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몽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2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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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 시리즈는 정말 오랜만이다. <용의자 X의 헌신> 이후 드라마 갈릴레오, 그리고 출간된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의 두 번째에 해당하는 <예지몽>은 드라마 그리고 <탐정 갈릴레오>의 시기와 들어맞는다. 젊은 시절의 구사나기 형사와 유가와 교수의 활약을 그려내고 있는데, 사실 이렇게 쓰고 있으려니 좀 뻘쭘하다. 이건 도대체 얼마나 뒷북인 것인가.

 

어쨌든 좀처럼 기회가 닿지 않아, 그리고 어차피 또 비슷한 내용일 거란 생각에 시간이 흐르다 인연이 닿으면 읽겠지 라는 느긋한 마음으로 있는 와중에, 내 남동생이 서서히 히가시노 게이고의 세계에 발을 담가놓으려고 하는 것을 목격했다. <용의자 X의 헌신>을 읽더니 나 빼놓고 <갈릴레오의 고뇌>는 빌려놓고 벌써 반납.ㅋㅋ 뭐 딱히 섭섭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예지몽>을 빌려서 읽고 있길래 나도 좀 읽자고 반강제로 연체를 무릅쓰고 읽게 되었다.

 

결론은, 그냥 쿨하게 반납하라고 보내줘도 될 뻔했다. <탐정 갈릴레오>와 비슷해서 새롭거나 신선한 것이라고는 우리가 잘 모르는 바로 그 과학 기술에 관한 것 뿐이다.

 

<탐정 갈릴레오>에서부터 신비주의 사건 담당 형사가 되어버린 구사나기의 주변에는 계속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묘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벌어진다.

 

 

한 청년은 소녀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 「꿈에서 만난 소녀 」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고대하며 소녀의 방에 침입했다 도망가던 중 뺑소니 사고를 일으킨다. 또 다른 청년은 여자친구가 살해되던 시각에 범인의 집 앞에 나타난 여자친구의 「영을 보(게 된)다」「떠드는 영혼」이 모였다는 뜻의 심령 현상 폴터가이스트가 일어나는 집은 누군가의 남편의 실종과 관련이 되어있는 듯하고, 누가 봐도 수상쩍은  피해자의 부인, 「그녀의 알리바이」는 남편의 죽음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이며, 피해자의 딸이 봤다는 아버지 곁의 도깨비불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애인의 자살을 눈앞에서 목격한 남자를 둘러싼 탐문조사에서, 경찰은 생각지도 못하게 사건이 벌어지기 이틀 전「예지몽」을 꾸었다는 소녀의 증언을 듣게 된다. 그 예지몽은 그저 몸이 약한 소녀의 상상이었을까?

 

얼핏 봤을 때는 심령 현상이거나 몇 겹의 우연이 겹친, '확률이 0은 아니니까'라는 것으로 넘어갈 수 있을 법한 사건의 이면에도 반드시 필연적인 이유가 숨어있다는 것.

구사나기 형사가 유가와 교수를 찾아가면 언제나 그 '필연'이 되돌아온다. 똑같은 사건 현장에서 어느 것에 중점을 둘 것인가, 중요한 단서는 무엇인가. 그 우선 순위를 결정한 다음부터 사건의 진상은 뒤바뀌고 마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보면 떠오르는 몇몇 작품들이 있는데, 어쨌든 비슷한 맥락이라면 비슷하고 그 와중에 자신의 전공을 살린 전문적인 과학 원리를 이용해 기묘한 현상을 증명했다! 라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상당히 흥미롭고 색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걸 <탐정 갈릴레오>로 끝냈어야 했다. 그 다음은 결국 비슷한 패턴의 반복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예지몽>은 그 전형적인 속편의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유가와 교수가 늘어놓는 전문 지식은 본격 미스터리에서 엿볼 수 있는 트릭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독자의 상상조차 막아버린다. 당췌 얘들이 뭘 말하는 지를 알아야 그래, 그랬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는 것을. 물론 <예지몽> 속 단편들은 그나마 <탐정 갈릴레오>처럼 어마어마한 실험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완벽하게 이런 걸 가져오고 무슨 공감을 해 보라는 것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단편도 있지만 합리적인 해석을 내릴 수 있는 단편도 있다. 하지만 그 다행스러운 요소는 곧 아쉬움으로 바뀌어버린다. 미스터리를 단편으로 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은 알고 있지만, 그다지 참신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탐정 갈릴레오가 심령 현상을 과학적으로 해결!이라는 설정마저 첫 편에서는 신선할 수 있는 것을 속편의 제작, 그리고 패턴의 반복으로 전락해버리면서 그저 그런 작품집이 되어버린 것. 그것이 이 <예지몽>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갈릴레오 시리즈가 단편으로 머물러 있는 이상, 비슷하게 느껴졌을 것이라는 것을 예지했어야 했다. 반복의 이면에 숨어있는 필연을 알아차려야 했다. 그래봤자 이미 작품이 출간된 이후 9년이 지나 한국에 소개되고 있는 것이니 뭐 어쩌겠는가. 그리고 여전히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네임 밸류는 엄청난 것을. 더불어 외면할 수 없는 이 가독성이라니.

 

뱀다리를 조금 더 곁들이자면, 이놈의 <용의자 X의 헌신>과 <악의>와 <백야행>에 대한 미련은 끊이질 않는다. 수많은 돌 중에 옥이 섞여 있으니 또 다른 옥을 찾아보려는 독자의 마음을 좀 배반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알고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죠? 어흑..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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