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왜곡의 역사 - 누가, 왜 성경을 왜곡했는가
바트 D. 에르만 지음, 민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제목 : 성경 왜곡의 역사-누가, 왜 성경을 왜곡 했는가Misquoting Jesus: The Story Behind Who Changed the Bible and Why, 2005
저자 : 바트 어만
역자 : 민경식
출판 : 청림출판
작성 : 2007.08.31.




“성서는 매우 인간적인 책이다.”
-본문 중에서-




  이 기록은 화창한 주말의 날씨에 한적한 공원 등의 벤치에 앉아 독서를 즐기던 저에게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야말로 진리랍시고 형광펜까지 죽죽 그어진 부분을 펼쳐들고 열심히 설교를 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바쳐볼까 합니다.


  책은 우선 이번 책에 대한 추천의 글로서 시작의 장을 열게 됩니다. 
  그렇게 신학교에서 신약학을 공부하면서 이번 책에 대한 집필의 주제를 품게 되었다던 저자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으로 이어지는 기록은[서론-잃어버린 원문을 찾아서], 로마제국과 유대교의 신화적 전통의 차이점을 기점으로 기독교의 모태가 된 ‘정경’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 소게됩니다[1장. 성서의 기원]. 그리고 ‘책의 종교’라 말하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기록문서가 처음 어떻게 제작되었는지에 대해 필사자들의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데요. 그 과정에서의 의도적이거나 의도하지 않은 변조에 대해 말하기 시작합니다[2장. 초기 기독교의 필사자들]. 계속해서 ‘신약성서’를 기준으로 각각의 언어로 번역되는 필사서에서 발견되는 서로 다른 내용에[3장. 신약성서의 전승과정], 복제에 복제를 거듭해 그 진실성이 불확실해진 성서의 원문을 추적해나가는 사람들과 그 나름대로의 방법 등의 소게가 나오게 되는데요[4. 원문을 찾아 나선 사람들], 그 방법에 대한 실증적인 예시가 좀 더 상세하게 전개되기 시작합니다[5장. 원독법 탐구의 중요성]. 거기에 감히 의도적이라 할 수 있을 변조에 대한 이야기[6장, 7장. 본문을 왜곡시킨 교리적, 사회적 요인들]와 함께 저자는 그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결론. 성서의 변개는 현재진행형이다]




  아아. 결론부터 적어보자면 재미가 반이고 지루함이 반이었습니다. 
  재미있었던 부분은 학과 관련으로 공부를 하며 만난 여러 책들과 최근 접하게 된 영화 ‘장미의 이름The Name Of The Rose, 1986’, 소설 ‘내 이름은 빨강MY NAME IS RED, 1998’까지 접하며 각각의 ‘진리의 서’들이 초기에 어떻게 제작되고 유포되었는지에 대해 많은 공부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다는 것이고, 지루했던 부분은 이 책에서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한 설명으로 성서의 내용을 논리적으로 비교 분석하며 설명한 부분이었는데요. 그래도 이번 책을 읽으면서는 ‘필사’라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었을 어린 시절에 우연히 접한 적 있던 다큐멘터리의 내용이 떠올라버려 그만 흥분해버렸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다큐멘터리라는 것이 너무 오래된 기억 속에 존재하던 것이었기에 증거랍시고 열심히 찾아보긴 했었지만 그 출처를 명확히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저 아쉬울 뿐이었는데요. 대신 그 내용으로 성경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정경’과 ‘외경’으로 나뉘게 된 사연을 말하고 있었다고 적어봅니다. 아무튼, 이번 책을 통해서는 그동안 ‘기록’이라는 것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변질되어가는 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읽고 듣고 생각해왔던 저에게 있어서 위에서도 잠깐 언급한 ‘길거리의 복음 전파자’들의 억지 같던 논리에 대해 조금이라도 논리적인 답을 해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안도감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논리’라는 것 자체가 진실 된 기록을 왜곡한다고까지 열변하시던 그분들의 모습이 뒤이어 떠오르니, 흐음. 글쎄요. 이 세상의 흐름은 그런 다양함으로서 존재한다고도 하니 그냥 그러려니 넘겨볼까 합니다.




  기록. 그리고 그것을 복제해나가던 과정인 ‘필사’. 요즘에야 컴퓨터가 많이 보급되어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누구나 최소 한번쯤은 필사라는 행위를 경험해보셨을 것이라 감히 생각해보는데요. 아직 젊은 나이인 저일지라도 최근처럼 고성능의 컴퓨터가 보급되었던 시절이 아닌 디스켓으로 컴퓨터를 부팅 하고 하드디스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컴퓨터의 학창시절을 지냈었기에 숙제나 벌칙 등으로 인해 손으로 하얀 지면 한 장 이상에 빡빡하게 글씨를 적는, 일명 ‘빡지’라는 것을 해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라는 것이 인쇄된 원문의 내용을 똑같이 손으로 베껴 쓰는-복사를 하는 것이었기에 그것을 ‘필사’의 경험이 있다 말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가장 최근 기억으로도 자필로 작성한 리포트를 제출하라하시기에 출력한 리포트를 다시 손으로 열심히 베껴 쓴 기억이 있습니다. 또한 지우개나 수정액이 때마침 보이지 않아 그 수많은 글씨 사이에 ‘오타’를 그냥 남겨 버리거나 문장과 문장 사이에 비슷한 음절이 있었기에 자기도 모르게 중간의 한 뭉텅이를 날려버린다거나, 다른 사람의 리포트에 대해 그것이 마치 자신의 생각인양 교묘하게 재구성해본 추억들이 이번에 읽은 책에 묘사되는 필사자들의 모습과 비슷하게 느껴졌다는 것은 비단 저만의 착각이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제가 인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종교의 성서인 ‘성경’에도 이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누군들 상상이나 해보셨을까나요?




  그래서 이번에는 살아가는 이 세상에 대해 과연 우리가 얼마만큼의 영역을 ‘인지’ 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일반적인 감각이라는 오감-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을 중심으로 우리는 시시각각 과거가 되어버리는 현재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인지영역을 벗어나라버리게 되면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70화(2003년 8월 17일자로 방영)’에 나오는 도나 히그비 박사의 ‘무의식에 의한 불가시 현상’에다가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인 ‘다른 사람의 문제’까지 같이 말할 수 있을 상황이 되고 만다는 점에서, 그리고 가까운 예로 ‘내가 할줄 알면 다른 사람은 당연 할줄 알아야 한다’는 심리를 예로 들 수 있기에, 아마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고대의 문헌 기록자들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에 대해 묻고 있는 저자의 모습에 나름대로 이해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는데요. 현재보다 확연히 높은 문맹률을 자랑하던 고대에 농업과 수산업 등에 종사하던 분들이자 예수의 제자가 되는 이들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이 진실 된 ‘기원’인지, 거기에 한점 의심 없는 순수한 믿음으로서 모든 것을 자신 있게 장담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종교적인 문제를 거론하고자 한 것이 아니니 다시금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인데요. 이 책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이야기를 기록했다는 이 기록물들이 무형의 ‘말씀’들을 ‘활자’로서 기록했다는 점에서 그 형태가 변경되었으며, 그것이 전파되고자하는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또 그 과정에서 이 이런저런 다양한 이유로 인해 의도적이었든 비의도적이었든 ‘변질’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종교’를 빼버린다면, 우리가 접하고 있는 거의 모든 저작물들에서도 위와 같은 이야기를 말 할 수 있음을 발견하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가까운 예로. 황순원 등의 한국현대소설의 여러 출판물들을 펼쳐보면 <일러두기>부분을 통해 ‘표기는 원문의 효과를 고려하여 발표당시의 표기를 중시했으나, 방언은 살리되 의미전달을 위해 되도록 현대 표기법을 따랐다. 띄어쓰기는 개정된 한글 맞춤법에 따랐다’ 등으로 안내가 되어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는데요. 한때 한국현대소설을 전자문서로 보관해본답시고 워드작업을 해본 적이 있던 저로서는 각 출판사별로 미묘한 차이를 가진 것도 있으며 한번씩은 문장이나 문단 단위로 잘려 나가있는 것도 만나보곤 했습니다. 그리고 컴퓨터를 통해 직접 손으로 종이에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뿐이지 타자기마냥 키보드를 두들기며 전자지면에 글씨를 일일이 적는 행위는 필사가 형태만 바뀌었을 뿐이라 할 수 있기에 오늘날의 책 또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계속되는 ‘변화’를 경험중이라는 것에 쉽게 부정을 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거기에 외국 번역본 중 각 언어영역에 따른 방언과 같은 미묘한 언어 사용법의 차이로 인해 번역시에 그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위한 변형이 가해지기도 하며, 같은 책일지라도 번역가에 따라 작품이 변해버리고 만다는 사실은 현재 수집중인 ‘스티븐 킹’이라는 소설가의 작품에서 다채로운 번역본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었습니다.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그리고 이념에 따라 같은 이름으로 미묘한 변화를 거듭해나가는 책-기록물. 이번 책의 저자분은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위에 적어둔 말을 했다지만, 저는 그것을 “책은 매우 인간적인 기록이다.”라고 고쳐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 또한 기록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동반해-어쩌면 기원을 찾아가는 방향을 제시했을 수도 있지만-원문이라는 진실이 사실상 사라졌다고도 할 수 있을 현재에서 또 하나의 ‘이론’으로서 또 다른 미래로의 길을 열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책-기록’에 대해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을 마지막으로 이번 기록을 마치고자합니다.

 

 

“역사는 힘 있는 자의 기록이다. 하지만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TEXT No. 493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with 얼음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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