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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교육의 파시즘 - 노예도덕을 넘어서 ㅣ 프런티어21 1
김상봉 지음 / 길(도서출판)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내가 걸어온 길을 자꾸만 뒤돌아본다. 내가 받았던 교육과 내가 살아온 시간들은 어떤 의미가 있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살 것인가.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들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초, 중, 고를 거치면서 만났던 많은 선생님들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기억되는 학교교육을 추억하기도 한다. 학교는 지식 전달을 위한 교과 교육과정보다 잠재적 교육과정이 훨씬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공간이다. 그 시간과 공간들 사이에서 내가 배웠던 도덕과 윤리들을 떠올려본다.
서울대학교에 국민윤리교육과가 1981년에 설립되었고 이후 전국 각 대학에 같은 학과가 개설되었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국민들에게 윤리와 도덕을 교육할 방법이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국민윤리교육’을 위한 학과가 설립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쉽게 짐작이 간다. 그 후 25년 흘렀고 전국도덕교사모임을 필두로 그간의 반성과 성찰이 헛되지 않길 바란다. 김상봉 교수의 <도덕교육의 파시즘>은 저간에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태어난 책이다. 도덕 교사를 위한 강연과 도덕교과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결과물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알고 있으면서도 표현하지 못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내면화되지 못화고 겉도는 이 도덕과 윤리에 대한 얄팍한 고민의 뿌리가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확인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한권의 책이 우리나라 도덕 교육 전반에 대한 대안과 모색의 결정판이 될 수는 없다. 김상봉이 밝히고 있듯이 각론에 대한 치열한 논쟁과 생산적인 공방은 어쩌면 도덕교사들, 혹은 학생들과 국민들 모두의 자각과 각성을 필요로 하는 일일 것이다. 다만 거시적 안목에서 도덕교육의 목적과 철학적 측면의 성찰조차 없었던 지난날에 대한 비판과 뼈아픈 자각만으로도 분명한 의미를 지닌다.
어린 시절 시험을 보기 위해 암기했던 도덕적인 행동과 타인을 위한 배려들, 그리고 학력고사를 위해 달달 외웠던 서양의 철학자들의 이름과 한 줄로 요약해서 외웠던 그들의 사상이 윤리와 도덕의 전부였다. 제대로 된 교육이 무엇인가하고 묻는다면 교과별로 상이한 대답과 교육 목적이 제시될 테지만 도덕교과는 근본적인 반성과 성찰이 요구되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도덕교육은 착한 노예를 기르기 위한 것이었을 뿐, 한 번도 긍지 높은 자유인을 기르기 위한 도덕교육이었던 적이 없었다. 노예가 아무리 착하다 하더라도, 노예적 삶이란 결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이상일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 시대의 엄연한 시대정신이라 믿는다. 인간을 자유인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오직 착하게만 만들려는 것은 언제나 불온한 시도이다. - P. 13
대한민국의 도덕교육의 문제점을 가장 날카롭게 지적한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시도되었던 그 ‘불온한 시도’들에 대한 면면을 밝히는 작업이 이 책이 갖는 의의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 확립된 ‘국민윤리교육과’의 전통과 맥락이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고 그 시절 교수들에 의해 확립된 국가 지배이데올로기를 위한 선전 도구로서의 역할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민족과 국가에 대한 맹목을 선전하고 내면화했던 도덕교육은 개인의 고귀하고 소중한 가치를 전제로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순종적이고 선량한 국민을 위한 교육은 이제 그만 가라. 갈등과 투쟁도 때로는 필요하며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선택을 위한 고민들을 가르치기 위해 이 책은 필요하다. 지금의 도덕교과는 학제 간 접근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사회학과 심리학, 철학과 문화 예술에 이르기까지 잡탕 찌개를 연상시키는 주장을 했던 어느 교수의 말처럼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철학을 어미학문으로 해서 도덕교육의 목적을 바로 세우고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이 책은 전국의 도덕 교사를 위한 책이 아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교육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삶에 대한 자세를 바꿀 필요가 있다. 그럴 수 있어야 도덕 교과의 내용과 방법에 대해서도 그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같이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거의 뇌사상태에 빠진 도덕교육에 대한 심각성을 외면한다면 아이들의 미래도 행복의 의미도 삶의 태도도 여전히 지금과 같을 것이다.
저자는 “‘학교는 중요한 진실을 회피한다’(노암 촘스키, 강주헌 옮김,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 2001, P. 38) 그 대신 학교는 국가가 승인하고 인정하는 것을 진리라고 주입한다.”고 말한다. 부르디외의 ‘계급재생산’이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공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수많은 논의와 주장 속에는 여전 평준화 문제나 수월성 교육의 문제가 등장하고 기여 입학제나 특수 교육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주장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근본적인 철학의 문제라고 본다. 무엇을 위한 교육이어야 하는지, 누구를 위한 교육인지,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들을 좀 다른 방식으로 해 볼수는 없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도덕교육이 넓은 의미의 철학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정신이 노예상태에 빠지지 않고 자유를 누리고, 편협한 당파성에 빠지지 않고 모든 문제를 균형 잡힌 전체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현실을 절대화시키지 않고 완전성의 이념 아래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P. 203
김상봉의 주장에 동의하고 공감하는 부분이 너무 많아 일독을 권한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쯤 왔는지, 어디로 갈 것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책 속에는 길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만히 서 있는다고 해서, 시간만 흘러간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는 아무것도 없다. 그것이 삶이 내게 준 교훈이다. 오늘 하늘이 맑다고 해서 내일도 맑을 것이라는 맹목과 순종을 학교는 오늘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도덕이 이런 것은 아닌지.
참된 도덕성은 소극적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약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그들을 돌보려는 마음에 존립한다. - P. 300
2005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