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식의 심리학 - 현대인은 왜 과식과 씨름하는가
키마 카길 지음, 강경이 옮김 / 루아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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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동안(요즘도?) '먹방', '쿡방'이 대세였다. 어디를 가든 음식, 요리법, 맛집 이야기가 쏟아졌다. 나도 먹는 것 참 좋아하지만 모두가 먹는 얘기만 하는 건 이상한 광경이었다. 거리에 나가면 TV에 안 나온 식당이 드물고, 동네 숨은 맛집은 더이상 '숨은' 상태가 아니다.

 

한편에서는 다이어트가, 늘 그랬듯이 모두의 관심사다. 체중을 줄이는 것이든 늘리는 것이든. 대체로 살을 빼려고 하는 쪽이 많은 것 같다. 이것도 유행이 있어서 돌고 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맞는' 체중감량법을 찾기 위해 고심한다. 원푸드 다이어트도 하고 간헐적 단식도 마다하지 않는다. 운동도 열심히 한다.

 

사실 체중을 감량하는 '정답'은 모두가 알고 있다. 적게(덜) 먹는 것이다. 문제는 알면서도 못한다는 거다. 왜? 의지가 약하고 자기 관리를 못해서? 아니다. '더' 먹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저자는 비만이나 폭식장애, 저장장애가 "과소비병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문화 관련 증후군"(101쪽)이라 말한다. 소비가 미덕일 뿐만 아니라, "비싼 상품이 약속하는 것에 심리적으로 더 끌리는 소비주의 문화"(227쪽) 속에서 나타나는 병리적 현상이라고.

 

저자에 따르면 "더 많이 먹는 것과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은 같은 현상이다".(57쪽) 다양한(끝도 없는!) 선택지 속에서 무언가를 선택하고 소유하고 경험한다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일이다. 소비사회에서는 소비의 대상 혹은 소비 자체가 곧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무엇을 먹느냐는 어디에 사느냐, 무엇을 입느냐, 어떤 차를 타느냐 하는 것과 비슷하다.

 

기업들은 소비자를 위해 '건강한', '자연적인', '무(저)지방', '무가당' 식품들을 판매한다고 광고하지만 대부분 속임수다. 결국 더 많은 열량을 섭취하게 되고 살 빼려고 다이어트식품과 프로그램을 소비한다. 살쪄서 생긴 질병 때문에 의료서비스와 약품을 소비한다. 돌고 돈다. 이러한 소비주의 문화가 개인에 미치는 강력한 효과는 82쪽 '소비의 깔때기'에 잘 나타나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거야? 저자는 솔직하게 말한다. 과식은 소비주의 문화를 바꾸지 않는 한 개인적 노력만으로는 고치기 '매우' 어렵다고. 점진적으로 설탕, 소금, 지방을 줄이고 가공이 덜 된 식품을 먹자고. 먹는 것뿐만 아니라 소비주의 문화 자체에 대해 생각하고 문화를 점차 바꿔나가자고. 논지의 흐름상 당연한 결론이다. 문화가 문제니까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거다. 그건 엄청 더디고 힘든 일이니까 여유를 갖고 조금씩 해결하자는 것이다.

 

아... 뭔가 자꾸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다. 내가 적은 것보다 훨씬 풍부하고 생각할 거리도 많은 책인데. 더 공부해서 멋지게 글로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은 너무 피곤하고 졸리다.

 

아쉬운 점 _

1.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교정 담당자의 집중력이 저하된 탓인지 오탈자가 꽤 있었다. 읽기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눈에 띌 정도니 아주 사소한 정도도 아니다.

2. 미주 처리한 부분(참고문헌)이 283~335쪽으로 방대한데, 모두 영어 원서다. 한국어로도 나온 책은 함께 기록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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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으지 않는 연습 - 마음.관계.물건에서 가벼워지는 가르침
나토리 호겐 지음, 이정환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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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신이 강림할 때가 있다. 내 경우엔 책, 필기도구, 먹을 거리(특히 주류(酒類))가 그렇다. 다른 것들에는 돈을 쓰지 않는 편이다. 화장은 안하니까 화장품 살 일이 없고, 집안 인테리어는 '단순하게', '편하게', '청소하기 쉽게'가 모토라서 크게 돈을 쓰지 않는다. 그밖에 옷, 신발, 가방, 소품 등도 마찬가지다.

 

사지 않아도 될 것을 사거나, 형편에 맞지 않는 비싼 물건을 사는 것 등 충동구매를 일컬어 '지름신이 강림한다'고 하지 않나. 지름신이 강림하면 사지 않고 못 배기는 상태가 된다. 자신도 모르게 사들인 후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지름신이 무서운 것은 경제적 부담과 함께 후회와 자책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기쁨은 잠깐이다. 고통이 훨씬 크다.

 

책을 살 때 지름신이 강림하면 애초에 사려고 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책을 '지르게' 된다. 처음엔 필요한 것(나름 엄선한 것) 한두 권을 사려고 인터넷 서점에 접속한다. 그러다 메인 화면을 수놓은 신간, 전집, 디자인이 예쁜 책, 읽을 엄두가 안나서 사지 않았던 두꺼운 책 들을 홀린듯이 클릭한다. 장바구니에 마구 담는다.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도 주워 담는다. 아차차, 사려고 했던 책도 담는다. 결제해야 할 금액이 높아진다. 쿠폰 할인, 적립금, 예치금을 생각하면서 결제수단을 고민한다. 한꺼번에 현금으로 지불하려니 부담스럽다. 신용카드 무이자 할부로 결제하면 매월 얼마나 내야 하는지 어림잡아 본다. 월납으로 따지니까 부담스럽지 않다.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래, 기왕 사는 거 시원하게 지르자. 몇 권 더 추가한들 길바닥에 나앉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뭔가 내 무의식(?)을 건드리는 듯한 제목의 책도 장바구니에 담는다. 빛보다 빠른 결제. 얼마 지나지 않아 헛헛한 기분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할 때, '재밌게 읽으면 되지 뭐' 하면서 마음을 추스른다.

 

<모으지 않는 연습>은 그렇게 구입한 책이다. 제목만 보고 홀가분해진 내 삶을 상상하며 장바구니에 담았다. 책에 내가 모르는 특별한 방법이 있을 것 같다. '그냥 모으지 않으면 되는 건데 그걸 굳이 글로 읽겠다고 또 책을 사다니!' 보통의 상태라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지름신이 강림하면 오직 사야 할 이유만 떠오른다. 무섭다.

 

샀으니까 읽는다. 읽는 내내 석연치 않다. 이걸 왜 샀을까, 왜 샀을까... 순전히 개인 취향이겠지만 나는 이런 '아름다운' 책이 싫다. "이게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라며 시시콜콜 아름답고 착하고 바른 말만 하는 책이 나는 불편하다. "인생이란 결국 이런 거야, 이런 게 중요한 거야", "내가 살아 보니까 이렇게 하는 게 현명해", "모든 건 마음 먹기에 달렸어", "네 마음이 중요한 거야", "긍정적으로 생각해",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어야 해", "사람들은 이러이러한 사람을 좋아해"... 결론은 다 내 탓. 아니면 일종의 정신승리법으로 가득하다. 책에서 말한 대로 살면 자유롭고 행복해질 거라고 말한다. 반대로 말하면 내가 자유롭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이유는 책에서 말한 대로 살지 않아서다. 나 같은 사람을 두고 이런 종류의 책에서는 "남 탓만 하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지적한다. 그래 놓고 "자책만 하는 사람은 남의 평가에 너무 휘둘리는 거다"라고도 한다. 어쩌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이 책도 그런, '그래서 어쩌라고' 종류의 책이다. 구체적인 삶은 없고 껍데기만 남은 듯한, 뜬구름 잡는 듯한 느낌의 책. 내가 보기엔 엄살이 가득한 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은 이유는 내가 너무 오만하고 삐딱한가 싶어서다. 한번 '긍정적으로' 읽어 보고 싶었다. 노력은 실패로 돌아간 것 같다. 실패해서 아쉽지는 않다. 내가 불통인 건지, 책이 이상한 건지. 책 내용 중 하나, '지름신 조심하기'는 옳았구나! 지름신이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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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2017 : 적당한 불편
김용섭 지음 / 부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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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얼마만큼의 불편을 감수할 수 있을까? 정답은 '적당히'다. 저자의 분석(예견, 관찰?)에 따르면, 사람들은 이제 사회적 가치를 고려하여 불편을 기꺼이 감수한다. 편한 것만 찾기보다 불편하더라도 환경, 사회적 약자 등을 생각해서 소비한다. 제목 그대로 '적당한 불편'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제 불편도 소비의 대상이자, 작은 사치의 대상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29쪽).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건 긍정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적당한'이란 단어가 썩 상쾌하지 않다. 감당할 만큼, 즐길 수 있을 만큼 '적당한' 정도. 적당히, 어느 정도, 요령 있게, 되면 좋고 안 되면 그만이고, 정 불편하면 그만두면 되고... 편하게 살 수 있는데 기꺼이 불편을 선택했다,는 뭔가 보여주기 식의 어감이랄까. 뭐 이것도 트렌드라니까. 불편도 소비의 대상이라니까.

 

여기서 편함(편리)과 불편을 가르는 지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잘 살다가 어느 날 등장한 상품(물건, 서비스 등)을 이용한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다, 그러다 그 물건이 없으면 불편하게 여긴다... 이런 경우가 많지 않나. 나는 며칠 전에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문구류를 구입했는데, 3일(영업일 기준)이 지나도 택배가 오지 않았다. 사흘째 밤부터 초조하고 짜증나고 답답했다. 나흘째 택배를 받고서야 깨달은 것은 내가 쿠팡 로켓배송과 알라딘 당일배송에 길들여졌다는 사실이다. 알라딘을 이용하기 전엔 주로 교보문고를 이용했는데 그때는 택배가 늦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언제 올까 기다리긴 했지만 초조하고 짜증날 지경은 아니었다. 이젠 사흘만 지나도 안절부절 못하다니.

 

불편이 소비의 대상이자 '작은 사치'의 대상이 되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불편을 감수할만큼의 뭔가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환경 보호 따위의 사회적 가치, 높은 질, 독특한 디자인, 한정 수량, 남다른 스토리, 어디에도 없는 것, 특별한 경험 등.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도 쉽게 살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이건 곧 취향과도 연결되고, 결과적으로 삶의 방식, 라이프 스타일과 연결된다. 그래서 제목이 "라이프 트렌드".

 

어쨌든 2017년에는 '적당한 불편'이 트렌드라는데, 2016년 말부터 대한민국 국민들은 (심기가) '매우' 불편하니 어이순실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적당히'가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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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갈리아의 딸들 (특별판, 양장)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히스테리아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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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메갈리아'라는 단어를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었는데, 나는 그게 뭔지 최근에야 알았다. 변명을 좀 해보자면(왜 변명하는지는 모르겠다), 바쁘고 지쳐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신경쓰기 힘들었고, 알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게 다 내가 엄마가 되었기 때문이고, '엄마가 아기를 돌보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전업맘'이든 '직장맘'이든 아이에 대한 책임은 엄마게 더 많이 주어져 있다. 왜 그래야만 하는 걸까?

 

출산 후(어쩌면 임신 기간부터) 내가 가장 의아했던 것은 '모성'이었다. 그게 뭔지 도통 모르겠다. 어떤 걸 말하는 건지, 어떤 느낌인지 모르겠다. 모성이 있네 없네 하는 말들은 누구에게서, 왜, 언제부터 거론된 건가? 산후조리원을 이용할 때 함께 있던 산모들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수유 얘기였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모유)수유하러 거의 안 간다고 말했더니 어느 산모 하나가 "제왕절개 했어요?"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니 "그러니까 그렇죠. 자연분만하면 모성이 넘쳐서 자주 가게 되요."라고 얼토당토 않은 소리를 했다. 대체 뭐 그런 논리가 있는 거지? 그러니까, 모성은 자연분만이고 모유수유란 말이야? 그 후로도 난 내가 왜 제왕절개를 '해야만 했는지', '모유수유를 할 수 없었는지'를 설명해야 한 적이 꽤 있다. 그런 걸 왜 설명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사람들은 놀란 듯이 물어보곤 했다. "제왕절개 했단 말이야?", "아니 왜 분유 먹여?"

 

어디 '모성' 얘기 뿐인가. 그 밖에도 숱하게 많다. 책에는 내가 이만큼 살아오는 동안 겪었던 일들, 생각한 것들, 궁금하게 여겼던 것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담겨 있다. 지루할 틈이 없다.

 

'맨움'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놀라고, 흥분할 수도 있다. 역겹거나 짜증나거나 불쾌할 수도 있다. 그 모든 느낌들은 이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 관점을 드러내줄 것이다. 나는 이 책이 훌륭한 페미니즘 입문서라 생각한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얼마나 이상하고 기만적인 일인지 깨닫게 된다. 더 공부하고, 생각하고, 얘기하고, 나누는 일이 필요하다.

 

한국의 '맨'들은 '맨움'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읽(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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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6 0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16 0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띠로리 2016-11-16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쓰신 것 보니까 이 책을 양장으로 재빨리 구매하지 못한 게 안타까울 정도예요ㅜㅜ아쉽지만 구 버전으로라도 사서 읽어봐야겠습니당ㅎㅎ리뷰 잘 봤습니다!

cobomi 2016-11-16 18:40   좋아요 0 | URL
아, 이게 특별판인 건 알고 있었는데 한정판이었나 보네요. 저는 팝업광고에 끌려서 샀거든요. 메갈리아랑 관련 있나 싶어서요;; 무식했던 게 책 사는 데 도움이 좀 되었네요ㅎㅎ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
산드라 크라우트바슐 지음, 류동수 옮김 / 양철북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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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사사키 후미오 지음, 김윤경 옮김, 비즈니스북스, 2015)를 읽고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나는 의욕에 불타올라 갖고 있던 책 800여 권, 책장 두 개, 식기류의 절반 이상, 조리도구 절반 이상, 가전제품 몇 가지, 문구류의 절반 이상, 안 듣는 음반, 안 입는 옷, 오래 되고 낡은 신발, 초등학교 때부터 써서 모아온 일기장 등을 처분했다. 내가 이렇게 부자였다니!

 

가장 덩치가 크고 탈이 많았던 물건은 소파였다. 남편과의 협상이 필요했다. 결혼 준비를 하며 "나는 TV 잘 안 보니까 그건 없어도 된다"던 남편이었으나(그래서 사지 않았는데 선물로 받았다), 내가 TV를 처분하겠다고 선언하자 크게 반발했다. 지난 5년 동안 남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무리 설득하고 협박해도 TV만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 그렇다면 소파라도 처분하겠다고 하니 TV와 소파는 세트 상품이라나. 어이가 없었다. 당시 나는 '심플 라이프'에 상당히 꽂혀 있었고, TV와 소파 둘 다 나의 심플한 삶을 방해하는 짐짝으로 보였다. 여러 날을 협상한 끝에 우리 부부는 소파를 처분하기로 합의했다.

 

일사천리로 소파를 처분한 후 한동안 내 기분은 최고였다. 환해진 거실을 보니 집이 몇 평은 더 넓어 보였다. 거실에 놓여 있던 TV도 골방으로 옮기고, 남편에게 '당신만의 방'이라며 맘껏 TV를 보라고 선심 쓰는 척했다. TV까지 사라진 거실은 휑뎅그렁한 나머지 목소리마저 울릴 지경이었다. 그래, 이게 심플 라이프지!

 

그로부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나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살기로 한 결심 자체를 후회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몇 가지 선택들을 후회했는데, 이를테면 앉아서 쉴 곳이 마땅찮아졌다는 사실(바닥에 주저앉을 때마다 어쩐지 슬프다)... 처분한 책 대여섯 권을 다시 구입했고, 심지어 그 사이 품절된 책도 있었다는 것... 기분에 휩싸여 성급하게 행동한 탓이다.

 

물론 '심플 라이프'를 향한 내 실천은 여전히 진행중이고, 매우 느리게 진행중이다. 그 사이 읽게 된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는 언뜻 '심플 라이프'와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내 생각에 둘은 아주 긴밀한 관계가 있다. 플라스틱 없이 살아보려고 고군분투하는 가족의 이야기에서 '소비를 줄이는 것이 곧 환경보호'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플라스틱 없이 사는 게 가능해?'라고 묻기 전에 방향을 조금 바꾸는 것이다. 플라스틱만이 환경에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과생산, 과소비, 과폐기(?) 아닌가. 필요도 없는 걸 마치 꼭 필요한 것처럼 여겨서 사고, 버리는 것. 물건이 나에게, 나의 삶에 획기적인 변화(이를테면 편리함)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환상. 우리는 어느 시대보다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는데도 여유(시간적, 공간적, 경제적, 심리적...)는 별로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문제는 플라스틱이 아니라 생산과 소비, 생활방식에 있다.

 

또 하나. 저자는 상품 포장이 지나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전적으로 동감한다. 나는 포장 뜯다가 열받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고, 그걸 처리하느라 받은 열로는 물도 끓일 수 있다. 식료품의 경우에 '장기 보존'이 꼭 필요한 것인지도 잘 모르겠고, 깨끗해 보이는 것일수록(손질 과정이 더 많은 상품일수록) 뭔가 덜 신선한 느낌이 들어서 찜찜하다. 꼭 그렇게까지 포장을 해야 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까? 그렇게 해야 더 잘 팔리는 건가? 왜 더 잘 팔리는 거지?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다.

 

'플라스틱 없이 살기'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프로젝트를 다루는데도, 책은 시종일관 유쾌하며 술술 읽힌다. 번역가의 솜씨에 감탄한 대목이 여럿 있었다. 낄낄거리며 읽었지만 머릿속 한켠에서는 '나는 어떤 실천을 하면 좋을까'를 계속 생각했다. 결론은 '심플 라이프'지만, 기왕이면 플라스틱을 더 줄이는 걸로!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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