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던트 이블 2 [dts] - [할인행사]
알렉산더 위트 감독, 밀라 요요비치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제목 : 레지던트 이블 2 Resident Evil: Apocalypse, 2004
감독 : 알렉산더 윗
출연 : 밀라 요보비치, 시에나 길로리, 오데드 페르, 토마스 크레취만, 소피 바바서, 샌드린 홀트, 아도티 라자크, 자레드 해리스, 마이크 엡스 등
등급 : 18세 관람가
작성 : 2007.10.17.




“진화하는 자여! 그대의 이름은 사람이자 여인이노라!!”
-즉흥 감상-




  오오. 처음의 일정이 펑크가 나버렸지만 여차저차 차선책이 만들어져 오는 금요일의 조조로 영화 ‘레지던트 이블 3 인류의 멸망Resident Evil: Extinction’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럼 그때의 원활한 감상을 위해서라도 이번 작품에 대해 복습 겸 소개의 시간을 가져볼까 하는군요.




  작품은 모든 상황이 일단락되었을 것이라 생각 되는 순간 엄브렐라 사의 과학자들에게 잡혀버린 두 사람 중. 우선 주인공인 여자가 어떤 실험실에서 눈을 뜨고 폐허가 된 거리에 들어선 그다음으로 이어져, 앞선 이야기에서 다 말하지 못한 자신의 소게와 엄브렐라 사의 어두운 모습을 말하는 것으로 시작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렇게 사고로 폐쇄된 ‘하이브’의 봉인을 풀고 있는 흰 방역복의 사람들의 모습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화창한 어느 날의 도시에 사상최악의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으로 발전하게 되는데요.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바이러스로 인해 도시는 점점 좀비의 세상이 되어가고, 그 와중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좀비가 된 이들과 처절한 사투를 벌이지만 격리조치가 된 도시는 핵으로 청소되기 위한 초읽기 상태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극도의 혼란 속에서 눈을 뜬 한 여인이 총을 쥐게 되지만…….




  해본적도 없는 게임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말을 할 수도 없는바. 영화로만 만난 이번 작품은 생각보다는 볼만 했다 말하고 싶습니다. 우선 멀쩡한 사람도 조금의 상처를 통해 좀비로 만들 수 있는 가공할만한 위력의 ‘T바이러스’가 처음 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어떻게 보면 잔인할 정도로 냉정하다 생각된 한 아버지의 사랑하며, 슈퍼컴퓨터 ‘레드퀸’의 실제인물이라 판단이 서는 한 소녀를 지키고 격리처리 된 도시에서 벗어나고자 싸우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된 것을 실감하며 전투에 임하는 주인공의 모습 등에서 게임을 먼저 해본 친구말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렸다고는 해도 개인적으로는 영화제체로서 하나의 적당한 진화형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요. 그러면서도 있을까 말까하는 약간의 휴머니즘마저도 억지로 다 짜낸 듯한 이번 작품의 후속작은 또 어떤 모습으로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 그저 궁금해져버렸습니다.




  사실 즉흥 감상으로 “시작은 선善이었으나 마침표로의 여정은 악惡이로구나!!”를 적을까 싶었습니다. 작게는 모든 일의 원흉이 된 ‘T바이러스’가 만들어지게 된 계기가 언젠가 아빠와 같이 아프게 될 딸을 위한 획기적인 치료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군사적인 목적으로 이용됨으로 인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리기 시작함에 생각해보게 된 것이었는데요. 물론 작품상에서는 과장이 없지 않았을 지라도, 앞서 읽은 소설 ‘당신들의 천국, 1976’에서의 현상을 떠올릴 수 있었던바 ‘시작과 끝의 동질성은 유지라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가?’라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나저나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한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방금도 친구와 장난삼아 ‘사악한 보조원’이라 말했었는데요. 그것도 그럴 것이 의학용어 중 전문의의 자격을 얻기 위하여 인턴 과정을 마친 뒤에 밟는 수련의의 한 과정으로 ‘레지던트resident’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사전을 열어보고는 ‘내제된 악’으로 번역하면 작품 자체의 이미지와 어느 정도 매치가 된다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요. 그렇다면 역시 이성을 지워버린 인간은 사악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나요?




  아무튼, 다가오는 금요일을 기다리며 이번 감기록은 여기서 마쳐볼까 합니다. 


TEXT No.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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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트 이블 - [할인행사]
폴 앤더슨 감독, 미셸 로드리게즈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제목 :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 2002
감독 : 폴 앤더슨
출연 : 밀라 요보비치, 미쉘 로드리게즈, 에릭 마비우스 등
등급 : 18세 관람가
작성 : 2007.10.17.




“아니 땐 굴뚝에는 연기가 나지 않는다.”
-즉흥 감상-




  이 감기록을 작성중인 현재에는 그만 주말로의 약속이 펑크가 나버렸지만, 사실 영화 ‘레지던트 이블 3 인류의 멸망Resident Evil: Extinction’을 보기위한 복습차원으로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럼 분명 예전에 본 것이 틀림없으면서도 감기록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번 작품을 조금 소개해볼까 합니다.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컴퓨터와 의약 보건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기관이며, 그 내부로는 유전자 실험과 생화학 무기 생산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는 엄브렐라 제약회사에 대한 소개와 어떤 실험실에서 발생하게 되는 사고를 통해 공간이 폐쇄되는 것에 이어, 그만 집단으로 운명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시작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렇게 장면은 문득 잠에서 깨어나는 한 여인의 모습으로 이어지게 되는데요.  알몸으로 욕조에서 일어나는 그녀는 기억을 잃은 체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집안을 돌아다니게 되던 중 검은 복장의 무장병력의 거친 방문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는 외부와 연락이 두절된 엄브렐라 사의 지하사무실로 인질 마냥 같이 들어서게 되는데요. 단순 사고로 생각하고 그곳에 방문하게 된 그들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아아. 게임을 원작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이름이 ‘바이오하자드Bio-Hazard’라고 하기에 일단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의학용어로 ‘실험실이나 병원에서 세균·바이러스 따위의 미생물이 외부로 누출됨으로써 야기되는 재해나 장애. 특히, 유전자 조작으로 해로운 유전자를 가지게 된 미생물에 의한 생태계의 파괴를 이른다.’라고 나옴을 확인해 볼 수 있었습니다. 으흠. 그래도 정작 저 자신이 비디오 게임을 거의 안하다보니 원작 게임과 이번 작품에 대한 비교분석은 무리가 되어버리는군요.

  아무튼, 영화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해보자면, ‘T바이러스’라는 것이 공기 중에 노출됨에 ‘레드퀸’이라는 엄브렐라 사의 슈퍼컴퓨터가 생물학적 위험 요소를 차단하고자 자체 방어수단으로서 오염인자를 박멸해버리는 어마어마한 일을 저질러 버리게 되는데요. 인간은 왜 그렇게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리고 싶어 하는 것인지 그만 영원한 잠에서 죽은 이들을 깨워버리게 되고, 탈출불가능의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쇼를 하게 되던 중 주인공의 잃어버린 기억이 돌아오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주게 된다는 식의 이야기의 흐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으흠. 여자주인공 분. 기억을 잃었다는 것은 그렇다 치고 비무장이면서도 다른 중무장한 특공대원 보다 월등한 전투력을 보이시면 조금 비현실적이지 않습니까! 그러면서도 무슨 ‘무적’ 치트키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면서 좀비멍멍이에게 거침없는 킥을 날리시는 그 모습은 감히 아트art하였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게임의 시작 화면과 똑같다’라는 불완전한 기억이 있어 직접 게임을 즐겼던 친구에게 물어보니 첫 번째 이야기만 그나마 영화랑 비슷하지 사실 주인공이고 뭐고 게임과 매치시킨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등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중이라 역시 ‘기억’이라는 것은 믿을게 못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미 영화 ‘레지던트 이블 2 Resident Evil: Apocalypse, 2004’까지 다 보고난 상태여서인지 그저 입, 아니 손이 근질근질 한 것이 이번 감기록은 여기서 마쳐볼까 하는군요. 
 

TEXT No. 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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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용 (반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 : 파피용 Le Papillon Des Etoiles, 2006
저자 : 베르나르 베르베르
그림 : 뫼비우스
역자 : 전미연
출판 : 열린책들
작성 : 2007.01.16.




“응? 그렇다면 나비의 꿈은 고대로부터의 기억이란 말인가?!”
-즉흥 감상-




  저자님의 희곡 ‘인간Nos Amis les Humains, 2003’ 이후. 소설 ‘천사들의 제국L'empire des Anges, 2000’의 후속작이 되지 않을까 잔뜩 기대하게했던 ‘신(가제)’를 기다리던 어느 날. 상당한 공백 기간을 두고 먼저 영화 ‘우리의 지구인 친구들 Nos Amis Les Terriens, 2006’ 소식을 접한 뒤 이번의 책이 번역 출판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독서모임의 10월 선정도서가 되었기에 이렇게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그러면서도 또 한번의 신선한 충격을 주신 작가님의 이번 책을 조금 소개해볼까 합니다.




  작품은 태초에 바람이 있었노라 말하는 매력적인 여인이자 요트경기의 챔피언과 태초에 꿈이 있었노라 말하는 그저 사무실 죽돌이로 밖에 보이지 않는 주머니 하나 가득 잡동사니로 무장된 흰 가운의 남자의 모습으로 시작의 장을 열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통사고라는 처절한 운명으로 만나게 된 둘은 여차저차 저 먼 우주로의 새로운 삶의 개척지로 떠나고자하는 원대한 계획에 자신들의 인생을 걸기 시작하게 되고, 그것과 함께 전지구의 관심이 집중되는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는 결국 지구에 대한 배신행위라는 공격의 대상이 되어버립니다. 
  결국 극적인 탈출과 함께 우주로 나아간 14만 4천명의 사람들은 1000년 동안으로 예정된 머나먼 여행길에 오르게 되지만…….




  사실 즉흥 감상으로 매트릭스에서 스미스 요원의 명대사중 하나를 고쳐 “우리는 역시 ‘바이러스’였단 말인가!!”를 적을까 했다가, “공룡은 인간이 멸종시켰단 말인가!!”, “모든 것은 그저 돌고 돌 따름이었단 말인가!!” 등이 계속해서 떠오르기에 최종적으로는 위에서 적은 것으로 결정하게 되었었습니다. 그만큼 이 작품은 짧은 이야기들이 연속적으로 계속 이어지는 것이 연작 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거기에 소설 ‘나무L'Arbre des Possibles, 2003’을 통해 만나본적 있던 뫼비우스의 개성 넘치는 그림과 함께 각 파트마다의 제목들이 연금술사의 실험실 같은 신비한 느낌까지 들자 그만 밤을 새워 다 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저 말장난 같은 사건들의 전개를 가진 것처럼 보이기에 또 한번의 판매 전략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이때까지 국내에 번역 출판 되는 작가님의 책을 전부 읽어본 바로는 모처럼 읽기 쉽고도 황당하면서도 나름대로 말이 되는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인상을 받아버렸는데요.  아무튼, 조심스럽게 추천장을 내밀어보는 작품이 되겠습니다.




  파피용. 저도 이 책을 만나는 과정에서 처음 생각한 것이지만 이 책을 들고 다니면서 받았던 질문이 있었으니, 바로 영화 ‘빠삐용Papillon, 1973’과의 연관성 이었는데요. 이번 책에서 ‘Papillon’이란 나비, 혹은 나방 뜻하는 단어로 설명이 되고 있는바 그 상징성을 들어 ‘-탈출을 동반한-자유’를 말하고자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만들어진 우주선의 최종 모습 또한 이 작품 자체를 말하기도 했기에 위의 즉흥 감상을 작성하게끔 되었는데요. 그러면서도 성경의 창세기를 색다른 각도에서 재조명하게 되는 마침표의 모습하며 이때까지 읽었던 다른 작품들과의 미묘한 연관성을 통해 작가님의 제치를 실감해 볼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책은 즐거운 상상력의 책이었습니다. 쉬는 기분으로 다른 분들이 작성하신 리뷰를 몇 개 훑어보니 말도 안 되는 작품이라는 등의 비판이 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었는데요. 그거야 마술 쇼를 보며 즐기기보다 분석 내지 해부해보고자 하는 민족적 정서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해보며 이번 감기록은 여기서 마쳐볼까 합니다. 


TEXT No. 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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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Tuesdays with Morrie, 1997
저자 : 미치 앨봄
역자 : 공경희
출판 : 세종서적
작성 : 2007.10.15.




“인생의 스승을 찾아서.”
-즉흥 감상-




  꼭 읽어야만 한다며 추천 받게 되는 책들은 이상하게도 손이 잘 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들 중에 간혹 읽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짐에 만나게 되는 책들이 있게 되는데요. 이번에 조금 소개의 시간을 가져볼 책이 바로 그중 하나가 되겠습니다. 
  그럼 스승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스승이 되어보고자 결심을 새우게 한 이번 책을 열어봅니다.




  책은 이번의 기록이 실제 있었던 것을 재구성 한 것이고 영상물로도 제작된바 있으며, 이 책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여러모로 도움을 받았던 것에 대한 감사의 말로서 시작의 장을 열게 됩니다. 
  그렇게 졸업식 대신 선생님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된 저자가 회상하게 되는 과거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선생님을 처음 어떻게 만나게 되었고 다시 만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으며, 또 세월의 공백을 두고 다시 만난 선생님과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가에 대해 말해지기 시작합니다.




  아아. 이번의 기록들은 제가 평소에 즐기는-각각의 어떤 작은 이야기들이 그저 복잡한 구조를 가지게 되면서 얽히고설키며 거대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에세이 형식으로 매주 화요일마다 있었던 은사님과의 인생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가며 기록되어 있었다보니 조금은 두루뭉술해도 전체적인 내용을 위와 같이 요약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짧게 짧게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보니 들고 다니며 읽기에도 적당하다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러면서도 수록된 내용들이 위의 즉흥 감상을 이끌어낼 정도로 멋진 스승을 한분 만나 뵌 것 같은 행복함을 말하고 싶어졌습니다.




  스승이라.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최근 들어 ‘스승의 날’이 아니고서는 거의 못 들어본 것 같아, 처음 들어보시는 분들에게는 ‘선생님’과 비슷한 의미로서 설명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선생님보다 더 높은 존재로 인식되는 이 명칭에 대해서 아직 제 인생에 적절한 분이 없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제 인생에 있어 감히 선배님이나 선생님이라 부르는 사람이 몇 계시기는 하지만 스승님이라, 그저 막막한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나오는 모리 선생님도 국내의 환경 속에서는 어떤 사람으로 비쳐질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일단 저자의 심정이 되어 접근해본바. 언젠가 모리 선생님과 같은 멋진 스승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랄까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 1989’에 등장하는 키팅 선생님의 명대사로 꼽히며, 주어진 여건에 만족하며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현재를 즐기며 살라는 뜻의 라틴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떠올리게 한 분이라면 설명이 잘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때까지는 일단 그렇다 치고, 고등학교를 가기위해 중학교 생활을 했었으며, 대학교에 가기 위한 고등학교 생활에 이어, 이제는 취업을 향한 대학 생활을 해줄 것을 부탁받고 있는 제 삶을 되돌아본다면, 물론 이 책의 저자 분 또한 이것과 비슷하게 졸업 후 그저 바쁜 나날의 삶 속에 체이며 그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나머지 어느 날 북극성을 잃어버린 뱃사공이 되어서야 노 은사님을 찾아뵙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살아가는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의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싶었습니다. 
  한쪽에서는 꿈을 쫓아라 응원을 받으면서도 또 다른 쪽으로부터는 그저 안정적인 삶을 준비하라면서 그 두 가지가 서로 다른 것 인양 교육을 받아왔다 판단중인 저로서는 이 책에서 말하는 것들이 그저 희망사항일 뿐 감동만을 받을 만큼의 그저 ‘꿈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는데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그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제가 나아가야할 방향으로의 가르침을 주실 스승을 만나 뵙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책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것이 다소 개인적인 이야기로 넘어간 기분이 들어 새로 사온 사과를 우적거리며 휴식의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덮어둔 이번의 책을 다시 넘겨보니 ‘죽음’이라는 단어가 시야에 포착 되었는데요. 
  죽음이라. 이번 책에 등장한 모리 선생님은 척수신경이나 간뇌의 운동세포가 서서히 지속적으로 파괴되면서 이 세포의 지배를 받는 근육이 위축돼 힘을 못 쓰게 되는 질병인 ‘루게릭 병’으로 본의 아닌 사형선고를 받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이 질병은 유명한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으로 인해 처음 알게 된 질병인데요. 그렇게 죽음으로의 인생 여정 속에서도 항시 웃음을 잃지 않으며, 오히려 건강했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을 해보고자 노력하시는 모습은 당장의 삶이 괴롭다고 심심하면 고통 없이 저세상으로 가는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해 생각하곤 하는 저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병에 걸리시기도 전부터 ‘죽음’이라는 것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시며 웃음을 동반한 긍정적인 생활을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을 가르치셨고, 정작 자신이 때 이른 죽음으로의 길을 걷게 되면서부터는 많은 이들로부터 선생님으로 불리셨던 분. 그리고 죽음으로의 마침표를 통해 나아가야할 지표를 찾는 방법을 남겨주신 모리선생님과 같은 분이 또 없으실까 주위를 둘러보지만, 으흠. 이미 고인이 되신 분들의 기록들만 하나 가득 보이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 책 또한 시작 부분에서 묻고 있는 것이지만, 저의 이번 기록을 혹시 읽어보시는 분들에게 자신만의 ‘스승’을 옆에 두고 계신지 물어보고 싶어졌습니다. 물론 이 경우에 ‘부모님’을 거론하실 분도 있을 것이지만, 이 질문은 일단 가족을 벗어난 범주로서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군요. 
  일단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면, 저는 대학 진학을 미대로 생각하고 살았었습니다. 그래서 화실도 다니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었다지만, 그 당시 학교 미술선생님의 반응은 ‘꿈도 꾸지 말라!!’였습니다. 어떤 일말의 가능성으로의 제시도 없이 무조건 안 된다 식의 반응하며, 외부로부터 상을 받아와도 학교에서부터 무시를 받았던 학창시절 이었다보니 아름다운 추억의 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등의 말을 하시는 분들 옆에서 간혹 신경질 적인 반응을 보이곤 했다는 점에서 죄송한 마음이 드는군요. 그래도 지나간 시간을 아름답게 꿈꾸며 그리워하기보다는 그럴 시간에 앞으로 열어 나아가야할 인생을 위해 노력해보고자 하는 생각은 철회하지 않겠습니다. 
  그 밖에도 국어 선생님만 두 번이나 담임이었던 그 당시, 졸업할 때가 되어서야 교지에 실린 글 등에 칭찬을 들어봤었던 저로서는 학창시절에 과연 무엇을 했었는지에 대해 아직까지도 ‘배신감’의 이름표가 붙은 높은 벽을 새우고 있던 저를 발견해볼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나! 덕분에 ‘형식의 틀을 부수자!!’을 외치며 살아가게 되었다지만 무엇을 하던 간에 평균 사회로 복귀할 것을 강요받아왔었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으니 이거 참 그저 답답한 기분입니다. 
  그래도 지나간 과거로 인해 현재의 제가 존재한다 말할 수 있으며, 다 말하지 못한 나름대로의 암울한 시기를 부정할 수밖에 없는바. 오늘도 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책을 읽으며, 영화를 보며 끝이 보이지 않는 감상기록을 계속할 뿐이로군요.




  그건 그렇고 며칠 전부터 저희 집으로 큰 고양이가 왔다 갔다 하더니 언젠가부터 새끼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끈이질 않고 있습니다. 그 소리로 인해 집중력이 생성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고 있다 보니, 문득 ‘생각하는 능력’이 없다고 해서 인간 이하의 존재라고 말해지는 동물들일 경우 단지 본능으로만 살아가는 존재인가에 대한 다소 엉뚱한 생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생각을 할 줄 아는 동물인 ‘사람’일지라도 방향성과 목적성이 상실되어버릴 경우 그 ‘생각’이라함은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이어볼 수 있었는데요. ‘생각-사고를 할 수 있기에 편안한 삶보다도 점점 힘들어지는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물음표에 위에서 잠깐 언급한 ‘카르페 디엠’의 의미에서처럼 주어진 여건에 만족하며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현재를 살아갈 줄 아는 자세는 오히려 이런 동물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나름대로 결론을 만들어보았습니다.




  “원하던 것을 찾을 수 없다면 차라리 내가 그것을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이 말은 지인 분들의 이런 저런 고민을 듣던 중 정작 저 자신의 고민을 해결할 방도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다음부터 혼자서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중얼거리기 시작한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현재의 방향성을 잃고 그것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금방금방 지치곤 하는 저에게 하나의 지침이 되고 있기도 한데요. 이번의 책을 통해서는 스승을 찾기 위해 방랑의 길을 걷기 보다는 저 자신이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해보자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간의 불신감정 부터 어떻게든 허물어야겠는데, 누구 도움주실 분 없으신가 모르겠습니다. 
  그럼 마침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이야기가 나왔으니 다음에 볼 영화로 챙겨보며 이번 감상기록은 여기서 마쳐볼까 합니다. 


TEXT No. 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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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천국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2
이청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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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당신들의 천국, 1976
저자 : 이청준
출판 : 문학과지성사
작성 : 2007.10.12.




“나 또한 자유라는 감옥 안에서 우상을 만들고 있진 않았는가?”
-즉흥 감상-




  아무리 하고 싶던 일이라도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 해야만 하는 일이 되어 버린다면 있던 의욕도 상실되어 만사가 그저 귀찮게 되고, 심하게는 짜증이 났던 경험은 대부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래도 해야만 하기에 어쩔 수 없다는 기분으로 임하곤 하는데요. 그나마 이번에는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 그 대상으로서 감상기록에 누락되어있다는 사실에 이렇게 만나보게 되었습니다. 
  그럼 고등학교 시절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만나게 된 이번 책을 조금 소개해볼까 합니다.




  작품은 나병 환자들의 섬인 소록도에 새로운 원장으로 부임해 들어오는 한 남자와 때마침 섬을 탈출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의 장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 탈출 사고의 진상을 파악하고자 섬을 둘러보게 되는 새 원장이 선대 원장들과 이 섬의 과거 이야기를 듣게 되는 등 많은 생각 끝에 우선은 ‘축구’로서 그들의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한 계획을 실천하게 됩니다. 
  그렇게 장로회를 만드는 등 여러 가지로 힘쓰던 원장은 결국 소록도 주민들을 위한 낙원을 만들기 위해 ‘오마도’라고 불리게 될 섬을 만들고자 바다를 매립하게 되는데요. 여기서부터 의도치 않았던 과거의 망령이 부활하려는 조짐이 일어나게 되자 섬사람들과 뭍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에 위치하게 된 원장은 연이어지는 시련을 경함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그러한 모습을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며 조언을 아끼지 않던 보건과장마저 섬을 나가버리게 되자 상황은 절정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는데…….




  줄거리는 일단 2부까지 적어둔 것이기에 긴장감이 고조되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사실 3부에 들어오면서 ‘해소’로의 과정이 시작되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완벽한 하나의 답을 내놓기 보다는 나름대로의 ‘희망’이라는 마침표를 내놓게 되는데요. 일단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책을 읽어들어 가면서 오랜만에 차분한 마음으로 많은 생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다는 사실에 그저 감동을 받아버리게 되었습니다.




  우선 ‘자유로의 선행’의 모습에서 생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는데요. 자기 딴에는 자신을 희생하는 결과를 초례하면서까지 타인을 위한 봉사를 하고 있는 것이라지만, 결과를 향한 과정 자체가 타인의 시점에서는 전혀 반대의 성질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새로 부임해온 원장은 소록도주민들을 위한 낙원을 만들겠답시고 축구팀을 만들고 자급자족이 가능하게 농경을 위한 섬을 만들기에 노력을 하게 되지만, 그 모습 자체를 지난날의 앞선 원장들의 모습과 다를 것 없으며 악몽이 되풀이 되는 과정을 답습할 뿐이라는 소록도주민의 또 다른 시각으로의 모습에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선입견’의 무서움이라는 것을 발견해볼 수 있었는데요. 
  다른 사람이 보기는 그저 하기 싫고 귀찮아 보이는 일이라도 “으악! 귀찮으니까 빨리 해버리자!!”를 외치며 일에 덤벼들고, 남이 보든 말든 해야만 할 일이라 판단이 서면 주위에서 뭐라고 말하건 간에 일단 끝장을 봐왔던 저에게 훗날 돌아온 비난의 화살을 저는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작게는 내가 하고 싶어서였고, 크게는 모두 다 잘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했던 일이었다지만 과정과 결과가 아무리 좋았어도 돌아오는 것은 집단의 외면이었다는 경험을 이번 책의 소록도주민과 새 원장의 모습에서 확인해 볼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소록도주민의 마음에 대해서도 요즘처럼 어떤 목적의식 없이 사회라는 시스템의 좀비마냥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간다 느껴지는 현재에서는 ‘보이는 자’의 모습이 되어 나름대로 무엇인가를 하고자 한다 말하는 자들의 모습이 왜 그렇게 아니꼽게 보이기 시작했는지, 1인자의 그림자 속에서 모든 것을 보좌해주던 2인자의 시절이 오히려 그립게 생각되기 시작했습니다. 
  아. 선입견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 그만 개인적인 이야기로 궤도를 이탈해버리고 말았군요. 아무리 선입견 없이 살아간다 할지라도, 각 위치에서의 입장이라는 것이 존재하기에 ‘판단기준’이라는 것은 제각각 그 위치와 범위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실감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최근 들어 조용히 살고 있는 편이라고 말해도 여러 모임을 전전하면서 그 조직 안에서의 위치에 따라 타인이 바라는 행동양식과 개인적으로 실행하는 행동양식에 가치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일종의 ‘선입견’이 발동하는 순간이라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인데요. 그것이 집단성을 띠게 될 경우 개인의 인격과 개성이 사라져 엄청나 힘으로 변할 수 있다는 점까지 작품에 멋있게 담겨져 있었습니다.




  소록도라. 그러고 보니 고등학생 당시에도 명확하진 않지만 감동을 받은 다음 친구들과 대화의 시간이 있었고, 유독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친구가 그 책을 빌려 읽은 다음 소록도에 가보고 싶다 말한 것이 기억에 있어 조사를 해보니 소설 상에서만 나오는 섬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섬이라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었는데요. 소록도주민을 위한 천국으로 시설이 만들어져감에 결국에는 방문객들을 위한 천국으로 완성되어버렸다는 기록도 마음에 걸리고 또한 소록도 방문에 대한 최근 기록들도 같이 검색되는 것을 보아 언젠가 기회가 되면 친구들과 방문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자유라는 강철의 날개를 달았다.”

 

  이 말은 ‘자유’라는 것에 대해 ‘책임감’을 말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제가 간혹 사용하는 말인데요. 그렇듯 이번 작품을 통해서는 과연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것에 대해서도 말해볼 수 있겠습니다. 
  ‘낙원’의 구축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자유’를 위한다는 것이며, 이번 작품에서는 ‘오마도 간척사업’을 통한 자급자족 체계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자치권을 가진 ‘독립’을 상징한다고도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요. 그 결과로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바다를 통해 생계를 꾸려나가던 뭍사람들과 뒤 늦게나마 간첩 사업을 통해 생성될 수 있을 어떤 가치를 통해 이득을 보려하는 공무원들의 모습을 통해 ‘공짜’를 통해 ‘자유’를 꿈꾸며 ‘책임’이라는 것을 ‘회피’해보고자 하는 인간의 추악한 일면 또한 너무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었던 것에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힘 있는 자가 아닌 힘없는 자로서의 실감을 경험하며 변화되는 원장의 모습에서는 ‘진정한 자유’를 향한 길이 멀고도 험난하다는 것을 배워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두려움’에 대한 것인데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용기백배의 일정이 어느 한 순간부터 흔들리기 시작하자 지난날의 역사를 통해 두려움에 잠식되던 중 죽음으로의 공포까지 맛보게 되는 원장의 모습이나, 그 당시만 해도 암이나 에이즈에 필적할 정도로 공포의 질병이라 할 수 있는 문둥병, 아니 나병, 아니 최근에는 한센병으로 불리기도 하는 질병으로 인해 격리조취 된 것이나 다름없는 섬에 대한 공포와 불신의 모습을 보이는 뭍사람들-건강인, 그리고 변화보다도 조용히 살아갈 수 있는 현재에 머무르고자하는 섬사람들의 모습들에서 각각의 두려움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표현하신 작가님에게 소리 없는 박수를 보내볼까 합니다. 거기에 책의 두께만 보고 읽어 들어감에 엄두를 못 내시는 분들께는 한번 빠져들게 되면 정신없이 읽을 만큼 스릴 만점의 작품이라 감히 추천장을 내밀어 볼까 하는군요. 
  아.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서 또 옆길로 빠져버렸군요. 개인적으로 여기서 말하는 ‘두려움’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일단 불 위에 얹고 봐야한다는 점에 비유하여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은 그 자체로 ‘낭비’라는 생각 때문인데요. 물론 꼭 거창한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좀비나 다름없이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무의미’하다가 판단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3부에서 확연히 사람이 변한 그리고 더 이상 원장이 아니게 된 주인공의 모습에서 ‘두려움’이라는 것에 대한 긍정적의 마침표를 만나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어떤 원대한 마침표를 향한 여정이라기보다는 단지 “무한 감상의 영광을 위하여!!”를 외치며 접하는 작품마다 대부분 감상기록을 쓰고 있는 편인데요. 그러면서도 간혹 다른 채널을 통해 만나는 분들이 제 기록들의 흔적을 통해 ‘괴물’이라는 이미지를 연상해왔다고들 하시니, 의도치 않게 이 작품에서 말하는 ‘우상’을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번 감상기록까지 공식으로 521회라지만 저보다 많이 쓰신 분들을 보면서 생각해왔었던 것을 이렇게 또 다른 분들의 시선에서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을 이 작품에 등장하는 원장님을 통해 동질감을 느껴버린 바. 무슨 일을 하건 순수한 열정으로 하는 것은 좋지만 그로 인해 발생될 수 있는 여파들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다짐해보며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쳐보는 바입니다. 
 

TEXT No. 521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with 얼음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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