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여행
다나베 세이코 지음, 신유희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서점의 신간 코너에서 은근히 눈에 들어온 책, 다나베 세이코의 <감상여행>이다. 일단 다나베 세이코가 영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의 원작소설의 저자라는 것에 호감이 갔다. 책을 통해 만난 적이 없기에, 저자의 이력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밖이었다. 아주 젊은 작가일 거라 생각했는데(1928년생이었다). 그래서일까? 이 책에 속한 배경이 조금은 낯설었지만 별 무리없이 내 감성을 자극하였다. 예상 밖의 수확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무수한 일본작가들 속에서 뭔가 다른 매력을 지닌 작가, '다나베 세이코'였다. 그리고 그의 소설 <감상여행>은 아주 독특하였다.

 

이번에 접한 책, <감상여행>은 '감상여행', '당신이 대장', '시클라멘이 놓인 창가' 이렇게 세 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있다. 그런데 정말 특별한 이야기다. 전혀 다른 등장인물들과 시대 속, '사랑'에 대한 하나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미혼의 젊은 남녀(20-30대), 결혼 15년차의 부부(30-40대), 중년(60대)이라는 전혀 다른 세대들간의 사랑 이야기를 한 권의 책 속에 엮어 놓았다. 세편의 소설 속, 화자(또는 주인공 : 히로시, 남편 다츠노, 루리)의 화법은 톡톡 쏘는 맛이 있다. 뭔가 냉소적이면서도 자꾸만 구미를 당기는 화법에 끌렸다.

 

감상여행 : 방송작가일을 하는 유이코는 조금은 쉬운 연애를 끊임없이 하는 가십의 주인공이다. 그런 그녀와 함께 일하는 동성같은 이성친구 '히로시'는 그런 그녀의 모든 연애사를 지켜보았다. 새롭게 시작한 유이코의 상대는 사회주의 당원인 연하남 '케이'이다. 그런데 편지 한 장 남긴 채, 케이는 사라진다. 그리고 사흘밤낮을 헤메다 히로시에게 찾아온 유이코는 자신의 상처를 토로하며, 마음의 위안을 얻어보려 하지만, 한낮의 꿈처럼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린다. 지킬 수 없는 약속만 남긴 채......

사랑과 소통을 향한 열망, 하지만 현대인에게 '사랑'이란 무가치한 듯, 너무도 허무스럽게 그려진다. 되도록이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사랑이기 원하는 내게 조금은 거북한 사랑이야기였다. 왠지 소설만이라도 있는 그대로의 우리들 모습이 아니어도 좋지 않을까? 너무도 적나라하게 현대인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듯해 씁쓸하였다.

 

"저기, 히로시, 사랑이 뭐야? 사랑이란 거 …… 정말 있다고 생각해? 우리, 인생의 아주 작은 부분, 섹슈얼한 욕망과 미모 추구, 공통의 관심, 계급상의 이해 및 동류의식을 갖는 것, 노후의 타산 따위를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던 던 아닐까? 앗 아니면, 사랑이란 원래 그런 걸까? 아니면, 진정한 사랑을 그런 게 아니지만 오늘날에는 그런 것들이 사랑의 왕좌를 빼앗아 대신하는 걸까? (…… )" (100-101)

 

당신이 대장 : 왠지 모르게 통쾌하고 유쾌한 이야기였다. 다츠노의 시선에서 하루가 다르게 변모한 아내 '에이코'의 모습을 그리다보니, 절로 웃음꽃이 피는 이야기였다. 너무도 순종적이고, 남편에게 의지하던 전업주부인 에이코는 하얀 화장대로 인해, 자기 물건은 자기가 번 돈으로 직접 사겠다며 직업전선에 뛰어든다. 그리고 빠르게 변화한다. 겁많고 자신감 없던 아내는 술 마시며 늦은 귀가도 하고, 정직원이 되겠다며 영어를 공부하고 아들의 선생님을 직접 찾아가기도 하는데......  점점 주도적이고 진취적으로 사는 에이코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 ) 당신처럼 '어쩔 수 없잖아'라느니, '세상은 만만하지 않아'라는 소리만 하고 있다간 아무것도 못한다고, 바보 같으니." (157)

 

시클라멘이 놓인 창가 : '루리'는 철로 옆 단층의 작은 집에서 혼자 생활하는 미혼의 노처녀인줄만 알았다. 하지만 이야기에 깊이 들어가다보니, 정년퇴직 후 부티크에서 일하는 60대였다.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일상 속, 황혼의 붉은 빛은 없는 '루리'에게 조금은 특별하고 애잔한 사랑이 찾아왔다. (사랑엔 나이도 국경도 없다지만, 그래도 조금은 편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찌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짐작하다 허세부릴 수도 없다) 어느 늦가을 하얀 시클라멘 화분을 안고 집 앞에서 서성이는 사내 '츠카다' 그리고 그와의 만남과 이별이 '시클라멘이 놓인 창가' 주된 이야기이다. 지나온 삶의 동질감으로 똘똘 뭉치게 된 중년, 그들의 차분하지만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 조금은 뜻밖의 사랑이었지만, 그만큼 잔잔하게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웃는 얼굴로 개찰구에서 헤어졌지만, 줄줄이 문을 닫은 상점가를 지나오는 동안 누물이 나왔다. '그래, 정말이지 우리 나이엔, 다시 볼 수 있을지조차 모르는데' 그런 생각이 들자, 마치 두 사람의 모습이 늙은 수탉과 암탉처럼 여겨졌다.

(…… )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루리는 거울을 보며 눈물을 쓱 닦았다. (195-196)

 

'다나베 세이코'라는 색다른 일본 작가를 만났다. 그리고 조금은 독특한 구성의 사랑이야기를 만났다. 내 삶 속 사랑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지게 될지 사뭇 궁금해지면서, 세 편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사랑이 두고두고 내 삶에 비치게 될까? 생각해본다. 은근하게 여운이 남는 사랑의 이야기 <감상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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