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 Moscow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흔히 버디 무비는 남자들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여자들이 주인공이다. 중학교 동창인 두 사람이 사회인이 되서 다시 재회하면서 불편한 진실을 겪는다. 십대 시절 같은 곳을 보았던 아이들은, 사회인이 되어 다른 곳을 보는 것 같다. 한 사람은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 한 사람은 대기업의 비서라는 그럴 듯한 유니폼을 입었지만 하나의 소모품. 두 사람이 헤어졌던 시간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시간의 궤적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 친구는, 자신이 투쟁했던 회사 엠피쓰리 플레이어를 선물로 주는 친구에게, 너도 악덕 자본주의나 다름없다고 쏘아댄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 한 구석에는 연극배우가 되고 싶다는, 혹은 친구의 회사에 들어가고 싶다는 욕구가 내재되어있다. 자신의 현실에서 도망치는 걸 한 번쯤 꿈꾸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다행히 영화는 두 친구가 화해하고 다시 같은 곳을 바라봤던 걸 상기한다. 그리고는 각자의 길을 갈 것이다. 같은 꿈을 간직했던 친구를 가슴에 한켠에 간직한 채.

어른은 5년 주기로 친구가 바뀐다는 말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학창시절을 마감하면서 동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 속에서 동료애를 쌓고 이직과 전직으로 매일 보는 사람, 일상을 나누는 사람이 달라진다고. 주기가 거듭되면서 친구가 많아져야 당연한 논리인데 이상하게 그렇지 않은 거 같다. 아는 사람은 많아지지만 학창시절처럼 같은 곳을 보고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을 만나는 게 불가능한 것 처럼 보인다. 나이테가 굵어지고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경험이 쌓이면서 어린 시절만큼 마음을 활짝 열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른으로 살아가는 건 친구를 잃어버리는 데 익숙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한 달여만에 영화를 봤다. 역시 영화를 보는 두 시간은 꿈이라고 부를 수 있다. 아, 좋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 대한 내 감상도 후하다. 이준익 감독이 예술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아니니 그의 영화에서 예술성을 기대하지 않는다. <왕의 남자> 흥행으로 각종 인터뷰를 보면서 이준익 감독은 철학이나 미학을 운운하기보다는 감독을 하나의 직업군으로 보는 게 독특하고 재밌었다. 제작비에 맞춰 영화를 찍을 자세를 하는 감독은, 직장 상사가 어떻게든 결과물을 내라고 독촉할 때 밤샘하면서 자료찾아 프리젠테이션 준비하는 과장처럼 보였다. 이 모습이 나쁜 게 아니라 참 현실적이기도 하고 친밀감을 만들기도 했다. 박흥식 감독은, <말순씨 사랑해>를 찍은 후, 다음 작품은 뭐냐는 질문에 다음에는 영화가 아닌 일로 밥벌이를 하고 싶다고 했다. 감독은 일반 직장인이 풍기는 꼬질함과 비루함과는 거리가 먼 아우라가 있기 마련인데 이준익 감독이나 박흥식 감독은, 예술이나 창조자로서의 포스보다는 밥벌이의 힘겨움을 감추지 않는다. 그래서 연대감이 형성된다고나 할까. 

이준익 감독 영화 중에서 <황산벌>이  제일 인상적이다. 한국역사의 진지한 에피소드를 사투리라는 코미디로 풀어간 영화다. 화려한 액션이나 CG 따위 없어도 영화적 재미를 표현한 가능성을 보여준 영화다. <구르믈 버서난 달>은 <황산벌>과 한 핏줄 영화다. 소재도 임진왜란 직전에 정여립난(한국사에 이런 사건이 있는 줄도 몰랐다-.-)을 소재로 풀어간다. 해학적 인물인 황정학, 진정한 시어리어스 맨 이몽학, 강아지처럼 촐랑대는 견자, 줏대없는 선조, 말로 줄다리기 하는 동인과 서인, 그리고 차라리 없으면 좋았을 인물 백지. 조정에서 탁상공론하는 동인과 서인 장면은 황정민이 억지로 하는 연기보다 더 웃기다. 황정학이란 인물이 해학적으로 설정돼있어 웃음코드를 미리 설정했다면 탁상공론 장면과 왕의 우유부단하게 버럭질이나 하거나 주저주저하는 행동은 오히려 말 장난이기 때문에 웃을 사람만 웃는다. 난 이런 말 장난이 너무 웃기다. 극장에서 나 혼자 흐흐거렸다.  

때깔로 치자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는데 찾아보니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촬영감독이란다. 어쩐지! 긴장감을 줄 때 과감한 클로즈업과 차승원이 쓰고 있는 갓을 이용해서 카메라와 스크린 사이에 막을 친다거나 풍경을 엽서처럼 담는 화면은 이준익 감독 영화에도 이런 명장면이?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덧. 백성현이란 아역 배우, 또래 아역 배우들 중 가장 근사하게 자란 거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타는 내마음 - My Burning Heart
영화
평점 :
현재상영


영화라기 보다는 케이블 에서 방영하는 <남녀탐구생활> 같은 분위기다. 찌질해도 젊으면 싱싱해보인다.ㅋ 젊음은 찌질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과 희망이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2년간 짝사랑만 하던 이병렬이 오로지 미희만을 바라보며 공부만이 살길이라며 고시준비를 하고 취직시험 준비를 한다. 물론 다 떨어지고 머리만 빠져가는 백수다. 미희란 여자는, 수컷을 끄는 페로몬을 자체 발향하는 여인이다. 가만히 있어도 남자들은 그녀의 남친이 되기위해 열정을 바친다. 그 열정이란 게 일시적이어서 문제지. 사랑을 쟁취하려는 결투의 변주가 몇 번 일어나고 슬랩스틱한 요소가 넘쳐 원초적 웃음을 선사한다. 만화같기도하지만 재기발랄하기도 하다.  

열정적 구애를 하다 장애물이 나타나면 등을 돌리며 포기할 뿐 아니라 분노하는 수컷들의 가벼움은, 만나고 헤어짐의 가벼움을 다룬다. 뛰다가 벗겨지는 슬리퍼 한 짝처럼 이성에 대한 구애는 절대적인 게 아니지만 병렬만은 끈기가 있다. 벗겨진 슬리퍼를 다시 고쳐 신는 식이라고 할까. 스쳐가는 가벼운 만남 속에서도 '짝' 혹은 콩깎지가 덮인 커플의 운명론적 관계가 리얼리티를 보완한다. 백수 병렬과 모두에게 섹쉬한 미희는 서로의 눈에 안경알이며 때로는 다투기도 하고 때로는 알콩달콩하다.   

무수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이 비슷한 포맷이지만 나올 때마다 관객을 끄는 건 아마도 인간의 망각 때문인 거 같다. 남녀 이야기는 아무리 비슷하고 아무리 반복해서 듣고 봐도 늘 새롭다.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리어스맨 - A Serious Ma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When the truth is found to be lies
and all the joy within you dies
don't you want somebody to love
don't you need somebody to love
wouldn't you love somebody to love
you better find somebody to love

-Somebody to Love, Jefferson Airplane
  

무언가를 믿는다는 게 뭘까. 내 방 책상은 누군가 일부러 옮기지 않으면 늘 그 자리에 있다. 내가 외출해서 돌아온 후에도 책상은 그대로 있다. 내가 외출 중에도 책상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누군가 책상이 정말 그대로 있냐고 물으면 나는 의심하지 않고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보지 않았지만 책상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걸 믿기 때문이다. 이 믿음은 어디서 나오는걸까...비트겐슈타인은 이런 요상한 질문들을 던졌다. 코엔 형제는 비트겐슈타인의 질문을 극장편 영화에 옮겨 놓은 거 같다. 보지 않은 것에 대한 확신과 불확신의 경계를 카메라를 통해 탐구한다.  

삼 년 전에 죽었다는 한 랍비가 어느 부부를 찾아온다. 아내는 소문을 믿고 남편은 소문에 대한 믿음이 없다. 믿음이 확고한 아내는 랍비를 유령이라고 생각하고 확인차 랍비의 가슴을 송곳으로 찌른다. 랍비의 가슴은 피로 서서히 물들고 타이틀 롤이 올라간다.  

히브리어 수업을 하는 교실, 병원에서 누워서 엑스레이를 찍고 있는 물리학 교수 래리의 긴장한 모습이 교차한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유태계 소년, 소녀들에게 유태인 공동체의 룰을 강요하는 어른들의 믿음은, 아이들한테는 믿음이 아니고 암기해야하는 수고를 보태야하는 불확실한 것이다. 세상은 익숙한 것에 대한 믿음과 낯설지만 의무란 영역에 대한 당위성으로 카오스 그 자체다. 질서정연한 거 같아보이지만 확신과 불확신의 경계를 의식하는 순간 진앙지를 알 수 없는 진동을 감지한다.   

래리의 일상은 갑자기 균열이 생기면서 높은 강도로 진동하기 시작한다. 문제 없었던 아내는 다른 사람과 결혼할 수 있도록 이혼을 요구하며 F학점에 이의를 제기한 (한국) 학생은 촌지를 두고 간다. 영구교수직은 심사 중인데 동료는 반대하는 편지를 받았다고 하고, 자폐인 줄 알았던 동생은 도박에, 남색이란 죄목으로 경찰에 체포될 판이다. 아들은 말도 없이, 자신의 이름으로 레코드 클럽에 가입해 회비 연체 중이라 툭하면 독촉 전화를 받는다. 래리가 외치는 말은, "난 아무 것도 안 했어요" 다.  

래리의 심정이 이해되는 게 아무 것도 난 안 했는데 일이 꼬이는 것 같은 때가 정말 있다. 우리는 우연이라고 부르지만 우연과 필연의 차이는 무엇인가. 필연을 의도하고 한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필연도 우연이 된다. 또 우연이 때 맞춰 일어나면 필연이 된다. 이럴 때 거대한 우주적 관점에서 미미한 존재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래리는 랍비를 찾아간다. 젊은 랍비, 중년 랍비, 연륜만큼 현자라 만나기 힘든 랍비. 랍비들의 조언은 새로운 관점을 가져라, 사소한 우연은 무시해라, 나이든 랍비는 만나주지도 않는다. 결국 래리는 사방에 생긴 균열로 흔들리는 고통을 혼자 감당하느라 밤마다 식은 땀을 흘린다. 시간은 흐르고 진동은 서서히 가라앉는다. 균열의 틈이 다시 저절로 좁아드는 것 같다.

믿음이 흔들릴 때 흔들림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사랑할 사람을 찾으라고 한다. 명쾌한 결론이다. 코엔 형제도 나이를 드신걸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 - Invictu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며 내 영혼의 선장일지니."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보내기 시작한 건 2004년 작,  <밀리언달러 베이비>를 본 후 부터다. <밀리언달러 베이비> 이전에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피부가 얇아서 엄청 주름많고 '빼빼로' 같은 몸을 지니신 노배우일 뿐이었다. <밀리언달러 베이비>에서 보여준 이스트우드 옹의 세계관은 깊은 울림을 주었고 우아한 사람의 모범을 보여준다.  

그의 영화는 광택나는 화면으로 관객을 유혹하지 않는다. 시종일관 진지하고 슬로우 템포고 기품이 있다. 오래되서 빛이 바랬지만 깨끗하게 세탁해서 정성스럽게 다림질된 셔츠를 입은 사람한테서 풍기는, 기품이 영화에 배어있다. 그의 영화들을 보면 독백같은 일기를 써 내려가는 거 같다. 담담한 어조로 서술하면서 놀랄 일은 없지, 하는 관조적 시선을 보낸다. 냉소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애잔한 시선이 심장을 따뜻하게 한다.

그는 "정치에는 관심 없고 보수주의자며 독실한 크리스천"이라고 했던 걸 읽은 적이 있다. 그의 영화 속에는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어떤지 혹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인물들이 있다. 그들은 정치에는 관심이 없지만 정의와 모순을 구별하는 분별력이 있고  기성세대나 기득권층은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 살 의무가 있으니 실천한다.

<인빅터스>는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시작하지만 넬슨 만델라의 전기영화는 아니다. 27년간 투옥생활을 했던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을 바꾸는 이야기를 한다. 럭비란 스포츠를 수단으로 한다. 스포츠에 은폐된 이데올로기를 마음껏 이용하는 이야기지만 시장 경제에서처럼 자본 축적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극심한 분열 상태에 있던 인종갈등을 푸는 실마리로 이용한다. 감상적인 면이 분명히 있지만 감상적 태도 너머에 투박하지만 부조리에 대한 통찰이 선행되서 불쾌한 스포츠 영화로 흘러가는 걸 막는다.   

<그랜 토리노>에서 백인 할아버지나 <인빅터스>에서 흑인 대통령처럼 가진 자(혹은 가진 것처럼 보이는 자)가 올바른 시선을 가질 때 세상은 희망으로 넘친다. 윤리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메시지지만 이스트우드의 진지함이 터무니없는 희망을 비웃지 못하게 한다. 진심으로 꿈을 믿는 사람을 우리는 비웃을 수 없다. 존경하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