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집의 살인 집의 살인 시리즈 1
우타노 쇼고 지음, 박재현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우타노 쇼고라는 이름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꽤나 일본 미스터리 팬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인지도와 인기를 자랑한다.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에서의 사기에 가까운 속임수라거나, <밀실살인게임 : 왕수비차잡기>에서 시작된 밀실살인게임 시리즈의 역시 대담하고 파격적인 소재와 아이디어로 독자들의 찬사들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우타노 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다양한 물리적 트릭은 아니다. 그것은 그의 대표작이자 가장 유명한 작품이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타노 쇼고는 본격 미스터리의 다양한 향연들ㅡ밀실 살인, 시간표를 이용한 알리바이 조작, 시체 소실 등등ㅡ에 꽤나 애착을 가지고 있는 듯하고, 그것은 역시 <밀실살인게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아마도 국내에는 우타노 쇼고라는 작가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거론되면서 그의 대표작이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들이 하나 둘 소개되면서 자리를 잡아가면서 비롯된 나의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어찌되었든 이제 우타노 쇼고라는 작가의 작품이 출간되는 데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아 그의 본격 미스터리를 앞으로 더 볼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해본다.

 

 

  그리고 그 본격 사랑에 대한 시작은 실은 '처음부터'였다. 우타노 쇼고라는 이름의 출발점이 된 데뷔작, <긴 집의 살인>에서부터인 것이다. 지금의 우타노 쇼고를 있게했던, 습작 경험이라고는 없었던 그가 떡하니 써낸 <긴 집의 살인> 속에 녹아 있던 트릭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떻게 하면 좋지!?

모르겠다ㅡ. 그러나 녀석을 죽이기 위한 '살인 방정식'은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행동은 대담한 것이 좋다. 움찔거렸다가는 오히려 의심받는다. 물론 허점을 잡히지 않으려면 섬세함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대담과 섬세라는 상반된 두 가지 사항을 어떻게 동시에 이룰 수 있는가, 그것이 문제다.

-p.13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살인 방정식'을 세우기 시작하는 한 남자의 독백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이윽고 5인조 대학생 록 밴드 '메이플 리프'의 멤버들이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공연을 위한 합숙 훈련을 떠나는 장면으로 바뀌며 전개된다.

  합숙소 '게미니 하우스'가 도둑이 들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일 없이 보낸 하루였건만, 평소 투덜거리는 성격에 생각을 입밖으로 그대로 내뱉어 다른 멤버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곤 했던 도고시 노부오가 밤 사이 사라졌다 다음 날 그가 잠들었던 방에서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완벽한 밀실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시체. 게미니 하우스를 찾아온 경찰들 역시 사망 추정 시간과 시체의 움직임, 그리고 멤버들의 알리바이가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근거로 별다른 조치 없이 강도의 소행으로 결론내린다.

  그러나 몇 개월 후, '메이플 리프'의 마지막 공연 날 또 다른 멤버였던 미타니 마리코가 역시 시체로 발견된다. 도고시의 죽음을 강도의 소행으로 결론짓기에는 미타니의 죽음은 석연치 않다. 의심스러운 메이플 리프의 멤버들의 알리바이는 게미니 하우스에서와 마찬가지. 도고시와 미타니를 죽음으로 몰아간 범인은 누구였으며, 어떤 방법으로 범행을 저질렀던 것일까?

  메이플 리프의 전 멤버이자 상당한 기인으로 평가받는 시나노 조지가 이 사건을 접하게 되고, 그는 두 살인 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가기 시작한다ㅡ.

 

 

 

  밀실, 그리고 시체 소실. 실은 '밀실'이라는 소재 자체는 참으로 진부해졌으나 그럼에도 미스터리 작가들은 꼭 밀실을 소재로 기발한 트릭을 소설 속에 녹여내려는 열망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우타노 쇼고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는 습작조차 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밀실과 시체 소실이라는 대담한 아이디어를 세상 밖으로 내놓았다.

 

  다양한 트릭이야말로 본격 미스터리의 꽃이다. 독자는 트릭이 어떻게 돌아갔는지는 잘 몰라도 작가가 몰래 깔아둔 복선이나 그야말로 전형적인 '미스터리의 규칙'으로부터 도출된 '심증'으로 범인을 짐작해보곤 한다. 그리고 범인보다는, 도대체 불가능해 보이는 범죄를 어떻게 해냈던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탐정이 차근차근 풀어내며 드러나는 진상에 감탄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범인도 트릭도 잘 알아맞히지 못한다. 그야말로 나는 미스터리 작가들에게 속기 위해 태어난 독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인데, 그래도 꽤나 미스터리를 읽어오면서 토대가 어느정도 마련이 되었나보다. 이번 <긴 집의 살인>은 처음 게미니 하우스의 지도를 보고 '설마 이 트릭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끝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더니 결국은 설마가 사람을 잡아버렸다. 물론 시나노 조지가 범인이 펼쳐놓은 수수께끼를 차근차근 풀어내는 과정을 완벽하게 풀어냈던 것처럼 치밀한 풀이는 아니었지만, 가장 메인이 되는 트릭을 눈치채 버리니 그것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지배하고 그리하여 김이 빠졌다. 알아맞췄다! 라는 뿌듯함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러지도 못했다. 너무 빤히 보이는 트릭이었던 건지, 역시 나는 속기 위해 태어난 인간인지라 맞추는 것보다는 속는 것이 더 좋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이 <긴 집의 살인>은 세세하게 잘 만들어진 이야기다.

  뒤늦게 모든 진상이 밝혀지는 시점에서 우타노 쇼고는 범인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는 실마리를 상당히 짜임새있게 집어넣었고, 그것은 갑작스러운 마무리가 아닌 이미 짜놓은 플롯 안에서 상당히 치밀하고 섬세하게, 꼼꼼한 작업을 거쳤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밀실, 시체의 이동, 미스디렉션, 천재 탐정의 날카로운 통찰을 통한 극적인 사건의 해결 등 미스터리에서 맛볼 수 있는 요소가 짜임새있게 녹아있다. 결론적으로 범행 동기 등에서는 조금 억지스러운 면도 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미스터리의 요소는 상당히 잘 갖춰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소설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상당히 실한 뿌리에서 뻗어나온 잎과 줄기 역시 상당히 탄탄하다. 하지만 나는 뿌리와 줄기 대신 아름답게 피어난 꽃을 보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탄성을 자아내게 만드는, 활짝 피어난 꽃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 꽃은 피기도 전에 꺾여버렸다. 그렇게 툭 하고 꺾어버린 나 스스로가 원망스럽구나.

 

  그럼에도 소설 속에서 처음으로 꽃을 키워내려 애지중지하고 있는 우타노 쇼고의 노력과 열정이 엿보인다. 꽃은 아쉽지만, 그렇게 우타노 쇼고가 열심히 씨앗을 심고 싹을 틔워 꿋꿋이 키워내려 했던 신인 시절의 열정, 그리고 지금의 근간을 이루게 한 노력에 만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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