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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지리학 - 최창조의 망상록 妄想錄
최창조 지음 / 서해문집 / 2011년 5월
평점 :
이 책은 자생풍수가라 할 수 있는 최창조씨의 땅과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자생풍수라 함은 도선국사 이래로 전해져 온 도선풍수라고 할 수 있겠다. 그 기본 생각은 결함이 있는 땅에 대한 사랑이다. 그렇기에 고침의 지리학, 치유의 지리학이기도 하다. 결함이 있는 곳 즉 문제 있거나 좋지 않은 것에 대한 지고지선한 사랑이 있어야하기에 비보 풍수이기도 하다. 즉 고치고 치유하겠다는 인간의 의지가 개입되어야만 비로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생풍수의 입장에서 명당이란 완벽한 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풍수무전미(風水無全美). 완전한 땅이란 없는 것이다. 자연은 말 그대로 본래 있는 그대로의 것을 받아들이는데 뜻이 있다.
명당을 찾는다는 것은 안온한 삶, 근심걱정없는 안정에 대한 욕구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복을 비는 묘자리 같은 음택풍수가 아니라 살아갈 집, 절터, 도읍지 같은 양택풍수라는 점이 자생풍수의 특성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터를 잡는다는 것은 땅과 생명체가 기를 상통시킬 수 있는 자리를 잡는다는 것이다. 조화로운 감정과 안정을 선사하는 곳이다. 즉 어머니의 품속과 같은 땅을 찾는 것이다. 그 방법은 본능과 직관, 사랑이라 할 수 있다. 복잡하고 미묘한 방법론(간룡법, 장풍법, 득수법, 정혈법, 좌향론)보다는 이러한 순수함을 찾아가는 것이 자생풍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이걸 인정하면 명당은 우연이 주는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 이곳에 나는 어떻게 정착하게 됐는가. 지금 이곳이 편안하다면 바로 명당이지 않겠는가. 좋은 점은 부각시키고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은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개선의 여지가 있다면 바꾸도록 한다. 이 바꾸려는 시도가 바로 비보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곳과 공명할 수 있다면 비로소 명당이 완성되는 것이다. 나와 땅의 문제만이 아니라 나와 타인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벽을 쌓고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명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그래야 평안함이 찾아온다.
명당은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이 되지 못하는 한 어떤 수단으로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욕심으로 잡은 자리는 그 욕심만큼의 재앙을 땅 임자에게 주는 법이다. 그렇기에 비보풍수, 즉 안좋고 떨어지는 것을 바꾸려는 노력을 들이겠다는 의지가 중요한 것이다. 명당은 나의 의지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족
우리 자생풍수는 혁명이나 개벽사상의 기반으로도 기능했다. 권력의 폐해가 극심해지면 기득권의 기반을 없애고 새로운 정치를 꾸려가기 위해 새로운 터가 필요했던 것이다. 새로운 터에 대한 기반이 바로 자생풍수였다. 그 기반을 바탕으로 기득권과 싸우고 새로운 삶을 도모했던 것이다. 홍경래의 난이나 전봉준처럼 개벽이 실패했을 땐 정감록과 같은 도참사상이나 민족적 신흥종교 속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