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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갓난아기 - 소아과 의사가 신생아의 눈으로 쓴 행복한 육아서
마쓰다 미치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뜨인돌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병원에서 집으로 데려온 아기가 종일 보챈다. 기저귀도 갈아줬고, 젖도 먹였는데도 불구하고 목청이 터져라 운다. 아무래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은가 보다. 특히 밤에 칭얼거리는 아이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다.
"아가야, 왜 우니? 어디 아프니? 배도 부르고 엉덩이도 뽀송뽀송하고. 뭐가 문제인거야? 말좀 해다오, 아가야." 아기에게 물어봤자 대답없는 메아리일 뿐이다. 아빠도 엄마도 답답할 뿐이다. 그런데 초보 엄마, 아빠의 답답함이 조금 가실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수십년 전 일본의 의사가 쓴 <나는 갓난아기>를 읽고나서 이 답답함이 조금 사라졌다. 아기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 때문이다. 이 책은 갓난아기 때부터 1년 6개월까지의 성장과정을 부모나 의사의 시선이 아닌 아기의 관점에서 쓰여진 점이 특이하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책은 무척 재미있게 읽힌다.
책을 읽고나면 "말좀 해다오, 아가야"라고 끝마쳤던 혼잣말이 "엄마, 아빠, 전 지금 더워서 그래요" 라거나 "그냥 엄마, 아빠 손길이 그리워서요"라고 아기처럼 말을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아기의 입장에서 상황을 파악해보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재미있는 상상도 하고, 부부끼리 웃음도 주고 받는다.
책의 장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클릭 한번이면 접할 수 있는 세상의 수많은 육아정보나 책 속에 담긴 지식들에 사로잡혀 괜한 걱정을 할 시간을 덜 수 있다. 그것은 책이 아기들의 개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인간에게는 각자의 취향이 있다. 진한 맛을 좋아하는 아기들만 분유를 먹는 건 아니다. 나처럼 담백한 것을 즐기는 아이도 많은 것이다.... 인류의 진보는 인간의 개성을 인정해 주는 데서 이루어졌다. 개성은 인간의 몸에 대해서도 예외 없이 작용된다... 다양하게 시도해 본 뒤 제 아기의 개성과 성장 속도에 맞는 농도와 분량의 분유를 먹이는 것이 가장 좋다. 40쪽
몇살엔 어느 정도 커야되고 몸무게는 어떻고, 그래서 그것에 맞춰 먹는 것은 이래야 한다라는 도그마에 빠질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육아서에 어떻게 적혀 있건 각자의 형펀에 맞지 않는 건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 각자의 사정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아기를 키우고, 그렇게 해서 건강하게 자란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육아법이다.64쪽
아이에게 언제부터 빵이나 밥을 먹일 것인가는 각자의 형편과 아이의 체질에 맞춰서 결정하면 돼. 꼭 관청의 지도를 받을 것도 없는 일이라는 거야. 198쪽
또한 관심을 벗어난 과도한 애정에 대해서도 경계할 것을 말한다.
어떤 아이나 손아래 형제에게 질투심을 품는 건 아니다. 자기 자신만 사랑하는 아이가 질투심이라는 감정을 품는 것이다. ... 주위의 애정 과잉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데서 느끼는 기쁨을 에미 누나에게서 앗아간 것이다. 45쪽
그댁 형님댁도 아이가 가래가 좀 차더라도 할머니가 모르는 척, 별일 아닌 것처럼 해 주시지 않으면 낫지 않아요. ....아이를 너무 어르고 달래지 말아야 해요. 특히 외동아이일 경우가 함듭니다. 아파트단지에서 천식을 앓는 아이는 모두 외동아이에요. 앞으로 천식이 아주 많아질 겁닏. 다들 하나씩만 낳는 집이 많잖습니까. 214쪽
다만 아기를 키우는데 필요한 많은 정보를 원한다면 이 책은 별반 소용이 없을 것이다. 아마 책에서 밝히고 있는 정보를 한데 모으면 A4 용지 한 장 분량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예방접종, 장중첩증, 감기, 폐렴, 천식 등등 기술적 지식은 인터넷에 또는 병원에서 오히려 더 자세히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책을 덮는 순간 분명 깨닫는 것이 있다. 우리 아기는 지금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소중한 생명체로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