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비틀 Mariabeetle - 킬러들의 광시곡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솔직히 벌레,라는 이름이 다 붙은 건 싫다. 벌레라는 이름이 없는 것도 싫다. 개미도 메뚜기도 바퀴벌레도 무당벌레도 사실은 나는 전부 다 싫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뭐 자연은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다양한 개체를 만들어냈을 것이고, 나는 왜 이 바퀴벌레들이 끈질기게 살아남고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지만 이 얼마나 인간중심적인 생각인가. 실제로 자연에 가장 해가 되고 있는 종족이라함은 단연코 인간이 으뜸이지 싶다.

 

 

우리는 모르지만, 각 종(種)에 따라 나름대로의 의사소통 체계를 이루며 교류(?)하며 살아가는 지 알 게 뭐란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들에게 한없이 미안해지지만, 어 수 없다. 나는 너무 무섭다. 싫다. 꼬물꼬물 기어가는 것도 싫고, 불빛만 보면 잔뜩 달라붙는 녀석들도 싫다.

 

 

어릴 때 친구들은 어떻게 콩벌레를 건드려 동그랗게 만들고 놀 수가 있었을까? 잠자리 잡는 건 또 어떻고.

 

 

얼마 전 사촌동생은 우리 집에 놀러와있다가 바퀴벌레의 출몰로 옴짝달싹도 못하는 나를 위해 그 녀석을 때려잡아줬다. 주변에는 무려 얄팍한 택배봉투밖에 없었건만, 그걸 돌돌 말아서 퍽퍽. (웬만한 미스터리 못지않은 시체 처리 묘사가 너무 잔인한가요?) 어쨌든 휴지를 둘둘 말아 그 녀석의 시체를 화장실 변기에 쓸어내려 보내기까지, 초등학교 1학년 그 꼬마녀석이 해 줬다는 사실이 한없이 부끄러우면서도 귀엽고 믿음직해, 이모가 오고 나서 얘가 아무것도 못하고 뻘뻘거리는 누나 대신 바퀴벌레를 잡아줬다,며 칭찬 아닌 칭찬도 해 줬다. 돌아오는 대답은 '내가 동물을 좋아해서 그래...' 맙소사. 이모는 재빨리 정정해줬다. '아마 바퀴벌레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별로 무서워하지 않아서일거야'라고.

 

 

아마 다들 벌레 가지고 놀아봤던 경험들은, 이렇게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난 어찌나 이 녀석들이 징그러운지 나타나기만 하면 기겁을 해 어머니는 나에게 핀잔을 주시곤 한다. 그런데 어쩌겠어. 무섭고 징그~러운데. 그냥 모른 척 공생할 수 밖에 없을 뿐...orz





하지만 굳이, 굳~이! 메뚜기와, 무당벌레 중 뭐가 더 좋으냐,라고 물어보면 나는 대답하련다. '무당벌레'라고. 아니 메뚜기 유재석씨도 좀 좋아하긴 하는데..☞☜ 겉모습에 혹하는 대신 언제나 마음을 중시하는 사람이 되리라 생각하지만, 나는 비주얼과 마음씨 모두 잡아버리고 말겠다는 것이다. 벼 습격하는 메뚜기 떼 대신 진딧물의 천적! 무당벌레 얼마나 좋냐고. 시퍼러둥둥하고 길쭉하게 생겨 나를 질겁하게 만드는 외양의 메뚜기 대신, 자세히 보면 징그럽겠지만 일단 자그마한 몸으로 혐오감을 덜 불러일으키는, 빨간색 등딱지에 점 찍혀 있고 포르르 날아가는 무당벌레를 택하겠다, 뭐 그런 것이다. 네, 지금까지 곤충 이야기였습니다요.





이사카 코타로의 <그래스호퍼>와 <마리아비틀>을 비교한다 해도, 단연코 무당벌레의 승이다. 실은 이 <마리아비틀>을 너무나도 즐겁게 읽은 것이, 바로 그 전에 읽은 <그래스호퍼>에 너무나도 실망한 나머지 그 반작용으로 훨씬 이뻐보였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뭐 읽는 동안의 나의 즐거움이 중요하니까. 그리고 <마리아비틀>은 충분히 즐거웠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하나 중요한 얘기를 빼먹었다. 무당벌레는 영어로 'mariabeetle'이 아니다. 'ladybeetle', 'ladybug'으로 불린다. 근데, 이사카 코타로 아자씨의 말을 따르면, 이 영어의 lady가 마리아님을 뜻한다고. 그래서 자기 맘대로 제목을 무당벌레를 뜻하긴 하지만 일단은 작품 속 여러가지 중의적 의미와 겹쳐져 '마리아비틀'이 되어버렸다.





어느새 부산에서 서울까지, 3시간이면 훌쩍 도착해버리는 고속철도의 시대가 되었다. 아니 이제 더 단축되었나? 암튼 내가 서울 한 번 가 봤을 땐 약 3시간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세 시간 동안, KTX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고 상상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가끔은 꼬물꼬물 거리며 좌석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전부,였는데 말이다.

 

3시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정신 놓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보면 어느샌가 훌쩍 3시간이 지나가버리고, 그럴 때 마다 경악한다. 뭐한다고 세 시간을 이렇게 보내버렸어!라고. 하지만, 바짝 집중해 책이든 공부든 어쨌든 3시간을 그렇게 앉아 있으면 우와, 3시간동안이나 이렇게 했어? 하고 뿌듯함이 밀려오는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미묘한 시간 3시간ㅡ실은 3시간인지 모르겠다. 이 소설 속 노선을 따라가면 얼마나 걸리는지 계산해보려 했지만, 실패. 그냥 내 맘대로 이렇게 생각하련다.ㅡ정도, 기차라는 좁은 공간에서 세상에 은밀하게 숨어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고 말았다. 모여도 어떻게 이렇게 모였나, 싶을 정도다. 바로 '킬러'를 업으로 살아가는 이들이다.

 

 

 

잘난 게 아니야. 난 그저 그 무렵부터 내가 타인의 생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흥미를 갖게 됐지.

아까도 말했지만, 지렛대의 원리처럼 나의 사소한 행동이 누군가의 일상을 우울하게 만들거나 인생을 헛되게 만든다는 건 대단한 일이잖아.

-p.133

 

 

 

크게 네 개의 시선이 교차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들을 악의적으로 괴롭혀 혼수 상태에 빠지게 한 중학생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신칸센에 올라탄 전직 킬러이자 지금은 알콜 중독자인 '기무라'. 기무라에게 복수를 하게 만든 원인으로 언제나 순진무구한 아이인 척 어른들을 홀리지만, 실은 (나쁜 의미로) 인간의 행동을 파악하고 그 심리를 교묘하게 조종하는 짜증나는 중학생 '왕자'. 다들 쌍둥이로 오해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언제나 함께 붙어 다니며 일을 처리하는 콤비 '밀감'과 '레몬'. 그리고, 불운의 여신에게 듬뿍 사랑을 받는, 언제나 머피의 법칙에 휘말리곤 하는 '나나오'.

이들의 시점이 '기무라', '왕자', '과일', 그리고 '무당벌레'로 교차되듯 진행된다. 그리고 아무 상관 없어보이는, 뜬금없이 가끔 등장하는 '나팔꽃'의 이야기까지. 

 



세차하면 비가 온다. 단, 비가 오길 바라고 세차할 때는 예외다.

그건 또 뭐죠?

옛날에 유행했던 머피의 법칙이야. 내 인생은 바로 그런 일들의 연속이었지.

-p.187~188

 

 

 

 

나나오는, 불운의 여신에게 이렇게 사랑받아도 사랑받을 수 없는 캐릭터다. 사건에 휘말리는 것을 전제하면 예외겠지만, 원치 않을 땐 언제나 사소한 사건 사고에 휘말리고 만다.

일 처리를 깔끔하게 끝내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신칸센에 실려 있는 트렁크를 훔쳐 내리라는 임무를 맡게 된다. 하지만 실은 그 트렁크는, '영양'이라는 회사가 사라진 이후 꽤나 커다란 영향력을 쥐고 있는 미네기시의 의뢰로 그의 아들의 구조를 맡은 '밀감'과 '레몬'이 가지고 있는, '몸값이 담긴' 트렁크다. 잃어버린 트렁크, 어느샌가 사망해 버린 미네기시의 아들. 그리고 뜻하지 않은 불운으로 인해 트렁크를 훔치자마자 다음 번 역에서 내리지 못하게 되어버린 나나오.

서로의 존재를 몰랐으나 차츰 얽히기 시작하는 기무라와 왕자, 그리고 나나오와 2인조 킬러 밀감과 레몬. 좁은 신칸센에서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몫을 지키려는 킬러들의 필사적인 싸움이 벌어지기 시작한다ㅡ.





전형적인 '이사카 코타로 스러운' 소설이다(물론 초기작과는 꽤 많은 차이가 있어 안타깝지만).

일단은 별 상관없어보이는 각각의 등장인물, 그리고 그들을 소개하면서 조금씩 뿌려두는 복선과 암시,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한데 모여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결말까지. 딱 흩어진 퍼즐 조각을 하나하나 끼워맞추기 시작하듯 보여주는 그만의 전개 방식까지.

 

<마리아비틀>의 전작이라 할 수 있었던 <그래스호퍼> 속 킬러들의 활약상이 회자된다거나, 실제로 주인공이었던 '스즈키'가 이 신칸센 하야테에 올라타 있어 나나오와 엮인다거나, 독살 전문 킬러였던 '말벌'의 활약이 어디엔가 숨어있는 듯 하다거나, 역시 그래스호퍼에서 '푸시맨(밀치기)'였던 킬러가 등장한다거나 하는 등 <그래스호퍼>를 읽은 이들에게는 꽤나 반가울 것 같은 인물들 역시 등장한다. 그래봤자 <그래스호퍼>가 재밌어진다는 건 아니지만.

 

하지만 무엇보다 이 <마리아비틀>과 <그래스호퍼>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캐릭터의 매력에 있을 것이다. 끝없는 악의에 똘똘 뭉쳐져 기무라의 아들의 목숨을 볼모로 삼아 감히 한참 나이가 많은 아저씨를 농락하는 짜증나는 중학생 '왕자'는 제쳐두더라도, 토머스 열차를 너무 좋아해 그에 관한 모든 것을 줄줄이 꿰고 있는 전형적인 B형 '레몬'과 언제나 책을 읽으며 차분하고 진지한 A형 '밀감'이나, 언제나 불운에 휘말리곤 하지만 꽤나 머리회전이 빨라 자신에게 닥친 위기와 불운을 필사적으로 빠져나가는 나나오는 '킬러'라는 직업을 생각하지 않으면 꽤나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그러니까 소설 속이니까,라는 얘기.





그 모든 것이 각자의 시선을 교차하면서 그려내고 있기에 긴박감은 더해간다.

나나오를 쫓는 과일들의 시선에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나나오. 어라, 어떻게 된 거지?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으면 어느샌가 나나오의 시선에서 그려지며 그가 어떤 함정을 만들었는지, 어떻게 그들의 감시망을 빠져나갔는지 드러나기 시작한다.

앞, 아니면 뒤, 라는 두 가지 방향의 '기차'라는 특성에 따라 절대로 피할 수만 없을 것 같은 대결을 숨막히게 그려내다니! 어차피 킬러들의 싸움. 눈치코치 다 빠르게 각자의 영역을 확고하게 지키고 있겠지만, 그 '강자들' 사이의 싸움이라는 것도 의외로 괜찮다. 그 덕에 읽으면서 '그래, 이거야! 이게 내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이사카 코타로라고!'하고 외쳤더랬다.

 

 

그러나 '기무라'와 '왕자'의 이야기는 불편하다. 모두를 자신의 지배하에 놓고 싶어하는, 이름 그대로 '왕자'인 이 녀석. 그러나 갈팡질팡하지 않고 끝까지 그야말로 '악'을 유지해나가는 이 캐릭터는, 마지막까지 끝내 '악이 승리할 수 밖에 없을까?'라는 우울함으로 독자를 몰아넣는다. '킬러'라는 존재가 결코 선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녀석 앞에서라면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였던 기무라나 여전히 현역 킬러로서 활동하고 있는 나나오, 밀감, 레몬은 귀엽고 산뜻하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이렇게 뚜렷한 '악'의 캐릭터의 등장은 짜증을 유발하지만 꽤나 재미가 있다. 최근 나쁜 놈과 더 나쁜 놈의 대결을 그려낸 소설을 많이 읽는 느낌인데 이 <마리아비틀> 역시 그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렇게 달리기 시작한 시속 200km의 신칸센, 그리고 그 곳에서 더 숨막히게 벌어지는 킬러들의 대결! 그야말로 '킬러들의 광시곡'이 연주되고 있었던 열차 '하야테'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리라 생각한다. 쉼없이 달리는 열차처럼, 쉼없는 흡입력으로 작품 속으로 끌려들어가 그 속도감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최근 출간되고 있는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 중에서도 단연코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의 순위에 이름을 당당히 올렸던 <마리아비틀>. 그 이름값을 톡톡히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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