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란 무엇인가 _이정우
100129. 상상마당

 

시작하기] 개념이란 왜 필요한가? 삶의 일관성을 갖기 위해 필요하다. 개념이란 항상 옳은 것인가? 사람의 체험을 평균화시킨다는 점에서 개념은 곧 사물의 타살과도 같다. 

오늘의 주제] 주체 

주체의 어원적 의미는 피조물이다. 즉 신이 아래로 던진, sub-jectum. 같은 단어가 중세에는 신민의 의미로 쓰였으나, 현대에 와선 자아, 의식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지난 2주간의 수업에서 재현의 논리와 이에서 탈피하는 삶에 대해 공부했다. 이 때의 논리는 여러 사건이 존재하고, 이로써 개별의 진실이 만들어진다고 배웠다. 반면 주체의 개념에서는 여러 특성들을 지닌 실체적인 무언가를 가정한다. 이를 우린 '술어적 주체'라 말한다. 말 속에 이미 주어-술어 방식의 함축이 존재하며,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도 실체-속성의 사유를 하며 살아간다는 논리다. 

즉 우리의 인식 체계는 술어를 기초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의미다. 그러나 여기서 질문 하나. 정말 술어로 한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가능한가? 

우리는 끊임없이 변해가는 존재다. 술어의 개념은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변화가 자기와 자기 술어간의 대립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자기 술어로 게으르다라는 단어를 갖고 있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이 사람이 자기술어와 자기를 일치시키지 않고 불만족감을 가질 때 그는 이 대립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할 것이며, 그 결과로 새로운 자기 모습, 즉 자기술어를 갖게 될 것이다.  

한편 술어의 세계는 나 뿐만 아니라 세계에도 적용된다. 인간의 삶은 술어, 즉 상징의 세계 속에 자리한다. 가령 한 개인은 어느 국가에 살며, 어떤 이름을 갖고, 어떤 성(가문)에 종속되어 있다. 이들은 술어로서 표현된다. 

여기서 '이름-자리'를 갖는 사람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때의 사람은 두 가지 문제를 갖게 된다. 하나는 술어가 곧 내가 아니라는 문제, 하나는 술어가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게 아닌 이미 주어졌다는 문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두 가지 극단적 방법이 존재한다. 하나는 상징체계의 밖으로 나가 도사가 되는 법, 하나는 상징체계를 바꾸기 위한 투쟁, 분신자살을 하는 법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이 어디쯤에서 살아간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안은 채로.

한편 두 번째 문제가 있다. 사람은 '나'가 아닌 '우리'로 살아간다는 점이다. 특히 현대에 접어들어 개인은 수많은 우리 속 어딘가에 점박혀있다. 가령 나는 한국인이며, 대학생이며, 서울사람이며, 인문학 수업을 듣는 사람이며 등. 고로 자기-자기술어간의 간극에 더해 나술어-우리술어의 간극이 이중으로 발생하게 된다. 여기서 일반화의 오류가 발생한다. 나는 그렇지 않지만 한국인이기 때문에 -것이다, 란 명제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갈 길은 하나다. 무수한 주체로서의 우리, 나 중에서 진정한 우리, 나를 찾는 일.

인간에겐 두 가지 사유 방식이 존재한다. 공간적 사유와 시간적 사유. 각종 형상화, 철학의 사유가 공간적 사유라면 역사, 천지창조의 개념은 시간적 사유에 속한다. 시간적 사유란 곧 동일성과 차이의 사유로써 이중에서도 핵심이 되는 내용은 differentiation 차이 생성의 문제이다. 차이를 만드는 힘이 곧 시간이다. 시간을 통해 나는 변한다. 이 때의 시간은 타자, 관계로도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나를 변화시키는 건 관계의 힘이다.

비슷하지만 다른 두 가지 개념이 있다. 정체성과 동일성. 동일성이 유일무이한 불변함을 뜻한다면, 정체성은 시간의 흘러감 속에서 잃지않는 동일성을 의미한다. 이 정체성을 갖는 것이 사람의 목표일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삶의 리듬이 필요하다. 이 리듬이 바로 동일성과 차이의 리듬이다. 나와 타자간의 균형이 필요하단 말이다.

현대는 고유성을 말살시키는 세계다. 고유명사를 다루는 역사보다 객체성을 다루는 과학이 판을 치는 시대다. 한 존재마다의 이름이 사라져가는 시대다. 이 시대에 필요한 건 주체의 힘이다. 물론 이 때의 주체는 딱딱하고 불변하는 identity가 아니다. 주체성에만 몰입된 인간은 객관적인 현실을 볼 수 없는 돈키호테가 될 수밖에 없다. 객체만을 중시하는 사람 또한 하나의 부품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언제나 중요한 건 조화. 커다란 삶의 줄거리 안에서 각 고유명사가 살아 숨쉬는 '이름'이 있는 세계로의 꿈을 꾸고, 이를 위해 투쟁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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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ghong 2010-02-05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감사감사...너무 정리 잘 하셨다...강의가 잘 안들려서 집중하느라...필기도 잘 못했는데....정리 잘 해주셔서 감사요...역시 정리를 너무 잘하세요....

굼실이 2010-02-06 22:09   좋아요 0 | URL
내용이 쉽지 않아서 (개념 수업을 들으면서 개념을 잘 못잡겠더라구요^^;)
이상한 부분은 많이 지적해주세요^^

blue0729 2010-02-06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정리 잘하셨다. 저는 시도해봤는데, 머릿속이 어질어질해서 못하겠더라구요ㅎㅎ// 고유명사가 살아있는 세계, 살맛 나겠죠.

굼실이 2010-02-06 22:10   좋아요 0 | URL
전 오히려 너무 고유명사에 몰입되지 않게 노력해야겠단 생각도 했어요ㅎㅎ (개인적으로요)
어쨌거나 현대는 너무 객관성을 중시하니까요, 좀 더 고유명사가 활성화될 수 있는 사회라면 지금보다 다양하고 즐거울 거리가 많겠단 생각은 들어요^^
 

그 사이 많은 후기가 올라왔네요.  

저도 그날 집에 돌아와, 몇 자 적어보고 싶단 마음이 들만큼 

머릿속이 복잡하기도 하고, 질문 하셨던 분들의 얼굴과 목소리들이 떠오르면서  

묘한 감정에 휩싸였지만, 결국 그냥 컴퓨터 창을 닫고 말았어요. 

 

당시엔 말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그때 제가 들었던 느낌은 

며칠 지나고 생각해보니 이런 거였어요.  

멀리서 볼 땐  왠만한 사건이나 재난에는 눈 하나 깜짝 안할만큼 많이 무뎌져 있고,  

시류에 몸을 맡기고 밥 벌어먹기 바빠 개념 없이 사는 것 같아보이지만. 

하나하나 들여다 보니 각자 외로이 투쟁하며 살아내고 있구나 하는.  

 

투쟁이란 말이 좀 어색하긴 하지만.  

이 거대한 사회에서 인간 각자가 자신의 삶을 살아내느라 

 눈물겹게 각개분투하는구나하는 인상을 받았어요.  

 

외로운 것 같기도 하고, 절박한 것 같기도 한.  

저 또한 마찬가지 심정이니까, 금쪽같은 금요일 저녁에 강의실에 와 앉아있는 거겠죠.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웃긴 이야기지만  

새로운 종교(?)를 만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삶에 대한 태도나 가치관들이 많이 수정되는 것을 보게 되네요.  

몸과 마음에 도움이 되는 건 뭐든지 한다는 수유너머 선생님들처럼, 

우리도 상처받지 않고, 강하게, 뚝심 있게 우리 길을 가기 위해선 

이러한 공부가 약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함께 마지막 10강까지 꼭 사수하자구요~   

 

결국 한마디로 화이팅하잔 이야긴데, 뭘 이렇게나 길게 썼을까.^^  

그럼 내일 강의실에서 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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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ghong 2010-01-28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이팅~~~~신흥종교..그거 맞는 듯...ㅎㅎ

알라딘공부방지기 2010-01-29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이정우 선생님이신데... 상당히 다른 스타일의 강의가 될 듯 한데 역시나 떨리는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따 뵐게요~ ㅎㅎ

분다 2010-02-03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맞아요.. 저도 완전 신흥 종교를 접한 기분이었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설파하고.. ㅎㅎ 전도하는 느낌이 들더라니까요, 너, 이렇게 살면 안돼~ 채운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재현하는 삶을 벗어나래`~ 이러면서... ㅎㅎㅎ 아직도 푹 빠져있답니다

pattering 2010-02-04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강의도 강의였지만, 저도 이렇게 다른 분들의 글을 읽으면서 모두들 '외로이 투쟁하며 살아내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몸에 좋고 맘에 좋은 공부 마지막 강의까지 함께해요~>ㅁ<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홍대에 상륙한 것이.. ㅋ~ 첫날 저절로 웃음이 베어저나오는등 얼마나 겸연쩍었는지 모르겠습니다.(다시 학생이 된 것 같은 착각이... )
심리학 수업 듣던 때가 아주 먼 추억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부지런히 더 나이 들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앉아 있으면서, 그리고 열성적으로 수업에 임하는 많은 분들을 보면서 얼마나 새로운지 모르겠습니다. (꼭 혼자 주책 빠진 놈 같네요..)
어떻게 어떻게 살다 보니깐 이름을 붙이기 힘든 흔한 권욕주의에 사로잡힌 하찮은 일반인이 되어 버렸는데요. 다시금 인문학 몇강을 듣고 나서 예전 20살의 말랑말랑한 정신적 유연성을 획득하리라, 변화에 성공하리라 답보하긴 힘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2010년에 다시 알라딘에서 좋은 기회를 제공하였고 나 역시 선택하였으니 올해엔 조금이지만 가슴에 작은 파문이 하나 생겨서 점차 퍼져나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2004년도 일본영화 'Survive Style 5+' 입니다. 1,2강 이후 생각나서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올려 봅니다. 

한번 꼭 보세요^^

 

  

친구들에게 말했어.
우리 아빠는 아빠이기도 하고 새이기도 하다고..
웃는 애들도 있었지만 가네코는 멋지다고 했어.
아빠가 새라니까 만화에 나오는 영웅 같데.. 날 수 있으시냐고 해서 곧 그럴게 될 거라고 했어.
전 괜찮아요. 아빠가 새라고 해도..   존재하는 것은 모두 변하니깐요.
아빠가 ‘새’가 된 것이 문제 되는 건, 우리의 시각이에요..
아빠는 단지 새로 변하신 것뿐.
이제는 우리가 바뀌면 되는 거잖아?
‘새’아빠는 ‘새’ 아빠대로 좋은 점이 많아요...

언제까지나 슬퍼만 할 수 없어요.
‘새’아빠와 즐겁게 살면 되는 거죠.
어차피 인생은 짧잖아요.
닭고기를 못 먹게 되도 난 상관없으니깐 ... 





 네 역할은 뭐냐? 
 

 

WHAT IS YOUR FUNCTION LIFE? 이 물음이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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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ghong 2010-01-28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 감사 드려요...그러게요 저도 거의 20년만에 홍대 앞거리를 걸어봤답니다. 뭐가 그렇게.... 사는게 바쁜지 말이죠..사실 어머니 집도 그곳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데요....저역시 생각이 그리 빨리 바뀌리라 믿지는 않는답니다. 하지만 변화의 가능성이라도 아직 내게 남아 있다는 걸 발견한다는게 참 중요한 거 같아요..짜잔...우리 멋지게...우리의 사고를 바꿔보자구요...에고 그런데 2번째 강의는 더 말들이 복잡해서...책을 읽어도...어려우니..."아~~이 단순 무식이여...'ㅋ

알라딘공부방지기 2010-01-29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빠-새의 비행장면이 너무 멋진데요 ㅎㅎ
 

프로이트와 관련돼, 마지막으로 질문을 했던 사람입니다....ㅎㅎ

음, 정확히 얘기하자면 질문이라기 보다는 우려섞인 마음에서 무언가 확인을 하고 싶었던 거 같기도 합니다...^^

철학강의라는 거, 이렇게 여러 사람들과 강의를 들어본 게 대체 몇년만인지... 15년 쯤 되었을까요?  

극찬에 마지않던 후기 속 1강을 놓쳐버리고, 뒤늦게서야 자리하게 된 채운선생님의 두번째 강의, 좋았습니다. 

차이의 사유에 대한 대목이 참 좋았고, 특히나 모네의 그림들과 곁들여 들려주신, 지금여기의 감각, 진실은 다만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고 호흡하고 감각하는 이 순간에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는 철저하게 지금 이 순간의 진실에 의지해, 현재형을 살아갈 뿐이다는 메시지는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 듯한 서늘함과 신선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었지요. 

후기를 올려주신 다른 분들의 글을 열심히 읽으며, 아, 지난번 내가 들었던 강의가 저토록 심오하고도 어려운 내용이었구나, 감탄하며 내 맘대로 편하고 쉽게 해석해버린 선생님의 메시지가 혹 왜곡된 게 아닐까 심하게 의심하면서도, 그래, 아무렴 어떠랴~ 내가 듣고 느끼고 깨닫는 것만이 진실일진대, 누가 내게 옳다 그르다를 말할 수 있으랴 하는 배짱으로 스스로의 무지를 위로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날 시간이 없어 최대한 빨리 질문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말이 빨랐던가요? 화가 날 이유도 없고, 화가 나지도 않았는데, 화내지 말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적이 당황했습니다. 아무래도 마음도 급하고 긴장도 하고 해서 다들 제가 화가 난 것처럼 느끼셨나봐요. (뭐, 프로이트와는 전혀 상관도 없는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날 건 없었습니다.) 

다만, 첫번째 질문자의 프로이트의 구순기/항문기/ 등등의 개념 또한 재현의 사유냐는 질문에 대한 선생님의 답변이 알쏭달쏭했던 건 사실입니다. 

제 기억에 의하면, 그 역시 재현의 사유다라는 전제와 함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비판하셨는데, 그 비판의 근거를 짧은 선생님의 답변에서는 캐치해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기억나는 건, 강남에 줄줄이 걸려있는 신경정신과 간판들(자본에 잠식된 정신분석을 애기하시며)과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이상적 부모상에 관한 개념의 횡포(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아이들을 순식간에 착 가라앉게 만들어버리는 신경안정제의 남용들을 열거하시며 차라리 정신과에 가서 주저리주저리 하소연할 거면 친한 친구를 붙잡고 수다를 떠는 게 훨씬 더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의견을 피력해 주셨지요. 제 기억이 맞다면요

이때부터 제 가슴이 불안정하게 뛰었습니다. 혼란스러웠거든요. 선생님의 저 얘기는 도대체 무슨 얘기인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대한 비판인가, 심리학에 대한 비판인가, 심리학과 정신분석학 전반에 대한 비판인가, 신경정신 의학에 대한 비판인가 심리치료에 대한 비판인가. 지금도 사실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분명한 인상은, 아무튼 정신분석, 심리학 뭐 이런 것을 싸잡아 매도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네, 제 개인적인 느낌으로는요. 그런데도 납득할만한 근거를 도무지 찾아낼 수 없으니, 선생님의 의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일순간 혼란스럽고 긴장되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다 결국,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는 그 여성의 질문에 이르러서는, 뭔가 가슴이 퍽 막혀왔습니다, 아니, 가슴이 퍽하니 아파왔다는 것이 맞을테지요. 만약 제가 질문하셨던 분의 상황이었다면, 저는 분명 분노했을 테니까요.  

저는 그 여자분도 저와같은 혼란스러움 속에 있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어찌할 수 없는 내면의 문제를 극복하고자 나름의 노력을 하고 계신 상황에서, 선생님이 던져주신 짧은 단서들로는 도저히 내용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으리라 봅니다.  

이건 누군가 얘기한 것처럼, 프로이트를 신봉해서도 아니고 정신분석의 위력에 대한 반증도 아닙니다. 다만 선생님이 하신 그 코멘트의 근거를 알아채지 못하기에 혹 알지 못하기에 도대체 저게 뭔 소리인가, 그런 심정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그 당혹스러움을 달래줄 납득할만한 답을 얻고 싶었던 것일테지요. 순전 저의 투사일지는 모르지만 그날의 저는 그랬으니까요.  

이제 와서 이렇게 구구절절 지난 일을 쓰는 이유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떤 점 때문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뻥'이 되었는지를 좀더 알고 싶어서입니다. 어느분 글 속에, 정신분석은 '뇌의 메커니즘'이 발견되면서 완전히 '뻥'이 되어버렸다고 한 거 같은데 혹 그 부분에 대한 책이나 내용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너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알기로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정신과 의사에게 '정상/비정상'을 진단할 권리와 권위를 정신의들에게 이양함으로써  그 이후 정신분석이 자본주의적 권력과 맞물려 돌아가고 있음에 대해 비판이 있다는 점과 또 프로이트의 무의식에 대한 이론 또한 지난 시대의 기념비적 유물로써 기능할 뿐이라는 점, 사르트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의식을 핑게로 자신의 책임을 외면하게 한다고 하여 비판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모두 선생님이 강의에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서로다른 관점에서의 진실이라 봅니다.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정신분석 비판은 이정도뿐이어서, 이것만으로는 선생님의 답변내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 궁금증과 답답함을 풀어줄 무언가를 찾아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요점은, 그날 마지막 질문시간에 나온 프로이트에 대한 얘기들을 누군가 정리해서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말씀. 번거로우시면 참고자료를 올려주시는 것도 환영이구요. 혹시 제가 뭔가를 톡톡히 오해하고 있는 거라면 그 부분에 대한 깨우침도 언제든 환영이구요..(무식한 건 죄가 아니잖아요...ㅜ.ㅜ) 많은 가르침 부탁드릴게요...꾸벅...^^ 

아, 그리고 마지막 한가지. 제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간관계상 선생님께서 서둘러 답변을 해주셨지요. 심리학이든 정신분석이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쪽을 활용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 그러나 내게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으면, 나는 지금 현재의 '장'을 바꾸겠다는 말씀. 그 말씀은 무슨 뜻인지 너무 잘 아는데, 제가 궁금한 것은 그 부분이 아니었다는 것과 때문에 제 질문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답을 해주셨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러니까 혹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선생님이 프로이트를 매도하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선생님 입장이라면 나는 이렇게 하겠다, 이런 얘길 했을 뿐인데, 당신이 내용을 오해해서 화를 냈다 이런 식으로 오해!하시지는 마시길.  

사실 선생님이 그렇게 답변하시는 통에, 막판에 정말 김이 샜다는. 이렇게 마무리를 할 거면, 처음부터 이렇게 얘기하셨으면 그 열띤...ㅎㅎ 프로이트에 관한 질문들은 없었을 테니까요. (아직도 그 질문을 프로이트에 관한 거라고 해야 할지도 의문이지만)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인데, 선생님의 '장'을 바꾼다는 방법은, 심리학 중 게슈탈트학파의 이론과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합니다. 제가 알기에 대부분 모든 심리학의 주요메시지는 '지금 여기'를 살라!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요......아무튼 귀중한 답변들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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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ghong 2010-01-26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수유너머 강원(070-7799-5877)의 채운 선생님께 직접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무래도 채운선생님이 답변을 주시는게 필요할 듯해서요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답변을 주실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토요일에도 근무인지라...) 질문시간이 저녁 10시를 넘어가면서 시계를 열심히 봤던 사람입니다..다음날에 대한 부담이 크거든요...하지만 님의(어떻게 부를지 몰라서요..용서하시라) 질문이 화가 난듯한(?) 질문이라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단지 말이 조금 빠르구나 하는 생각만 했죠..그러니 그건 오해 안하셔도 될 듯 합니다. 그리고 전공상(정신과의사는 아니지만 직업이 의사입니다..대학원에서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했구요) 프로이드니 융이니..뭐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잠깐 배웠지만 ..저도 질문자가 알고 있는 정도라 뭐라 이야기는 못하겠지만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의 한계에 대해서는 많이 배웠답니다. 아마도 그런 부분을 건드려주신게 아닐까 싶구요..제 옆의 여자분이 공황장애를 이야기 하면서 질문했던 건....저도 이해를 합니다...아무리 나의 장이 바뀐다고해서 사회적인 구조(나를 둘러싸고 있는 구조...가족이나 직장이나 등등..또 사회구조적인 억압구조들)적인 장이 바뀌지 않는데 어떻게 내가 그 안에서...재현의 사유를 넘어서 사유 할 수 있을가에 대한 것 역시 저도 동감합니다...이건 마치 (죄송합니다..제가 교회 다니는 사람인지라..이런 예를 듭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빵을 줄 것이나 아니면 복음을 줄것이냐에 대해서 청년시절부터 고민했던 부분과 맞아 떨어집니다(조금 다르긴 하지만요) 빵을 주자는 쪽은 민중신학쪽으로 갔고 복음을 주자는 쪽은 그냥 교회에 남아서 사회구조적인 문제는 도외시 한체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놓고 마치 그것이 모든 인것처럼 이야기를 하죠...일설하고....하지만 채운선생님의 1강,2강을 종합해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재현의 사유를 넘어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거죠...그게 불합리해 보일지라도..또 그게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말입니다..그게 우리의 삶에 대한 태도라고 전 받아 들였습니다. 죄송합니다..저의 이해가 부족해서 그럴수도 있지만요...음~~채운샘이 어떤 답을 주실지..기대해 봅시다..이거 조만간 우리팀이..수유너머 사무실을 한번 찾아가서 심도있는 이야기를 나눠야 할듯 합니다..ㅎㅎ

붉은루핀 2010-01-26 17:47   좋아요 0 | URL
이렇게 마음써주시다니, 감사드려요~ 채운 선생님의 귀한 코멘트는 다 froghong님 덕분입니다..ㅎㅎ 이번 스터디를 통해서, 일상의 삶속에서도 매몰되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구나 느끼면서 스스로도 더욱 고무되고 고양되는 느낌입니다. 또한 내삶에 대한 책임도 더해지는 듯한 느낌이구요.
아무튼 이렇게 귀한 분들과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게 된 것, 정말 행운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동기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이번 스터디를 좇아가볼 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froghong 2010-01-26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름을 보니까 1강때 주차 공간을 못 찾아서 집으로 돌아가셨다는 분이시군요...지금 붉은 루핀님의 글을 프린터 해서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저도 나름 고민해 볼께요.. ...

채운 2010-01-26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의사샘께서 간곡히 말씀해주시더군요. 요 사이트에 들어와서 답글을 달아주었음 하구요. 하하 보살이십니다. 음, 제가 차시간만 아니었대도 그날 얘기를 마무리짓고 오는 건데, 시간에 쫓겨 서둘러 마무리하고 말았습니다. 붉은 루핀님 표정을 보고 알았습니다. 제 대답이 매우 석연치 않았다는 것을요.^^
지금 질문하신 것에 대해 제가 장황하게 대답을 할 능력은 없구요(-_-;;)
다만, 제가 저질러 놓은 말들에 대해 답변드리는 것으로 하지요.

프로이트의 심리학이 재현적인 것이냐고 물으신 것에 대해.
물론, 프로이트의 심리학 전체를 '재현의 사유다'라고 한마디로 평가할 수 없지요.
다만 제가 말씀드린 것은, 프로이트의 심리학에 의존하고 있는 정신분석학에도 여러 스펙트럼이 있다는 것과,
그 중에서 무의식을 '표상적으로' 해석하는(어떤 행위나 언어를 무의식의 '표상'으로, 특히 가족주의적 표상으로 환원하는) 정신분석학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씀드렸던 겁니다. 그 예로, 요즘 유행하고 있는 '정신과 클리닉'에 대해 제가 갖고 있는 회의적 생각을 말씀드린 것이구요. 그러면서 '차라리'가 아니라, 좀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의미에서 '관계의 장'을 바꾸는 실험을 하시기를 권유하고 싶다고, 그게 정말로 주체적이고 궁극적인 '치료'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씀드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도 많이 아파본 사람으로서(^^) 말씀드리면, 그 아픈 게 마음이든 몸이든(아니, 실은 이 두가지가 불가분하게 연동되어 있는 것이지요) 약만으로는 치유가 불가능합니다. 스스로를 돌파해 나가려는 용기와 실천이 없다면 약도 언젠가는 독이 되고 말지 않을까요? "저 벽을 넘어설 수가 없다면 벽 밑을 파서라도 가야 한다"라고, 정신분열증을 앓았던 반 고흐는 말했습니다. 그림을 통해 자신의 병을 건강으로 전환시키려고 했던 것이지요. 화가공동체를 꿈꾸면서 말입니다.

사실 제가 강의 중에 프로이트를 직접 언급한 기억은 없습니다. 다만 '표상'을 설명하면서 '표상적 무의식'에 대해 잠깐 언급을 했었지요. 첫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역사적으로 언급되는 고전과 사유 중에서 제가 함부로 폄하하고 무시해도 좋을 만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프로이트도 마찬가지지요.^^ 저도 그의 텍스트를 재미있게 공부했고, 그의 사상이 20세기에 다양하게 분기하는 양상을 보면서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마르크스와 니체와 프로이트가 20세기 사유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몇 권의 책들이 있구요,
저는 개인적으로 들뢰즈와 가따리의 공저 <앙띠 오이디푸스>를 읽었던 충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 책의 부제가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입니다.
68년 혁명을 통과하면서 이들은 '무의식'과 '욕망'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지요.
제가 정신분석학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많은 부분 이 책에 빚지고 있습니다.
쉽진 않지만, 그리고 다분히 제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정신분석 비판과 관련해서 이 이상 가는 책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의역학을 공부하면서 무의식의 문제를 몸과 관련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의식을 어떤 실체로서가 아니라 우주의 운행, 사유, 몸, 마음.. 등등의 문제와 함께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고 할까요. '나를 바꾼다'(전 이게 '치료'라고 생각하는데요)는 문제와 관련해서 제가 요즘 급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입니다. 제가 '관계의 장' 운운한 건 심리학이 아니라 이런 동양적 사유를 염두에 두고 드린 말씀이었습니다.(게슈탈트 심리학은 제가 아는 바가 없어서요-_-) 이건 혼자 공부하기가 어렵구요, 혹시 마음이 동하신다면 남산에 있는 연구실에서 세미나와 강좌를 강추해 드립니다.^^
어떤 사유들이 비슷한 용어를 공유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형성하는 사유와 개념이 사용되는 맥락이 전혀 다르다면, 그건 전혀 다른 개념이고 전혀 다른 사유들이지요. '지금 여기'를 살라고 하는 것도 그 맥락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뭐, 비슷할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겠지요.^^

제가 드릴 수 있는 답은 이 정도네요.
속 시원하진 않으시리라 생각되지만, 질문을 품고 지속적으로 열공(!)하시다보면 스스로 답을 구하게 되지 않을까요?
붉은루핀님의 고민이 묻어나는 질문 감사합니다.
고민하는 힘이 행위하는 힘이 되시길!
또 다른 인연장에서 또 다른 공부로 만나 뵙기를 바랍니다.^^

붉은루핀 2010-01-26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채운 선생님! 이렇게 코멘트를 해주시다니, 감사드려요..^^ 역시 질문을 올리길 잘했단 생각이 듭니다. 첫강의를 놓쳐서 아마 큰 맥락속에서의 선생님 메시지를 놓친 부분이 있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을 땐 분명 내가 모를 뿐 어떤 근거가 있을 거란 생각으로 이리저리 검색해 보다 위에서 소개해주신 <앙티 오이디푸스>라는 책도 알게 되었어요.(근데 너무 어려울 것 같아, 읽는 건 엄두가 안나네요..ㅎㅎ)
제 경우, 10대 때부터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고 20대도 심리학의 이러저러한 책들에 의지해 왔고, 지금은 융과 신화, 꿈분석에 대한 관심에까지 이르렀어요. 그리고 앞으로는 이 관심을 좀더 구체화해서, 본격적으로 공부해 볼 예정이에요. 제가 공부하려고 하는 부분이 예술상담치료 쪽이다 보니, 아무래도 선생님 답변의 몇몇 뉘앙스에 대해 민감했던 것도 같구요.
아무튼, 위에서 다시 설명해주신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안심이 되는 기분입니다.(왜 '안심'이 되는지 모르겠군요..ㅎㅎ) 답변주셔서 너무 감사하구요 앞으로도, 책을 통해서 강연을 통해서 활발히 만나뵐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행복한 저녁 되세요..^^

froghong 2010-01-26 19:34   좋아요 0 | URL
우와~~예술상담치료라...저도 은근 관심이 가는 분야랍니다. 나름 상담도 공부했고...미술치료나 음익치료도 관심을 가지고 있답니다. 제가 부러워 하는 사람중 한분이시군요...그 관심을 많이 많이...나눠주십시오..

froghong 2010-01-26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채운 선생님~~답변에 너무 감사 드립니다. 제가 혹시나 무례했던 것은 아니죠???!!! 직접 전화를 드리면서도 그게 걱정이었는데 흔쾌히 받아주시고 답변까지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다시한번 '마음의 의사'라는 표현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동입니다....

blue0729 2010-01-26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h My God! 채운선생님까지 이렇게 답을 해주셨네요- 저도 붉은루핀님께서 질문하실때 약간 흥분은 하셨어도 화나셨다고는 생각안했답니다^^;; 너무 신경쓰시지 않아도 될것 같아요// 앙띠 오이디푸스 저도 봐야겠군요(들뢰즈라는 말에서,,, 주춤주춤하지만요ㅠ 과연 읽고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요ㅋㅋ) 뇌과학에 대해 글을 올린건 저였는데// 저도 자세히 공부한 것이 아니라 책만 몇권 본지라 자신있게 대답은 못드릴거같네요ㅠ 크리스 프리스의 <인문학에게 뇌과학을 말하다> 쉽고 부담도 없는 괜찮은 책인 것 같아요-인간의 정신활동은 뇌 작용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당연하지만 아주 기막힌 사실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또 행동주의부터 뇌과학까지 폭넓게 심리학의 분야를 다루는, (혹은 소설책같은ㅎㅎ) <스키너의 심리상자열기>도 좋은 것 같구요. 프로이트에 대해 정말 아는게 없지만,, 제게는 인간 정신작용을 욕망과 무의식이 아닌, 측정가능한 뇌 활동을 통해 분석하는 신경과학이 더 객관적이어 보이더라구요.. 기억은 뉴런(신경세포)의 네트워크 연합인 점에서 억압이나 무의식 같은 개념은 소용이 없어 보이더군요.. ㅠㅠ 아 공부를 더열심히 해야겠네요 이 부정확하고 안타까운 쥐꼬리 지식 ㅎㅎㅎ

blue0729 2010-01-27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종일 공부하는 입장이라 이런게 계속 보이네요 ㅎㅎ
도정일, 최재천 공저 <대담>에 11장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소설인가 과학인가" 입니다. 매우 쉬운말로 정신분석에 대한 인문학자와 과학자의 입장을 잘 대변해주고 있더군요^^ 물론 정확한 지식을 통하지 않은 것이라 언제든 경계해야겠지만요- 그래도 도정일님과 최재천님의 책이니.. '권위에의 오류'를 저지르더라도 믿게 되네요ㅎㅎ

붉은루핀 2010-01-28 16:31   좋아요 0 | URL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소설인가 과학인가.. 제목이 굉장히 자극적이네요..ㅎㅎ 다양한 경로를 통해 앎이 넓어지니 이 또한 즐거운 일인 거 같습니다. 저도 프로이트의 이론이 모두 옳다 그렇게 생각지 않는 사람입니다. 특히 그의 성욕을 중심으로 한 환원주의적인 이론들은 때론 (쎄게 얘기해서) 역겹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현대의 다양한 심리학과 관련 성과들이 그의 업적에 빚을 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요. 비판할 건 비판하고 인정할 건 인정하며, 모든 과학이 그러하듯 또 프로이트의 이론을 딛고 새로운 지평을 향해 나아가는 거지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알라딘공부방지기 2010-01-29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 은 미국 정신의학 협회에서 출판하는 서적, 일종의 정신질환 사례 및 진단명 모음? 인데, 몇년마다 개정 되고 있어요. 그때마다 내용이 추가/삭제 되지요. 주로 추가가 많지만... 이 말은, 몇 해 전에는 정신질환의 범주에 들지 않았던 것이 어느 순간 정신질환으로 분류 되기도 하고, 몇 해 전에는 정신질환이었던 것이 어느 순간 정신질환이 아닌 게 된다는 거죠. (<이상심리학>이라는 제목의 전공서적들이 DSM에 기반을 두고 있죠)

물론 이렇게 분류된 정신질환은 병병과 치료법을 갖게 되고, 그것은 주로 '약'이겠죠. 거대 공룡 제약회사가 헤게모니를 행사하고 있는 요즘 세상에서 이 분류는 결코 자본과 떨어질 수 없는 거죠. 이런 관점에서 현대 정신의학을 비판하고 있는 책이 바로 <만들어진 우울증>이에요. 예전 같았으면 그냥 '수줍음이 많구나' 라고 생각했을 아이가 어느 순간 정신질환자로 분류되고, 치료를 받고 약을 사먹어야 하도록 만드는 현대 사회의 의학산업을 비판하고 있어요. <정신의학의 역사>는 말그대로 정신의학이 시대별로 어떤 양상을 띄고 어떻게게 변해왔는지를 소개하는 일종의 의학사인데, 역시 현대 정신의학을 '프로이트에서 프로작으로'라는 챕터로 비슷한 논조로 비판하고 있어요. 물론 현대 정신의학이 무조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오남용 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지요.

뇌과학과 프로이트에 관해서라면 <프로이트가 꾸지 못한 13가지 꿈>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프로이트가 말한 꿈(억압된 무의식이 꿈을 통해...)을 뇌과학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비판하는 책이에요. 참고가 되셨길. ^^;

분다 2010-02-03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렇게 열띤 토론이 진행되고 있을 줄이야.. 저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는데.. 요기 나온 책들로 공부를 해보아야 겠습니다. 프로이트가 꾸지 못한 꿈은 무엇일까요...? 기대됩니다. ^^
 


어려서부터 모든 걸 의심했다.

등교해 교실에 앉아서는 '우리집과 부모님과 동생이 지금 사라졌을 수도 있겠구나, 지금 볼 수가 없으니...' 생각을 하다 한 발짝 더 나아가 '내 눈앞에 있는 것들도 환영일 수 있다. 사실 없는데, 내 눈앞에서만 어른거리며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지도 모른다'는 결론까지 내곤 했다. 영화 매트릭스도 나오기 전, 열 다섯 남짓한 어린 나이에 혼자 이런 생각들을 해냈다는 게 아직도 대견하곤 하다. 그래서인지 대학시절, 데카르트를 아주 쉽게 이해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다른 모든 것들은 환영이더라도, 우리집이 연기로 사라져버렸다 해도, 내 옆의 동료가 사실 내 눈에만 보이는 귀신이라 해도, 내가 입은 옷이 내 눈에만 녹색으로 보일 뿐 사실 투명한 그물과 같다고 해도, 이렇게 내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것들이 거짓이라 해도, 단 하나, '나는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으니 생각하는 '나'는 있구나. 하는 결론. 보이지 않는 걸 의심하다 못해 보이는 것까지 의심하는 날 보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것, 네 친구인 나도 연기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며 놀리던 절친 때문에 내가 이상한가보다 여기고 여러 해를 살아오다가 '네가 옳다'고 말해주는 데카르트를 만났으니 감격스러울 수밖에! (물론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뒷편에 펼쳐지는 '신'의 존재 증명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딱 '코기토'까지ㅎㅎ)

'나는 있다'라는 기본적인 절대 진리(사유의 전제가 되기도 하는..)는 내 안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채운 선생님의 '재현이란 무엇인가' 강의를 들으며 지금까지 절대 진리로 생각해 왔던 '나는 존재한다'를 깨부수는 게 힘들었다. (책72p에도 나와있듯, '나'라는 보편적 실체를 천명하는 데카르트는 재현의 사유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만든다) 사실, 2강 수업이 끝나면 이 부분에 대해 질문할 생각이었다. '데카르트가 '나는 존재한다'고 결론낸 것 자체가 오류인가요, 아니면 '나는 존재한다'를 사유의 기초, 근본으로 삼은 후 그 위에 다른 생각을 집 짓듯 올린 게 잘못인가요'하는...(다들 아시겠지만 프로이트, 과학, 의학 논란이 뜨거워 질문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수업을 마칠 때 즈음에 스스로 답변할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나는 생각한다'는 성립한대도 '나는 존재한다'는 성립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를 '절대 진리'로 삼을 수 없는 듯하다. '나'라는 주체가 존재한다고? 피가 흐르고, 혈압이 변하고, 끝없이 숨쉬며 조금씩 늙어가면서 '나'도 계속 변하고 있는데 대체 무얼 '나'라고 일컫는가? 무엇이 '나'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생각한다'는 명제가 '나는 존재한다'로 이어진다고 믿고 이를 기초 진리로 삼아 그 위로 다른 논리들을 펼쳤다니 우습다. 그러니 곧 '나는 생각한다'는 참일 수 있어도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참일 수 없다. 더 올바르게 고친다면 '나는 생각한다'라는 말 속의 '나'가 고정된 실체가 아니므로, 그저 '생각한다'만 참일 것이다.

이제 '나도 없다'. '나'도 없는 세상에서 '산다'. 그럼에도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우울해하지 않으며 적극적으로 살아가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그동안 써 오던 말을 버리고, 당연하게 여기던 개념을 버리고, 옳다고 생각했던 가치를 뒤집으면서 진리가 없는 이 세상을 견뎌내야 한다. '철학을 하면서도 우울해하지 않고, 허무해하지 않고 살아가기가 쉽지는 않다'는 채운 선생님의 말씀에 위안을 받으며, 우울하고 허무하고 쓸쓸하기 쉽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지금' '여기'를 성실히 견뎌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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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0729 2010-01-25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의 경험에서 뒷바침 되어나오는 깨달음의 경로를 차근차근 잘 설명해주셔서^^ 많은 배움 얻어갑니다. 앗! 저도 어렸을 적에 매번 그런생각 했었는데 ㅎㅎ 제가 못보는 사이 저희 부모님과 동생이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나 내가 방금 지나쳐온 인도와 거리들이 다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을 수 도있다는 생각이요! ㅎㅎㅎ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철학자인가봐요 ㅎㅎㅎ

타갸 2010-01-25 23:31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전 또 제가 유달리 철학적인 인간인 줄로 알았네요. 하하 ^^;;; 다양하면서도 비슷한 고민을 가진 분들이 모인 시간이어서인지 '토론'이라기보다 '강의'형식으로 진행되는데도 어딘가 모르게 유대감이 느껴지더군요. 남은 시간들도 기대됩니다. 더 넓고 깊게 생각해 보고 싶어요.

froghong 2010-01-25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행이 책을 읽다보니까 2강이 주체에 대한 강의네요...아마 이런 고민이 해결이 될 듯합니다..아니면 더 어려워 질수도 있지만...아마 10강이 끝날때 쯤이면...고민도 늘어나겠지만 더불어 해결책도 나름 찾아가리라 여겨집니다...그나저나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능력이..부럽습니다..

타갸 2010-01-25 23:34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이제 '주체란 무엇인가'를 집어 들었습니다. 어려운 주제인 것 같아 준비를 하고 들어가야 할 것 같아서요. 저도 아래에 froghong님께서 쓰신 후기를 잘 읽었습니다. 다양한 지점에서 고민하며 생각을 나눌 수 있어 좋습니다. 강의 후에 이렇게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

알라딘공부방지기 2010-01-29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의 흐름이 저와 같으시네요. 제가 품었던 의문들이 앞부분에 나와, 그건 그런게 아닐까 홀로 생각하며 글을 따라 읽는데, 역시 저와 같은 결론을... ㅎㅎ

pattering 2010-02-04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렸을 때 나 자신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뭐 철학적으로 진지하게 사유해 본 것은 아니지만, 종종 '순간의 나'에 이질감을 느끼고 나라는 존재가 사실은 단지 나의 상념에 불과한 것이 아닐 까 생각했더랬지요. 이러다가 어느 순간 이런 존재를 생각했었다는 것도 잊어버렸는데, 그 생각이 어느 누군가의 머릿속 한 구석에서 소멸되지 않은 채 끝나지 않은 필름처럼 계속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고요. 나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거나 열성을 다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허무주의에 빠져서 삶을 비관할 정도로 깊은 사유를 즐기지 못했습니다^^;; 채운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또 게시판의 많은 글들을 보면서 많은 배움을 얻었습니다만 역시 '나'에 대해 정의하고 매 순간 달라지는 '나'를 인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네요. 내일이면 주체에 대한 강의가 끝이 나겠지만 아직 한참을 더 살아도 쉽게 끝 낼 수 없는 주제인것 같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지금을 살아내야 더 많은 생각을 해보겠지요^^ 내일도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