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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는 허구다 - 21세기에 능력주의는 어떻게 오작동되고 있는가
스티븐 J. 맥나미.로버트 K. 밀러 주니어 지음, 김현정 옮김 / 사이 / 2015년 11월
평점 :
2015년 대한민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키워드 중 하나는 단연 ‘금수저, 흙수저’로 대표되는 수저계급론이 아닌가 싶다. 수저계급론은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계급이 결정되며, 한 번 정해진 계급은 어떠한 ‘노오력’으로도 바꾸기가 힘들다는 것을 내포한다. 사람들은 수저계급론을 자조적이고 체념하듯이 내뱉곤 했지만, 한편으로는 책의 제목처럼 “능력주의는 허구”라는 걸 ‘금수저, 흙수저’라는 단어로 드러낸 것은 아닐까.
능력주의에 대한 환상은 강력하다. 사람들은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손쉽게 개인의 능력 탓으로 돌리곤 한다. 대입수학능력시험이나 각종 고시를 비롯한 시험 성적, 학력, 취업, 연봉 등에서부터 심지어 외모나 부정부패까지도 능력으로 취급할 정도다. 그리고 '능력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을 가져가고 누리는 걸 너무도 당연하게 여긴다. 과연 이 모든 것들이 개인의 능력에 좌우되는 것인가? 그리고 '능력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을 가지는 게 당연한가?
책의 두 저자는 능력주의 신화를 요모조모 분석하는데, 핵심은 능력적 요인과 비능력적 요인 중 전자는 과대평가된 반면 후자는 과소평가되거나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능력주의는 허구'라는 것. 구체적으로는 ‘학교와 교육은 불평등을 대물림하는 잔인한 매개체’(2장)이며, ‘무엇을 아는가가 아니라, 누구를 아는가가 중요하다’(3장)는 점, 상속은 ‘능력마저도 이겨버리는 최고의 비능력적 메커니즘’(4장)이고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불가항력적 요인들’(5장)이 있으며, ‘능력을 가졌다고 모두가 똑같이 성공하는 건 아니’(6장)라는 것, 그리고 ‘더 이상 자영업에서 자수성가형 인물은 나올 수 없’(7장)고 차별은 ‘능력주의를 왜곡시키는 첫 단추’(8장)라고 말한다.(놀랍게도 책의 목차만 차근히 읽어도 책 내용을 70% 이상 알 수 있다.)
저자들의 분석과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걸까’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그 결론이 “좀 더 공정한 사회로 만들려면 (…) 반드시 정책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권력자들의 강인한 의지〉가 필요하다.”(39쪽)는 것이라니 온몸에 힘이 빠진다. 너무나도 교과서 같은 대답에 깜짝 놀랄 정도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건가.
생각해볼 것은, 저자들이 “능력주의는 허구다”라고 말하면서도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위해서 능력주의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자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각자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분배가 이뤄지는 것이 과연 공정하고 평등한 방법일까? 저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시대적, 장소적 배경에 따라 선호되는 능력이 다르다는 점에서 능력주의 또한 운이 아닌가. 그리고 ‘능력’이라는 것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물론 저자들은 ‘개인이 어찌 손쓸 수 없는’ 요소들을 최대한 걷어내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공평하게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지만, 그것만이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최선의 방법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