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모 같은 소리
레나트 클라인 지음, 이민경 옮김 / 봄알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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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책 읽기를 거듭할수록 나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에 내가 더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고 느낀다. 어쨌든 가야할 방향은 그곳이구나, 궁극적으로는 거기에 닿아야 여성의 권리를 위한 것이 되는 거라는 생각을 한다.


페미니즘에 대해 알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도덕 코르셋'을 벗어야 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이성애부부의 의뢰인 여성, 난자 공여자, 생모에 이르기까지 세 여성 모두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침해와 해를 입히고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하는 대리모를 없애자는 '레나트 클라인'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있다. 그러나 그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많은 여성들이 '불쌍한 게이남성들에게 안된다는 말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대리모 반대 보다는 규제 쪽의 손을 들어준다.



나는 2014년 대리모 우호 회담의 티타임에서 대리모로 인해 여성과 아동에게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서 어떤 여성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내게 동의했지만 착석 종이 울릴 때쯤 곧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가엾은 게이 남성들이 아이를 그토록 원하는데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다른 이들의 감정을 해치는 데 대한 긴장감과 겁, 특히 이 경우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만연한 동성애 혐오로 보일 수 있다는 이 두려움은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팽배하다. 겁은 많은 사회 정의 쟁점들과 결부된 근본적인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다. 용감하게 '안 된다'고 말하지 못하게 만든다. (p.116)



무언가를 강하게 원하는 사람에게 그것이 부적절한 것이라면 안된다고 말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이 게이에게 향한 것일 경우, '게이 혐오'로 비춰질까 우려되어 차마 안된다는 말을 하지도 못한다. 레나트 클라인은 동성애 혐오로 보일 수 있다는 이유로 겁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안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대리모가 해외나 국내 어디에서 이루어지든, 이것이 얼마나 잘 혹은 잘못 진행되는, 확실한 것은 대리모라는 행위를 통해서 우리가 하는 일은 아이를 어른의 재산으로 상정해서 사고판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절박하게 원한다는 것이 그것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조 프레이저, 대리모 연구 조사 보고서, 2016, p.3)



대리모를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시종일관 강한 어조로 얘기해주는 것이 나는 무척 좋았다. 자연스레 안드레아 드워킨과 캐서린 맥키넌 생각도 났다(이 책에서도 몇 번 드워킨을 언급한다). 여성의 몸을, 정신을, 다시말해 여성의 인권 자체를 침해하려는 시도에 대해 안된다는 말을 할 때는 그것이 착할 필요도 없고 부드러울 필요도 없다. 나는 안드레아 드워킨과 캐서린 맥키넌이 강한 어조로 포르노를 반대했듯, 레나트 클라인이 강한 어조로 대리모를 반대한다고 말해주는 것이 고마웠다. 결국 여성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은 이런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의 강한 목소리가 아닌가 싶다.




대리모라는 부적절한 이름으로 칭해지는 이 여성은 자신의 몸으로 아홉달 동안 아이를 품고 낳는다. 상업적 대리모에서 생모는 의뢰인 부부보다 항상 더 낮은 사호경제적 계층에 위치하고 또한 대게 더 ‘낮은‘ 인종적 위계상에 위치한다. 인종과 계급 문제가 한데 얽힌 것이다. 우리는 (흰 피부의) 최고경영자가 (어두운 피부를 가진)청소부의 아이를 낳아주는 경우를 아직 보지 못했다. - P20

‘선택‘은 내가 (그럴 힘만 있다면) 기꺼이 금지하고 싶은 단어다. 나는 선택이란 말은 두 가지 좋은 것 가운데서만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예로는 "초콜릿 케이크와 레몬 타르트중에 뭐 먹을래?"가 있다. 이렇게 쓸 때에만 양 선택지의 결과가 모두 끔찍한 상황에서 선택이라는 단어를 즉시 제거할 수 있다. 코카인에 심하게 중독된 상태에서 돈이 절실하고 집이 없으며 지지를 구할 만한 곳도 막막한 가운데 성매매를 계속하기로 ‘선택하는‘것은 ‘선택‘이 아니다. 이는 가장 어렵고 불운한 결정이다. 마찬가지로, 남편을 포함한 당신의 가족이 불임이라는 이유로 당신을 비난하고 따돌리는 가운데 여성을 대리모로 착취하기를 ‘선택하는‘것은 ‘선택‘이 아니다. 이 역시 가장 어렵고 불운한 결정이다. - P31

우리는 이런 결정을 내린 여성들을 절대로 비난해서는 안 된다. 다만 여성이 결정을 내리는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를 ‘선택‘이라고 부르는 행위를 그만두어야 한다. 이 결정 이후 일어나는 일들로 대부분의 여성은 심각한 해를 입게 되지만, 그것으로 탐욕적인 성착취 및 재생산 산업은 반드시 제 배를 채운다. - P32

미토콘드리아 DNA는 오직 모체로부터만 유전된다. 매들린 비크먼이 말했다시피, "당신이 받는 미토콘드리아는 모체로부터만 올 수 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당신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와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대리모에 대입했을 때 이 때의 ‘어머니‘는 난자 ‘공여자‘이고 ‘모체‘는 이 세포를 발달시키는 생모다. 정자 공여자들은 착각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당신의 중요성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몸을 부정하고 유전자만 찾아대는 이들을 한 번 더 입다물게 할 증거는 인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리모 연구자 실라 사라바난에 따르면, 고대 인도 아유르베다 문화에서 "출산과 수유는 어머니에서 아이로 핏줄을 이어주는 행위로서, 아이들은 이에 빚을 지고 있는 자신의 삶 내내 어머니를 보살피고 존경을 표해야 한다"(pers.com. June 2017). - P37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낳으려는 이들이 ‘절박하게‘ 가정을 이루고 싶어하며 아이를 향한 그들의 갈망이 ‘자연적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가슴 아픈‘ 현실에 대해서만 끝도 없이 이야기되는 것이다. 사실 많은 이가 용인하고 때로 지지하는 것은 아이를 선불 상품으로 상정한 작본일 뿐이고 이를 가질 자격은 그만큼 부유한 이들에게만 주어진다. 그리고 이 문제에서 신생아는 말이 없다. 이들의 삶은 제왕절개를 거쳐 ‘인큐베이터‘와 같은 포궁에서 꺼내지고 난 뒤부터 시작되는 빈 서판과도 같다. 이를 어린이로 그리고 어른으로 길러낼 이들은 의뢰인 부부다.
부끄럽게도 이는 성인 혹은 모부 중신적 관점으로, 신생아의 기본 인권을 무시한다. 대리모는 단순히 순진한 신자유주의적 환상일뿐 아니라 누군가의 배아를 임신하는 문제를 ‘일‘로 바라보는 것이다. - P49

대리모가 해외나 국내 어디에서 이루어지든, 이것이 얼마나 잘 혹은 잘못 진행되는, 확실한 것은 대리모라는 행위를 통해서 우리가 하는 일은 아이를 어른의 재산으로 상정해서 사고판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절박하게 원한다는 것이 그것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조 프레이저, 대리모 연구 조사 보고서, 2016, p.3) - P52

"내가 나를 위해서 이걸 선택하겠는가? 당신이 이 세상에 나온 이유가 그저 부끄러움을 모르는 수표 덩어리라면 분명 당신도 모욕적이라 느낄 것이다." (대리모를 통해 출생한 ‘제시카 컨‘, 뉴욕포스트) - P55

"그렇다. 나는 화가 났고, 사기를 당한 기분이다. 이는 수치이며 끔찍한 경험이다. 우리 모두에게 엄청나게 더러운 짓이다. 자신을 정확히 어딘가로 보내버리기 위해 만들었다는 걸 알면 어떤 기분일 것 같나? 당신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의견을 갖게 되리라는 걸 알아야 한다." (대리모를 통해 출생한 ‘브라이언‘) - P55

‘선택‘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자. 사회 전체가 자신의 안녕을 해쳐서라도 타인을 우선시하는 여성을 대우한다면 이것을 ‘선택‘, 자유 의지, ‘행위자성‘이라 부를 수 있을까? - P70

모든 종류의 경제적, 사회적 차별로 인해 고통받는, 권리가 박탈되고 문맹인 수많은 여성의 어깨에 얹힌 빈곤이 덜어져야 하지만 이는 대리모나 성매매와 같이 여성의 신체를 팔거나 대여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아기의 인신매매 혹은 판매가 소수의 여성과 그 가족을 빈곤으로부터 끌어낼 윤리적인 방법이 되어서도 안 된다. - P74

대리모가 윤리적일 수 있다는 주장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임신 내내 관여하는 우생학의 존재다.
영국 맨체스터의 프리메이사 헬스 사에서 발명한 IONA테스트 혹은 스위스 게노마 사가 개발한 트랜퀼리티 같은 비침습적 산전 검사(NIPTs)의 활용이 늘어나면서부터, 모든 임신부는 다운증후군이나 다른 염색체 이상뿐 아니라 태아 성 감별 검사도 함께 받았다. 산전 검사는 임신 10주까지 가능하다. 유전자 이상이 감지되었을 때 진행되는 유일한 ‘해법‘은 임신중단인데, 국제 메타 분석이 경고하기로 이 중 92.2퍼센트가 여아를 대상으로 ‘선택‘된다(Achtelik 2015, p.58)
심지어 대리모가 되는 데 동의한 여성들은 이 문제에서 ‘선택‘을 더 적게 한다. 아이 구입자들은 ‘완벽한‘ 아이를 원하고, 이미 정자와 ‘공여된‘혹은 구입된 난자들은 유전자 결함을 진단받는다(허용된 곳에서는 성별도). - P84

그리고 정자와 난자가 결합되어 수정란이 만들어지면 배아로부터 세포 하나를 떼어내 착상 전 유전자 진단(PGD)을 시행해 ‘품질 검사‘를 실시한다. ‘결함 없는‘ 배아만 대리모의 포궁으로 주입될 수 있다. 산전 검사나 초음파는 몇 번이고 계속되고 임신중단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나면 임신부는 이에 따라아먄 한다. 계약이 이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강압이라고 부른다. 대리모를 윤리적이라고 부를 여지를 박탈하기 위함이다. - P85

대리모를 통해서 태어난 이들이 자신의 연원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는지가 연구된 바 없다. - P105

어떤 부유한 개인들이 어째서 다른 가난한 이들-그리고 오로지 여성들-에게 사랑이나 돈을 이유로 아이를 기르고 낳도록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믿느냐는 것이다. - P115

나는 2014년 대리모 우호 회담의 티타임에서 대리모로 인해 여성과 아동에게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서 어떤 여성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내게 동의했지만 착석 종이 울릴 때쯤 곧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가엾은 게이 남성들이 아이를 그토록 원하는데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다른 이들의 감정을 해치는 데 대한 긴장감과 겁, 특히 이 경우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만연한 동성애 혐오로 보일 수 있다는 이 두려움은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팽배하다. 겁은 많은 사회 정의 쟁점들과 결부된 근본적인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다. 용감하게 ‘안 된다‘고 말하지 못하게 만든다. - P116

대리모 폐지를 위한 국제협약이라는 아이디어는 정말이지 신나는 발전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전 세계 페미니스트 개인과 집단이 대리모라는 폭력으로부터 여성과 아이의 인권과 존엄을 지키고자 함께 움직이리라는 데 엄청난 희망을 갖는다. - P120

대리모였던 알레한드라 무뇨스와 퍼트리샤 포스터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번식자 여성이라는 계급이 있는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여자아이에게 최선인가? 이는 여자아이의 자존감에 얼마큼 해로운가? 만약 해롭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인가? (…) 재생산을 산업화하는 사회를 원하는가? 자본주의라는 물레방아는 정말로 모든 것을 가루 낼 수 있는 것인가? 무엇을 팔고 혹은 살 수 있는지에 어떤 제한이란 것이 과연 존재는 하는가?" - P139

대리모는 아이를 사랑 혹은 돈을 이유로 그를 기른 생모로부터 떼어놓는 행위이며 어떤 ‘동의‘나 ‘선택‘을 들먹인다 해도 이것은 여성의 신체완전성에 대한 침해다. - P155

우리는 법적 분쟁이나 의료 비용을 치르는 과정에서 아기 구입자들이 항상 대리모보다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 P168

(로마에서 열린 국제)회의 때 읽은 결의안에서 서명인들은 다음을 지적했다.


"우리는 ‘삶이라는 경이로운 선물‘과 개인의 자유라는 수사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자 한다. 대리모는 사실상 희생과 유기를 만들어내며 어머니와 아이를 비인간화한다. 모부가 되고자 하는 열망은 여성의 신체에 통제를 가하고 그 결과로서 아이의 생명을 사적 재산으로 만드는 개인의 ‘소비자‘로서의 권리로 이어질 수 없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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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1-08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가 불쌍하기에 다른 누군가의 희생과 눈물, 그들 몸의 일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이 가능하군요.
더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 뿐이에요 ㅠㅠ

다락방 2020-01-08 16:25   좋아요 0 | URL
‘내가 강하게 원하기 때문에‘, ‘저사람이 원하기 때문에‘로 여성의 몸을 침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는 게 너무 끔찍하죠. 그러면서 그것이 대리모 여성들의 ‘선택‘이었다고 말해요. ‘선택‘이란 단어는 여기에서 저자가 지적했듯이 이럴 때 쓰는 용어가 아닌데 말예요. 이 ‘선택‘이란 단어 때문에 [페이드 포]도 생각났어요. 우리의 처지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결정하게 된 것에 과연 ‘선택‘이란 단어가 적합한것일까요?

역시나 좋은 독서였습니다, 단발머리님.

Jeanne_Hebuterne 2020-01-12 0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를 원하는 게이 남성들은 가엽고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여자들은 가엽지 않다는 말인지, 제발 돈으로 이것저것 다 사재기 좀 그만 했음 좋겠어요.

다락방 2020-01-13 09:20   좋아요 0 | URL
‘게이 혐오‘란 말을 듣기 싫어서 그러는 것도 큰 것 같아요. 혐오자 낙인 찍히기 싫어 여성의 몸을 팔아대는 꼴이죠. 아 정말 너무 끔찍합니다 ㅠㅠ
 
















나는 언제나 인간에게 관심이 많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상대가 하는 얘기에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는 일은, 내가 스스로 원해서 하는 일이다. 아,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혼자 분석하는 것도 참 좋아하는데, 대체로 그게 잘 맞는다. 내가 아주 관심있게 상대를 알려고 하고 들여다보려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을 좋아한다. 세상을 더럽히고 망치고 악을 칠하려는 것이 인간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런 인간으로부터 세상을 구원하고 선을 덧칠하려는 것도 인간이라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인간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것은 어쩌면 불완전한, 불안정한 마음이란 것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마음이 불완전하고 불안정하다는 것쯤이야 알고 있지만, 그렇다면 마음이란 무엇인가, 그토록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마음이란 무엇인가, 자꾸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이고은' 의 『마음 실험실』을 읽고자한것은 바로 그때문이다. 마음을 더 잘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마음을 더 잘안다면 인간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되지 않을까, 싶었던 것. 마음을 알고 싶고 인간을 알고 싶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나'를 알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나를 알고 싶었다. 다른 인간들을 알고 불완전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나는 나를 지금보다 좀 더 잘 알게 되지 않을까.



이고은은 이 책에서 감각, 삶, 시간, 사랑에 대해 얘기한다. 감각과 삶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에서라면야 그저 책장을 넘기는 게 전부라고 해도 좋을만큼 익히 아는 이야기였지만, 시간과 사랑에 대해 얘기하는 3,4부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두 눈 부릅뜨고 읽어가며 북마크를 엄청나게 붙였다. 그렇다면 그것이 내가 모르는 신비한 이야기들로 가득했는가, 앎으로 가득했는가, 라고 물으면 '아니오'다. 아니. 이미 내가 다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내가 다 알고 있는 것들이 거기에 다시 이론적으로 설명되어 있을 뿐이었고, 그것을 연구와 실험을 근거로 얘기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묘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사실 이 책에 나온 실험들은 굳이 실험을 해야할까 싶을 정도로 내가 익히 아는 것들인데, 그렇다면 나는 그것을 어떻게 알았냐? 내 삶이 주는 경험에서 알기도 했고, 소설이 다 알려주기도 했다. 누군가가 이렇게 실험해서 아는 것들을 소설을 읽으면 다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렇다고 이 실험이 무의미하다는 게 아니다. 이 실험은 행해져야 했다. 그리고 이렇게 실험 결과로써 나타나야 했다. 그리고 우리가 무언가를 알고자 하는 데에는 여러 방법을 사용해볼 필요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퍼하는 이유를 우리는 소설이 알려줘서 알기도 하지만, 이렇게 이별에 관한 실험을 통해서 알기도 한다.




이고은이 들려준 이별에 관한 실험 중에는 '자이가르닉 효과'라는 게 있다. 한그룹에는 과제를 마치게 하고 한그룹에게는 과제를 미처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끝맺게 했더니 시간이 흐른 후에 과제를 미처 마치지 못한 그룹이 그 과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더 상세하게 기억했다는 것. 이를 통해 우리는 헤어진 사람 때문에 슬픈 이유는 완료하지 못한 관계 때문에 기억에 남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는 거다.



자이가르닉 효과를 이별에 대입하면, 완료하지 못한 관계로 인해 헤어진 그 사람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자꾸 머릿속을 맴도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 마음은 연인과 헤어지는 사건을 마치 진행되던 프로젝트가 중간에 파투 난 것과 같은 강도로 받아들인다. 과제를 수행하다가 중지되거나 노래를 부르다가 만 것처럼 미완성된 숙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게다가 삶이 예상치 못한 쪽으로 전환되면 그 방향으로 마음을 돌리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연애가 갑자기 끝나버리자 마음이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겨워하는 것이다. (p.160)



위의 구절은 나를 오래 생각하게 했다. 정말 그런가. 내가 정말 그것을 미완성된 숙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토록 오래 고통스러워하는것인가.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릴적부터 숙제를 매우 잘해가는 학생이었다. 집에 가면 일단 숙제부터 해야 했다. 국민학교 내내 방학숙제 조차도 밀려서 하거나 개학을 앞두고 부랴부랴 한 적이 없다. 나는 항상 미리미리 해두었고, 드라마에서 종종 나오는 장면인 '밀린 일기 몰아쓰기' 같은 것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나는 해야 할 것을 미뤄두지 않는 사람이었다. 숙제는 해야 했고, 시간에 맞춰 등교하고 출근해야 하는 사람. 그러니 '이런 성격'의 나에게 '미처 해해내지 못한 숙제'처럼, 이별은 느껴졌던 걸까. 그런가. 그렇다면 나는 이 숙제를 앞으로 영영 끝내지 못할것인가.



상실에 대해서는 이고은이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과외가 끊기고 돈이 없어 허덕이는데, 과외학생의 아버지가 퇴직금이라며 30만원을 보내준거다. 너무 감사하고 고마워서 그 돈을 찾아 봉투에 넣고 책에 꽂았는데, 그날 학교를 갔다가 그 돈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 때의 상실감은 그 돈을 얻게 되었을 때의 기쁨보다 더 컸다고.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등치될 수 없는 크기라는 얘기를 한다.



얻는 것의 반대말은 정말 잃는 것일까. '얻다'와 '잃다', 이둘의 강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등치되지 않는다. 동일한 척도 상의 양수와 음수 개념이 아닌 것 같다. 기쁨보다는 슬픔이, 안도보다는 불안이 훨신 세게 느껴지고, 이해보다는 오해가, 사랑보다는 원망이 훨씬 더 깊게 느껴지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무엇인가를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더 크게 와 닿는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 그때를 떠올리면 속이 쓰리다. (p.160)



나는 위의 문장에서 '줄리언 반스'가 말한 상실을 떠올렸다. 정확히 이런 말을 줄리언 반스가 자신의 책에서 한 적이 있다.





전에는 함께였던 적이 없는 두 사람을 하나가 되게 해보라. 어떤 때는 최초로 수소 기구와 열기구를 견인줄로 함께 묶었던 것과 비슷한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추락한 다음 불에 타는 것과, 불에 탄 다음 추락하는 것, 당신은 둘 중 어느쪽이 낫겠는가? 그러나 어떤 때는 일이 잘 돌아가서 새로운 뭔가가 이루어지고, 그렇게 세상은 변한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머지않아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 중 하나가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 빈자리는 애초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의 총합보다 크다. 이는 수학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가능하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p.109)








내가 좋아하는 마음의 상태에 대해 이 책의 3,4부에 몽땅 나와있다. 기다림, 이별, 짝사랑, 질투, 사랑 까지.




질투에 대해서라면 내가 몹시 괴로워한 적이 있다. 평소 무심한 사람이라고 나는 나를 정의했었지만, 나 역시 어떤 확신을 갖고 싶을 때가 있었고 그것이 몹시 필요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질투는, 그렇게 되지 못했을 때, 확신이 흐트러짐을 느꼈을 때 발생한다. 상대의 관심이 오롯하게 나에게만 집중되지 않는다 느꼈을 때, 질투는 발생한다. 왜 당신은 나만 보는 게 아니라 곁눈질을 하는가. 나는 그 사랑을 잃을지도 모르겠다는 가능성이 싹트는 걸 느꼈고, 그것이 몹시 괴로웠다. 너무 힘들어서 땅으로 꺼져버리고만 싶었다. 나를 좀 어떻게 해달라고, 이 괴로운 감정에서 나를 좀 꺼내달라고 상대의 어깨를 붙잡고 애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이고은은 이 책에서 질투라는 마음의 상태에 대해서도 얘기해준다.



질투심에 관한 여러 연구 결과에 미루어 짐작해보면, 질투심은 위협을 느낄 때 유발되는 마음이다. 질투는 내 파트너가 나를 떠나버리거나 현재 유지되고 있는 관계가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오는 마음이다. 우리에게 질투의 마음이 발달한 건 관계의 위기를 예민하고 날카롭게 알아차리고 이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는 경고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다. 나와 내 파트너의 유대를 지키기 위한 마음인 것이다. (p.218)



질투는 존재감에 위기를 느낄 때 생기는 정서다. 그 사람에게서 돌연 가벼워질지도 모르는 내 존재감, 그 불안이 고통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관계에서 질투심을 느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큰 상처다.
돌아보면 내 마음을 그토록 힘들게 했던 건 그 사람이 관심보였던 어떤 대상이 아니었다. 그 대상이 받는 혜택이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도 아니다. 나를 아프게 했던 건 오직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던 그 사람의 마음, 나를 불안에 빠뜨리는 것조차 인식 못했던 그 사람의 무지함이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온전히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다. (p.219)



내가 질투한 그 순간, 나는 온전히 사랑받지 못한다고 여겼다. 그에 비해 상대는 나에게 좀처럼 질투란 감정을 보이지 않았는데, 바꿔말하면 나는 그로 하여금 온전히 사랑받는다는 확신을 주었기 때문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나도 알고 상대도 아는 것. 나는 이고은이 말한 질투에 대해 읽다가, 이승우가 말한 질투를 생각한다. 이승우의 책을 읽다가도 나는, 내 안에 있었던 그 어마어마한 크기의 질투에 대해, 그 질투로 인한 고통에 대해 떠올릴 수밖에 없었으니까.





질투하는 사람은 결코 실체를 보지 못한다. 그는 자세히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왜냐하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실은 다른 것, 엉뚱한 것을 보고 있다(왜냐하면 현미경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없는 것, 들여다보면 안 되는 것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지나치게 배율이 높은 자기 내부의 현미경을 통해 영석이 본 것은 선희가 아니었다. 그러나 영석은 자기가 보고 있는 사람이 선희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심지어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른다. 질투하는 사람이 질투하는 대상은 실체가 아니라 그, 또는 그녀가 상상하고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그러나 허상이기 때문에 꿈쩍하지 않고, 자기가 만들었기 때문에 외부존재의 조종을 받지 않는다. 허상은 견고하다. 그는 불안이 현실화된 것에 좌절하고, 어쩔 줄 몰라서 소리 지르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운다. (사랑의 생애, 이승우, p.232)




이승우는 질투를 열등감에 다름 아니라 말한다. 나는 이승우가 말하는 질투에 공감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갖고 있기에 생기는 열등감, 그리고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눈을 돌리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고 '내가' 느꼈다면, 그것이 열등감에서 비롯한 질투로 이어지는 것일테니까. 그렇다면 '나는 가지지 못했는데 저 사람은 가졌구나' 라는 느낌이, 애초에 왜 생겼을까. 비교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을 왜 비교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나의 상대가 나만 온전히 보는 게 아니라는 걸 내가 알았기 때문이다. 상대의 사랑이 내게 온전히 오지 않았다. 어? 이 사람의 사랑에 나는 확신을 못하겠네? 왜? 저사람 때문에. 저 사람은 뭐가 있지? 왜 저기에 있고 이 사람의 관심을 받지?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기다림'에 관한 것이었다. 이고은은 마시멜로 실험과 그 후속실험에 대해 얘기하며(삶의 실험실 中),



마시멜로를 그대로 올려둔 조건에서는 평균 6분 정도를 기다렸지만, 덮개로 덮어두자 11분 넘게 기다렸다. 재미있는 생각을 하라고 지시받는 아이들은 평균 13분 정도를 기다렸고, 기다리느 다음에 받을 두 개의 마시멜로를 생각하라고 지시받은 아이들은 4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마시멜로를 먹어버렸다. 이는 15분이라는 긴 시간을 참게 한 인내심이 타고난 능력이라기보다, 주위를 분산시키기 위해 다른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아느냐, 모르느냐' 또는 '터득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였다. (p.63)



라고 한다. 기다리는 동안 다른 것에 집중하면 그 기다림을 좀 더 유연하게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터득했느냐' ,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



이 후속실험을 하게된 계기는 처음 마시멜로 실험을 할 때 아이들이 보여준 행동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가장 오래 기다린 아이는 눈을 가리거나 머리를 팔에 대고 엎드려 있었다. 어떤 아이는 식탁에서 등을 돌렸다. 또 노래를 부르거나, 손장난을 치거나, 식탁 미틍로 기어들어가거나, 잠을 청하는 아이도 있었다. (p.62)



이고은은, 기다림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주의를 전환시켰을 때 기다림의 시간도 단축됐고, 왜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는 때보다 이유를 정확히 알 때 기다림을 짧게 느꼈다. 그래서 두 경우가 함께 효과를 발휘한 조건(주의 전환/기다림 이유 알고)에 놓인 참가자들이 기다리는 시간을 가장 짧게 느낀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알게 된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주의를 전환하는 쪽보다 기다리는 이유를 아는 쪽이 더 오래 기다렸다는 점이다. 다른 조건들이 동일한 상태에서 비교했을 때 주의 전환을 했느냐, 안했느냐보다 기다리는 이유를 제공했느냐, 아니냐에 따른 시간 차이가 더 컸다. 내가 기다려야 하는 이유를 아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더 오랜 시간을 흔쾌히 기다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마음의 시간은 아주 작은 요건 하나만 있어도 큰 변화가 생긴다. (p.180)



우리 삶이 기다림의 연속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기다림의 연속을 고통스럽다고만 여기며 살지 않는다. 기다리는 목적이 분명하고, 언젠가 이 기다림은 끝나고야 만다는 믿음이 있으면 마음의 시간은 짧아지기도 한다. 우리 마음은 그렇게 움직이기도 한다. (p.184)



나는 삶의 목표가 구체적인 쪽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편이 우리가 행동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유리하다.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있으려면 목표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구체적인 목표를 알아야 방향을 정할 수 있다. 내가 가는 목표, 내가 가는 방향을 잘 알고 있다면, 나는 기다림 역시도 잘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기다린지 안다면, 그 기다림은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나 스스로 기다림에만 나를 쏟아 넣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동안 주의를 전환할 다른 것이 있다면, 그 기다림의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 유의미한 것들로 채워나가면서, 그 유의미한 것들로 나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면서, 내 기다림 자체를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소설로 나에게 필요한 모든 걸 얻는다고 생각한다. 소설이 내게 주는 게 무척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설로 그걸 얻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소설로 그게 잘 얻어지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실험을 통하여 마음에 대해 알려주는 책을 읽는 것도 매우 좋은 방법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기다림에 대해, 질투에 대해, 사랑에 대해 어떻게든 각자 다른 방법으로 알 수 있게 될테니까. 나는 소설이 주는 이야기나 문장을 통해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매만지는 편인데, 어떤 이들에게는 이고은의 이 책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같다. 이고은은 쓸모없는 마음, 필요없는 마음의 상태라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책의 뒷표지에 보면'다정한 인지심리학자 이고은' 이라고 적혀있는데, 정말이지 다정하다, 이고은은. 마음에 대해서라면, 다정한 사람의 글을 읽는 쪽이 아무래도 낫지 않을까. 다정하지 않은 사람 쪽보다는.





타이레놀은 상실을 경험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마음을 일시적으로 줄여주는 효과를 낸다. 주위를 둘러보면 신체적으로 별 문제가 없는데도 진통제를 자주 먹느 ㄴ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런 편이다. 가방엔 항상 두통약이 들어 있다. 혹시 정신적 고통, 즉 마음 고생을 감당하려고 몸이 미리 진통제를 원하는 건 아닐까. 진심으로 약효가 잘 발휘해주길 바란다. 누군가가 던지는 비수를 맞아도 좀 덜 아프거나 빨리 나으려고 미리 연고칠을 해두는 것이니 말이다. - P36

신체적 고통을 떠올릴 때 가장 활성화된 영역은 우리 몸의 감각을 인식하는 데 관여하는 체성감각피질somatosensory cortex 이었다. 반면에 정신적 고통을 떠올릴 경우에는 분위기와 정서 또는 다른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관여하는 배내측 전전두엽피질dorsomedial prefrontal cortex이 더 활성화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신적 고통을 떠올리면 그때의 감정이나 분위기도 쉽게 떠올린다. 마치 그때의 상황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눈물을 흘리거나 화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신체적 고통에 대해서는 그때의 고통을 고스란히 떠올리지 못하거나 이미 잊은 경우가 많다. - P37

우리 뇌는 복잡한 사고, 새로운 시스템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힘을 들어야 하고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일은 피할 수 있다면 최대한 피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우리가 가진 회고절정기의 경험과 사고방식으로 앞으로의 긴 세월을 살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특성을 대변이라도 하듯 사람들은 35세 전후를 기점으로 더 이상 새로운 장르의 음악에 감동받지 못한다고 한다. 순간 마음에 드는 음악을 들어도 그때뿐이고 반복해 들어보려 애쓰지 않고 기억도 잘 못하게 된다. 점점 게을러지는 뇌는 새로운 음악이 요구하는 새로운 정보와 감성, 새로운 사고 패턴을 밀어내기 바쁘다. 더 먹기엔 배가 부르다는 듯 우리 마음은 새로운 음악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마음의 노화는 새로운 음악을 들을 만한 감성이 무뎌지는 것과 같은 의미인지도 모른다. - P49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이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운이 좋은 사람들을 살펴보면 유사한 특성이 있는데, 매사에 신중하고 들뜨지 않는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대하는 태도가 비슷하다. 세상일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편이다. 나쁜 일이 생겨도 시비를 가리지 않는다. 나쁜 일을 겪으면 지금 당장은 기분이 나쁘지만, 해결하겠다는 자세로 이내 돌아선다. 이미 벌어진 일인데 어쩌겠냐는 생각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대안을 찾는 것이 이들의 기본적인 태도다. 역술가들에 의하면 이런 사람들은 점을 쳐보면 대체로 좋은 운수가 나온다고 한다. - P89

반면 매사에 운이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어떤가? 고집이 말도 못하게 세다. 귀를 닫고 마음을 닫고 있어서다. 나쁜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생각은 없이 주로 남 탓을 한다. 자신의 성장 배경이, 부모가, 환경이 나빴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성찰할 힘이 있을 리 만무하다. 어떤 점괘가 나와도 나쁘게 해석 하기에 당연히 운이 좋을 수가 없다. 점괘는 우리의 마음을 거울처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 P89

얻는 것의 반대말은 정말 잃는 것일까. ‘얻다‘와 ‘잃다‘, 이둘의 강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등치되지 않는다. 동일한 척도 상의 양수와 음수 개념이 아닌 것 같다. 기쁨보다는 슬픔이, 안도보다는 불안이 훨신 세게 느껴지고, 이해보다는 오해가, 사랑보다는 원망이 훨씬 더 깊게 느껴지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무엇인가를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더 크게 와 닿는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 그때를 떠올리면 속이 쓰리다. - P160

좋았고 행복했던 순간들만 기억하며 살면 좋을 텐데 우리 마음은 그보다 아팠던 순간을 잊지 못하도록 만들어졌다. 실수나 아픔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생존에 필요한 강력한 안전장치다. 뇌는 잃는다는 것을 직접적인 위협으로 인식한다. 즉ㅇ, 인간이 가진 소유 효과나 손실 혐오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가진 마음 자체가 아니라 이런 상황을 너무 과민하게 받아들이거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 하지 않을 때 생긴다.
인간의 욕심 많고 이기적인 본성이 소유 효과나 손실 혐오의 마음으로 드러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은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이 자신의 삶과 생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이유 있는 마음이기도 하다. - P170

주의를 전환시켰을 때 기다림의 시간도 단축됐고, 왜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는 때보다 이유를 정확히 알 때 기다림을 짧게 느꼈다. 그래서 두 경우가 함께 효과를 발휘한 조건(주의 전환/기다림 이유 알고)에 놓인 참가자들이 기다리는 시간을 가장 짧게 느낀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알게 된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주의를 전환하는 쪽보다 기다리는 이유를 아는 쪽이 더 오래 기다렸다는 점이다. 다른 조건들이 동일한 상태에서 비교했을 때 주의 전환을 했느냐, 안했느냐보다 기다리는 이유를 제공했느냐, 아니냐에 따른 시간 차이가 더 컸다. 내가 기다려야 하는 이유를 아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더 오랜 시간을 흔쾌히 기다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마음의 시간은 아주 작은 요건 하나만 있어도 큰 변화가 생긴다. - P180

우리 삶이 기다림의 연속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기다림의 연속을 고통스럽다고만 여기며 살지 않는다. 기다리는 목적이 분명하고, 언젠가 이 기다림은 끝나고야 만다는 믿음이 있으면 마음의 시간은 짧아지기도 한다. 우리 마음은 그렇게 움직이기도 한다. - P184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은 사실 놀랍도록 자기중심적인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다는 마음에도 그 중심에는 ‘나 자신‘이 있다. 사랑으로 인한 갈등과 아픔도 마찬가지다. 사랑할 때 나를 아프고 힘들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변심도 아니고, 그 사람과의 다툼도 아니다. 나를 괴롭히는 건 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기대하는 내 마음일 때가 많다. 상대방이 내 기대에 어긋나는 순간부터 갈등은 시작된다. - P192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이 길수록 확신하는 비율도 덩달아 커졌다. 연인이 함께한 시간이 오래될수록 스스로 상대를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연구는 연인이 사귄 시간의 길이와 상대에 대한 정확한 예측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밝혔다.
더 오랜 시간 함께했다고 해서 상대를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착각이다. 상대가 나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사실은 그저 오해일지 모른다. 같이 사랑했어도 같은 사랑을 한 건 아니다. - P196

인간은 자신이 놓인 상황이나 상태에 따라 외부 자극을 다르게 지각한다. 예컨대 경쟁 상황에 놓였을 때 마음은 상대의 얼굴을 훨씬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인상으로 기억해버린다. 또 두려워하는 대상은 실제 거리보다 더 가까이 있다고 인식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진심으로 잘생겼다고 생각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결코 인정받기 어렵다거나, 내 아이가 아무래도 천재인 것 같은데 누구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다. 인간의 지각은 필연적으로 주관적이다. - P202

생각해보면 이별은 사건이라기보다는 사고다. 시간이 흘러 사고가 수습될수록 길이 덜 힘들어진다. 나는 연구 결과를 열심히 분석해보다가, 일주일 이내에 이별을 겪은 몇몇 학생들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필 강의실에 오는 길이 이리 멀고도 험난해서. 물론 다른 사람들처럼 시간이 지나면 차츰 완만하고 가까워지겠지만. - P203

연애는 기대만큼 짜릿하지 않을 수 있다. 대신 이별도 예상만큼 아프지 않을 수 있다. 이 원리는 나뿐 아니라 상대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인생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대형 사건들을 저평가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그때는 죽을 만큼 좋았거나 죽을 것처럼 아팠지만 어느덧 이불킥을 하게 되는 시간이 예상보다 빨리 올 수 있음을 안다면, 내 마음을 갉아 먹는 걱정과 근심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 P205

자이가르닉 효과를 이별에 대입하면, 완료하지 못한 관계로 인해 헤어진 그 사람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자꾸 머릿속을 맴도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 마음은 연인과 헤어지는 사건을 마치 진행되던 프로젝트가 중간에 파투 난 것과 같은 강도로 받아들인다. 과제를 수행하다가 중지되거나 노래를 부르다가 만 것처럼 미완성된 숙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게다가 삶이 예상치 못한 쪽으로 전환되면 그 방향으로 마음을 돌리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연애가 갑자기 끝나버리자 마음이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겨워하는 것이다. - P207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자이가르닉 효과를 극대화 하거나 극적으로 해결해버리는 놀라운 자극이 있는데, 바로 돈이다.
과제를 완료하지 못했더라도 보상으로 지급하기로 했던 돈을 지급하면 중단한 과제 내용을 기억하지 못했다. 오히려 과제를 완료했지만 돈이 지급되는 시기를 늦추었더니 수행한 과제를 놀랍도록 명확하게 기억했다.
혹시 이별에 대한 마음이 남달리 괴롭다고 느끼거나 아픔이 오래간다 싶으면 애인에게 선물을 사주느라 긁었던 카드 할부금이 남았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할부금을 모두 해결하고 나면 어느새 마음도 괜찮아져있을 테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기를. 우리 마음 기능이 그렇듯 마음은 늘 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 P208

질투심에 관한 여러 연구 결과에 미루어 짐작해보면, 질투심은 위협을 느낄 때 유발되는 마음이다. 질투는 내 파트너가 나를 떠나버리거나 현재 유지되고 있는 관계가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오는 마음이다. 우리에게 질투의 마음이 발달한 건 관계의 위기를 예민하고 날카롭게 알아차리고 이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는 경고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다. 나와 내 파트너의 유대를 지키기 위한 마음인 것이다. - P218

질투는 존재감에 위기를 느낄 때 생기는 정서다. 그 사람에게서 돌연 가벼워질지도 모르는 내 존재감, 그 불안이 고통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관계에서 질투심을 느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큰 상처다.
돌아보면 내 마음을 그토록 힘들게 했던 건 그 사람이 관심보였던 어떤 대상이 아니었다. 그 대상이 받는 혜택이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도 아니다. 나를 아프게 했던 건 오직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던 그 사람의 마음, 나를 불안에 빠뜨리는 것조차 인식 못했던 그 사람의 무지함이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온전히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다. - P219

질투심을 느끼던 내 마음을 내가 더 잘 이해했더라면 그때 그 사람과의 관계가 달라졌을까. 우리 마음의 기능은 이상한 것도 아니고 저급한 건 더욱 아닌데 돌이켜보면 안타까운 순간이 정말 많다. 사람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이렇게 알아가는 마음들이 차츰 늘어간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 P220

맥락적 차원에서 바라보면 불륜은 실패한 관계가 초래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사랑받고,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은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다. 사람은 한 인간으로서 관심과 인정을 끊임없이 갈망한다. 불행히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이것을 받지 못하면 결핍된 욕구를 채워줄 다른 사람을 또는 다른 사랑을 자연스럽게 찾게 된다. - P229

어떤 ‘사건‘을 개인 탓으로만 돌리기보다 그 일이 벌어진 이유를 반 발짝 떨어져 객관적인 눈으로 살펴보는 일은, 사건의 본질로 들어가는 길목을 열어주는 일이 될것이다. - P231

그 사람을 알고 난 이후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알고 싶어서 답답하다가 알 길이 있어도 불안했다. 단 한 번이라도 그 사람이 나를 생각해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기억해주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마음이란 게 생기는 거지 붙잡는다고 오는 건 아니어서 진심으로 막막했다.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는 나를 흔든 적이 없는데 나는 삶 전체가 휘청거렸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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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20-01-07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민학교 내내 방학숙제 조차도 밀려서 하거나 개학을 앞두고 부랴부랴 한 적이 없다.
나는 항상 미리미리 해두었고, 드라마에서 종종 나오는 장면인 ‘밀린 일기 몰아쓰기‘ 같은 것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대단하십니다.
저는 국민학생 6년 내내 ‘밀린 일기 몰아쓰기‘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습니다.

다락방 2020-01-08 08:23   좋아요 0 | URL
저는 일기 밀려서 쓰려면 그게 더 스트레스 일것 같은데 말입니다. ㅎㅎ
저는 그 때의 습관 탓인지 지금까지도 엄청 일기를 써요. 이렇게 알라딘에 글 쓰고 네이버에도 일기 쓰고 종이 다이어리에도 일기를 씁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심술 2020-01-08 14:24   좋아요 0 | URL
오, 아주 좋고 바람직한 습관입니다. 부럽습니다.
 
블렌드 동백꽃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0년 8월
평점 :
품절


커피를 좋아하는 여동생에게 ‘홀빈‘으로 선물했는데,
‘깔끔하고 적당히 쌉쌀하며 밝은 산미‘ 라고 감상을 얘기해줬다. 더불어 ‘알라딘 블렌드 좋다‘ 라고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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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0-01-07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장이 예뻐서 더 맛나여 ㅋ

다락방 2020-01-08 08:24   좋아요 0 | URL
저는 커피맛을 잘 구분을 못하거든요. 그래서 딱히 취향이랄 게 없어요. 아메리카노를 좋아하고 신맛은 별로 안좋아하고. 딱 이정도의 취향인데 여동생은 니카라과를 좋아하고 부터 시작해서 커피맛을 구분하고 그래서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지난달부터 알라딘 커피 쿠폰 활용해서 여동생에게 커피를 사주고 있습니다. 후훗.
 















1940년대에 전쟁 포로로 잡혀가 철로를 건설해야 했던 연합군 포로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에게는 먹을 것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을 뿐더러 잠도, 휴식도 주어지지 않았다. 말라리아, 각기병등 각종 질병에 노출되어 점차로 죽어갔지만, 그러나 일본군은 그들을 계속해서 학대하며 노동하기를 강요했다. 장교이며 의사였던 '도리고 에번스'가 전쟁 전에 살았던 삶, 그리고 이 포로로 지냈던 삶, 전쟁 이후의 삶에 대해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전쟁에 대한 것도 그리고 전쟁 포로의 삶에 대한 것도 읽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아 책장은 아주 느리게 넘어갔다. 전쟁에 대한 글을 읽노라면, 대체 전쟁을 왜 하는걸까 하는 의문만 이백번쯤 들곤 한다. 신념이란 무엇인가. 어째서 가능하지 않은 일을 가능하게 한다면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모질게 고문하고 학대할 수 있는 것일까, 에 대한 생각도 해본다. 인생이란 무엇인고 인간이란 무엇일까. 


도리고 에번스는 오래 전에 헤어진 고모부를 휴가중에 찾아가게 된다. 그 때 그는 이십대의 청년이었고 결혼을 약속한 여자 '엘라'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고모부의 아내에게 빠져버리게 된다. 고모부의 아내라면 고모여야 하겠지만, 고모가 죽고난 후 고모부가 재혼한 여자였다. '에이미'. 그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군에 있으면서 휴가를 주면 엘라를 찾아가는 대신 에이미를 찾아간다. 인생이란 무엇이고 인간이란 무엇일까, 를 생각하면서 읽다가 어쩔 수 없이 생각한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왜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빠질까. 왜 이미 결혼해 남편이 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빠질까. 뭐가 어디서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그러니까 결혼을 약속한 사람에 대한 내 선택이, 결혼할 상대를 고른 내 선택이 잘못이고 실수였을까. 왜 지금 이 사람을 좀 더 빨리 만나지 못했을까 왜 이렇게 모든 걸 바꾸기엔 좀 늦어버린 시점에 이 사람이 내 눈앞에 나타났을까. 내가 당신을 사랑할 거였다면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그런 상태에 있으면서 나를 찾아온걸까. 인생이란 무엇이고 인간이란 무엇이며 사랑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도리고 에번스는 분명 엘라를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결혼할 생각까지 햇었는데, 에이미를 알게된 후에는 엘라에 대한 감정들이 시들어진다.




예전에는 아름답고 이국적으로 보이던 얼굴이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지루하게 보였다. 처음엔 매혹적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검은 눈이 지금은 암소처럼 경솔하게 남을 믿어버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그래도 자꾸 생각이 났기 때문에 점점 더 심한 자기혐오에 빠졌다. 그래서 새로이 결심을 다지고 그녀의 품에, 그녀와의 대화, 그녀의 두려움과 농담과 이야기에 자신을 던졌다 이런 친밀함이 궁극적으로 에이미 멀베이니에 대한 모든 기억을 짓눌러주면 좋을 텐데. ( p.143-144)



아, 너무 싫다. 자신이 흠뻑 빠진 여자를 잊기 위해, 기억을 짓누르기 위해 지금 이 여자에게 충실하력 억지 노력을 해야 하는 상황. 엘라가 그걸 모를까. 내가 엘라였으면 그걸 모를까. 내가 원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간절하게 바라보는 것을 내가 모를까. 그럴 때의 내가 당신에게 그냥 그 사람에게 가, 당신이 원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잖아,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그러나 내가 당신을 사랑해서 결코 다른 사람에게 보내기 싫으면 그렇게 다른 곳으로 향하는 시선을 감당하며 살아야 하는걸까.



놀랍게도, 아주 놀랍게도, 엘라는 단 하나의 거짓말로 그에게 평생 복수를 했다. 그것은 이 소설의 끝에 나오는 것이고, 나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아,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사랑 때문에 어떤 것까지 할 수 있는가. 인간은 집착 때문에 어떤 행동까지 할 수 있는가. 나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거짓말을, 엘라가 했다. 나라면 하지 않았을 거짓말이지만, 그러나 그 거짓말을 한 엘라를 욕할 수가 없다. 그것이 그 때 엘라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도리고를 제옆에 두기 위한 최선의 방법. 





호주의 산불에 대한 소식으로 답답한데, 이 책에서도 호주 산불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이야기의 배경이 호주인데 도리고의 아내가 머물고 있는 집에 산불이 나는 것. 도리고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출발한다. 책장을 덮고 생각했다. 삶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우연이란 무엇이고 운명이란 무엇일까. 뉴스에서도 볼 수 있는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째서 나는 소설 속에서도 그대로 만나야 하는 것인가. 이것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런 우연은 도대체 왜 일어나는 것인가. 안부를 전할 수 있는 사이라면, 지금 호주에서 당신이 어떻게 지내는지 물을 수 있을텐데. 괜찮은건지, 거기에서 당신은 괜찮은건지. 




책의 모든 내용들이 힘들어서, 책을 읽는 게 힘들었고, 그래서 이 책을 빨리 읽어버리고 싶었다. 빨리 읽고 다른 걸 읽고 싶었다. 전쟁도 싫고 너무나 원하는데 가질 수 없어 힘들어하는 것도 싫고, 고문과 학대도 싫고 폭력도 싫고 외로움도 고독도 싫었다. 이 모든게 다 있는 이 책을 빨리 읽어버리고 싶었다. 나중에 나오는 산불 이야기도 싫고 거짓말도 싫었다. 다 싫었다.



그는 죽지 않았고, 그녀도 아직 죽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p.506)


그것으로 충분한가.

정말 그런가.






힘들어요. 여자가 말했다. 자신이 원하는 걸 가질 수 없다는 게. - P105

어떡해.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 사람을 정말 원해.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꼴사납게 보일 정도로 저 사람을 원해. - P167

처음부터 알았어. 그가 말했다. 그애가 처음 날 만나러 왔을 때부터.
문장과 문장 사이로 몇 마일이 흘러가는 것 같았다. 자동차가 한없이 펼쳐져 덜컹거리는 암흑 속에서 길을 잃은 것 같았다. 그녀는 생각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키스에게서 새오나오는 슬픔뿐이었다. 그 슬픔이 세상을 텅 비워버리는 것 같았다. - P196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외로웠고, 자식들과 함께 있을 때도 외로웠고, 수술실에서도 외로웠다. 그가 참여하고 있는 수많은 의학 모임, 스포츠 모임, 자선단체, 참전군인 단체에서도 외로웠고, 수많은 전쟁포로들이 모인 자리에서 연설할 때도 외로웠다. 기운이 다 빠져버린 공허가 그를 에워쌌다. 뚫을 수 없는 공허가 사교성 좋기로 유명한 이 남자를 감싸고 있었다. 그는 벌써 다른 세상에 가서 살고 있는 듯했다. 한없는 꿈 또는 끝나지 않는 악몽을 풀었다 되감기를 영원히 반복하면서. 꿈과 악몽중 어느 쪾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는 거기서 영원히 탈출할 수 없을 터였다. 그는 다시 불을 켤 수 없게 된 등대였다. - P482

그렇게 그와 엘라 사이에 경험이라는 공모가 자라났다. 아이들을 기르는 것, 현실적이고도 다정하게 서로를 뒷받침해주는 것, 함께 보낸 세월, 수십 년 동안 쌓인 두 사람만의 대화와 친밀한 관계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사소한 일들, 그러니까 잠에서 깨었을 때 서로에게서 느껴지는 체취와 아이가 아플 때 상대의 떨리는 숨소리, 서로가 앓은 병, 슬픔과 관심, 서로 기대하지도 않고 말해본 적도 없는 애정 같은 것들, 이 모든 것이 사랑보다 더 중요하고 더 확실하며 더 강하게 두 사람을 묶어주는 것 같았다. 사랑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엘라에게 묶여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도리고 에번스는 무엇보다 완전하고 확실한 고독을 느꼈다. - P489

그에게 편지를 쓰거나 전화를 걸기 직전까지 갈 때마다 그녀의 앞에 커다란 장애물이 나타났다. 한 번도 그녀를 찾지 않고, 약속과 달리 전쟁이 끝난 뒤 그녀를 다시 찾아오지 않은 그가 그녀를 거절할 것이라는 장애물. 이제는 두 사람의 처지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는 유명한 도리고 에번스가 되어 계속 유명해지는 중이었지만, 그녀는 아래로 자꾸만 가라앉는 하찮은 사람이었다. - P505

그는 죽지 않았고, 그녀도 아직 죽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 P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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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을 자고 일어나 늦은 아침을 먹고 책을 가지고 동네 스벅으로 갔다. 어제 혼자 있었던 시간이 충분치 못하기도 했고 혼자 있는 시간이 오늘도 역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책을 들고 스벅으로 가 초코크루아상과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책을 펼쳐들었다. 내가 앉은 자리는 출입문 옆자리어서 사람들이 계속 이동하는 게 느껴졌고 스벅 안에는 사람들도 많아 좀 소란스러웠다. 나는 이어폰을 꽂고는 내 폰에서 가사가 없는 음악을 찾았다. 다행스럽게도  내 폰에는 Sergei Trofanov 가 있어서 그것을 재생해 두었다. 처음에는 가사가 없는데도 음악이 들려서 잠깐 집중하지 못하는 시간이 잇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집중력이 꽤 좋은 사람이다. 책을 읽다 잠시 멈췄을 때는 그 앨범이 전체곡을 다 재생한 후에 멈춰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앗, 언제부터 음악이 안나왔지? 음악이 안나오는지도 모를 정도로 책에 집중해 읽었다. 나의 이런 점은 정말이지 짱이다. 집중을 어쩌면 이렇게 잘할까? 최고 멋진 것 같아. 나는 내가 집중을 잘하는 것을 알고, 집중을 잘하기 때문에 사실 대부분의 문제들에 대하여 답을 낼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안다. 집중해서 생각하면 답을 찾을 수 있어, 라고 스스로 믿는 편이다. 


아, 내가 잘난척 하려고 이 글을 쓴 건 아니고 ㅋㅋㅋㅋ (정말?) 어쨌든 정신차려보니 나는 세시간이나 꼼짝않고 자리에 앉아 책을 읽었더라. 남아있는 커피는 차가워져 있었다. 크... 집에 가자. 뒤에 몇 장을 남겨두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기 전에 마트에 들러 와인 세 병을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작가 '로버트 브린자'는 1979년의 남성이다. 책의 처음에 피해자의 입장에서 글이 쓰여져서 읽기가 좀 힘들었다. 잡히는 사람, 죽음을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글을 좀 쓰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 공포가 전해져와서 몹시 괴롭단 말이다. 그러나 주인공 '에리카' 경감이 나오면서부터 이 책은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어졌다. 사건을 추리하고 수사하는 과정 자체는 다른 수사물과 별다를 바가 없지만, 범인을 잡는 과정, 그리고 그것을 일(업무)로서 마주한 에리카의 주변 일들을 보여줌에 있어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위산업의 큰 손인 남자의 둘째 딸이 살해된채로 발견되고 이 사건으로 인해 언론이 시끄러워진다. 이 사건에 대한 수사 압박을 느끼던 '마쉬 총경'은 이 사건을 얼른 제대로 해결하고 싶어서 능력있는 경감인 '에리카'를 자신의 서로 불러온다. 에리카는 얼마전에 범인 체포과정에서 동료 경감이자 남편을 잃고 일에서 손을 떼고 있었던 터다. 그런 그녀가 이 살인사건으로 복직한 것. 그녀는 특유의 직감으로 이 사건을 수사해가지만, 그전에 수사를 진행했던 남자 경감도 그녀를 대놓고 무시하고 피해자의 가족들도 남자경감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한다. 그녀가 유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의 추측은 신뢰를 받지 못하는데, 새삼 그녀가 경감이라는 지위까지 오는동안 얼마나 많은 편견에 시달렸을까를 생각하니 암담해졌다. 그 모든 과정들을 겪고 여기까지 왔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경감인데도 편견 앞에 자꾸 절망하고 뒤로 쳐지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자 하는 건 얼마나 대단한 용기인가. 게다가 그녀를 도와주는 여자 형사도 나오고, 사회문화 전반에 형성된 여성혐오나 비하에 마주쳤을 때 이 여자 형사들은 대놓고 맞선다. 또한 매춘부의 죽음이 재벌딸의 죽음과 다르게 다루어 지는 것에도 불만을 품은 에리카는, 그 모두가 똑같은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계속 알리고자 한다. 그녀가 살인자의 표적이 된 후에 동료 여자경찰의 집에 며칠 머무르는 장면에서는 동료 여자경찰이 다른 여성과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작가는 끊임없이 널린 편견들을 보여주고 그것들에 맞서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에리카'는 피해자들에게 연대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죽음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있고, 그래서 진심으로 살인범을 잡고 싶어한다. 자신의 업적을 하나 더 쌓고 싶다는 바람이 아닌, 누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내가 꼭 잡을게, 하는 것. 에리카 경감에게는 피해자에 대한 연대가 있었던 거다. 그게 그녀의 열정에 더 불을 지피고 남들보다 더 오래,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든다.



팀원들에게 인사를 건넨 에리카는 홀로 수사본부에 남아 화이트보드를 가만히 쳐다봤다. 그녀의 눈길이 유독 앤드리아의 사진에 오래 머물렀다. 

"넌 겨우 스물셋이었어. 앞날이 창창했다고." (p.72)


바로 이 연대가 그녀가 외로운 가운데에서도, 경찰서의 다른 경찰들과 피해자 가족들마저 자기를 배척하는 가운데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그녀를 움직이게 했다.



"총경님, '우리가' 어떻게 이럴 수 있죠? 이건 저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네, 제가 연락도 없이 총경님 집 앞에 찾아와서 이러는 거, 정신 나간 짓이란 거 압니다. 하지만 제가 미친년 취급받는 것쯤은 감수할 수 있어요. 제가 못 참겠는 건 말입니다, 이 여자애들한테 일어난 일이에요. 아무런 노력도 안 해 보고, 오늘 밤에 발 뻗고 주무실 수 있겠어요? 우리가 처음 경찰이 됐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그땐 힘도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결정을 내릴 권한이 있잖아요. 충분히 있잖습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총경님한테요. 젠장, 수색에 드는 비용은 저한테 청구하세요. 인사 위원회에 회부해서 저를 해고하셔도 돼요, 지금 그딴 건 아무 상관 없어요. 하지만 이것 좀 보세요, 보시라고요!"

에리카는 사진을 다시 마쉬 눈앞으로 들이밀었다.

"그만해!"

마쉬는 큰 소리로 외치고는 현관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p.268)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자기의 말을 믿어주려 하지 않고 지휘권도 빼앗겨 버린 그녀는 얼마나 억울하고 힘들고 외로웠을까. 그걸 견뎌내면서 수사를 계속하다니... 불법체류자인 여성, 홈리스 여성의 말을 경찰서의 누구도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라며 믿어주려 하지 않았을 때, 에리카는 그들의 말을 '믿는다'. 아마도 자신 역시 사실을 말해도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경험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오늘까지는 앤드리아 더글러스-브라운의 죽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신문과 인터넷 사이트, 텔레비전 뉴스에 앤드리아 사진이 도배됐고, 국가적 양심의 문제로까지 번졌죠. 그렇습니다, 앤드리아가 특권을 누렸던 건 사실입니다. 반면 타티아나 이바노바, 미르카 브라토바, 카톨리나 토도로바와 아이비 노리스는 어떤가요? 그들이 스스로 원해서 그런 험한 삶을 살았을까요? 아닐겁니다. 상황이 달랐다면, 그들도 앤드리아처럼 윤택한 삶을 살았을지도 몰라요. 내가 구태여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이 나라에서 매일같이 행해지는 대로 이들을 계급화하지는 말자고요. 이 다섯 사람 모두 끔찍하게 살해됐어요.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겁에 질려 죽어 갔습니다. 이들은 모두 평등하고, 똑같은 피해자이며, 공정한 시선으로 주목을 받아야 합니다." (p.355)



에리카가 하는 생각들, 말들이 좋아서 이 책이 시리즈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사실 피터슨.. 의 이야기도 좀 더 보고 싶고. 시리즈가 있다고 해도 피터슨의 이야기가 나올까? 그렇지 않을 확률도 있지만, 그래도... 싶어서 검색을 해보니, 오, 에리카 경감의 이야기는 시리즈가 맞았다. 나이쓰~ 내가 시리즈를 찾게 되다니 ㅋㅋㅋㅋ 이 책이 첫번째고, 그 다음책은 바로 이것.

















오오, 이것도 읽어봐야겠다. 피터슨 얘기 좀 더 나오면 좋겠는데.... 정확하게는 피터슨이 부하직원으로서 에리카를 계속 도우면서 뭔가 둘 사이에 특별한 무언가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것이 반드시 이성간의 연애감정은 아니더라도, 어떤 단단한 관계. 에리카는 낯선 지역으로 와서 다 새로 만나는 동료들이었으니만큼 누군가와 좀 더 친밀한 관계가 되는 것도 좋지 않은가. 데이트하고 섹스를 해도 좋겠지만, 데이트와 섹스와는 거리가 멀고 그저 서로를 신뢰하는 단단한 관계, 그런 관계가 하나쯤 있는 거 참 좋지 않나. 퇴근하고 같이 맥주도 마시고 피자도 먹고 그러는 거. 모스가 이미 전적으로 에리카를 신뢰하기는 하지만, 피터슨과도 그런 관계가 되면 좋겠다...라고 나는 혼자 바란 것이었다. 얼른 다음 시리즈도 읽어봐야지. 



1월달에 월급 타면 사려고 했는데... 지금 이 책 하나만 살까? 아 모르겠다 혼란스럽다.

2020년에도 이렇게 살아야 하나? 맨날 책 살까말까 고민하면서? 그러다가 결국 사면서? 그렇게 사는걸까?








휴일인 거 너무 좋다. 늦잠도 자고 느즈막히 일어나서 까페로 나가 한낮에 책도 읽을 수 있다니. 아, 이런 거 정말 너무 좋잖아. 나는 한낮에 까페로 가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삶을 언제나 꿈꾸고 있다. 너무 좋아. 집중도 세 시간이나 했다구!!


일주일에 한 번, 이렇게 가운데 수요일에는 휴일이 하루씩 껴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하루를 쉬고 다음날 출근해서 목,금 일하고 다시 토,일 쉬고... 월,화 일하고 수요일 쉬고 목,금 일하고 토요일일요일 쉬고... 환타스틱하지 않은가...



그나저나 이 책 다 읽었으니 이제 다음 책을 뭘 읽어야 하나. 하루키 책 하나 꺼내놨고 배움의 발견도 읽고 싶고 내친김에 추리로 하나 더 읽을까 싶고,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 시작할까..아니 이건 조금 더 있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소설을 한 권 더 읽어야겠다. 소설 좀 여러권 읽어서 내 안에 이야기로 가득 채운 다음에 다시 페미니즘 도서 읽으면서 으르렁 거려야지. 으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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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be00 2020-01-01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페이퍼 읽으면 순문학과 장르문학 나누는 거 참 부질없구나 싶어요..
집중력 짱 몰입도 짱 (^^)b
2주째 수요일을 쉬니 저희 아이도 매주 수요일 쉬면 학교 잘 다닐수 있겠다고 하네요 ㅎㅎ

다락방 2020-01-02 07:40   좋아요 0 | URL
저는 순문학과 장르문학을 나누어서 읽지 않기 때문에, 그 구분은 저야말로 참 부질없다 싶어요.
물론 제가 더 좋아하는 작가나 책은 있지만 말입니다.

매주 수요일 쉬면 학생들도 좋아하고 직장인들도 좋아하는데 대체 왜 매주 수요일에 쉬지 않는걸까요?????
ㅎㅎ

공쟝쟝 2020-01-01 2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맹날 수요일에 쉬면 좋겟다! 저도 세시간 집중햇는데 ㅠㅠ 100페이지 읽엇나? 제 2의성 어렵다 ㅠㅠㅠㅠㅠ
앗차차~ 1월 1일이지만 변함없이 오늘의 책을 읽는 사람들 참.. 멋지다..*

다락방 2020-01-02 07:42   좋아요 1 | URL
제2의 성보다는 소설이 같은 시간 집중해도 휘리릭 넘어가지요. 제2의 성은.. 정말 장난 아니에요. 으흐흐흐.
쟝님도 1월1일 세시간 집중해서 책 읽으셨군요.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 열심히 읽고 쓰며 살아갑시다. 뽜샤!!

2020-01-03 2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5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