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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섹스 - 그놈들의 섹스는 잘못됐다
은하선 지음 / 동녘 / 2015년 8월
평점 :
글쎄다. 그저 재미있게 읽었어도 그만인데, 읽는 내내 생각이 아주 많았다. 글쓴이의 생각에 대해 (비)공감하고 (비)동의하는 것과는 별개로, 자꾸만 내 처지와 경험이 떠올랐다. ‘아 맞아, 그랬었지, 그렇지,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런가…’ 등의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나의 성(性)역사(?)와 더불어 나라는 인간 자체에 대해, 여성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늘 안고 있는 고민들이 한꺼번에 떠올라서 숨이 막혔다. 정말 쉽고 재미있는 글인데 간단하게 읽을 수가 없었다.
내 생각에 여성이 약자인 증거는 ‘스스로가 여성이라는 것’에 대해 일상적으로 문제에 부딪히고 고민하는 것에 있는 것 같다. 외모, 음주, 흡연에서부터 운전, 가사, 취업, 직장생활, 옷차림, 결혼, 육아, 시댁, 말투, 섹스, 연애경험, 소비습관에 이르기까지 스스로가 여성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할 주제들은 널렸다. 너무 많아서 탈이다. 반면에 남자들은 자신이 남성이라는 것에 대해 일상적인 고민을 할까?
성은 곧 권력이라고 했나. 책 이곳저곳에서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당연한 듯이 권력을 휘두르는 ‘그놈’들을 보면서 분개하다가 문득 ‘그년’들의 권력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내게 식은땀 폭탄을 가져오는 기억 중 하나는 나의 섹스에 대해서 가까운 친구들이 날 비난했던 일이다. 그녀들은 내 욕구나 상황을 이해하기보다 나를 탓하고 몰아붙이고 ‘자제력 없는 애’로 취급했다. 친구를 잃을까봐 두려웠던 나는 어이없게도 그녀들에게 사과를 했다. 내 사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으나 지금까지도 나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 오히려 그 친구들에게 사과했던 나 자신에게 화가 날 지경이다. 그녀들은 내 섹스 상대의 애인도 아니었고 가족도 아니었다(애인이나 가족이었다고 해도 그게 어쨌단 말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들은 나를 이해할 필요도 없는 거였다. 왜냐하면 내가 그녀들의 이해를 바라고 섹스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녀들의 이해를 구걸했고 친구라는 집단에서 내쳐지지 않기를 바랐다. 기껏해야 10년도 못 갈 친구사이였건만 그때는 뭐가 그렇게 두려웠는지.
그런 일이 있은 후 내가 깨달은 바는, 여성이 남성보다 여성의 연애나 섹스에 대해 더 억압적인 시선을 가질 수 있다는 거였다. 여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논리는 주로 ‘도덕․윤리’의 탈을 쓰고 있는 것 같다. 그 도덕․윤리가 누구를 위한 것이고 누구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여성들이 남성의 시선을 내면화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대다수의 여성이 그렇겠지만, 그러한 ‘남성적 시선’에서 나조차도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자기 힘으로 생각하지 않고 마구 휘둘러대는 ‘남성적 시선’ 혹은 ‘올바름’이 무서울 뿐이다.
‘그년’들이 휘두르는 권력 못지않게 깊이 생각했던 건 미성년에 대한 성인의 권력이다. 개인적으로는 미성년자들이 ‘미숙하다’고 여기고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에 반대하는데, 성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보호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 기본적으로 아주 어린 사람의 경우엔 힘도 약할 것이고, 자기 의사를 솔직히 밝히기 힘든 상황도 많으니까. 하지만 어리다고 해서 성감수성과 성감대, 성욕, 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미성년자에게도 성적인 권리를 인정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감당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건가? 이건 생각보다 굉장히 복잡한 주제일 수 있다. 왜냐하면 미성년자에겐 주어진 권리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투표권, 일할 수 있는 권리, 결혼할 수 있는 권리, 학교에 다니거나 다니지 않을 권리, 숙박업소에 드나들 권리, 야동 사이트를 이용할 권리, 성용품점을 이용할 권리 등이 없거나 늦게 주어지거나 제약이 따른다. 그러니 자신의 성생활로 인해 발생할 일들에 대해 온전히 책임지기가 힘들고 언제나 어른들이 개입하도록 손 놓고 있어야 한다.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들을 결정할 다른 권리들은 하나도 없는데 오직 성적인 결정권만 부여하자고? 저자의 말처럼 갓 스물이 된 사람과 열아홉인 사람은 무슨 차이가 있기에? 스무 살은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데 열아홉 살은 안 되는 근거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성문제에 있어 연령 기준을 대체 몇 세로 해야 한단 말인가? 아니, 사람을 연령으로 나누어서 다루는 것 자체가 크게 타당성이 없는 건 아닌가?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법적인 문제다. 그저 법적인 제한일뿐인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법이 청소년에게 여러 사회적 권리들을 제한하더라도 문화적 혹은 개인적으로는 자유를 줄 수 있지 않을까? 법이 청소년의 숙박업소 출입을 금지하더라도 부모는 아이의 성생활을 위해 방 한 칸을 내어줄 수 있다. 피임법을 가르쳐줄 수 있고, 여러 섹스토이를 즐기도록 해줄 수도 있다. 아이들과 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성생활을 지켜줄수록 성폭력 등의 청소년성범죄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물론 이것이 목적은 아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성적 취향이나 정체성을 찾는 데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어디까지가 성폭력이고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금지하고 억압하는 것보다는 드러내놓고 얘기하는 게 그들의 인권을 위해서도 적절해 보인다.
문제는 나의 이런 생각조차 ‘성인’의 입장에서 생각한 것일 뿐이라는 점이다. 과연 청소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어떤 의견을 갖고 있을지 궁금하다. 나도 그 시기를 거쳐 오긴 했지만 청소년이라고 다 같은 과정을 겪고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을 테니, 그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 성을 주제로 그놈이나 그년 그리고 모두,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자유롭게 생각을 나누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어쩌면 ‘그놈’들의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을 낮추고, 얼토당토않은 말과 욕설을 내뱉는 식의 권력 휘두르기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내 예상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 자체(그런 열린 분위기를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게 진짜 문제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