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한 달여만에 영화를 봤다. 역시 영화를 보는 두 시간은 꿈이라고 부를 수 있다. 아, 좋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 대한 내 감상도 후하다. 이준익 감독이 예술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아니니 그의 영화에서 예술성을 기대하지 않는다. <왕의 남자> 흥행으로 각종 인터뷰를 보면서 이준익 감독은 철학이나 미학을 운운하기보다는 감독을 하나의 직업군으로 보는 게 독특하고 재밌었다. 제작비에 맞춰 영화를 찍을 자세를 하는 감독은, 직장 상사가 어떻게든 결과물을 내라고 독촉할 때 밤샘하면서 자료찾아 프리젠테이션 준비하는 과장처럼 보였다. 이 모습이 나쁜 게 아니라 참 현실적이기도 하고 친밀감을 만들기도 했다. 박흥식 감독은, <말순씨 사랑해>를 찍은 후, 다음 작품은 뭐냐는 질문에 다음에는 영화가 아닌 일로 밥벌이를 하고 싶다고 했다. 감독은 일반 직장인이 풍기는 꼬질함과 비루함과는 거리가 먼 아우라가 있기 마련인데 이준익 감독이나 박흥식 감독은, 예술이나 창조자로서의 포스보다는 밥벌이의 힘겨움을 감추지 않는다. 그래서 연대감이 형성된다고나 할까. 

이준익 감독 영화 중에서 <황산벌>이  제일 인상적이다. 한국역사의 진지한 에피소드를 사투리라는 코미디로 풀어간 영화다. 화려한 액션이나 CG 따위 없어도 영화적 재미를 표현한 가능성을 보여준 영화다. <구르믈 버서난 달>은 <황산벌>과 한 핏줄 영화다. 소재도 임진왜란 직전에 정여립난(한국사에 이런 사건이 있는 줄도 몰랐다-.-)을 소재로 풀어간다. 해학적 인물인 황정학, 진정한 시어리어스 맨 이몽학, 강아지처럼 촐랑대는 견자, 줏대없는 선조, 말로 줄다리기 하는 동인과 서인, 그리고 차라리 없으면 좋았을 인물 백지. 조정에서 탁상공론하는 동인과 서인 장면은 황정민이 억지로 하는 연기보다 더 웃기다. 황정학이란 인물이 해학적으로 설정돼있어 웃음코드를 미리 설정했다면 탁상공론 장면과 왕의 우유부단하게 버럭질이나 하거나 주저주저하는 행동은 오히려 말 장난이기 때문에 웃을 사람만 웃는다. 난 이런 말 장난이 너무 웃기다. 극장에서 나 혼자 흐흐거렸다.  

때깔로 치자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는데 찾아보니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촬영감독이란다. 어쩐지! 긴장감을 줄 때 과감한 클로즈업과 차승원이 쓰고 있는 갓을 이용해서 카메라와 스크린 사이에 막을 친다거나 풍경을 엽서처럼 담는 화면은 이준익 감독 영화에도 이런 명장면이?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덧. 백성현이란 아역 배우, 또래 아역 배우들 중 가장 근사하게 자란 거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