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란 무엇인가 _이정우
100129. 상상마당
시작하기] 개념이란 왜 필요한가? 삶의 일관성을 갖기 위해 필요하다. 개념이란 항상 옳은 것인가? 사람의 체험을 평균화시킨다는 점에서 개념은 곧 사물의 타살과도 같다.
오늘의 주제] 주체
주체의 어원적 의미는 피조물이다. 즉 신이 아래로 던진, sub-jectum. 같은 단어가 중세에는 신민의 의미로 쓰였으나, 현대에 와선 자아, 의식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지난 2주간의 수업에서 재현의 논리와 이에서 탈피하는 삶에 대해 공부했다. 이 때의 논리는 여러 사건이 존재하고, 이로써 개별의 진실이 만들어진다고 배웠다. 반면 주체의 개념에서는 여러 특성들을 지닌 실체적인 무언가를 가정한다. 이를 우린 '술어적 주체'라 말한다. 말 속에 이미 주어-술어 방식의 함축이 존재하며,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도 실체-속성의 사유를 하며 살아간다는 논리다.
즉 우리의 인식 체계는 술어를 기초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의미다. 그러나 여기서 질문 하나. 정말 술어로 한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가능한가?
우리는 끊임없이 변해가는 존재다. 술어의 개념은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변화가 자기와 자기 술어간의 대립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자기 술어로 게으르다라는 단어를 갖고 있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이 사람이 자기술어와 자기를 일치시키지 않고 불만족감을 가질 때 그는 이 대립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할 것이며, 그 결과로 새로운 자기 모습, 즉 자기술어를 갖게 될 것이다.
한편 술어의 세계는 나 뿐만 아니라 세계에도 적용된다. 인간의 삶은 술어, 즉 상징의 세계 속에 자리한다. 가령 한 개인은 어느 국가에 살며, 어떤 이름을 갖고, 어떤 성(가문)에 종속되어 있다. 이들은 술어로서 표현된다.
여기서 '이름-자리'를 갖는 사람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때의 사람은 두 가지 문제를 갖게 된다. 하나는 술어가 곧 내가 아니라는 문제, 하나는 술어가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게 아닌 이미 주어졌다는 문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두 가지 극단적 방법이 존재한다. 하나는 상징체계의 밖으로 나가 도사가 되는 법, 하나는 상징체계를 바꾸기 위한 투쟁, 분신자살을 하는 법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이 어디쯤에서 살아간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안은 채로.
한편 두 번째 문제가 있다. 사람은 '나'가 아닌 '우리'로 살아간다는 점이다. 특히 현대에 접어들어 개인은 수많은 우리 속 어딘가에 점박혀있다. 가령 나는 한국인이며, 대학생이며, 서울사람이며, 인문학 수업을 듣는 사람이며 등. 고로 자기-자기술어간의 간극에 더해 나술어-우리술어의 간극이 이중으로 발생하게 된다. 여기서 일반화의 오류가 발생한다. 나는 그렇지 않지만 한국인이기 때문에 -것이다, 란 명제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갈 길은 하나다. 무수한 주체로서의 우리, 나 중에서 진정한 우리, 나를 찾는 일.
인간에겐 두 가지 사유 방식이 존재한다. 공간적 사유와 시간적 사유. 각종 형상화, 철학의 사유가 공간적 사유라면 역사, 천지창조의 개념은 시간적 사유에 속한다. 시간적 사유란 곧 동일성과 차이의 사유로써 이중에서도 핵심이 되는 내용은 differentiation 차이 생성의 문제이다. 차이를 만드는 힘이 곧 시간이다. 시간을 통해 나는 변한다. 이 때의 시간은 타자, 관계로도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나를 변화시키는 건 관계의 힘이다.
비슷하지만 다른 두 가지 개념이 있다. 정체성과 동일성. 동일성이 유일무이한 불변함을 뜻한다면, 정체성은 시간의 흘러감 속에서 잃지않는 동일성을 의미한다. 이 정체성을 갖는 것이 사람의 목표일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삶의 리듬이 필요하다. 이 리듬이 바로 동일성과 차이의 리듬이다. 나와 타자간의 균형이 필요하단 말이다.
현대는 고유성을 말살시키는 세계다. 고유명사를 다루는 역사보다 객체성을 다루는 과학이 판을 치는 시대다. 한 존재마다의 이름이 사라져가는 시대다. 이 시대에 필요한 건 주체의 힘이다. 물론 이 때의 주체는 딱딱하고 불변하는 identity가 아니다. 주체성에만 몰입된 인간은 객관적인 현실을 볼 수 없는 돈키호테가 될 수밖에 없다. 객체만을 중시하는 사람 또한 하나의 부품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언제나 중요한 건 조화. 커다란 삶의 줄거리 안에서 각 고유명사가 살아 숨쉬는 '이름'이 있는 세계로의 꿈을 꾸고, 이를 위해 투쟁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