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맑음 오전 4도 오후 19도 하우스 안 온도 오전 18도 오후 29도

 

오늘은 하루 종일 감자밭에서 북주기를 했다. 오전에 두둑 2줄, 오후에 2줄. 1줄이 대략 60미터쯤 되는데, 정말 정말 먼 거리다. 달리면 10초도 걸리지 않는 거리를 쪼그리고 앉아 흙을 퍼올리는데 2시간 가까이 걸린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은 한가롭고 여유롭지만 그 풍경 속 주인공은 대부분 힘에 겨워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허리, 무릎, 손목, 어깨... 안 아픈 곳을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다.

 

 

속도를 잊고 싶어 도시를 떠났건만, 시골이라고 속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작물의 재배 시기를 놓치면 그해 농사를 망칠 수 있기에 그 시기를 맞추기 위해 속도를 올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그 시기가 날마다가 아니라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그리고 이런 속도 올리기가 자연과 함께라는 것이 또다른 차이점이기도 하다.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농부의 마음에 작물은 꼭 보답을 한다. 3주 전에 심었던 아스파라거스가 꽃샘추위를 이기고 순을 내놓았다. 하나 살작 꺾어 맛을 보았다. 상큼하다. 이것이 시골의 속도가 주는 기쁨인가 보다.

 

조선배추꽃도 한창이다. 그 어떤 노란꽃들보다도 더 샛노랗다. 물감에 한번 푹 담갔다 꺼내놓은듯한 선명함에 눈이 부실 정도다.

 

저 멀리 산 속 과수원에 복숭아꽃도 한창이다. 사과나무엔 새 잎이 나고, 꽃도 살포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가을 수확을 위한 농부의 봄은 하루하루가 더디면서도 빠르다. 지친 몸을 움직여야 할 땐 너무나도 느릿느릿 해가 움직인다. 그러나 오늘 마감지어야 할 일 앞에선 해님은 번개와 친구가 된다. 그 속도의 변덕 속에 하우스 속 농부의 봄은 벌써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이봄 천천히 붙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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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맑음 오전 3도 오후 20도 하우스 내 온도 오전 18도 오후 28도

 

오전엔 방울토마토를 심었다. 핑크체리라는 품종이다. 너무 웃자라고 늙었다고 해서 바삐 심었다. 매일 매일 허리 필 날이 별로 없다.

 

3번 하우스에 40센티미터 간격으로 5두둑에 600주를 심고 나니 허리가 무너질 것 같다. 방울토마토 심는 법은 고추와 비슷하다. 단 접목을 했느냐의 여부에 따라 흙을 덮어주는 양상이 달라진다. 접목은 뿌리가 강한 것과 성장을 잘 하는 것의 장점을 합한 경우가 많은데 흙을 접목 부위 이상으로 덮어버리면 강한 뿌리의 장점이 사라진다. 따라서 접목을 한 방울토마토의 경우 흙을 덮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심어야 한다.

 

모종을 다 심은 후 점적호스를 통해 물주기를 시도했다. 원래 흘려주기를 하는데 점적호스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시험삼는 겸 물을 틀어보았다. 하우스 3개동 총 15개 호스 중 2개가 말썽이다. 그래도 큰 문제는 아니어서 다행이다.

 

오후엔 하우스 2개동을 토양관리할 계획이었다. 두둑을 만들고 멀칭을 할 생각을 하니 까마득했다. 그런데 갑자기 일정이 바뀌었다. 채소의 달인 농사꾼께서 농장을 한번 둘러보시고 나더니 감자 북주기를 해야 할 시기라고 말하셨기 때문이다. 북주기란 뿌리 주위에 흙을 덮어주는 것으로 잡초억제, 배수, 지주역할, 뿌리 강화 등의 기능을 한다.

 

흙을 퍼서 감자 뿌리 주위에 덮어주는 작업이 계속됐다. 아침에 토마토를 심은 것은 그야말로 예열단계였다. 11두둑 정도를 덮고나니 허리를 피는 것 자체가 힘이 들 정도로 아프다. 농사일은 허리힘이라더니...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하우스 안이 아니라 노지였다는 것. 산들바람이라도 불어줘 땀을 식혀주니 다행이다.

 

바로 앞 언덕에 조팝나무가 꽃이 한창이다. 서울 남산의 한옥마을에도 조팝나무가 무성했는데... 점심시간 산책을 하며 즐기던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고된 밭일을 하는 농부의 설움이 묻어난듯 하얀색이 서글퍼보인다.

 

저녁엔 흙살림 공장에서 일하시다 퇴사하는 세 분을 위한 환송식이 있었다. 삼겹살과 막걸리가 오가는 조촐한 식사였다. 흙을 닮은 사람들이라서일까. 거추장한 허례허식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눈꼽만큼도 없다. 환송식이 끝나고 숙소엔 연수생들만 남았다. 막걸리 한사발 들이킨 큰 형님이 오디오를 틀어놓았다. 장사익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밤하늘엔 별들이 쏟아질듯 반짝거린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정취다. 대학시절 MT에서 날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땐 통기타가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오늘 시골밤 마당에선 막걸리와 장사익의 목소리가 걸쭉하게 가슴 속에 얹혀진다. 밤이 깊어간다. 숯불의 온기도 사그라든다. 가슴은 어디에서 새어나온지 알 수 없는 슬픔으로 젖어든다. 아마도 사람이 준 상처였을 것이다. 흙을 만지다보면 그 상처들이 비록 흉터를 남길지라도 곪지는 않도록 해 줄 것이라 믿는다. 이 젖은 가슴이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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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 오전 비 오후 갬 오전 10도 오후 17도

 

아침 집에서 나오는 길. 딸아이가 눈을 떴다. 아이가 잠이 깨기 전에 괴산으로 길을 떠났는데 지난주부터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지난주는 비몽사몽 간에 자기도 어디 밖엔가 나가겠다며 고집을 부리더니 이번주엔 "아빠, 나랑 놀아, 가지마"라며 눈물을 흘린다. 어이쿠. 전화 걸땐 전화도 안받던 아이가 눈물을 흘리니 내 눈시울도 뜨끈해진다. 아빠가 몇일간 집을 비운다는 걸 이제서야 실감한걸까. 뽀뽀한번 하고 나서 "빨리 올게" 말하고 나니 그제서야 아이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휴, 그나마 웃는 얼굴을 보고서 문밖을 나서니 다행이다. 이녀석, 물론 오늘 저녁만 되도 전화를 걸면 받지 않을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의 눈물이 힘이 된다. 이녀석한테 내가 그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걸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 이 녀석아, 너 때문에 내가 힘이 난다. 내가 산다.'

 

오후엔 고추모종을 심는라 또 허리가 빠개졌다. 하우스 3동과 7동(두둑 만드는 작업도 함께 함)에 각각 녹광과 흥농시교(시교란 시험재배하는 품종을 말한다)를 심었다. 3동엔 가운데 두둑에 45센티미터, 양쪽 네 두둑은 40센티미터, 7동엔 50센티미터 간격으로 심었다. 이렇게 가지각색으로 심게 된건 사공이 많기 때문. 지시하는 사람이 두세명이다 보니 엇박자가 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엇박자가 때론 일을 어렵게 만들기도 하지만 작물이 어떻게 자랄지 다양한 상태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장점도 지닌다. 작물의 시험은 그 주기가 너무 길어 다양한 시도를 해보기가 어려운데 연구소이다 보니 이래저래 도움을 받는 구석도 있다.

 

모종을 심기 위해선 먼저 구멍을 뚫고 물을 준 후, 물이 다 빠져 나가면 모종을 심고 흙을 덮는다. 그리고 나서 다시 물을 준다. 이것은 모종이 활착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즉 뿌리가 흙에 잘 안착하여 죽지 않도록 하는 작업이다. 노지에선 흙을 덮은 후 물을 주는 부분을 생략하기도 한다.

 

 

아무튼 지금 고추를 심는건 다소 늦은 감이 있다. 노지에서 지금이 적기이니 많이 늦은 셈이다. 빠른 곳은 2주 전에 심었고, 2중 하우스의 경우엔 한두달 정도 전에 심어 수확을 앞둔 시기이기도 하다. 소장의 말씀에 따르면 하우스 비닐의 채광성이 떨어져서라는데, 아무튼 이번에 채광성이 좋은 비닐로 교체하면서 내년엔 좀더 빨리 작물을 심을 수 있을거라고 한다. 녹광(풋고추) 600주, 시교(건고추) 500주 정도를 심고 나니 다리 옮기기가 힘이 들 정도다. 허리 좀 펴고 삽시다! 거~  

 

고추를 다 심고나서 온도계를 달았다. 앞으로 영농일지를 담당하게 됐다. 이왕이면 자세하게 기록하고 싶어 하우스 내 작물이 어떤 온도에 있는지도 계속 점검해볼 생각이다. 으~ 일은 계속 늘어나는 구나. 그만큼 내 행복도 죽죽 늘어나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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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진다. 때론 추레하게. 때론 화려하게. 꽃이 인생의 절정기라 느껴지지만 꽃이 져야 열매가 맺는다. 씨앗이 생긴다. 또다른 생명을 잉태한다. 져야 사는 것이다.

 

아침이슬이 반짝인다. 햇볕이 내리쬐면 이들도 진다. 져야 자란다.

 

 

 

지는걸 안타까워 마라. 지는게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짐은 새로운 시작이다. 또다시 꽃은 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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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7일 오전 3도 오후 19도 맑음

 

비닐하우스의 비닐을 다 뜯고 새로 씌우는 작업이 한창이다. 폐비닐을 재활용하기 위해 정리하는 것도 상당한 노동이다. 워낙 덩치가 크다 보니 다루기도 힘들고 무게도 만만치않다. 막상 깨끗하게 정리해놓고 나면 별것 아닌것 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나머지 시간에는 다음주 심을 고추모종을 위해 두둑을 만들고 멀칭을 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하우스 3동 4동 두 동에 모두 10두둑을 만들었다. 다리는 천근만근이고 입에서는 헉헉 대는 숨소리가 거칠다. 쉬엄쉬엄 하면 좋으련만... 내 농사는 꼭 '어슬렁' 해야지. ^^;

 

아참, 귀농연수 첫주에 심었던 상추가 드디어 싹이 났다. 자연농법이 성공할지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겨우 서너포기 정도가 고개를 빠끔 내밀었다. 관리소홀도 있겠지만 이정도라면 완전 실패라고 해야 할 듯싶다. 그래도 이 서너포기가 어느 정도나 잘 자라줄지 무척 기대된다. 자연농법이 성공할 수 있다면 어슬렁 농부가 되는건 그리 어렵지 않을것 같은데 ㅋㅋ

 

오늘은 날씨가 화창하다. 세탁기에 빨래를 하고 나서 잔디밭 가장자리에 가지런히 널었다. 내가 시골 생활을 꿈꾸면서 가졌던 소박한 그림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부서지는 햇살아래, 살랑사랑 부는 바람 곁에, 흔들흔들 나부끼며 일광욕을 즐기는 빨래들. 어릴 적 한옥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주말의 한가롭던 기억들 때문일련지도 모르겠다. 마당에서 나부끼는 빨래들은 왠지모를 평안함으로 다가온다.

 

토요일이지만 일이 밀리다 보니 퇴근이 늦어졌다. 겨우 막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녹초가 되다보니 사랑스런 딸의 얼굴을 잠깐 보고 그냥 잠들어버렸다. 내일은 하루종일 동물원에서 딸아이와 함께 놀아야겠다. 몸이 녹아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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