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아데나 할펀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내가 나이가 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는 언제인가.


  점점 TV에 나오는 가수들이 오빠에서 동생으로 바뀔 때? 어느샌가 술집을 신분증 검사도 없이 드나들 수 있을 때? 어제 수능을 쳤던 고3 수험생들이 벌써 93년생이라는 것을 문득 깨달았을 때? 새내기로 귀여움받던 시절이 어느샌가 훌쩍 취업을 준비하는 졸업생으로 둔갑해버렸을 때?

  아무려면 어떤가. 내 또래의 사람들은 아마 이리 생각할 것이고, 나보다 조금 어린 이들은 이제 한 풀 꺾이는 나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이들은 아직 한창 때라고 이야기할텐데 말이다.

  나이는 상대적인 것이고, 누구나 그 순간의 나이를 딱 한 번, 365일동안만 보낼 수 있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후회 혹은 추억으로 점철된 과거를 회상하며 '그 땐 그랬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그리고 점점 10대에는 그렇게도 싫었던 어른의 시선이 공감되기 시작하고, 조금 시간이 더 지나면 지금의 나를 생각하며 그 때는 좋았어.. 라고 괜히 지금 이 순간을 그리워하겠지.

 

 



 

 

  아데나 할펀의 <스물아홉>은 내가 방금 지껄인 말들을 코웃음 하나로 모두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일흔 다섯을 맞이한 엘리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일흔 다섯. 엘리 할머니는 75년이라는 세월 동안 아마 그녀는 어머니로서, 여자로서 지혜를 쌓아왔을…

 

 

 

일흔 다섯 살이 된 것을 축복으로 여겨야 옳거늘. 젠장, 나도 말은 그렇게 한다. 나이 듦의 가장 큰 기쁨은 세월을 통해 얻은 지혜라고. 그래야만 그나마 기분이 나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다 헛소리다. 그러나 달리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모두들 절망할 텐데.

-p.9

 

 

 

…것이라는 나의 추측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시원스런 말투로 말문을 열다니.

  나중에 늙어보니 후회가 되니, 젊을 때 부터 자외선 차단제를 꼭꼭 바르고 양산을 들고다니며 햇빛을 피할 것이고, 보습을 꾸준히 해 줘야 하며, 가끔은 미친 짓을 해 보라며 충고를 해 주신다.

  아, 이 할머니, 반할 것 같아!

 

 

 

  늙은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지난 삶을 생각하는 엘리 할머니는 그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남편에게만 의지하고 살아왔던, 여자는 자신을 잘 돌봐줄 남편을 만나 살면 된다는 자신의 어머니의 충고를 따랐던 선택이 아쉽기만 하다. 더군다나 너무나도 아름다운 시절 속에서 빛나고 있는 스물 다섯의 손녀 루시는 어느샌가 의상 디자이너로서 자립하며 자신이 바라마지않던 생활을 하고 있으니, 어찌 질투가 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러나 할머니도, 우리도 모두 알고 있다. 그 때와 지금은 시대가, 사회가 다르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젊음은 젊은이들에 의해 낭비되고 있다는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중략)

젊음은 오직 그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만 주어져야 하는 보물이다. 그것으로 무얼 해야 좋을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낭비되어서는 안 된다.

-p.55

 

 

 

  엘리 할머니는 생일 케이크를 앞에 두고 촛불을 빌면서, 간절하게 소원을 빈다. 하루만, 단 하루만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처진 가슴도 쑤셔오는 무릎도, 주름진 얼굴도 아닌 젊은 시절의 자신의 모습으로 하루만 보낼 수 있다면.

  그냥 그러고 지나가려나 했건만, 다음 날 아침 문득 눈을 뜬 엘리 할머니는 자신의 몸이 너무 가뿐하다는 것을 느낀다. 살금살금 다가간 거울 앞에는, 스스로도 몰랐던 너무 예쁜 젊은 날의 자신이 서 있었다! 아니, 정말 소원이 이루어진거야?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는 엘리 할머니는 천금같이 주어진 단 하루, 자신이 원하는 하루로 꽉 채우기로 결심한다. 시작은 평소 혈당치 관리에 마음껏 먹지도 못했던 케이크를 왕창 먹어보는 것으로.

  엘리 할머니는 어째서 스물 아홉살로 돌아간 것일까? 그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엘리 할머니 뿐만 아니라, 절친한 친구 프리다와 딸 바바라, 그리고 손녀 루시 모두에게 변화를 가져다줄 기적같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어떤 인생도 완벽하지 않아. 하지만 오늘 밤은, 오늘 밤만은 완벽할 거야.

-p.241

 

 

 

  그렇게 시작된 하루는? 그리고 그 다음은?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여차저차 보낸 하루. 그 뒤 풀려버린 마법. 밀려오는 아쉬움. 그러나 결국엔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는 깨달음.

  일흔 다섯의 주인공은 결코 하루 동안의 행운에 욕심을 내지도 그 하루의 마법에 홀려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엘리 할머니는 그렇게 자신의 한 번 뿐인 삶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단 하루의 기적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기적의 하루는, 엘리 할머니 뿐만 아니라 주변의 인물들에게도 변화를 가져다 준다. 언제나 자신의 외모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의존적인 성향을 버리지 못하는 프라다 할머니는 스물 아홉의 엘리를 만나기 이전, 단 하나뿐인 친구를 찾기 위해 그 힘든 몸을 이끌고 걷고 또 걷는다. 너무도 센 기에 주변 인물들을 주눅들게 하고, 어머니와 딸을 너무나도 사랑하나 나머지 간섭을 꽤나 심하게 하며, 남편과의 사랑했던 시절마저 잊어가고 있는, 엘리 할머니와는 정 반대인 딸 바바라는 프리다 할머니와 함께 잠적해버린 엘리 할머니와 루시를 찾아다니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삼게 된다. 함께 있는 온화한 프리다 할머니는 바바라에 폭발하며 지금까지 참아왔던 것에 해방감을 느끼고, 늘 성질을 부렸던 바바라는 이로 자신을 한 번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생각해 보니, 오늘 엘리가 사라져서 기뻐. 나도 그렇게 할까 봐. 나 자신을 위해서 살아야 할 시간에 걱정만 하면서 너무 긴 세월을 보냈어." 

프리다의 뺨에 눈물이 흘렀다.

"이젠 나도 나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아."

-p.282

 

 

 

  결국 인생이란, 삶이란 보편적인 것이다. 세상에는 세상에 있는 사람 수 만큼이나 다양한 얼굴이 있지만, 각자가 걸어가는 길은 색다르기보다는 비슷한 법이다.

  엘리 할머니는 그런 평범한 삶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비록 시대적 상황은 달랐더라도. 그리고 그렇게 평범한 삶을 살아왔지만, 그녀는 자신의 삶이 자신의 것이었기에,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었기에 소중한 것임을 알려준다.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결국은 소중한 보석이 되어줄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엘리 할머니의 메시지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해 결국은 갈등과 고민을 겪게 하는 바로 그것 말이다.

 

 

 

늙어버린 내 얼굴을 바라보면서 기쁨을 느낄 순간은, 내 평생 다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지금 내 얼굴이 어떤 모습이건 그것이 내 삶의 증거라는 사실이다.

-p.385

 

 

 

  이를 작가 아데나 할펀은 스물 아홉으로서의 하루라는 소재로 유쾌하게 그려냈다. 그와 더불어 친구와의 우정, 그리고 어머니와 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여자들의 공감을 많이 이끌어내리라 생각한다.

 

 

 

  흔히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며, 나에겐 지나가버린 세월에 머물러 있는 이들에게 이야기하곤 한다. '그 때가 좋을 때야.', '그 때가 좋았지.', '너희 때가 제일 예뻐.' 등등.

  앞서 이야기했듯 나이란 누구에게나 상대적인 것으로, 20대의 누군가는 10대 시절의 자신을, 30대의 누군가는 20대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나간 추억을 그리워하고 후회한다.

  엘리 할머니의 교훈은 간단하다. 스물 아홉의 누군가이든, 일흔 다섯의 누군가이든 지나간 후회는 있을지언정 그것에 언제나 머물 수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앞으로 그 모든 걸 바꾸어나갈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을. <스물 아홉>에서는 바로 그 진리를 스물 아홉으로 하루를 보내게 된 할머니의 깨달음으로 그려냈다. 

 

 

 

정말이지, 인생은 참 우습다.

진실은 바로 이것이다. 나는 나의 삶에 최선을 다했다. 후회가 있냐고? 물론 후회는 항상 있다. 그러나 후회보다 훨씬 더 많은 놀라운 일들이 있었다.

-p.402

 

 

 

  정말이지, 그럼에도 인생은 참 우습다. 나는 결국 지금 이 순간, 엘리 할머니의 이야기를 받아들였지만 내일이면 다시 엘리 할머니가 밟았던 전철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그러니 너무나도 멋진 엘리 할머니의 이야기를 조금 더 가슴으로 받아들여봐야겠다.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 완벽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을 조금이라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