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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의 공식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재담 섭렵기 ㅣ 지식여행자 16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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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무엇을 웃긴다, 재미있다고 느끼는 데에는 개인차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특히 나는 그렇다) 감탄하면 어떻게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유머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그 과정에서 기억력 탓에 내용 일부가 빠지거나 더해지며 각색되기도 한다. 요컨대 민화나 수수께끼, 속담과 동일한 민간전승의 일종이다._p.13
사실 우리 나라 설화, 그 중에서도 민담의 특징을 꼽으라 하면 단연코 '풍자와 해학'이다. 그래서인지 사실 웃긴 이야기를 즐긴다는 건 상당히 보편적이다. 게다가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의 발전으로 전승이 빨라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속도 역시 빨라지고 있다.
물론 이것이 우리 나라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단지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혀 있을 뿐. 집단 속에서 유머를 만들어내고 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다 똑같지 않을까, 사람 사는 이야기는 다 똑같은 법이니.
문장으로 완성된 소설이나 에세이라면 판매 부수가 늘어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다. 예를 들면 인기 작가의 작품이거나 유명 연예인의 이야기를 듣고 적은 것, 아니면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았거나 출판사의 프로모션에 따르는 것 등이다. 하지만 민간전승에는 어떠한 권위도 통하지 않는다. 유머 자체의 내용만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즉 웃기고 재미있는지 여부로 판단되는 아주 가혹한 세계다._p.13~14
그렇다면 유머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사람들에게 웃음을 유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요네하라 마리는 <유머의 공식>에서 유머들을 샅샅이 분해해 웃음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분석해낸다. 유머집은 수없이 많아도 유머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그다지 없었기 때문이라나. 자, 나도 이제 양질의 개드립을 양산할 수 있겠어!
그런데 사실 그 시점에서 나는 깊은 패배감을 맛보아야 했다. 누가 유머를 이렇게 공식에 맞추어 만들어낸단 말인가! 기본적으로 유머라는 것은 그 사람의 '센스'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유머의 공식>은 수많은 재담들을 몇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한 다음 이 이야기는 이러해서, 저 이야기는 저러해서, 이런 점에서 웃음이 유발된다는 것을 분석하고는, 그 장의 마지막에 '응용문제'를 삽입해 두고 독자도 함께 유머를 만들어 내 보라고 권유하는데, 맥없이 K.O. 응용력이 부족해 나는 이다지도 웃기지 않는 인간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중간에 삽입된 '와 이 재치 있는 대답은 누가 한거야?' 했더니 본인 경험이라나 뭐라나. 네, 여사님 역시 기본적으로 센스가 있는 분이셨던 거다. 흑.
유머의 공식은 허를 찌르는 기발함도 중요하지만, 그 기발함이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기지, 재치, 순발력이 필요한 법이다. 어떤 웃긴 대답을 할까 고민을 하는 시점에서 이미 나는 패배자. 다른 누군가의 빛나는 센스를 잘 기억해 뒀다 그냥 써먹는 수밖에 없는 운명인게다.
사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는 꽤나 '웃기는' 편이다. '저장고'로서의 용량은 꽤 큰 편이고, 나름대로의 소스(source)도 갖고 있다. 그런데 내가 흠칫 하고 당황해 버리는 것은 늘 아저씨와의 대화에서인데, 백이면 백, 당한다. 심지어 유머가 유머로 끝나지 않고 서로가 민망해하는 결과만 낳게 되어 아저씨도 민망, 나도 괜히 죄송스러워지는데, 아저씨, 그 개그, 저한테는 절대 쓰시면 안 돼요. 서로 민망하다구요. 또르르..
생각해보면 그 시작은 「수학의 정석 : 미분과 적분」을 사러 헌책방을 방문했을 때였다. 그 '유모어' 있지 않은가, 가격 뻥튀기! 상태가 좋은 수학의 정석을 집어든 다음 돌아서서 '아저씨, 이거 얼마예요?'라고 묻자 돌아오는 대답. '오십만원!'. 아, 이건 오천원을 뻥튀기해 어차피 절대로 내지 못하는 가격이라는 것이 서로에게 합의가 되어 있는 상황이기에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되고 아저씨는 아저씨대로 센스있는 질문을 하셨다 생각하고, 상대방도 유하게 웃으면서 '네 여기 있습니다 오십만원~'하고 오천원을 건네드리면 훈훈한 분위기 연출인데(개인적으로는 전혀 안 맞아요 아저씨..ㅠㅠ), 나는 늘 이러고 마는 것이다. 눈이 동그래지며 '네? 뭐라구요?' 서로가 민망해진 상황에서 옆에서 배를 잡고 웃는 친구가 원망스럽다.
마치 짠듯이 나는 이 질문을 불시에 받으면 당황한 채 받아치지 못하고 '어버버..' 하게 되는데, 이게 센스의 부재이지 뭐란 말인가. 슬프기만 하다.
역시 나는 창작자로서의 능력은 눈꼽만큼도 없고 남이 만들어놓은 걸 그냥 받아먹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유머의 공식>을 읽는 동안에도 잘 알 수 있었다. 또르르. 우찌 답변을 만드는 건 잘 안 떠오르면서, 이 상황에 맞는 '저장된 소스'가 있구나! 하는 것만 떠오른단 말이지.
그래도 역시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몇 가지 분석은, 유머는 기본적으로 '사기 수법'과 흡사하다는 점, 수없이 많은 민담에 '3'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이유─현명하고 지혜로운 건 셋째 아들 or 딸인 이유─라던가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웃픈 이야기('웃프다'는 정말 훌륭한 조어다!), 고이즈미 총리의 화법이 유머의 공식과 매우 흡사하나 결국 그 화법에 넘어간 일본인들 덕에 마지막 '반전'이라는 유머는 결국 완성되지 못한다는 씁쓸함은 여사님의 신랄함이 즐거운 동시에 역시 비슷한 쓴맛을 느끼게 한다. 혹은, 그것을 유머로 승화시킨 수많은 웃음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아마 <유머의 공식>은 유머에 관한 기본 센스가 있는 이들에게는 그 '센스'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근데 그런 사람들은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나에게는 유머를 분석하는 에세이 그대로만 남게 되었다는 사실이 뼈아프고 쓸쓸하구나. 그러나 타고난 센스가 그런 걸 어쩌겠습니까. 저도 양질의 개드립을 날리고 시포요.
그러나 사실 <유머의 공식>이 빛을 발하는 것은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다. <유머의 공식>은 오랜 세월동안 집필했던 원고를 다시 손보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 다음 출간된 에세이로, 이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여사님은 난소암 판정을 받은 다음이었다고 한다. 그 때 웃음을 마주하고 있던 그 마음을 이해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서 이 <유머의 공식>은 더욱 빛을 발하지 않을까. <유머의 공식>은 요네하라 마리의 마지막 작품이다.
모든 걸작 유머는 사기꾼의 수법과 똑같다는 사실이다._p.14
하지만 끝까지 추궁하지 못하는 가여운 야당, 이런 속임수 답변을 용서하는 너그러운 일본인 덕분에 정작 중요한 마지막 반전이 빠져서 유머로 완성되지 못한다._p.76
카메라를 줌아웃 하여 전체를 바라보면 시시한 트릭이 그대로 드러나서, 거기에 속았다는 사실에 웃음이 난다. 그런데 고이즈미 총리는 줌인을 한 채 결코 줌아웃 해주지 않기 때문에 결국 이는 국민의 몫이 된다._p.96
일본 속담인 '두 번 있는 일은 세 번 있다'에 해당하는 러시아 속담은 '신은 3(Trinity)을 좋아한다'로, 여기서 '3'은 신과 예수와 성령의 삼위일체에 해당한다. 성경을 믿는 사람들은 신이 자신을 본떠 인간을 만들었으니, 인간도 '3'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또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는 무신론자의 논리에서도 결국, '3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이 된다. 그래서 (…) 영국인이 좋아하는 민화로 『아기 돼지 삼형제』가 있으며, 러시아인이 좋아하는 민화로는 『곰 세 마리』가 있다. 『신데렐라』의 주인공은 이복 언니가 둘 있는 셋째 딸이고, 안데르센의 「바보 한스」와 러시아 민화인 「바보 이반」에서도 주인공은 영리한(=상식적인) 두 형을 둔 바보(=상식에서 벗어난) 셋째 아들이다._p.107~108
_20140924~20140928
*이미지 출처 : 알라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