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호형사
쓰쓰이 야스타카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소설, 골 때린다.

SF 소설의 거장이라는 쓰쓰이 야스타카의 첫 미스터리는 기상천외한 놀라운 트릭이나 반전 대신, 전대미문의 캐릭터를 창조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했다.

어떤 트릭과 반전으로 독자를 속일 수 있을까 머리를 싸매고 있을 미스터리 작가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부호형사'라는 신의 한 수로 미스터리 지도에 작지만 독특한 발자국을 남겼을 것이다. 1978년의 출간 시기가 무색하게 2005년에는 일본 드라마 <부호형사>가 제작되었으며, 그 드라마 역시 상당한 인기를 끈 뒤 <부호형사 디럭스>로 후속편이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일본 드라마의 팬이라면 한 번쯤 챙겨봤을 법도 하지만, 나는 그다지 잘 챙겨보는 사람이 아니니 넘어가자. 그냥 바로! 소설 속 <부호형사>를 만났다.

 

골 때리는 소설이다 어쩌고 저쩌고 하고 제목 <부호형사>라는 말 밖에 하지 않았지만, 어떤 이야기인지 대강 짐작을 할 수 있듯 형사는 형사인데 상당히 부유한 형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이다. 과거 한 악랄함을 내비치며 이리저리 돈을 긁어 모았을 간베 기쿠에몬의 아들 간베 다이스케는 캐딜락을 타고 출퇴근 하고, 평소 커피 값에 대한 개념은 일반인과 같지만 천만, 억대의 금액의 돈을 논하기 시작하면 금전 감각이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형사'다.

거기에 더해 앨프리드 히치콕, 글렌 포드, 험프리 보거트, 앨프리드 E. 뉴먼을 닮은 개성 넘치는 경부님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대부호이기에 가능한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7년에 걸쳐 4명으로 좁혀놓은 강도 사건의 용의자로 하여금 '돈을 쓰게' 하기 위해 간베 다이스케는 개인의 재력을 이용해 미끼를 던지고, 도저히 풀 수 없었던 밀실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는 용의자를 또 다시 사건 전과 유사한 궁지로 몰아넣어 또 다시 트릭을 이용하게 만든다거나, 유괴 사건의 몸값이 쉽사리 준비되지 않자 유괴당한 어린이의 안전을 염려해 몸값을 선뜻 내고 사건 해결을 위해 대중 속에서 돈을 마구 뿌린다던지, 야쿠자들의 회합 예정 소식을 듣고 주민들의 안전을 고려한 경비 대책을 세우는 데 있어 야쿠자들을 한데 모으기 위해 그들을 모을 호텔을 제외한 나머지 여관에 예약을 해 버린다거나. 이 어마어마한 스케일에는 그저 한 번 웃어줄 뿐이다.ㅋㅋ

 

 

썩 놀라운 반전은 아니더라도 미스터리로서의 모양새를 확실히 갖추고 있는 <부호형사>에서는 쓰쓰이 야스타카 특유의 유머를 엿볼 수 있다.

부호형사 간베 다이스케 뿐만 아니라 사건만 해결되면 덩실덩실 춤을 추며 등장하는 서장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라거나 앞서 이야기했듯 다양한 캐릭터를 본뜬 것 같은 형사들. 그래도 역시 압권은 언제나 사건 해결을 위해 자금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다이스케에게 '너는 하느님이 내게 보내신 천사'라는 둥 '돈은 얼마든지 쓰렴. 그게 내 잘못을 씻어줄 수 있다면'이라는 말로 시작해 결국은 발작을 일으키고 마는 실은 최강의 악당 기쿠에몬의 만담 같은 대화와 갑작스럽게 미스터리에 대한 압박이 있었던 듯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등장인물의 대화다.

그런 장면 하나하나를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나온다.

 

 

이렇게 황당할 정도로 기막힌 설정, 가벼운 문체로 전개되는 이야기로 너무 가볍기만 하고, 미스터리에서만 볼 수 있는 다양한 트릭이나 사건은 만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은 오산이다. 굉장히 훌륭한 트릭이나 반전은 아니더라도, 쓰쓰이 야스타카는 미스터리의 핵심은 놓치지 않았다.

용의자 속에서 범인을 끄집어낸다거나 밀실 트릭, 유괴, 미스디렉션 등 본격 미스터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교를 고스란히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보통의 형사나 탐정이 회색 뇌세포를 이용해 수수께끼를 푸는 대신 어마어마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그 수수께끼 풀이에 정면으로 도전한다는 것이 캐릭터와 함께 이 소설에서만 엿볼 수 있는 특징이라고나 할까.

 

이처럼 쓰쓰이 야스타카는 쩐으로 회색 뇌세포에 도전했다. 유쾌하고 재기 넘치는 소설이다. 가볍게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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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마리 아저씨
아리카와 히로 지음, 오근영 옮김 / 살림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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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예 거동이 불편하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면 지하철 혹은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지만, 그렇지 않은 애매한 경계에 놓인 분들을 보면 어찌해야하나 상당히 망설이게 된다.

괜히 자리 양보해 드렸다가 기분나빠하시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몸이 움츠러들고 주변의 눈치를 살살 살피고, 나도 오래 타고 가야 하니까..라는 자기 변명과 함께 가만히 앉아있는 것.

그리고 문득, 시간이 흘러 내가 저 나이 대의 할머니와 아주머니의 경계쯤에 놓였을 때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만약 그 상황에서 나에게 양보를 해 주는 젊은이가 있다면 자리가 생긴 것이 좋으면서도 선뜻 그 상황이 반가울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내가 아무런 불편함 없이 건강하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겠지만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고! 라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이미 오래 전 일이 되어버린 고령화 사회의 가속화 덕분에, 60세라는 나이는 많은 나이가 아니게 된 지 오래다. 늦은 결혼 등으로 아마 가족 내에서도 공식적인(?)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호칭이 붙게 되는 것 역시 꽤나 뒤로 미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말이지.

 

그런 사정은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유일하게 애독(?)하는 라이트 노벨 작가가 있는데 그녀는 바로 '아리카와 히로'다. 라이트 노벨을 출간하는 출판사에서 나오던 그녀의 책들이 이제는 그 밖의 다른 출판사에까지 진출하면서 그 이름을 알게 되었는데, 종종 눈에 들어오는 이름과 함께 책을 지금까지 집어들어본 결과, 읽은 책들은 모두 나를 배신하지 않는 친숙한 분이다.ㅎㅎ

 

 

 

이번에는 동생의 선택으로 우연히 읽게 된 <세 마리 아저씨>.

그런데 막상 펼쳐보니 아저씨가 아니다. 기요카즈는 아버지 때 부터 운영해왔던 검도 도장을 물려받아 운영해 왔지만, 지난 봄에는 마지막 문하생들마저 그만둔 데다 60세 생일을 맞아 회사에서도 정년 퇴직을 하게 되었다. 생일이자 퇴직일에는 2층에서 살고 있는 아들 부부와 손자가 함께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지만, 눈치없는 며느리는 환갑의 상징인 촌스러운 옷을 입어보라고 성화다. 울컥한 기요카즈는 결국 언제나 곁에 있어주는 어린 시절 부터의 좋은 친구인 '술 취한 고래'라는 술집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시게오와 공장을 운영하는, 기요카즈와 동갑인 딸을 둔 노리오를 만나러 간다.

쓸쓸한 나이에 접어들었다고 한탄하던 중, 시게오가 문득 한 가지 아이디어를 내 놓는다. 시간도 한가하고 무술과 지략이 적당히 갖춰진 삼총사, 지역 사회의 평화를 위한 정의의 사도가 되어보는 건 어떻겠냐고!

 

검도와 유도로 다져진 무술, 그리고 몸집은 작지만 언제나 지략을 뽐내고 뚝딱뚝딱 물건 개조를 잘 하는, 노인이라는 말이 무색한 아저씨 세 명은 그렇게 뭉쳤다.

해서 기요카즈가 경리 업무를 보기도 하고 손자 유키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직장에서 지역 폭력배의 협박과 공갈을 막아내는 것으로 첫 임무를 해결해 낸다. 부쩍 출몰하게 된 치한을 막기 위해 야간 순찰에도 힘쓰고, '로맨스 그레이'가 어느샌가 무뎌졌을지 모를 할머니의 마음을 새삼 흔들어 돈을 입금하게 하는 사기꾼들을 잡아내기도 한다. 검도장의 문하생이었던 중학생의 의뢰를 받아 학교 사육장의 오리에게 잔혹한 짓을 하고 있는 범인을 잡기 위해 밤중의 학교에 잠입하고, 무심코 따라가 세미누드(?) 사진을 찍은 여고생이 시달리는 협박을 해치워주기도 한다. 여고생에게 따끔한 훈계도 잊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또 악덕 업자들의 마수에 걸려 건강 제품을 구입하고 있는 마을의 노인들을 지키기 위해 시청과의 협력으로 노인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내기까지 하는 세 마리 아저씨들의 오지랖 넓은 활약이 담겨 있다.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삼총사의 활약 뿐만 아니라, 기요카즈의 손자 유키와 노리오의 딸 사나에 역시 만만찮다. 삼총사의 활약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던 기요카즈의 손자 유키는 눈치 없는 어머니 대신 할아버지에게 '젊어보이는 패션'을 제안하면서부터 급격히 할아버지와 친해진 고등학생이다. 막상 할머니 요시에가 할아버지와 다정하구나~와 같은 말을 툭 던지면 다정하긴 뭐가 다정하냐며 무뚝뚝한 얼굴로 대답하곤 하지만(이건 할아버지 기요카즈의 반응도 마찬가지. 조부전자전이다.ㅋㅋ) 꽤나 삼총사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게다가 한 사건에 노리오의 딸 사나에가 휘말리면서 유키와 사나에는 급격하게 친해지는데, 이 둘이 함께 보여주는 아저씨들과는 다른 활약과 그 사이를 미묘하게 흐르고 있는 알콩달콩한 연애 전선을 지켜보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손자와 딸의 연애를 지켜보는 두 친구는 반응 역시 다를 수 밖에 없어, 노리오씨가 '망가진 전차'처럼 폭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는 덤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영감탱이'가 아닌 '아저씨' 세 명 그리고 그들을 돕거나 혹은 주역이 되기도 하는 유키와 사나에의 활약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책을 읽는 내내 미소를 가득 머금게 된다.

이는 철저한 취재를 바탕으로 정말 어느 동네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는 아리카와 히로의 소설 특유의 분위기 덕분이다.

치한의 등장이라거나 노인을 상대로 하는 사기 수법 등은 미스터리가 아닌 일상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생생한 모습에 정말 나도 모르게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 주변의 누군가일지도 모를 그들에게 처한 위험을 막아내는 모습은, 몰입한 만큼 안도감을 준다고나 할까.

엄마미소..라고 하기는 좀 뻘쭘하지만 어쨌든 아저씨들의 활약과 알콩달콩 귀여운 두 고등학생의 연애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새어나오니 말이다.

 

 

그렇게 '노인'의 문턱에 발을 얹고 있는 아저씨들의 모습을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는 <세 마리 아저씨>. 아니 이렇게까지...라는 생각에 아저씨들의 모습에 '오지랖도 넓다'고 생각하지만 그 오지랖 역시 즐겁고 반갑기만 하다.

언젠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늙음'을 아리카와 히로는 이런 유쾌한 모습으로 그려냈다. 좀 아슬아슬하게 법의 경계를 넘나들긴 하지만, 어쨌든 멋지게 늙어가는 아저씨 세 마리가 동네 어딘가에서 정의를 구현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참으로 흐뭇해진다.

 

 

 

 

 

"아직 늙은이 축에 끼고 싶지 않은 나로서는 말이지, 한가한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버리면 실력만 무뎌질 거다 이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시게오가 씨익 웃었다.

"'개구쟁이 삼총사'에 이어 '아저씨 삼총사'로 나서서 사설 자원봉사라도 해보지 않으려나?"

-p.35

 

 

우리를 영감탱이라고 부르지 마라. …아저씨라고 불러라.

-p.69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어!

나를 할머니로 취급하지 말라고!

나는 아직 가슴이 설레는 감정을 잊지 않고 있다니까…!

-p.186

 

 

아이는 움직이는 존재다. 닫힌 공동체 안에서 아이를 지키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 갈등이 지난 며칠 동안 요시에의 불평과 구니코 씨나 요타 씨 같은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참, 살기 힘든 세상이 된 거군."

결국 공동체 밖의 어른은 그렇게 중얼거리는 수밖에 없는 요즘이다.

-p.241

 

 

이웃과의 교류라는 네트워크가 단절되고 있는 현대. 제일 먼저 밀려나는 건 고독한 고령자다. 그 점이 악덕업자들이 노리는 틈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고령자끼리 네트워크를 만들어주면 어떨까….

-p.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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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공원
쇼지 유키야 지음, 김성기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근데 아직은 다 도중이야."

나보다 세 살 위인 히로는 종종 그렇게 말하곤 한다. 아직은 이루어가는 도중이라고.

나는 그 말이 마음에 든다.

우리는 아직 도중에 있다.

그것은 계속 걷지 않으면, 어딘가로 가고 있지 않으면 쓸 수 없는 표현이다.

-p.19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공원은 버스를 타고 15~20분 정도를 타고 시내에 가서 끝없이 이어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비로소 도착한다.

예쁜 꽃시계도 있고 이순신 장군님의 동상도,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동상도 있고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타워도 있는데다 최근에는 남산을 따라한답시고 울타리에 자물쇠를 걸어놓는 커플들의 흔적도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르신들이 그늘진 벤치에 앉아 장기나 바둑을 두고 계시고, 정말 많은 비둘기들이 먹이를 찾아 오로지 한 곳만을 바라본다는 아름다운(?) 시선으로 광장을 두리번거리며, 시간이 지나면 가끔 떼를 지어 원형을 그리면서 날기도 한다. 그래봤자 나는 박테리아 투성이라고 기겁하고 도망치지만..

그 밖에도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조금 더 나가면 공원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가장 마음이 편한 것은 가장 가까운 공원에 오르는 것이다. 친구들과 갈 곳이 없으면 우리는 언제나 공원에 올라가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다 내려와선 밥을 먹곤 한다. 예전에는 그렇게 소중한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도 신경쓰지도 않았지만, 요즘에는 그렇게 마음먹으면 훌쩍 갈 수 있는 공원이 있다는 게 참 좋다.

 

 


어느 한순간을 고스란히 오려낸 사진. 그 순간을 시간으로 치면 몇 초나 될까? 일 초? 십분의 삼 초?

그 사람이 사진에 찍힌 표정을 한 것은 어느 순간일까? 언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런 표정을 지은 걸까?

사진작가는 그때 무엇을 느끼고 이 순간을 포착한 걸까?

-p.21~22

 

그러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사진'일 것 같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손을 잡고 오른 어린 나는 지금도 있는 길쭉하고 구불구불한 용의 위엄 앞에서 눈이 부셔 인상을 잔뜩 쓴 채 사진 속에 담겨 있다. 비둘기한테 모이를 준답시고 모이 사 달라고 했지만 어머니가 더럽다고-_-;; 나를 말리신 적도 있다. 동생은 새해맞이 타종 행사와 해맞이 봉사활동을 위해 20살이 되어선 얼어죽을 것 같은 추위 속에서 벌벌 떨며 그 곳에서 밤을 새기도 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방문해 비슷비슷한 모습을 사진 속에 담아 간직하고 있다는 것. 그렇게 문득 찾아갈 수 있는 공원은 최고의 포토 스팟일지도 모르겠다.

 

 


파인더에 비친 사람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사진작가가 포착한 한순간은 분명히 그 사람의 참모습일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육학년 때 그렇게 확신했다.

-p.34

 

초등학생 시절,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긴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친구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정말 자신이 찍고 싶어 찍은 첫 번째 사진은, 가족 사진이었다.

사진작가를 목표로 사진을 찍고 있는 게이지는 가족 사진을 자신의 첫 사진으로 선택한 뒤 틈틈히 공원에 나가 가족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공원을 거닐고 있는 어머니와 딸의 사진을 프레임에 담은 순간 말을 걸어온 한 남자는, 게이지에게 자신의 부인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자신에게 알려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게이지는, 유리카씨가 딸 가린을 데리고 도쿄의 어느 공원에를 갈 것이다,라는 연락을 하쓰시마씨에게 받으면 카메라를 들고 그 공원을 향한다. 그리고 유리카씨와 가린의 모습을 담는다. 그런데 스치듯 마추져버린 유리카씨의 눈길에서 게이지는 그녀가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매일 도쿄공원에 사진을 찍으러 나가는 게이지는 유리카씨와 함께 무언의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그와 함께 사는 히로, 그리고 오랜 친구 도미나가와 종종 함께 하곤 하는 의붓 누나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에 머무른다.

쇼지 유키야의 <도쿄공원>은 그렇게 일상에 머무르는 이들을 그려내고 있는 따스한 이야기다.

 

 


햇병아리 대학생의 일상과는 다른 새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날수록 내 일상의 범위도 점점 넓어질 것이다.

고등학교 때는 한잔하러 가는 것을 일상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내 일상의 일부분이 된 것처럼.

-p.179






카메라 렌즈를 통해 두 모녀를 바라보는 게이지의 시선과, 카메라 렌즈 너머에서 직접 눈을 맞댈 수 있는 게이지를 둘러싼 일상의 모습이 교차되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그렇게 서서히 게이지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이들의 감정을 미묘하게 드러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이 끈적끈적한 감정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 아닌 상당히 담백하고 깔끔하다. 전형적인 일본 소설의 담백함이라고나 할까.

 

 


그게 함께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해. 함께 지내는 건 별개겠지만.

어쨌든 제각기 다른 장소에서 다른 사람과 지내더라도 함께 살아가는 거잖아.

모두가 행복한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어. 그러다가 만나면 언제나, 뭐랄까, 평소처럼 지냈으면 좋겠어."

-p.228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정말 착하다. 일상의 소중함을 알고 그 일상 속에 머무르며 살아간다. 그들은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배려와 함께 따끔한 충고를 잊지도 않는다.

그 소소하고 잔잔한, 공원의 평화로운 모습과 함께 그려지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 주변의 공원을 떠올리게 하면서 상당히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상을 그려내는 그들의 대화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일상과 시간이 흘러가며 자연스럽게 서서히 변해가고 있는 모습도 함께 되짚어보며 이를 상기시켜준다.

 

 


인간은 모르기 때문에 말로 표현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에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말로 표현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보이지 않는 것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p.235

 







쇼지 유키야의 작품은 <모닝>에 이어 두 번째다. 그 때도 청춘을 되돌아보는 친구들의 추억 여행을 친구의 죽음과 함께 약간은 미스터리의 요소를 가미해 그려내고 있는 것을 읽으면서 이 얼마나 따스한 이야기인가, 하고 생각했었다.

이번 <도쿄공원> 역시 마찬가지다. 쇼지 유키야의 시선은 정말 한결같이 따뜻하고 반짝거린다. 이번에도 하쓰시마씨의 미심쩍은 의뢰와 함께 그의 부인인 유키코 씨의 부정을 조금은 의심하는 듯한 요소를 집어넣었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도대체 왜 이런 의심스러운 상황을 집어넣었을까 싶을 정도로 평화롭기만 하다. 따스한 시선으로 일관하며 그려낸 공원의 평화로움과 게이지를 둘러싼 일상은 그야말로 평범하고 '일상적'이라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무래도 우연히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아. 게이지가 공원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우연히 두 사람이, 아니 세 사람인가, 아무튼 그 단란한 가족이 파인더 안에 들어오면 얼마나 감격스럽겠어.

-p.258

 

그렇지만 실은 호오가 갈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들의 일상적이지만 결코 일상적이지 않은 '소설적'인 대화 속에서 나는 편안함과 오글거림의 양쪽을 계속해서 오갔다.

일본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잔잔함과 담백함은, 일본 미스터리를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들곤 하는데 상당히 여성적이고 잔잔한 이 이야기가 그랬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 일상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런 말을 어쩜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손발이 오글오글. 나는 그렇게 소설 속 인물이 하는 이야기에 감정을 이입해 내 마음을 정돈하고 위안을 삼곤 하는 것이지만 말이다.ㅋㅋ

 

 


언젠가는 더 이상 서로를 떠올리지도 않고 아무런 관련도 없는 세계에서 제각기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때는 우리가 함께 지냈던 시간도 꿈결처럼 느껴질 것이다.

초등학교 때 날마다 같이 재미있게 놀았던 몇몇 친구들을 더는 떠올리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지금 우리는 여기 이렇게 함께 있다. 이렇게 함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직은 그 나날 속에 있는 것이다.

-p.264

 





확실한 건, <도쿄공원>은 말마따나 착한 사람들이 그려내고 있는 치유계 소설이라는 것이다. 소설을 떠올리지 않고 제각기 일상을 보내다 문득 지친 마음을 달래고 싶을 때 펼쳐보면 평화로운 공원의 풍경과 한없이 착한 그들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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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방 모중석 스릴러 클럽 29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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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동물들은 태어난 뒤 얼마 있지 않아 가족의 품을 떠나지만, 인간은 꽤 오랜 시간을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함께 살아간다.

그렇기에 자식들에게 부모님의 가치관이나 생활 방식 등은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그럼에도 사춘기가 찾아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시작하면서 갈등을 빚기 시작한다.

특히 그놈의 '간섭'이라는 녀석 때문인데, 더 이상은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딜 가는지 등의 일거수 일투족을 부모님에게 간섭을 받지 않기를 원하고, 또 자기만의 비밀을 하나 둘 가지고 그것을 숨기고. 하지만 부모님의 마음도 이해 할 수 있는 것이, 그래도 내 아들이 어디선가 위험에 처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사춘기 시절 자기 혼자만 알고 싶은 비밀을 품고 있는 자녀들의 속이 부모님은 궁금하지 않았을까?

방 청소를 하다 문득 딸의 일기장을 펼쳐본다거나, 친구 집에서 자고 오겠다는 아들을 묘한 눈길로 바라본다거나(실은 이건 내 목격담이다. 고모가 우리 집에 놀러오셨을 때 사촌 오빠가 그러더라고 이야기 하는 걸 들었다.ㅋㅋ). 뭐 우리 어릴 때도 그랬는데, 얘들도 매한가지겠구나, 하고 자라고 있는 자녀들을 흐뭇하게 생각하며 모른척 하고 넘어가는 일도, 좀 위험한 일에 휘말리지는 않을까 일거수 일투족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싶은 마음도 분명히 생겨날 것다. 요즘은 그래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문자 메시지함에 비밀번호를 걸어둔다.ㅎㅎ

 

언젠가는 품에서 벗어나겠지만, 그래도 품에 있는 동안에는 안전한 울타리 속에 꽉 잡아두고 싶은 부모님. 부모님에게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리고 싶지는 않은 아들.

나중에, 혼자 날아갈 수 있을 때 까지는 울타리 속에 계속 붙잡아 두는 게 좋을까? 아니면, 지금부터라도 그 밖을 조금씩 내다보게 해 주는 게 좋을까?

 

 

장기이식 전문의와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는 법조인인 마이크와 티아는 아들 애덤과 딸 질을 둔, 미국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중산층 가정이다. 부부에게는 고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 애덤이다. 그는 최근 절친한 친구였던 스펜서의 죽음 이후 자신의 행동을 철저히 숨긴 채 부모님과의 대화마저 급속히 줄어들었는데, 혹여나 애덤이 나쁜 길로 빠지지는 않을까, 친구들과 주고받는 인스턴트 메시지에는 마약 파티에 가자는 내용이 담겨있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하는 것이다. 그러던 중 부부는 끝내 애덤의 컴퓨터에 몰래 사용 내역을 저장해 부모에게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설치하기에 이른다. 애덤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아들을 믿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내비치는 마이크와는 달리, 티아는 이 프로그램의 사용에 상당히 강경한 입장을 내세우며 아들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마이크의 오랜 친구인 모의 의견마저 티아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면서, 그들은 애덤의 행동을 몰래 감시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의 DJ라는 친구로부터의 메시지를 알게 된 마이크는 애덤이 그를 만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아들과의 약속을 잡기까지 하지만, 애덤은 아랑곳않고 사라져 버린다.

 

아들을 찾아나선 마이크의 행보와 함께 내니라는 남자의 살인 행각이 함께 등장하면서 온갖 퍼즐 조각을 흩어놓는다. 과연 그 퍼즐들을 이어붙이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크게는 한 살인범의 살인 행각과 애덤을 찾아나선 아버지의 모습이 큰 줄기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밖에도 마이크와 티아 부부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이웃들의 모습도 단편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고 그 모든 퍼즐조각을 하나로 맞추어낸다. 할런 코벤은 그 과정을 상당히 짧은 호흡으로 이루어진 문장과 속도감 있는 전개와 함께 긴박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스릴러라는 형태로 읽어나가기에는 조금 아쉽다. 스릴러로서의 이 <아들의 방>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영미 스릴러의 형식을 띠고 있는데, 성격적인 결함이 있는 살인마의 살인 행각과 그의 행적을 뒤쫓는 경찰, 전혀 상관 없어 보이던 주인공들의 움직임이 결론적으로는 이러이러한 연관이 있더라는 식으로 임팩트를 안겨주려는 결말 등의 구조에서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 과정도 결코 재미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조금 전형적인 반복에 조금 질린 독자라면 그 대신 '아들의 방'을 소재로 눈을 돌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할런 코벤은 이 소설을 구상하면서 스스로에게도 상당히 질문을 많이 던진 듯하다. 꼭 미국이 아니더라도 흔히 사춘기 자녀를 둔 가정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에피소드를 애덤과 부모님 사이의 갈등을 그려내는 것에 차용하고 있는데, 자신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그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느샌가 자신의 부모님과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놀란다거나, 자녀들의 사생활과 부모의 보호의 그 미묘한 경계를 어떻게 잡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자녀들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시선 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상당히 전형적인 마이크의 가족 이외에도, 희귀병을 앓고 있는 가족이라거나 이혼한 아버지와 딸이 살고 있는 가족 등 다양한 모습을 그려내려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가족 소설이라 함은 가족에게 닥친 위기를 극복하면서 그려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 위기가 그저 가족 구성원들간의 갈등으로 그려질 수도 있지만, 할런 코벤은 거기에 살인 사건을 등장시키면서 독자의 궁금증을 증폭시키며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겼다. 뭐, 할런 코벤이 스릴러 작가니까 그런거지만..;;

 

어쨌든 그렇게 다양한 모습과 함께 가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아들의 방>. 그러나 여전히 그 답은 잘 모르겠다.

아들을 새장에 가둔 채 보호만 하고 있어야 할까? 아니면 나름대로의 판단력을 갖추었다 생각하고 어느 정도 행동을 존중해 주는 것이 좋을까?

할런 코벤은, 가만히 지켜보며 놓아두기에는 너무 가혹한 상황을 애덤에게 닥치도록 해놓고는 위험하니 그래도 울타리 속에서 꽉 붙잡으라고 결론을 내린 것 같다. 당연하다. 소설에서나 벌어질 법한 사건에 휘말린 아들을 내버려 둘 부모가 어디 있을까. 스릴러 작가로서의 할런 코벤의 선택은 어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소설의 원제는 <Hold Tight>가 되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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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총사 1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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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익숙하게 쓰고 있는 단어가 온전히 순 우리말이리라 믿고 있었는데 홀연히 덮쳐오는 그 단어의 진실ㅡ외국어에서 파생된 외래어라거나, 알고보니 한자어라거나!ㅡ은 나를 굉장히 놀래키곤 한다. 그런 단어가 뭐가 있었나 찾아보니 방금 이야기한 '홀연히' 역시 한자어다. 막상 이렇게 쓰고 계속 '홀연', 하고 되뇌어보니 한자어 같기도 하다. 쓰고 보니 재미가 없다.

 

뿐만 아니라 관용어구로서 그 말의 유래를 그다지 생각하지 않고 마구 써 대는 단어 역시 그 유래를 파고 들어가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어처구니' 같은 게 있는 것 같은데 또 막상 쓰려니 생각이 하나도 안 나기 때문에 넘어간다. 그냥 하려고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하도록 하자.

그러니까 아무 생각 없이 쓰고 있는 단어가 알고 보니 유래가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있더라, 그걸 뒤늦게 알고 나니 참 충격적이더라, 나는 이제서야 이 단어가 이런 뜻이었다는 것을 부끄럽게도 고백할 수 밖에 없는데, 바로 그 단어는 '삼총사'다.

 

삼총사.  우리는 세 명이 뭉쳐 다니는 것을 보고 주로 '삼총사'라는 단어로 그들을 지칭하곤 하는데, 거기서 파생되어 다섯 명이 '오총사', 네 명이 '사총사' 그래서 뭐 가요계의 사총사가 어쩌고저쩌고 등등의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곤 한다. 그럼에도 그 단어가 어째서 '삼총사'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무성히 듣기만 했지 정작 읽어보지도 내용도 하나도 모르는 뒤마의 '삼총사'라는 소설의 제목 역시 '삼총사'라는 우리 말의 관용 어구에서 세 명이 나오니 갖다붙였겠거니 했다. 왜 다르타냥까지 네 명인데 사총사가 아니라 삼총사인가에 대한 의문은 있었지만, 왜 '삼총사'라는 단어가 쓰였는지, 상상조차 못 했는데...

 

 

그건 바로 뒤마의 소설 그 자체가 '삼총사'였기 때문이다. 으아니 이럴수가. 세 명의 총사(銃士)가 모여 삼총사(三銃士)라니. 뭔가 완전히 속아넘어간 듯한 이 쎄한 느낌은 무엇인가.

 

뭐 어쨌든, 그 속아 넘어갔다기 보다는 나의 무식을 뽐내는;; 짓은 그만두고 그 뒤마의 <삼총사>의 완역본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어린 시절 아라미스가 알고보니 남장여자였다는, 일본스럽다면 참 일본스러운 진실을 녹여낸 애니메이션이 방영되기도 했다는데 난 솔직히 그마저도 안 봤고, 어린 시절에는 언제나 꽂혀 있는 삽화와 함께 읽을 수 있는 초등학생을 위한 축약본 전집 속에서도 분명히 <삼총사>가 있었는데 그마저도 읽지 않았다. 그래서 맨날 뭔지도 모르고 삼총사 삼총사 하던 그 단어가 진정으로 등장하는 다르다냥과 세 명의 총사의 이야기를 이제서야 만나게 된 것이다.

 

 

시골에서 총사대장 트레빌 씨의 추천을 받기 위해 파리로 상경하는 청년 다르타냥은, 그 와중에도 '밀레디'라고 불린 여자와 자신의 소개장을 훔쳐가버린 '어떤 남자'와 마주치며 휩싸이기 쉽고 앞뒤 물불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자신의 성품을 온전히 드러내 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래서 여차저차 도착한 총사대장 트레빌의 저택에서도, 나서기 좋아하는 그 성정 덕인지 '삼총사' 아토스, 포르토스와 아라미스와 사사건건 부딪히며 결투를 하게 되고, 그 중에 다르타냥의 의리와 성격을 알게 된 삼총사는 그를 진정한 동료로 맞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그들과 추기경의 계획을 저지하거나 추기경 측에 속한 막강한 악당 밀레디와의 대립을 주요 줄기로 삼아 다르타냥과 삼총사의 모험을 그려내고 있는 소설이다.

 

 

완역본이라함은 원전 그대로를 맛볼 수 있다는 메리트와 더불어, 대략적인 이야기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세세하게 파고 들어감에 따라 지루함 혹은 그 이상의 재미를 안겨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나는 이들에 대한 정보라고는 등장인물이 다르타냥과 삼총사라는 것 밖에 없었으니 솔직히 좀 긴장했다.

무려 두 권으로 분권되어 이걸 어찌 읽을까! 했지만 의외로 잘 읽힌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해보자면, 읽는 재미에 날이 새는 줄 모르고 줄줄 읽었다. 무려 1000페이지에 달하는 두 권의 내용을 3일만에 다 읽었다면 말 다했지. 밤에 침대에 누워 책을 슬슬 넘기고 있다보면, 쉴새없이 이어지는 다르타냥과 삼총사의 모험에 함께 녹아들어 그 재미가 상당히 쏠쏠했다.

 

모험을 그리고 있는 이야기를 읽거나 보고 있노라면 뭔가 사건이 그다지 큰 개연성도 두서도 없이 불쑥불쑥 등장하고는 주인공들이 거기에 휘말려들어간다거나 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삼총사 역시 그 전형적인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그래서 흐름을 크게 놓칠 일도 없기에 부담없이 마음 편하게 술술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확실히 대립되는 두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마냥 다르타냥의 편에 서서 밀레디라는 악랄한 여인네를 어찌 처치하게 될 것인가, 하는 궁금증을 해소해가며 읽는 재미가 있다.

악당은 쉽사리 죽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주인공들에게 당하고 또 당하면서도 또 되살아나서는 음모와 책략을 꾸미기 마련이다. 덕분에 아름다운 외모지만 속은 시커멓기 짝이 없는 그녀의 책략에 속아넘어가는 이들을 보면서, 독자는 다 알고 있으니까 답답하다 하면서도 끝내 그 최후를 지켜보고 말겠다는 열의를 불태워주는 것이다.ㅎㅎ

 

 

 

어쨌든 그러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삼총사>는 실은 그 등장인물들 자체가 제일 재미지다.

앞서 말했듯 등장하면서부터 불같은 성격을 마구마구 드러내며 아무에게나 결투를 신청하는 무대포 청년 다르타냥이나, 언제나 과묵함을 좋아해 하인마저 말을 안 시키는 아토스나 성직자를 꿈꾸며 총사대에 머물고 있는 아라미스, 그리고 고리대금업자의 부인을 유혹해 이런저런 비용을 마련하는 포르토스 등 이들은 언제나 훌륭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 재미가 있다. 쾌남 보다는 허세에 가까운 등장인물이라고나 할까.

툭하면 번 돈을 도박에 고스란히 쏟아부어 네 명이 돌아가며 식사 초대를 받아 허기짐을 해결하거나, 방세가 밀려 찾아온 집주인의 부인에게 반해버리는 이 비도덕성(실은 그 정도는 아니다. 말이 그렇다는 것.ㅋㅋ 게다가 뒤마 역시 부가설명으로 당시의 도덕관은 지금과는 다를것이라 그러더라.)! 쉽사리 휩싸이는 기분파의 이 친구들은 실은 그런 점들 때문에 두 권에 이르는 모험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당히 촌스럽다면 촌스럽고 클래식하다면 클래식이라 할 수 있는 삼총사는 함께 실려있는 삽화 역시 그 점을 한껏 뽐내고 있는데, 모험 소설이자 대중이 선택한 고전 답게 마냥 그 재미를 따라가며 읽기에는 좋을 것 같다. 이미 어린 시절 친숙했던 삼총사를 조금 더 다른 모습과 함께 만나보는 것도, 나처럼 '삼총사'가 왜 '삼총사'가 되었는지를 생각해보며 읽어보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일 것 같다. 이런 모험 소설이 여전히 내 맘을 설레게 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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