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여성 No.1 신사임당
안영 지음 / 동이(위즈앤비즈)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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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원권 화폐 인물로 '신사임당'이 선정되고,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여러 여성 인물들 중 '신사임당' 선정을 두고 말이 많았던 것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나는 사실 조금 다른 인물이길 바랐다. 무엇인가 더 혁신적인 인물이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새 화폐에 대한 은근한 기대, 설렘을 갖으며, 이렇게 책을 통해 '신사임당'을 만났다. 내가 조금은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마음이 괜시리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시대, 사상을 망라하고, '효(孝)'의 중요성을 체득할 수 있는 기회였다. 단지, 율곡 이이와의 연관성, 바람직한 어머니상에 국한하여 생각했던 나의 어리석음, 하지만, 자애로운 마음으로 용서해주실거라 믿어 의심지 않는다.

 

이 책, <대한민국여성 No.1 신사임당>은 조금 새화폐에 편승한 상업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제목이다(표지의 그림은 살짝 급조한 듯 영 마음이 편치 않다). 2004년 신사임당 탄신 500주년을 보내면서, 작가 '안영'이 '신사임당'을 소재로 쓴 소설 <그 영원한 달빛, 신사임당>이란 제목이 훨씬 마음에 와닿기에,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달빛의 은은함, 부드러움 애잔함은 소설 속 등장하는 달빛과 신사임당의 이야기가 너무도 절묘하게 들어맞으면서, 넒은 신사임당의 품에 안기는 듯한 착각을 갖기 때문에 숨겨진 제목 '그 영원한 달빛 신사임당'이 나는 참으로 좋다.

 

신사임당이 열아홉인 무렵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버지 '신명화'가 그녀의 결혼을 서울러 준비하고 치마폭에 그린 포도넝쿨 일화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그리고 결혼, 임신, 육아가 일상이 되는 삶 속에서 끊임없이 그림, 시, 자수 등의 예술활동을 하는 모습, 잠을 아까워하며, 열심히 성실하게 사는 그녀의 모습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그리곤 '이'가 장원급제 소식을 들은 날,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리고 유년기로 거슬러 올라, 그녀의 어린 시절, 성장 과정을 들려주었다. 어찌하여 어머니가 '단지'를 하였는지, 외할아버지와의 추억, 떨어져 살았던 아버지 등등 어린시절의 사임당(인선)을 만날 수 있었다.

 

각각의 차례마다 신사임당의 그림 한 점이 소제목과 함께 다음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지나치기 쉬우면서도, 그림에 생명력을 더하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어 다시 한 번 그림을 살펴보게 된다. 예술가의 진면모를 살짝 느낄 수 있었다. 한 번 직접 그녀의 그림을 찾아나서고 싶다는 생각이 스친다. 육아에 전면하면서도 예술에 대한 끊없는 갈망, 그리고 '임신'에 대한 불평과 이내 반성하는 모습이 참으로 인간적이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어려움 삶 속, 귀한 보배인 그녀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더없이 값진 일인 듯하다. 

 

내게 있어, 가장 크게 와닿았던 것은 효성스러운 딸의 모습이었다. 반성하고 또 반성하고 깊이 깨닫게 되는 책이었다. 문학의 즐거움에 '교훈성'이 특별히 강조된 것은 그다지 거북스럽지 않았다. 끊임없이 '배움'의 의욕을 놓지 않으며, 항상 성실하게 살았던 사람, 그리고 사람다움의 근본에 '효(孝)'에 두고, 시작과 끝을 맺었던 사람이 바로 '신사임당'이 아닐까? 나 역시 그녀의 발치라도 따라간다면~~~

 

참으로 앞선 여인이었다. 조선시대를 생각하면서 '정말일까?' 의심을 품게된다. 당연하게 시집살림을 살았어야할 때, 그년 친정에 머물며, 홀로 남겨진 친정 어머니를 모시고, 아이를 키우고 집안 살림을 꾸려간다. 현명한 아내, 지혜로운 어머니, 그리고 효성스러운 딸, 그리고 예술혼을 불태우던 한 여인인 '신사임당'을 만날 수 있었다. 절로 본받고 싶은 삶의 표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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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정진영 지음 / 징검다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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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선덕여왕'을 만나는 것은 이번이 세번째이다. 붉은 표지가 강렬하게 다가오는 선덕여왕! 출판계에 일고있는 선덕여왕 열풍에 편승한 면도 있지만, 작가의 의도, 상상에 따라 너무도 다르게 그려지는 것이 정말 흥미롭다. 차이를 비교하면서 '선덕여왕'의 캐릭터에 심취하고, 어떤 모습의 '덕만',' 선덕'이 그려질지 자꾸만 호기심을 갖게 된다.

 

기대 그 이상의 선덕여왕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은 선덕여왕의 '죽음'으로 시작되었다. 죽음을 예견하고, 도리천에 묻어달라는 유언과 함께 반란 속, 승만을 새왕으로 추대하는 장면으로 살짝 맛을 보았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간, 진평왕의 시대는 그의 셋 딸의 어린 시절 성장과 결혼이 중심이다. 장녀인 덕만은 일찌감치 아버지에게 후계자 수업을 받는다. 그리고 신라 최고의 미인인 셋째 딸 선화와 이 둘 사이에 낀 다소 평범하다 느끼는 천명 이렇게 셋 딸의 짧막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곤 공주 시절의 덕만, 그리고 여왕의 시대, 그리고 여왕의 죽음 그리고 이후의 신라는 태양의 제국 편에 진덕여왕, 무열왕, 문무와의 삼국통일(의자왕과 계백장군과 화랑 관창도 만날 수 있다), 당과의 전쟁이 압축되어 이야기된다.

 

이번에 읽은 <선덕여왕, 정진영, 징검다리>의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천명'과 '용춘'의 이야기 비중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선화와 서동은 더 말 할 필요도 없이 비중이 낮다)과 경국지색 '아루'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차례를 보면서, '경국지색 아루'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기존에 접한 기억이 없는 이름 '아루'였기 때문이다. '아루'는 선덕여왕이 준 '거북 구슬'의 염적 효력을 이용하면서 미인계로 의자왕을 형편없이 농락하는 계략이 담긴 이야기였다. 다소 샤먼적인 이야기를 많은 점이 있었다.

 

그렇다면, 가장 인상적인 것은 무엇일까? 바로 선덕여왕과 비형의 사랑이었다. 선덕여왕과 비형의 사랑의 줄다리기, 그리고 그들의 이룰 수 없는 사랑, 일방적인 것인 아닌, 그들의 영혼이 결합하는 뜨거운 사랑, 그리고 떠날 수 밖에 없는 비형과 그럼에도 선덕 주변을 맴도는 비형의 모습이 새로웠다. 즉, 선덕여왕의 사랑이 여왕으로서의 위엄, 업적보다도 더욱 강렬하였다. 여왕이 아닌 순수한 한 여자로서의 선덕의 사랑은 인간적이 모습 그 자체였다.

 

기존에 다른 책에서 만났던 선덕여왕은 선덕여왕과 어린 시절, 즉위 과정, 권력을 둘러싼 치열한 암투가 중심이 되어 그려졌다면, 이번 <선덕여왕, 정진영, 징검다리>은 그보다는 '사랑'의 비중이 크게 느껴젔다. 결국 사랑보다는 한 나라의 어머니, 여왕으로서의 의무를 다한 선덕여왕이지만, 내게 비형과 덕만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선덕여왕'이란 소재를 빌린 연애소설은 아닐까? 의심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선덕여왕 사후, 신라의 모습(짧지만, 진덕, 무열, 문무왕의 시대)을 보여줌으로써, 선덕여왕이 이룩했던 업적을 더욱 부각시켰다. 삼국통일의 의미가 오늘날 '남북 대립과 긴장'과 비교되면서, '통일'이란 단어가 조금은 남다르게 느꼈졌다. 전에 만났던 선덕여왕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 정말 색다른 '선덕여왕'을 만나며, 장마철의 후텁지근함을 몰리칠 수 있었다. 이 다음엔 어떤 모습의 '선덕'을 만날 수 있을까? '선덕'을 만날수록 더 깊이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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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불멸의 기억
이수광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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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읽고, 이렇게 무엇인가를 적는다는 것이 이처럼 심하게 망설여지고, 염려되기는 첨이다. 책을 통해 만나고 느낌 '안중근 의사'의 삶이 되려 퇴색되지는 않을지, 그 느낌, 그 감동을 고스란히 옮길 수 있을지~. 또한 나의 미려함 속, 무지와 무관심이 한없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의 삶을 좇다보니, 가슴이 먹먹하고, 뭉클해진다. 콧등이 짠~해지면서, 시큰하지만, 눈물 한 방울조차 죄송스러운 마음에 흘릴 수가 없었다.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그렇다. 살짝 기억을 더듬고 보니, 의거날(1909년 10월 26일)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100년의 시간이 지났음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100'이란 숫자의 의미가 부각되는 시간이 되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냥 모호하게나마, '나라를 위해 숭고한 목숨을 바쳤다'식 교과서 속 한 문장으로 압축되어, 단편적인 상식 뿐이었다. 하지만 나라를 위한다는 것인 무엇인지, 숭고한 목숨의 숭고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 나는 역사 앞에 무릎꿇고 반성하며, 참회할 일만 가득하다. 하지만 이렇게 늦게나마 '안중근 의사'를 만나고, 뚜렷하게 그의 실체를 확인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책 <안중근 불멸의 기억>의 여정은 2007년 7월 12일부터 시작되었다. 딱 이만때쯤, 저자 이수광은 '안중근 의사'의 흔적을 따라 나섰다. 그리고 9박 10일간의 여정 속, 그가 보고 느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단순한 역사 탐방이라면, 이만큼의 감동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어렴풋한 안중근을 만나러 떠난 여행 속, 서서히 영웅 안중근의 실체가 서서히 뚜렷해졌다. 그리고 그의 흔적 속, 아픈 역사와의 만남은 비수처럼 차곡차곡 온마음에 찔렀다. <안중근 불멸의 기억>의 가장 두드러진 특색은 기행 사이사이 안중근 자신이 '나'의 일인칭 시점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되는 팩션이 끼어있다는 것이다. 여순감옥수에서 사형 집행일 전날 밤, 자신의 지난 생을 뒤돌아보며, 하나하나 써내려가며 자신의 삶을 오롯이 보여주는 형식의 이야기는 마치 그가 살아돌아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였다. 그리고 더욱 절절하게 그가 내게 다가와 심장에 박혔다.

 

서른두 살 내 젊음을 바친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후회도 없다. 나는 다만 내 인생을 반추하고 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서른두 살 인생이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295)

 

역사의 물줄기를 구경만 하던 입장에서 직접 체험하는 일에 나선 저자를 통해, 그가 밝고 내디딘 곳곳의 이야기가 생생한 역사로 되살아나 내게 온전히 전해졌다. 얼마전부터, 나는 '안중근'하면 '최재형'이란 '시베리아 독립 투쟁의 대부'가 연상되었다. '하얼빈 의거의 영웅 안중근'의 발자취를 따라나선 길에, 비록 짧지만 '최재형'을 만날 수 있었다. '안중근'을 좀더 깊이있게 알고자 하는 마음에서 펼쳐 본 책은 첫머리서부터 나의 호기심을 부채질하였고, 책을 놓는 마지막 순간까지, 전율과 긴장에 떨어야 했다.

 

안중근과 역사를 만나는 동안 입안이 쓴내로 가득 고였다. 그럴수록 더욱 숙연하고 진지하게 독립 투사 안중근, 인간 안중근, 영웅 안중근을 만나며 쓰라린 역사와 대면하였다. 가슴이 뻐근하니, 아렸다. 그래도 끊임없이 만나고 싶다. 서른 둘의 뜨거웠던 그의 삶은 내 안의 작은 불씨요, 등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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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그림처럼 - 나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일상치유에세이
이주은 지음 / 앨리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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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림이야기에 빠지게 된 처음은 '트레이시 슈발리에'<진주 귀고리 소녀>를 통해서였다(살짝 맛보기로 책 이야기를 하자면, 진주 귀고리 소녀의 그림이 소개되고 있다. 호홋^^*). 그림과 소설이 하나의 이야기로 어우러지는 것의 독특함, 생경함에 매료되었다. 그리곤 우연하게 '이주은'<그림에, 마음을 놓다>를 보자마자, 어찌나 흥분되고 읽고 싶던지~ 결국 읽게 되었고, 차분하고 그림을 통해 나를 감싸안아주었던 포근함이 내 몸에 깃들어있다. 그런데 이렇게 '이주은'의 <당신도, 그림처럼>이란 책을 보고, 어찌 들뜨지 않았겠는가! 구지 설명할 필요도 없을 듯~

 

표지를 보라! 붉은 장미로 장식된 노란 드레스를 입은 여인, 노란색과 대비되는 녹색의 모자가 눈에 띄고, 아래를 향하는 시선과 감은 눈, 거울을 등지고 서있는 가냘픈 여인! 거울 속 뒷모습이 살짝 비치는 여인의 모습이 왠지 쓸쓸하고 애처롭게 느껴졌다. 그래도 따듯한 느낌이 감도는 색채가 절로 살포시 안아주고 싶은 생각도 들는데, 저자도 역시 그렇게 우리를 안아주고 싶었던 것일까? 표지의 그림 속 '매일매일 그림처럼 행복하게'라는 짧은 문구로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하였다. 제목과 표지만으로도 충분히 내게 기대감과 설렘을 전해주는 책, 그리고 절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책이었다. 

 

일상에서 소중함을 느끼며, 감사의 마음이 주는 위로로 일상의 상처가 치유되듯,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개의 테마로 이야기가 구성되었다. '자유로운 봄날', '솔직함이 반가운 여름', '내 존재를 느끼는 가을', 그리고 '마침내 겨울'의 테마 속 각각 6가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하나의 주제별로, 2개의 그림이 소개되고, 그림에 걸맞는 책 이야기와 영화 이야기를 통해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풍성하게 한다. 특유의 부드러운 감성이 물씬 풍기면서도, 사회, 역사, 문화를 통틀어, 다양한 소재 속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각각의 이야기 모두가 내 마음 속 어느 깊은 곳을 간지렀다. '언제나 Quick Quick, 그래도 가끔은 Slow Slow'의 화두로 시작하는 저자의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책 속에 온전히 흡수되어 쉼없이 내리 달렸다. 순전히 그림에 대한 감상, 해석이 치중한다면 참으로 지루한 일일지 모르겠다. 그림과 일상 속 지극히 사소한 듯한 이야깃거리로 삶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이주은'의 치유에세이에 흠뻑 취했기에, 이토록 공감하며, 빠져나올 수가 없나보다. 일상이란 것이 이처럼 비슷비슷한 것일까? 나의 자잘한 걱정들을 콕 집어 이야기하기도 하고, 나의 주관심사가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사회적인 화두을 가벼운 터치로 살며시 이야기하는 등, 감미롭게, 때론 날카롭게 착착 감기듯 그렇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살짝 아쉬운 점은 표지의 「노란 옷을 입은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다. 호기심을 갖으면 여러 공상에 빠져들게 한 표지 속 그림이야기가 더없이 궁금해진다. 그런데, 그거야 뭐~ 1년 쯤 기다리면 만날 수 있겠지 싶은 마음으로 달래본다.   

 

이주은의 그림을 통한 치유이야기를 통해, 또한번 마음이 포근해졌다. 그녀를 만난 것은 내게 커다란 행운이었다. 책을 따라 차분히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그녀의 이야기가 몸에 베인다. 그것은 또한 그림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그림이 한없이 친숙해지도록 만든다. 그림 속 작은 것에서도 감동받고 흥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주은' 덕분이다. 그래서 나는 덩달아 매일매일이 행복해진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번에 읽은 <당신도, 그림처럼>을 오래오래 벗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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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여행
다나베 세이코 지음, 신유희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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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의 신간 코너에서 은근히 눈에 들어온 책, 다나베 세이코의 <감상여행>이다. 일단 다나베 세이코가 영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의 원작소설의 저자라는 것에 호감이 갔다. 책을 통해 만난 적이 없기에, 저자의 이력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밖이었다. 아주 젊은 작가일 거라 생각했는데(1928년생이었다). 그래서일까? 이 책에 속한 배경이 조금은 낯설었지만 별 무리없이 내 감성을 자극하였다. 예상 밖의 수확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무수한 일본작가들 속에서 뭔가 다른 매력을 지닌 작가, '다나베 세이코'였다. 그리고 그의 소설 <감상여행>은 아주 독특하였다.

 

이번에 접한 책, <감상여행>은 '감상여행', '당신이 대장', '시클라멘이 놓인 창가' 이렇게 세 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있다. 그런데 정말 특별한 이야기다. 전혀 다른 등장인물들과 시대 속, '사랑'에 대한 하나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미혼의 젊은 남녀(20-30대), 결혼 15년차의 부부(30-40대), 중년(60대)이라는 전혀 다른 세대들간의 사랑 이야기를 한 권의 책 속에 엮어 놓았다. 세편의 소설 속, 화자(또는 주인공 : 히로시, 남편 다츠노, 루리)의 화법은 톡톡 쏘는 맛이 있다. 뭔가 냉소적이면서도 자꾸만 구미를 당기는 화법에 끌렸다.

 

감상여행 : 방송작가일을 하는 유이코는 조금은 쉬운 연애를 끊임없이 하는 가십의 주인공이다. 그런 그녀와 함께 일하는 동성같은 이성친구 '히로시'는 그런 그녀의 모든 연애사를 지켜보았다. 새롭게 시작한 유이코의 상대는 사회주의 당원인 연하남 '케이'이다. 그런데 편지 한 장 남긴 채, 케이는 사라진다. 그리고 사흘밤낮을 헤메다 히로시에게 찾아온 유이코는 자신의 상처를 토로하며, 마음의 위안을 얻어보려 하지만, 한낮의 꿈처럼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린다. 지킬 수 없는 약속만 남긴 채......

사랑과 소통을 향한 열망, 하지만 현대인에게 '사랑'이란 무가치한 듯, 너무도 허무스럽게 그려진다. 되도록이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사랑이기 원하는 내게 조금은 거북한 사랑이야기였다. 왠지 소설만이라도 있는 그대로의 우리들 모습이 아니어도 좋지 않을까? 너무도 적나라하게 현대인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듯해 씁쓸하였다.

 

"저기, 히로시, 사랑이 뭐야? 사랑이란 거 …… 정말 있다고 생각해? 우리, 인생의 아주 작은 부분, 섹슈얼한 욕망과 미모 추구, 공통의 관심, 계급상의 이해 및 동류의식을 갖는 것, 노후의 타산 따위를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던 던 아닐까? 앗 아니면, 사랑이란 원래 그런 걸까? 아니면, 진정한 사랑을 그런 게 아니지만 오늘날에는 그런 것들이 사랑의 왕좌를 빼앗아 대신하는 걸까? (…… )" (100-101)

 

당신이 대장 : 왠지 모르게 통쾌하고 유쾌한 이야기였다. 다츠노의 시선에서 하루가 다르게 변모한 아내 '에이코'의 모습을 그리다보니, 절로 웃음꽃이 피는 이야기였다. 너무도 순종적이고, 남편에게 의지하던 전업주부인 에이코는 하얀 화장대로 인해, 자기 물건은 자기가 번 돈으로 직접 사겠다며 직업전선에 뛰어든다. 그리고 빠르게 변화한다. 겁많고 자신감 없던 아내는 술 마시며 늦은 귀가도 하고, 정직원이 되겠다며 영어를 공부하고 아들의 선생님을 직접 찾아가기도 하는데......  점점 주도적이고 진취적으로 사는 에이코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 ) 당신처럼 '어쩔 수 없잖아'라느니, '세상은 만만하지 않아'라는 소리만 하고 있다간 아무것도 못한다고, 바보 같으니." (157)

 

시클라멘이 놓인 창가 : '루리'는 철로 옆 단층의 작은 집에서 혼자 생활하는 미혼의 노처녀인줄만 알았다. 하지만 이야기에 깊이 들어가다보니, 정년퇴직 후 부티크에서 일하는 60대였다.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일상 속, 황혼의 붉은 빛은 없는 '루리'에게 조금은 특별하고 애잔한 사랑이 찾아왔다. (사랑엔 나이도 국경도 없다지만, 그래도 조금은 편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찌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짐작하다 허세부릴 수도 없다) 어느 늦가을 하얀 시클라멘 화분을 안고 집 앞에서 서성이는 사내 '츠카다' 그리고 그와의 만남과 이별이 '시클라멘이 놓인 창가' 주된 이야기이다. 지나온 삶의 동질감으로 똘똘 뭉치게 된 중년, 그들의 차분하지만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 조금은 뜻밖의 사랑이었지만, 그만큼 잔잔하게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웃는 얼굴로 개찰구에서 헤어졌지만, 줄줄이 문을 닫은 상점가를 지나오는 동안 누물이 나왔다. '그래, 정말이지 우리 나이엔, 다시 볼 수 있을지조차 모르는데' 그런 생각이 들자, 마치 두 사람의 모습이 늙은 수탉과 암탉처럼 여겨졌다.

(…… )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루리는 거울을 보며 눈물을 쓱 닦았다. (195-196)

 

'다나베 세이코'라는 색다른 일본 작가를 만났다. 그리고 조금은 독특한 구성의 사랑이야기를 만났다. 내 삶 속 사랑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지게 될지 사뭇 궁금해지면서, 세 편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사랑이 두고두고 내 삶에 비치게 될까? 생각해본다. 은근하게 여운이 남는 사랑의 이야기 <감상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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