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십이국기 1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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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사의 어떤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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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5
우타노 쇼고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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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 것이 힘일까, 모르는 게 약일까. 결국 상치하는 두 속담이 함께 공존한다는 것은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이분하며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일거다. 누군가의 행복이 누군가에게는 지독한 불행일 수 있다. 반대로 누군가의 불행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다른 이에게 행복으로 다가갈지도 모르겠다. 모두에게 해피엔딩이란 그저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나 가능할지도. 하지만 세상은 행복과 불행의 균형을 맞추려는 듯 기쁜 소식과 슬픈 소식을 함께 전해오기만 한다. 그렇게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이 되고 또 다시 봄은 찾아오겠지. 혹은, 가을을 느낄 틈새도 없이 순식간에 추운 겨울 속으로 들어가거나.



  우타노 쇼고의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 역시 지독한 겨울을 지내고 있는 두 사람을 그려내고 있다. 두 사람은 추운 겨울 슈퍼마켓의 보안요원과 좀도둑으로 만났다. 혼자 남은 슬픔과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중년 남자와, 자신 스스로가 지금 처한 현실에서 벗어날 용기와 의지가 없다는 것이 답답한 여자. 남자는 자신의 딸을 생각나게 하는 여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거기서부터 그들을 연결하는 실은 한 번 비틀려 구원과 절망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지기 시작했다. 남자의 절망은 여자의 구원으로, 그리고 여자가 다시 돌려주려는 헌신의 손길은 남자의…….

 

 

  그들은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 오로지 겨울 속에서만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남자는 여자로부터 봄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록 자신이 봄의 한가운데로 들어가진 못하더라도, 마지막으로 따뜻한 봄 햇살의 눈부심을 잠깐 눈에 비추어본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멀리서 보이는 봄의 풍경은, 따스함은 없는 먼 곳에 있는 그 풍경은.

 

 

 

 

  진실이 언제나 밝은 빛을 안겨다주지는 않는다. 버먼 할아버지가 존시를 위해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 담벼락에 새겨놓은 마지막 걸작은 존시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주었지만, 아마 그만큼 수와 존시는 버먼 할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을까? 오 헨리는 마지막 반전으로 여운을 남긴 채 이야기를 끝내버렸지만, 존시는 또 다른 죄책감 속에서 살아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나는 거짓을 꾸며내는 것만이 진실을 왜곡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실을 두고 침묵하는 것, 드러내지 않고 뒤로 숨겨두는 것 역시 왜곡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게 숨겨진 이야기를 모른 채 살고 있는 것은 비단 나에게만 한정된 일이 아닐 테니까. 불편하고 슬프고 힘들고 절망스러울지라도, 그 진실을 마주한 다음 그것을 극복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시 세상은 그렇게 한 방향으로만 나아가지는 않는다. 아는 것이 힘일 수도 있지만,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는 법이다. 우타노 쇼고의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작가의 스타일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가족을 떠나보내고 혼자 남아 자신의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는 중년 남자의 쓸쓸한 감정을 지독하게 생생하게 담아내면서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인간사는 결국 모순에 가득차 있다고. 과연 그에게는 둘 중 무엇을 필요로 하겠느냐고. 그래도 역시 진실을 맞닥뜨리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똑바로 바라보라고 다그쳐야 할까. 비록 또 다른 절망에 맞닥뜨릴지라도, 그것이 진실이니까. 아니면 단 하나, 그 어둠을 잠시 감춰둘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그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최선의 해피엔딩일 수 있다면, 그렇다면 조금은 따뜻한 겨울이 될 수 있을까.

 

 

 

 

  히라타가 머물고 있는 겨울 속에서, 나는 어떤 엔딩을 선택해야 할까. 그것은 봄이 될 수 있을까. 아득하기만 하다.

 

 

 

 

 

─재킷 속의 깃털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_p.15

 

 

시간은 사정없다. 사정없이 흘러가고 사정없이 슬픔을 지워낸다. 언젠가는 사랑하는 딸의 죽음을 신문에 실린 생판 모르는 타인의 부음과 마찬가지로 무덤덤한 사실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미치도록 무서워졌다._p.53

 

 

마음의 정리가 아직? 안 되겠죠. 그건 알지만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고, 그렇다면 되도록 빨리 새출발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인생은 한 번뿐이지만, 그 인생에 무대가 하나뿐인 건 아니에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다른 무대에 오를 수도 있다고요._p.157

 

 

악순환이다. 또 한 바퀴 돌아왔을 때는 후회가 두 배로 세 배로 커졌다. 공포와 절망과 후회가 차례대로, 때로는 하나가 되어 덮쳐와서 히라타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_p.182

 

 

인간사란 애초에 모순으로 차 있다. 히라타 마코토와 스에나가 마스미에 한하지 않고, 모든 사람의 인생이 마찬가지다._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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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은 속삭인다
타티아나 드 로즈네 지음, 권윤진 옮김 / 비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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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부동산에 드나들며 집을 구해본 적은 없지만, 소설이나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보면 '아니, 이렇게 괜찮은 집이 왜 이 가격에 나온거예요?'라는 상황에 종종 맞닥뜨린다.

  중개인은 우물쭈물 대답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조금 더 캐보면 그 집에 얽힌 사연이 등장한다. 전에 살던 사람이 자살했대요, 전에 살던 사람이 살인자였어요, 귀신 나온다는 소문이 있어요, 등등등.

  확실히 그런 곳은 피하게 되는 걸 보면 '공간'이라는 것은, 그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벽'은 실은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두 지켜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새로 싹 바뀌면 아무 상관없지 않을까,라는 생각보다는 왠지 모르게 기피하게 되니 말이다.

 

 

  타티아나 드 로즈네의 <벽은 속삭인다>는 바로 이를 모티브로 공간 그리고 심리를 파고드는 이야기이다.

 

 

 

새벽녘 나는 이 방에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집에서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었다. 프레데릭이 잘못 짚은 것이다. 

벽은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상상한다._p.41

 

 

 

  파스칼린 말롱은 남편과의 이혼 후 새 집을 구하면서 다시 시작할 결심을 한다. 생각보다 조금 싼 가격에 나온 집이 조금은 의심스러웠지만, 자신의 마음에 꼭 들었고 이 집을 마음에 들어하는 다른 사람이 있다는 말에 재빨리 계약을 마친다.

  그러나 이사를 해 온 바로 그 날, 그녀는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운 느낌이 든다. 이사를 하는 동안의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집 밖에 있을 때는 멀쩡하더니 집에만 들어오면 같은 증세가 반복된다.

  이상하게 생각한 그녀는 전남편 프레데릭에게 연락을 했다가 자신이 살고 있는 집 근처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리고 바로 자신이 살고있던 그 집이 연쇄살인마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한 바로 그 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삶의 공간에 스며들어 있는 감정들이 두려웠다. 벽의 속삭임이 두려웠다._p.60

 

 

 

  처음에는 몸이 조금 나빠졌을 뿐이지만,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파스칼린은 벽이 기억하고 있는 당시의 상황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에 몸서리치고 두려워한다. 평소에는 빈틈없이 일하던 직장에서도 실수가 계속되고, 동료들의 걱정도 귀찮기만 하다. 새로운 인연을 만나면 조금은 나아질까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녀는 더더욱 어둠 속으로 침잠되어만간다.

  너무나도 생생하게 들려오는 벽의 속삭임은 연쇄살인마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여인들의 처절한 고통과 절규로만 가득차 있다. 파스칼린은 벽의 속삭임에 홀리기라도 한 듯, 연쇄살인마의 또 다른 범행 현장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그 곳에서 파스칼린은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어째서 파스칼린은 그들에게 집착하는 것일까?

 

 

 

다들 경멸과 혐오가 담긴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어쩌면 여자 말이 옳은지도 몰랐다. 이곳에 왜 왔는가? 찾으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어째서 나와는 상관도 없는 과거를 들추려고 하는가?_p.115

 

 

 

  2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얇은 분량 속에서 타티아나 드 로즈네는 '공간'을 중심으로 상당히 밀도있게 파스칼린의 심리를 묘사해 나가고 있다.

  민감은 커녕 둔한 편에 속하는 나로서는 처음 이 책을 넘기고 있는 동안에는 '공간'에 있어서 상당히 민감한 파스칼린이 신기했고, 그렇다한들 굳이 살인의 현장을 찾아가는 그녀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공간'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나 느낌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녀의 날카로움과 예민함에 공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파스칼린은 기묘한 행동과 더불어 그녀의 과거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왜 프레데릭과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는지, 유난히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인들이 살해당한 이야기에 그토록 집착했는지. 그녀가 가지고 있던 아픔은 '공간'과 공명하는 그녀의 날카롭고 민감한 감수성에 부딪히며 서서히 그녀의 안에서 부서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이상하게도 내 머릿속에 뚜렷이 의식되는 게 있었다. 고통스러운 깨달음이었다. 그건 내가 걱정하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나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여인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나도 딸을 빼앗긴 엄마였다._p.121 

 

 

 

  <사라의 열쇠>로 알려진 작가 타티아나 드 로즈네는 <벽은 속삭인다>가 바로 <사라의 열쇠>의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공간에 대한 그녀의 치밀한 묘사가, 파리의 어떤 공간이 기억하고 있는 역사적인 아픔으로 발전해나간 것이다. 유태인 학살, 그리고 그 곳에 있던 어린 아이들의 고통을 기억하고 있는 공간으로.

  그래서인지 파스칼린 역시 유대인을 수용하고 있었던 벨디브를 방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그것을 이렇게 힘을 써야 했을까, 라는 생각에 분위기가 흐트러진 것 같아 상당히 아쉽기도 하다.

 

 

 

 

  그렇기에 <사라의 열쇠>의 모티브가 된 작품으로서, 보다는 '속삭이는 벽' 그 공간의 두려움과 그 공간에 둘러싸인 여자가 서서히 변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처음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때는 너무나도 담담한 문장과 쉬이 공감할 수 없는 파스칼린의 감수성 때문인지 조금은 지루했다. '속삭이는 벽'이 품고 있는 그 공간의 기억 역시 공감하기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책을 다 읽고 음미해보는 여운은 안타까움이 짙게 배어나온다. 상당히 짧고 담담한 문장들 속에서 서서히 파스칼린이 미쳐가는 과정은 적나라하고 또 안타깝다.

 

 

 

 

  공간 그리고 심리를 병치시켜 담담하고 깔끔하게 전개되어가는 이야기다. 공간이 주는 오싹함보다는, 그 공간과 함께 공명하는 한 여자의 슬픔이 돋보인다.

  읽고 난 뒤 곱씹어보는 여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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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클럽 - 개정판
천계영 지음 / 예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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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순간 작가가 작업 방식을 바뀌면서 확연하게 달라진 그림체가 낯설어 읽지는 않고 있지만─그리고 지금 읽기에는 조금 낯간지럽기 때문에─, 그래도 <언플러그드 보이>와 <오디션> 그리고 <DVD>는 내 학창 시절을 즐겁게 해 준 만화책이었다. <오디션>은 여전히 나에게 최고의 만화 중 하나다.

  재활용 밴드는 특별한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이들이었다. 현겸은 정말 날개가 없는 천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맑고 순수한 특별한 아이였다. 땀, 비누 그리고 디디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하이힐을 신은 소녀, 예쁜 남자… 이미 그들은 하나의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는 것에서 '특별함'을 품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그렇게 특별한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만화가 천계영은 소설을 한 편 썼다고 한다. 이름하여 <the 클럽>! 그런데 살포시 'revised'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알고보니 2002년에 출간되었던 이 책은 어느순간 절판이 되어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에 이르고, 엄청난 고가로 중고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랬던 책이 이번에 개정판으로 재출간되었다.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소녀 '나미'는 우연히 '특별'한 사람들만 가입할 수 있다는 'the 클럽'의 존재를 알게 된다.

  반에서 가장 특별한 남자아이라 할 수 있는 '이토'의 여자친구는 정말 특별한 자신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녀였건만, 뜬금없이 가장 친한 친구이자 지극히 평범한 남자아이 '반디'의 고백을 받고는 혼란스러워하는 와중 골목길의 묘한 단칸방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화상전화를 통해 '자신은 이러이러한 점이 특별하다'는 것을 어필하는 면접이 이루어지는 방은 바로 'the 클럽'의 면접 장소였던 것. 아니, 특별한 내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그 'the 클럽'에 가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자신들이 특별하다고 주장하며 면접을 보러오는 이들을 지켜보면서, 겉으로는 평범하기 짝이없었던 이들이 정말로 특별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스스로는 어떤 점이 특별한 것인지, 어떻게 'the 클럽'의 멤버들에게 자신을 어필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내 기준에선 경멸스러울 정도로 평범한 인간들이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평범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저들 하나하나가… 실은 얼마나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단 말인가. 거리에서, 전철에서, 버스에서 무심코 스치는 평범한 사람들, 내 앞자리에 뒷자리에 옆자리에 앉아 있는 평범한 고등학생들. 그들이 정말 평범하기는 한 걸까?_p.191~192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소녀, 단짝 친구의 고백, 그러나 나는 특별한 다른 남자아이가 좋아… 그 아이에게 접근하려면 또 다른 특별한 누군가를 포섭해야 해! 그 연결고리를 완성하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의 등장인물인 '나미'와 '반디' 그리고 '이토'와 '형아'다.

  우리는 반디의 시선을 통해 '형아'에게 어떤 아픔이 있는지, '이토'가 어떻게 특별한 남자아이인 것인지, 그리고 '나미'는 왜 특별한 존재인지를 스스로가 깨달아가는 과정을 함께 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결국 반디는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인지를..^^

 

 

 

  그렇기에 책을 펼치기는 하면서도 '아마 뻔할거야'라는 생각과 함께 심드렁하게 읽어내려갔다. 그러나 뻔하기에, 너무 뻔하기에 평소에 외면하고 있던 보편적인 진실을 이런 식으로 갑자기 맞닥뜨리곤 한다. 바로 이 소설이 그랬다.

 

 

  나는 평범하지만 특별하다.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다. 세상 모든 사람의 자의식을 꿰뚫는 바로 그 말.

 

 

  <the 클럽>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고민은 대부분 학창시절의 나와 당신이 했던 바로 그 고민들이다.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분명 그 안에 특별한 무언가를 품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과, 정말 별 것 아닌 걸로 친구와 다투고는 한없는 고민에 빠져 세상 모두가 나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듯한 기분과, 나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교실 안에서 다른 친구들과는 다른 어떤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그 아이와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했을 때의 좌절감과, 단짝이라 생각했던 친구가 다른 아이와 놀고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질투심과, 외로움과, 기타 등등.

 

 

 

초능력자가 된다는 것은 바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꿈을 지배한다는 것은 나의 꿈을 해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내가 내 자신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_p.297

 

 

 

  아악… 이런 대사가 담겨있는 책장을 넘길 때 마다 괜히 얼굴이 간질간질하고 손발이 오그라들긴 했지만 그 오그라듬이 바로 조금은 떨어진 위치에서 순정만화 주인공들의 유치찬란한 이야기를 지켜보는 즐거움이 아니었나 싶다. '이야기의 주인공'이니 특별하다, 그러나 나 역시 내 인생의 주인공이니 특별하다, 그런 낯부끄러운 말은 하지 않으련다. 뭐 어차피 남 이야기니까 오글거린다 한들 막상 또 그게 내 이야기였다면 한없이 크게 다가온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을 알기에, 그렇기에 가끔은 이런 오글오글한 이야기를 펼쳐서 읽고 있으면 내가 잊고 지내던 시절의 설렘이 종종 찾아오기도 하나보다. 그렇게 나는 어떻게 'the 클럽'에 가입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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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만나요 - 책으로 인연을 만드는 남자
다케우치 마코토 지음, 오유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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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미가 비슷한 사람, 내가 보고 듣는 것을 이야기하며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상당히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럼에도 그런 기회를 잡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온라인을 통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지만.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나는 종종 혼자서 망상에 빠지곤 한다. 수많은 책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그 곳에서 나와 비슷한 곳을 서성거리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저 사람은 무슨 책을 좋아하는 걸까,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저 사람도 재미있게 읽었을까. 혹은 나는 얼씬도 하지 않는 책장 근처에 머물러 있는 이를 보면서 그 사람은 자신이 보는 책에서 어떤 즐거움을 얻는 것일까, 그렇게 말이다.


  그러면서 괜스레, 아무도 신경 쓰지도 않음에도 (나 혼자) 그들의 근처를 얼씬거리며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굳이 다시 집어들어 뒤적여보곤 한다. '이 책, 정말 재미있어요'라는 무언의 제스처를 마구마구 발산하는 것이다. 받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지 몰라도, 킥킥.



  어쨌든 책의 숲을 거닐면서 나 혼자 이런저런 상상에 빠지는 것도 서점 그리고 도서관을 방문하는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인데, 그런 나의 로망이 담겨있을 것만 같은 제목의 소설, 다케우치 마코토의 <도서관에서 만나요>에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게다가 나는 이처럼 '책 이야기거든!'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는 제목과 표지의 책을 정말 좋아한다.




한밤의 도서관은 오직 나만의 것이고 내 손에는 손전등이 있으니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삼촌이 밤참거리를 사 왔다며 들락거리는 것보다 아침까지 도서관을 독차지하며 흘러가는 시간을 만끽하는 편이 훨씬 좋았다._p.46




  무명 작가 고마치 다케도는 전철에 몸을 싣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읽으면서 자신이 쓰려 했던 이야기를 도둑맞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안 읽어봐서 잘 모르겠지만, <해변의 카프카> 속 주인공 소년 카프카는 돌아가기 싫은 집 대신 도서관을 향하는 모양이다.) 과거 도서관에서 밤을 보냈던 자신의 경험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을 읽은 그는 빼앗겼다는 질투와 함께 자신이 그 경험을 글로 옮긴다면 이보다 더 나았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은 우울해진다.




"저기, 저 사람이 읽고 있는 책, 《해변의 카프카》 아니야?"

"아, 정말 그러네."

석양빛처럼 불그레한 표지가 눈에 익었다. 키가 크고 안경을 낀 남자가 들고 있는 것은 《해변의 카프카》 하권이었다._p.141




  한편, 미용실의 점원과 손님으로 만난 두 남녀가 있다. '호시노 스미레'라는 가명을 쓰고 있는 나즈나에게 그 이름은 어디서 따온 것이냐고 물었던 와타루는 서로가 알고 있던 다른 책을 통해 공통점을 찾아낸다. 나즈나가 와타루에게 권해준 <해변의 카프카>를 읽어본 것을 시작으로 둘은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그리고 어느 날, 그들은 <해변의 카프카>의 무대가 되었던 다카마쓰에 여행을 갈 계획을 세운다.



  <해변의 카프카>를 통해 여행에 함께 동행하게 된 한 명의 중년 작가와 한 쌍의 남녀. 그들은 함께 <해변의 카프카>를 이야기하며 다카마쓰를 여행한다. 이 단 한 권(은 정확히 말하면 아니지만)의 책이 세 사람을, 그리고 또 다른 장소에서 머물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을 연결하는 고리가 되어 거기에 이끌리듯 한 도서관에 모이게 된 우연 그리고 인연을 그려내고 있다.




도서관이라는 곳은 사람과 책을 이어주는 장소니까요._p.214




  공교롭게도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에 이어 펼친 책 역시 하루키와 연결이 되어있다니,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크크크.

  그러려고 읽은 것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잡문집>에서도 살포시 스쳐 지나가듯 언급된 이야기를 이 소설 속에서 다시 만나볼 수 있었는데, '어, 그래 나 이거 알아!'하는 순간의 반가움을 잠시나마 만끽할 수 있었다. <해변의 카프카>를 몰라 줄곧 머릿속에 찜찜한 물음표가 떠다니고 있던 찰나에 만나본 친숙한 이름이라니.


  고작 친숙한 한 개의 단어를 발견하면서도 반가웠던 나였을 정도이니, <해변의 카프카>의 무대가 되었던 장소를 세세하게 그려내면서 동시에 이 뿐만 아니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 세계에 대한 연결고리─<해변의 카프카>라는 작품과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작품 세계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듯하다─를 찾아나서는 여행은 하루키의 소설을 읽은 사람에게는 더 반갑게 다가가지 않을까.




재미있는 이야기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다.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고, 사고를 촉발하는 힘이 있다. 그 힘이 너무 지나쳐 지어낸 이야기와 현실을 혼동시키기도 하지만,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고 위로하는 선한 힘이 충만하다. 나는 그러한 힘을 믿고 싶다._p.146




  <해변의 카프카>에 대한 오마주이자 책을 통해 이어지는 인연을 그려내고 있는 따뜻한 소설이니만큼, 책이 가지고 있는 따뜻함과 그 힘을 믿는 이에게는 상당히 감상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일 것 같다. 아무도 모르게 도서관에서 하룻밤을 보낸다거나, 문득 책을 들고 오른 여행길에서 나와 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이를 만나는 기회를 가진다는 것,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이어질 수 있다는 것, 그 이야기의 힘, 참 낭만적이구나.



 

나즈나와 와타루, 그리고 미쓰기 씨. 독자가 있고,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이야기로 이어질 수가 있다.

그 생각을 하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따뜻한 빛을 발하는 게 느껴졌다.

내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꿈틀댄다._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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