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부탁해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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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 하면  뭐니뭐니해도 그의 간판 캐릭터이자 스타 닥터 이라부가 떠오른다. 지구상에 이런 인물이 있을 수 있을까 하고 경악하면서도 묘하게 웃기고 매력적인 그 캐릭터 말이다. 실은 가끔 이런 캐릭터를 만들어낸 작가도 분명히 제정신은 아닐거야, 하고 괜히 혼자 큭큭대며 웃은 적도 있다. 아무리 허구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모든 이야기는 현실에서 나타나는 법. 아무리 막장 드라마라고 손가락질을 하지만, 현실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일과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종종 보면서 가끔은 현실만한 드라마도 없다,고 생각할 때도 있는데 이 닥터 이라부라는 캐릭터는 오죽하랴.

 

 

 

야신(野神), 야왕(野王) 등 국내 프로야구 팬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몇 감독님들의 별명이건만, 감히 이런 말도 함께 붙여주고 싶다.

야덕(野德), 그러니까 야구 오타쿠,라는 것이다. 실은 야구를 미친듯이 좋아하고 줄줄이 꿰고 있는 후배가 한 명 있는데, 예전에 야구장 한 번 갔다가 지쳐 쓰러질 뻔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아마 녀석의 해설 덕분이었을 것이다. 알아듣는 것보다 구질이 어쩌고... 타격이 어쩌고... 난 그런 전문가가 아니란 말이다.

어쨌든 엄청나게 현란한, 전문가 못지 않은 해설(?) 솜씨에 우리는 별명을 붙어줬었다. 그래 니가 짱먹어라, 야구 오타쿠야! 이 야덕아!!

 

 

 

그런데 그런 별명을 붙여줄 수 있을 사람이 한 분 더 계신 것 같다. 그렇다, 앞에 이야기한 바로 그 분이다. 뭐 야구 관람을 즐기는 모두가 감히 오타쿠,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팬과 마니아 그리고 오타쿠는 엄연히 다르니까,라고나 할까.

 

 

작가로서 이야기를 짜내기도 바쁠 것 같은데, 이리저리 전국과 대만의 야구장, 그것도 1군이 아닌 2군 경기가 펼쳐지는 곳까지 돌아다니며 관람기(야구장 습격사건)를 쓰고, 편집자의 꾐에 넘어가 아테네에서도 야구 경기를 보고 온(오쿠다 히데오의 올림픽) 경력이 있다니, 와, 이런 거라면 인기 작가도 참 좋은 것이구만, 하면서도 웬만한 열정이 아니면 저렇게도 못할거야, 라는 놀라움을 동시에 선사하다니. 

 

 

어쨌든 그렇게, 몇 년에 걸쳐 편집부의 제안으로 야구장이나 락 페스티벌을 향하며 그 관람기를 르포로 쓴 것들이 한 권에 엮여 출간되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이 닥터 이라부 자신의 모델이 되었음을 어느정도 예상하게 하는 입담과 블랙유머로 꽉꽉 채워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실은 <야구를 부탁해>라는 제목 덕분에 온전히 야구 이야기로 가득할 줄 알았다.

 

처음부터 「또다시, 헤엄쳐 돌아가라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동메달에 이어 올림픽 종목으로서는 마지막이 된 야구의 '금메달'을 위해 유례없이 프로야구 선수들까지 동원해 출사했건만, 끝내 노메달의 수모로 귀국할 수 밖에 없었던 호시노 감독이 이끈 일본 대표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가득하다. 그래놓고 무슨 비행기냐, 헤엄쳐서 돌아가라, 그런 거다.

뭐 한국의 경우 금메달 따고는 어찌나 스포츠 채널에서 하이라이트 재방송을 많이 해 줬던지 기억이 생생하지만. 큭큭.

어쨌든 그 생생한 기억과 함께 '일본인'의 올림픽 야구 관람기를 보는 기분에 상당히 재미있었다. 국가적으로도 꽤나 많은 관심을 받는 한일전은 일본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인가보다.

일한전,을 관람하며 두 경기에 모두 선발로 출전했던 '좌완 선수', 라는 언급도, 한국에게 점수를 헌납했던 GG 사토의 결정적인 에러 등등 어쨌든 우리의 통쾌함이 일본인의 씁쓸함으로 그려져 있는 게 상당히 재미가 있었더랬다.

 

 

게다가 당시 일본인의 심정이 그대로 반영되어있다고나 할까, 미국과의 예선에서 일부러 져서 강호 쿠바 대신 한국을 만나려 했던 두 팀 모두의 무기력한 경기를, 그 역시 비슷한 감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점수 좀 빨리빨리 내라, 이것밖에 못하냐,고 하다 끝내 지고 나니까 이런 데서도 지다니 분하다,라니. 이 얼마나 모순적인 감정인지! 흥,하고 콧방귀를 껴 줬지... 벌써 3년 전의 일이건만, 그럼에도 말이다.

그리고는 한국의 우승 소식에 시큰둥한 반응. 아아, 배가 아팠구나 하고 괜히 내가 다 재미있었다.

 

 

그리고 뉴욕을 방문해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구장의 시설에서도 느껴지는 듯하다는 말과 함께 야구의 본고장을 만난 감격을 그려낸 「뉴욕 만세!」, 그리고 오랜 세월동안 낡은 구장이 홈팀도 없이 내버려져있던 센다이 시에서 새로운 프로야구단이 창단하면서 개막전에 참가한 이야기를 담은 「야구를 부탁해. 그야말로 다른 곳에서의 '식도락'과 함께 오쿠다 히데오의 야덕스러운 애정이 가득하다. 일본 대표팀과 프로야구팀에 대한 쓴소리도 끝이 없다. 지바 롯데가 팬들보다는 이익에 신경을 쓰는데, 그래서는 안된다는 쓴소리에는 어찌나 공감을 했는지. 한국이나 일본이나 롯데라는 구단(기업)은 똑같구나, 하는 공감 등등.

 

 

 

확실히, 베이징 올림픽이 아닌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에는 잘 알지 못하다보니 많은 공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그쪽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언제나 그렇듯 응원하는 팀이 잘 할 땐 격려를, 못 할 때는 독설을 마구마구 날려버리는 것을 오쿠다 히데오의 글과 함께 하는 것도 즐거울 것 같다.^^

 

 

 

 

그러나 야구 이야기만, 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지만 록 페스티벌, 만국 박람회, 롤러코스터 체험, 사찰 순례 등 오쿠다 히데오 아저씨는 참 바쁘기도 하셨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작가라는 직업, 아니 인기 작가라는 직업, 참 좋겠다 싶었다....

 

젊음, 청춘을 부러워하면서도 아저씨의 노련함을 발휘해 준 록 페스티벌, 괜히 사람들이 우글거리니까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당당히 찾아간 만국 박람회, 세계 최고의 롤러코스터 '좋잖아요' 타러 갔다가 괜히 다리가 후들거렸으나, 아무도 선뜻 포기하자는 말을 못한 채 결국 타고 말았다거나ㅡ결국 서로 말을 꺼내길 기다리고 있었으나, 오쿠다 히데오의 눈치를 보느라 말 못했다고. 말 했으면 거리낌없이 용서해줬다는 작가의 말이 재밌다.

그 밖에도 지팡이, 옷, 갓 등 본격적으로 순례자 복장을 빵빵하게 차려입고 사찰 순례를 하는 등, 그 모든 것에 뭔가 움직이기 싫어하는 중년의 아저씨의 투덜거림과, 아저씨이지만 가끔은 젊은이들처럼 놀고 싶다는 열정과, 그럼에도 연륜이 묻어나는 독설이 즐겁다.

 

실은, 야구 이야기보다 마지막 짧지만 강렬한 르포들이 내 웃음포인트였는지, 지하철에서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어쨌든, '에세이'라는 장르가 아무래도 더더욱 일본의 정서가 많이 녹아있기에 조금 낯설수도 있지만,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평소 즐겨 읽는 이에게는 닥터 이라부의 모습이라 할지도 모를 오쿠다 히데오의 면모를 지켜보는 것도 나름대로 즐거운 일이 될 것 같다. 오히려 책장을 넘길수록, 빠져들어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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