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엔 부슬비가 내렸다. 야외활동이 불편한 관계로 창고에서 토종벼 정리를 했다. 지난해 수확한 토종벼를 각 종자별로 키를 재고 나락을 따로 모았다. 열어둔 창고문으로 안개낀 산과 밭들이 고즈넉히 눈에 들어온다. 귀에선 새소리가 정겹다. ㅋㅋ 이럴 때도 있는거지. 맨날 무거운 짐만 옮기란 법이 있나. 흥겨운 콧노래가 절로 나올 지경이다. 김홍도의 그림 속 주인공이라도 되는냥 얼굴에 미소띤 얼굴로 노동의 즐거움을 느낀다.

 

 

 

 

오후엔 비가 그쳐 어제 못다한 농장정리를 했다. 새참 시간엔 농장에 와서 처음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우리의 동거인 암탉이 낳아준 달갈에 물빠진 연못에서 저절로 자라고 있는 미나리를 추가하니 금상첨화다. 바로 이맛인거다. 이거, 농장생활 적응이 너무 빠른거 아닌가. 피시시 웃음이 새어 나온다.

 

 

어스름이 낄 무렵 일을 마치려는데 느닷없이 책정리를 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숙소 교육장에서 농장 강의실로 옮기는 일이었다. 그런데 책이 자그마치 2천여권이 족히 될 듯싶다. 꼭 이런 일들은 일을 끝마치려는 순간에 생긴다. 오늘은 제 시간에 저녁 챙겨 먹기는 글른 것 같다. 아~ 이건 아닌데... 오늘 일지엔 연수를 함께 받는 연수생들 이야기를 해볼까 했는데 너무 늦은 관계로 다음 기회로 미룬다. 아함~ 잠이 쏟아진다. 노동이 가져온 꿀잠을 즐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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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귀농학교 연수생활을 받은지 열흘째 되는 날이다. 그동안 한 일의 80%는 풀뽑고 풀뽑고 돌줍고 돌줍고 돌줍고... 라고 할 수 있겠다. 첫주엔 몸이 고달퍼 지겹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몸도 어느 정도 적응이 돼 가고 있다. 풀과 돌이 귀농의 기초체력을 위한 발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의 여유도 갖게 됐다. 그래서일까. 돌을 가득 실은 수레를 옮기다 백로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바로 이거야! 저 유유자적 날아가는 백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내가 바라던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어' 행복감에 젖어 천천히 멀어져 가는 백로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또 한 수레 돌을 퍼부은다. 흙길이 어느새 돌길로 바뀌어 가고 있다.

 

오후에는 못쓰게 된 하우스를 철거했다. 작은 하우스이긴 하지만 하우스 뼈대들이 어떻게 얽여져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시계를 분해하듯 신기한 눈길로 해체작업을 했다. 물론 시계처럼 절대로 복잡한 구조는 아니지만 말이다. 하우스는 그저 뼈대를 묶어주는 얽음쇠(?) 만으로 지어진 초간단 집인 셈이다.

 

그리고 잠깐 짬을 내어 트럭 운전 연습을 했다. 오토만을 운전하다 스틱을 운전하려니 쉽지 않다. 단순히 클러치 하나만 늘어난 것 뿐인데 운전할 데 신경쓰이는 것은 오만가지다. 단 한가지 변화만으로 수십가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우리네 삶도 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변모하는데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저 단 하나의 변화가 우리를 그 길로 안내할 수도 있다. 지금 내가 가고자 하는 이 귀농이라는 단 한 단어의 힘이 그런 변화의 마력을 가지고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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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엔 다른 농장에서 고추모종을 옮겨 심고, 오후엔 올해 심을 벼 종자 수량을 점검했다. 이곳 흙살림 토종연구소에서는 토종벼의 보존, 실험재배, 보급을 꾸준히 진행해 오고 있다. 조도, 산도, 흑미도, 천주도, 다다조, 옥돼지찹쌀(?) 등등 듣도 보지도 못한 종자들이 다양하게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토종 종자들의 대부분은 현재 재배되고 있는 종들보다 맛이나 풍미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지금의 종자들이 현대인의 입맛에 맞도록 개량되어 왔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그 맛이 우수한 토종 종자들도 있다. 이들은 이땅에서 오랬동안 그 생명력을 유지해 온것만큼 병충해에도 매우 강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토종을 생산하는 농가도 별로 없을뿐더러 이것을 찾는 소비자들도 없어 토종이 활성화되지는 못하고 있다. 토종이 좀더 알려져 우리 땅에 굳건히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그날이 과연올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 가마니를 들어 저울에 놓아 기록하고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는 와중에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될만큼 여유를 갖게 된것이 신통방통하다.^^

 

저녁에는 실질상 귀농학교를 운영하시게 될 교장인 반명수 선생님과의 만남이 있었다. 반 선생님은 인근 소이라는 곳에서 농장을 운영하고 계시는 농민이시다. 그분의 몇십년의 노하우를 어떻게 전수받게 될지 사뭇 기대됐다. 반 선생님은 "일하는 게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꿈을 시각화하면 즐거워지지만, 시간을 때우려고 생각하면 지겨울거예요"라며 한말씀 건네셨다. 한마디로 재미있게 일하며 배우자는 말씀이시다. 솔직히 지금까지 과정을 돌아보면 그다지 재미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너무 꽉 짜여진 시간과 여유없는 노동이 조금은 숨막혔다. 게다가 일주일의 대부분을 풀뽑기와 돌줍기로 시간을 보냈으니 살며시 회의감이 드는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었겠는가. 그런데 교장의 말씀이 귓전을 때린다. 혹시 난 지금 시간을 때우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무엇이건 기초라는 과정은 무던히도 지겹고 힘들지 않던가. 지금의 시간을 기초 체력을 다지는 시간으로 생각하며 보낸다면 조금은 재미를 느껴볼 여지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교장은 아이디어가 넘쳐 흐른다. 문제는 그 아이디어가 과연 얼마나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인가이다. 일단 농장에 음악이 퍼져 나가고, 허리 통증을 완화할 운동시설의 제조, 흙벽돌집짓기 교육 등등. 포부가 멋지다. 함께 재미있게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아, 그리고 잡설 한마디. 우리 연수생들과 함께 농장을 지키고 있는 절름발이 암탉이 몰래 알을 낳았다. 옆에서 물도 꼴딱꼴딱 먹으며 아양을 떨더니 알까지 주다니 ^^ 볼 수록 물건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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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까지 일(농장의 화단 정리)을 마치고 오후엔 집으로 향했다.

 

 

6일 만에 딸을 볼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연애시절 지금의 아내를 기다리던 심정과 비슷한 느낌이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이다. 딸아이가 멀리서부터 팔을 벌리고 뛰어온다. 아, 이런... 눈물이 핑 돈다. 에구구구, 내 새끼... 부모님이 아직도 다 큰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이해된다.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그래도 딸아이를 번쩍 들고서 빙빙 돌아본다.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서 한참을 놀았다. 집으로 돌아와 다음날엔 그야말로 시체놀이. 딸아이가 감기에 걸린 통에 밖으로 나가 놀지 못한다는 걸 핑계삼아 하루종일 누워 지냈다. 이런, 쯧쯧. 하루만에 딸아이와 노는 것을 힘들어하다니. 얼른얼른 체력을 길러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아니, 하나 더. 지금 이렇게 사는게 옳은가라는 의문도 다시 고개를 든다. 그래도, 일단 한발을 내딛였으니 조금만 더 나아가 보자. 그리고 나서 판단하자.

 

다음날 새벽, 딸아이의 잠든 모습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딸아이가 일어나기 전에 출발해야 한다. 살며시 손을 잡고나서 잠깐 볼에 입맞춤을 하고 자리를 떴다. 다시 괴산으로 향해야 한다.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하지만 '흙과 논다고 생각하자'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 놀러가는 거야. 흙하고 말이야. 내 귀여운 딸아이도 머지않아 이 흙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겠지. 이렇게 위안을 삼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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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저쪽에 사다리좀 가져와 줘"

하우스 안쪽에 비닐막을 치기 위해 사다리가 필요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사다리가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사다리가 어디 있는거야?' 멀리서 사다리를 찾고 있는 L씨를 지켜보는 나도 궁금했다. 저쪽에 있다는 사다리가 L씨와 내 눈엔 비치지 않은 것이다. 지켜보다 못한 K 형님께서 직접 사다리를 찾아 가져오신다. '어라, 이게 사다리였네!'

 

 

 

고정관념이란게 이렇게 무서운 거다. 아니, 우스운거다. 멀쩡하게 있는 것도 보이지 않게 만드니 말이다. 평상시 자주 보아왔던 사다리와 조금만 다르게 생겨도 사다리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다니.. 분명 사다리인데 사다리인줄 모르고 지나쳐갔다는게 민망하다. 고정관념 속에 쌓여 실체를 모른 체 지나쳐버린 것들이 또 얼마나 많을 것인지 반성해본다.

 

오늘은 비닐하우스 안에 물을 잔뜩 뿌리고 있다. 스프링쿨러를 통해 골고루 뿌린다. 홍수가 난다는 기분으로 뿌려야 한다. 발로 찍었을 때 발바닥에 물이 흥건히 젖을 정도로 말이다. 다른 하우스 안의 땅을 쟁기로 갈던 중 파이프가 파손됐다. 물을 잠그로 파이프를 고치느라 또 진땀을 뻈다.

 

 

기계의 편리함과 그로 인한 불편함이 함께 공존하는 순간이다. 기계란 결국 말썽을 피우기 마련이지 않던가. 기계가 주는 편리함을 누리는 대신 우리는 그 말썽에도 대처해야만 한다. 편리와 말썽 사이 그 어디쯤의 이득에 따라 우리는 기계를 더 사랑할 수도, 또는 폐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문명은 어느 정도의 자리에 처해 있을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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