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교육의 바탕과 속살
김수업 지음 / 나라말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국가주의, 특히 일제의 군국주의 지배 사상이 포함되어 있는 ‘국어’라는 말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우리말에 대한 명칭 없다는 뜻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대략 12년간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의무적으로 ‘국어’를 배운다. 우리말에 익숙해지는 6, 7세가 지나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본격적으로 한글을 배우고 보다 확장된 어휘와 문장들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남는 의문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배웠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문학 작품, 특히 개별 작품에 대한 해석과 문학에 관한 단편적인 이론들, 그리고 글을 이해하기 위해 글의 종류와 특징들 주제를 파악하기 위해 단락의 의미를 파악하는 방법들을 열심히 배웠다. 더불어 5차 교육과정 까지는 교과서가 성전이었기 때문에 대학입시 준비를 위해서 고전문학의 경우 고전 문법을 제2외국어보다 어렵게 공부했던 나쁜 기억이 있다. 결국 ‘국어’ 과목을 통해서 배운 것은 우리 겨레의 삶과 문화가 아니라 대학 진학을 위한 주요과목을 배운 것이다. 때가 늦었지만 ‘국어’와 ‘교육’이 합해진 ‘국어교육’에 대한 고민과 성찰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김수업 선생님의 <국어교육의 바탕과 속살>은 여러 매체에 기고되었거나 강연을 위한 원고들을 모았다. 시기상 여러 해에 걸쳐 있기 때문에 스스로 밝히신대로 일목요연한 흐름을 잡아내기는 어려운 책이다. 하지만 일관된 문제의식과 타당한 주장들은 시간의 변화를 무색하게 한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풀지 못한 숙제들이기 때문이다. 이 땅의 모든 국어교육학 교수들이나 현장의 교사들이 책임져야할 몫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가 공감하고 문제의식을 가져야할 내용들이다.

  현재 학급학교에서는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되고 있다. 학습자 위주, 선택중심 교육과정이라고 하지만 현실과는 무관하게 진행되어 역시 실패한 교육과정이다. 학교와 학생들의 과목선택권을 높이고 수요자 중심 교육을 지향하는 교육과정이 성공하려면 인적, 물적 인프라가 구축되는 것이 선행 조건인 것은 초등학생쯤 되면 알겠지만 색깔과 무늬가 화려한 교육과정을 선언한다고 해서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교사 수와 전공 영역을 먼저 고려한 선택과목의 조정이나 전문 교실이 없는 수준별 수업은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김수업 선생님이 일관되게 주장하시는 대로 8차에서는 국정 교과서 제도가 폐지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출판사와 학습지 회사들의 파이가 커진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탄력적이고 능동적인 교사의 역할이 기대된다는 말이다.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만든 <우리말 우리글>은 현장의 교사들에게 교과서와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능력과 여건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준 책이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교육부 관리의 책상서랍에서가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의 참여와 토론을 통해서 정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에서는 우리말 교육의 거시적 목표와 방향만 설정하면 된다. 큰 틀이 정해졌다면 각 지역 교육청과 학교 현장에서는 아이들의 발달 수준과 지역 사회의 입말이 반영된 다양한 형태의 교육이 가능하다. 이것이 참된 우리말 교육이 아닐까 싶다. ‘사투리’라는 이름으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배웠던 모든 언어들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표준어’ 교육에 대한 문제점은 깊은 공감을 이끌어 낸다. 해방이후 일천한 ‘국어교육’의 역사와 학문으로서의 한계를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국어국문학’의 아류로서 ‘교육학’과 접목된 사생아 쯤으로 비춰지는 ‘국어교육학’에 대한 학문적 성격은 둘째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국어’를 가르치는 일과 그 일이 어떤 형식과 내용을 담아내야 할 것인가이다.

  결국 ‘국어교육의 바탕과 속살’은 우리 것으로 가득 채워져야 한다. 국수주의나 민족주의의 색안경을 벗어내고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분명한 태도와 인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국인에게 필요한 우리 삶과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우리말 교육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탁상공론과 이상주의의 발로가 아닌 현실적 대안과 모색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일들이다. 현실적으로 대학입시에서 요구하는 객관식 시험 기계를 양산하는 국어교육에 비난을 보낼 것이 아니라 대학에서 필요한 시험과 제도를 고치고 바탕과 속살을 고민한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관성의 법칙을 벗어나서 조금씩만 한발자국씩만 앞으로 걸어나가면 된다. 혁명적 변화와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일도 아니다. 단순하게 현장의 교사들과 학생들의 요구, 교육 관료와 교육과정 편찬 과정의 고민이 하나 될 수 獵?밝은 미래는 그들이 아닌 우리가, 내가 만들어 것이다.


06041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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