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하는 평화 - 전쟁, 국가, 권력에 저항하는 평화주의자들의 대담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21
전쟁없는세상 엮음, 엄기호 외 지음 / 오월의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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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란 주제에 관심이 많다.

언제부턴가 관심이 커졌는데, 관심을 가질수록 더 예민해진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폭력에 대해서도 관심에 따라 민감한 정도가 달라지는 것 같다.

나도 예전엔 '폭력'이란 말에서 물리적인 것만을 떠올렸다.

 

책을 읽는 내내 폭력에 대해 다시금 고민했다.

폭력이란 권력의 문제이자 삶의 태도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단순히 전쟁이나 물리적인 폭력만이 아니라 폭언, 강요, 무언의 압박 따위도 폭력이 될 수 있다.

의도하지 않았어도 내 생활이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면 그것 또한 폭력이 아닐까.

이를테면 (요즘 전기요금이 핫이슈이니만큼) 내가 사용하는 전기가 어떻게 만들어져서 이동되고 사용할 수 있게 되는지 떠올려 보면, 전자제품 사용하는 게 (비싼 전기요금도 문제일 수 있겠지만) 핵발전소와 송전탑이 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삶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폭력적인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나도 참 고기 좋아하지만, 그 동물들이 어떻게 길러지고 고통 받으며 죽임을 당하는지를 떠올리면, 굳이 고기를 안 먹어도 먹을 것이 널려 있는 세상인데 참 폭력적이었구나 싶다.

사용하지도 않는데 잔뜩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생각하면 그 마저도 자원낭비이자 환경파괴이니 폭력적인 것이다 싶고.

지금 이 글을 쓰려고 조명과 컴퓨터를 켜서 전기를 쓰고 있으니 이것 또한 폭력이다.

아, 진심으로 분노하게 되는 사드배치 - 난 정말이지 북한보다 핵발전소가 백배 이상 커다란 위협이라 생각하는데, 거기다 사드까지 배치되면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망가질 게 뻔하지 않나.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이나 결과가 너무나도 폭력적이다!

 

그 밖에도 참 많다.

경사지고 울퉁불퉁한 인도를 볼 때마다 유모차 끌기도 이렇게 힘든데 휠체어 탄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다.

조금만 신경쓰면 되는데도 삐딱하게 주차하는 사람들, 마트에서 계산해주는 직원한테 돈이나 카드 던지는 사람들, 하루에도 몇 통씩 걸려오는 스팸 전화 등등.

그리고 명절이나 제사에 시댁에 가서 음식하고 시중드는 나의 역할, 여자는 이래야 하고 남자는 저래야 한다는 종류의 말들, 학생은 어떠해야 한다는 관념들 등등.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폭력인 줄도 모른 채 살아갈 수도 있지만(오히려 그 편이 편할지도 모르지만), 폭력에 대해 생각할수록 사소하게 지나쳤던 일도 마음에서 민감하게 받아들여진다.

 

특별히 주목해서 읽었던 건 '교육'에 관한 장과 '비폭력운동'에 관한 장이었다.

'교육'과 관련한 폭력에 대해서는 나도 느끼고 있었지만 말로 정확히 표현하기 힘들었던 불편함을 짚어주었기에 뭔가 조금은 뚜렷해진 느낌이다.

많은 교사들, 예비교사들이 이 글을 읽고 거듭 생각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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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미니멀라이프 - 무인양품으로 심플하게 살기
미쉘 지음, 김수정 옮김 / 즐거운상상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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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 도착한 책을 오늘 읽는 즐거움, 오랜만이다.

아기가 낮잠 자는 동안 가볍게 읽었다.

육아와 살림으로 몸이 무겁고 눅진한 기분이었는데 간만에 개운하다.

 

'무인양품으로 심플하게 살기'라는 부제를 보면서 대충 어떤 내용일지 짐작했지만, 큰 기대가 없었던 탓인지 읽고 난 후에는 그저 상쾌함이 가득하다.

특별히 무인양품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뭔가 물건을 사들여야겠다거나(오히려 줄여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인테리어를 바꿔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도 아닌데.

정리나 단순한 삶(미니멀리스트)에 관한 이야기들은 늘 '너무나도 많은 것을 가진', '그래서 생활만큼이나 마음이 무거운' 내게 대리만족과 즐거움을 준다.

좀 당황스러웠던 것은, 저자가 적은 물건을 소유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정리 수납 물건은 많이 갖고 있는 듯이 보였던 것_ 뭐, 필요했겠지만.

 

법정 스님처럼 무소유를 실천하는 것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딱히 뛰어난 능력도, 돈도 없으니 노후대비책으로 '단순한 삶'을 미리부터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절실하다.

 

 

책을 통틀어 가장 좋았던 한 문장.

"다른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내가 좋은 기분으로 있는 것'이라는 점도 언제나 의식하고 있습니다."(111쪽)

그렇지.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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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 학력 붕괴 시대의 내 아이가 살아갈 힘 - 인생을 개척하는 강인함을 기르기 위한 인간주의 교육의 제시
텐게시로 지음, 장현주 옮김 / 오리진하우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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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소제목, 책소개를 보고 구입했지만 다 읽기까지는 꽤나 참을성이 필요했다.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너무 빈약해서다.

괜찮은 책이라 판단했다면 글을 남기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렇지가 않기 때문에 굳이 글을 남긴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리뷰가 책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읽을 책은 넘치고, 시간과 자원은 한정적이므로 굳이 이런 책을 읽느라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을까.

 

 

우선,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방향성(?)에는 대체로 공감한다.

그런데 그 근거가 '카더라'통신 수준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책이나 논문을 참고했는지, 어떤 실험을 한 결과인지, 어떤 통계자료를 근거로 했는지에 대해 언급이 별로 없다.

예를 들어 138쪽에 실린 한 문단을 보자.

"그러나 닦는 아이는 '몰입' 체험을 강제적으로 방해받아 '정상화'되기 어렵다. 몬테소리에 의하면 때때로 몰입을 방해받은 아이들은 변덕스럽고 부주의하며 금방 기분이 나빠진다고 한다. 거기에 처벌로 대응하면 불량소년, 불량소녀가 될 수 있다."

몰입을 강조하는 내용인데, 근거가 보통 사람들 만나서 대화하는 수준이다.

이런 부분이 자주 등장해서 책에 대한 신뢰가 낮아졌다.

 

둘째는 저자와 역자의 글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어디까지가 저자의 글이고 어디까지가 역자의 글인지 모호하다.

그 부분에 대해 따로 밝힌 내용도 없어서 책에 대한 신뢰가 더 떨어진다.

 

결론은, 소제목 정도만 읽고 상상하고 짐작했던 것 이상의 깊이 있는 내용은 없으며 허술하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보니 '쉽고, 새로운 내용, 유익한 내용'이란 평이 많은 듯한데, 책에 실린 내용은 사실 요즘 잘 만든 다큐멘터리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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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y616 2016-06-14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속았어요 읽으면서 얼마나 황당하던지
 
[eBook]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 물건을 버린 후 찾아온 12가지 놀라운 인생의 변화
사사키 후미오 지음, 김윤경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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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자전거를 한 대 장만했다. 꽤 값이 나가는 모델이었다. 폼 나는 자전거를 소유하게 되자 왠지 그에 걸맞은 의상과 가방, 헬멧, 장갑, 거치대 등도 모두 갖추어야 할 것만 같았다. 결국 그 모든 걸 장만하고서도 더 필요한것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문제는 그 멋진 자전거가 요즘은 거실에 붙박이처럼 자리 잡고 있다는 거다.

 

아마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갖게 된 물건이 많을 것이다. 책을 자꾸 사다 보니 책장이 필요해지고, 자기 전에 책을 보려니 휴대용 북 라이트가 있어야 편할 것 같고, 발췌하거나 메모할 일이 생기다보니 독서대도 필요했다. 어디 그뿐인가. 커피 원두가 생겨서 커피메이커를 사고, 머그를 사고, 컵받침도 사고.(원두 분쇄기도 살 뻔했다) 언젠가는 필요할 것 같아서 안 버리고 모아둔 나무젓가락이나 플라스틱 포크와 숟가락, 각종 증정품들도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청소할 때마다 먼지를 털어내고 닦아내야 할 물건이 많아서 번거롭다. 물건이 점점 늘어나니까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렇다. 난 너무 많은 물건을 가진 탓에 시간과 체력, 정신력 게다가 경제적인 소모가 컸다. 때로는 분에 넘칠 정도로 많이 가졌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지곤 한다. 그렇다고 비싼 물건을 잔뜩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가진 물건의 태반을 그저 소유하는 데만도 적지 않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었다. ‘언젠가필요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고, 거의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아까워서처분하지 못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큰 불편 없이, 신경 안 쓰고 살았다면 괜찮았을 테지만, 나는 많이 가졌다’, ‘홀가분해지고 싶다’,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나와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거나 기분전환이 필요한 사람에게 이 책이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다만 당장 큰 변화를 기대하고 읽는 것은 좋지 않다. 거의 모든 자기계발서류의 책이 그렇듯이, 중요한 점은 모든 것이 본인의 실천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 결과 또한 하루아침에 나타나지 않으므로 점진적인 변화를 다짐하면서 꾸준히 실천하시길. 의욕이 과하면 금세 지치기 마련이다.

 

군살을 빼면 몸이 가벼워지듯, 군물건(?!)들을 정리하고 한껏 가벼워진 삶을 즐기고 싶다. 그 날을 상상하며 물건을 하나씩 정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내용은 두 가지- 물건을 버리면 현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것, 그리고 물건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주는 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오직 '지금'에 집중하는 단순한 삶을 살게 되면, 올지 안 올지도 모를 ‘언젠가를 위해 혹은 과거의 어느 순간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허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나도 불투명한 언젠가를 모두 걷어내고 오롯이 지금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자신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소유하는 미니멀리스트, 즉 최소주의자의 삶은 단순히 방이 깨끗해져서 기분이 좋다든가, 청소하기 편하다는 표면적인 장점뿐만 아니라 훨씬 더 깊은 본질에 그 가치가 있다. 바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하는 것, 누구나 추구해 마지않는 행복을 되짚어보는 일이다.
(전자책, 46/227)

나는 물건을 버릴 때마다 몇 번씩, 지금 필요한지 아닌지 스스로 물었다. `지금`을 계속해서 묻고 `언젠가`를 없애가면서 간신히 `지금`에만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
마찬가지로 `예전에` 필요했던 물건도 이제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 지금 필요한지 어떤지를 계속 질문한 결과, 과거에 중요하게 여겼던 물건, 옛날에는 어떻게든 갖고 싶었던 물건도 지금은 없다. 예전에 나 자신의 일부라고 믿었던 물건도 없다.
(전자책, 208/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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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6-01-20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유를 하다 보면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좀 더 힘들게 아날로그적으로 얻을 필요도 있는 것 같구요 :-)

cobomi 2016-01-20 23:39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런데 아날로그적으로 얻는 건 어떤 건지 잘 모르겠어요ㅜㅜ

초딩 2016-01-21 00:02   좋아요 0 | URL
수 수공업적으로요 ㅎㅎㅎ 음 만들어 쓰는 것에 가깝게 :-)

나이니 2016-01-20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꿈꾸며 오늘도 인터넷 쇼핑을 하게 되는 일인입니다^^ 깊이 공감하게 되네요^^

cobomi 2016-01-20 23:40   좋아요 0 | URL
인터넷 쇼핑만 안해도 꽤 많은 물건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별이랑 2016-01-20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공감되네요. 알면서도 안돼는게 참...
저는 오늘도 새로운 물건을 택배기사님 도움을 받아 들여놨답니다. 에구.

cobomi 2016-01-20 23:40   좋아요 0 | URL
역시 인터넷 쇼핑이 중독성 있죠?ㅎㅎ

머슴둘레 2016-01-20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시민들은 농촌 삶은 너무도 모릅니다. TV를 보며 필요를 넘는 물건을 탐욕합니다. 돈이 흔해서일테지요. 자기 노동으로 수입을 얻지 않았거나 자기 노력에 비해 노동력의 댓가를 지나치게 많이 받아서일테지요. 농촌에서는 농기구 살 돈이 없어서 남의 땅에 얹혀서 맨손으로 농사짓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문에 속듯이 TV에 TV광고에 속아서는 안됩니다. 돈에 속으면 제국주의자에게 속는 것입니다. 돈에 대해서 모른다면 역사에 대해서 무지한 것입니다. 진실된 친구를 찾으려면 돈을 투자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은 곧 생존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돈의 역사에 대해서 연구하십시오. 사회의 역사에 대해서 연구하십시오.

cobomi 2016-01-20 23:50   좋아요 0 | URL
도시 사람들이 농촌 사람들의 삶을 잘 모르는 건 맞는 말씀입니다. 마찬가지로 농촌 사람들도 도시의 삶을 잘 모르는 건 아닐까요? 농촌에서 맨손으로 농사짓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도시에도 하루하루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도 있죠..
물건을 많이 갖고 있는 게 반드시 돈이 흔해서도, 노동에 비해 지나친 대가를 받고 있어서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히려 이 책에 나오는 저자의 말에 더 공감하는데요. 물건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거나 남에게 인정받으려 하기 때문에, 그리고 일어날지도 모를 상황을 통제하고 싶어서 필요 이상의 물건을 갖게 된다고요.
생각 없이 속으면 안된다는 님의 말씀은 잘 새겨듣겠습니다.

비로그인 2016-02-10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필요한 것만 소유하고 나머지는 버리든지,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하는 것이 지혜롭지요. 군살이 건강에 좋지 않듯이 불필요한 소유물도 정신 건강에 좋지 않겠지요. 물건들을 정리하신다니 반가운 소식입니다 ^^

Grace 2016-02-24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석 하나만 놓인 빈 방을 늘 생각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못하더라구요.ㅎㅎ
정말 우린 가진게 너무 많아요.^^

비로그인 2016-03-14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롤리팝에서 알파벳으로 바꿨습니다.
cobomi님 좋은 하루되세요.

애즈라엘 2016-03-16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건이 정체성을 드러내 주는 것이 아니다...정말 확~꼳히는 문구네요^^
 
능력주의는 허구다 - 21세기에 능력주의는 어떻게 오작동되고 있는가
스티븐 J. 맥나미.로버트 K. 밀러 주니어 지음, 김현정 옮김 / 사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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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대한민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키워드 중 하나는 단연 금수저, 흙수저로 대표되는 수저계급론이 아닌가 싶다. 수저계급론은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계급이 결정되며, 한 번 정해진 계급은 어떠한 노오력으로도 바꾸기가 힘들다는 것을 내포한다. 사람들은 수저계급론을 자조적이고 체념하듯이 내뱉곤 했지만, 한편으로는 책의 제목처럼 능력주의는 허구라는 걸 금수저, 흙수저’라는 단어로 드러낸 것은 아닐까.

 

능력주의에 대한 환상은 강력하다. 사람들은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손쉽게 개인의 능력 탓으로 돌리곤 한다. 대입수학능력시험이나 각종 고시를 비롯한 시험 성적, 학력, 취업, 연봉 등에서부터 심지어 외모나 부정부패까지도 능력으로 취급할 정도다. 그리고 '능력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을 가져가고 누리는 걸 너무도 당연하게 여긴다. 과연 이 모든 것들이 개인의 능력에 좌우되는 것인가? 그리고 '능력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을 가지는 게 당연한가?

 

책의 두 저자는 능력주의 신화를 요모조모 분석하는데, 핵심은 능력적 요인과 비능력적 요인 중 전자는 과대평가된 반면 후자는 과소평가되거나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능력주의는 허구'라는 것. 구체적으로는 학교와 교육은 불평등을 대물림하는 잔인한 매개체’(2)이며, ‘무엇을 아는가가 아니라, 누구를 아는가가 중요하다’(3)는 점, 상속은 능력마저도 이겨버리는 최고의 비능력적 메커니즘’(4)이고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불가항력적 요인들’(5)이 있으며, ‘능력을 가졌다고 모두가 똑같이 성공하는 건 아니’(6)라는 것, 그리고 더 이상 자영업에서 자수성가형 인물은 나올 수 없’(7)고 차별은 능력주의를 왜곡시키는 첫 단추’(8)라고 말한다.(놀랍게도 책의 목차만 차근히 읽어도 책 내용을 70% 이상 알 수 있다.)

 

저자들의 분석과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걸까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그 결론이 좀 더 공정한 사회로 만들려면 () 반드시 정책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권력자들의 강인한 의지가 필요하다.”(39)는 것이라니 온몸에 힘이 빠진다. 너무나도 교과서 같은 대답에 깜짝 놀랄 정도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건가.

 

생각해볼 것은, 저자들이 능력주의는 허구다라고 말하면서도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위해서 능력주의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자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각자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분배가 이뤄지는 것이 과연 공정하고 평등한 방법일까? 저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시대적, 장소적 배경에 따라 선호되는 능력이 다르다는 점에서 능력주의 또한 운이 아닌가. 그리고 능력이라는 것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물론 저자들은 개인이 어찌 손쓸 수 없는요소들을 최대한 걷어내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공평하게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지만, 그것만이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최선의 방법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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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6-01-08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능력주의`는 그저 `기득권의 대 물림`, `비열한 경쟁`을 좋게 포장한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아요 ㅠㅠ
변혁을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기득권은 그변혁을 당연히 할 이유가 없는 것 같고...
그저 능력주의는 그들에 의한 포장지다 정도로 생각하는 것으로 위안해봅니다 ㅠㅠ

cobomi 2016-01-08 14:03   좋아요 2 | URL
공감이 되네요. 문제는 기득권이 없는 사람들도 능력주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데 있는것 같아요.

마페 2016-01-10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고율의 상속세, 1%대의 재산세, 뭐 이런 제도적 뒷 받침이 없는 능력주의는 지금 자본주의 문제를 더 심화시키는 것 같아요.
능력주의가 자본주의 엔진이었는데 이제는 무조건 계속 사용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 많은 것 같아요.

cobomi 2016-01-13 02:4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책에도 나오는 내용인데, 상속과 능력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는 거였죠. 그런 점에서 능력주의가 허구라고요. 능력주의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면, 마페님 말씀처럼 제도적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해 보입니다.

머슴둘레 2016-01-12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능력주의가 허구라는 것은 개인주의(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신분을 후천적으로 바꾸기 힘들다는 것을 말합니다. 금수저-흙수저론의 비극은 빈부격차가 아니라 대물림된다는 것에 그 현실적인 의의가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대물림되는 특혜와 권좌를 바꿀 수 없다는 말이겠지요.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노동자들이 자기 계급의 당을 중심으로 단결투쟁한다면 특혜와 권좌는 설 자리를 잃고 맙니다. 반쪽짜리 세계사 역사관에 파묻혀 자기 자신과 자기 계급의 역사를 창조하는, 노동계급의 위대한 역할을 부인한다면 대물림되는 흙수저가 되고 맙니다. 단결투쟁!!

cobomi 2016-01-13 02:56   좋아요 0 | URL
수저계급론의 비극이 `대물림`에 있다는 의견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현대의 계급이란 게 꼭 `자본가-노동자`로 나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저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그보다는 오히려 `권력`을 중심으로 계급이 설정되는 게 아닐까요. 성별, 지역, 성적 취향, 국적 등도 계급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차별이 대물림되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