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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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동안 쉬었던 헬스를 다시 시작하고 있다. 목적은 오직 살빼기다. 단시일 내 10kg 감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렇기에 헬스장에서의 운동은 유산소 운동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웨이트는 없다. 오직 런닝머신 위에서 걷고 달릴 뿐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달리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걷는 것 조차도 지루하고 힘이 들기 때문이다.

  달리는 것은 힘든 일이다. 체내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여 지방을 태운다. 심장과 맥박은 역동하고 숨은 차오르며 다리는 땡겨온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러너들이 달리고 있다. 살을 빼기 위함이든, 운동선수로서의 복무든, 그와 그녀들은 달리고 또 달린다. 나름 설정한 각기 다양한 목표들을 위해 인간은 달린다. 달림으로써 존재하는 것이다.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도 달리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에게 마라톤은 삶의 압축과 같다. 마라톤을 통해 수없이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는다. 42.195Km라는 긴 거리를 달림으로써 적잖은 고통의 시간을 인내하며 받아들인다.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린다. 하루키는 고백한다.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라는 것을.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수없이 달려왔던 자신의 달리기 인생과 삶의 철학을 담아놓은 산문집이다. 하루키는 이 책을 통해 달리는 것의 내외재적 탐구와 이를 매개삼아 자신의 문학론을 언급한다. 러너로서의 하루키와 소설가로서의 하루키가 책 속에 잘 조화되어 있다. 특히 하루키 특유의 담백하고 정갈한 문장은 책읽는 맛을 더욱 감칠맛나게 한다.

  하루키는 이 책이 자신의 '회고록'으로 읽혀지길 소망한다. 이미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한 하루키지만 그의 작품 속에서 자신을 객관화시켜 텍스트 위에 올려놓은 개인적 이야기는 거의 보이지 않아왔던 게 사실이다. 그가 쏟아낸 수많은 장편소설과 산문집을 통틀어 자신의 내밀하고 소소한 단면을 담은 작품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1인칭 주인공을 전면에 배치하여 자아의 존재론적 탐구를 꾀했던 것이 하루키 문학의 특징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이는 의외의 현상이다.

  이 책이 주목을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루키는 이 한 권의 얇은 산문집을 통해 마라톤을 하면서 얻게 되는 혹독한 고통과 행복한 성취욕, 그리고 이로써 충전되는 소설가로서의 필수 불가결한 체력과 집중력, 지구력에 대해서 언급한다. 즉 달리는 삶을 사는 러너로서의 자아와 이에 종속적이면서도 수평적인 관계에 놓여있는 소설가로서의 자아를 동일한 무게감으로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이 전하는 두 가지 메시지에 주목한다. 우선 하루키는 세상 모든 일에 있어 선천적인 재능뿐만 아니라 후천적인 각고의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소설가로서의 자신의 삶에 있어서도 천부적인 재능보다는 유한한 능력을 집중적으로 집약시키는 집중력과 이를 장기적으로 지속시킬 수 있는 지구력에 기대었음을 고백한다. 더욱이 마라톤이라는 힘든 연단을 통해 소설을 쓸 수 있는 집중력과 지구력을 학습할 수 있었다는 그의 고백에서 세계적인 소설가의 겸손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그는 '달리는 것'과 '걷는 것'의 차이를 확실히 한다. 프로 마라토너에게도 쉽지 않은 25회 풀 마라톤 경력을 가진 하루키는 매번 달릴 때마다의 성적이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적어도 최후까지 걷지 않았다는 데 있다. 한 사람의 러너로서 최소한의 자존감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달리는 것 자체를 소중히 여기며 사랑했던 하루키의 삶과 철학을 통해 그에게 달리기는 소설을 쓰는 것 못지않은 의미와 가치를 지닌 위대한 행위였음을 느끼게 된다.

  국내에도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때 '하루키 현상'이라 불렸을 정도로 그의 인기는 녹록지 않았다. 매년 스웨덴 한림원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그의 이름이 있을까,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평론가들이 밥먹듯이 즐겨 말하는 가벼움도 좋고 과대포장도 좋다. 어차피 문학이라는 것은 작가와 독자 사이의 일대일 호흡방식이다. 한 권의 책이 작가의 손을 떠나 독자의 손에 들어온 이상 텍스트를 평할 절대주권은 오직 독자에게 있다. 한 사람의 독자로서 하루키의 문학을 사모하는 권한도 오직 '나'에게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하루키의 문학 스타일을 좋아한다. 그의 관조照가 좋고, 그의 열정이 좋으며, 그의 문장이 좋다. 대학 시절 『상실의 시대』를 읽으며 깊은 공감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던 기억을 떠올린다.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독자들의 감성을 차오르게 했던 그 소설이 지금 이 시점에서 문득 떠오르는 건 왜일까. 10년의 세월이 지나 삼십대가 되어 읽는 『상실의 시대』는 이십대 때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오랜만에 만난 하루키의 존재성을 사유하며 근 10여 년 만에 그의 역작 『상실의 시대』로 손을 옮긴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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