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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조세핀 테이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1년 8월
평점 :
역사는 좋은 공부죠. 역사탐정이 될 수도 있지. 너, 조세핀 티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니?
-p.466, 「타락의 여름 : 우등생」, 스티븐 킹,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스티븐 킹의 사계 봄·여름> 중
왜 뜬금없이 스티븐 킹의 소설 한 자락을 인용했느냐, 그것은 오늘 이 책을 읽는 도중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바로 '조세핀 티'. 아마 영어 발음은 [테이] 혹은 [티], 그 중간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경찰 리들럼은 우등생 토드 보던과 이야기를 나누며 최근 역사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 말에 이어 조세핀 티, 아니 조세핀 테이의 이름이 언급한다. 그리고 그 이름은 얼마 전에 읽은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의 작가를 뜻하기도 했다. 어쨌든 조세핀 테이, '역사탐정'(근데 역사 탐정이 뭐지? 역사 속의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직업인가?)과 조세핀 테이의 이름이 함께 언급되는 것을 보니 확실히 역사 소설 그리고 미스터리 소설에 꽤나 조예가 깊었구나 싶다.
바로 얼마 전,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을 읽으며 추리소설의 고전, 그 클래식을 읽는 즐거움에 한동안 빠져 있었는데 그 책 속의 새로운 작가와의 만남에 이어 또 하나의 클래식, 게다가 여류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
미스터리 작가 중 여성은 누가 있었나 생각해보면, 역시 애거서 크리스티, 그리고 이름만 들어봤지 정작 작품은 하나도 읽어보지 못한 도로시 세이어즈 정도일까. 조세핀 테이는 도로시 세이어즈, 마저리 앨링엄, 나이오 마시(누구신지..?;;)에 견줄 만한 여류 작가라고, 아마존의 한 독자는 평가를 하고 있다.
실제로 본명을 두고 다양한 필명을 사용해 작품을 발표한 그녀는 '고던 대비어트'라는 남자 필명으로 역사 희곡을, '조세핀 테이'라는 필명으로는 미스터리를 주로 발표하며 두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그런 작가의 능력을 반증하기라도 하는듯한 작품,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은 그야말로 실화에 작가만의 해석이 덧붙여진 '미스터리'다. 프랜차이즈 저택에서 무슨 사건이 벌어진 것인가?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는 변호사 로버트 블레어는 언제나 틀에 박힌 듯 반복되는 하루하루에 만족하며 일상을 즐기고 있는 이다.
이 날도, 단 1분만, 몇 초만 일찍 사무소를 나섰더라면, 그 전화를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잠깐의 찰나에 걸려온 전화는, 그의 일상을 뒤바꿔놓기 시작했다.
전화를 걸어온 이는 인근 지역의 외진 곳에 세워진 프랜차이즈 저택에 살고 있는 매리언 샤프.
그녀의 말로는, 하지도 않은 유괴 사건의 범인으로 몰리고 있으니 변호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샤프 모녀가 유괴 사건의 범인이라 주장하는 이는 열 여섯 살 소녀 엘리자베스 케인.
도중에 차를 얻어 탔으나 저택에서 납치, 감금한 뒤 옷을 빼앗고, 시트를 깁게 강요를 하고, 채찍으로 때리기까지 했다고 주장하는 그녀는 어둠 속에서도 또렷이 기억하기를 자신이 납치되었던 장소는 프랜차이즈 저택이 틀림없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샤프 모녀는 베티 케인이라는 소녀를 생전 처음 본다고.
샤프 모녀의 변호를 맡게 된 로버트 블레어는, 베티 케인이 주장하는 시간에 '프랜차이즈 저택이 아닌 다른 어딘가에 있었음'을 증명해줄 수 있는 목격자를 찾아야만 한다.
베티 케인과 샤프 모녀의 엇갈린 진술. 진실은 무엇일까? 그들 사이의 진실 게임이 시작되었다!
베티 케인은 어떻게 한 번도 들어가본 적이 없었던 프랜차이즈 저택의 구조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묘사할 수 있을까.
실제 구금되었다고 주장하는 기간 동안 납치당한 것이 아니라면, 그녀는 도대체 어디에서 시간을 보낸 것인가.
그것을 밝히는 것이 샤프 모녀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기에, 로버트 블레어는 소녀들이 시간을 보낼 만한 카페를 중심으로 탐문을 시작하고, 그와 더불어 그녀의 증언의 허점을 찾아내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건의 냄새를 맡은 언론은 선정적으로 샤프 모녀의 범행을 기사로 발표하고, 인근 주민들은 하나같이 프랜차이즈 저택을 찾아와 담벼락에 낙서는 기본이요, 돌을 던져 창문을 깨고 방화를 저지르기에 이른다.
아직도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믿는단 말이에요?
우리 쪽 증거는 조그만 것 하나 없고 그 애 쪽 증거는 막 쏟아지는데도 말이에요?
그건 타고난 낙천적인 성격 때문인가요, 아니면 선이 승리함을 본질적으로 믿는다거나 뭐 그런 건가요?
모르겠군요. 전 진실은 그 자체로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p.261
누가봐도 모범적인 소녀로 보이는 베티 케인과, 오붓하고 조용히 지내지만 외부와의 교류가 그다지 없는데다 조금은 황량해 보이는 저택에서 살아가는 샤프 모녀. 둘 사이의 진실 공방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으니 어느 한 쪽이 진실이라는 결말은 그다지 큰 반전이나 임팩트를 안겨줄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물론 열 여섯 살의 한 소녀가 처참하게 폭행을 당한 채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라고는 하지만 그것도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체 한 구,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소설은 요즘 쏟아져나오는 자극적인 미스터리에 비하면 오히려 심심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 와중에, 샤프 모녀와 블레어 진영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탐문과 알리바이를 확보해 논리적으로 사건을 검토해 보는 것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클래식은 클래식. 고전의 반열에 올라 오랜 시간 사랑받는 소설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이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쪽이 진실인가,를 밝혀내는 진실 공방이 전부이건만, 이 소설, 상당히 몰입된다.
누가 봐도 너무나도 얌전하고 귀여운 소녀 베티 케인을 납치 감금해버린 샤프 모녀는 대중들에게 어느샌가 '적'으로 몰리고 말았다.
로버트 블레어는, 모녀의 무고함을 밝힐 뿐 아니라 대중들의 마음까지 되돌리기 위해 베티 케인이라는 소녀의 실체를 재판정에서 낱낱이 까발리려고 결심한다.
그 근거를 논리적으로 준비하는 한편, 재판 과정에서 벌어지는 증인과 피고와 원고 사이의 대립을 지켜보는 것은 웬만한 법정스릴러 못지 않았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듯 '조세핀 테이'이자 '고던 데비어트'로 역사와 미스터리 두 곳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녀의 진가를 만나볼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실제 18세기 영국에서 '엘리자베스 캐닝'이라는 소녀가 유괴되어 하녀로 일할 것을 종용받았다고 주장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유괴범으로 몰린 이는 그녀를 본 적도 없었다고.
그들 사이의 진실 공방은, 끝내 무엇이 진실인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다양한 견해 역시 제시되고 있다고 하는데(영어라 제대로 못 읽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시고 영어를 소화하겠다! 하시는 분은 여기 그리고 여기를 참고하세용:), 조세핀 테이 역시 엘리자베스 캐닝을 엘리자베스 케인,으로 바꾸어 실제 벌어진 사건을 재구성해 그녀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놓았다.
엄청난 반전도, 시체의 산도 없다. 자극적이지도 독자의 뒤통수를 후려갈기지도 않지만,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은 상당히 매력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당시 사회에서 상당히 논란을 불러 일으킨 실화를 바탕으로ㅡ이게 현실의 사건이라 생각해보라. 사람들은 얼마나 이 사건을 입에 오르내리며 진실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을까!ㅡ재구성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언제나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 사건에 대해 조사하는 로버트 블레어와 누구나 자기 편으로 이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는 샤프 모녀, 그리고 그 밖의 개성있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이 소설의 재미를 한껏 높여준 것 같다.
클래식,으로 배경은 분명 옛날이지만, 지금 읽기에도 그다지 손색이 없는 멋진 추리소설이었다.
이미 오래 전의 작가라 한들, 나에게 새로운 미스터리 작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