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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 바이 미
스티븐 킹 지음 / 영언문화사 / 1993년 7월
평점 :
절판


제목 : 스탠 바이 미Different Seasons, 1982
저자 : 스티븐 킹
역자 : 임영선
출판 : 영언문화사
작성 : 2007.09.12.




“나도 시체를 본 적이 있다!!”
-즉흥 감상-




  스티븐 킹 님의 작품 정보를 리스트로 작한 한 뒤, 하나 둘씩 격파해보고자 마음먹었던 저는 국내에 ‘사계’라고도 번역되어진 ‘Different Seasons’이라는 4편이 하나 된 소설 묶음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국내의 출판물에서는 그 네 이야기가 전부 수록된 것 보다 불완전한 합본으로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만을 그동안 확인해 볼 수 있었는데요. 그래도 이렇게 결국 네 편이 전부 수록되어진 책에서 ‘스탠 바이 미The Body / 무서운 동심’를 발견하게 되었기에 조금 소개의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작품은 중요한 일일수록 말하기 힘들지만 어린 시절 처음으로 사람의 시체를 보았다는 것을 말하게 되는 한 남자의 고백으로 시작의 장을 열게 됩니다. 
  그렇게 어린 시절 친구들과의 어울림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친구들 중 하나가 하게 되는 ‘시체를 보러가자!’는 제안에 야영을 핑계 삼아 여행길에 오르게 되는 것으로 계속되게 되는데요. 난생 처음으로 시체를 보러 간다는 생각에, 그리고 그 보상으로 영웅이 되어보고자 잔뜩 흥분해버린 소년들은 나름대로의 험난한 여정을 경험하게 되고, 마침내 시체를 발견하게 되지만…….




  솔직히, 이해가 될 듯 하면서도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작품의 중간에도 언급이 되어있듯 이번 이야기가 시간상 소설 ‘쿠조CUJO, 1981’다음이라는 것은 그렇다 치고, 여행길에 오른 소년들이 경험하게 되는 인생의 진리와 성장 등에 대한 것은 오히려 이보다 앞선 작품인 소설 ‘완전한 게임The Long Walk, 1979’에서 더욱 잘 표현되었다 생각이 들었으며, 거기에 친구들과의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던 어떤 끔찍한 과거의 이야기라면 먼저 소개한적 있던 소설 ‘그것 IT, 1986’이 떠올라 버리는 등 작품 자체로서의 신선함은 느껴지질 않았습니다. 물론, ‘그것’이 이번 작품보다 뒤에 나온 것이니 이번 작품이 사실상 모태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보게는 되었지만, 흐음. 역시 작품은 순서대로 읽어야 재미있는 것은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시체라. 제 감기록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서 ‘시체’를 만나(?)보신 분 혹시 있으신가요? 물론 친척 어르신이 돌아가시고 염을 할 때 고인을 한번 볼 수 있으니 그건 그렇다 치고, 개인적으로는 군 생활 도중에 겨울에 실종된 치매 할머니를 봄이 되어서야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눈으로 인해 냉동되셨는지 부패는 없었지만 산짐승들로 인해 어느 정도의 피해상황이 있었는데요. 아무튼, 다른 신체부위는 별다른 감정 없이 볼 수 있었는데, 눈. 특히 그 눈만큼은 마주할 수 없었다는 것은 지금도 잊혀 지지가 않습니다. 왜 그랬던 것일까요? 감겨있는 눈이라면 몰라도 분명 뜨고 있었던 그 분의 눈만큼, 아아. 그것은 아마 고인 되신 분께서 제 영혼까지 같이 데려가 버리실지 모른다는 미신적 공포심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렵니다.




  아무튼, 이번 작품 또한 ‘스탠 바이 미Stand By Me, 1986’라는 제목으로 영상화되었음을 알려드리며 이번 감기록은 짧은 기분이 없지 않지만 여기서 마쳐볼까 하는데요. 네? 영화는 어디서 구하냐구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Different Seasons’중 ‘라마즈 호흡Breathing Method’을 뺀 세 이야기가 전부 영상화 되어 국내에 정상 유통되고 있음을 덤으로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Ps. 이것으로 공식 500회 감기록을 마쳐볼 수 있었습니다. 400회를 쓸 때가 어제 아래 같은데 벌써 한 바퀴를 돌아버린 듯한 이 기분을 뭐라 말할 수 있을까요? 그저 “무한감상의 영광을 위하여!!”를 외쳐볼 뿐입니다!! 
 

TEXT No.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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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생크 탈출
스티븐 킹 지음 / 영언문화사 / 1995년 4월
평점 :
절판




제목 : 쇼생크 탈출Different Seasons, 1982
저자 : 스티븐 킹Stephen King
역자 : 임영선
출판 : 영언문화사
작성 : 2007.09.11.




“영화는 감히 감동이었다! 하지만 원작은 더더욱 감동이었다!!”
-즉흥 감상-




  처음 영화로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 1994’을 만났을 때. 저는 아직 스티븐 킹이라는 존재의 이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스티븐 킹 님에게는 공포의 제왕이니 하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고, 영화로 만난 이 작품은 전혀 무섭다거나 하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는데요. 그럼 ‘그린 마일The Green Mile’과 함께 ‘공포’라는 것에 대한 선입견을 과감히 교정해주었다 감히 말하는 이번 작품을 조금 소개해볼까 합니다.




  작품은 ‘쇼생크 교도소’에서의 자신의 존재성에 대해 말하는 한 남자의 독백과 같은 소게로 시작의 장을 열게 되는데요. 사실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자신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이 악명 높은 ‘쇼생크 교도소’에서 전설이 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자함을 알리게 됩니다. 
  그렇게 어딘가 곱상하게 보이는 듯 하면서도 부인과 부인의 정부를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들어오게 된 한 남자의 관찰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교도소와 같은 조직사회에서는 절대 살아남지 못할 것 같은 나약한 사람이 자신의 존재성을 상실하지 않고, 오히려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위치에 가기까지의 이야기로 감동을 그려나가게 되는데요. 그러던 많은 세월이 흘러간 어느 날.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날 수 있는 단서에도 그것을 묵살해버리는 교도소장의 모습에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은 교도소에서 그는 사라져버리게 되는데…….




  네? 위의 줄거리에서 전체 내용을 다 말해버리면 어떻게 하냐구요? 아하! 그렇게 말씀하시는 당신은 이미 영화를 보신 분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뭐 원작이나 소설에서의 전반적인 내용은 위에 것이 다 이지만, 분명 탈출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빼버렸고, 어떻게 교도소내의 가장 나약하면서도 강한 존재가 되었느냐에 대한 이야기도 빼버리긴 했어도, 누명을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던 한 남자가 쥐도 새도 모르게 탈옥을 해버린 것이 시간상 전부이니 위의 즉흥 감상에서도 남겼든 영화로도 다 말하지 못한 감동을 원하신다면 원작을 감히 추천해볼까 합니다.




  저는 더 이상 작가님의 작품이 잠을 자면서 악몽이나 꾸게 하는 무서운 이야기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초기의 작품이나 단편집 등 몇몇 작품에서는 무서운 이야기도 간혹 있긴 하지만, 이번의 이야기 같은 경우처럼 그저 일상에서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싶은 이야기에 터부시되는 주제를 배경으로 그동안 외면하고 있었던 어떤 생각들을 깨우는 기분이 들기에, 우리 내면에 잠자고 있던 원초적인 공포의 감각을 살살 간질이는 듯 해 매 작품마다 아슬아슬한 스릴을 만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요. 간지러움 또한 최소한의 ‘고통’에 대한 반응이며, 중독은 그런 ‘고통으로 인한 쾌락’을 말한다고 하면, 저는 작가님의 필력에 그런 식으로 중독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이런! 책에 대한 소개를 한다는 것이 헛소리만 잔뜩 적어버린 기분인데요. 이번 작품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았던 ‘통제’가 무너짐에 공든 탑이 무너질 가능성에 대한 공포와 교도소야말로 사회보다 더 편안한 곳이 될 수 있다는 ‘적응’에 대한 무서움을 느껴볼 수 있었지만, 대부분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희망’으로의 탈출구는 반드시 밝은 빛으로서 인내에 대한 보상을 줄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이번 작품에서 확인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번 책은 ‘쇼생크 탈출’ 외에도 다른 한편의 작품이 더 수록되어있었는데요. 앞선 2005년 08월 20일자로 소개한적 있던 소설 ‘미드나이트 시즌Different Seasons, 1982’에서 ‘파멸의 시나리오Apt Pupil- 여름/타락’이 중복되었다보니 ‘봄/영원한 희망’편에 대해서만 이렇게 간추려본 것이라는 것을 살짝 알려드리며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쳐볼까 합니다. 


TEXT No. 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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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고향
김지환 감독, 양금석 외 출연 / 에이치비엔터테인먼트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제목 : 전설의 고향, 2006
감독 : 김지환
출연 : 박신혜, 양금석 등
등급 : 12세 관람가
작성 : 2007.09.09.




“흐음. 뭐. 적당하네.”
-즉흥 감상-




  언젠가 길을 걷고 있던 저는 버스옆면을 장식하고 있는 하나의 광고를 보게 되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만 해도 한국 공포영화가 계속 진화중이라는 기분에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하고 흥분해버리고 말았는데요. 최근, 타 지방으로 가게 된 친구의 송별식 비슷한 자리를 통해 그 문제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럼 TV방영판을 다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한 이번 작품을 조금 소개해볼까 하는군요.




  작품은 무엇인가 정신없어 보이는 상황의 어떤 장소에서 목이 졸리며 발버둥 치는 한 여인의 모습으로 시작의 문을 알게 되는데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듯 보이던 여인이 갑자기 두 눈을 부릅뜨며 “그러면 애원해봐.”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누군가를 죽여본적이 있다는 여인의 말과 함께 이어지는 이야기는, 어두운 밤의 어느 정자에서 담소를 나누는 젊은 선비들의 모습이 보이게 되는데요. 그중 한 사람이 자리를 뜨고는 다음날 주검으로 발견되게 됩니다. 
  한편 그 사건과 함께 10년 만에 깊은 잠에서 깨어난 한 소녀가 있게 되고, 그 소녀는 마을에서 발생하게 되는 연쇄 의문사에 대한 예지와 이상한 현상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건이 점점 악화되어감에 소녀의 쌍둥이 누이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드러나게 되지만…….




  아아. 회면은 정말 멋졌습니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도 정말 멋졌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전개에 생각지 않은 많은 혼란을 경험하고 말았는데요. 쌍둥이에 대한 설정은 그렇다 치더라도 반전의 반전을 시도하려는 노력이 너무 티가 난다는 기분에 술을 깨고 다시 봐도 영~ 재미가 덜했습니다. 그나저나 10년의 기나긴 잠이라. 무슨 코마 환자도 아니고 지나치게 오랜 시간 잠을 자고서도, 심지어 영화 ‘데드 존The Dead Zone’에서의 주인공보다 오래 주무셨는데 근육 퇴화 같은 건 없었나 모르겠군요(웃음)




  흐음. 그래도 이번 작품에 대해 나름대로의 분석을 해보자면, 정말 오랜만에 ‘처녀귀신’이 등장한다 이야기를 들어온 영화를 만난 것 치고는 ‘경험(?)’도 없이 저 세상으로 갔다는 것에 대한 ‘한恨’의 해소를 위해 ‘고을 원님 심장마비로 쓰러뜨리기’ 취미를 일삼는 귀신 이야기가 아니라, 단지 ‘복수’의 경향을 가진 원귀가 등장 했다는 점에서 뭔가 김빠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또 그 과정에서 등장한다는 귀신이라는 것이 ‘사다코’ 타입이라는 점에서 감점을 던져주고 말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입술 하나 가득 검붉은 색을 칠한 체 피눈물을 흘리는 처녀귀신을 바라고 있었는데 또 삐그덕 삐그덕 각기 웨이브(?)을 보여주는 모습이란, 아아. 차라리 몽달귀신이나 구미호와 같은 국내의 다른 귀신 이야기를 이정도의 촬영기술로 만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래도 뭐. 한복 입은 처자 분들은 전부 참으로 고와보이더군요.




  귀신과 한의 전설. 빌딩이 숲을 이루는 현대의 생활환경에서는 ‘도시전설’이라 말해지는 ‘괴담’에 대해 과거의 ‘귀담’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던 것일까요? 개인적으로 도시전설은 사회 구성원의 정신적 유대감의 단절화 현상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불신이라는 정신적 질병으로 인한 것이라 생각하며, 괴담은 엄격한 체계중심 사회에서 만들어지는 사회격차 해소의 소망이 구전되어졌거나 무속신앙을 통한 공포심이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은 해보았습니다만, 뭐. 이와 같은 믿거나 말거나의 이야기는 역시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최소한의 양심에 따른 생활 속의 발견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계속 진화중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한국의 공포영화에 소리 없는 박수를 보내며 이번 감기록은 여기서 마쳐볼까 합니다. 
 

TEXT No. 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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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장-자크 피슈테르 지음, 최경란 옮김 / 책세상 / 1994년 8월
평점 :
품절


제목 : 표절TIRE A PART, 1993
저자 : 장 자크 피슈테르
역자 : 최경란
출판 : 책세상
작성 : 2007.09.01.




“나는 감히 이 작품을
‘친절한 에드워드 경Sympathy For Gentleman Vengeance’
이라 말하노라!!”
-즉흥 검색-




  ‘시나 글, 노래 따위를 지을 때에 남의 작품의 일부를 몰래 따다 씀’이라는 의미를 가진 명사 ‘표절’. 그렇다보니 위의 즉흥 감상처럼 ‘친절한 금자씨Sympathy For Lady Vengeance’를 표절하게끔 장난기를 발동시킨 아주 멋진 작품이 하나있어 이렇게 소개해볼까 합니다.




  작품은 어느 호텔의 방 안에서 고뇌에 잠긴 한 노신사의 모습으로 시작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예상한대로 오랜 친구가 승리자가 될 것이고 또한 그 반대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임을 다짐하게 되는군요. 
  그렇게 그토록 기다리던 콩쿠르 수상작이 발표되게 되고, 그것이 예상대로의 길로서 열리게 되자 주인공은 아주 어린 시절, 이 모든 음모가 시작 되었던 한 사건의 시작부터 조금씩 보여주게 됩니다. 그리고 조용히 짜맞춰가던 그림조각을 거대한 그림으로서 나열하기시작 함에 사건은 그 심각성의 절정을 달리게 되는데…….




  와 재미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정말 근사한 추리소설을 하나 만난 기분 이었다 랄까요? 그러면서도 이때까지 읽어보지 못한-탐정이 사건을 추리해나가는 것이 나닌, 범인이 자신의 계획을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듯한 구성은 정말이지 연속되는 반전을 지닌 영화를 보는 듯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번 작품보다 ‘표절’에 대해 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작품이 있었으니, 영화 ‘시크릿 윈도우Secret Window, 2004’가 있었음을 살짝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원작은 소설이라지만 구한지 얼마 되지 않아 대신 영화를 먼저 만나보았었는데요. 그렇다보니 영화가 다 말하지 못한 이야기에 대해 수다를 떨기도 그렇고, 또한 이 감기록 자체가 그 작품이 아닌 이번에 읽은 작품에 대한 것이기에 다음시간을 노려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작품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우선 이야기의 표면적인 주체가 표절을 당한 저자가 아닌 인생을 도둑맞았다 말하고 있는 저자의 친구이자, 영국출판계로의 동업자이자, 조언자인 한 남자였는데요. 일단 ‘복수’라는 개념을 벗어던져버린다면 쌍방이 형태만 다른 표절행위를 했다 말할 수 있기에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그리고 원 저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존재성이 무참히 박살날 수 있는 최악의 범죄라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더 이야기해볼 수 있는 사안이 바로 ‘저작권’에 관련된 문제인데요. 이렇게 ‘표절’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바로 ‘저작권법’이라지만 전시상황과 무명의 작가라는 공백을 이용한 아슬아슬한 완전범죄의 이야기는 그 어떤 것도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그럼 여기서 ‘저작권법’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사전적 의미만 옮겨보자면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라고 나오며 최근에 어떤 영상물에는 ‘양심을 지켜주는 등불’이라고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기본권이라 할 수 있는 ‘정보 접근권’과 ‘알권리’에서는 개인적으로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생각하기에 그동안 생각한 것을 몇 가지 적어볼까 하는데요. 
  ‘청소년 보호법’과 함께 만화가들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 말하고자 그 모습이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 ‘블랙리본’의 의사를 존중하기에 가능하면 책을 사보는 저에게 있어, 그리고 주위에 출판 경험을 가지신 분들이 있다는 사실에 ‘저작권’의 의미는 저에게 이미 오래전부터 심각하게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또한 지금에 들어서는 이 세상에 완전한 ‘창작’은 없다는 이론을 받아들이고 지난날 기껏 아주 멋진 생각이랍시고 소설을 끄적이다가 이미 비슷한 작품이 있다는 지적에서 ‘표절’아니냐는 말에 받았던 상처를 겨우 치유중이며, 나름대로의 사비를 들여 출판 경험이 있었던 저에게 저작-글을 쓴다는 것은, 그리고 마침표를 만난다는 것은 남자이기에 비슷하게나마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를 ‘출산’의 진통을 경험하게 해줬었다는 점에서 아이를 유괴당하는 부모의 심정까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놈의 ‘저작권’으로 조금 전 위에서 말했던 ‘정보 접근권’과 ‘알권리’를 침해받은 적이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인데요. 잘 팔리지 않는다는 이유와 다른 여러 이유로 인해 외국의 일부 소설이나 영화 들이 국내에 정식으로 들어오지 못했거나 장대한 시리즈물에 대해 유통이 중도하차 될 경우 계속해서 이어지는 ‘정보’에 대해 단절을 경험해보신 이용자불들께 어떤 최소한의 대안이라도 준비되어져있는 것을 발견해보신 적 있는지 물어보고 싶어졌습니다. 
  물론 이것 또한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것이 지켜져야만 저의 말이 적용되는 문제이긴 하지만, 순수히 ‘알고 싶다’의 문제라면 소수의 팬들에게도 그러한 ‘접근가능성’의 봉사가 이뤄져야한다는 것이 제 의견인데요. 무조건 단속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다양한 작품으로의 접근 방식을 마련해줘야 한다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국립중앙도서관에는 한국에서 출판된 저작물일 경우 의무적으로 납본을 받게 되어있다지만 그건 아직 ‘책’에 대한 영역일 뿐, 멀티미디어 세상에는 좀 더 다양한 저작물을 만날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생각이 드는군요. 
  거기에, 개념을 상실한 영파라치 분들께도 피해를 입은 적 있던 한 사람으로서, 한국에 정상 유통되어 잘 팔리는 영화들에 대해서만 보호에 신경 좀 팍팍 쓰실 것이지, 국내에서는 이름은커녕 모습도 구경도 하기 힘든 작품들을 아무런 소득도 없이 겨우 구해 알려주시는 분들에 대해서까지 자신의 거짓된 명성과 보상금에 눈이 멀어 같이 싸잡아 운명을 달리하게 하는 그 모습에서는, 외국의 다양한 저작물들이 지난날 처음 국내에 ‘해적판’이라는 모습으로 소개된 것이 많았다는 점에서 무엇이 과연 옳고 그른 것인지 생각해보실 것을 권해드리는 바입니다.




  후우. 표절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저작권으로 넘어가면서 그만 흥분해버린 것 같습니다. 그래도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저적자와 이용자의 균형을 위할 줄 알아야한다는 것이었는데요. 위에서도 짧게 언급한 ‘이 세상에 완전한 창작은 없다’는 점에서, 생각이라는 것은 돌고 도는 것이고 완전히 같은 생각은 존재하기 힘들어도 비슷한 생각을 할 수는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익명성의 세상에도 ‘양심’이 제 모습을 찾아 전 인류의 지적 발전에 훌륭한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자신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친구에게 철저하게 복수를 하고 난 뒤 최소한의 양심으로 만들어진 양날의 검으로 자신의 영혼에까지 상처를 입히게 되자 그것을 치유해나가는 과정으로 역사 속에서 잊혀진 작가를 발굴하는 모습을 보며, 소설 ‘뒤마 클럽El Club Dumas, 1993’을 떠올릴 수 있었는데요. 그 작품에서도 저작자가 사망하였거나 시대의 흐름 안에서 사라져버린 명작들을 출판사의 이름으로 재 발간하고 보급하는 목적을 지닌 조직인 '뒤마 클럽'이 나오기에 지나간 것이기에 무시하기보다는 그런 아까운 많은 작품들을 통해, 그리고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으로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무작정 표절하기보다는 창작의 밑거름이 되기 위해서 저작물의 권리는 보호되어지고 관리가 되어야한다 생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생각만 잔뜩 해오던 어떤 사안에 대해 이렇게 관련된 책자를 읽어보고 생각을 ‘기록’이라는 형태로 정리를 해나가면서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은 오버한다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렇게 ‘저작권법’도 쭉 한번 읽어보고 관련된 작품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도 했는데요. 사람은 자신이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그것을 사실로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점에서 ‘저작’과 관련된 분들이 ‘표절’을 통해 어떤 고통을 받으셨는지에 대해서 이 기록을 통해서 다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하지만 이번 책의 저자 분 또한 이 작품을 실제의 어떤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기록해 두셨으니, 잃어버린 과거를 재발굴 한다는 취지까지는 좋지만 ‘불법복제’로 인한 자기무덤파기 같은 행위는 아직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임을 말씀드리며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쳐보는 바입니다.


 TEXT No. 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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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06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런데 품절이네요. 왠지 읽고 싶다는.. 도서관에 있겠죠? 좋은 리뷰 읽고 갑니다.

무한오타 2007-09-06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도서관에서 발견했으니 있지않을까 생각합니다^^ 저의 감기록에 관심의 흔적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b
 
성경 왜곡의 역사 - 누가, 왜 성경을 왜곡했는가
바트 D. 에르만 지음, 민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제목 : 성경 왜곡의 역사-누가, 왜 성경을 왜곡 했는가Misquoting Jesus: The Story Behind Who Changed the Bible and Why, 2005
저자 : 바트 어만
역자 : 민경식
출판 : 청림출판
작성 : 2007.08.31.




“성서는 매우 인간적인 책이다.”
-본문 중에서-




  이 기록은 화창한 주말의 날씨에 한적한 공원 등의 벤치에 앉아 독서를 즐기던 저에게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야말로 진리랍시고 형광펜까지 죽죽 그어진 부분을 펼쳐들고 열심히 설교를 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바쳐볼까 합니다.


  책은 우선 이번 책에 대한 추천의 글로서 시작의 장을 열게 됩니다. 
  그렇게 신학교에서 신약학을 공부하면서 이번 책에 대한 집필의 주제를 품게 되었다던 저자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으로 이어지는 기록은[서론-잃어버린 원문을 찾아서], 로마제국과 유대교의 신화적 전통의 차이점을 기점으로 기독교의 모태가 된 ‘정경’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 소게됩니다[1장. 성서의 기원]. 그리고 ‘책의 종교’라 말하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기록문서가 처음 어떻게 제작되었는지에 대해 필사자들의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데요. 그 과정에서의 의도적이거나 의도하지 않은 변조에 대해 말하기 시작합니다[2장. 초기 기독교의 필사자들]. 계속해서 ‘신약성서’를 기준으로 각각의 언어로 번역되는 필사서에서 발견되는 서로 다른 내용에[3장. 신약성서의 전승과정], 복제에 복제를 거듭해 그 진실성이 불확실해진 성서의 원문을 추적해나가는 사람들과 그 나름대로의 방법 등의 소게가 나오게 되는데요[4. 원문을 찾아 나선 사람들], 그 방법에 대한 실증적인 예시가 좀 더 상세하게 전개되기 시작합니다[5장. 원독법 탐구의 중요성]. 거기에 감히 의도적이라 할 수 있을 변조에 대한 이야기[6장, 7장. 본문을 왜곡시킨 교리적, 사회적 요인들]와 함께 저자는 그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결론. 성서의 변개는 현재진행형이다]




  아아. 결론부터 적어보자면 재미가 반이고 지루함이 반이었습니다. 
  재미있었던 부분은 학과 관련으로 공부를 하며 만난 여러 책들과 최근 접하게 된 영화 ‘장미의 이름The Name Of The Rose, 1986’, 소설 ‘내 이름은 빨강MY NAME IS RED, 1998’까지 접하며 각각의 ‘진리의 서’들이 초기에 어떻게 제작되고 유포되었는지에 대해 많은 공부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다는 것이고, 지루했던 부분은 이 책에서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한 설명으로 성서의 내용을 논리적으로 비교 분석하며 설명한 부분이었는데요. 그래도 이번 책을 읽으면서는 ‘필사’라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었을 어린 시절에 우연히 접한 적 있던 다큐멘터리의 내용이 떠올라버려 그만 흥분해버렸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다큐멘터리라는 것이 너무 오래된 기억 속에 존재하던 것이었기에 증거랍시고 열심히 찾아보긴 했었지만 그 출처를 명확히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저 아쉬울 뿐이었는데요. 대신 그 내용으로 성경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정경’과 ‘외경’으로 나뉘게 된 사연을 말하고 있었다고 적어봅니다. 아무튼, 이번 책을 통해서는 그동안 ‘기록’이라는 것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변질되어가는 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읽고 듣고 생각해왔던 저에게 있어서 위에서도 잠깐 언급한 ‘길거리의 복음 전파자’들의 억지 같던 논리에 대해 조금이라도 논리적인 답을 해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안도감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논리’라는 것 자체가 진실 된 기록을 왜곡한다고까지 열변하시던 그분들의 모습이 뒤이어 떠오르니, 흐음. 글쎄요. 이 세상의 흐름은 그런 다양함으로서 존재한다고도 하니 그냥 그러려니 넘겨볼까 합니다.




  기록. 그리고 그것을 복제해나가던 과정인 ‘필사’. 요즘에야 컴퓨터가 많이 보급되어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누구나 최소 한번쯤은 필사라는 행위를 경험해보셨을 것이라 감히 생각해보는데요. 아직 젊은 나이인 저일지라도 최근처럼 고성능의 컴퓨터가 보급되었던 시절이 아닌 디스켓으로 컴퓨터를 부팅 하고 하드디스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컴퓨터의 학창시절을 지냈었기에 숙제나 벌칙 등으로 인해 손으로 하얀 지면 한 장 이상에 빡빡하게 글씨를 적는, 일명 ‘빡지’라는 것을 해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라는 것이 인쇄된 원문의 내용을 똑같이 손으로 베껴 쓰는-복사를 하는 것이었기에 그것을 ‘필사’의 경험이 있다 말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가장 최근 기억으로도 자필로 작성한 리포트를 제출하라하시기에 출력한 리포트를 다시 손으로 열심히 베껴 쓴 기억이 있습니다. 또한 지우개나 수정액이 때마침 보이지 않아 그 수많은 글씨 사이에 ‘오타’를 그냥 남겨 버리거나 문장과 문장 사이에 비슷한 음절이 있었기에 자기도 모르게 중간의 한 뭉텅이를 날려버린다거나, 다른 사람의 리포트에 대해 그것이 마치 자신의 생각인양 교묘하게 재구성해본 추억들이 이번에 읽은 책에 묘사되는 필사자들의 모습과 비슷하게 느껴졌다는 것은 비단 저만의 착각이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제가 인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종교의 성서인 ‘성경’에도 이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누군들 상상이나 해보셨을까나요?




  그래서 이번에는 살아가는 이 세상에 대해 과연 우리가 얼마만큼의 영역을 ‘인지’ 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일반적인 감각이라는 오감-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을 중심으로 우리는 시시각각 과거가 되어버리는 현재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인지영역을 벗어나라버리게 되면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70화(2003년 8월 17일자로 방영)’에 나오는 도나 히그비 박사의 ‘무의식에 의한 불가시 현상’에다가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인 ‘다른 사람의 문제’까지 같이 말할 수 있을 상황이 되고 만다는 점에서, 그리고 가까운 예로 ‘내가 할줄 알면 다른 사람은 당연 할줄 알아야 한다’는 심리를 예로 들 수 있기에, 아마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고대의 문헌 기록자들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에 대해 묻고 있는 저자의 모습에 나름대로 이해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는데요. 현재보다 확연히 높은 문맹률을 자랑하던 고대에 농업과 수산업 등에 종사하던 분들이자 예수의 제자가 되는 이들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이 진실 된 ‘기원’인지, 거기에 한점 의심 없는 순수한 믿음으로서 모든 것을 자신 있게 장담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종교적인 문제를 거론하고자 한 것이 아니니 다시금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인데요. 이 책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이야기를 기록했다는 이 기록물들이 무형의 ‘말씀’들을 ‘활자’로서 기록했다는 점에서 그 형태가 변경되었으며, 그것이 전파되고자하는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또 그 과정에서 이 이런저런 다양한 이유로 인해 의도적이었든 비의도적이었든 ‘변질’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종교’를 빼버린다면, 우리가 접하고 있는 거의 모든 저작물들에서도 위와 같은 이야기를 말 할 수 있음을 발견하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가까운 예로. 황순원 등의 한국현대소설의 여러 출판물들을 펼쳐보면 <일러두기>부분을 통해 ‘표기는 원문의 효과를 고려하여 발표당시의 표기를 중시했으나, 방언은 살리되 의미전달을 위해 되도록 현대 표기법을 따랐다. 띄어쓰기는 개정된 한글 맞춤법에 따랐다’ 등으로 안내가 되어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는데요. 한때 한국현대소설을 전자문서로 보관해본답시고 워드작업을 해본 적이 있던 저로서는 각 출판사별로 미묘한 차이를 가진 것도 있으며 한번씩은 문장이나 문단 단위로 잘려 나가있는 것도 만나보곤 했습니다. 그리고 컴퓨터를 통해 직접 손으로 종이에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뿐이지 타자기마냥 키보드를 두들기며 전자지면에 글씨를 일일이 적는 행위는 필사가 형태만 바뀌었을 뿐이라 할 수 있기에 오늘날의 책 또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계속되는 ‘변화’를 경험중이라는 것에 쉽게 부정을 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거기에 외국 번역본 중 각 언어영역에 따른 방언과 같은 미묘한 언어 사용법의 차이로 인해 번역시에 그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위한 변형이 가해지기도 하며, 같은 책일지라도 번역가에 따라 작품이 변해버리고 만다는 사실은 현재 수집중인 ‘스티븐 킹’이라는 소설가의 작품에서 다채로운 번역본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었습니다.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그리고 이념에 따라 같은 이름으로 미묘한 변화를 거듭해나가는 책-기록물. 이번 책의 저자분은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위에 적어둔 말을 했다지만, 저는 그것을 “책은 매우 인간적인 기록이다.”라고 고쳐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 또한 기록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동반해-어쩌면 기원을 찾아가는 방향을 제시했을 수도 있지만-원문이라는 진실이 사실상 사라졌다고도 할 수 있을 현재에서 또 하나의 ‘이론’으로서 또 다른 미래로의 길을 열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책-기록’에 대해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을 마지막으로 이번 기록을 마치고자합니다.

 

 

“역사는 힘 있는 자의 기록이다. 하지만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TEXT No. 493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with 얼음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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