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 오전 맑음 오후 비 오락가락 오전 10도 오후 24도 하우스 안 오전 19도 오후 28도

 

오전엔 토종볍씨 11종을 모내기판에 파종했다. 이로써 사흘간 총 25종의 토종 볍씨 파종을 모두 끝냈다. 모내기판으로 350판 정도다. 한달 후쯤 이것을 모내기 할 생각을 하니 아득하다. 종자가 워낙 다양하고 소량이다 보니 기계로 할 수 없고 사람의 손으로 직접 모내기를 해야만 한다.ㅜㅜ

 

오후엔 방울토마토 수정을 위한 호박벌 모시기 작업에 시간을 보냈다. 고추와 달리 방울토마토는 벌을 통해 수정을 한다. 벌을 너무 많이 풀어버리면 꽃에 흠집을 내 토마토가 상처를 받는다고 한다. 적당한 수의 벌을 동원하는 것이 기술이라 하겠다. 주문을 해서 들여온 호박벌은 먼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차양막을 설치하는 등 각별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 또 5,6월이면 산천에 깔린 향 강한 꽃들에게 정신 팔려 날아가지 않도록 망도 설치해야만 한다. 그리고 하우스 적응을 위해 초반엔 한두마리 정도 정찰비행을 시킨다. 유기농이 아니라 관행농으로 농사를 짓는다면 궂이 벌을 이용하지 않고 약품을 이용해 수정을 시킬 수도 있다.

 

벌망 작업이 끝날 즈음 오락가락하던 비도 잠시 그쳤다. 내일 본격적으로 비가 온다고 해서 하우스에 심고 남아있던 모종들을 모두 모아 하우스 밖 짜투리 밭에 심었다. 가지, 토마토, 옥수수, 고추 등이 총망라 됐다. 이택근 흙살림 회장은 노지와 비가림하우스간의 작물 성장을 비교해보라고 하신다. 우리나라의 변화무쌍한 기후에서 작물을 제대로 성장시켜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위해선 특히 유기농에선 왜 비가림이 필요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시간이 늦어져 모종을 심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끝냈다. 내일이나 모레쯤 시간이 나는대로 밭의 골에 볏짚을 깔아 제초 역할도 시험해볼 것이다. 낭만이나 감성적으론 자연의 기운을 온전히 받아서 크는 노지에 대한 환상이 있다. 이 환상이 얼마나 깨질지, 또는 지켜나갈지 앞으로가 궁금해진다. 비바람에 맨몸으로 부딪히게 될 노지의 모종들아, 모두 힘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5월 8일 맑음 오전 6도 오후 27도 하우스 온도 오전 19도 오후 39도

 

오늘은 새벽부터 부산했다. 120미터짜리 하우스의 비닐을 씌우는 일을 도와야 했기 때문이다. 보통 하우스 비닐은 바람이 잔잔한 새벽에 많이 씌운다고 한다. 현재 농장에 있는 하우스 10동은 길이가 55미터짜리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짓는 하우스 2동은 그 배가 넘는 120미터에 이른다. 55미터짜리 하우스에 토마토, 상추, 고추를 심는 것도 힘에 부쳤는데 120미터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작업에 들어가기 전 잠깐 농장을 둘러보았다. 보리가 어느새 훌쩍 자라 이삭을 폈다. 아침햇살에 부서지는 모습이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글래디에이터에서 러셀 크로우가 손으로 쓸고 간 것은 밀이었겠지만, 보리를 보니 문득 그 장면이 생생하다. 평화로움의 상징처럼 비쳐지던 그 모습이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는 느낌이다.

 

잠깐의 여유 뒤엔 엄청난 일감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닐의 길이가 워낙 길다보니 비닐을 잡아당기는 것을 사람이 아닌 트럭의 힘을 빌릴 정도다.

 

 

장정 8명이 힘을 합쳐 겨우 비닐을 잡아끈다. 탄탄하게 고정시킨 후 우리 연수생들은 본연의 일로 돌아갔다. 오늘은 하루 종일 볍씨 파종을 했다. 오전엔 그런데로 견딜만했는데, 오후가 되니 하우스 안 온도가 40도에 육박했다. 땀이 주르르 흐른다. 잠깐 땀을 식히려 하우스 밖으로 나오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아마도 도시에 있는 사람들은 오늘 초여름 날씨라고 무척 더워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더위가 시원하게 느껴지다니, 세상 참 알 수 없는 곳이다. 상대적이라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결코 함부로 어떤 상황을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아~ 그리고 요즘 틱낫한 스님이 한국을 방문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스님이 화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이 벌써 수십년이 흘렀다. 그리고 그 가르침을 반복해 되새기려 한다. 하지만 실제 생활 속에선 화를 가라앉히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하우스를 짓고 있는 일꾼들의 일하는 꼬락서니가 맘에 안들어서인지 일거수일투족이 거슬린다. 사방을 어지럽히고, 예의를 찾아보기 힘들고, 일은 날림으로 하는 것 같은 인상에... 그래서 이들을 챙겨주는 것이 달갑지 않다. 이 감정의 실체를 보려 노력했지만 쉽지않다. 그저 어서 일을 끝내고 떠나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 분노 아닌 분노, 미움이 결국 나의 마음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도 알겠는데 쉽사리 흘려보내지 못하겠다. 틱낫한 스님의 방한을 계기로 다시 마음 공부좀 해야 겠다. 내 안의 호랑이를 잠들게 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5월 7일 맑음 오전 8도 오후 24도 하우스 온도 오전 19도 오후 34도

 

날씨가 뜨겁다. 방송에선 초여름날씨라고 시끄러운데 하우스는 이미 한여름이다. 온종일 시원한 물을 찾는다. 그야말로 물배 채우기다. 물, 물, 물, 물 좀 주소. 이러다 더위 먹는 것은 아닐까 은근히 걱정된다.

 

아침 일어나자 마자 숙소 밖을 거닐어보니 이 마을 농부들은 해가 중천인듯 움직이고 있다. 사과밭에서 사과나무를 손질하고, 아주머니들은 삼삼오오 밭에 쭈그리고 앉아 북주기를 하고 있다. 정겹고 아름다운 모습이건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신체적 고달품이 전해져 오는 것 같다.

 

 

오전엔 하우스 9번동에 고추를 심었다. 토종 고추인 붕어초, 오갈초, 청룡초, 이육사를 심고, 나머지 공간에 무한질주라는 맵지않은 고추를 심었다. 땀이 주르륵이다. 토종 고추는 잎이 약간 말려들어 있는 모양새가 특이하다.

오후엔 볍씨를 파종했다. 토종 종자들을 1킬로그램씩 파종하다보니 다소 복잡하다. 씨가 서로 섞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니 신경이 곤두선다. 오후 한나절 내내 겨우 6종을 파종했다. 아직도 15종 정도가 남아 있다. 모판에 상토를 절반 정도 붓고 물을 충분히 준다음, 볍씨를 흩뿌리고 다시 상토를 덮는 과정이다. 보통 한달 정도면 모가 나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는다. 5월 10일 경이면 직파가 가능할 정도로 온도가 올라가 있는다고 한다. 그러니 농장에서 이제 파종하고 있는 건 다소 늦은감이 있다.

하우스가 뜨거워지니 방울토마토와 고추의 모종을 관리하는게 만만치 않다. 방울토마토는 17도에서 30도 사이를 유지해주면서 다소 덥게 해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초반에 생육이 왕성하게 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수확양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고추는 반대로 초반 생육 과정에서 다소 스트레스를 주어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한다. 요즘 새벽이면 아직도 3~4도 정도인데, 하우스 안이라 해도 겨우 6,7도 정도 일텐데, 이 정도 날씨에 견디도록 훈련시키는게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우스 측면을 살짝 10센티 정도 열어두고 밤새 놔두기로 해본다. 전문가의 견해이긴 하지만 농작물이란 것이 풍토에 따라 다소 다르게 성장할 수 있기에 세심하게 지켜봐야 할듯 싶다.

 

사람도 작물처럼 그 특성이 있을 것이다. 스트레스에 노출되어야 강하게 자라는가 하면, 좋은 환경 속에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꼭 시련을 거쳐야 성장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요즘의 육아는 토마토 기르듯 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 평온하게 자랄 수 있도록 무척 신경을 써 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행복해야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는 생각이 일반화된 것이다. 아이들과 공감하고, 사랑을 표현하고, 칭찬해줄 때 쑥쑥 성장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요즘의 아이들은 고추가 아니랄 토마토인 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5월 6일 맑음 오전 3도 오후 25도 하우스 온도 오전 18도 오후 31도

 

지난 주말엔 개인적 사정으로 농장일을 하지 못했다. 그동안에 방울토마토가 3개동 하우스에 심겨졌다. 점점 관리해야 하는 작물이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또한 수확 시기에 얼마나 많은 손길이 가야할 것인지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오후엔 고추를 심기 위해 9번 하우스의 정지 작업을 했다. 두둑을 만들고 점적호스를 깔고 멀칭을 했다. 벌써 몇번을 하다 보니 꽤 익숙해지긴 했지만, 힘든건 여전하다. 6번 하우스에 심겨졌던 상추엔 물을 듬뿍 줬다. 상추 잎이 말려들어가는 증상이 보이면 물을 줘야 한다고 한다. 스프링쿨러로 1시간이 넘게 줬다. 더 흠뿍 줘야 하지만 회의가 계획되어 있어,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주기로 했다.

 

 

 

농장으로 오가는 길목에 요즘 사과꽃이 한창이다. 관광객이라면 잠깐 차를 멈추고 사진을 찍고 향기도 맡아보고 할건데... 그냥 일과가 끝나고 숙소 앞에 있는 사과밭에서 잠깐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숙소 뜰에 핀 매자꽃엔 벌들이 웅웅거린다. 진짜 말 그대로 웅웅대는 소리가 꽤 크다. 토마토 수정을 위해선 호박벌을 이용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벌들도 하우스 안이 더울땐 꼼짝도 안하고 숨만 헐떡헐떡 몰아쉰다고 한다. 부지런한 벌이 이럴진데 벌써 30도를 넘어선 하우스 안에서 여름을 어떻게 날지 슬슬 걱정된다. 뭐,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은 없지만. 그래서 걱정은 이제 그만! 그저 이 한가로운 풍경이나 잠시 즐겨본다.

 

 

 

땅바닥엔 조그마한 꽃들 세상이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모양새가 모두 아름답다. 막 피려는 꽃봉오리는 그 희망찬 내일 덕분에 오히려 더 화사해보인다. 내일은 활짝 꽃 피리라는 것. 그런 희망이 꽃봉오리마다 스며들어 있다. 또한 이들은 지는 걱정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의 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는 것, 그래서 찰나라 하더라도 찬란함을 꽃피우는 것이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5월 2일 오전 맑음. 오후 소나기 오전 5도 오후 19도 하우스 온도 오전 18도 오후 29도

 

오전엔 볍씨 모판을 만들기 위한 육묘장 정리를 했다. 10번 하우스의 땅을 평탄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트랙터로 로타리를 친 후 트랙터 바퀴로 땅을 다졌다. 바퀴가 울퉁불퉁하기 때문에 2차로 트럭을 하우스 안으로 집어넣어 왔다갔다 하며 평평하게 만들었다. 아직 운전이 서툰 L씨에게 트럭을 운전하도록 했다. 일종의 운전 연수인 셈이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타는 냄새가 났다. 아무래도 클러치 쪽에 문제가 발생한 듯한 낌새다. 큰 문제는 아닌것 같아 한숨 돌렸다.

 

평탄화 작업을 하면서 하우스 안의 풀들을 깨끗이 치워냈다. 하우스는 일종의 사막이라고 했다. 물론 10번 하우스는 찢긴 상태로 오래 있다보니 사막이라 하기에는 적정치가 않다. 그래서일까. 정말 다양한 풀들이 자신의 개성을 한껏 드러내면서 생명력을 뽐내고 있었다. 비록 인간의 욕심에 의해 작물만이 선택되고 다른 풀들은 사라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온힘을 다해 자라고 있다.

 

다르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 자연이다. 또한 생명이다. 똑같도록 강요하지 않는 것, 자신의 생명을 자유롭게 펼치는 것,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없이 하루하루 성장하는 것. 그 모습을 닮고 싶다.

 

오후엔 괴산군농업연구소에서 유기농산물, 유기가공품 인증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외국에 비해서도 너무나 까다롭고 복잡한 인증제에 혀를 내둘렀다. 농부가 100% 농약 사용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농자재 중 어느 하나가 사업체의 비양심적 행태로 인해 농약이 들어가 있는 경우 유기농 인증을 받지 못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렇게 철저한 제도가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얼마만큼 주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땅도 살고 농부도 살고 소비자도 살고 지구도 사는 길. 가까운 듯 멀어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