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독서일기 3 범우 한국 문예 신서 53
장정일 지음 / 범우사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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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은 앞서의 두 권에 비해 차분하고 냉정한 느낌이다. 독서일기임에도 또렷이 각인된 사건이 있는데, 이 권 전체에 걸친 핵심 사건은 바로 내게 거짓말을 해봐라 할 수 있겠다. 1996년 봄. 처음 파리로 떠난 후의 일상(이라고 해도 독서가 거의 전부이지만)에서 뜬금없이 한국 생활로 배경이 바뀐다. 324일의 두 줄짜리 영화감상문 다음에 곧장 424일의 일기가 나오는 것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앞의 두 권에서 저자는 지금 어디 있는지, 어디에 다녀왔는지를 빠뜨리지 않고 기록해왔는데, 한국으로 돌아온 것을 기록하지 못할 정도로 그리고 한 달 동안 별다른 독서를 하지 못할 정도로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 중심에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자리 잡고 있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 대해 바로 말함(193~199), 리뷰지가 위촉한 이영준과의 대담(203~215), 시사저널이문재와의 대담(230~232), 지역 신문에 게재한 나는 하이틴 작가가 아니다(241~247),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 대한 설명글(269~275) 등은 모두 당시 작가가 처했던 상황과 심경을 대변해준다.(이 책은 사건 당시 출판사 스스로 판매중지하고 책을 회수하였다. 현재 알라딘 중고 거래가격은 3~10만원) 물론 독서 감상문 자체도 충분히 재미있고 유익했지만, 작가가 쓴 소설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과 그것에 대한 작가의 글은 내게 몇 가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었다. 표현의 자유란 무엇이며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 작가란 어떤 사람인지, 작가가 내놓은 작품에 대해 강제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이며 그런 제재를 가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 것인지 등. 특히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서는 20년 전에 비해 지금이 낫다고 말할 수 있는 건지 회의적이다. 사이버 감찰 논란이나 닭그림(풍자화라 하자) 제재(制裁)는 코미디에 가깝다(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은 표현의 자유 아니라 폭력이라고 말한 동성애자 인권연대 사무국장의 의견, 그에 대해 더러운 걸 더럽다고 말하는 게 표현의 자유라며 댓글을 달던 사람들그러나 솔로강아지라는 초등학생의 시집에 실린 동시 학원 가기 싫은 날에 대해서 사람들은 잔인하고 끔찍하다면서 시집을 눈앞에서 불태워 버리라고 했다는데(그리하여 출판사는 전량 회수, 폐기했다 한다), 학원 가라고 하는 엄마가 끔찍하니까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는 앞서 말한 더러운 걸 더럽다고 말하는 게 표현의 자유라는 논리에 해당하는 게 아닌가. 표현의 자유란 어른에게만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내가 동의할 수 있는 것만을 너도 표현할 수 있다’(이때 는 대다수 혹은 강자, ‘는 소수 혹은 약자)는 것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여 이래저래 씁쓸하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와 관련한 글에서 인상 깊었던 몇 구절을 옮기는 것으로 리뷰를 대신할까 한다. 2001년에 그 소설로 인해 장정일은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장정일의 독서일기31997117일 일기로 끝나니까 이어지는 책에서도 당분간 이 사건 이야기가 나오겠지.(읽은 지가 너무 오래 돼서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부연하자면 내가 이 소설을 포르노로 치장한 다른 이유는 부권적이고 권위적인 문어체에 억눌려 온 구어체를 마음껏 풀어놓기 위해서였으며 더욱 중요하게는 고작 기성 체제에 봉사하는 요즘 소설의 존재 방식에 의문이 났기 때문이다. 흔히 예술은 자유로우며 불온한 것이라고 말해지지만, 굳어진 형식에 아무런 충격을 가하지 못하는 작가의 더듬거림은 체제에 대한 고해에 불과하며 시비를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장인정신은 아버지가 심어준 내면감시에 불과하다. 그리고 자기 갱신의 열정 없는 기계적인 글쓰기는 선생님에게 보이는 매일 매일의 일기쓰기에 불과하지 않은가.”(196)

 

음란도서와 작가, 출판인에 대한 제재는 세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데 첫째 인신구속과 같은 사법처리, 둘째 판매 금지, 셋째 통신판매나 비닐 씌우기 미성년자 판매 불가와 같은 유통방법상의 제재. 나는 인신구속이 중세의 재현이라는 점에서, 판매 금지는 작가의 실존적 체현물인 동시에 경제 수단을 원천봉쇄한다는 이유로 수락할 수 없다.”(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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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위증 1 - 사건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9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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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님 서재에서 본 책이다. 관련 글을 읽고 사두었다. 머리가 좀 복잡해서 편히 쉬려는 마음으로 가볍게 빼들었다가 당황했다. 빠져들어서 1권 절반 쯤 읽다가 다시 마태우스님 서평을 찾아보니 이런 경고가 있다.

"그러니 뭔가 꼭 할 일이 있는 사람은 이 책을 펼치지 마시라."(http://blog.aladin.co.kr/747250153/6518600)

그 말을 기억했어야 했지만 이미 늦었다. 사나흘 잠 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읽었다. 아니, 잘 수가 없었다. 지금도 눈이 빨갛고 정신은 혼미하며 입술에 물집이 생기려 한다.

 

1990년 초 일본, 중학생의 죽음을 두고 벌어지는 사건과 해결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죽은 소년이다. 죽은 채로 계속 등장하고, 사건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600페이지가 넘는 책이 세 권이나 된다. 이야기의 전개는 굉장히 느린 느낌(간간히 빠르지만)인데, 그래도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더 긴장감을 주었던 것 같다. 작가는 사건과 등장인물을 물고 늘어지고 씹고 뜯고 맛보고 파고들어서 끝장을 본다. 느린 전개 속에서도 등장인물들(중학생)의 심리 묘사는 단연 돋보였다.(특히 죽은 소년)

'아니 중학생이 이렇게 어른스럽단 말이야!'

라고 놀라면서 자연스레 나의 중학 시절을 떠올렸다. 가족과 학교, 친구들, 선생님, 성적, 인기 등 그 시절에 나도 했을 법한 고민과 생각들. 물론 작가가 표현하듯이 어른스럽게 생각한 건 아닐 테지만 나름 진지했던 기억이 난다. 예민하고 생각이 많았다. 그리고 뒤따르는 생각은 '어쩌면 난 아직 중학생 수준에서 못 벗어난 걸지도 모른다'는 것.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과 함께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학교라는 '체제', 부모와 자식, 교사, 언론, 교육, 법, 자살 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나도 가끔 생각하는 것이지만, 소설 속에서 보니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이런 점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지금 우리 사회와 많이 닮은 일본(소설의 배경) 사회를 보며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돌이켜 보기도 했다.

 

1권 후반부에서 2권으로 넘어갈 무렵부터 범인(?)을 예상할 수 있었다는 게(상당히 자주 나오는 암시) 조금 흠이었지만, 구체적인 전개는 조금 의외였다. 마지막에 가서 작가가 힘이 빠져버린 느낌. 죽은 아이의 노트를 더 살리길 바랬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고, 핵심 줄거리와 잔가지(?)들이 연결된 부분들도 흥미로워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심리 묘사와 유머러스한 표현이 좋았다.

 

 권 당 600쪽 이상 3권이나 되는 분량이니 결코 가볍지 않다. 마태우스님 말을 기억하자.

"그러니 뭔가 꼭 할 일이 있는 사람은 이 책을 펼치지 마시라."

 

 

#리뷰는 왜 1,2,3권 한꺼번에 안 써지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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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배신 - 왜 하버드생은 바보가 되었나
윌리엄 데레저위츠 지음, 김선희 옮김 / 다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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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144)에 나오는 이야기다. 얼핏 주문처럼 보이는 저 문장은 수능배치표상의 대학 서열이라 한다. 대학 서열로 사람을 차별하는 끔찍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그저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공부의 배신은 한국으로 치면 앞서 말한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쯤에 속하는 미국의 대학을 주로 다룬다. ‘엘리트 교육의 문제점을 키워드로 원인, 영향, 해결책 등을 톺아보는 책이다. 미국(딴 나라) 얘기하는데 왜 내 속이 갑갑하고 부글거리면서 근심이 깊어지는 건지. “‘좋은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무조건 읽어야 한다. ‘후진 대학에 다닌다는 열등감에 젖어 있는 학생들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읽어야 한다.”는 김정운 교수의 추천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두 눈을 가린 양 한 마리가 그려진 표지. 소위 엘리트라 불리는 학생들은 똑똑하지만 앞을 못 보는 온순한 양이라는 걸 암시한다.(원제가 ‘Excellent sheep’이다.)

 

대학생, 대학원생, 교수, 강사, 대학교직원 등 대학에 관련한 사람도 아니면서 난 대학 문제에 열을 올린다. 아마 학부 시절에 대한 아쉬움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내내 방황만 했던 나는 복수전공도 부전공도 하지 않았고 그 흔한 토익점수도 없다. 이렇다 할 자격증도 없고 교내외를 불문, 수상경력 같은 것도 없다. 해외봉사활동은커녕 국내봉사활동 증명서(?)도 없고, 인턴십이나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도 없다. 동아리 활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학과 점수가 좋은 것도 아니다. 그럼 대학 다니는 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실제로 물어본 사람도 꽤 있다.)

 

나는 고민이 많았다. 알고 싶은 것도 많았고 흥미로운 것도 많았다. 연애하면서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고,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술도 많이 마셨고 우정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모색하기도 했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고민했다. 학교에서는 여러 학과의 전공수업을 들었다. 남들은 영어나 시험공부를 할 때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만 읽었다. 결석도 많았다. 취업이나 국가고시 같은 공통의 관심사에 끼어들지 못했던 나는 늘 겉돌았다.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도 없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대학 생활에서 후회하는 것이 딱 하나 있다.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공부란 것은 내게 있어 화두와도 같은 낱말이다. 시험을 위한 공부를 제외하면 공부가 딱히 하기 싫은 적은 없었다. 역사, 미술, 교육, 철학, 국문, 한문, 영어, 심리, 사회, 식품영양, 생물 등의 학과 수업을 수강한 것도 내 관심이 여러 분야에 걸쳐 있었고 그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지는 못했다. 공부가 내 삶과 연결된 것, 삶 자체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찾아보고 토론하고 실천하는 거라면 말이다. 관심도 많고 흥미도 느꼈지만 어떻게 읽고 생각하고 써야 할지를 몰랐고 어떻게 내 삶과 연결해야 할지도 몰랐다.(지금도 모른다) 학교생활을 충실히 했다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 같다.

 

공부의 배신은 대학생으로 또 대학을 나와서까지도 하고 있는 공부에 대한 내 고민을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나의 고민은 나만의 고민인가, 그저 시스템의 문제일 뿐인가? 한국 학생들도 (책에 나오는) 미국 학생들처럼 진정한 배움에 대한 갈망이 있는가? 스펙이나 취업이 아닌 자신과 공동체의 삶과 미래, 인간 자체에 대한 관심 때문에 공부하고 싶고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대체 대학이 어때서? 대학에 다니던 시절을 돌이켜보자.(지금은 많이 다를까?) 20명 이상은 당연하고 50명 이상이 듣는 강의도 흔한 강의에 대해 나는 늘 불만이었다. 토론은커녕 누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한 학기를 보냈다. 타학과 전공 학생들을 제한하는 수업도 더러 있었다. 교수님과 개인적으로 면담할 기회는 졸업할 때까지 몇 번 오지 않았다. 내가 제출한 과제물에 대해 피드백을 받은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무엇이 어떻게 부족한 것인지(또는 잘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교수님들이 늘 하는 질문 있어요?”란 말에, 왜 교수님은 우리한테 하는 질문이 질문 있어요?”밖에 없는 건지 늘 궁금했다.(‘넌 어떻게 생각하니?’도 있을 텐데.) 강의 중에 간혹 사회적 약자나 기득권층에 관한 얘기가 나올 때면 나는 왜 교수들이 자신들의 비정규직동료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더 마음이 아픈 것은, 내가 그 모든 것에 대해 내 생각을 드러낸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도 ('똑똑한'건 아니지만) 한 마리의 '눈 먼 양'인지 모른다.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중요한 질문들은 이런 것이다. 공부(배움)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 ‘엘리트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대학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사회는 아이들을 어떤 사람으로 키워야 하는가, 교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등. 비단 대학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키워내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교육문제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중요한 이유다. 그래서 결국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

 

교육의 목표는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당신을 직장에서는 쓸모 있는 인력으로, 시장에서는 잘 속아 넘어가는 소비자로, 국가에서는 순종적인 국민으로 전락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대학의 존재 이유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중요한 건 바로 온전한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이다.”(121)라는 저자의 말이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한국의 대학도 미국 대학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교육열이 높은 것으로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교육이 어떤 것이고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한 성찰의 시간을 갖기위해 이 책을 일독하길 권한다.

어쩌면 똑똑한 부모 밑에서 자란 똑똑한 아이들과 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똑똑한 선생으로 가득한 곳은 가장 끔찍한 곳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마침내 배움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 머릿속에 어떤 생각도 집어넣지 말아주세요."라는 요청은 너무도 잘 받아들여지고 있다.
누구나 내 아이가 교육을 받길 원한다. 하지만 누구도 내 아이가 `교육다운 교육`을 받길 원하지 않는다. (80쪽)

만약 우리가 우아한 사회, 정당한 사회, 현명하고 번영하는 사회, 아이들이 배움에 대한 애정으로 공부하고 사람들이 일에 대한 애정으로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우리는 다음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 이웃의 아이들을 우리 자신의 아이들처럼 사랑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귀족사회를 열었다. 우리는 실력사회를 열었다. 이제는 민주주의를 열 시간이다. (3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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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us Aurelius 2015-05-23 0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겉에 드러난 것만 보지 말고, 본질을 보라는 말을 많이 듣지만.. 참 힘든 것 같습니다...
왜 공부를 하고 계속 배우고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현실적인 이유(돈,직업, 명예 등등) or 너무 추상적이고 막연한 이유(배움,앎에 대한 즐거움, 지식의 추구를 통한 인격완성과 인생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등등..)를 대는 것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생각하니.. ㅜㅜ

cobomi 2015-05-23 12:58   좋아요 1 | URL
예로 드신 두 가지 이유 모두 가벼운 내용은 아닌 것 같아요. 직업도 중요하고 인격완성(?)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문제는 그 중 어느 하나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할 때 발생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더구나 그게 사회 전체적인 흐름이 되어버린다면 개인으로서는 대세에 거스르거나 비판하기 쉽지 않죠. 이 책 추천드릴게요. 진지한 조언들도 있고, 생각할 거리가 많습니다.

Marcus Aurelius 2015-05-23 1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넵, 그렇죠..
책 꼭 읽어보겠습니다^^

2019-07-09 0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방법서설 -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
르네 데카르트 지음, 이현복 옮김 / 문예출판사 /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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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 철학을 일컬어 '근대 철학의 효시'라 한다. 방법서설을 펼쳐든 건 데카르트가 어떤 말들을 했기에 그런 별명(?)이 붙은 건지 내 나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일단 쫄지 말자. 대철학자, 대문호, 거장, 고전 같은 단어에 주눅이 들어 어쩐지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것만 같은심정을 미리부터 갖지는 말자. 그저 데카르트라는 이름을 가진 1600년대의 베스트셀러 작가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두 주먹을 불끈 쥐고서야 책장을 넘기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과연 내가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까?)

 

양식(bon sens)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는 것이다.”(146)

이럴 수가! 방법서설1부 첫 문장부터 놀랍다. 이 분(데카르트)은 분명히 1637년에 방법서설을 출간했는데 사람이라면 누구나 양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공평해.’라고 말하고 있는 거였다. 뭔가 평등사상의 냄새를 맡은 기분. 내가 확대 해석한 걸 수도 있지만, 첫 문장을 읽고 놀라는 내 자신을 대견해 하며(뭔가 알아낸 듯하여) 읽어나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출발이 좋았다.

 

방법서설은 매우 읽을 만했다. 심지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대체로 이해할 수 있었다!(쉽게 이해가 되는데도 어쩐지 뭔가 심오한 뜻이 있을 것만 같아서 두 번 생각하는 찜찜함) 사실 함께 실려 있는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을 먼저 읽었는데(앞에 실려 있어서), 그것이 신의 한 수였다.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은 내 정신이 마치 데카르트의 지도를 거부하는 것처럼, 이해하는 데 애를 좀 먹었기 때문이다. 불친절한 글 한편을 읽고 나니(말 그대로 읽기만 한 것) 방법서설이 흔히 보는 에세이처럼(실제로 '에세이') 편안하고 재미있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방법서설이란 말부터 풀자. 방법에 관한 서설이다. ‘방법(method)’에 대해 차례대로 차근차근 설명(discourse, 敍說)하겠다는 거다. 무슨 방법? 진리를 찾는, 학문하는 방법이다. 그럼 왜 이런 책을 쓴 걸까? 1637이 될 때까지 인류가 학문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어떤 의미에서는 그렇지만) 아니다. 데카르트의 얘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데카르트: “내가 학교에서 이것저것 배우고 공부하고 여행도 다니고 책도 많이 읽고 사람들도 여럿 만나봤는데, 세상에! 사람마다 이게 맞다, 저게 맞다 그러고, 읽는 책마다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거야. 여행하는 나라마다 풍습도 달랐어. 이건 뭐, 확실하고 명백한 진리라는 게 거의 없더라고. 도대체 뭘 믿고 따라야 할지 알 수가 없었지. 모든 게 의심스러웠어. 사람이라는 게 뭐야? 이성(理性) 빼면 짐승하고 다른 게 있어?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갖고 있는 이성을 제대로 쓸 생각을 안 하는 거 같애. 이성을 갖고 있기만 하면 뭐해? 제대로 사용해서 명명백백한 진리를 찾아야 되는 거 아니겠어? 참된 지식을 가져야지 인생도 지혜롭게 살 수 있고, 얼마나 좋아. 지혜롭게 사는 게, 그게 바로 행복이야. 자, 그러면 참된 지식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느냐~ 내가 바로 그 방법을 찾았다는 거지! 하지만 그 방법을 사람들에게 억지로 가르치려(설교하려)는 건 아니야. 그저 내가 이성을 잘 인도하려고 그 방법대로 살아왔다는 걸 말하고 있을 뿐이니 오해 말도록.”

 

그럼 어떤 방법으로 살아왔다는 건가? 데카르트는 본인이 공부한 것 중에 그나마 수학에 끌렸는데, 수학은 확실하고 명확했기 때문이다다른 학문도 수학처럼 확실성과 명증성의 토대 위에 놓인다면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수학적인 방법을 응용하여 (모든) 학문하는 방법(진리를 발견하는 방법)으로 삼는다. 어떤 방법인가? 명석판명하게 내 정신에 (참인 것으로) 나타나는 것만 받아들인다, 검토할 문제는 가능한 한 작은 부분으로 나눈다, 가장 단순한 것에서 시작해 가장 복잡한 것까지 단계적으로 살핀다.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열거하여 검사한다.

 

그렇다. 싱거우리만치 짧고 간단하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방법을 토대로 철학을 시작한다(세워나간다)는 것이 함정. 나머지 장에서 데카르트는 자신이 고안한 방법에 따라 확실한 것을 찾아내고(‘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문제를 나누어 차근차근 차례대로(형이상학적 토대에서 자연학까지) 고찰해 나간다. '방법'은 어디까지나 진리를 찾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수단을 마련했으니 진리를 찾아야 하는 것. 그 과정이 나머지 장에 실려 있다.

 

나는 읽는 내내 데카르트가 강박증 환자처럼 느껴졌다. 자꾸만 확실하고 의심할 수 없는 것을 찾으려 하는 것. 어떤 물건이든 제자리에 오와 열을 맞춰서 두려고 하는 사람처럼, 깔끔한 전제에서 시작해 순서대로, 규칙에 따라 생각해 나가는 것. 정돈되고 균형 잡힌 느낌을 좋아한다는 것(‘정돈’, ‘비율’, ‘규칙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등등. ‘완벽한, 생각하는 기계가 되려고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인간이 자신의 재능으로 무수히 많은 자동기계, 즉 움직이는 기계를 만들 수 있음을 스스로 탁월한 운동을 하는 기계로 간주할 것이다.”(213)) 생각 속에서만 거대한 세계를 만드는 데카르트, 그 세계엔 인간관계, 도덕, 감정 등이 없다. 계산적이고 효율적인,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기계들의 세계라는 느낌적인 느낌~.

 

그런데 왜 데카르트가 근대 철학의 효시일까? 확실히 데카르트가 주장한 방법은 일반적인 학문의 방법으로 자리 잡게 되었던 것 같다. 그 방법을 통해 애매모호한 건 모두 보류하고, 이성을 제대로 사용해서 삶에 유용한 지식에 이를 수 있는 바, “강단에서 가르치는 사변적인 철학 대신에 실제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을 적절한 곳에 사용하고, 그래서 우리는 자연의 주인이자 소유자가 된다는 것이다.”(220) 데카르트 이후의 세계는 알다시피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자 소유자로 군림하고 있다.

 

그 밖에 철학은 모든 것에 대해 그럴듯하게 말하는 수단과 학식이 적은 사람들로부터 찬탄을 사게 하는 수단을 제공해주며”(152)라든가, “학자가 하는 사색이란 아무런 결과도 생산해내지 못하는 것이며, 또 그것이 상식에서 벗어날수록 더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기지와 기교를 부리기 때문에 단지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이다.”(157~158)라고 말하는 등, 쓸데없는 논쟁이나 일삼는 학자(특히 철학자, 수사학자 등)들을 비판하는 부분은 흥미로웠다.

 

한 번은 읽어 볼만한 책이다. 기대(?)보다 얇고, 지레짐작하는 것보다는 내용이 쉽고 심지어 재미있다. 데카르트가 생각을 밀고 나가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동의도 하고 반박도 하게 된다. 아니, 읽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유용해지는 책이다.(자랑거리가 되므로)

 

 

덧붙이는 말.

내게 있는 번역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현복이 옮긴 문예출판사판(2014, 초판11997)이고 다른 하나는 최명관이 옮긴 도서출판창에서 나온 책(개정판, 2014)이다. 번갈아 읽었는데 둘 다 괜찮지만 문예출판사판이 더 좋은 것 같다.

문예출판사판은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도 함께 있다.(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방법서설방법에 집중해서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심화해 놓은 것이다.) 문예출판사판이 옮긴이의 주해가 꼼꼼해서 읽기 좋았고 번역도 최명관에 비해 성실한 느낌이었다. 불어를 모르니 원전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두 가지 번역본에서 서로 다르게 번역한 부분을 몇 군데 찾을 수 있었다. 하나만 예를 들면, 최명관은 "나 자신을 연구하기로"(76)라고 번역한 것을 이현복은 "나 자신 속에서 연구하기로"(158)라 번역한 것이다. 최명관은 아무 설명도 없지만, 이현복은 주석을 달아서 그렇게 번역한 이유와 의미를 짚어준다.

문예출판사판에는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방법서설>, 주해, 옮긴이의 해설, 데카르트 연보가 실려 있고, 도서출판창판에는 역자가 구성한 <데카르트의 생애><방법서설>, <성찰>, <데카르트 연구>(옮긴이 논문)가 실려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반드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이 진리는 아주 확고하고 확실한 것이고, 회의론자들이 제기하는 가당치 않은 억측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것임을 주목하고서, 이것을 내가 찾고 있던 철학의 제일원리로 거리낌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185쪽)
-너무나도 유명한 구절이라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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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5-21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근대 철학의 효시`일까? -> 코기토(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제시로 그리 되었죠. 근대성의 출현을 자아 출현에서 보니까요.
하지만 현재는 `나는 잘못 생각한다`는 지적들이 대두... `불확실성의 원리`라든지 등등.
저도 늘 미흡한 철학공부 중이라 더 깊게 아시는 분이 또 말씀해 주시길~

cobomi 2015-05-21 00:12   좋아요 1 | URL
아 그러네요~ 저도 자아(주체)출현이 근대의 가장 큰 특징이라 배웠던 것 같아요. 책 읽으면서는 안 떠올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러네요ㅎㅎㅎ
감사합니다^^

yureka01 2015-05-21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코키토 에르고 숨.^^
 
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 - 파워라이터 24인의 글쓰기 + 책쓰기
경향신문 문화부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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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책 읽기, 글쓰기를 주제로 한 책이 유행하는 건가? 아니면 내 눈에 들어오는 책이 그런 종류인가. <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도 그 비슷한 책이다.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책에 나오는 24명의 '파워라이터'들이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걸 가리키는 건지, 이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는 결심을 촉구하기 위한 것인지 모호하다.

 

책은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다섯 명이 '파워라이터'를 선정하고, 그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글 모음이다. '자기 분야와 관련된 책을 계속 쓰면서 일정량의 판매를 올리고 대중 담론에 영향을 미치는 저자를 일컬어 파워라이터라고'(5쪽) 한다. 파워라이터들이 글감을 마련하는 과정과 글을 풀어내는 방식에 초점을 맞춰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한다). 책의 목적은 파워라이터들에 대해 갖고 있는 독자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 그리고 예비 저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저자들의 장서 규모와 삶의 이력, 직접 만나본 기자의 소감 등도 소소하고 간략하게 실려 있다.

 

300쪽 남짓한 분량의 책에 서문과 목차 등을 제외하면 280쪽도 채 안 되는데 무려 24명의 파워라이터를 다루고 있다. 한 명 당 10쪽 내외이고 그마저도 본문에서 따온 문구와 저자의 사진으로 채운 부분이 있으니, 내용이 빈약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다양한 저자들을 소개하려는 의도는 이해가 되지만 책의 목적에 비해 내용은 가볍다.

 

구체적으로는 파워라이터마다 인터뷰한 내용을 글로 정리해 놓은 형식이다. 10쪽도 안 되는 글인데 그걸 짧게 쪼개서 각각 제목까지 달아놓았다. 신문기자들이 만든 책이라서 그런가, 시사주간지를 읽는 듯한 구성이었다. 덕분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지만 다음과 같은 점이 아쉽다. 인터뷰가 중심이라기엔 인터뷰 자체보다 기자의 서술 부분이 많다는 것. 그렇다고 해당 파워라이터에 대한 정보나 인터뷰 내용을 분석·해석한 것이 중심이라기에도 어설프다. 둘 중 어느 쪽이든 한 가지에 집중해서 내용을 풍부하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책 두께에는 과분할 정도의 파워라이터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평소 잘 몰랐던 저자(혹은 작가)를 소개받을 수 있는 점은 좋다. 파워라이터마다 글쓰기, 책 쓰기에 대한 철학(?)과 방법이 다르므로 공통된 지침을 마련하기는 힘들지만 각각을 참고하는 것은 유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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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준 2015-05-17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요즘 글쓰기에 욕심이 생겨...읽을려고 했었는데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