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점거사건
이은 지음 / 고즈넉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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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김진명씨의 소설을 열심히 읽던 시절이 있었다. <제3의 시나리오>가 출간된 소식을 듣고 난 뒤 그 책 부터 이후에 출간된 작품은 거의 손도 대지 못했지만, 그 전에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던가 <황태자비 납치사건> 등 꽤나 열심히 읽었는데.

미국이나 일본에 눌린 채 당하고만(?) 있는 정부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역사를 조금 비틀어 그려내곤 했던 그의 소설은,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일만큼은 꽤나 통쾌했고, 그럼에도 이것은 현실이 아닌 픽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참 아쉽고 씁쓸하기도 했었다. 묘하게도 애국심이 그렇게 심하다고 할 수도 없지만 그런 소설만 읽으면 참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뭐 그런다고 그저 지금 있는 내가 당장이라도 박차고 일어나 뭔가를 바꿔보겠다고 나설 수도 없는 일이니, 그렇게 유쾌한 상상을 해 봤다는 것으로, 그리고 역사에 이런 일이 있었다, 라는 것을, 그것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할지도 모르겠다고 위안을 삼을 뿐이다.

 

이은,이라는 작가, 낯설진 않다. 한국문학에서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은 편이고, 그렇기에 그 와중에 두각을 드러내는 작가님이 있으면 일단은 기억을 하게 되고, 그리고 그렇게 반가움이 앞서게 되는 것이다. 그래봤자 나는 <수상한 미술관>이라는 작품밖에 들어보지 못한 차에 이 소설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알고보니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미술관의 쥐>는 일본 고단샤 선정 '아시아 본격 미스터리 선집'에 한국 대표작으로 실렸고, 프랑스의 필립 피키에 출판사에서 출간되기도 했단다. 아, 얼마나 등잔 밑이 어두웠던가.

 

어쨌든, 그렇게 이은 작가의 신작으로 그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소설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은 작가는 추리소설가이자 미술학 박사로 미술과 미스터리를 녹여낸 작품을 그려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이들이 미술관을 점거한 것인지, 그 사연이 궁금해진다.



미문화원 점거사건, 정당 사무실 점거사건, (중략), 크레인 점거사건 등등, 특정 집단이 상징성을 지닌 공간을 점거해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강하게 주장하는 일은 많았다.

그런데 그런 험하고 극단적인 것과는 안 어울릴 미술관이라는 장소가 점거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p.11

 

 

개관을 앞두고 미국의 유명 여류 화가 조지아 오키프전(展)을 준비하던 아르스 미술관에, 전혀 다른 두 성격의 집단이 미술관으로 쳐들어왔다.

홍콩과 러시아의 마피아를 중개하는 한국의 조직폭력단 9·5파의 일원 4명, 그리고 서울 아트 인스티튜트의 학생으로 동아리 한국문화재연구회 회원 16명.

그리고 언제나 미술관을 지키고 있던 관리실 직원인 주민수와, 학예연구실장 고진미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게 됐다.

다른 목적으로 함께 미술관을 점거하게 된 이들. 이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짐작하신대로, 조폭의 일원들은 당연히! 무언가의 '거래'를 위해 미술관을 찾아온다. 거래처(?)에서 미술관에 '그것'을 갖다두었으니 찾아보면 된다,는 말에 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미술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대학생들. 그들은,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주장하기 위해 미술관을 점거한다. 요구 사항은 바로 속칭 헨더슨 컬렉션이라 불리는, 그레고리 헨더슨이 주한미국대사관 정무참사관으로 근무하면서 약탈해 간 한국 문화재 컬렉션의 반환이다. 미술관이라는, 시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서 미술학도이자 한국문화재를 연구하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반환을 하지 않으면,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을 하루에 하나씩 불태우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세운 채.

 

 

서로 대립되는 두 그룹과, 그 둘을 잇는 역할을 하는 두 명. 하지만 서로의 목적이 다르니 그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자기들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겠다고 협정을 맺는다.

그러나 미술관을 지켜야 하는 미술관의 직원은, 하루빨리 조폭을 내보내고 학생들로부터 그림 역시 지켜내야만 한다. 그 '미술관 점거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뭐 지금까지는 몰랐다 하더라도, 알게 된 이상 잊을 수는 없는,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역사,라고 생각한다.

한동안 마봉춘에서 !느낌표,라고 상당히 공공의 선? 공공의 이익?을 나름대로 추구한 예능 프로그램을 했었더랬다. 전국민에게 독서 열풍을 불러 일으키거나 각막 기증을 통해 시력을 되찾게 하는 등 감동을 주는 코너가 대부분이었는데, 역시 기억에 남는 코너 중 하나는 '위대한 유산 74434'였다. 해외에 반출(약탈)되어 흩어져있는 우리의 문화재가 74434점이라는 뜻의 제목이었는데, 결국 이 코너는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부의 비협조, 시민의 무관심 등 열악한 조건 속에서는 TV 프로그램의 한계는 당연했으리라. 그래도 당시 이 코너의 폐지가 아쉬웠던 시청자들의 목소리도 상당히 강했었는데.

 

최근에는 지식채널 e에서 프랑스 도서관 창고에서 묵혀져 가던 외규장각 의궤를, 프랑스 도서관의 비협조와 한국 정부의 냉담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 모든 도서를 정리하고 반환하기 위해 노력한 박병선 박사의 이야기를 보기도 했다. 정부의 무능함과 무관심은, 결국 소유권은 프랑스에 둔 채 5년마다 갱신 가능한 대여,라는 조건으로 외규장각 의궤를 한국으로 되돌려왔지만.





이은 작가는 이 소설의 가장 중심 테마가 되는 헨더슨 컬렉션의 반환을 비롯해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냉혹한 문화재 약탈자였던 프랑스와 영국, 미국 그리고 무관심하게 문화재 반환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정부를 고발하는 내용을 '미술관 점거'라는, 아트 테러리스트와는 조금 다른 테러리스트들을 등장시켜 꽤 흥미로운 이야기로 엮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였을까. 의미는 다르고 스케일도 상상력의 허용 범위(?)도 김진명 작가와는 다르지만, 그래도 왠지 김진명 작가의 작품들이 생각났다. 뭐 개인적으로는 너무 산으로 가버린 통쾌한 상상보다는 덜 부담스러운 스케일로 그려낸 것이 더 마음에 들었지만. 이은 작가 역시 그만의 상상력을 발휘해 이들 테러리스트들의 자그마한 반란을 나름대로 훈훈하게 마무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너무 메시지가 직접적인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한없이 무거워질 수도 있는 소재를 재미와 긴박감을 더해 그려내기로 시도한 작가의 시도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씁쓸하지만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유쾌한 소동을 그려낸 이은 작가와의 첫 만남은, 그래서 상당히 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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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미모자를 그렸나 - 손미나의 로드 무비 fiction
손미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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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란 건 어차피 다 자전적이란 말도 있어요. 원래 백 퍼센트 창작이란 건 없다잖아요.

어딘가에서 보고 듣고 읽고 어떤 방법으로든 머릿속에 입력된 것이 어느 순간 튀어나오는 것일 뿐.

난, 어쩜 내 얘기가 하고 싶은 건지도 몰라요. 그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거고….

-p.250

 

그렇다. 소설은 현실적 허구라고들 한다. 픽션,이라고들 하지만 어쨌든 어느정도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스릴러이든, 이런 일은 이야기 속에서만 있었으면 하는 슬픈 소설이든, 오로지 작가의 상상력 하나에 의존해 이야기를 써내려가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종종, 소설 속 등장인물이 어떤 글을 쓰든, 일단 '작가'라는 직업을 달고 있으면 그가 하는 말이나 행동 등을 보면, 평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등장인물들의 입과 행동을 빌어 표현을 하는 것이 아닐까(아니 아마 맞을 것이다), 하고,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듣고있는 듯 상당히 생생하게 그리고 몰입하며 읽게 된다.





아나운서에서 여행 작가로, 그리고 이번에는 무려 소설가로 변신한 손미나씨의 첫 소설, <누가 미모자를 그렸나>를 만났다.

생각해보니 그녀의 여행 에세이는, 읽어본 적이 없었다. 꽤나 많은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왜 하나도 읽어본 게 없을까.

손미나 아나운서의 여행작가로서의 전업 이후, 부쩍 여행 에세이의 출간 그리고 여행 작가의 등장이 늘어났던 걸 생각해보면, 아마 부러워서였을 것이다.

여행하고 돌아댕기는 것도 부러운데 아니 그걸로 책까지 낸단 말이야?!하고... 그야말로 열폭이었을지도...큭큭.





뭐 어쨌든 소설을 쓰는 것도 만만치 않을 텐데, 그녀는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왠지 '그렸나' 대신 '죽였나'가 되어야할 것 같은 뉘앙스의 제목이지만, 어쨌든 수수께끼는 그것이다. '누가 미모자를 그렸나'.

 

 

언제나 대필작가로서 자신의 이야기는 정작 단 한 번도 빛을 보지 못한 '장미'는,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다,라는 편집자의 설득으로 재벌의 딸이자 화가인 최정희의 자서전을 대필하기로 한다. 베일에 싸여 있는, 그녀의 연인이었던 '테오'에 대한 이야기까지 갖추고 있으면 완벽할 것 같으니 프랑스에서 그 행방과 사연을 조사해 보기로 한 채.

 

그렇게 도착한 프랑스의 한 식당에서, 가방이 뒤바뀌는 사건이 벌어진다. 겨우겨우 찾아낸 바뀐 가방의 주인 로베르를 찾아간 장미는, 우연히 그의 집에 걸려 있던 LCh라는 서명이 박힌, 너무나도 노랗고 아름다운 마을 '봄레미모자'의 정경이 담긴 그림을 발견한다. LCh, 레아 최. 이 그림은 그녀의 그림은 아닐까? 이 그림을 구입한 화랑에서라면, 레아 최의 행방을 뒤쫓을 수 있지 않을까?

마침 그림에 얽힌 사연이 자신에게도 알 필요가 있다는 로베르와 함께, 장미는 그 그림의 행적을 쫓기 시작한다ㅡ.

 

 

한편, 소설이 전개되는 동안 또 하나의 시선이 등장한다. 바로 레아의 연인이었던 테오의 이야기로, 바닷가 마을 마르세유를 벗어나 파리로 상경한 그는, 운명처럼 레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화가'라는 직업을 가진 딸이 필요했던 그녀의 아버지는 컴플렉스로 미술품을 마구잡이로 모으는 성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딸을 이용해 금지된 그림을 반입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그로 인해 레아와 테오의 사랑에는 위기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과거 레아 최와 테오의 사랑, 그리고 그것을 쫓고 있는 장미는 우연히 로베르라는 남자를 만나 또 다시 사랑에 빠진다.

사랑의 도시 파리를 품고 있는 프랑스를 배경으로 손미나는 두 연인의 사랑을, 교차하며 그려냈다. 목적하는 이의 행방을 뒤쫓고, 그림을 그린 화가의 정체를 찾는 등 나름대로의 미스터리적 요소도 갖추면서.

 

결론은, 결국 사랑이다. 낯선 여행지에서의 우연한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랑으로 발전한다는, 뻔하디 뻔한 소재다.

로맨스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거다. 결국 남 얘기라는 거다. 아무리 흔하디 흔한 사랑의 형태라고는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얼마나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인가.

평범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스스로에게는 자기자신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 바로 '자기 일'이다. 남의 이야기에 시큰둥해야 하는 것은, 남 얘기가 비슷비슷하게 들려오면 지루하기 때문이다. 그 빤한 공식에 공감을 할 수도 있지만, 바로 나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연에서 시작된 인연, 그리고 첫눈에 반해버린 사랑ㅡ심지어 이건 잘생기고 아름다운 외모 때문이었다!ㅡ은, 나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라면 상당히 낭만적이겠지만, 소설 혹은 영화 속 이야기라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익숙한 소재, 라는 것이다. 뭐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그냥 내 입맛에 맞는 소설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혀 상관이 없었던 두 연인이 '장미'를 고리삼아, 아니 스스로가 고리가 되어 각자가 만나기 위해 찾아떠나는 이야기가 상당히 절묘하게 검은 글씨와 녹색 글씨가, 장미의 시선과 테오의 시선이 절묘하게 교차되어가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손미나의 솜씨는 상당히 뛰어났다. 전혀 다른 장소에서 벌어지는 두 연인의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지게 구성을 했을까 상상해봤지만, 예정된 의문의 해소는 짐작 그대로였을지 몰라도 마지막 장면의 여운, 그리고 두 연인의 만남은 상당히 여운이 남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여행 작가로서의 경력과 재능을 듬뿍 살린 소설 속 프랑스의 정경이었다. 그들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풍경 그 자체는, 그저 손미나가 소설을 쓰는 동안 프랑스에서 머물면서 어딘가의 연인을 그대로 데려오지 않았을까, 아니 바로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었을가 싶을 정도로 아름답게 그려진 덕분일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소설가로서 첫 발을 내딛은 그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비록 주요한 것은 로맨스 소설이었을지라도 그 속에 '미스터리'를 나름대로 녹여낸 구성을 보여준 만큼, 다음 번에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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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요 네스뵈 지음, 구세희 옮김 / 살림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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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유럽 스릴러에 대한 관심도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 그 열풍의 시작은 아무래도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가 아닐까 싶은데, 그 시리즈가 출간된 게 2006년이었으니 벌써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최근같이 순식간에 바뀌는 트렌드는 물론이거니와 인기있는 책의 장르,라는 것도 5년이면 충분히 바뀌고도 남은 시간이리라. 나야 몇 년 만에 스티그 라르손의 작품을 다시 펼쳐 이제서야 천천히 읽고 있지만, 원산지(?)였던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에서는 어느정도 스릴러의 판도가 바뀌지 않았을까.

 

 

그렇다. 그걸 알고 있으니, 그 돌풍의 중심에 있는 작가라는 소문이 자자하니 이렇게 이야기를 주절거리고 있는 것이다.

'제2의 스티그 라르손', '북유럽의 제프리 디버, 마이클 코넬리, 할런 코벤' 등의 화려한 별칭을 달고 다니는 요 네스뵈,라는 작가다.

현재 북유럽에서 가장 잘 나가는 스릴러 작가이자 한 록밴드에서 보컬을 맡고 있기도 하다고. 뭐 특이하다는데 그닥 특이하진 않다...

 

 뭐 어쨌든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요 네스뵈의 작품은 <헤드헌터>다. 인력 스카우터이자 사람 사냥꾼,을 뜻하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스릴러인데, 사람 사냥꾼 정도는 사뿐하게 등장하지 않겠나 싶다.

 

 

 

냉혹한 체스 플레이어라면 말이 있었던 위치를 잊지 않고, 두려움 따위는 잠시 접어 두고, 본래 계획을 고수할 테니까.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전략을 재구성하여 게임을 계속한 다음, 승리의 기쁨을 누릴 테니까.

하지만 의기양양한 기색은 없이 우아하게 그 자리를 떠날 테니까.

-p.132~133

 

 

 

로게르 브론은 업계 최고의 헤드헌터로, 그가 추천한 인재는 단 한 번도 거부당한적이 없을 정도의 명성을 가지고 있다. 그에게는 누구나 뒤돌아보게 하는 아내가 있는데, 아내에게 화랑을 하나 선뜻 선물할 수 있을 정도로, 유지비가 만만치 않은 집을 떡하니 마련할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비밀이 있다. 헤드헌터라는 직업만으로는 유지할 수 없는 화려한 생활,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주 고객이자 면접대상인 상류층 인사(?)에게서 집안에 있는 그림에 대한 정보를 파악한 뒤 그것을 훔쳐 팔아넘기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헤드헌터로서 그의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다. GPS 개발 회사 패스파인더의 CEO를 찾는 중, 그에 완벽히 들어맞는 후보가 루벤스의 사라진 그림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를 훔치기 위한 전략을 짜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일은 서서히 꼬이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아내의 배신, 함께 그림을 훔치던 공범의 죽음,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며 다가오는 그림자. 그림 사냥꾼과 사람 사냥꾼, 그들 사이의 피말리는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역자는 이 소설을 '한 편의 롤러코스터 같은 소설'이라 칭한다. 그 말이 딱 맞다. 롤러코스터를 탈 때를 생각해본다.

 

처음부터 빨리 달릴 순 없다. 처음에는, 빠른 속도로 끝까지 달리기 위한 동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천천히, 레일의 정점까지 올라간다.

침이 꼴깍, 넘어간다. 언제나 알고는 있지만, 롤러코스터를 탈 때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바로 이 때다. 순식간에 높은 곳을 치달았다 떨어지는 것보다, 천천히 고도가 높아지는 것만큼 무서운 일도 없기 때문이다. 속도가 한 번 붙으면, 높아서 무섭다고 생각할 틈도 없이 빠른 질주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꼭대기에 다다른 순간, 다시 한 번 침을 삼킨다. 지금부터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오로지 안전장치에만 의존한 채 그저 롤러코스터의 움직임에 몸을 맡겨야 함을 알고 있으니까. 잘못하다간 눈 뜰 새도 없이 무섭도록 질주할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다보면, 어느샌가 우리는 출발점으로 되돌아온다. 드디어 끝났다,라는 안도감 반, 그리고 벌써 끝인가,싶은 아쉬움 반. 그리고 타고 있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든, 다시 땅을 밟고 우리는 걷기 시작한다.

 

 

요 네스뵈의 <헤드헌터>를 읽는 동안의 내 마음이 딱 그랬다.

롤러코스터가 달리기 전, 천천히 꼭대기를 올라가는 것 같은 초반 도입부는,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은데 정작 그 형체는 드러나지 않는다. 터질 듯 터지지 않는 긴장감. 그러나 롤러코스터에 익숙한 이에게는, 약간의 지루함을 동반한다.

 

하지만 그 때 까지의 복선과 암시가 다 모이는 순간, 롤러코스터처럼 소설은 달리기 시작한다. 꼭대기에서부터 떨어지는 엄청난 스피드와 폭발력.

쉴새없이 쫓기고 있는 로게르는, 볼 꼴 못 볼 꼴 다 보이며 필사적으로 도망쳐야만 한다.

그리고 그런 그의 질주는 쉴 새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쉴틈없이 최고속력을 유지하며 달리기만 한다. 그리고 나는, 그 질주에 함께 동참하듯 페이지가 쉴 새 없이 넘기기만 했다.

 

그리고 마지막, 레일의 끝이자 출발점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드디어 끝났다,라는 해방감과, 조금만 더,라는 아쉬움을 동반한 채.

 

 

어쨌든, 처음 만나게 된 요 네스뵈가 들려준 이야기는, 꽤나 즐거웠다.

 

사실 이렇게 쉴 새 없이 독자를 끌어들이는 이야기 전개,라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그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탁월해 보인다. 괜히 북유럽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작가라는 게 아니라는거다.

그저 헤드헌터라는 직업을 둘러싼 기업 사이의 음모가 아니라 정말 머리 중앙을 노리는 사냥꾼을 데려와 자극적인 묘사가 자극적이라는 생각조차 못 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마구 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경찰이라는 정의와 범인이라는 악, 혹은 선량한 피해자와 악의적인 가해자라는 대립 구도 대신, 요 네스뵈는 악당 두 명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야말로 나쁜 놈 vs 더 나쁜 놈,이라는 것이다. 살인과 절도,라는 범죄의 악랄함을 어찌 감히 비교할 수 있겠냐만은, 그래도 일단은 둘 다 잡히면 형량은 다르게 받을테니 편의상 그렇게 이야기해 보자.

아예 화자가 나쁜 놈이라면, 그래서 무고한 피해자들을 괴롭히고 생명을 빼앗고 있다면, 차라리 욕을 하면서 보겠지만서도, 이 두 악당을 두고 어찌해야 하나. 필연적으로 독자는, 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감정이입할 수 밖에 없다.

 

 

과연 주인공 로게르는 자신보다 더 나쁜 녀석을 처리하고, 예전의 미술품 절도,라는 명목으로 삶을 살아갈까 혹은 호되게 당한 뒤 평화롭게 살아갈까. 아니면, 두 악당은 모두 경찰에게 체포되어 감방에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일까. 그 끝이 궁금해지는 것도 은근한 묘미가 있었다.

 

 

 

어쨌든, 이렇게 만나본 요 네스뵈와의 첫 만남은 나쁘지는, 아니 만족스러웠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의 국내 상륙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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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요리 동서 미스터리 북스 35
스탠리 엘린 지음, 황종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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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자와 호노부의 <덧없는 양들의 축연>의 단편 중 하나인 「덧없는 양들의 만찬」에는 '아밀스턴 양'이라는 요리가 등장한다.

아밀스턴 양으로 요리한 그 음식은, 먹는 순간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듯한 맛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진짜 어디 아밀스턴,이라는 곳에서 서식하고 있는 양들의 이야기이려니 했건만 역시 그렇게 맛있는 음식은 픽션에 불과한가보다.

그 아밀스턴 양은, 스탠리 엘린의 <특별요리>에 등장하는 요리다. 그래서 한 번 읽어봤다, 그 <특별요리>.



머릿말에는 무려 엘러리 퀸의 추천사가 담겨 있었다. 알고보니 그는 EQMM(Ellery Queen Mystery Magazine) 콘테스트의 단골손님이라고. 엘러리 퀸(한 명이 썼다고 하기에는 좀 그런데, 어떻게 된걸까?)은 그의 작품 세계와, 단편 하나를 위해 문장 하나하나를 고심하고 고심하며 쓰고 있다며 이야기를 해 주는데, 기대감이 슬슬 올라오기 시작한다.

 

알고보니 한 편의 장편소설이 아닌 단편소설집이다. 「특별요리」로 시작된 스탠리 엘린의 코스요리. 그 맛은 어땠던가ㅡ.

 

 

 

정해진 날 없이 우연이 맞닿으면 맛볼 수 있는 「특별요리」, 이유를 모른 채 상당히 자신의 분 이상의 봉급을 받는 것 같은 은퇴한 중년남자에게 찾아온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남매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를 잘 잡아낸 「크리스마스 이브의 흉사」, 언제나 질서정연하게 정돈된 골동품을 좋아하는 「애플비 씨의 질서정연한 세계」, 언제나 체스의 「호적수」가 되어주는 또 다른 '나'. 그러나 남인 누군가도 당신의 행동을 베끼고 흉내내면 어느샌가「너와 똑같다」. 「벽 너머의 목격자」는 소리만 듣고 정황을 판단할 뿐, 정확한 상황 판단은 하지 못한다. 「파티의 밤」에 벌어진 한 배우의 고뇌는 실제인가 연기인가. 언제나 「전용열차」를 이용하지만 그 시간을 비켜 계획을 세우면 막다른 곳에서 열차와 마주친다. 누구나 딜레마에 빠질 만한 상황에 놓이곤 한다. 그러나 그 때가 바로, 「결단을 내릴 때」다.



1940~1950년대의 작품이다. 그리고 딱 그 때 씌여진 소설이라는 느낌이 든다. 애거서 크리스티와 아서 코난 도일의 소설을 읽을 때의 그 분위기와 느낌을, 오랜만에 맛본 것 같다.

하지만 굳이 미스터리의 범주에 넣기보다는 오히려 순수문학에 가까워보이기도 한다. 극적인 추리 대신 사람의 심리를 자극하는 단편들이라 할 수 있어, 그 경계에 놓인듯도 하다. 그런 특징 덕분에, 그의 문장은 오히려 더 간결하고 정갈하다. 스탠리 엘린은, 작품의 처음을 시작하는 문장을 써내려갈 때 엄청나게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상상력은 그 이후에도 상당히 정교하게 다듬어져, 그것이 문장으로 나타난 듯하다.

 

그는 자기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그다지 많은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다. 어떻게든 해석이 될 수 있을법한 문장으로 상황을 그려놓고서는, 독자 스스로가 판단해 보라는 듯 슬쩍 빠져버린다.

그리하여 읽고 있는 독자가 된 나로서는 아리송한 것이, '그래서 어쨌다는거야? 내가 이렇게 읽고 있고 상상한 그 이야기가 맞는건가?'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ㅡ물론 모든 작품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되었던 게 몇 편 있다. 덕분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나름의 해석이야말로, 아밀스턴 양을 먹으면 보인다는 그 영혼일까, 하고. 그러나 이것은 그저 나의 감상에 불과해 보인다.



희한하게도, 재미있는 단편은 참 재밌다. 흡입력도 있고, 짜임새 있는 구성과 그 전개방식에 감탄하게 된다.

그러나 재미가 없는 단편은 정말 재미가 없다. 이미 초반에 작가가 이야기하려는 바가 명확해서 혹은 너무 모호해서, 도대체 뭘 어쩌려는가 싶은 것이다.

그런 단편을 읽는 동안은 참으로 쓸쓸하고 외로워졌더랬다. 번역자님께서도 비슷한 고뇌를 느끼셨는지, 작가 후기에 언급하신 말에 너무 공감이 가 잠깐 인용해본다.

 

그다지 미인도 아닌 여자가 스트립도 하지 않고 눈에 띄는 재주를 보여주지도 않으면서,

한 시간이나 자기를 쳐다보며 재미있어하라고 정색을 하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 알았느냐고 묻는다면 "알았소, 당신은 그냥 거기 서 있었잖소"하고 대답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p.306, 역자 후기「당신은 미식가입니까? 특별요리에 초대합니다」

 

덧붙여 역자께서는 영어로 읽는 것은 참 재미도 있는데, 그의 말을 우리 말로 선별해 옮기는 것이 상당히 힘들고 고달픈 작업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번역을 읽고 있는 나로서는, 과연 원서 그대로 읽는 것도 재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살짝 들기도 했다.

그래도 작품을 다 읽은 지금, 그가 들려줬던 이야기를 되짚고 있으려니 읽을 당시에는 힘들었어도 지금 생각하면 꽤나 매력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책을 막 덮었을 때의 감정과, 지금 이 작품들에 대한 감정은 많이 달라져있다. 이것은 시간을 두고 다시 되짚은 나의 잘못인가, 혹은 이것이야말로 스탠리 엘린의 마법인 것인가.



더불어 후식으로 준비해둔 토머스 버크의 「오터모올 씨의 손」 역시 함께 실려있다. 발표되었을 당시 상당히 반향을 일으켰다는데, 지금의 감성으로서는 그저 그런가보다, 싶은 단편이었다.

 

 

 

추천작은 「애플비 씨의 질서정연한 세계」, 「결단을 내릴 때」. 「결단을 내릴 때」로 비로소 스탠리 엘린은 EQMM 콘테스트의 우승을 거머쥐었다고 한다. 그럴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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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큐에게 물어라
야마모토 겐이치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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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든 영화든 소설이든, 공식적인 논의는 회장실, 사장실, 회의실 등에서 이루어지지만, 뭔가 '냄새가 나는' '꿍꿍이가 있어보이는' '좀 치사해보이는' 거래 혹은 논의는 종종 분위기 좋고 누군가가 엿들을 염려도 없는 요정에서 벌어지기도 한다. 뭐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로 극적인 요소를 위한 뒷공작의 무대가 주로 그렇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아마도 적당한 시기에 놓이는 음식은, 딱딱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대화의 시작이 될 만한 계기가 되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회장실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주변 인물들에게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쉽지만, 음식과 함께 하는 대화는 그러한 인상마저 부드럽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은 풍류를 즐기며 술잔을 기울이며 속을 터놓으며 시간을 보낼수도 있겠지만, 마냥 그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리하여 도요토미 히데요시는(그리고 내가 모르는 역사의 이면에서는), '다도'를 선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차라고는 녹차밖에 모르는 나로서는 다도,라는 것도 상당히 낯설 수 밖에 없다.

고등학교 가정시간에 선생님이 한복 들고 오라고 하셔선 다도를 한 번 했었는데 차를 세 번 만에 마신다는거였나? 그것 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다. 오히려 어린 시절 이후 입지 못하는 한복ㅡ아마 결혼한다고 맞춘 이모의 한복을 빌렸던 것 같다ㅡ을 입어보며 즐거워했던 것이 더 기억에 남는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예를 갖추어 차례차례 순서에 따라 차를 마시면, 뭐가뭔지는 몰라도 무언가 경건한 의식 같아 나도 모르게 몸가짐을 단정히 해야 할 것만 같았다는 점이다.

 

 

센 리큐는 일본 센고쿠 시대 일본 다도를 정립한 것으로 유명한 역사적 인물이라고 한다. 특히 '와비 다도'라 하여 간소하고 차분한 일본의 미의식을 정립하고 구현한 다도를 확립했다고.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신임을 얻어 그는 다두(茶頭)로서 다도에 관련된 의식을 도맡았으나, 히데요시의 미움을 사 할복하여 자결했다고 한다.

 



야마모토 겐이치의 <리큐에게 물어라>는 센 리큐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중심으로 당시 일본의 모습, 특히 '다도'와 일본의 '미의식'을 그려내고 있는 소설로, 텐도 아라타의 <애도하는 사람>과 더불어 이례적으로 제140회 나오키상 공동수상이라는 이력을 가진 소설이다.

<노보우의 성>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일본 역사소설이라는 것은 상당히 낯선 장르이고,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한 센고쿠 시대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언급했듯 약간은 반감마저 가지고 있는 편인데, 나오키상 수상작으로 꽤 많이 사랑을 받았다는 이유로 묘하게도 일본 역사소설, 그것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모습을 그려낸 소설을 연달아 읽게 되었다.

 

 

소설의 시작은, 희한하게도 센 리큐의 일대기의 가장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할복 전날에서부터 시작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노여움을 사 자결을 명받은 센 리큐는, 사과하는 시늉이라도 하면 용서해주겠다는 히데요시의 속내에도 불구하고 끝내 할복해 자결하고 만다.

그의 생의 마지막, 그는 끝내 품고 있던 향합을 바라본다. 단정한 아름다움이 깃든 향합에는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이렇게 센 리큐의 할복 전날에서 시작된 소설은, 센 리큐의 일대기를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며 하나하나 짚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일화에는, 항상 새끼손가락뼈가 담긴 향합이 함께하고 있었다.

 

 

일본의 미학,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와비 다도와 센 리큐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간의 일화, 그리고 더 거슬러올라가 오다 노부나가와의 만남에 이르기까지의 드라마를 재구성하고 있는 <리큐에게 물어라>.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공통적인 인물 덕택에 이시다 미쓰나리가 그의 심복이 되어 움직이는 모습이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책 속에는 화려한 중국의 다기 대신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는 조선의 도자기에 관한 이야기에서 조선 통신사의 방문과 같은 역사적 사실부터 대다회를 개최하는 등 센 리큐의 입김이 닿았던 행사까지, 역사적인 일화를 묘사하고 있다.

 

일본의 역사와, 그 역사 속에 있던 인물간의 대화가 이루어지곤 했던 다실(茶室) 그리고 다도까지. 작가 야마모토 겐이치가 <리큐에게 물어라>는 것은 그만의 미의식이었을 것이다.

 

끊임없이 아름다움만을 추구했던 리큐. 그에게는 오로지 '아름다움'만이 최대의 관심사였으리라. 야마모토 겐이치는, 그에 못지 않겠다는 듯 소설 속 장면 묘사에도 다도의 정갈함과 리큐의 아름다운 몸짓 하나하나를 담아냈다. 점점 과거로 돌아가는, 젊어지는 리큐를 보면서도 낯설기보다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그저 만나고 있을 뿐이었다.

 

 

 

무거운 역사소설 대신 다도에 대한,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 <리큐에게 물어라>.

리큐는 평생을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아갔다. 그리고, 소설의 클라이맥스이자 그 바탕에 깔려있었던 것은, 다도와 아름다움, 그 뒤의 '사랑'이었다.

차분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그의 삶처럼, 차분한 분위기속에서 진행되는 리큐의 이야기와 그의 사랑을 지켜봤다.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제각기 다르겠지만, 아름다움을 모르는 이에게 다기가 넘어가느니 차라리 깨뜨리고 말겠다,는 그의 집념은 놀랍기도 하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모습을 차분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나는 이 소설에서 리큐의 철학이 전해지지 않았던 것일까.

역사 속 한 장면으로 돌아가 리큐와 함께 다도를 하는 듯한 감성과 상상력도 없었다. 아름다움만을 추구했던 리큐의 생애도 크게 공감을 할 수 없었다.

감성과 미의식의 부족,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이 소설 속에서 감정의 폭발과 공감 대신, 객관적으로 그저 지켜봤다.

 

 

(+)

국내 독자들에게 꽤나 많이 사랑을 받았던 것은, 리큐의 사랑이 조선에서 온 여인과의 것이어서 공감을 했던 것이 아닐까.

조선의 백자, 원서 표지에 꼿꼿하고 단아하게 서 있는 무궁화, 조선 여인의 단정함과 아름다움. 당시, 조선의 문화를 수용하던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우리로서는 꽤나 반가울 수 있었던 요소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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