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아데나 할펀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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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나이가 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는 언제인가.


  점점 TV에 나오는 가수들이 오빠에서 동생으로 바뀔 때? 어느샌가 술집을 신분증 검사도 없이 드나들 수 있을 때? 어제 수능을 쳤던 고3 수험생들이 벌써 93년생이라는 것을 문득 깨달았을 때? 새내기로 귀여움받던 시절이 어느샌가 훌쩍 취업을 준비하는 졸업생으로 둔갑해버렸을 때?

  아무려면 어떤가. 내 또래의 사람들은 아마 이리 생각할 것이고, 나보다 조금 어린 이들은 이제 한 풀 꺾이는 나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이들은 아직 한창 때라고 이야기할텐데 말이다.

  나이는 상대적인 것이고, 누구나 그 순간의 나이를 딱 한 번, 365일동안만 보낼 수 있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후회 혹은 추억으로 점철된 과거를 회상하며 '그 땐 그랬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그리고 점점 10대에는 그렇게도 싫었던 어른의 시선이 공감되기 시작하고, 조금 시간이 더 지나면 지금의 나를 생각하며 그 때는 좋았어.. 라고 괜히 지금 이 순간을 그리워하겠지.

 

 



 

 

  아데나 할펀의 <스물아홉>은 내가 방금 지껄인 말들을 코웃음 하나로 모두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일흔 다섯을 맞이한 엘리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일흔 다섯. 엘리 할머니는 75년이라는 세월 동안 아마 그녀는 어머니로서, 여자로서 지혜를 쌓아왔을…

 

 

 

일흔 다섯 살이 된 것을 축복으로 여겨야 옳거늘. 젠장, 나도 말은 그렇게 한다. 나이 듦의 가장 큰 기쁨은 세월을 통해 얻은 지혜라고. 그래야만 그나마 기분이 나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다 헛소리다. 그러나 달리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모두들 절망할 텐데.

-p.9

 

 

 

…것이라는 나의 추측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시원스런 말투로 말문을 열다니.

  나중에 늙어보니 후회가 되니, 젊을 때 부터 자외선 차단제를 꼭꼭 바르고 양산을 들고다니며 햇빛을 피할 것이고, 보습을 꾸준히 해 줘야 하며, 가끔은 미친 짓을 해 보라며 충고를 해 주신다.

  아, 이 할머니, 반할 것 같아!

 

 

 

  늙은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지난 삶을 생각하는 엘리 할머니는 그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남편에게만 의지하고 살아왔던, 여자는 자신을 잘 돌봐줄 남편을 만나 살면 된다는 자신의 어머니의 충고를 따랐던 선택이 아쉽기만 하다. 더군다나 너무나도 아름다운 시절 속에서 빛나고 있는 스물 다섯의 손녀 루시는 어느샌가 의상 디자이너로서 자립하며 자신이 바라마지않던 생활을 하고 있으니, 어찌 질투가 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러나 할머니도, 우리도 모두 알고 있다. 그 때와 지금은 시대가, 사회가 다르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젊음은 젊은이들에 의해 낭비되고 있다는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중략)

젊음은 오직 그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만 주어져야 하는 보물이다. 그것으로 무얼 해야 좋을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낭비되어서는 안 된다.

-p.55

 

 

 

  엘리 할머니는 생일 케이크를 앞에 두고 촛불을 빌면서, 간절하게 소원을 빈다. 하루만, 단 하루만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처진 가슴도 쑤셔오는 무릎도, 주름진 얼굴도 아닌 젊은 시절의 자신의 모습으로 하루만 보낼 수 있다면.

  그냥 그러고 지나가려나 했건만, 다음 날 아침 문득 눈을 뜬 엘리 할머니는 자신의 몸이 너무 가뿐하다는 것을 느낀다. 살금살금 다가간 거울 앞에는, 스스로도 몰랐던 너무 예쁜 젊은 날의 자신이 서 있었다! 아니, 정말 소원이 이루어진거야?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는 엘리 할머니는 천금같이 주어진 단 하루, 자신이 원하는 하루로 꽉 채우기로 결심한다. 시작은 평소 혈당치 관리에 마음껏 먹지도 못했던 케이크를 왕창 먹어보는 것으로.

  엘리 할머니는 어째서 스물 아홉살로 돌아간 것일까? 그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엘리 할머니 뿐만 아니라, 절친한 친구 프리다와 딸 바바라, 그리고 손녀 루시 모두에게 변화를 가져다줄 기적같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어떤 인생도 완벽하지 않아. 하지만 오늘 밤은, 오늘 밤만은 완벽할 거야.

-p.241

 

 

 

  그렇게 시작된 하루는? 그리고 그 다음은?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여차저차 보낸 하루. 그 뒤 풀려버린 마법. 밀려오는 아쉬움. 그러나 결국엔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는 깨달음.

  일흔 다섯의 주인공은 결코 하루 동안의 행운에 욕심을 내지도 그 하루의 마법에 홀려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엘리 할머니는 그렇게 자신의 한 번 뿐인 삶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단 하루의 기적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기적의 하루는, 엘리 할머니 뿐만 아니라 주변의 인물들에게도 변화를 가져다 준다. 언제나 자신의 외모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의존적인 성향을 버리지 못하는 프라다 할머니는 스물 아홉의 엘리를 만나기 이전, 단 하나뿐인 친구를 찾기 위해 그 힘든 몸을 이끌고 걷고 또 걷는다. 너무도 센 기에 주변 인물들을 주눅들게 하고, 어머니와 딸을 너무나도 사랑하나 나머지 간섭을 꽤나 심하게 하며, 남편과의 사랑했던 시절마저 잊어가고 있는, 엘리 할머니와는 정 반대인 딸 바바라는 프리다 할머니와 함께 잠적해버린 엘리 할머니와 루시를 찾아다니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삼게 된다. 함께 있는 온화한 프리다 할머니는 바바라에 폭발하며 지금까지 참아왔던 것에 해방감을 느끼고, 늘 성질을 부렸던 바바라는 이로 자신을 한 번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생각해 보니, 오늘 엘리가 사라져서 기뻐. 나도 그렇게 할까 봐. 나 자신을 위해서 살아야 할 시간에 걱정만 하면서 너무 긴 세월을 보냈어." 

프리다의 뺨에 눈물이 흘렀다.

"이젠 나도 나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아."

-p.282

 

 

 

  결국 인생이란, 삶이란 보편적인 것이다. 세상에는 세상에 있는 사람 수 만큼이나 다양한 얼굴이 있지만, 각자가 걸어가는 길은 색다르기보다는 비슷한 법이다.

  엘리 할머니는 그런 평범한 삶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비록 시대적 상황은 달랐더라도. 그리고 그렇게 평범한 삶을 살아왔지만, 그녀는 자신의 삶이 자신의 것이었기에,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었기에 소중한 것임을 알려준다.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결국은 소중한 보석이 되어줄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엘리 할머니의 메시지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해 결국은 갈등과 고민을 겪게 하는 바로 그것 말이다.

 

 

 

늙어버린 내 얼굴을 바라보면서 기쁨을 느낄 순간은, 내 평생 다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지금 내 얼굴이 어떤 모습이건 그것이 내 삶의 증거라는 사실이다.

-p.385

 

 

 

  이를 작가 아데나 할펀은 스물 아홉으로서의 하루라는 소재로 유쾌하게 그려냈다. 그와 더불어 친구와의 우정, 그리고 어머니와 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여자들의 공감을 많이 이끌어내리라 생각한다.

 

 

 

  흔히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며, 나에겐 지나가버린 세월에 머물러 있는 이들에게 이야기하곤 한다. '그 때가 좋을 때야.', '그 때가 좋았지.', '너희 때가 제일 예뻐.' 등등.

  앞서 이야기했듯 나이란 누구에게나 상대적인 것으로, 20대의 누군가는 10대 시절의 자신을, 30대의 누군가는 20대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나간 추억을 그리워하고 후회한다.

  엘리 할머니의 교훈은 간단하다. 스물 아홉의 누군가이든, 일흔 다섯의 누군가이든 지나간 후회는 있을지언정 그것에 언제나 머물 수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앞으로 그 모든 걸 바꾸어나갈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을. <스물 아홉>에서는 바로 그 진리를 스물 아홉으로 하루를 보내게 된 할머니의 깨달음으로 그려냈다. 

 

 

 

정말이지, 인생은 참 우습다.

진실은 바로 이것이다. 나는 나의 삶에 최선을 다했다. 후회가 있냐고? 물론 후회는 항상 있다. 그러나 후회보다 훨씬 더 많은 놀라운 일들이 있었다.

-p.402

 

 

 

  정말이지, 그럼에도 인생은 참 우습다. 나는 결국 지금 이 순간, 엘리 할머니의 이야기를 받아들였지만 내일이면 다시 엘리 할머니가 밟았던 전철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그러니 너무나도 멋진 엘리 할머니의 이야기를 조금 더 가슴으로 받아들여봐야겠다.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 완벽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을 조금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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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집의 살인 집의 살인 시리즈 1
우타노 쇼고 지음, 박재현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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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타노 쇼고라는 이름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꽤나 일본 미스터리 팬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인지도와 인기를 자랑한다.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에서의 사기에 가까운 속임수라거나, <밀실살인게임 : 왕수비차잡기>에서 시작된 밀실살인게임 시리즈의 역시 대담하고 파격적인 소재와 아이디어로 독자들의 찬사들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우타노 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다양한 물리적 트릭은 아니다. 그것은 그의 대표작이자 가장 유명한 작품이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타노 쇼고는 본격 미스터리의 다양한 향연들ㅡ밀실 살인, 시간표를 이용한 알리바이 조작, 시체 소실 등등ㅡ에 꽤나 애착을 가지고 있는 듯하고, 그것은 역시 <밀실살인게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아마도 국내에는 우타노 쇼고라는 작가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거론되면서 그의 대표작이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들이 하나 둘 소개되면서 자리를 잡아가면서 비롯된 나의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어찌되었든 이제 우타노 쇼고라는 작가의 작품이 출간되는 데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아 그의 본격 미스터리를 앞으로 더 볼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해본다.

 

 

  그리고 그 본격 사랑에 대한 시작은 실은 '처음부터'였다. 우타노 쇼고라는 이름의 출발점이 된 데뷔작, <긴 집의 살인>에서부터인 것이다. 지금의 우타노 쇼고를 있게했던, 습작 경험이라고는 없었던 그가 떡하니 써낸 <긴 집의 살인> 속에 녹아 있던 트릭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떻게 하면 좋지!?

모르겠다ㅡ. 그러나 녀석을 죽이기 위한 '살인 방정식'은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행동은 대담한 것이 좋다. 움찔거렸다가는 오히려 의심받는다. 물론 허점을 잡히지 않으려면 섬세함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대담과 섬세라는 상반된 두 가지 사항을 어떻게 동시에 이룰 수 있는가, 그것이 문제다.

-p.13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살인 방정식'을 세우기 시작하는 한 남자의 독백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이윽고 5인조 대학생 록 밴드 '메이플 리프'의 멤버들이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공연을 위한 합숙 훈련을 떠나는 장면으로 바뀌며 전개된다.

  합숙소 '게미니 하우스'가 도둑이 들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일 없이 보낸 하루였건만, 평소 투덜거리는 성격에 생각을 입밖으로 그대로 내뱉어 다른 멤버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곤 했던 도고시 노부오가 밤 사이 사라졌다 다음 날 그가 잠들었던 방에서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완벽한 밀실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시체. 게미니 하우스를 찾아온 경찰들 역시 사망 추정 시간과 시체의 움직임, 그리고 멤버들의 알리바이가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근거로 별다른 조치 없이 강도의 소행으로 결론내린다.

  그러나 몇 개월 후, '메이플 리프'의 마지막 공연 날 또 다른 멤버였던 미타니 마리코가 역시 시체로 발견된다. 도고시의 죽음을 강도의 소행으로 결론짓기에는 미타니의 죽음은 석연치 않다. 의심스러운 메이플 리프의 멤버들의 알리바이는 게미니 하우스에서와 마찬가지. 도고시와 미타니를 죽음으로 몰아간 범인은 누구였으며, 어떤 방법으로 범행을 저질렀던 것일까?

  메이플 리프의 전 멤버이자 상당한 기인으로 평가받는 시나노 조지가 이 사건을 접하게 되고, 그는 두 살인 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가기 시작한다ㅡ.

 

 

 

  밀실, 그리고 시체 소실. 실은 '밀실'이라는 소재 자체는 참으로 진부해졌으나 그럼에도 미스터리 작가들은 꼭 밀실을 소재로 기발한 트릭을 소설 속에 녹여내려는 열망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우타노 쇼고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는 습작조차 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밀실과 시체 소실이라는 대담한 아이디어를 세상 밖으로 내놓았다.

 

  다양한 트릭이야말로 본격 미스터리의 꽃이다. 독자는 트릭이 어떻게 돌아갔는지는 잘 몰라도 작가가 몰래 깔아둔 복선이나 그야말로 전형적인 '미스터리의 규칙'으로부터 도출된 '심증'으로 범인을 짐작해보곤 한다. 그리고 범인보다는, 도대체 불가능해 보이는 범죄를 어떻게 해냈던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탐정이 차근차근 풀어내며 드러나는 진상에 감탄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범인도 트릭도 잘 알아맞히지 못한다. 그야말로 나는 미스터리 작가들에게 속기 위해 태어난 독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인데, 그래도 꽤나 미스터리를 읽어오면서 토대가 어느정도 마련이 되었나보다. 이번 <긴 집의 살인>은 처음 게미니 하우스의 지도를 보고 '설마 이 트릭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끝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더니 결국은 설마가 사람을 잡아버렸다. 물론 시나노 조지가 범인이 펼쳐놓은 수수께끼를 차근차근 풀어내는 과정을 완벽하게 풀어냈던 것처럼 치밀한 풀이는 아니었지만, 가장 메인이 되는 트릭을 눈치채 버리니 그것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지배하고 그리하여 김이 빠졌다. 알아맞췄다! 라는 뿌듯함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러지도 못했다. 너무 빤히 보이는 트릭이었던 건지, 역시 나는 속기 위해 태어난 인간인지라 맞추는 것보다는 속는 것이 더 좋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이 <긴 집의 살인>은 세세하게 잘 만들어진 이야기다.

  뒤늦게 모든 진상이 밝혀지는 시점에서 우타노 쇼고는 범인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는 실마리를 상당히 짜임새있게 집어넣었고, 그것은 갑작스러운 마무리가 아닌 이미 짜놓은 플롯 안에서 상당히 치밀하고 섬세하게, 꼼꼼한 작업을 거쳤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밀실, 시체의 이동, 미스디렉션, 천재 탐정의 날카로운 통찰을 통한 극적인 사건의 해결 등 미스터리에서 맛볼 수 있는 요소가 짜임새있게 녹아있다. 결론적으로 범행 동기 등에서는 조금 억지스러운 면도 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미스터리의 요소는 상당히 잘 갖춰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소설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상당히 실한 뿌리에서 뻗어나온 잎과 줄기 역시 상당히 탄탄하다. 하지만 나는 뿌리와 줄기 대신 아름답게 피어난 꽃을 보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탄성을 자아내게 만드는, 활짝 피어난 꽃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 꽃은 피기도 전에 꺾여버렸다. 그렇게 툭 하고 꺾어버린 나 스스로가 원망스럽구나.

 

  그럼에도 소설 속에서 처음으로 꽃을 키워내려 애지중지하고 있는 우타노 쇼고의 노력과 열정이 엿보인다. 꽃은 아쉽지만, 그렇게 우타노 쇼고가 열심히 씨앗을 심고 싹을 틔워 꿋꿋이 키워내려 했던 신인 시절의 열정, 그리고 지금의 근간을 이루게 한 노력에 만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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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가든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6
기리노 나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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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노 미로 시리즈의 유일한 단편집인 <로즈 가든>의 이야기를 위해서는, 우선 미로 시리즈의 전반을 아우르고 있는 무라노 미로라는 여탐정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알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개인적으로는 <로즈 가든>을 무라노 미로 시리즈의 첫번째로 선택하는 것은 조금 아쉬우리라 생각하는데, 실제로도 <로즈 가든>은 <얼굴에 흩날리는 비>,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물의 잠 재의 꿈>에 이어 네 번째 시리즈에 해당하며 그 다음에 비로소 <다크>로 시리즈는 완결되었다.

  덕분에 시리즈는 되도록 그 순서대로 읽고 싶어했던 나로서는 <로즈 가든>의 출간 소식은 참 반갑다. 물론 단편 모두가 같은 시기에 쓰여진 것은 아니지만, 표제작이자 가장 묵직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는 단편 「로즈 가든」은 모든 단편을 아우르는 충격이 담겨 있기에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가장 먼저 출간되어버린 <다크> 이후 차례로 출간되고 있는 미로 시리즈에 <로즈 가든>과 함께 개인적인 시리즈의 완결까지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다.ㅎㅎ

 

  등장 인물 그 자체로는 상당히 감성적인 '여성' 탐정 무라노 미로를 내세우고 있는 기리노 나쓰오의 시선은 그러나 어둡고 묵직한 세계 속에서 머물고 있다. 상당히 자극적이고 욕망으로 점철된 끈적한 모습조차 차갑고 건조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이리라(아니, 내가 이상한건가?;;).

 

 

  어쨌든 <로즈 가든> 속 단편들 역시 지금까지의 무라노 미로를 담아내고 있다. 실은 「로즈 가든」을 제외한 나머지 단편들은 꽤나 빠른 시기에 발표된 것으로 시간상으로는 <얼굴에 흩날리는 비>와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사이다. 그러니까, <얼굴에 흩날리는 비>에서 탐정으로서의 첫걸음을 내딛은 후 서서히 정착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미로가 머물고 있는 아파트에서 「표류하는 영혼」이 나타난다는 소문의 근원이라 할 수 있을 아파트 주민들 사이의 악의, 「혼자 두지 말아요」라고 말하지만 결국은 덧없는 관계, 참으로 섬뜩한「사랑의 터널」속을 헤매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무라노 미로는 그렇게 진정한 욕망이 드러나는 거리를 여전히 거닐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압도적으로 존재감을 내뿜는데다 가장 큰 충격을 안겨주는 단편은 시리즈의 시작부터 독자로 하여금 궁금증을 키워나가게 만들었던 남편 히로오와의 관계가 그려진 「로즈 가든이다.

 

 

꿈속에서 본, 히로오의 햇볕에 그은 뺨에 흐르던 눈물이 떠올라 도무지 전화를 받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 한밤중에 걸려 오는 전화는 받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p.7, 기리노 나쓰오, <얼굴에 흩날리는 비>

 

 

  '남편의 죽음'이라는 것은 미로 시리즈의 가장 처음에서 시작해 계속해서 미로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갈수록 커질 수 밖에 없는데, 「로즈 가든」에서는 히로오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인도네시아에서의 행보와 고등학생 시절 미로와 히로오의 첫 만남을 그려내고 있다.

 

 

 

  상당히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미로와 그녀의 세계에 빠져버린 히로오, 그리고 의붓아버지인 무라노 젠조 사이의 관계는 줄 위에 서 있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마치 미로의 집 앞에 놓인, 황폐한 정원 속에 피어난 장미처럼. 히로오와 미로의 관계 사이에는 뾰족한 가시가 숨어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세계에 들어가려고 몸부림쳤던 소년 히로오와, 그 세계에 갇혀 그 속을 헤매고 있는 미로의 남편 히로오의 고뇌는 또 다른 미로(迷路)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욕망에 충실했던 두 남녀와 또 다른 한 남자, 그 셋의 관계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오로지 히로오의 시선으로, 그의 회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이기에 진실은 알 수 없다. 히로오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진실인지 거짓인지조차 애매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렇게 히로오의 마음 속에 피어오른 욕망 역시, 지금까지 지켜보고 있었던 기리노 나쓰오의 시선 바로 그것이었던지라, 쉽사리 외면할 수조차 없다.

 

 

 

  좁은 의미가 아닌 포괄적인 '세계관'을 생각해보자. 무라노 미로 시리즈를 담고 있는 세계관은 과연 어떤 것인가.

  신주쿠 2초메에서 야쿠자 조직의 조사원으로 활약했던 아버지의 사무소를 이어받아 탐정일을 시작한 여탐정 무라노 미로. '탐정'이라는 한 마디로 그녀를 설명할 수는 없다.

  끈적끈적한 욕망이 넘쳐나는 거리 속을 차가운 시선으로 걷는 여느 탐정 역시 아니다. 그녀 역시 한 명의 욕망에 충실한 인간으로서 갈등하고 고뇌한다. 그리고 그 뒤에서 그녀를 든든히 지켜주는 무라노 젠조라는 존재가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듬직하고 크게 다가온다. 그렇게 생각했던 무라노 젠조였기에 「로즈 가든」 속 히로오가 그려내고 있는 무라젠이 더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세계 속에 푹 빠져있는 동안, 가장 마지막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에 이르러서는 1권에서 그저 스치듯 지나갔던 장면이 상당히 중요한 열쇠가 되어 재등장한 것을 보며 도대체 이 작가는 얼마나 치밀하고 촘촘하게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었던 것인가! 하고 놀란 기억이 있다.

만화책 몇몇을 읽으면서도 역시 비슷한 연결고리에 깜짝깜짝 놀라곤 하는데, 최근 동생이 해 준 얘기에 따르면 만화의 경우 연재라는 형태로 이야기를 짜맞추어 나가는 작업인지라 스토리가 무지하게 안 풀리면 괜히 앞 부분을 뒤적이며 한 번 써먹을 수 있겠다 싶은 소재를 다시 등장시키곤 한다는 것이 진실이란다. 그래도 꽤나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는 참 좋다.

 

 

 

  생뚱맞게 이 이야기를 왜 했느냐 하면 기리노 나쓰오가 무라노 미로 시리즈를 써내려가면서 그녀가 생각한 무라노 미로와 무라노 젠조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와의 시리즈와는 달리 너무나도 예상 밖의 아버지-딸의 관계를 맞닥뜨렸던지라 과연 기리노 나쓰오는 히로오의 죽음이라는, 처음부터 죽 이어져왔던 미로의 세계 속에 미로의 고등학생 시절을 고려를 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는 미로라는 여탐정을 그려내기 위한 본질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 것이다.

  히로오의 기억 속 고등학생 미로와 무라젠의 모습은 진실인가? 혹은 미로와 히로오 사이의 게임에 불과했던 것일까?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그들의 모습으로는 미로와 히로오의 치명적인 게임이 끝내 히로오를 죽음으로 몰고 갔을 것이라고, 히로오는 그렇게 미로(ミロ)라는 미로(迷路)를 헤맸던 것이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기에 그 의문에 대한 답과 함께 마지막 퍼즐 조각은 <다크>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차츰차츰 '무라노 미로'라는 세계를 쌓아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단편집 <로즈 가든>은 꽤나 핵심적인 조각을 쥐고 있는 단편집이다. 그리고 마지막, <다크>와 함께 그 퍼즐을 완성해보고자 한다.

 

 

 

히로오의 머릿속에서 롤링스톤스가 잦아들고 대신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미로. 고등학교 동급생. 나는 아내의 세계에서 도망쳐 홀로 이곳을 찾았다. 아니, 도망친 게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이 빠져들었다. 

-p.17, 「로즈 가든」

 

 

 

욕망이 끝없이 피어오른다. 이 사랑스러운 여자가 그 씨앗을 뿌렸다.

(중략)

난생처음 느낀 복잡한 감정이 당황스러운 한편, 내가 그렇게 느꼈다는 사실에 현혹되었다. 분명 미로에게 빠지리라. 나는 예감했다. 안경점 여자와의 지루한 관계는 뇌리에서 깨끗하게 사라졌다. 한참이 지나서야 미로의 세계에 빨려들었음을 깨달았다. 당시 나는 미로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몹시도 안간힘을 썼다.

-p.31, 「로즈 가든」

 

 

 

어린아이의 마음이라, 히로오에게 소녀란 성숙하고 관능적이어야만 했다. 열다섯의 미로처럼. 그것은 일종의 재능이다. 재능 있는 소녀를 만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알고는 있지만 단념할 수 없었다. 미로의 세계에 갇혀버린다는 건 바로 그런 의미였다.

-p.40, 「로즈 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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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수장룡의 날
이누이 로쿠로 지음, 김윤수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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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다. 나른하다. 선명하다. 그러나 모호하다. 

이누이 로쿠로의 <완전한 수장룡의 날>을 읽는 내내 드는 생각이다.

 

 

일본의 남쪽 섬, 관광지로 개발하기도 애매한 해안 절벽이 있는 섬의 끝에서 썰물이 빠지고 나면 물 웅덩이가 드러난다.

물 웅덩이에 묽은 청산가리를 넣고 잠시 기다리고 있으면 물고기들이 배를 드러내며 둥둥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작살을 찔러 물고기를 잡으며 놀곤 한다.

그래도 역시 청산가리는 맹독인지라, 청산가리를 넣은 물 웅덩이에는 붉은 깃발이 달린 대나무 대를 세워둔다. 밀물이 밀려오면 자연스럽게 그 대나무는 쓰러져 바닷물과 함께 떠내려간다.

문득, 그 강렬한 붉은 빛에 매료된 것일까. 동생 고이치는 깃발을 잡으려 손을 뻗는다. 그리고 밀어닥친 파도에 휩쓸려가는 동생의 손을 황급히 잡으려 달려갔다가 함께 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내내 놓지 않았던, 꽉 마주잡았던 두 손.

 

 

이야기는 푸른 바다 사이에 우뚝 서 있는 붉은 깃발, 그리고 그 바닷물에 휩쓸린 남매의 모습이라는 강렬한 이미지와 함께 시작된다.

순정만화작가 아쓰미는 정기적으로 동생을 찾아간다. 자살 시도를 했으나 미수에 그쳐버려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남동생 고이치이지만, 의식만은 그대로 남아있기에 SC인터페이스라는 기술의 도움을 받아 정기적으로 의식을 접촉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고이치는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아쓰미와의 센싱을 단절해 버린다. 고이치는 어째서 그렇게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일까? 고이치가 자살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쓰미는 동생의 진심을 파헤친다. 그러나 계속되는 센싱은 아쓰미의 현실과 의식, 현실과 꿈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갈 뿐이다.

침식되어가는 경계가 모두 허물어졌을 때, 그 곳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꿈을 꾸면서 '아, 이건 꿈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토록 생생한 일상이었건만, 문득 감았던 눈을 다시 뜨고 나서야 지금까지 꿈 속을 헤매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혹은 완전한 비일상 속에 들어있는 내 모습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눈을 뜨면 그것은 꿈 속에서의 일탈이었음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우리는 안심한다. 불안했든 꿈 속과는 달리, 이 곳은 단단하게 나를 받치고 있는 현실이라고. 그 곳으로 돌아왔다고.

 

<완전한 수장룡의 날>에서는 상당히 강렬한 이미지와 낯선 듯 낯설지 않은 소재로 그 꿈과 현실의 경계를  서서히 침식한다. 그 모호한 분위기가 잘 살아있는 소설이다.

만화가로서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생각했는데, 문득 침대에 누워 있던 동생이 등장한다. 동생은 창 밖으로 뛰어내린다. 권총으로 머리를 겨냥한다.

익숙한 공간이었다고 생각했던 집 밖의 문을 열었더니 그 밖에는 어린 시절 여행을 떠났던 남쪽 섬의 해안 절벽이 펼쳐져 있다.

정신을 차려보면, 아쓰미는 자신도 모르게 잠들어있거나 고이치의 의식과의 센싱을 하고 있기 일쑤다.

고이치는 묻는다. 샐린저의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 속 시모어 글래스는 어째서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았냐고. 고이치도 정말 SC인터페이스 속의 자신이 현실인지 시험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쓰미의 의식을 함께 따라가고 있노라면 독자 역시 문득 아쓰미의 의식 속을 헤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해안 절벽, 섬을 떠나 배 밑에서 언제나 깡깡이질을 하며 배의 녹을 뒤집어썼던 젊은 날의 외할아버지, 지느러미가 있는 수장룡 플레시오사우르스는 공룡이 아니라며 어린 고이치의 그림에 다리를 마구 그려넣었던 외할아버지. 해안에서 보물을 찾고 있는 두 소년소녀, 모래사장 밑에서 발견한 플레시오사우르스.

아쓰미의 의식 속을 돌아다니는 이 모든 오브제들은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 것인가. 아니, 그저 말 그대로 의미 없는 나열일 뿐일까.

그 상징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글 속에서 함께 머물고 있는 아쓰미의 모습은 아쓰미의 현실인지 그녀의 의식 속인지 독자들은 그 모호한 경계를 아쓰미와 함께 배회한다.

 

아쓰미의 기억 속 강렬한 이미지와 그녀의 상상 속 그 모습들은 너무나도 나른하고 고요한지라 그 묘한 분위기에 취해, 호접몽에 들어간 듯한 애매한 경계를 함께 헤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까지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그 분위기와 여운을 곱씹어보게 되는 것이다.

서서히 경계가 침식되어가는 '분위기'. 바로 그것이 <완전한 수장룡의 날>이다.

 

 

그 고요하고 나른한 분위기에 휩싸여 소설 속 세계에 들어가는 것은 상당히 좋았다. 소설의 끝까지 이것은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혹은 의식 속을 배회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계속되는 반복이 조금 지겨워지려는 찰나, 그 모호함을 명확하게 만드는 결말 또한 반복되는 이야기를 읽었다는 허탈함 대신 만족감을 안겨준다.

 

하지만 그렇게 의식과 현실 사이의 모호함이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동안, 작가는 자기 스스로 그 모호함을 조금 뚜렷하게 만들어 아쉬움을 남긴다.

바로 '호접몽' 그리고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이다.

 

 

어느 것이 꿈이고 어느 것이 현실인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문득 나는 호접몽 이야기가 생각났다.

장자라는 사람이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는데 어쩌면 그 꿈은 나비가 꾸는 장자의 꿈일지도 모른다는 중국 고사다.

이전에 sc인터페이스를 통한 코마 워크에 대해서 스기야마 씨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마치 호접몽 같군, 하며 감상을 내놓았다.

-P.73

 

 

르네 마그리트 그림에 <빛의 제국>이라는 작품이 있다.

언뜻 보기에 평범한 풍경화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못가에 서 있는 이층짜리 서양식 저택과 그 뒤로 반짝거리며 펼쳐진 푸른 하늘 사이에 이상한 대비를 발견할 수 있다.

즉 거기에는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풍경이 그려져 있다.

서양식 저택 창문으로 보이는 실내 불빛. 수면에 비치는 건물의 색감과 가로등 불빛, 이것들을 본뜬 그림자는 모두 밤의 색깔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하늘만은 빛을 지닌 한낮의 밝고 푸른 하늘로 표현되어 있다. 낯익으면서 절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마법 같은 풍경.

-p.145

 

 

이처럼 직접적으로 호접몽과 빛의 제국을 언급함으로써 작가는 자신의 의도를 명확히 드러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의도가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 개인적으로는 김이 빠져 버리게 만들었다.

분명히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명백하다. 호접지몽이자 그림 속 세계처럼 낮과 밤이 혼재한 듯한 현실과 의식의 모호한 경계.

이를 조금 더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녹여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 모호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 속에서 훨씬 더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뿐만 아니라, 식물 인간 상태에 놓인 인간에게도 '의식'이 존재하기에 그 의식과의 접촉을 시도한다는 SC인터페이스에 대한 설명도 꼭 그렇게 구구절절해야만 했을까.

작가는 참고 문헌을 통해 SC인터페이스라는 장치의 개연성을 높이고 있는데, 간단히 설명해도 받아들일 수 있는 설정에 너무 힘을 쏟아부었다.

심지어 장치 관리자가 설명하는 내용을 아쓰미도 멍하니 못 알아듣고 있는데 미스터리를 기대한 독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려고 한다. 그 순간 흐트러지는 집중력이 상당히 아쉽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는 동안 내어놓은 결말은 꽤 재미가 있다.

복선은 적으나 상당히 핵심을 찌르고 있고, 조금은 급하게 마무리짓는 듯한 느낌 역시 지울 수 없으나 그럼에도 앞에서의 구구절절한 설명을 하나로 모은 매듭은 깔끔한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예상했던 대로의 장면이 반, 예상치 못했던 장면이 반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소설의 전반을 지배하는 현실과 의식을 넘나드는 서술 속에서 엿보고 예상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적지만 꽤나 정곡을 찌르는 복선을 깔아두었다고 생각한다.

 

이누이 로쿠로는 <완전한 수장룡의 날>로 가이도 다케루의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이후 2011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을 수상했다.

만장일치를 할 정도였을까? 생각하면서도 다른 작품을 못 봤으니 경합하는 후보작 속에서는 뛰어난 작품이었으니까,라는 예상을 조심스레 해본다.

극작가로서 이미 경력을 어느 정도 쌓은데다 간결하고 담담한 문장에서 풍겨오는 분위기는 꽤 마음에 들었기에, 다음 작품을 한 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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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몽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2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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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 시리즈는 정말 오랜만이다. <용의자 X의 헌신> 이후 드라마 갈릴레오, 그리고 출간된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의 두 번째에 해당하는 <예지몽>은 드라마 그리고 <탐정 갈릴레오>의 시기와 들어맞는다. 젊은 시절의 구사나기 형사와 유가와 교수의 활약을 그려내고 있는데, 사실 이렇게 쓰고 있으려니 좀 뻘쭘하다. 이건 도대체 얼마나 뒷북인 것인가.

 

어쨌든 좀처럼 기회가 닿지 않아, 그리고 어차피 또 비슷한 내용일 거란 생각에 시간이 흐르다 인연이 닿으면 읽겠지 라는 느긋한 마음으로 있는 와중에, 내 남동생이 서서히 히가시노 게이고의 세계에 발을 담가놓으려고 하는 것을 목격했다. <용의자 X의 헌신>을 읽더니 나 빼놓고 <갈릴레오의 고뇌>는 빌려놓고 벌써 반납.ㅋㅋ 뭐 딱히 섭섭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예지몽>을 빌려서 읽고 있길래 나도 좀 읽자고 반강제로 연체를 무릅쓰고 읽게 되었다.

 

결론은, 그냥 쿨하게 반납하라고 보내줘도 될 뻔했다. <탐정 갈릴레오>와 비슷해서 새롭거나 신선한 것이라고는 우리가 잘 모르는 바로 그 과학 기술에 관한 것 뿐이다.

 

<탐정 갈릴레오>에서부터 신비주의 사건 담당 형사가 되어버린 구사나기의 주변에는 계속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묘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벌어진다.

 

 

한 청년은 소녀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 「꿈에서 만난 소녀 」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고대하며 소녀의 방에 침입했다 도망가던 중 뺑소니 사고를 일으킨다. 또 다른 청년은 여자친구가 살해되던 시각에 범인의 집 앞에 나타난 여자친구의 「영을 보(게 된)다」「떠드는 영혼」이 모였다는 뜻의 심령 현상 폴터가이스트가 일어나는 집은 누군가의 남편의 실종과 관련이 되어있는 듯하고, 누가 봐도 수상쩍은  피해자의 부인, 「그녀의 알리바이」는 남편의 죽음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이며, 피해자의 딸이 봤다는 아버지 곁의 도깨비불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애인의 자살을 눈앞에서 목격한 남자를 둘러싼 탐문조사에서, 경찰은 생각지도 못하게 사건이 벌어지기 이틀 전「예지몽」을 꾸었다는 소녀의 증언을 듣게 된다. 그 예지몽은 그저 몸이 약한 소녀의 상상이었을까?

 

얼핏 봤을 때는 심령 현상이거나 몇 겹의 우연이 겹친, '확률이 0은 아니니까'라는 것으로 넘어갈 수 있을 법한 사건의 이면에도 반드시 필연적인 이유가 숨어있다는 것.

구사나기 형사가 유가와 교수를 찾아가면 언제나 그 '필연'이 되돌아온다. 똑같은 사건 현장에서 어느 것에 중점을 둘 것인가, 중요한 단서는 무엇인가. 그 우선 순위를 결정한 다음부터 사건의 진상은 뒤바뀌고 마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보면 떠오르는 몇몇 작품들이 있는데, 어쨌든 비슷한 맥락이라면 비슷하고 그 와중에 자신의 전공을 살린 전문적인 과학 원리를 이용해 기묘한 현상을 증명했다! 라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상당히 흥미롭고 색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걸 <탐정 갈릴레오>로 끝냈어야 했다. 그 다음은 결국 비슷한 패턴의 반복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예지몽>은 그 전형적인 속편의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유가와 교수가 늘어놓는 전문 지식은 본격 미스터리에서 엿볼 수 있는 트릭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독자의 상상조차 막아버린다. 당췌 얘들이 뭘 말하는 지를 알아야 그래, 그랬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는 것을. 물론 <예지몽> 속 단편들은 그나마 <탐정 갈릴레오>처럼 어마어마한 실험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완벽하게 이런 걸 가져오고 무슨 공감을 해 보라는 것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단편도 있지만 합리적인 해석을 내릴 수 있는 단편도 있다. 하지만 그 다행스러운 요소는 곧 아쉬움으로 바뀌어버린다. 미스터리를 단편으로 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은 알고 있지만, 그다지 참신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탐정 갈릴레오가 심령 현상을 과학적으로 해결!이라는 설정마저 첫 편에서는 신선할 수 있는 것을 속편의 제작, 그리고 패턴의 반복으로 전락해버리면서 그저 그런 작품집이 되어버린 것. 그것이 이 <예지몽>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갈릴레오 시리즈가 단편으로 머물러 있는 이상, 비슷하게 느껴졌을 것이라는 것을 예지했어야 했다. 반복의 이면에 숨어있는 필연을 알아차려야 했다. 그래봤자 이미 작품이 출간된 이후 9년이 지나 한국에 소개되고 있는 것이니 뭐 어쩌겠는가. 그리고 여전히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네임 밸류는 엄청난 것을. 더불어 외면할 수 없는 이 가독성이라니.

 

뱀다리를 조금 더 곁들이자면, 이놈의 <용의자 X의 헌신>과 <악의>와 <백야행>에 대한 미련은 끊이질 않는다. 수많은 돌 중에 옥이 섞여 있으니 또 다른 옥을 찾아보려는 독자의 마음을 좀 배반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알고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죠? 어흑..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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