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부탁해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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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 하면  뭐니뭐니해도 그의 간판 캐릭터이자 스타 닥터 이라부가 떠오른다. 지구상에 이런 인물이 있을 수 있을까 하고 경악하면서도 묘하게 웃기고 매력적인 그 캐릭터 말이다. 실은 가끔 이런 캐릭터를 만들어낸 작가도 분명히 제정신은 아닐거야, 하고 괜히 혼자 큭큭대며 웃은 적도 있다. 아무리 허구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모든 이야기는 현실에서 나타나는 법. 아무리 막장 드라마라고 손가락질을 하지만, 현실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일과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종종 보면서 가끔은 현실만한 드라마도 없다,고 생각할 때도 있는데 이 닥터 이라부라는 캐릭터는 오죽하랴.

 

 

 

야신(野神), 야왕(野王) 등 국내 프로야구 팬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몇 감독님들의 별명이건만, 감히 이런 말도 함께 붙여주고 싶다.

야덕(野德), 그러니까 야구 오타쿠,라는 것이다. 실은 야구를 미친듯이 좋아하고 줄줄이 꿰고 있는 후배가 한 명 있는데, 예전에 야구장 한 번 갔다가 지쳐 쓰러질 뻔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아마 녀석의 해설 덕분이었을 것이다. 알아듣는 것보다 구질이 어쩌고... 타격이 어쩌고... 난 그런 전문가가 아니란 말이다.

어쨌든 엄청나게 현란한, 전문가 못지 않은 해설(?) 솜씨에 우리는 별명을 붙어줬었다. 그래 니가 짱먹어라, 야구 오타쿠야! 이 야덕아!!

 

 

 

그런데 그런 별명을 붙여줄 수 있을 사람이 한 분 더 계신 것 같다. 그렇다, 앞에 이야기한 바로 그 분이다. 뭐 야구 관람을 즐기는 모두가 감히 오타쿠,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팬과 마니아 그리고 오타쿠는 엄연히 다르니까,라고나 할까.

 

 

작가로서 이야기를 짜내기도 바쁠 것 같은데, 이리저리 전국과 대만의 야구장, 그것도 1군이 아닌 2군 경기가 펼쳐지는 곳까지 돌아다니며 관람기(야구장 습격사건)를 쓰고, 편집자의 꾐에 넘어가 아테네에서도 야구 경기를 보고 온(오쿠다 히데오의 올림픽) 경력이 있다니, 와, 이런 거라면 인기 작가도 참 좋은 것이구만, 하면서도 웬만한 열정이 아니면 저렇게도 못할거야, 라는 놀라움을 동시에 선사하다니. 

 

 

어쨌든 그렇게, 몇 년에 걸쳐 편집부의 제안으로 야구장이나 락 페스티벌을 향하며 그 관람기를 르포로 쓴 것들이 한 권에 엮여 출간되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이 닥터 이라부 자신의 모델이 되었음을 어느정도 예상하게 하는 입담과 블랙유머로 꽉꽉 채워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실은 <야구를 부탁해>라는 제목 덕분에 온전히 야구 이야기로 가득할 줄 알았다.

 

처음부터 「또다시, 헤엄쳐 돌아가라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동메달에 이어 올림픽 종목으로서는 마지막이 된 야구의 '금메달'을 위해 유례없이 프로야구 선수들까지 동원해 출사했건만, 끝내 노메달의 수모로 귀국할 수 밖에 없었던 호시노 감독이 이끈 일본 대표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가득하다. 그래놓고 무슨 비행기냐, 헤엄쳐서 돌아가라, 그런 거다.

뭐 한국의 경우 금메달 따고는 어찌나 스포츠 채널에서 하이라이트 재방송을 많이 해 줬던지 기억이 생생하지만. 큭큭.

어쨌든 그 생생한 기억과 함께 '일본인'의 올림픽 야구 관람기를 보는 기분에 상당히 재미있었다. 국가적으로도 꽤나 많은 관심을 받는 한일전은 일본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인가보다.

일한전,을 관람하며 두 경기에 모두 선발로 출전했던 '좌완 선수', 라는 언급도, 한국에게 점수를 헌납했던 GG 사토의 결정적인 에러 등등 어쨌든 우리의 통쾌함이 일본인의 씁쓸함으로 그려져 있는 게 상당히 재미가 있었더랬다.

 

 

게다가 당시 일본인의 심정이 그대로 반영되어있다고나 할까, 미국과의 예선에서 일부러 져서 강호 쿠바 대신 한국을 만나려 했던 두 팀 모두의 무기력한 경기를, 그 역시 비슷한 감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점수 좀 빨리빨리 내라, 이것밖에 못하냐,고 하다 끝내 지고 나니까 이런 데서도 지다니 분하다,라니. 이 얼마나 모순적인 감정인지! 흥,하고 콧방귀를 껴 줬지... 벌써 3년 전의 일이건만, 그럼에도 말이다.

그리고는 한국의 우승 소식에 시큰둥한 반응. 아아, 배가 아팠구나 하고 괜히 내가 다 재미있었다.

 

 

그리고 뉴욕을 방문해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구장의 시설에서도 느껴지는 듯하다는 말과 함께 야구의 본고장을 만난 감격을 그려낸 「뉴욕 만세!」, 그리고 오랜 세월동안 낡은 구장이 홈팀도 없이 내버려져있던 센다이 시에서 새로운 프로야구단이 창단하면서 개막전에 참가한 이야기를 담은 「야구를 부탁해. 그야말로 다른 곳에서의 '식도락'과 함께 오쿠다 히데오의 야덕스러운 애정이 가득하다. 일본 대표팀과 프로야구팀에 대한 쓴소리도 끝이 없다. 지바 롯데가 팬들보다는 이익에 신경을 쓰는데, 그래서는 안된다는 쓴소리에는 어찌나 공감을 했는지. 한국이나 일본이나 롯데라는 구단(기업)은 똑같구나, 하는 공감 등등.

 

 

 

확실히, 베이징 올림픽이 아닌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에는 잘 알지 못하다보니 많은 공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그쪽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언제나 그렇듯 응원하는 팀이 잘 할 땐 격려를, 못 할 때는 독설을 마구마구 날려버리는 것을 오쿠다 히데오의 글과 함께 하는 것도 즐거울 것 같다.^^

 

 

 

 

그러나 야구 이야기만, 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지만 록 페스티벌, 만국 박람회, 롤러코스터 체험, 사찰 순례 등 오쿠다 히데오 아저씨는 참 바쁘기도 하셨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작가라는 직업, 아니 인기 작가라는 직업, 참 좋겠다 싶었다....

 

젊음, 청춘을 부러워하면서도 아저씨의 노련함을 발휘해 준 록 페스티벌, 괜히 사람들이 우글거리니까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당당히 찾아간 만국 박람회, 세계 최고의 롤러코스터 '좋잖아요' 타러 갔다가 괜히 다리가 후들거렸으나, 아무도 선뜻 포기하자는 말을 못한 채 결국 타고 말았다거나ㅡ결국 서로 말을 꺼내길 기다리고 있었으나, 오쿠다 히데오의 눈치를 보느라 말 못했다고. 말 했으면 거리낌없이 용서해줬다는 작가의 말이 재밌다.

그 밖에도 지팡이, 옷, 갓 등 본격적으로 순례자 복장을 빵빵하게 차려입고 사찰 순례를 하는 등, 그 모든 것에 뭔가 움직이기 싫어하는 중년의 아저씨의 투덜거림과, 아저씨이지만 가끔은 젊은이들처럼 놀고 싶다는 열정과, 그럼에도 연륜이 묻어나는 독설이 즐겁다.

 

실은, 야구 이야기보다 마지막 짧지만 강렬한 르포들이 내 웃음포인트였는지, 지하철에서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어쨌든, '에세이'라는 장르가 아무래도 더더욱 일본의 정서가 많이 녹아있기에 조금 낯설수도 있지만,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평소 즐겨 읽는 이에게는 닥터 이라부의 모습이라 할지도 모를 오쿠다 히데오의 면모를 지켜보는 것도 나름대로 즐거운 일이 될 것 같다. 오히려 책장을 넘길수록, 빠져들어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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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레크 저택 살인 사건
쓰쓰이 야스타카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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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 또 속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얄미우면서도 기분좋게, 그리고 완벽하게 속아넘어간 것은 참 오랜만이라 즐겁다.

쓰쓰이 야스타카의 <로트레크 저택 살인사건>이다.

 

 

'로트레크 저택 살인사건'. '저택'이라는 말이 붙은 이상 대부분의 미스터리 독자들은 생각한다. 오호라, 또 기묘한 구조의 저택을 배경으로 온갖 말도 안 될 것 같은 트릭을 가져와 아마도 밀실 살인, 그것도 연쇄 살인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고. 저택의 구조는 보고 있지만, 아마 생각하기도 어려운 트릭을 가져와 독자들을 농락하기 시작하겠지. 범인은 대충 감이 올지 몰라도 그 범인이 왜 어떻게 살인을 저질렀는지는 작가가 밝혀주고 나서야 아마 알 수 있을 거야.

 

 

아이큐 178의 천재라 불리곤 했던 SF계의 거장 쓰쓰이 야스타카. 개인적으로는 그의 단편집 <최후의 끽연자>만 읽어봤다. 뛰어난 상상력에 감탄하면서 틀림없이 최근의 작품일 것이라 생각했던 예상과는 달리, 꽤나 나이가 많은 작가님에 무려 단편들이 대체적으로 발표된 해가 1970년대에 머물러 있어서 그 당시에 이런 생각을 한거야?! 하고 깜짝 놀랐다. 그 단 한 권으로, 그는 나의 뇌리에 강렬하게 박혀 버리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 중에서는 본격 미스터리라고 소개될 만한 작품은 세 작품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로트레크 저택 살인 사건>은 누가봐도 '본격 미스터리'가 틀림없어 보이는 제목에 '제거됨'을 나타내는 듯한 표지의 그림이다.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다.

 

 

 

과거 사촌의 잘못으로 인해 척추를 다친 뒤 난쟁이로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하마구치 시게키는, 오랜만에 어린 시절 부모님의 소유였지만 이제는 기우치씨의 별장이 되어버린 로트레크 저택에 초대를 받는다. 시게키와 비슷한 처지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를 화가 로트레크의 그림을 모았으니 구경도 할 겸, 그리고 나름대로의 친분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쓰리 버진스'를 만날 겸.

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 들려온 두 발의 총성, 그리고 시체로 발견된 히로코. 저택에 머무르던 이들은 외부인의 범행이 아닐까 의심하지만, 경관들이 버티고 있는 와중에 두 건의 살인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혼란에 빠진다. 분명히 범인은 내부인 중의 한 명이라는 것. 과연 범인은 누구이며, 어째서 살인을 저지른 것일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이상의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을 듯하다. 사회파 미스터리에서 보여지곤 하는 다양한 인간과 그를 둘러싼 주변을 그려내는 대신, '본격'을 지향하는 미스터리는 한정된 공간과 인물만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전개시킬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의 미친듯한(이 아니라 미친) 행각을 그려내거나,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을 가지고 독자로 하여금 안타까움과 분노에 빠뜨리는 것은, 결코 '본격 미스터리'의 역할이 아니다. 오로지 체스판 위에 놓인 말들의 움직임과 감정만으로, 그리고 그 밖의 요소는 철저히 배제한 채, 게임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그렇듯, 저택 안에 모여있는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한정된 관계만으로 이야기를 전개해가는 이상 '살인사건' 이외의 이야기 자체는 단조롭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로트레크의 그림과 함께 병치되는 듯한 시게키의 사연은 안타까우면서도 독특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애정관계나 이해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여느 '저택 미스터리'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그런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벌어진 살인사건ㅡ.

 

 

하지만 이 때만 해도 몰랐던 것이다. 쓰쓰이 야스타카의 기상천외한 트릭을!

 

 

 

 

영화의 반전이 그다지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최고의 반전!'이랍시고 온갖 홍보를 다 해놓고 막상 '짐작했던 그 결말'이 나와 관객의 김을 새게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영화에는 '최고의 반전!'이랍시고 홍보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반전이 없는 것이 반전이야?

실은 그보다는, 아무 생각없이 보고 있었는데 깜짝 놀라게 하는 반전이 즐겁다. 그다지 미스터리는 아니더라도 문득 보고 있었는데 앞의 암시와 복선이 합쳐져 기분 좋은 놀람을 안겨주는 것, 얼마나 좋냐고.

 

그러나 미스터리는, '반전 없어요'라고 말하면 장사가 되질 않는다. 이미 독자가 '속는 것'을 전제로 읽게 되는 문학이기 때문에. 그래서 언제나 어딘가에서 '속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속고 마는 것이 나라는 독자다.

그리고 언제나 작가에게 패배한 뒤 곱씹는 것이다. 언제쯤이면 이들에게 속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과, 어차피 속는 재미가 있는거니 그냥 별 생각없이 속아준 거야,라고, 분한 마음을 슬그머니 핑계삼는 위안. 그리고 언제나, 다음 책을 펼치며 생각한다. '이번에는 속지 말아야지!'

 

 

 



"반드시, 그 누구라도 처음부터 다시 읽을 수밖에 없다!"

"허겁지겁 다시 읽어야 하는 독자는 이미 게임에서 패배한 상태이다."

 

 

 

 

아아, 이렇게 떡하니 '속일테니까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봐!'라고 말하는 듯한 책 속의 문구들. 이걸 본 이상 결코, 지지 말아야지 하는 알 수 없는 투쟁심이 끓어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두고보라지, 나는 다시 펼쳐보진 않을거야!하고.

그래서 나는, 눈에 불을 켜고 열심히 읽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여기서도 어딘가에 분명히, 트릭이 있을 거야. 속으면 안돼, 속으면 안돼....

 

하지만 의외로 이야기는 너무나도 뻔하게 흘러가기 시작하고, 어느샌가 말로만 들었던 '초판 한정 봉인' 부분에 도달하고 만다. 도대체 뭐길래, 이 시점에서 봉인을 해 버린 것인가!

 

 

 

실은, 읽는 동안 '뭔가 이상하다' 싶은 부분이 있었다. 고개를 갸웃한다. 뭐가 이상하긴 한데 정확하게 뭐가 이상한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샌가 소설 속 문장에 설득당해 그 안개 속의 모호함이 사라진다. 그리고, 풀린 봉인 속에서 친절하게 하나하나 '복기'를 해 주는 쓰쓰이 야스타카의 계책에 완벽히 넘어가버린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허겁지겁 다시 앞부분을 읽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 당했구나. 졌다. 완패야. 분하지만 앞을 뒤적이며 '그래 이게 이상했는데!'하며 무릎을 탁 치고 만다.

 

 

 

하지만 그 패배가, 결코 씁쓸하지 않다. 이 기상천외한 트릭에 감탄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씁쓸하기는 커녕 작가의 의도대로 완벽하게 속아넘어가준 내가 기특할 정도다.

그의 계책이 참으로 얄밉다. 하지만 기분은 좋다.

사이코패스의 무자비하고 자극적인 살인이 있는 것도,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도, 너무나도 새롭고 신선한 무대장치 위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런 저택 미스터리에 불과했건만, 봉인이 풀린 순간부터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내가 어떻게 하나, 두고보고 있었던 것이다.

 

 

 

앞서 말했지만 반전이 있다고 광고를 하고 있음에도 완벽하게 속아넘어갈 수 밖에 없었다.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그 반전이 상당히 유쾌하다.

 

 

 

어찌보면 평면적인 모든 요소를, 트릭 하나 만으로 뒤집어버린 쓰쓰이 야스타카의 <로트레크 저택 살인사건>. 나는 그저, 읽어보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다.

반전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읽다보면 깨닫는다. 어느샌가 앞을 뒤지고 있는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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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몰리션 엔젤 모중석 스릴러 클럽 28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박진재 옮김 / 비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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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폭탄 해체에 관련된 긴박감 하면 꼭 생각나는 것이 명탐정 코난, 아마도 36~37권 쯤의 내용이라 생각하는데, 어쨌든 그 만화 속 등장하는 축구의 어느 한 팀ㅡ그 소속 선수들마저 코난과 초반에 인연이 있다. 라이벌이자 절친의 유괴사건으로(이거 스포네요. 그런데 아마 아실만큼 아시지 않을까...-_-;;)ㅡ의 우승과 함께 도쿄에서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에피소드다.

 

근데 이 퍼레이드가 주가 아니라 폭탄범이 숨어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걸려 있는데 폭탄을 예고하는 것 같은 자그마한 폭발이 하나 둘 일어나고, 폭탄을 미리 해체해 버리면 다음 폭발이 일어날 폭탄이 숨겨진 장소를 알아낼 수 없다는, 경찰로 하여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해 버린다. 지금 당장에 휘말린 시민을 구하자니 다음 번 폭탄의 희생양이 되어버리는 시민은 어떡하고...! 발 동동.

 

게다가 내가 상당히 좋아하는 사토 & 다카기 형사의 로맨스 폭ㅋ발ㅋ(이게 폭발했군 결국..-_-;)로도 상당히 좋아하는 에피소드인데, 과거 동료를 폭탄으로 잃어버린 사토 형사의 안타까운 과거 어쩌고저쩌고... 게다가 이번에도 다카기 형사와 코난이 같이 폭탄이 설치된 도쿄 타워의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면서 한 명을 잃을(코난은?ㅋㅋㅋ) 위기에 처하는데 으악~! 하면서. 개인적으로는 다카기 형사라는 캐릭터 상당히 애정하고 있어서 아니 이 작가가 누굴 데리고 가려는거여~!했었다. 어차피 코난이랑 같이 있으니 살겠지만.

 

어쨌든 그쯤에서 끊기고 나서 그 다음 권 기다리느라 똥줄 좀 제대로 태웠었다. 지금은 아련한 에피소드가 되어버렸지만, 개인적으로 명탐정 코난의 베스트 에피소드 중 하나. 아무리 그래도 스케일 크게 폭탄 터지고 이런 걸 좋아하는 것인가 진정으로 나는...?!이라는 생각에 살짝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렇다.

 

 

어쨌든 여기서도 마지막까지 한 줄 만을 남겨둔 채, 암호가 나오는 걸 지켜보다가 결국은 추리로 폭탄이 들어있던 장소를 찾아낸 경찰로 결론내려졌지만, 폭탄 해체에 있어서 독자들의 똥줄을 태우는 최고의 방법은 역시나 헉, 마지막 한 줄을 끊을 수 있느냐 없느냐,다.

 

코난에서는 그래도 좀 더 현실적으로 끝나 비난의 대상;은 아니지만 일단 폭탄 해체에 있어 나의 가장 강렬한 기억에 박혀 있는 게 이 에피소드인지라 좀 이야기가 많이 딴 길로 샜다.

 

 

 

 

 

그럼 본격적으로.

영화 같은 데서 폭탄 해체하면 꼭 이런 일이 벌어지곤 하는 것이다. 으악, 둘 중에 한 전선만 끊어야 폭탄이 멈출수 있어! 다른 하나를 건드리면 끝장이야! 그런데 뭘 끊어야 하지? 갈팡질팡갈팡질팡갈팡질팡. 그렇게 독자 혹은 관객의 똥줄을 완전히 바짝 태우고 나서 하는 소리가 무작정 하나 잡아당겨봤더니 그거였어. 1초 혹은 0.01초 차이로 폭탄 정지. 아놔...-_- 똥줄 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냔 말이다!!!

 

 





사소한 발견이었지만 스타키는 오랫동안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격렬한 자부심을 느꼈다.

그녀는 레드의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을 보기 시작했다. 그건 그녀가 그를 이길 수 있다는 의미였다.

-p.202~203

 

 

 

 

 

 

탐정 엘비스 콜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시리즈라거나 기타 등등으로 스릴러를 사랑하는 독자들의 사랑을 꽤 받고 있는 작가인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처음 만난 로버트 크레이스의 스탠드 얼론, <데몰리션 엔젤>을 만났다. 파괴 천사. 감히 폭파범에게 천사,라는 이름을 붙여줘야할 정도일까 생각하지만 뭐 역설적으로 생각하기로 한다,큭큭.

 

 

쓰레기통 근처에서 폭발물로 추정되는 물체가 놓여있다는 제보를 받고, 폭발물 처리반의 찰리 리지오는 철저한 매뉴얼에 따라, 동료와 함께 폭발물 제거를 위해 그 의심스러운 물체 가까이에 접근한다. 하지만 그 순간 폭발해버린 폭탄. 산산조각난 리지오의 시체와 충격을 받은 동료들.

그 와중에 과거 동료를 폭탄의 폭발로 잃는 유사한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여형사 스타키가 찰리 리지오의 사망 사건의 수사를 맡게 된다. 주변 정황상 폭파범은 분명 리지오를 주변에서 지켜보며 그가 폭탄을 들여다보는 순간, 스위치를 눌러 폭탄에 점화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과연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폭파범은 누구인가? 그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 하나하나 파고들기 시작하는 스타키.

그 와중에, 워싱턴 DC에서 폭파범 검거의 특수요원 펠이 합류하면서, '미스터 레드'의 존재를 언급하기 시작한다. 폭탄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는 스타키와, 경찰을 누르고 스타키를 앞서고 싶은 레드의 대결은, 그렇게 시작된다ㅡ.

 

 




그녀는 해답 없는 소소한 질문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질문들은 폭탄 복원 중에 그 결과가 어느 곳으로도 연결되지 않는 전선들을 발견한 상황 같았다.

그 전선들이 존재하지 않는 척할 수는 없었다. 전선들은 항상 어딘가로 연결됐다.

폭탄을 다루고 있을 때 전선들은 항상 어딘가 안 좋은 장소로 연결됐다.

-p.367

 

 

 

 

 

작가 로버트 크레이스는, 치밀한 취재 결과 끝에 이 모든 과학적이자 범죄의 냄새가 확확 풍기는 폭탄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교육용 자료로도, 수사관들의 행동이 누설되어서도 안 된다는 말과 함께 폭탄에 대해서도 여전히 허구를 가미했음을 밝혔다. 어차피 조금은 상상이 섞인 구라,라는 것에서 분명 '앗 빨간 전선인가 흰 전선인가!'라는, 수많은 그 영화 속 폭탄 해체의 한 장면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라고 솔직히 조금 걱정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분명 허구임에도 상당히 전문적이고 상세한 폭탄에 대한 묘사, 폭발물 처리반에 속해있는 경감들의 활동, 그리고 폭발물에 대한 묘한 환상에 빠진 채ㅡ라기 보다는 사랑해 마지않는 폭파범의 행동 등은 정말 생생하게 다가왔다.

 

 

 

동료를 잃은 슬픔과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여형사 스타키,라는 존재도 여타 경관들의 모습과는 달리 상당히 독특하다. 늘 알코올에 찌들어 동료들이 술냄새를 맡지 않을까 전전긍긍, 자신의 속 깊은 이야기를 쉽사리 털어놓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안고, 그럼에도 어떻게든 자신의 삶의 터전을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녀는 그저 삶의 의미보다는 공허한 목숨을 하루하루 이어갈 뿐이다. 그런 그녀를 도발하는 폭파범 미스터 레드 역시 만만치 않은 캐릭터다. 대부분의 폭파범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자신의 쾌락을 위해 폭탄을 터뜨리곤 하는 레드의 행동과 서서히 스타키를 조여오는 그의 그림자는, 끝내 폭파범이 등장하는 소설 혹은 영화의 미덕,이라 할 수 있는 몇 초 안 남긴 폭탄을 눈앞에 두고 주인공들을 사느냐 죽느냐의 길목으로 몰아넣으니, 아무리 뻔하다고 하지만 정작 없으면 섭섭할 뻔한 그런 장면들 역시 준비해두었다ㅡ물론 빨간전선 하얀전선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레드를 처치-_-;하기 위한 스타키의 행동에는 분명 좀 위화감이 있다. 알콜 중독에 공허하게 살아만 가고 있는 그녀가, 갑작스럽게 펠과의 만남을 통해 스타키의 트라우마가 너무나도 훌쩍 넘어가버려 갑자기 모든 걸 극뽁♡해버린 스타키의 행동은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야 끝이 좋을 수 있으니 작가의 어쩔 수 없는 필연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해 본다.

 

 

 

폭파범은 싫지만, 폭파범을 그려낸 스릴러 <데몰리션 엔젤>은 그래도 꽤 매력이 있었다.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LA를 공포로 몰아넣은 폭파범과 여형사의 대결을 그려낸 로버트 크레이스의 능력은 상당히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파괴를 일삼는 파괴 천사를, 현실이 아닌 소설 속에서 한 번 만나보고 싶다.

 

 

 

 

(+) 그런데 쓰고 보니 이게 코난이여 데몰리션 엔젤이여..-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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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비틀 Mariabeetle - 킬러들의 광시곡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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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솔직히 벌레,라는 이름이 다 붙은 건 싫다. 벌레라는 이름이 없는 것도 싫다. 개미도 메뚜기도 바퀴벌레도 무당벌레도 사실은 나는 전부 다 싫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뭐 자연은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다양한 개체를 만들어냈을 것이고, 나는 왜 이 바퀴벌레들이 끈질기게 살아남고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지만 이 얼마나 인간중심적인 생각인가. 실제로 자연에 가장 해가 되고 있는 종족이라함은 단연코 인간이 으뜸이지 싶다.

 

 

우리는 모르지만, 각 종(種)에 따라 나름대로의 의사소통 체계를 이루며 교류(?)하며 살아가는 지 알 게 뭐란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들에게 한없이 미안해지지만, 어 수 없다. 나는 너무 무섭다. 싫다. 꼬물꼬물 기어가는 것도 싫고, 불빛만 보면 잔뜩 달라붙는 녀석들도 싫다.

 

 

어릴 때 친구들은 어떻게 콩벌레를 건드려 동그랗게 만들고 놀 수가 있었을까? 잠자리 잡는 건 또 어떻고.

 

 

얼마 전 사촌동생은 우리 집에 놀러와있다가 바퀴벌레의 출몰로 옴짝달싹도 못하는 나를 위해 그 녀석을 때려잡아줬다. 주변에는 무려 얄팍한 택배봉투밖에 없었건만, 그걸 돌돌 말아서 퍽퍽. (웬만한 미스터리 못지않은 시체 처리 묘사가 너무 잔인한가요?) 어쨌든 휴지를 둘둘 말아 그 녀석의 시체를 화장실 변기에 쓸어내려 보내기까지, 초등학교 1학년 그 꼬마녀석이 해 줬다는 사실이 한없이 부끄러우면서도 귀엽고 믿음직해, 이모가 오고 나서 얘가 아무것도 못하고 뻘뻘거리는 누나 대신 바퀴벌레를 잡아줬다,며 칭찬 아닌 칭찬도 해 줬다. 돌아오는 대답은 '내가 동물을 좋아해서 그래...' 맙소사. 이모는 재빨리 정정해줬다. '아마 바퀴벌레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별로 무서워하지 않아서일거야'라고.

 

 

아마 다들 벌레 가지고 놀아봤던 경험들은, 이렇게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난 어찌나 이 녀석들이 징그러운지 나타나기만 하면 기겁을 해 어머니는 나에게 핀잔을 주시곤 한다. 그런데 어쩌겠어. 무섭고 징그~러운데. 그냥 모른 척 공생할 수 밖에 없을 뿐...orz





하지만 굳이, 굳~이! 메뚜기와, 무당벌레 중 뭐가 더 좋으냐,라고 물어보면 나는 대답하련다. '무당벌레'라고. 아니 메뚜기 유재석씨도 좀 좋아하긴 하는데..☞☜ 겉모습에 혹하는 대신 언제나 마음을 중시하는 사람이 되리라 생각하지만, 나는 비주얼과 마음씨 모두 잡아버리고 말겠다는 것이다. 벼 습격하는 메뚜기 떼 대신 진딧물의 천적! 무당벌레 얼마나 좋냐고. 시퍼러둥둥하고 길쭉하게 생겨 나를 질겁하게 만드는 외양의 메뚜기 대신, 자세히 보면 징그럽겠지만 일단 자그마한 몸으로 혐오감을 덜 불러일으키는, 빨간색 등딱지에 점 찍혀 있고 포르르 날아가는 무당벌레를 택하겠다, 뭐 그런 것이다. 네, 지금까지 곤충 이야기였습니다요.





이사카 코타로의 <그래스호퍼>와 <마리아비틀>을 비교한다 해도, 단연코 무당벌레의 승이다. 실은 이 <마리아비틀>을 너무나도 즐겁게 읽은 것이, 바로 그 전에 읽은 <그래스호퍼>에 너무나도 실망한 나머지 그 반작용으로 훨씬 이뻐보였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뭐 읽는 동안의 나의 즐거움이 중요하니까. 그리고 <마리아비틀>은 충분히 즐거웠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하나 중요한 얘기를 빼먹었다. 무당벌레는 영어로 'mariabeetle'이 아니다. 'ladybeetle', 'ladybug'으로 불린다. 근데, 이사카 코타로 아자씨의 말을 따르면, 이 영어의 lady가 마리아님을 뜻한다고. 그래서 자기 맘대로 제목을 무당벌레를 뜻하긴 하지만 일단은 작품 속 여러가지 중의적 의미와 겹쳐져 '마리아비틀'이 되어버렸다.





어느새 부산에서 서울까지, 3시간이면 훌쩍 도착해버리는 고속철도의 시대가 되었다. 아니 이제 더 단축되었나? 암튼 내가 서울 한 번 가 봤을 땐 약 3시간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세 시간 동안, KTX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고 상상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가끔은 꼬물꼬물 거리며 좌석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전부,였는데 말이다.

 

3시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정신 놓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보면 어느샌가 훌쩍 3시간이 지나가버리고, 그럴 때 마다 경악한다. 뭐한다고 세 시간을 이렇게 보내버렸어!라고. 하지만, 바짝 집중해 책이든 공부든 어쨌든 3시간을 그렇게 앉아 있으면 우와, 3시간동안이나 이렇게 했어? 하고 뿌듯함이 밀려오는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미묘한 시간 3시간ㅡ실은 3시간인지 모르겠다. 이 소설 속 노선을 따라가면 얼마나 걸리는지 계산해보려 했지만, 실패. 그냥 내 맘대로 이렇게 생각하련다.ㅡ정도, 기차라는 좁은 공간에서 세상에 은밀하게 숨어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고 말았다. 모여도 어떻게 이렇게 모였나, 싶을 정도다. 바로 '킬러'를 업으로 살아가는 이들이다.

 

 

 

잘난 게 아니야. 난 그저 그 무렵부터 내가 타인의 생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흥미를 갖게 됐지.

아까도 말했지만, 지렛대의 원리처럼 나의 사소한 행동이 누군가의 일상을 우울하게 만들거나 인생을 헛되게 만든다는 건 대단한 일이잖아.

-p.133

 

 

 

크게 네 개의 시선이 교차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들을 악의적으로 괴롭혀 혼수 상태에 빠지게 한 중학생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신칸센에 올라탄 전직 킬러이자 지금은 알콜 중독자인 '기무라'. 기무라에게 복수를 하게 만든 원인으로 언제나 순진무구한 아이인 척 어른들을 홀리지만, 실은 (나쁜 의미로) 인간의 행동을 파악하고 그 심리를 교묘하게 조종하는 짜증나는 중학생 '왕자'. 다들 쌍둥이로 오해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언제나 함께 붙어 다니며 일을 처리하는 콤비 '밀감'과 '레몬'. 그리고, 불운의 여신에게 듬뿍 사랑을 받는, 언제나 머피의 법칙에 휘말리곤 하는 '나나오'.

이들의 시점이 '기무라', '왕자', '과일', 그리고 '무당벌레'로 교차되듯 진행된다. 그리고 아무 상관 없어보이는, 뜬금없이 가끔 등장하는 '나팔꽃'의 이야기까지. 

 



세차하면 비가 온다. 단, 비가 오길 바라고 세차할 때는 예외다.

그건 또 뭐죠?

옛날에 유행했던 머피의 법칙이야. 내 인생은 바로 그런 일들의 연속이었지.

-p.187~188

 

 

 

 

나나오는, 불운의 여신에게 이렇게 사랑받아도 사랑받을 수 없는 캐릭터다. 사건에 휘말리는 것을 전제하면 예외겠지만, 원치 않을 땐 언제나 사소한 사건 사고에 휘말리고 만다.

일 처리를 깔끔하게 끝내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신칸센에 실려 있는 트렁크를 훔쳐 내리라는 임무를 맡게 된다. 하지만 실은 그 트렁크는, '영양'이라는 회사가 사라진 이후 꽤나 커다란 영향력을 쥐고 있는 미네기시의 의뢰로 그의 아들의 구조를 맡은 '밀감'과 '레몬'이 가지고 있는, '몸값이 담긴' 트렁크다. 잃어버린 트렁크, 어느샌가 사망해 버린 미네기시의 아들. 그리고 뜻하지 않은 불운으로 인해 트렁크를 훔치자마자 다음 번 역에서 내리지 못하게 되어버린 나나오.

서로의 존재를 몰랐으나 차츰 얽히기 시작하는 기무라와 왕자, 그리고 나나오와 2인조 킬러 밀감과 레몬. 좁은 신칸센에서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몫을 지키려는 킬러들의 필사적인 싸움이 벌어지기 시작한다ㅡ.





전형적인 '이사카 코타로 스러운' 소설이다(물론 초기작과는 꽤 많은 차이가 있어 안타깝지만).

일단은 별 상관없어보이는 각각의 등장인물, 그리고 그들을 소개하면서 조금씩 뿌려두는 복선과 암시,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한데 모여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결말까지. 딱 흩어진 퍼즐 조각을 하나하나 끼워맞추기 시작하듯 보여주는 그만의 전개 방식까지.

 

<마리아비틀>의 전작이라 할 수 있었던 <그래스호퍼> 속 킬러들의 활약상이 회자된다거나, 실제로 주인공이었던 '스즈키'가 이 신칸센 하야테에 올라타 있어 나나오와 엮인다거나, 독살 전문 킬러였던 '말벌'의 활약이 어디엔가 숨어있는 듯 하다거나, 역시 그래스호퍼에서 '푸시맨(밀치기)'였던 킬러가 등장한다거나 하는 등 <그래스호퍼>를 읽은 이들에게는 꽤나 반가울 것 같은 인물들 역시 등장한다. 그래봤자 <그래스호퍼>가 재밌어진다는 건 아니지만.

 

하지만 무엇보다 이 <마리아비틀>과 <그래스호퍼>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캐릭터의 매력에 있을 것이다. 끝없는 악의에 똘똘 뭉쳐져 기무라의 아들의 목숨을 볼모로 삼아 감히 한참 나이가 많은 아저씨를 농락하는 짜증나는 중학생 '왕자'는 제쳐두더라도, 토머스 열차를 너무 좋아해 그에 관한 모든 것을 줄줄이 꿰고 있는 전형적인 B형 '레몬'과 언제나 책을 읽으며 차분하고 진지한 A형 '밀감'이나, 언제나 불운에 휘말리곤 하지만 꽤나 머리회전이 빨라 자신에게 닥친 위기와 불운을 필사적으로 빠져나가는 나나오는 '킬러'라는 직업을 생각하지 않으면 꽤나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그러니까 소설 속이니까,라는 얘기.





그 모든 것이 각자의 시선을 교차하면서 그려내고 있기에 긴박감은 더해간다.

나나오를 쫓는 과일들의 시선에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나나오. 어라, 어떻게 된 거지?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으면 어느샌가 나나오의 시선에서 그려지며 그가 어떤 함정을 만들었는지, 어떻게 그들의 감시망을 빠져나갔는지 드러나기 시작한다.

앞, 아니면 뒤, 라는 두 가지 방향의 '기차'라는 특성에 따라 절대로 피할 수만 없을 것 같은 대결을 숨막히게 그려내다니! 어차피 킬러들의 싸움. 눈치코치 다 빠르게 각자의 영역을 확고하게 지키고 있겠지만, 그 '강자들' 사이의 싸움이라는 것도 의외로 괜찮다. 그 덕에 읽으면서 '그래, 이거야! 이게 내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이사카 코타로라고!'하고 외쳤더랬다.

 

 

그러나 '기무라'와 '왕자'의 이야기는 불편하다. 모두를 자신의 지배하에 놓고 싶어하는, 이름 그대로 '왕자'인 이 녀석. 그러나 갈팡질팡하지 않고 끝까지 그야말로 '악'을 유지해나가는 이 캐릭터는, 마지막까지 끝내 '악이 승리할 수 밖에 없을까?'라는 우울함으로 독자를 몰아넣는다. '킬러'라는 존재가 결코 선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녀석 앞에서라면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였던 기무라나 여전히 현역 킬러로서 활동하고 있는 나나오, 밀감, 레몬은 귀엽고 산뜻하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이렇게 뚜렷한 '악'의 캐릭터의 등장은 짜증을 유발하지만 꽤나 재미가 있다. 최근 나쁜 놈과 더 나쁜 놈의 대결을 그려낸 소설을 많이 읽는 느낌인데 이 <마리아비틀> 역시 그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렇게 달리기 시작한 시속 200km의 신칸센, 그리고 그 곳에서 더 숨막히게 벌어지는 킬러들의 대결! 그야말로 '킬러들의 광시곡'이 연주되고 있었던 열차 '하야테'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리라 생각한다. 쉼없이 달리는 열차처럼, 쉼없는 흡입력으로 작품 속으로 끌려들어가 그 속도감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최근 출간되고 있는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 중에서도 단연코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의 순위에 이름을 당당히 올렸던 <마리아비틀>. 그 이름값을 톡톡히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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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트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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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어떻게 인간으로서 어떻게 저럴수가 싶은, 인간으로서의 윤리관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저럴수가 싶은, 극악무도한 행동에 경악한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저런 짓을...'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 아닌 동물들에 비유하곤 하는 저 말은, 최근의 행태를 보면 이렇게 말하기가 민망하고 짐승에게 미안해질 정도다. 인간이 아닌 짐승이 어찌 그런 짓을 하겠는가! 감히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악의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언어는 달라도, 생각하는 바는 비슷한 것 같다. 소설의 제목인 '비스트'는 스웨덴에서 범죄자 중에서도 성폭행범을 의미하는 단어라는 것을 보면. 성범죄, 특히 아동 성폭행범을 생각하면 치가 떨릴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얼마 전 읽었던 야쿠마루 가쿠의 <어둠 아래> 역시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고, 읽는 내내 분노에 몸을 떨었었더랬다.

마찬가지로 아동 성폭행범의 범죄, 그리고 그에 대한 처벌에 대한 딜레마를 그려내고 있는 <비스트>. 북유럽에서 날아온 성범죄, 그리고 그에 대한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이 사회가 그 아이들 보호에 실패했다고 해서 스테판손에게 성범죄 '용의자에 지나지 않는' 자를 자기 멋대로 저형할 권한을 쥐어준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p.330

 

 

 

 

작가의 전력이 독특하다. 실제 범죄자와 전직 기자의 만남이라니, 묘하다. 기자였던 안데슈 루슬룬드는 교도소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취재하던 중 과거 범죄를 저질렀던 전과자이자 자신과 같은 처지에 처한 출소자들을 돕는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는 버리에 헬스트럼을 만나 <비스트>를 집필하게 되었다고 한다.

과거 성폭행을 당한 트라우마로 인해 범죄의 길에 빠져들게 되었다는 헬스트럼. 그만의 경험이 소설속에 녹아들어 이 <비스트>는 엄청나게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소설이 된 것은 아닐까.

 

 

 

리투아니아의 실화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죄를 처벌해주지 않는 사법기관을 대신해 그 가해자를 단죄한 아버지. 생명은 소중하다고? 하지만 그렇게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 뻔뻔하게 살아간다는 것 역시 용납할 수 없을 것 같은 나는, 그 아버지의 마음이 너무나도 이해가 됐었다. 하지만 마냥 옹호해 줄 수는 없는 이 딜레마. 무엇이 옳은지, 여전히 나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겠다. <비스트>를 읽고 난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일단 소설의 내용이 무엇인지 들여다보자. 방금 말한 리투아니아 아버지의 사연과 흡사하다.

 

딸 마리를 애지중지 보살피고 있는 이혼남 프레드리크는, 어느 날 딸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는 길에 낯선 남자와 마주친다. 그리고 벤트 룬드의 탈옥 소식을 들은 그는 공황상태에 빠지고 만다. 마주쳤던 낯선 남자가 바로 룬드였던 것. 필사적으로 어린이집을 향하지만 그의 어린 딸 마리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고 만다. 탈옥한 룬드를 검거하기는 커녕 이렇게 새로운 희생자를 만들어내고 만 것이다. 속수무책인 경찰들을 대신하여, 프레드리크는 직접 총을 든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룬드의 다음 희생양이 나타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 아이 아빠가 그 성폭행범을 살해한 건 옳지 않은 일이야. 맞아. 그럴 권리는 없는 거야.

하지만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건 더더욱 옳지 않은 일이 됐을 거라고.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p.361

 

 

 

 

 

성범죄자를 살해함으로써 그의 죄를 직접 처단한다는 것. 그것은 과연 정의일까? 물론 누구에게도 한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빼앗을 권리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탈옥한 그를 잡아들이지도 못한 무능력한 경찰 때문에, 사법 제도와 기관 때문에, 그의 목숨을 빼앗지 않고 내버려둔 채 또 다른 소녀들이 희생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것일까?

 

 

 

실제로, 리투아니아의 아버지는 끝내 구타 흔적이 있으나 구토로 인한 질식사로 판정된 채 변사체로 발견되고 말았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은 그의 과격한 행동에도 지지를 보냈고, 그의 장례식은 끝없는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 <비스트>의 두 작가는 한 발 앞서서,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름대로 세워져 있던 내 머릿속의 가치관을 뒤흔든다. 그들의 이야기는 지금까지의 논란 역시 또 하나의 시각에 불과하다고, 또 다른 차원의 문제를 제기한다.

 

 

 

 

 

프레드리크 스테판손이 범죄를 저지른 건 맞지. 그런데 그를 영웅으로 만든 건 저 군중이 아니오.

그는 그 '자체'로 영웅이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자청했기 때문이지.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p.389

 

 

 

 

 

프레드리크의 행동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뜨거웠고, 그에게 살인죄로 최고형량을 선고하려는 검사의 움직임에 대해 시위대는 거세게 반대한다.

프레드리크는 딸을 잃은 슬픔, 룬드에 대한 분노, 그 모든 감정들이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끝내 무죄 판결이 내려진 프레드리크를 지켜본 또 다른 선량한 시민은, 이것으로 '잠재적인' 성범죄자에 대한 단죄를 직접 내려도 괜찮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룬드 역시 '잠재적으로' 소녀들을 폭행하고 살해할 가능성이 있었던 것처럼. 그는 단 한번의 노출로 마을에서 소외되어있는 '잠재적으로' 모두에게 노출을 일삼을지도 모를 마을의 남자를 공격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감정적인 판결인가, 사회를 지키기 위한 판결인가. 딸을 빼앗아간, 또 다른 누군가의 딸을 빼앗아갈지도 모를 성폭행범의 목숨을 빼앗은 아버지에 대한 판결은 어떻게 내려야 할까.

 

 

 

극한의 리얼리티,를 그려냈다. 교도소에서도 확연하게 나뉘어지는 성범죄자에 대한 혐오, 격리 수용하는 성범죄자들에게 수없이 시행하는 교육과 치료, 딸을 잃은 아버지의 분노, 아버지의 복수에 대해 공감하는 여론, 거기에 휘말리는 선량한 시민. 그리고 무엇보다 2004년에 출간되었던 <비스트>의 소설이 그대로 재현된 듯 실제로 벌어진 사건.

정말 상상 속에서만, 소설 속에서만 벌어지길 바란 일이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이 <비스트> 속 인물들은 실제로 존재하고 우리 주변을 배회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진다.

 

 

 

 

스웨덴에는 사형제도가 시행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한 사법제도는, 룬드라는 악랄한 성폭행범의 탈옥 기회와 또 다른 희생양의 발생이라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그러나 스웨덴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성범죄는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이고, 그 수많은 범죄자들은 전자발찌라는 허술한 보안으로 감시되고 있다. 그 눈을 피해 여전히 그들은 새로운 범죄를 저지른다.

 

룬드는, 수많은 치료와 교육을 받았지만 끝내 교화되지 못한 채 새로운 희생양을 물색하기에 이르렀다. 소설 속 교도소장 렌나트는, 성폭행범들을 교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회의적이기만 하다.

이들은 끝내 이렇게 짐승보다 못한 범죄를 저지르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무기력한 사법 제도 대신 개인의 복수만이 정의를 실현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우선 순위를 두고 있던 모든 가치관이 뒤흔들린다. 모르겠다. 여전히 내릴 수 없는 답. 그리고 그것은 엄연한 '현실'인 것이, 너무나도 슬프고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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