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는다는 건

 

얼음같은 물에 담근 손을 빼지않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도 오지않는 고장난 기차를 기다리는 것처럼

 

저 문 밖으로 뛰쳐나가지 않는 것

누군가의 뺨에 손을 대지 않는 것

상대의 입술을 눈동자를 지긋이 바라만 보는 것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 감추었던 말을 끝끝내 꺼내지 않는다는 것

 

그렇게 참다 참다

참 나

멍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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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식에 있어서 3소식이 중요하다. 3소식이란 少食 素食 笑食 을 말한다. 적게, 소박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 것. 이것이 건강의 밑바탕이라고 한다. 그런데 단 한끼라도 3소식을 행하기가 무척 힘들다. 식탐 때문이기도 하며, 함께 먹는 사람과의 관계 때문이기도 하며, 직면한 상황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진정 3소식을 원하는지도 문제다. 건강 대신 쾌락을 원하는 욕망을 쉽게 이겨내지 못한다. 그래서 건강한 먹기는 건강한 신체를 가져옴과 동시에 건강한 마음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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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만나 떨렸다

나는 너를 만나 설렜다

나는 정녕 너를 만나

떨린걸까 설렌걸까

 

나는 설레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떨고 말았다

끝끝내 눈물을 뚝뚝

떨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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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보낸 산야초 차 이야기 1 지리산에서 보낸 시리즈
전문희 지음, 김문호 사진 / 이른아침 / 2011년 5월
구판절판


산에 들어가 약초나 캐지 뭐.
시골서 농사나 짓지 뭐.
무언가 앞을 콱 틀어막고 있을 때면, 더이상 물러날 때가 없다고 느껴질 때면, 삶의 비상구인냥 산이나 시골을 불러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건 무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아니, 저런 탄식들은 이제 죽어가는 말이 되고 있다. 50대 중후반 이상쯤은 되어야 어렸을 적 가졌을 법한 추억의 끄트머리에서 꺼낼 수 있는 산과 시골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다. 그래서 어렵고 힘든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위의 푸념은 철모르고 하는 소리인 것이다. 하지만 어렵고 힘든 일 속에 보물은 숨겨져 있는 법이다. 하나의 차를 만들고 그것을 마시는 일이 고단함을 필요로 하지만 여유와 풍요로움도 함께 묻어있기 때문이다.

이책은 지은이가 지리산에 들어가 차를 만드는 이야기다. 차 만드는 이야기 속에 삶의 여정이 잔잔히 끓고 있다. 아니, 책을 읽는 이의 가슴을 천천히 끓이고 있다는 것이 옳겠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기쁨도 슬픔도 나온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모든 게 고통스럽기만 할 때도 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만나는 지점에서 나의 인내심, 능력, 연약함을 찬찬히 살펴보고 겸손히 마주하고 싶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내 존재가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서 자유로운 실존의 나와 조우하는 것, 나한테는 듬직한 친구가 있다는 듯 산의 품으로 들어간다. (75쪽)
수시로 바뀌는 마음과 그들을 괴롭히는 현실, 그리고 팍팍한 시간들 속에서 위안이 되어주는 것은 지리산이다.(77쪽)
사람으로 인해 다친 마음을 자연에 기댄다해서 탓할 사람이 있을까. 나는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내버려두기, 그것은 관계의 핵심일지 모른다고. 돌보는 이 없어도 저 혼자 아름다운 산. 헤아릴 수 없는 그 깊이는 나를 의탁하기에 모자람이 없다.(79쪽)

산을 풍성하게 했던 꽃과 열매와 이파리들은 차 한 잔이 되어 긴 겨울 우리 곁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준다.(281쪽)

차 한 잔을 마시는 일조차 무엇이 급한지 허겁지겁일 때가 있다. 잠시 찻잔을 내려놓자. 찻잔 속에 담긴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자. 침묵 속으로 빠져보자. 그러면 그 침묵이 나의 내면으로 인도할 것이다. 차가 바로 나일 때. 차는 물에 녹아들어 자신의 향을 내뿜는다. 내가 고집해온 그 기준을 돌아보게 만든다.
지리산에서 보낸 산야초 차 이야기는 그렇게 차를 마시도록 유혹한다. 가슴 속에 잊혀지지 않을 잔잔한 향을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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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노벨 평화상이 EU로 선정된 것에 대해 말들이 많다. 현재 전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이 EU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유럽연합이 무기에 쏟아붓고 있는 어마어마한 금액에 대한 비판까지 일고 있다. 물론 반대로 평화상에 선정될만큼 유럽연합이 생김으로써 국가간의 갈등이 줄어들고 평화는 물론 인권의 급성장이 이루어진 측면 또한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이번 EU와 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당대엔 평화에 기여했으나 후대에 다시 재평가를 받아야 할 수상자들도 있다. 녹색혁명의 아버지라 불린 볼로그 박사가 그렇다 하겠다. 볼로그 박사는 왜소종 밀을 육종함으로써 수확량을 개선하고 비용을 감소시켜 대량생산을 가능케했다. 또한 탈곡이 쉬워 그 이용가치가 높아져 기아 해결에 큰 도움을 준 것이다. 하지만 배고픔을 해결한 이 밀로 인해 현대인은 퇴행성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다. 물론 밀만이 퇴행성 질환의 원인인 것은 아니나 과거의 밀에서 교잡을 통해 그 성질이 변한 왜소종 밀로 인한 폐해는 생각보다 크다.(책 <밀가루 똥배>참고) 포만과 허기의 반복을 불러와 인슐린 작동의 과부하가 생기기도 하고 심장병, 노화작용, 셀리악병, 비만, 피부염 등 부정적 영향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마치 이것은 노벨상을 만든 노벨의 다이너마이트와 같다. 장애물을 제거하는 폭파물에서 생명을 앗아가는 무기로까지 무한변신하는 다이너마이트 말이다. 

노벨상, 세계적 주목을 받는 위대한 상 뒤에 감추어진 그림자 또한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꼼꼼히 따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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