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 4285km, 이것은 누구나의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우진하 옮김 / 나무의철학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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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란 책은 20대 중반의 한 여성이 미국 서부 3개주(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에 걸쳐 있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4285km를 종단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은 빌 브라이슨이 애팔레치아 트레일을 종단했던 경험을 담은 <나를 부르는 숲>을 떠올리게 만든다. 빌 브라이슨의 책은 그의 스타일답게 시종일관 유쾌하고 유머로 가득 차 있다. 그러면서도 생태계가 어떻게 훼손돼 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반면 <와일드>는 배불뚝이 아저씨의 유쾌한 모험담과는 달리 진중하고 자뭇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렇다고 해서 책이 무겁게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술술 읽힐 뿐만 아니라 다음 내용이 궁금해질 정도로 호기심이 가득찬 이야기다.

 

이 책의 저자 셰릴은 40대였던 어머니를 암으로 잃고, 결혼생활마저 파탄을 맞아 이혼한 후 트레일 종단을 결심하게 된다.

나는 변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그 계획을 세우는 몇개월 동안 나를 밀어붙이는 힘이되었다. (100쪽)

그러나 계획을 세우고 떠난 모험이긴 했지만 젊은 여성 혼자 100일간 산맥을 따라 걷는다는 것은 어찌보면 무모한 도전이기도 했다.

나는 도저히 내가 질 수 없는 짐을 지고 가는 중이었다. 내 육체적, 물질적 삶이 감정적, 정신적 영역까지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165쪽)

 

발톱이 6개나 빠지는 힘든 길이었지만 그는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냈다. 근 몇십년 이래 최대의 폭설이 내려 몇몇구간은 우회해야 할 정도로 악천후를 만났지만 말이다.

PCT를 걸어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달려있지, 흉측한 내 발에 달려있지 않았다. 온갖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가려는 강한 의지 말이다. (338쪽)

 

100일 간의 모험이 끝나고 그녀는 어떻게 변했을까. 극한에 가까운 이런 모험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해병대 체험과 어떻게 다를까. 또는 지금 우리 산하에 불고 있는 걷기 열풍과 비슷한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녀가 걸었던 길이 의미가 있었던 것은 극한의 체험과 함께 사람에 대한 믿음을 얻었기에 가능했다. 100일간의 행진 중에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도 그가 느꼈던 감정은 다른 것이었을 테다. 하지만 그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다. 그것은 길을 걸었기에 가능하다. 바로 이 점이 해병대의 체험과 다른 점이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힐링의 경험을 선사하는 올레길, 둘레길과 같은 걷기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 또한 여기에 있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도움과 배려 속에서 삶의 신비를 깨우친 것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의 인생처럼 나의 삶도 신비로우면서도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고귀한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내 곁에 있는 바로 그것. 인생이란 얼마나 예측 불허의 것인가. 그러니 흘러가는 대로,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549쪽)

 

3000m가 넘는 산도, 등산화를 잃어버리고 걸어야 했던 자갈투성이 길도, 얼어붙은 산등성이도, 물이 없는 상태로 건너야만 했던 사막도 모두 뛰고 넘고 돌면 끝인 것이다. 뛰고 넘고 도는 바로 그것, 그 행위를 실행해야만 하는 바로 이순간, 이곳이 진정 삶의 신비이지 않겠는가. 그것이 비록 죽을만큼 힘들고 괴롭더라도 말이다. 그 다음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일테이니. 셰릴이 그러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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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린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다. 탄성이 나온다. 시골이나 도시나 내리는 눈은 아름답게 느껴진다. 하지만 내린 눈이 쌓이기 시작하면 그것을 대하는 마음은 바뀌기 시작한다.

 

도시는 쌓이는 눈을 허락하지 않는다. 자연의 시간대로 녹아내리는 것을 기다리지 않는다. 도시의 시간은 빠름이 장기다. 자연현상마저도 이 빠름에 휘둘린다. 쌓인 눈을 빨리 치우지 않으면 사방에서 비명이다. 그런데 시골이라고 다를까. 시간을 거슬러 겨울에도 비닐하우스에서 작물을 키우다 보니 눈이 많이 내리면 노심초사다. 비닐하우스가 무너질까 계속 눈을 쓸어내려야만 한다.

 

물론 이렇게 시간을 재촉하는 행위들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풍요-겨울철에도 푸르른 녹색채소를 먹는 일 따위 말이다-는 누리지 못할 것이다. 물질적 풍요를 얻는 대신 우린 자연스러운 풍광이 주는 여유를 잃어버렸다. 눈마저 짐이 된 것이다. 얼어붙은 땅 위에서 겨울 작물을 따뜻하게 보온해주는 눈의 역할은 쌓인 눈이 가져다주는 경제적 쓸모를 따질 때에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눈 그자체가 주는 마음의 평온 또한 이익을 따지는 계산기 속에서 눈씻고 찾아봐도 차지할 공간이 없다.

 

흔히들 나이가 드니 눈이 주는 즐거움 대신 걱정이 쌓인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 걱정의 근원은 나이가 아니라 바로 이해타산에 젖어든 우리의 습성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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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고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혔다. 길도 사라졌다. 순백의 세상이다. 아무도 걷지 않은 이 하얀 도화지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은 왠지 모를 설렘을 준다. 먼저 걷는 기분.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묘한 느낌이다.

 

누군가 이 발자국을 따라 걸을 것이다. 이내 다른 길로 접어들지 모르지만 발자국은 길을 인도한다. 그러나 한명 두명 발자국이 이어지다 보면 이 길은 가장 먼저 빙판길이 되어버린다. 발에 밟힌 눈이 점차 녹아 추위에 얼어붙는 것이다. 누군가 걸어간 길은 이렇게 미끄러운 법이다. 아무 생각없이 걷다가는 꽈당 넘어지기 십상이다.

 

그러니 긴장하라. 남의 길은 넘어지기 일쑤이니. 그러니 걸어보라. 새로운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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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아침놀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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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단상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굳이 핵심테제를 찾는다면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정치일 것 같다. 모든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사회체제를 만드는 것이 바로 여민동락의 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길을 위해 정부와 기업은 도덕적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타인의 공통에 대하여 감각이 마비된 불인(不仁)의 기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즉 선해야 한다는 것일 터인데, 선이란 고정적 개념이 아니라 실천적 행위를 통해서 발현되는 과정으로 본다. 타인과의 교섭 속에서 더불어 형성되는 것이 바로 선인 것이다. 단순한 시혜적 발상으로 그쳐서는 안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위의 단상들이 아니다. 게임 중독에 빠진 조카를 설득하던 도올의 탄식이 오래도록 아른거린다. 게임 중독에 대한 비판에 앞서 자신의 끝없는 식탐에 대해 고백한 모습이다.

최근 1일 1식과 같은 소식을 통한 건강서가 유행하고 있다. 꼭 1식이 아니더라고 배가 터지도록 먹지 않는 습관이 건강과 장수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유전자는 오래도록 배가 고픈 시절을 보냈기에 일단 먹을 수 있을때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양의 130% 정도까지를 취하게 된다고 한다. 즉 소식은 유전자의 욕망을 거스르는 강인한 의지가 작동했을 때 가능한 일인 것이다. 한의학을 공부한 도올마저도 이 식탐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는 고백을 할 정도이니, 소식은 얼마나 지난한 일일 것인가. 그의 고백이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식이 몸 건강의 지름길임을, 무소유가 정신건강의 핵심임을, 알지만 제대로 행하지 못함을 날마다 후회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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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게 장수를 누리다 돌아가신 어르신이 장기 기증을 하셨다. 그런데 심장을 보니 20대의 것처럼 튼튼했다고 한다. 언뜻 생각하기엔 이렇게 심장을 튼튼하게 유지했기에 장수가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실상은 20대 심장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영양분을 쏟아부어야만 했다. 즉 다른 장기에 골고루 쓰여져야 할 영양분이 낭비가 된 셈이다. 심장이 다른 장기와 비슷하게 늙어갔다면 이 어르신은 보다 더 오래 사셨을 가능성이 높다. 건강에 있어서도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한 것이다.

동양의 오행을 바탕으로 한 인체관에 있어서 목,화,토,금,수 중 어느 하나가 너무 과해도 건강상에 문제가 발생한다. 힘이 세고 튼튼하면 좋은 것처럼 보이나 결코 그렇지 않은 것이다. 화평지인, 즉 중용의 도는 나의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서도 꼭 필요한 방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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