約束された移動 (河出文庫)
오가와 요코 / 河出書房新社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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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된 이동 約束された移動

몰락한.. 한때 은막을 빛냈던 Hollywood 스타 B는 숙박할 때마다 '모두 누군가가 어딘가로 이동하는 이야기'를 주제로 한 책을 한 권씩 가져가는데...

그 로열스위트 객실 담당 직원(나)은 사라진 그 책들을 읽으며 B의 비밀스러운 신호?를 추적한다.

B가 가져간 책들은 콘래드 '어둠의 심연', 타부키 '인도 야상곡', 실리토 '장거리 주자의 고독', 생텍쥐페리 '야간 비행', 크리스티 '오리엔트 특급 살인', 안데르센 '그림 없는 그림책', 바움 '오즈의 마법사', 케네스 그레이엄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사라진 책은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이다.

나는 '분노의 포도'에서 B의 흔적을 찾다가 줄거리와 무관해 보이는 거북과 귀리 씨앗의 이야기 부분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다가 코끼리의 길을 걷는 장면처럼 그 부분도 특별한 의미(B가 보내는 신호)를 지녔음을 곧 알아차린다. 그것은 그가 남긴 말없는 흔적을 거북처럼 옮기는 객실 담당자에게 보내는 감사의 신호라고...

그리고 나는 B가 추락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이동 중이라고 믿게 된다.

비밀을 함께 나눈 마사지부 주임의 죽음 뒤에도 그 기억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의지일까? 아니면 누군가 자신이 여전히 나아가고 있다고 믿어줄 때 구원받는 것일까?

깊은 감동을 안겨 준 소설이다. 표제작 '약속된 이동'을 읽으며 얼마나 큰 위안을 받었는지 모른다.

어디론가 계속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의미 있을 수 있다고 조용히 내게 말해 주는 듯했다.

부재를 통해 존재를 확인하는 이야기로.. 오가와 요코 문학다운 특징이랄까.. 나에게 익숙한 흔적을 보존하는 인물이 또다시 등장한다.

행렬 도중에 일어난 일이라면, 강 하구에 놓인 다리 어귀에서 아기 코끼리가 태어난 것이었단다. 이 대행진을 축복하는 데 그보다 더한 일이 또 있을까. 할머니는 달리 떠오르는 게 없구나. 아, 이건 처음부터 약속된 이동이었구나, 하고 사람들은 모두 깊이 고개를 끄덕이며 갓 태어난 그 생명에게 기도를 올렸단다. 엄숙한 마음마저 들었지. 코끼리들은 다시 걷기 시작했어. 물론 아기 코끼리도 함께였단다. 작다고 해서 지름길로 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는지도 알려고 하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걷는 거야……

​

마지막으로 책장의 빈틈을 다시 확인했다. 집게손가락 끝을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밀어 넣어 보았다. 책들은 모두 깊은 침묵을 품은 채 가만히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

아, 책 냄새구나.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B가 남기고 간 것은 책을 펼쳤을 때 페이지에서 피어오르는 말의 냄새였다.

....나는 양옆의 책들을 바짝 붙여 빈틈을 조심스럽게 메웠다. 어디에도 부자연스러운 곳은 없었다. 그 자리에 있던 책은 그것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사람의 손으로 옮겨 간 것이라고, B의 바람이 이루어지도록 내가 돕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렇게 책장의 비밀은 나와 B, 두 사람만의 것이 되었다.

​

어떤 말도, 어떤 신호도 없이 그저 침묵만이 두 사람을 이어 준다.

​

두 사람의 비밀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끼며 나는 그 틈에 손을 넣었다. 어둠 속으로 손끝이 부드럽게 빨려 들어갔다. 그곳은 단순한 빈 공간이 아니었다. B가 남긴 흔적이 새겨진 유적이자, 서로 얼굴도 모르는 두 사람을 이어 주는 지하의 뿌리였다. 그 유적을 발굴하고 비밀의 기록을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

이로써 B의 길을 안내하는 이들에 코끼리와 순박한 에렌디라에 이어 말로 선장까지 한 명 더해졌다.

​

그 어둠 속에서 B가 윙크하는 모습이 보였다. 쑥스러워하면서도 조금은 뿌듯해 하는 윙크였다.

나는 틀림없이 신호를 받았다는 증표로 그가 가져간 것과 똑같은 책을 사서 페이지를 펼쳤다. 계속해서 이동하는 그의 길을 방해하지 않도록, 뒤에서 조용히 따라갔다.

​

"넋 놓고 있을 여유 없어." 어머니가 말한다.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이름이 없고 모두에게 '엄마'라고 불리는 그 여자의 목소리가 B에게 힘을 북돋운다.

'가야만 한다면 가는 거야.'​

B는 다시 걷기 시작한다. 자신은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등딱지 틈에 끼인 귀리 씨앗 한 알을 어딘가로 옮기는 거북처럼, 나 역시 B의 뒷모습을 뒤쫓아 간다.

​

B가 아무리 몰락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멸시받는다 해도, 그가 아무리 험난한 길이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전처도 약혼녀도 잡지 기자도 팬들도 모르는, 오직 객실 담당자에게만 맡겨진 비밀을 나는 계속 지켜 나간다.

그의 여정은 추락이 아니었다. 코끼리와 순박한 소녀와 선장, 그리고 이름 없는 한 가족의 어머니에게 이끌려, 마땅히 도달해야 할 곳을 향해 지금도 계속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에서 마지막에 언급된 소설)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초반(3장)을 읽다보면

가족들은 오클라호마의 농장을 빼앗기고 캘리포니아를 향해 서쪽으로 이동하는 장면이 나온다(이 작품은 모두가 알다시피 미국의 대공황기 이주민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슬프게도 강제 이주가 결국엔 새로운 착취 공간으로 이동될 뿐이지만...)

마치 그들의 이동과 마찬가지로 육지거북의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은 앞으로 조드 가족이 겪게 될 여정을 미리 보여 주는 일종의 예고편이자 상징과도 같은 역할을 암시하는데...

B가 투숙할 때 마다 사라지는 책장의 공백과 그 책들을 뒤따라 읽으며(모두 이동하는 서사의 책들이다. 에렌디라의 도피, 말로의 여행, 조드 가족의 서부행이나 오즈의 마법사 등등 ) B와 은밀한 교신(독서를 통해 B의 이동을 상상.. 아니 서서화)하던 '나'는 그의 마지막 방문에 사라진 책인 분노의 포도를 읽게 된다.

​

소설 속의 '나'는 B를 직접 소유하지 못한다(아니 그럴 수 있다 한들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B의 흔적을 보존한다. (오가와 요코 문학의 매무 중요한 구조라고 생각한다)

B는 이동하기 때문에 사라지고 나(화자)는 흔적을 수집하기 때문에 B를 붙잡는....

​

영화배우 B는 그가 가진 화려한 모든 것을 잃었지만, 이 이동(어딘가로 묵묵히 이동하는 보이지 않는 인간으로)을 계속한다.

오가와 요코는 누군가가 자신의 이동을 믿어주는 것을 구원으로 말하고 있었다.

B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갔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닌... 그가 계속 걷고 있다는 믿음이 중요한 것이다.

'약속된 이동'이란 어딘가의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이동을 기억해주고 증언해주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

우리는 이동하면서 스스로를 잃기도 하고, 자신을 되찾기도, 되돌아보기도 한다.

하지만 사라진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그 끝도 목적지가 아니라 흔적일 것이고 그 흔적을 기억하는 타인의 행위가 이동을 구원으로 바뀌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또.. B가 읽고 가져간 책들은 그 소설 속 이동을 B자신이 이어받은 것으로 B역시도 그 길을 새롭게 걷는 인물이 되는 것일 수도...

​

나도 이동하고 있다. 약속된? 이동을 향해서... 걸어가고 또 걸어가고 있다.

오늘처럼 오가와 요코의 호텔 객실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고, 과거 에렌디라에서는 마르케스의 사막으로 갔었고, 어둠의 심연에서는 콩고강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분노의 포도에서는 66번 국도를 따라가던... 소설을 다 읽고 나서는 (물리적으로는)현실의 제자리로 돌아올 뿐이지만 정신적으로는 계속 이동을 하고 있었다.

​

가끔은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소설 '약속된 이동'에서는 B가 책을 가져가서 공백을 남겼고 소설 속의 '나'는 그 공백을 따라서 B의 이동을 추적하는데...

내가 책을 읽고 블로그에 글을 남긴다면 미래의 누군가(그것이 나 혼자일 뿐이라도)는 그 문장을 따라 나 삶을 추적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ㅋㅋ

특별한 목적도 없이 그저 취미와 즐거움으로, 단순히 좋아서 남기게 된 지난 기록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블로그만 해도 20년이 넘어가는데... 때때로 과거의 기록을 다시 바라보면 이 기록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져 보인다.

그 별것 아닌 기록들을 보게 되면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증언하는 특별한 느낌이랄까?

친구도 없고 외롭지만 이렇듯 기억해주는 다른 사람이 없어도 현재와 그리고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 증언해줄 수 있다는 믿음...

​

종교도 없고 필요치도 않는 나는 구원이라는 말을 종교적으로 사용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시간 속에서 사라지는 것을 완전히 소멸하지 않게 해주는 것에 나는 큰 의미를 갖는다.

사람들도 모두 시간처럼 결국엔 지나간다. 읽었던 책도, 생각들도, 기쁨도 감동도, 그 시절의 그때의 나도 다 지나간다.

그렇지만 기록을 남기면 아주 작더라도 흔적이 생기고 그 흔적들(그것이 한 문장이든 사진 한장이든)은 과거의 나를 현재로 데려와준다.

어쩌면 지금 내가 블로그에 작성하고 있는 이 생각들 자체도 글로써 미래의 나에게 보내놓는 작은 메세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가 여기 있었고, 이렇게 생각하던 나는 그렇게 이곳을 지나갔다.. 하고...

어느 예정된 목적지에 간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포함해 내 주변의 사라져가는 것을 다음 시간으로 계속 데려간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구원이다.

​

소설 읽기라는 것이 전혀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과거에도 지금에도 그리고 미래에도(그럴 것이다)..

수많은 책들을 읽었지만 어디에 도착하려 또는 어떤 사람이 되려 읽은 것도 아니었고...

그냥 읽고 싶어서 읽고 생각하고 싶어 생각도 하고 단지 좋아서 기록도 한 것이다.

그렇게 '약속된 이동'의 메세지처럼, 이르러야 할 장소가 어딘지 무엇인지 몰라도 계속 나 역시 이동한 것이 아닐까.

그래도.. 되돌아보니 도착?하지는 않았지만 꽤 멀리 와 있다. 그리고 목적 없이 걸었는데 작은 나만의 길이 생긴 것 같아. 쑥스럽지만 흐뭇하다.

​

별 것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들이 연결과 구원의 매개가 된다는 게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블로그의 기록은 내 이동의 발자국이었던 것이다.

누군가에서 주목받고 인정받고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 누군가가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닌 내가 지나온 시간이 정말로 사라지지 않았음을 내가 확인할 수 있는 지도이자 기억의 장소이길 바래왔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서... 그리고 내가 무엇을 보고 읽었는가보다 나는 무엇을 따라서 함께 걸어왔는지, 어떤 작품들의 사람들과 친구를 맺고 변해왔는지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

누군가 자신의 길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길을 계속 걷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준다면 그것만으로 구원이 가능할까?

가능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https://blog.naver.com/mix1110/224409639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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約束された移動 (河出文庫)
오가와 요코 / 河出書房新社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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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감동을 안겨 준 소설이다. 표제작 ‘약속된 이동‘을 읽으며 얼마나 큰 위안을 받었는지 모른다.

어디론가 계속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의미 있을 수 있다고 조용히 내게 말해 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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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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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먼저 짚고 넘어갈 점이라 해야 할까? 알아두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반드시는 아니지만^^)

페어링 되는 작가의 다른 작품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2016년(국내 번역출판은 2017년) 작품 '저물 듯 저물지 않는'(なかなか暮れない夏の夕暮れ)인데...

이 소설, '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シェニール織とか黄肉のメロンとか 2023년, 국내 번역출판은 2024년 12월)과 나란히 놓고 보면 어딘가 유사성이 있다는 점이다.

​

'저물 듯 저물지 않는'이나 '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은 특별한 사건이나 깊은 이야기 없이 그저 흐르는 평범한? 시간 속에서 조금씩 변해가는? 일상이랄까?

아니면 평범한 날들 그대로의 이야기라고 해도 되고, 우리의 살아가는 시간과 사람들을 담은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특징은 50대의 일상이라는 점이고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전자는 50대의 남성 미노루를 축으로 해서 진행되는(그렇다고 남성들의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이야기이고, 후자는 50대의 여성들(정확하게는 리에, 다마코, 사키)을 중심에 두고 펼쳐진다는 것이다.

​

이 부분을 알고 있었기에 이번에 소설을 읽으면서도 신경이 쓰여 '저물 듯 저물지 않는'을 다시 펼쳐보게 되었는데...

의외로 막상 완독 후 비교하다보니 사실 앞서 말한 남성, 여성들로 굳이 분류할 필요도 없었던...

과거 저자의 인터뷰를 읽었던 내 기억이 맞다면 '(의외로 없고 잘 다루지 않는)50대의 주인공이 바라보는 일상의 시선을 그려보고 싶었다'던 에쿠니 가오리의 말과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후 많은 독자들이 남성편, 여성편으로 해석했다는 점에 수긍?하던 내용이 떠오른다.

​

먼저 '저물 듯 저물지 않는'에 대해서 간단히 말해보자면....

제목의 뉘앙스 때문이었을까?

표면적으로는, 아니 전체적으로는 한여름의 늦은 저녁(저물 듯 저물지 않는 시간대? 나이에 대한 은유겠지만)에 각자의 관계 안에서 조용히 아스라히 교차되는 감정들이 담백하게 표현되는 소설이었다. 저녁이 깊어가도 끝나지 않는 상태랄까?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와도 같은 역활을 하던 (미노루가 읽던)액자와 같은 소설 속의 소설들의 구성 그리고 부유한 집안의 물질적으로 안정된 삶(고민없이 늘 소설을 읽고, 차를 마시고, 이유 모를 공허로 여름의 저녁을 바라보는)을 살고 있는 50대의 남자 주인공 미노루와 그의 누나가 독특함이 특징적이다.

하지만 소설 전체를 놓고 보면 미노루를 축으로 한 다양한 세대의 인물들이 펼쳐내는 여러 시점의 말들 그리고 침묵들의 교차가 이 소설의 방향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제목처럼 아직 끝난 것도 지나간 것도 아닌 시간 속에서 서로 마주하는 은근히 번지는 듯한, 문득 살짝 흘리듯한 작은 느낌들...

이미 청춘은 지나갔지만, 아직 완전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지 않은 시간의 딱 그 갈림선 위에서,

그 애매한 저녁빛이 내려앉은 것처럼 어딘가 흐릿한 인물들의 느낌과 감정들의 간극과 접점이 소설의 전체 이야기가 아닐까...

​

전반적으로 무심한 듯한 덤덤한 말과 담담한 생각들 속에는 뒤돌아보는 기억에 따른 야속함과 또 그 나이 때에 가능한 건조한 태도랄까? 오히려 마음을 놓이게 해주는 차분한 위로 같아서 인상적이었다.

​

이런 것 역시 그런 한순간일 것이라고 나기사는 분류해본다. 훗날이 되어서야 그때는 행복했다고 깨닫는, 가족이 보내는 일상의 한 장면.

​

이것은 그런 순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있지만, 무엇과 도 바꿀 수 없는'이라고 형용하는 가족의 단란한 순간, 먼 훗날이 되어서야,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때는 행복했다'고 깨닫는 유의 순간이다. 그런데 왜, 때로 자신은 도망치고 싶어지는 것일까, 나기사는 일어나 우윳빛 유리창을 연다.

​

문득 나기사는, 이 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지, 하는 감상에 젖는다. 어디 하나 특별하지도 않고 어느 가정에나 있을 수 있는 한 장면이고 시간이지만, 확실하게 지나가고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

그리고.. 특이한 것은 미노루가 주인공이지만 사실 소설을 읽고 나면 떠오르는 것은 미노루가 아닌 다른 인물들의 말들이었다..

'저물 듯 저물지 않는'에서는 나기사가 마치 지나간 일상은 돌아오지 않음을 깨닫던 것들과(딸의 가방에 수를 놓고, 남편은 텔레비전을 보고, 거실에는 점심에 먹은 가지 튀김 냄새가 남아 있는 평범한 순간에 문득 생각하던) 또 이 (행복한)순간을 알면서도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 하던 모습들이 묘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리고 사야카가 말 중에서 원하는 것이 없어진다는 것에 대한 느낌과 의문 또한 한동안 공감했던("나이가 들면서 욕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원하는 게 많으면 피곤하지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삶이 과연 편안하기만 할지도 확신하지 못하지.")..

마지막으로 오타케가 공원에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겹쳐보는 장면 역시도...(자신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다가 지금의 아이들은 자신_오타케_에게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걸 상상하지 못할 거라는 대목에서 나 역시 가끔 느끼는 세대와 시간의 간격을 떠올리고 있었다.

​


'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의 경우에는 리듬도 속도와 벡터가 모두 다르지만 대학시절 출석부에 나란히 있었던 우연으로 친한 친구가 되어 중년에 이르기 까지 인연을 이어가는 여성들 그리고 그 주변에 관계하는 지인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또 '저물 듯 저물지 않는'하고 살짝 방향이 다르기도 한데, 관계하는 (과거부터 알고 지낸, 과거에 알던)인물들을 만나면서 환기되는 그 옛날의 자신을 반가워(때론 불편?해) 하던 모습들도 그려지고 있다. ('저물 듯 저물지 않는'에서는 전부는 아니지만 대게 씁쓸한 회상 내지는 감정과 관심이 크게 반응하지 않던 것들과 대조적이다)

항상(그리고 누구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오랜 친구(아주 예전의 지인)를 만나면 그때 뿐일지도 모르지만(또는 원치 않는 사람도 있었지만) 특별하지 않나...

예전의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그 사람의 현재를 확인하며 놀라?기도 하지만, 재미난 건 그 사람만이 기억하고 있는 과거의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지금의 나와는 아예 다른 모습인데 분명히 내가 살아 낸? 시간이었던 그 시절의 나를 얘기하고 떠오르게 되니....

이 작품은 50대 여성 세 사람의 우정과 일상을 그리고 있는 소설인데, 에쿠니 가오리는 (당연하게도)그녀들의 과거를 되짚으며 극적으로 그린다거나 그 시절을 아름답게 미화하려는 초보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며, 10대에서 80대에 이르는 다양한 주변 인물들의 끝나지 않는(않을 것 같은) 정서적인 유대를 담아내고 있었다.

지금의 일상 속에서 별거 아니게 문득 과거가 떠오르고,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또는 잊었던) 기억이 뜻밖에 선명해지는 이야기로 그려지고 있었다. 상상과 기대가 심하게 덧붙어 있던 지난 날의 생각과 의미들... 그게 그녀들의 셔닐과 포크파이 모자, 캔털루프 멜론처럼...

​

소설을 읽고 나니...

사랑하는 것 까진 아니더라도.. 단순한 인간관계보다는 따듯한,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런것과 상관없이 그냥 곁에 머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솔직히 부러웠다. 그냥 곁에 있고 싶은 사람, 그리고 같이 하는 사람들이 그녀들처럼 있다면 그것도 그런대로 참 좋겠구나~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게 되었던...


https://blog.naver.com/mix1110/224436379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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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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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링 되는 작가의 다른 작품 ‘저물 듯 저물지 않는‘(なかなか暮れない夏の夕暮れ)과 같이 보세요~ 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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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 -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ㅣ 문학사상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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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에 넷플릭스에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원작의 '백년의 고독' 전반부를 다룬 시즌 1이 제작되었고, 올해 8월에 후반부를 다룬 시즌 2(종결)가 제작되었다.

추석에 시즌 1, 2 모두 몰아보았는데 감격하여 넷플렉스에 감사하기는 2022년 8부작 '마리 앙투아네트' 이후로 처음이었다.

너무 기쁘고 고마웠다.

​

모든 현대 문학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요즘의 소설은 대게 어찌어찌 해서 이런(그런)일이 일어났는데....로 끝나고, 사실상 아무도(소설 내에서도, 작가도)그것을 완전히 설명하지 않는다. 깊은 이야기를 공백으로 남겨 놨으니 알아서 찾아라.. 이런 식이다. 뭐.. 이런 문학?에 너무나 익숙해서 상관은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현실/비현실 구분없는 작품들의 경우에도 요즘의 트렌드?는 처음 한 말하고 비슷하다.

주인공이 현실에서 다른 세계로 미끄러져 들어가거나 문을 통과하는 이야기라던지, 현실(일상)속 비현실?적 사건이나 감정을 아무렇지 않게 삽입하기도 하고, 또 상당히 애정 깊은 장르인 괴담이나 전설관련 소설들도 스며드는 방식이랄까? 애매하게 경계를 흐리게 만들거나...

친애하는 오가와 요코의 경우에도 깜놀따윈 없는 지나친 설명없이 담백하게 균열을 열어두고 또 인물들은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

하지만 마르케스 형님의 '백년의 고독'은 완전히 다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는다는 즐거움을 선사해준 지구 최고의 이야기꾼이다...

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어린 아이들이 이야기에 푹 빠져 계속 더 이야기 해달라고 부모나 조부모에게 조르는 심정을 알 것 같은 기분이다.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되고 옛날 이야기 같으면서도 전설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서, 황당함 마저도 민담이나 동화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읽기를 멈출 수가 없다.

이야기의 힘이 너무나 강력해서 이야기가 이야기를 만들어 쉼없이 굴러간다.

구분이 불가능했던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와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처럼... 현실과 환상이 서로 너무나 닮았고, 똑같이 장난이 심해 누가 누구인지 구별이 안되지만 이 표정 자체가 보여주는 흥미로움은 소설을 둘도 없는 전설로 탈바꿈 해버리고 있었던... 읽을 때 마다 감탄하게 된다.

​

넷플릭스에 너무나 고마웠다.

소설(이름의 통일성을 위해 문학사상사 번역 버전 기준)에서 텍스트로만 상상했던 의문의 죽음(호세 아르카디오, 피가 흘러 문 밑으로 새어나와 우르슬라가 빵을 만드려던 곳까지 이어지던 연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가 죽자 창밖에 작고 노란 꽃들이 하늘에서 가볍게 빗발처럼 흩날리던 장면들(꽃비가 소리 없이 밤새도록 내려서 지붕을 덮고 문을 열 수 없을 만큼 집 앞에 쌓이던 연출과 장례 행렬), 흥미로웠던 카니발 장면,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기차가 마콘도에 도착하던 모습과 바나나 농장 및 마을의 디테일, 미녀 레메디오스가 공중으로 날아올라 승천하던 장면, 이상하게 신경쓰이던 '우르술라가 가브리엘 천사처럼 오른팔을 쳐들고 다니게 된 이후'라는 텍스트를 실제로 볼 수 있었더는 점, 가장 애착이 가던 케릭터인 아마란타와 리베카의 모습들, 노랑나비와 마우리치오 바빌로니아에 대한 연출, 계엄과 대학살에 대한 장면들.... 등등 원작에 충실했던 연출들이 되려 너무나 좋았다.

그리고 특히 소설 3장, 55~57페이지에 등장하는 '에렌디라'를 만나 너무나 반가?웠던...


정말 재미있는 소설... 멈출 수 없는 소설...



https://blog.naver.com/mix1110/224426561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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