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 - A Proph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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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겨울이 끝나갈 무렵 혹은 겨울이 시작될 무렵, 길에서 추격신을 본 적이다. 굵은 웨이브 머리를 한 남자가 쫓기고 있었다. 남자는 슬리퍼를 신고있었고 통통한 볼이 발갛게 상기되어 헉헉거리며 뛰고 있었다. 뒤에는 세 명의 제복을 입은 경찰관들이 허리를 휘청이면서 따라갔다.남자의 슬리퍼 한 짝이 벗겨졌다. 몇 미터 맨 발로 뛰다가 곧 땅에 쓰러졌다. 한 경찰관이 모로 누운 남자한테 왔다. 영화에서라면 남자는 벌떡 일어나야했다. 그러나 남자는 숨을 몰아쉬기만 할 뿐이다. 허공으로 나온 가쁜 입김이 남자가 일어날 수 없다는 걸 알려주었다. 남자한테 온 경찰은 남자의 손을 뒤로 꺾는 것도 힘겨워보였다. 곧 두 경찰관도 합류해서 상황은 일단락 됐지만 네 사람의 얼굴에는 고통이 스며있었다. 횡단보도 바로 앞에서 목격했는데 깜짝 놀랐다. 영화에서는 별 힘들어 보이지않고 골목을 누비거나 대로를 누비는 박진감이 실제 상황에서는 없었다. 네 사람이 달리는 속도는 슬로우 모션같았고 쫓는 이와 쫓기는 이의 얼굴은 똑같았다. 누아르 영화에서 봐 왔던 멋진 추격신은 현실에는 없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끝날 때까지 초조했다. 그 이유는 범죄영화를 코미디나 휴머니즘을 결합시킨 한국영화, 영웅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는 미국영화에 길들여져있어서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걸 보면서 아주 낯설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말리크의 거친 삶을 영화처럼 말하는 게 아니라 현실처럼 말한다. 그의 얼굴과 몸 전체에 흉터 자국, 불안할 때마다 흔들리는 눈동자는 2년 전 봤던 퍼머 머리 한 남자가 수갑을 찬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영화는, 11살 때 학교를 그만두고 소년원을 들락거리다 19살이 돼서 소년원이 아니라 감옥으로 가는 말리크의 성장과정을 다룬다. 감옥은 그에게 학교보다 더 많은 걸 가르쳐준다. 배우다 말았던 프랑스어를 다시 배우면서 단순과거 시제 사용에 깜짝 놀란다. 사람들이 단순과거란 시제를 쓰는 걸 감옥에서 처음 배우는 것 처럼 그저 좀 도둑이었던 말리크는 감옥에서 마피아 조직의 똘마니로 들어가 형기를 마치고 나올 때 똘마니를 거느린 조직의 보스가 돼서 나온다. 감옥에서 살인을 처음 해 보고 마약도 처음 해 본다. 감옥에서 두목의 심부름을 하려고 외출을 허가 받고 처음 비행기도 처음 타본다. 뭐든 처음 해보는 시기가 사람한테는 있다. 처음 시제를 배우고 친구를 사귀는 곳은 학교고, 일을 하기 시작하는 곳은, 크든 작든 합법적 조직이 일반적이다. 이런 일반적 과정을 거치지 못한 아랍 출신의 젊은이한테 감옥은 학교고 회사다. 뒷거래를 하는 법을 배우고 사람을 돈으로 매수하고 위협하는 법을 배운다.   

감독의 관점은 진지하고 조직의 의리라든가 액션에 관심이 없다. 소외된 한 아랍 청년이 마피아 조직의 중간 보스가 되는 과정은 아랍 청년의 현실이고 생존기다. 갱생의 공간이 본래의 목적과는 다른 갱생 공간이 되는 모순을 마주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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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3-28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1시간 30분쯤 보다가 너무 마음이 힘들어져서 그냥 나와버렸어요. 아... 뒷 이야기가 궁금하긴 했지만.. 너무 감정이 힘들어지더라구요. 원래 이런 류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영화평이 너무 좋아서 보다가..ㅠㅠ

정말로 갱생의 공간이 본래의 목적과는 다른 갱생 공간이 되지요? ㅠㅠ 넙치님.


넙치 2010-03-29 00:06   좋아요 0 | URL
지독하게 진지해서 저도 힘들었어요.ㅜ.ㅡ
 
잔느 딜망 - Jeanne Dielman, 23 Quai du Commerce, 1080 Bruxelle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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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설. <나는 영국왕을 섬겼다>를 검색하려고 영국을 쳤더니 그동안 검색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영국에서 제작되거나 영국 합작 영화들이 주르르 떴다. 호기심에서 프랑스를 쳤더니..세상에나..감독 이름이나 배우 이름으로 찾을 수 없는 영화들이 한가득이다.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게 억울하기도 하고 철지난 옷에 무심코 넣어뒀다 생각지도 못하게 발견한 지폐처럼 즐겁기도 하다. 로랑 캉테의 <더 클래스>, 고다르의 영화 몇 편. 게다가 샹탈 애커만의 <잔느 딜망>이라니! 201분이라는 압박스런 런닝 타임에 3일에 걸쳐서 일 끝나고 봤다.  

브뤼셀의 께 뒤 꼬메르스Quai du Commerce 23번지에 잔느라는 과부가 있다. 그녀는 집에서 매춘을 해서 생활비를 벌고 아들을 키운다. 카메라는 삼일 동안 끈질기게 그녀를 지켜본다. 좁은 집안에서 그녀를 조용하지만 짖궂을 정도로 밀착해서 따라다닌다. 좁고 어두운 복도, 그녀가 주로 시간을 보내는 주방에서 카메라는 그녀를 기다린다. 프레임 안으로 그녀는 들어왔다가 나간다. 프레임 밖으로 잔느가 나가도 마루바닥에 닿아 나는 발소리가 분주하다는 걸 알려주고, 설거지를 할 때 물소리가 그녀가 아직 어디 있는지 알려준다. 음악보다는 주전자 물 끓는 소리, 발걸음 소리, 엘리베이터 작동하는 소음 등이 그녀의 신경과 관객의 신경을 긴장시킨다.

잔느는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고 장을 본다. 장보고 집에 오는 길에 똑같은 카페에 들러 같은 자리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집에 돌아와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아들과 최소한의 대화만을 나누고 잠자리에 든다. 소름끼칠 정도로 그녀의 일상은 지독한 쳇바퀴다.  

그러나 권태보다는 긴장감이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둘째 날, 신경이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진 잔느는 아침에 아들 구두를 손질하다 구두솔을 떨어뜨리고 매춘 후, 첫날과 다르게 헝클어진 머리를 그대로 하고 있으며 잠옷 가운 단추도 다 채우는 걸 잊는다. 똑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미세한 오차가 그녀의 초조한 심리를 전달한다. 장을 보러갈 때도 카메라는 길에서 그녀를 기다린다. 그녀가 물건을 사러 들어가도 그 자리에서 빈 거리를 보여준다. 조금 기다리면 그녀가 가게에서 나오고 카메라는 그녀의 뒤를 따라간다.  

셋째날에, 잔느의 심리는 더 고조된다. 커피를 두 번이나 탔지만 곧 쏟아버리고 양복 단추를 찾아 동네를 돌지만 단추는 없다. 설상가상으로 카페에 들렀더니 늘 앉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있다. 침대 시트 정리 같은 사소한 일에도 각을 잡고 베개에 난 구김을 털어내는 그녀의 손동작 속에 전력투구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다. 표정은 굳어있고 옷매무새가 검소하지만 흐트러짐이 없는 그녀는 목으로 올라오는 일상의 권태를 꿀꺽 삼키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삼키는 게 더 이상 힘들어질 때, 게워내기 마련이다. 잔느가 보낸 이틀을 두 시간동안 보내고 있으면 삼일 마지막에 게워낸 잔느의 행동에(궁금하신 분은 보시길) 놀라기보다는 공감을 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른다.   

건조한 프레임에서 정교하게 짜 넣은 공감의 힘에 박수치고 싶다. 수다스럽지 않게 일상의 힘겨움을 다룬다. 때론 일상이 축복이지만 일상은 대부분은 투쟁의 대상이다. 사소해서 싸우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래서 곧 자신과의 싸움이 돼버린다. 가사 노동만이 그 대상이 아니라 밥벌이를 위한 일정한 노동도 반복적이다. 아주 가끔 보람 비슷한 게 찾아오는 거 말고는, 대부분의 날들 동안 연봉에 맞는 노동력을 제공하려고 애쓰다 보면 자아 따위의 개념은 우주여행 중이시다. 발을 딛고 있는 건 피곤한 육신이고 투덜거릴 기력조차도 없다. 힘든 요즘이다..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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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3-28 2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힘든 요즘이다..흑 ㅠㅠ

저두요..ㅠㅠ


근데 이 영화는 못 보았어요. 꼭..반드시.. 찾아보야겠네요.... 저도..잔느의 행동에 놀라기보다는 공감을 할 것 같아요..

넙치 2010-03-29 00:05   좋아요 1 | URL
최근 본 영화 중에서 제일 좋았던 영화에요,
근데 <예언자> 보는 거 힘드셨음, 이 영화도 지켜보기에 만만치않게 힘들어용.-.-;;
 
베라 드레이크 - Vera Drak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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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권리>에서 김연수는 미국에서 만난 한 젊은 친구와 하루키를 이야기하면서 나이도 국적도 다른 공통점이라곤 하나도 없는 사람들끼리 하루키를 좋아하는 게 신기하다고 신나게 이야기한다. 하루키의 문장만으로도 두 사람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급친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분명히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코드가 존재한다. 마이크 리 감독의 영화를 몇 편 안 봤지만 그의 영화적 언어에서 공감을 느낄 수는 없다, 고 말할 수 있다. 저렇게 밖에 표현이 안 되나..안타깝기까지 했다. 꽤 좋은 평을 받은 영화라도 마음을 끌어당기는 구석이 거의 없다. -.-

전반부는 베라 드레이크의 성실함과 행복을 다룬다. 유능한 가정부로 맡은 일에 성실한 소시민이다. 늘 같은 길, 같은 시간표로 일상을 살아가지만 베라 드레이크는 늘 콧노래를 부를 정도로 여유있다. 영화가 전개되는 시점은 1950년으로 낙태가 금지된 시기다.(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베라는 원치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에게 낙태시술을 한다. 베라가 낙태시술을 하는 목적은 젊은 여성을 돕는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돈을 챙기거나 법을 어기고 있다는 생각 따위보다는 겁에 질린 여성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컸다. 모든 기쁨은 끝이 있는 법이다. 베라의 시술이 잘못돼서 죽을 뻔한 여자의 엄마가 신고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후반부는 낙태시술이라는 불법행위에 대한 제도권의 태도와 베라의 태도를 배치해 보여준다. 먼저 베라는 정신세계 속에 위생, 불법 등등에 대한 개념이 없다. 베라는 "도와주기 위해서"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무지에서 비롯되서 선의라고 착각한 행동에 대해 베라는 그저 공포스럽기만 할 뿐이다. 형사나 검사, 판사들은 그녀의 의도를 보는 게 아니다. 그들은 베라의 행동만을 떼 놓고 본다. 행위가 행위자의 의도를 빠져나와 사람의 입이나 글로 진술될 때, 얼마나 다른 일이 될 수 있는지...법이나 정의의 객관성은 사람의 생각을 거추장스러워해서 싹뚝 잘라버리니 진정한 정의는 과연 존재하는지. 

뭐,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다. 실내 장면이 많고 카메라는 굉장히 좁은 공간만을 사용한다. 인물의 클로즈업, 모여앉은 인물들을 한 앵글에 잡을 때도 그렇다. 어쩌면 미국식 카메라 팬잉fanning에 익숙해서 정지된 카메라가 낯설고 답답한지도 모르겠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베라가 좁은 골목길을 왔다가갔다 할 때다. 캡쳐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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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오리 바람 - Eightee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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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열여덟살 겨울방학, 난 뭘 했던가. 집과 독서실을 오갔고 김기덕의 두시의 데이트에서 방학특집으로 했던 빌보드 차트 100위를 녹음하는 데 열을 올렸다. 주말이면 극장에 갔고 주말의 명화를 보고 노트에 감독이름을 꼬박꼬박 적어놓았다. 한달에 한 번은 <스크린>지를 탐독했다. 뭘할지 몰랐고 주어진 코 앞의 과제를 당연히 받아들이며 입시생으로 비교적 착실히 살았다. 스트레스로 병원을 들락거리기도 했지만 즐거웠던 기억은 거의 없다. 나중에 영화감독이 되겠다던 친구(지금은 한 아이의 엄마가 됐다)랑 극장에 오가면서 영화 속 세계에 대해 허무맹랑하게 재잘거렸던 기억만이 미소를 짓게 한다. 가끔씩 까닭없이 찾아오는 목졸림 현상으로 고통을 받았지만 모두가 그러려니 했다.  

2. 

이 영화는 열여덟살 한 남학생의 겨울방학 이야기다. 공부는 물론 학교 자체에 흥미가 별로 없는고 여자친구랑 일주일동안 바다를 보러갔다온다. 십대에게 일주일간의 여행은, 어른한테는 가출이다. 집안은 발칵 뒤집어지고 두 십대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사랑이다. 이 영화가 십대의 사랑이야기는 아니다. 공부에 흥미없는 남학생이 흥미를 갖게 된 대상이 미정이란 여자친구일 뿐이다.  

주인공들이 십대라는 물리적 한계를 제한하지만 이 영화는 십대의 성장영화라기 보다는 뭘 해야할지 모르는 막연함, 세상이 모두 내 편이 아닌 거 같을 때의 황망함과 적막함 때문에 어른 영화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끝 없이 펼쳐진 고요한 지평선 속에 남학생이 걸어들어가 한 가운데 서 있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두 고등학생이 키스를 하는 장면이나 상반신을 노출하는 장면이(꿈처럼 처리되기는 하지만) 꼭 필요해보이지 않는다. 이 장면은 완전 전체 영화흐름을 잡치게 했다. 십대의 질풍을 잔잔함 속에서 처리했으면 내 취향의 영화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대사대신 인물의 사소한 행동을 배치하는 방식은 아주 좋지만 전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아이의 시선보다는 어른의 시선의 느낌이 강하다.   

3.  

이십대 초반에 삼십세인 학과조교 선배를 보면서 나른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삼심세만 되면 뭐든 정확한 길이 당연히 있을 거고 뿌연 안개같은 길은 이십대에 안녕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철이 없었다. 삽십대를 마감했어도 여전히 안개는 걷히지 않고 앞으로 가고 있다기 보다는 한 자리를 맴돌고 있는 거 같다. 부모님의 간섭이 사라진 걸 빼고는 십대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여전함을 기뻐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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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 - Milk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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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개봉이 안 돼서 파일을 다운받았지만 자막이 없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전작들을 볼 때 대사의 양이 적어서 걱정도 안 했는데 전작들과 다르게 대사가 아주 많고 게다가 숀 팬의 웅얼거리는 말투는 청취 불가로 좌절감을 맛보게 했다. 영화가 개봉하거나 dvd를 입수할 날을 기대했다. 당장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은 크게 마련이어서 <밀크>에 대한 기대도 컸다. 이번에는 구스 반 산트는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카메라를 사용했을까. 

구스 반 산트의 영화라면 무조건 봐야한다는 편이다. 그의 장기는 내러티브의 정교함이나 스릴이 아니라 한 에피소드에 대한 심리 묘사다. 이러쿵 저러쿵 늘어놓기보다는 흔들리는 카메라로 인물이 걸어가는 길이나 벽을 감성적 음악과 배치해서 에피소드 속 인물이 어떻게 느꼈을지 가상의 체험 세계로 끌어들인다. <엘리펀트>, <라스트 데이즈>, <파라노이드 파크>, <밀크>에 이르기까지 공통분모는 죽음이다. 각각 다른 사건을 통해 인물들이 죽음과 마주하고  죽음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상황에서 인물들이 겪는 무심, 공포, 좌절을 선명하게 묘사한다. 일반적 기준에서 악이나 범죄인 행동이 겪는 이의 입장에서는 더 큰 공포와 공허에서 출발하는데, 이래도 비난할 수 있겠니, 라고 말 하는 거 같다.

<밀크>는 70년대 게이 인권운동가였던 하비 밀크의 전기다. 평범한 영화는 아니지만 감독의 전작들이 너무 좋아서 좀 아쉬운 영화다. 성적 소수자에 대해 차별을 행사하는 제도권과 맞서 싸우는 내용들이다. 기록필름을 삽입해서 당시의 분위기의 치열함을 재연한다. 

영화를 함께 본 후배한테, 하비 밀크처럼 사명감을 갖고 불의에 맞서는 건 성격이 많이 좌우할 거 같다고 했다. 후배 왈, 불의라기 보다는 견뎌야할 상황으로 판단하고 힘들지만 받아들이는 쪽이라고 했다. 투쟁의 시작은 현실을 직시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했다. 같은 현실도 각자 다르게 인식하고 투쟁방법도 다르다. 하비 밀크는 격렬하게 투쟁하다 숨을 거두었고 또 누군가는 눈에 띄지 않게 투쟁하면서 숨을 거두고 있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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