  내 주위에도 아파하고 좌절하는 젊은 후배들이 적지 않다. 아픈 만큼 성장하는 청춘시절의 아름다운 원리를 그들도 미리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글은 말보다 강한 공력으로 상대를 압도한다. 그렇기에 책을 나누는 일은 긴요하다. 소중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한 권의 책을 건네는 것만큼 아름다운 선물이 어디 있으랴.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내 주변의 인생의 후배들에게 부담없이 한 번 읽어보라고 건넬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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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책 북멘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지음 / 더블유북(W-Book)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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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 풍성한 책읽기의 전제조건이 된다는 점에 이견을 달 사람은 드물 것이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책이 주는 지혜와 깨달음을 정교하고 입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그렇기에 책쟁이들은 지금도 읽고 쓰고 생각하며 책을 벗삼는다.

  독서의 양질론을 제기할 때 삼다三多 외의 추가적인 방법들이 거론되곤 한다. 유명한 것은 정병기 교수가 설파한 '성의'와 '집중'이다. 피로 쓰라는 니체의 전언을 곱씹는 정 교수의 다섯 가지 덕목은 밀도있는 글쓰기의 전범이 된다. 나는 거기에 한가지를 더 추가하고자 한다. 보다 사회적인 요소가 필요하다. 책 읽는 인간 사이의 소통과 토론이 긴요하다. 바로 '함께' 읽는 것이다.

  여기서 함께 읽는다 함은 독서할 때의 시공간을 함께 하자는 뜻이 아니다. 다상량을 공유하자는 의미이다. 문장의 해석, 작가론, 책 추천, 책의 총체적 평가, 글쓰기론에 이르기까지 책읽기와 글쓰기의 전반적인 것들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고 공감하자는 것이다. 인간 세계의 절대선인 '관용'과 '다양성'의 원리는 책읽기에서도 그 가치를 입증한다. 타자와의 소통을 통해 다양한 사유를 공유하고 내 생각과 해석이 정답이 아님을 자각함으로써 '함께' 읽는 책읽기가 주는 풍성한 지혜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네이버 대표 북카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하 '책좋사')은 함께 책읽기를 원하는 이들의 커뮤니티이다. 어느덧 회원수가 5만 명에 이르렀고 온라인상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북카페로 성장했다. 나도 이곳을 통해 다양한 책쟁이들을 벗삼았다.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사람을 사귀었다. 고백컨대 다양한 사고와 가치관을 가진 다수 사람들과의 소통적 책읽기를 통해 나의 책읽기와 글쓰기는 예전보다 건강해졌고 발전해왔다.

  『책 읽어주는 책 북멘토』는 '책좋사'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의 북리뷰를 담은 서평집이다. 이 책에는 문학에서부터 인문, 과학, 경제, 사회, 역사, 자기계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다양한 리뷰어의 색채로 소개되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한 사람이 쓴 서평집이 아니라는 데 있다. 다수 회원들의 깔끔한 서평들을 엄선하여 담았다. 다양한 리뷰들을 훑어가다보면 서평을 쓴 리뷰어 특유의 사고와 필력을 확인하게 된다. 동일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개성으로 비틀고 꼬는 시각들이 이채롭다. 온라인상에서 낯익는 유명 리뷰어들의 닉네임을 확인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과히 다양한 책들의, 다양한 리뷰어들의, 다양한 다상량의 향연이자 축제라 할 만하다.

  책의 전체적인 구성과 도서 선정 부분도 손색이 없다. 문학과 비문학을 적절한 비중으로 나눠 실었다. 선정도서 대부분이 일반인들도 쉽게 접하고 읽을 수 있는 책이여서 다수 독자의 기호에 친밀하게 부응한다. 또한 글쓴이들이 프로가 아닌 순수 아마추어 리뷰어이기 때문에 리뷰마다 소박하고 진실된 관찰과 해석을 엿볼 수 있다. 전문적이지 않고 독자를 가르치려 들지 않기 때문에 담백한 맛이 있다. 이 모든 것이 소통하는 책읽기의 산물인 것이다.

  책은 반드시 소통하며 읽어야 한다. 그래야 독선적인 책읽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방에 틀어박혀 고전만 팠던 이들의 상당수가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나는 적지 않이 봐왔다. 오프라인 독서모임에서도 혼자서 책만 읽는 이들의 좋지 않은 태도와 나쁜 습관을 종종 목도하게 된다. 어떤이는 인격적인 문제에까지 닿아있기도 하다. 책읽기가 나쁜 것이 아닐진대 왜 그들의 책읽기에는 사회적인 함몰현상이 발생하는 걸까. 그 이유는 바로 소통이 결락되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만이 책의 존재성을 모두 아우를 수 있다는 독선적이고 독단적인 교만함이 소통의 부재를 통해 발생한다. 그리고 점점 고립되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성과 관용은 건강한 책읽기의 필수조건이다. 함께 읽어야만 하는 것이다.

  책 좀 읽는다고 자신감을 가진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불편한 오해를 갖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내가 참'이라는 착각의 사고방식이다. 독서의 본질적인 목적은 지식을 축적하는데 있지 않다. 독서는 아카데미시즘(academicism)이 아니다. 독서는 내 머리가 남의 머리가 되어 세계의 다양성을 인식하는 일이다.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인 것이다.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이야말로 책이 고민해왔던 존재론적 가치에 대한 유일한 답변이다. 그렇기에 독서는 불관용을 거부한다. 그리고 타인을 이해해야만 하는 인간 본연의 당위當爲를 유도한다. 사람이 책을 만들지만 결국 책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단언컨대 이것이 빠진 독서는 모두 죽은 독서다.

  여기서 서평집 『책 읽어주는 책 북멘토』의 강점이 재차 부각된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펼치는 다양한 생각과 해석이 이 책에는 오롯이 녹아 있다. 그 다양성의 힘이 이 책이 만들어진 근원적인 동기이자 책 고수들이 밀집해 있는 '책좋사'의 진정한 힘일 것이다. 다양성은 과잉되어야 하고 관용은 그 과잉을 포용할 수준이 되어야 한다. 그럴수록 지구는 더욱 건강해질 수 있다. 인간이 위대한 것은 모두 다른 소리를 내면서도 역사를 발전시켜왔다는 데 있다. 비록 전문적인 평론과 유려한 필치는 못 되더라도 각자의 사유 밀도로 빚어낸 글모음집이기에 『책 읽어주는 책 북멘토』는 충분히 풍성하다. 추천한다.
 

 

 

 

 

http://blog.naver.com/gilsamo
http://gilsamo.blog.me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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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버리기 연습 생각 버리기 연습 1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유윤한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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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고를 때 속지 말아야 할 두 가지 항목이 있다. 하나는 '책 제목'이고 다른 하나는 '베스트셀러'이다. 매력적인 책 제목에 속아 책값을 낭비했던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또한 베스트셀러라고 무작정 구입했다가 끝까지 읽지 못하고 책장을 덮었던 기억도 있을 것이다. 모든 선택과 결정은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 책 선택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장하준의 신간과 코엘료의 장편과 함께 베스트셀러권에 안착해 있는『생각 버리기 연습』은 매력적인 책 제목이 이유가 되어 내 손에 들어온 책이다. 생각하지 않고 오감으로 느끼면 어지러운 마음이 서서히 사라진다는 솔깃한 문장을 책표지 전면에 배치한 이 책은 일본 동경대 스님의 휴뇌법을 담았다. 지나치게 많은 생각은 인간을 힘들게 하기 때문에 쓸데없는 생각을 버리고 집중력을 고양시킴으로써 번뇌를 극복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일견 타당하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책제목의 매력을 풀어내지 못하는 초라한 텍스트를 확인하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각 버리기 연습』은 시중에 범람해 있는 자기계발서와의 차이를 찾아보기 힘든 책이다. 책의 구성은 간명하다. 1장은 생각이 왜 병이 되는지를 개괄한다. 2장은 말하기, 듣기 등을 위시한 여덟가지 영역에서 몸과 마음을 어떻게 조종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마지막 3장에서는 "뇌와 마음의 신비로운 관계"를 주제로 인터뷰를 했던 저자의 대담을 실었다. 전체적으로 잘 짜여진 듯 보이지만 실상 내용은 깊이가 없고 풍성하지 못하다. 

  탐욕과 이기를 버리고 타인과 적극적으로 소통함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은 지겹게 들어온 조언이다. 심신心身이 건강하여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누가 모르는가. 여덟가지 영역에서 풀이한 삶의 교훈들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왕왕 소개되는 불교의 가르침도 깊이 없이 인용의 형태로만 가볍게 다뤄질 뿐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어디서나 읽을 수 있는 내용을 '휴뇌법'이라는 명명으로 포장한 작가와 출판사의 트릭이 놀랍다. 제목만 그럴듯하다. 속빈 강정이 따로 없다.

  책을 좀 읽는다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계발서를 멀리 하는 편이다. 독서를 깊고 넓게 하다 보면 계발서와 멀어져 있는 자기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엇비슷한 내용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눈과 머리는 피로하다. 인간 삶의 원리는 간단하다. 알지 못해서 안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아서 못하는 것이다. 사람의 고유특성과 외부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천편일률적으로 교훈하듯이 씌어진 자기계발서의 일차원성은 책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서평을 정리하자. 베스트셀러 『생각 버리기 연습』은 여러모로 밋밋한 책이다. 하지만 얻은 게 아주 없지는 않다. 이 책을 통해 얻은 것은 진정으로 '연습'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이다. 내가 정작 연습해야 할 것은 '생각 버리기'가 아니라 '책 고르기'이다. 건설적인 생각은 다다익선이다. 양서를 고르기 위한 내공을 위해서라도 생각은 지금보다 더 많이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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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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