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하게 산다 심플하게 산다 1
도미니크 로로 지음, 김성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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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이 말씀하신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책의 저자 또한 부란 필요한 것이 필요한 만큼 있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가난한 사람이란 언제나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런 무소유의 정신이 갖는 참뜻은 진정한 자아 찾기와 행복한 삶 영위하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도대체 우리 일상에서 무엇이 필요한 것이고, 무엇이 불필요한 것인가. 세상은날마다 온갖 것들이 정말로 필요한 것이라고 우리를 유혹하고 있지 않은가. 이책 <심플하게 산다>는 마치 무소유의 실천법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 삶의 태도를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심플한 삶이란 간소한 삶이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간소함이 궁핍이나 초라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안락함과 우아함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옷장의 그 수많은 옷들을 다 치워버리고 계절별로 꼭 필요한 옷 두세벌 정도를 갖고 있으라는 것이다. 다만 그 두세벌이 시끌벅적하고 요란해선 안되고, 깔끔하면서도 우아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싸구려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단 두세벌만으로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품질을 담보로 해야 한다. 그렇다고 명품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브랜드가 아니라 진짜 상품의 질을 판별할 수 있는 눈을 갖추고 고르라는 것이다. 좀 비싸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니 재정적 가난 상태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십벌을 유행에 맞춰 입는 것이 아니기에 오히려 값싸게 입는 셈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이 책은 이렇게 구체적으로 가볍게 사는 법을 말한다.

이렇게 가볍게 살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자기관리다. 자기관리란 건강상태, 재정상태, 아름다움을 지키라는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자기 존중의 문제라고 본다. 항상 밝은 표정으로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하고,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외모를 가꾸는 것은 필수다. 화장품 광고에 나오는 연예인들처럼 가꾸라는 것은 아니지만, 절대 무시해선 안되는 덕목인 것이다. 여기에 안락한 집과 세련된 취미를 갖으라고 조언한다. 아니, 그럼 이게 무슨 무소유인가 또는 심플한 삶인가 의심이 갈법도 하다. 그런데 저자가 말하는 안락한 집이나 세련된 취미란 크고 부러워할만한 어떤 것이 아니다. 집에 들어갈 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잡동사니를 다 치우고 꼭 필요한 다기세트와 작은 책장 하나 정도라고나 할까. 세련된 취미 또한 책이나 음악처럼 돈 들이지 않고도 품격있게 즐길 수 있는 것이면 될 것이다.

저자의 이런 '심플'한 시각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따로 있다. 저자는 현대인들의 식탐이나 우울함을 불안과 지루함에서 찾는다. 무엇인가 집중할 게 없는 사람들이 이런 병폐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활력있고 힘차게 살기 위해선 꿈을 향해 용맹정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위해선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만 한다. 대중매체에 현혹되어 원하지 않는 것을 원한다고 착각하지 말고.

적게 먹고 적게 갖는 것. 하지만 큰 꿈을 갖는 것. 그것이 바로 모든 것을 즐길 줄 아는 심플한 삶을 살아가는 기본 태도라고 이책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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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온 세상이 한 가지 말을 쓰고 있었다. 물론 낱말도 같았다. 2. 사람들은 동쪽에서 옮아 오다가 시날 지방 한 들판에 이르러 거기 자리를 잡고는 3. 의논하였다. "어서 벽돌을 빚어 불에 단단히 구워 내자." 이리하여 사람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쓰게 되었다. 4. 또 사람들은 의논하였다. "어서 도시를 세우고 그 가운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쌓아 우리 이름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 5. 야훼께서 땅에 내려 오시어 사람들이 이렇게 세운 도시와 탑을 보시고 6. 생각하셨다. "사람들이 한 종족이라 말이 같아서 안 되겠구나. 이것은 사람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에 지나지 않겠지. 앞으로 하려고만 하면 못할 일이 없겠구나. 7. 당장 땅에 내려 가서 사람들이 쓰는 발을 뒤섞어 놓아 서로 알아 듣지 못하게 해야겠다." 8. 야훼께서는 사람들을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으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도시를 세우던 일을 그만 두었다. 9. 야훼께서 온 세상의 말을 거기에서 뒤섞어 놓아 사람들은 온 땅을 흩으셨다고 해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불렀다. (성경 창세기 11장 1절부터 9절)

 

바벨탑과 두바이

성경 속 창세기에 나오는 야훼는 하나의 언어, 한 곳에서의 정착 즉 도시의 창조를 반대하고 인류를 흩어지게 만든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창세기 속 바벨탑은 하늘에 닿을만큼 높은 건물로서 이름을 날리고 사람을 모이게 하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그런데 바벨탑과 같이 높은 건물에 대한 욕망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그 나라 또는 도시의 부, 기업의 세, 힘의 상징이자 랜드마크(도시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특이성 있는 시설이나 건물을 말하며, 물리적, 가시적 특징이 시설물뿐만 아니라 개념적이고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추상적 공간까지도 포함)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또한 100층이 넘는 건물을 짓고 있는 중이다(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동북아트레이드타워로 65층에 305m에 달한다). 참고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두바이에 있는 부르즈 할리파로 163층 828m에 이르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벨탑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되는 곳이 두바이와 가까운 현재 이라크에 있는 바빌론이다. 거의 평지에 가까운 사막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었던 바벨탑은 높이가 91.5m일 것이라 여겨진다. 높이 249m인 63빌딩의 절반에 조금 못미치는 높이지만 당시로서는 하늘에 닿을듯한 위용을 자랑했을 것이다. 이 탑은 바빌론의 네부카드데자르 2세가 아버지의 염원을 이어받아 완성했다. 그는 당시 강대국이던 바빌론의 위상을 이 탑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내고 싶어했다. 바벨탑은 최소 3600만~7500만개의 벽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찍어내고 쌓기 위해선 엄청난 재원이 필요했다. 당시 재원을 얻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전쟁이었다. 그는 지금의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까지 정복했다. 하지만 이런 영광도 기원전 482년 페르시아 침공으로 끝이 난다. 전쟁 중 감시탑으로 쓰일 수 있다는 이유로 바벨탑은 철저하게 파괴된다. 마치 세계 최고 빌딩을 지닌 두바이가 부동산 거품이 꺼져 휘청거리듯이 말이다.

 

증오의 시선

기원전 597년엔 바빌론 유수가 있었다.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유대인들은 포로로 바빌론에 끌려갔다. 당시 바빌론은 15만명(로마 흥성기때 인구가 12만 정도였다)의 인구가 살고 있었던 최대 도시였다. 끌려간 유대인들은 도시를 지탱해주는 노예로 생활했을 것이다. 그들이 바라보는 바빌론과 바벨탑은 놀라움이자 증오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바벨탑은 지구라트로서 꼭대기에는 마르둑신을 모시고 있었다. 신 중의 신이며 생존하고 있다고 여겨진 신이었다. 유대인들 눈에는 얼마나 마땅찮은 일이었겠는가. 창세기에 나타난 바벨탑에 대한 이야기가 부정적으로 묘사되어진 것은 이런 역사적 경험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한때 북한이나 일본을 바라보던 시선도 옛날 유대인의 시선과 닮아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벨탑을 바라보는 유대인과 닮아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설령 미워하더라도 진짜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용감한 눈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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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하게 사는 법 차~암 쉽죠잉. 이렇게 하면 된다네요. 도미니크 로로가 말하는 <심플하게 산다>의 요점 정리. 책의 겉표지에 나와 있는 글이랍니다.

 

물건  필요한 물건보다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은 스스로 불행을 짊어지는 일이다. 물건이 많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집은 언젠가는 쓰일 물건들로 가득 찬 요지부동의 창고가 아니다. 집은 휴식의 장소, 영감의 원천, 치유의 영역이 되어야 한다.

시간  우리가 진정 소유할 수 있는 것은 하루하루의 시간이다. 두려워할 것은 미래가 아니라 우리가 놓치고 있는 현재다.

  적게 먹고 몸을 가볍게 만드는 것은 일종의 철학이고 지혜다.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것은 예술 작품을 만드는 일만큼 가치가 있다.

관계  변명하지 않고 미소 지으며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 남에게 기대지 말고 자신의 빛으로 살아가자.

마음  오염된 마음은 우리를 분열시킨다. 집착을 버리고 소유를 포기하자. 그러면 마음에 초연함이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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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무엇을 때려치우고 싶냐고? 그냥 살아가는 것 그 자체를 말이다. 그런데 왜 때려치우고 싶어질까. 그리고 어떤 때 그런 마음이 불쑥 솟아나는 걸까.

그래서 때려치우다라는 뜻을 곰곰히 생각해봤다. 때려서 치운다는 뜻일까. 다 박살내고 말끔히 치워버린다. 뭐, 이렇게 해석해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까지의 나를 이뤄왔던 것, 그러니까 나라고 하는 고정관념을 다 때려서 박살을 내는 거다. 그리고 말끔하게 치워버리는 거다. 그럼 그 바탕 위에 새로운 나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때려치우는 것이 얼마나 바라고 싶은 일인가.

그래서 때려치울련다. 날마다는 아니라 하더라도 가끔은 때려치울련다. 새롭게 태어나 보련다. 그럴려면 나를 때렸을 때 버틸 수 있는 맷집부터 키워야 할 일이다. 나를 깨뜨리는 것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 맷집이란 바로 책일지도 모르겠다. 또는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서 묻어나는 고귀한 생각들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철저히 무너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그런 맷집부터 키울 일이다. 나를 때려 깨뜨리고 모조리 치워버렸는데 다시 새로운 나를 만들지 못한다면 그저 철저한 파괴로 끝날테니까. 결국 때려치운다는 것은 새로운 모습을 위한 전단계일 뿐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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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잃은 사람은

웃음을 잃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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