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스의 라이벌들
아서 코난 도일 외 지음, 정태원 옮김 / 비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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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가 「모르그 가의 살인」으로 미스터리, 혹은 탐정소설, 혹은 범죄소설이라는 장르를 '발명'한 뒤로, 미스터리는 꾸준히 발전해 왔다.

그것이 점차 세분화되기 시작하면서 탐정소설, 하드보일드, 스릴러 그리고 미스터리 천국이라 불러주고 싶은 일본에는 무려 본격과 신본격, 그리고 사회파라는 말까지 곁들여가며 세분화되기에 이른다. 벌써 본격적으로 미스터리가 출발한지도 100년이 넘은 지금, 어느샌가 어린 시절을 즐겁게 했던 셜록 홈스와 탐정 푸와로, 미스 마플 등은 '고전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고, 어느샌가 숱하게 고전 작품들이 후세의 소설에 언급되고 인용되는 것처럼 미스터리 역시 '고전'의 재해석 및 인용이 작품 속에 등장해 그들을 '찾아 읽어봐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ㅡ참으로 큰일이다. 안 그래도 읽을 작품이 산더미같건만! 게다가 일본 미스터리는 그들 나름대로의 계보를 따라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르고 있는 작품들이 속속들이 눈에 띄고 있으니, 다 챙겨보리라 과욕을 부리다보면 지갑이 거덜날지도 모른다. 이를 느낀 게 요네자와 호노부의 <인사이트 밀> 그리고 <덧없는 양들의 축연>이다. 다독가임이 틀림없는 작가의 추천을 받아보고 싶다면 한 번 읽어보시길(개인적으로 실패의 쓴맛도 맛봤습니다만.).









어쨌든, 지금도 영미권의 스릴러와 일본의 미스터리는 인기를 과시하고 있고, 미스터리라는 장르에 대한 인기는 갈수록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어가면서 '북유럽 스릴러'가 각광을 받고 최근에는 독일의 스릴러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추세에도 종종 주변에서 왜 사람 죽이는 소설을 읽냐는 질문을 하면 나는 참 안타까워진다. 그들은 그 미스터리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이다.

 

 

미스터리를 즐겨 읽는다면, 누구에게나 그 '출발점'은 있다. 아무리 그래도 역시 세계적인 탐정은 셜록 홈스였는지 나 역시 그의 모험에서부터 출발을 했다. 「빨간 머리 클럽」에서 시작되어 「바스커빌 가문의 개」(이건 내가 바스커빌 가문의 개,를 마지막으로 셜록 홈스 시리즈에서 좀 멀어졌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다 못 읽었다,ㅋㅋㅋ)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셜록키언에는 결코 미칠 수 없을지라도 여기서부터 출발해 애거서 크리스티의 전집을 모두 읽고 소장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로 미스 마플과 푸와로의 활약을 지켜보는 중 너무 많은 시리즈에 지쳐 어느샌가 조금씩 포기. 그럼에도 언제나 도서관을 가면 셜록 홈스 시리즈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그리고 브라운 신부, 아르센 뤼팽 시리즈나 엘러리 퀸의 작품 앞에서 서성이곤 한다. 언젠간 꼭 집에 모셔다주마, 하고 마음을 다잡곤 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들에 대한 짝사랑, 어마어마했었다.

 

 

 

 

하지만 이미 출간된 소설도 아직 다 챙겨 읽지도 못함에도 새로운 소설은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오고, 그렇기에 19세기 '미스터리의 황금기'를 이루고 있던 영국과 미국의 미스터리를 원서로 읽는 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구하기도 힘들고, 구한다한들 내가 원서로 읽을 능력이 그다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미스터리의 황금기를 이루던 당시의 작품들ㅡ가히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이라고 일컬을 수도 있는 탐정들의 활약이 담긴ㅡ을 故 정태원 선생님께서 선별, 번역하신 작품집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이 비채에서 출간되었다.

 

홈스의 직계로 일컬어진다는 마틴 휴이트와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 구석의 노인, 남성 탐정들 사이에 존재감을 발휘했던 여성탐정 러브데이 브룩, 셜록 홈스의 패러디 헴록 존스, 오로지 논리로 무장한 '생각하는 기계' 밴 듀슨과 같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탐정들 뿐만 아니라, 코난과 키드가 완벽한 라이벌로 움직이는 것처럼 그 원류에는 뤼팽의 모델이자 괴도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신사 도둑 래플스라거나, 얼굴, 국적,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클레이 대령과 밤 대신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는 괴도 롬니 프링글의 이야기도 실려 있다.

 







그리고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 시리즈가 아닌 또 다른 단편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었다.

당시 그러한 잡지를 통해 가볍게 소설을 읽곤 했던 대중들을 위해 발간되었던 스트랜드 매거진에서 연재를 하던 도일 경은는 등장인물이 계속 등장하는 게 원치 않았던 것인지 왓슨 박사의 약혼녀를 죽이지를(;;) 않나, 심지어 홈스를 죽였다 팬들의 항의로 다시 살려내는 등의 일화가 많은데, 그렇게 홈스가 죽은 사이에 연재한 단편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무려 두 개의 책끈(?)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두툼한 700페이지의 두께를 자랑하는 책이다. 덕분에 들고 다니면서 읽기는 꽤나 힘이 들고, 잠들기 전 침대에서 펼쳐서 단편들을 한 편 한 편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요즘의 미스터리와 별 다를 게 없는 내용이라면 큰일 날 소리. 미스터리가 독자를 농락하는 방법은 갈수록 고도화되어가고 있어 실은 이 작품집 속에 담겨 있는 단편은 요즘 미스터리에 비하면 오히려 단순한 편이 속할지도 모른다. 온갖 트릭을 동원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과학 역시 요즘만 못한 것이다.

기차 시간표를 이용한 트릭이나 절도, 살해 방법 등 소설 속에 등장하는 트릭은, 트릭마저 '고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히려 단편으로서는 최근의 단편에 비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어린 시절 탐정들을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인 것일까.







역시, 지금의 미스터리는 이 황금시절의 홈스와 그 라이벌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들의 활발한 활동 덕분에, 우리는 여전히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리라.

덕분에, 이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은 미스터리 팬들에게는 읽고 싶어도 읽을 기회가 많지 않았던 '미스터리 문학의 황금시대'를 만날 수 있는 좋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의 추억과 새로운 작품을 만난다는 기쁨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멋진 단편집이었다.









추천하는 단편 혹은 탐정들로는, 뭐 이미 '선별'했으니 각기 다른 매력이 있겠지만서도, 특히 아서 코난 도일의 「사라진 특별열차」, 아서 모리슨의 마틴 휴이트와 배로니스 에뮤스카 오르치의 구석의 노인, 이들의 활약은 홈스 못지 않았다.

그리고 '조용히!'라는 말이 상당히 임팩트가 있는, 셜록 홈스 못지 않은 까칠함을 보여주는 햄록 존스. 사기꾼 클레이 대령과 그의 일행과 그들의 손바닥위에서 놀아난 백만장자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이렇게 말하니 뭐 한 편으로 잠깐 얼굴을 내민 탐정 대신 다양한 단편이 실린 사람들 모두를 언급할 것 같아 이 정도로만 해야겠다.ㅋㅋ

 

 

어느샌가, 가만히 사건 설명만 듣고 엄청난 통찰력을 발휘하며 이러저러하게 추리를 술술 쏟아내는 탐정은 조금씩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 미스터리,도 더더욱 현실에 맞추어지며 그보다는 오히려 직접 범인들을 심문하고 현장을 뛰어다니며 증거를 수집하는 형사들의 활약이 돋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형사의 활약 대신 안락의자형 탐정이라거나 신출귀몰하며 피해자들의 혼을 빠지게 하는 괴도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이들 단편과의 만남은 꽤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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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7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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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다. 여름은 역시 공포의 계절인지, 요즘은 웹툰에서도 공포 특집을 내세우며 독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는 것 같은데(물론 의연하게 대처하시는 분도 있음,ㅋㅋ) 귀신, 유령 등등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매체는 책 빼고는 꺼리는ㅡ영화는 말도 못하고, 옥수역 귀신이니 봉천동 귀신이니, 하도 무섭다는 소리가 많아 겁쟁이인 나는 오늘도 한 발 뒤로 물러서 외면한다.

 

 

실은 공포 보다는 '놀람'을 싫어하는 게 맞다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학교 다닐 때 아이들과 옹기종기 모여 있으면 으레 흘러나오곤 하는 것이 '무서운 이야기'인데 그 대부분은, 분위기를 한껏 숨죽여놓고서는 갑자기 '왁!' 하고 놀래키는 것이다. 아아... 난 그런 게 너무 싫다.

그래서 공포 영화에서 으레 흘러나오는 으스스한 분위기의 음악에 갑자기 귀신인지 유령인지 그것처럼 보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엇인지가 갑자기 툭 튀어나오거나 그런 게 어찌나 무서운지. 비주얼에 굉장히 약하기 때문인지, 소설을 읽으며 상상을 하거나 심리적으로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은 어찌어찌 참을 만 한데 그렇게 갑자기 놀라게 하거나 좀 거북한 형상을 보는 것이 난 너무 싫다. 그래서 시각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공포 영화나 만화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것이다.

 

 

학교 친구들 사이에 떠돌아다니는 괴담 말고 어린 시절에 권선징악이라는 교훈을 대부분 내포하고서는 도깨비가 어쨌다~ 구미호가 어쨌다~(그러고보니 전설의 고향도 무지하게 싫어했다) 등등의 이야기는 의외로 또 재밌게 듣곤 했는데, 어려서 겁이 없기 때문이었을까? 막상 떠올리려니 잘 생각이 나진 않지만 옛날에 선비 한 명이 산 길을 걷다가~ 하는 이야기는 또 생각보다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본을 전율시킨 천재 작가,라는 호칭이 붙은 교고쿠 나쓰히코는 그 어린 시절 어머니, 할머니가 머리맡에서 들려주시곤 하는 괴담, 설화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봤다. 그렇게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를 미스터리와 결합해 설화를 재해석하는 소설, <항설백물어>다.

 

일본에는 에도 시대의 일본화집이자 괴담집인 <회본백물어>가 있다고 한다. 교고쿠 나쓰히코는 이 기담집에 실린 설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팥 씻는 동승의 영혼 이야기 「아즈키아라이」, 스님으로 분장한 여우 이야기 「하쿠조스」, 세 노름꾼의 목이 끝까지 다투었다는 「마이쿠비」, 사람으로 둔갑한 「시바에몬 너구리」, 말을 잡아먹자 말의 영혼이 드나들었다는 「시오노 초지」, 버들가지에 목이 감겨 아들을 잃은 여인 「야나기온나」,  그리고 단림황후의 시신을 버린 곳에서 때때로 여자의 송장이 등장한다는 「가타비라가쓰지」까지 일곱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동승이 팥을 씻으러 갔다 떠밀려 죽은 뒤, 그 곳에서는 그의 영혼이 나타나 팥 씻는 소리를 들으면 반드시 행인이 물에 빠져 죽는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은 지금으로서는 고전 설화에 불과하나, 분명 당시 사람들에게는 현재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는 괴담의 형태였으리라.

이 이야기들이 괴담으로 소문이 퍼져 있었을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 모모스케는 그러한 귀신 이야기라면 사족을 쓰지 못하는 이다. 덕분에 괴이한 소문이 퍼졌다, 하면 그 곳에 가 이야기를 모아선 기담집을 개판하는 것이 그의 목적. 우연히 쏟아진 비를 긋기 위해 들어간 오두막에서, 그는 기묘한 인물들을 만난다. 부적을 팔고 다니는 어행사 마타이치, 변신술에 능한 지헤이 영감, 그리고 산묘회라는 인형사 오긴까지.

 

그 패거리는, 의뢰를 받음에 따라 '진실'을 밝히기 꺼려지는 사건을 연극을 벌여 '요괴의 소행'으로 마무리짓는 것이 특기인 이들이다. 쥐도새도 모르게, 물밑작업을 하고서는 세상에는 '이러이러한 요괴의 소행이었다'하고 마무리. 모모스케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 우연히 혹은 교묘하고 계획적으로 마타이치의 간계에 끌려 또 한 명의 연기를 펼치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회본백물어에서 전해지는 설화다ㅡ라는 '항간에 떠도는 기묘한 이야기'로 위와 같은 형태로 후세에 전해지는 것이다.









교고쿠 나쓰히코의 또 다른 작품인 <백귀야행> 시리즈는 항설백물어 시리즈와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이나 요괴의 소행이라 일컬어지는 사건을 과학과 논리로 풀어 규명하고 해결한다.

하지만 반면에, 이 <항설백물어> 시리즈는 아무래도 인간의 마음 속 근심과 어둠에서 비롯된 사건을 요괴의 소행으로 마무리짓는 것이 특징이다.

 

대부분의 시점이 모모스케로 진행되는 만큼, 독자 역시 '요괴의 소행일텐데'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다보면 그것이 결국은 마타이치와 그 일행들, '소악당'이 벌인 연극의 진상임을 뒤늦게 듣게 된다. 분명히 이야기의 패턴이 정해진 만큼, 그들이 벌이는 짓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렇다면 이런 걸 어떻게 꾸며냈지? 하고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덕분에 결론적으로는 모든 원인은 마음 속 근심과 어둠에서 비롯되었다고 이야기한들, 진상은 인간의 소행. 세간에서 사건을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그저 기묘한 사건에 그치고 마는데다, 뒤늦게 진실을 알아차리는 모모스케와 행동을 함께하는 덕에 자세한 트릭과 간계에 대한 설명은 그다지 자세하지 않다. 그야말로 소악당들의 기예와 술수,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독자들은 알고 있다. 유가와 교수가 현대 불가사의한 사건을 과학적으로 풀어내어 봤자, 너무나도 전문적인 과학 공학 지식을 모두 다 따라갈 수는 없다는 것을.

오히려 그보다 그거는 이랬지만 실은 이러이러한 연극이었어, 하는, 옛날 이야기를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인식하게 하는 교고쿠 나쓰히코의 시선이 신선하고 꽤나 재미가 있었다.

 

그 요괴의 소행은, 그저 인간 마음 속의 근심에 불과한 일이 형상화 된 것이었다. 두려움은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모든 것은 자신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자신의 과거에 대한 죄책감, 불안감, 욕심. 요괴의 소행이 아닌, 자신 스스로에 대한 공격, 다른 이에 대한 시샘과 질투가 불러일으킨 비극.

언제나 옛날 이야기가 들려주는 교훈처럼, 실은 이 항설백물어가 내리고 있는 결론 역시 그러한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토록 새롭고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의 설화라서일까, 혹은 '소악당'이자 '의인'이라 할 수 없는 일행들의 행동이 그래도 따뜻하게 느껴져서일까.

 

혹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똑같은 인간의 본성과 그 어둠을 들여다보았기 때문일까.

 

그래서 오래 전 옛날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즐겁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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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들의 저택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성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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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술 트릭이란, 특정한 서술 기법을 이용해 그야말로 '서술'로서 독자를 속이는 미스터리의 기법이라 할 수 있다. 서술자의 정체를 감춰둔 채 이야기가 끝나감에 따라 그 실체를 보여줌으로써 독자의 뒤통수를 아주 후려치는(;;) 기법으로, 때에 따라선 작가의 힌트나 암시 등에서 불공정하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그 시작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로 알고 있는데, 당시 그 작품이 출간되었을 때도 독자들로부터 이런 식으로 속이다니! 하고 항의 편지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소설 전체를 범인을 감춰두는 형태로 이야기를 진행시켜나가야 하기에, 미리 알고 나면 한없이 그 재미가 떨어진다는 단점도 있다. 분명 알고도 속는 경우도 있겠으나, 벌써 의도치 않게 '서술 트릭'을 사용한 작품이라고 작품들을 모아둔 것을 보면서 의도하지 못한 스포일러에 당황하고 소설 한 편 잃었다는 생각에 가끔 분노하기도 한다(그래도 속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만큼 서술 트릭은 '서술 트릭이 사용되었음'이 노출되면 상당히 타격이 갈 수 밖에 없는 기법인지라 서술 트릭이다, 라고 말을 한 이상 읽기가 상당히 힘이 들게되는 작품이 있는데, 독특하게도 오리하라 이치는 '서술 트릭'을 이용한 전개로 상당히 유명한 듯하다.
서술 트릭인 것을 안 이상, 이걸 어떻게 읽어야 하는 걸까 하고 의문이 솟아오른다. 그러면 재미가 없을텐데, 홍보 단계에서 이미 서술 트릭임을 공공연하게 밝혀두고 있다는 것은 '알고도 속는다!'라는 자신감 때문이리라. 그렇게 '서술 트릭의 대가'로서 작가가 정착을 했다는 것은 서술 트릭도 처음과는 달리 갈수록 발전해 알면서도 독자를 속이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서술 트릭이 충만할 '도착 시리즈', '--者' 시리즈 등을 알고도 '아니 안 속을텐데 뭘?' 하고 미뤄두다가, 드디어 오리하라 이치의 소설 한 편을 만나게 되었다.
 

 

'숲 속에 들어가면 빠져나오기가 힘들다'는 소문이 있는 후지산 기슭에서 신분을 알 수 없는 백골과 나뭇가지로 만든 'HELP'라는 문자가 발견된다. 근처 동굴에서 발견한 신분증으로부터 경찰은 반년 전 실종된 청년 고마쓰바라 준의 것이라고 추정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죽었을 리 없다고 믿고 여전히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돌아올 아들을 위해, 아들의 일생을 책으로 엮으려 한다. 그렇게 그녀에게 고용된 시마자키 준이치는, 순수문학과 미스터리 두 분야에서 모두 신인을 받았으나 '유령 작가'로 생계를 잇고 있는 작가로, 고마쓰바라 저택을 매일 방문해 준의 일생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조사하면 할 수록, 어린 나이에 아동문학상을 받은 경력과 '천재 작가'로서의 자질이 엿보이는 준의 모습에서 일체감을 느낀 준이치는 그의 삶에 매료되어 그의 일생을 완전하게 엮어내리라 결심하고, 준의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 때 부터 그의 주변에서는 수상한 그림자가 맴돌기 시작한다. 그림자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준의 일생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이미 서술트릭을 사용하고 있음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시작하는 이 소설은, 구성적 측면에서도 서술 트릭이 사용되리라는 것이 딱 느껴진다.
독자로 하여금 여기서 속아라! 하고 떡밥을 마구마구 던져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알았으니 서술 트릭은 아무것도 아니었느냐, 그건 아니었다.
알면서도 속을 수 밖에 없는 것. 그것이 오리하라 이치의 서술트릭이었다.
 
책의 서술은 크게 두 가지 시점으로 진행된다. 준의 일생을 취재하고 다니는 시마자키 준이치의 시점과, 동굴에 갇혀 누군가의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의 시점.
아마 이 '모놀로그'가 서술 트릭의 장치다. 분명 이 사람으로 생각하겠지만 나중에 보면 아니겠지,라는 생각은 분명히 들지만서도, 그러면 그건 누군가? 라는 의문이 해소되질 않는다.

결국, 작가의 의도는 알아차렸으나 끝까지 두고볼 수 밖에 없었다, 뭐 그런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트릭이 불러일으키는 '속았다!'라는 쾌감보다는 오히려 이 <이인들의 저택> 그 근간이 되고 있는 스토리 그 자체가 훨씬 매력적이었다.
 

오리하라 이치는 홋카이도의 산속에서 SOS라고 나뭇가지로 쓴 글자가 발견된 적이 있다는데, 그 글자를 만든 사람과 근처에 있는 백골은 누구의 것인가,에 대한 수수께끼와 유치원생이 성인 응모자를 제치고 SF 동화대상을 받은 뒤, 그 애가 어른이 되어도 천재로 남아있을까 라는 의문에서 착안한 소설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 두 가지의 에피소드를 '어린 천재 작가 지망생의 실종'과 그 삶의 추적이라는 형태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천재는 어쩌다 산 속에서 SOS를 청하게 되었는가?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이러한 고마바쓰라 준의 일생 자체가 상당히 흥미로울 뿐더러, 그를 쫓고 있는 시마자키 준이치의 주변에는 낯선 인물이 계속해서 맴돌고 있다.
 

준의 어머니 다에코가 흥얼거리는 동요, 그 동요를 따르듯 준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던 '이인' 그리고 이인들이 살고 있었던 저택을 배경으로 그의 과거를 조사하는 시마자키 준이치의 작업이 시작된 시점에서 미리 차곡차곡 흩어두었던 퍼즐 조각들은 클라이막스에 다다르면서 딱 맞추어 떨어진다. 더불어 책 전반에 감돌고 있던 묘한 분위기 속에서 트릭을 포함해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수수께끼가 풀리는 것이다.
 

 

현실과 인터뷰, 그리고 과거를 되짚어보는 작업의 형태로 소설의 전반을 이루고 있는 형태는, 그렇게 '미스터리'로 그려짐으로써 훨씬 더 재미가 있어진 게 아닐까 싶다.
 

천재의 삶,이라는 재료를 트릭이라는 방식으로 요리해냈다고나 할까. 맛있는 요리는, 방법도 좋지만 그래도 역시 재료가 중요한 것 같다. 덕분에 맛있게 읽었던 소설, <이인들의 저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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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포트 피크닉
김민서 지음 / 노블마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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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간이 잠시 정지된 공항에선, 과거와 미래가 함께 흐른다.

-p.118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시작과 끝은, 공항이다. 공항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재회의 기쁨을 나누거나 이별의 쓸쓸함을 되새긴다. 영화 속 주인공들 역시 공항에서 이별을 하고, 끝내 다시 공항에서 재회한다. 잠깐동안 일상에서 벗어나는 친구를 응원하거나, 일상에서 돌아온 것을 환영하면서.

공항은 그런 장소다. 머무르는 곳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곳이다. 떠나는 곳이기도 하고, 돌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그 잠깐의 시간동안, 공항에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세계 각국에서, 서로 다른 목적으로 하늘길에 오르기 전의 수많은 사연들이 떠돌아 다니고 있을 것이다.

 

 

....라고 거창하게(?) 말을 시작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공항에 대한 기억은 그런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비행기를 그다지 많이 타 본 것도 아니고, 그것도 혼자 혹은 가족 단위,라기보다는 단체행동을 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었던지라 그런 거 없었다.

몇시 까지 공항에 모인다,라고 공지를 받으면 일단 도착하고 보는 거다. 가장 최근에 공항에 간 것이 졸업여행 갈 때 였는데, 하나같이 선글라스 끼고 와서는 사진 찍는다고 난리(내가 그랬다는 건 아니다^^;;).

어쨌든 배웅하는 이도 배웅받는 이도 없이 그냥 홀연히, 우리끼리 오른 여행길이었기에, 그리고 '단체' '집단'이라는 뻔뻔함으로, 그리고 '놀러간다' 오로지 그 마음 하나로 공항,이라는 장소의 특별함 같은 것은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연유야 어찌되었건, 일상을 벗어난 '여행자'들에게 공항은 어떤 의미일까?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은, 거기에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도 있고, 환승을 위해 잠깐 들르는 어떤 낯선 공항은, 일정을 벗어난 잠깐의 소풍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이 <에어포트 피크닉>에서는 공항에 갇혀버린 많은 여행자들의 짧은 소풍을 그려내고 있다. 2010년, 아이슬란드에서 화산 폭발이 일어나면서 세계적인 교통 대란이 벌어졌을 때, 인천 공항에서 유럽에 가지 못한 채 발이 묶여버린 사람들. 그들은, 인천 공항에서 기약 없는 노숙을 시작한다. 그리고 인천공항에서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의 인연이 연결되기 시작한다ㅡ.







인생에 여분의 시간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무얼 할까요?

글쎄…후회를 하지 않을까.

그래요? 전 준비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p.182

 

 

 

불가항력으로 아시아의 어느 공항에 발이 묶인 사람들은, 그만큼이나 가지각색이다.

한국인이지만 영국인 부부가 입양한 청년 제임스, 얼마든지 호텔에서 숙박을 할 수 있지만 제임스에게 이끌려 자기도 모르게 공항을 계속 찾게 되는 한인 여성 엘리자베스,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주변 인물들을 날카롭게 관찰하며 참견하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해리 게이먼, 괴수 영화 감독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지난 작품의 실패로 가족들과 잠깐의 여행을 떠난 기욤 그린과 그의 가족 헤더와 줄리엣, 드디어 파리 무대에 진출할 기회를 얻어 파리로 향하던 중 빼도박도 못하게 공항에 발이 묶여버린 모델 크리스티나, 그리고 이 노숙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는 공항 직원 호주.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시간을 벌게 되면서 여행 중의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되었다.

 

 

 

 

공항은 마치 떠나는 장소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돌아오는 장소이기도 해.

시야를 조금만 넓혀보면 두 가지 진실이 항상 함께라는 걸 알 수 있어. 떠나면, 돌아온다는 것.

-p.221~222

 

 

 

<에어포트 피크닉>에서는 공항이라는 특별한 장소를 배경으로 '떠남'과 '머무름' 그리고 그 사이의 찰나의 순간 속에서 인생 그리고 사랑을 그려냈다.

어차피 이 순간, 대화를 나누고 세계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라서 그런 것일까. 일상이 아닌 낯선 이들과의 대화는, 각자의 아픔과 슬픔과 후회를, 진솔하게 고백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린 감독은 말문을 열지 않는 딸 줄리엣과 대화를 하고, 또 다른 고국에 발이 묶여버린 제임스는 비슷한 아픔을 가진 호주에게 용기내 말을 걸어 둘 만의 교감을 이루어내고, 크리스티나는 잠깐 지나친 소녀의 호의로 파리의 무대에 설 기회를 얻는다.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낯선 장소에서의 틈새의 시간은, 또 다른 인생의 선물을 해 준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공항을 품고 있다.

그곳엔 아무것도 머물 수 없다. 채워지는 순간 필연적으로 비워지는 곳.

어쩌면 사랑은 그 미지의 땅을 정복하기 위한 인간의 마지막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p.277

 

 

 

 

 

참 신기한 것은, 언제나 결론은 '사랑' 그리고 '자신'이라는 것이다.

 

여행 에세이,라는 것이 최근 몇 년간 상당히 가파르게 상승 곡선을 그리며 많은 인기를 끌었는데(그러고보니 최근은 예전만은 못한 것 같다) 그것의 반증은 아마도 누구에게나 여행에 대한 로망이 가슴 속에 품어진 채 잠들어 있는 것이다. 어느날 문득, 훌쩍 여행길에 오르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실은 여행 에세이 속에 담긴 이야기는 뻔하다. 낯선 여행지에서의 새로운 만남, 일상에서 벗어난 생활에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인생을 되돌아보고..... 이제 책 속에 담겨있는, 다양한 여행지의 풍경만이 다를 뿐 결국 결론은 그것이다. 자기자신과 그 인생,이라고나 할까.

 

그 밖에도 언제나 인생의 진리는 '사랑'에 귀결된다. 결국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이고, 언제나 한결같지는 않을지라도 결국 '사랑'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 연인간의 사랑이든, 가족간의 사랑이든 친구간의 우정이든, 어쨌든 결론은 사랑이다. 결국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사랑이 없으면 먹고 살 수가 없다고나 할까.

주변에 그렇게 흔하디 흔한 것이 사랑이건만, 그럼에도 언제나 영원불멸 굳건히,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주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사랑이 무엇이길래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와 소설과 기타 등등의 예술,이 사랑을 그려내고 있는 건가.

 

 

 

결국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모두는, 언젠가 자기 자신과 그 삶을 되돌아볼 것이고, 거기에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모두가 앞선 이야기와 함께 그런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은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더라도 결국은, 결국은 그 보편적인 결론에 다다라버리는 것. 그리고 그 삶은 평범했지만 괜찮았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덕분에 그 시큰둥하면서도 옳은 말이라 반박할 수 없는, 인류 보편의 진리를 이끌어낸 <에어포트 피크닉>.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메시지를 과연 젊은 작가가 어떻게 그려낼 수 있을까 반신반의 했던 것은 사실이다.

내 또래의 작가님인 만큼, 에이 그래봤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작가 김민서는, 의외로 괜찮은 방식으로 메시지를 담아냈다. '공항'이라는 매력적인 장소에 머무르며 소설을 쓰던 그녀는, 그 공항을 수없이 드나드는 전 세계의 여행객을 바라보며 그들의 사연을 잡아냈으리라.

 

이러한 인생의 고민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보편적인 시련(?)일지도 모른다. 이 <에어포트 피크닉>은 그럼에도 그 고민들에서 잠시 벗어나거나 마주보는 이들을 그려내며 공감을 이끌어냈다.





가장 보통의 날들, 그 사이로 찾아온 특별한 날들. <에어포트 피크닉>을 즐긴 이들에게 이것은 찰나의 선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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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교전 1 악의 교전 1
기시 유스케 지음, 한성례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소문이 어마어마했던 기시 유스케의 <악의 교전>이 드디어 국내에도 소개되었다. 작년부터 이미 미치오 슈스케의 <달과 게>와 함께 끊임없이 경합을 벌인 뒤 끝내 나오키상을 수상하지 못했지만, <2011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2011 서점대상> 7위, 또 그 밖에 뭔 상들을 휩쓸었더라. 어쨌든 명실공히 일본에서는 작년 최고의 화제작이 아니었나 싶다.

 

기시 유스케,라는 작가 이름의 네임밸류도 충분히 책의 기대치를 높이기에 충분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소문만 무성하게 들었지 정작 그의 작품은 온갖 밀신의 향연이 소개된 단편집 <도깨비불의 집>만 읽어봤으니 이건 뭐..;; 어쨌든 작가의 이름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 말이다.

 

 

교전. 교전,이라는 말에 실은 교전(交戰)을 뜻하는 줄 알고 '악의 교전? 악(惡)이 얼마나 피터지게 싸우길래',하고 피식 웃었더랬다. 역시 대세는 선 대 악이 아니라 악과 악의 대결인 것인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실은 교전(敎典)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 제목에 맞게 '배움'의 장소 학교를 무대로, 미리 고백하건데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사이코패스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책의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 몰려오는 감정은, 전율, 그리고 분노였다ㅡ.

 

 

 

학교라는 장소는 어떻든 많은 의미와 상징이 있다. 진학 그리고 삶을 위한 준비ㅡ그것은 '학업'이라는 측면에서도, '사회성'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그렇기에 악의로 가득찬 의도적인 괴롭힘도, '집단'이라는 특성에 녹아들지 못해 따돌림도 있다. 학생들 간의 이성교제 뿐 아니라 학생과 선생님의 은밀한 밀회도 일어날 수 있다. 심지어 동성연애라는 형태까지도.

선생님들의 모습도 다양하다. 학생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려는 열정적인 마음으로 학급을 이끌고 다양한 소재로 멋진 수업을 하는 선생님도, 아이들을 장악하지 못한 채 이야기를 듣던지 말던지, 그저 자기 혼자만의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도 있다. 관료 사회라는 것의 특성상, 정치적인 알력 싸움도 만만찮다. 선생님들과 학생 간의 신뢰관계를 통한 정보나 교사들이 모이는 곳에서의 대화는, '학교'라는 자그마한 공동체 집단을 이끌어 나가기 위한 정치적인 논의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좀 이상한 선생님이 한 명 있다. 학교라는 사회를 자신만의 왕국으로,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려는 선생님이다.

언제나 입가에는 '모리타트'의 선율을 흥얼거리는 그는, 그만의 교전(敎典)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ㅡ.

 





어라, 좀 이상하다,라고 생각한 순간, 유능해 학생들과 교사 모두가 의지하는 하스미 선생님은, 완벽하게 돌변한다. 1권까지의 내용은, 유능한 교사로만 보였던 하스미 선생님의 본성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입지를 위해 불법적인 행동도 교묘한 방법으로 행한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하스미 선생님이 낯선 세 학생은 그의 행동을 주시하기도 한다. 덕분에 나름대로, 하스미를 경계하는 인물들이 하나 둘 등장하며 그들의 대립으로 이어지는걸까, 하고 예상해봤지만 그것은 처참하게 빗나가고 만다. 2권이 시작되면서, 하스미는 학교를 자신의 왕국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앞길에 방해가 되는 이들을 하나 둘 제거하기 시작하고, 나중이 되어서는 '나뭇잎을 숨기기 위해 숲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몰입력이 어마어마해, 읽는 내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책을 읽고 나서는 한 마디로 헉, 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작년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음에도, 많은 이들이 호오가 분명하게 갈린 것은, 분명 너무나도 무자비한 하스미의 행태 때문이었으리라 짐작한다. 실은, 너무나도 불편한 것이다.

유능하고 잘생긴 선생님에게, 무조건적인 신뢰의 눈빛을 보내던 아이들을 저버리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생명의 불꽃을 가차없이 꺼뜨리고 마는 그의 행동이, 너무나도 불편하기 때문이다.

 

기시 유스케는 '난 이런 사이코패스를 만들었는데, 어때?'라는 질문과 함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 사이코패스의 미친 행각을 그려내면서 기시 유스케는 오히려 재미가 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느정도 냉정을 유지한 채 냉정하고 교활하며 치밀하게 자신의 왕국을 교전에 따라 정복해 나가는 하스미의 모습은, 어느순간부터 방향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으니. 그 정도로 1권과 2권의 하스미의 모습은 극과 극을 달린다. 2권의 잔혹함에서 이 작품에 대한 평이 확연이 갈릴 듯하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이야기는 책을 읽고 난 뒤 시간이 지나 곰곰히 생각해 본 결과다. 실은, 막 모든 이야기를 끝마쳤을 때에는 이런 생각은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오로지 분노와 전율, 그리고 이어질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재밌다고 재밌다고, 어머니에게 읽어보라고 권해드렸더니 다 읽고나서 하시는 소리가, '이런 것만 읽다가 어떡하려고 그러냐'는 타박까지 들었다. 아아, 책장이 온통 'ㅇㅇ살인사건'으로 채워진 이들의 고충을 이제서야 느꼈다고나 할까.... 평소 미스터리 스릴러를 함께 즐겨 읽으시는 어머니가 나에게 그런 소리를 하실 정도로 상당히 충격적이고 파괴적이며 불편한 소설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불편함을 넘어선 '재미'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꼭 사이코패스만이, 이 소설의 전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읽는 동안에는, 그 밖에도 아이들의 행동과, 언제나 사회의 일면을 담아내고 있는 '학교'라는 또 다른 사회의 모습에 공감도 했다.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악(惡).

언젠가부터 학교는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장소에서 어딘지 불안하고 위태로운 장소로 변하고 말았다.

집단 따돌림, 등교 거부, 선생님의 체벌을 넘어선 교사에 대한 학생의 폭력 등.

기시 유스케는 그러한 학교의 모습을 담아낸 동시에, 그 곳에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한 명의 '모리타트(살인귀)'를 등장시킴으로써 그 곳을 더 공포스러운 '악의 장소'로 만들어내고 말았다.

 

 

 

전율, 그리고 분노. 아마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따라다니는 감정은 바로 이것이리라. 매우 불편하지만, 아주 재미있다. 2011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는, 바로 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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